‘선한 영향력2’
행복학회에서 강진선생님이 사용하는 이름이다. 그 이름부터가 범상치 아니하였고 실제로 그녀의 행보도 비상하기에 인터뷰를 해보고 싶었다. 그녀가 생각하는 ‘선한 영향력’이란 무엇일까? 지금부터 시작한다.
자기소개 좀 부탁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행복학회 부산행복지원센터장 ‘강진’이라고 합니다. 저는 경상남도 양산에 살고 슬하에 초등학교 6학년생 아들이 한명 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첫 번째는 특수아동들을 교육하고 가족을 상담합니다. 두 번째는 다문화 센터에서 다문화 가족을 상담을 하거나 다문화 아이들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부모교육이나 사티어의 의사소통훈련, 뇌교육, 임상 동작법등의 강의도 하고 있습니다.
여기 행복학회의 회원 분들도 마찬가지겠습니다만 선생님께서 하시는 일이 참 많으시네요.
네, 특수 아동들을 교육하다 다양한 사례에 대한 지원방법을 찾다보니 여러 방향의 공부를 하게 되어 그렇게 되었습니다. 몸에 대해 배우다 보니 몸은 마음과 연관되어 있어 심리를 접하게 되었고 마음은 뇌를 알아야 더 이해되는 부분이 많아 인지, 행동, 정서에 대한 영역들을 조금씩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공부하신 내용들을 보면 특수아동에 초첨이 맞춰 있다고 느껴지는데요. 특수교육에 발을 들여 놓으시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특수 아동분야는 어릴 때부터 관심이 있었어요. 가장 큰 계기가 되었던 사건은 중학교 2학년 때 대학생봉사동아리모임에 껴서 고아원이나 장애인시설에 자원봉사를 갔었어요. 그런데 그 곳 아이들의 행동이 굉장히 당황스럽고 무섭기까지 했지요. 자원봉사를 온 사람들에게 돌을 던지거나 때린다던지 달려와서 먹은 것을 빼앗아 입속에 다 넣어 한꺼번에 토한다든지 등 봉사자를 향한 아이들의 관심 받고자하는 표현이 너무 달랐지요. 그런 아이들과 차츰 정을 쌓아가고 있었는데 아이들 중에 7살짜리 남자아이가 갈 때마다 기도실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 거예요. 하루는 호기심에 ‘무슨 기도를 하나…?’ 그 아이의 뒤에 앉아서 가만히 그 내용을 들어보았습니다. 그 아이의 기도는 딱 하나였지요. ‘자신은 장애인이라서 부모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엄마 뱃속에 있는 동생은 자기처럼 태어나지 않아서 버림받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는 거예요.
그때 저는 망치로 얻어맞은 듯 충격을 받았어요. 일곱 살짜리 아이가 뭘 안다고, 이미 자기가 버려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정말 슬퍼하고 괴로워할 나이인데 태어나지도 않은 동생을 위하여 진심을 다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모습은 숭고하기까지 했지요. 저는 그 당시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고 그래서 참 힘들고 어려운 현실 때문에 불평하고 있었는데 이 아이는 부모에게 버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기도가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나라는 인간은 이 아이보다 너무 못하다.’ 는 반성을 하면서 ‘나도 이렇게 장애라는 것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힘든 아이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라는 마음을 먹게 되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현재까지 특수 아동교육의 길을 17년간 걸어오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특수 아동만을 바라보며 사회에 발을 들여 놓으셨다는 말씀이군요. 직업 선택의 계기가 참 인상적입니다. 특수아동의 현실과 그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반원장님을 만난 계기도 궁금합니다.
우리아이들이 초등학교 3학년쯤 되면 그들의 부모는 아이를 위해 사교육을 포기할 것인지 아닌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결국엔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교교육 말고는 다른 부분들에 대해서는 손을 떼게 되죠. 아이가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진학해도 결국 ‘장애라는 한계 안에 현실을 타협하게 되는 것이지요.’ 대부분의 아이들은 전공과정을 나와도 취업이 어렵고 하더라도 적은 보수로 일시적인 일을 할뿐이니 대부분 가정에서 돌봐주지 않으면 시설에서 지내다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 현실인 거지요. 그 중 끝까지 자녀와 함께하는 부모의 경우는 아주 소수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랜 세월 이런 상황을 보면서 ‘이건 시스템의 문제다.’라고 판단되었어요. 사실 어느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싶으며 자식에게 안해주고 싶겠습니까? 하지만 현실은 경제적, 신체적, 정서적인 모든 부분을 부모가 책임져야 하니 상황이 어려운 부모들은 결국 여러 가지 이유에서 다른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특수학교가 있지만 학교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은 제한되어 있고 부모는 사비용을 드려서 치료를 받으려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변화는 적고, 많은 경제적, 심리적 부담감을 많이 느끼게 되면 결국 아이는 다른 자녀를 위해서, 부부가 이혼하지 않기 위해서등 생각할 수 없었던 일들이 현실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아이들에게 맞는 시스템을 만들어서 어릴 때부터 그에 알맞은 교육을 시켜 아이가 사회에서 더불어 살 수 있는 직업을 갖게 해주고 싶다는 꿈이 생겼지요. 그런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하고 아는 분을 찾아가 이야기를 하게 된 거죠. 그 분은 제가 우리아이들을 위하여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자격을 갖춰 준비가 되면 도와주시기로 약속했는데 90%진행, 공부를 다 마치고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될 줄만 알았던 현실이 그 분의 상황과 마음이 바뀌면서 시작도 못해보고 물거품이 된 것이지요. 후원해주실 분이 안 되겠다 하시니 저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지요. 전 그 때 하나님께 ‘제가 7년 동안 열심히 다양한 공부를 해왔는데 왜 이 시점에서 그 꿈을 버리라고 하시는지..., 단 한 명의 아이라도 더불어 살아가는데 부족함이 없는 직업을 갖게 해주고 싶은 꿈이 뭐가 잘못되었는지.’. 항변하면서 3일 동안 펑펑 울었어요. 그렇게 울고 나니 나보다는 하나님이 더 그 아이들을 사랑하시는데 이유가 있겠다싶어 그렇게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그 시점에 반원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대면하게 되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