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1. 다음 자료에 해당하는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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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릉과 넓은 못이 많아서 동이 지역 중에서 가장 넓고 평탄한 곳이다. 토질은 오곡을 가꾸기에는 알맞지만, 과일은 생산되지 않았다. 사람들 체격이 매우 크고, 성품이 강직하고 용맹하며, 근엄하고 후덕하여 다른 나라를 노략질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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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읍군, 삼로 등의 관직이 있어서 하호를 통치하였다.
② 왕이 죽으면 많은 사람을 껴묻거리와 함께 묻는 순장의 풍습이 있었다.
③ 수해나 한해로 오곡이 잘 익지 않으면 그 책임을 왕에게 묻기도 하였다.
④ 전쟁이 일어났을 때에 제천 의식을 행하고, 소 발굽으로 길흉을 점치기도 하였다.
정답: ①
* 부여에 대하여
동이 중 가장 넓고, 중국측 기록이 우호적인 것을 통해서 부여임을 알 수 있다.
부여는 고조선 멸망 후 철기에 기반을 두어 나타난 초기 국가 중 역사가 가장 오래되고 영토가 넓으며, 후일 고구려와 백제의 뿌리가 된 나라로, 가장 북쪽에 위치하였다(만주 길림 송화강 유역 평야 지대).
부여의 풍속으로 영고라는 제천 행사가 있었다. 이것은 수렵 사회의 전통을 보여 주는 것으로 12월에 열렸다. 이 때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노래와 춤을 즐겼으며, 죄수를 풀어 주기도 하였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에는 제천 의식을 행하고, 소를 죽여 그 굽으로 길흉을 점치기도 하였다(우제점법).
부여에는 왕 아래에 가축의 이름을 딴 마가, 우가, 저가, 구가와 대사자, 사자 등의 관리가 있었다. 이들 가(加)는 저마다 따로 행정 구획인 사출도를 다스리고 있어서, 왕이 직접 통치하는 중앙과 합쳐 5부를 이루었다. 가들은 왕을 추대하기도 하였고, 수해나 한해를 입어 오곡이 잘 익지 않으면 그 책임을 왕에게 묻기도 하였다. 그러나 왕이 나온 대표 부족의 세력은 매우 강해서 궁궐, 성책, 감옥, 창고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왕이 죽으면 많은 사람을 껴묻거리와 함께 묻는 순장의 풍습이 있었다.
부여의 법으로는, 살인자는 사형에 처하고 그 가족은 노비로 삼으며, 남의 물건을 훔쳤을 때에는 물건값의 12배를 배상하게 하고, 간음한 자와 투기가 심한 부인은 사형에 처한다는 것 등이 전해지고 있다. 이는 고조선의 8조의 법과 비슷한 종류임을 알수 있다.
① 함경도 및 강원도 북부의 동해안에 위치한 옥저와 동예는 변방에 치우쳐 있어 선진 문화의 수용이 늦고, 일찍부터 고구려의 압력을 받아 크게 성장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국왕이 없고, 각 읍락에는 읍군이나 삼로라는 군장이 있어서 자기 부족을 다스렸으나 그 세력이 약하였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