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 |
- 세계 최초의 승용차
1803년 광산 기술자인 영국의 리처드 트레비딕(Richard Trevithick)은 제임스 와트의 증기엔진과 머독이 만든 증기 자동차를 본후 사람들이 타고 다닐 수 있는 승용자동차를 만들기로 결심하고,4년간의 연구끝에 지름 3.3m의 거대한 구동바퀴를 갖춘 3륜차를 완성하여 런던 시내에서 8명의 장정을 태우고 13km/h의 속도로 주행 하는데 성공 하였다. 그는 그해 크리스마스 전날 본격적인 로드테스트를 하기 위해 친구3명을 태우고 가던중 작은 시냇물에서 높은 차체로 인한 롤링을 감당하지 못하고 작은 바위를 들이받고 핸들이 부르지며 전복되고 말았다. 사람들을 불러 차를 일으켜 세우는데는 성공 했으나, 그가 선술집에서 잠깐 위스키로 몸을 녹이는 사이 보일러에 남아 있던 불씨가 나무로 만든 차체에 옮겨 붙어 타 버리고 말았다.
- 1805년 올리버 에반스(Oliver Evans)는 미국에서 파워보트와 육로 수송수단에 얹혀지는 스팀엔진에 대한 특허를 받고 대대적인 판매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1805년 20톤 무게의 스팀엔진을 얹은 육로수송 자동차(Oruktor Amphibolis)로 필라델피아에서 시운전을 하였다.
![에반스의 자동차](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myhome.shinbiro.com%2F%7Edwcij%2Fhistory%2Fimages%2Fhis_evans.jpg)
- 1807년 스위스에서 아이삭 리바츠(Issac Rivaz)는 원시적인 가스엔진으로 움직이는 손수레를 만들어 특허를 얻었다.
이 엔진은 수소와 산소의 혼합기를 사용한 최초의 내연기관 이었다. 그러나 배기밸브를 수동으로 조작해야 했기 때문에 운전이 어려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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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0 |
- 1824년 영국의 사무엘 브라운(Samuel Brown)은 석탄가스를 매개체로 하는 2기통 4마력의 가스기관을 완성해 차에 설치 하였으나 열효율이 낮아 상업적으로는 실패하고 말았다.
- 1825년 토마스 브랜차드(Thomas Blanchard)는 미국 메사추세츠에서 증기자동차를 만들었다. 이 차는 후진도 가능했다.
- 1826~1836년 W.핸목이 만든 10대의 증기자동차(버스)가 런던시내와 첼트넘간에서 정기 운행하여 사상 최초의 실용화된 자동차가 되었다.
이 정기버스는 22인승에 평균 속도는 16~22km/h였다.
- 1827년 프랑스의 O.페쿠르는 차동기어장치를 개발하였다.
- 1829년 영국인 W.H.제임스는 마차에 보일러를 실은 증기자동차를 만들어 도심을 활보 했다.
- 1829년 골드워시 거네이(Goldworthy Gurney)는 증기자동차로 런던에서 베스(Bath)까지 여행했다. 여행기간동안 이 자동차는 몇 번의 고장을 일으켰으나, 최초로 가장 먼 거리를 달린 자동차로 기록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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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 |
- 1832년 영국인 W.H.제임스는 속력에 있어 중요한 3단 변속기어도 고안해 냈다.
- 1837년 토마스 다벤포트(Thomas Davenport)가 전기모터에 대한 특허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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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 |
- 미국의 찰스 굿이어는 1839년 유황처리법의 특허권을 매입하여 그 연구를 추진한 결과, 장기간을 사용해도 탄력성을 잃지 않는 딱딱한 고무를 만드는데 성공 하였다.
- 1843년 미국의 자동차 산업을 조직화하여 자동차 생산으로 전환시킨 앨버트 A.포드가 탄생 하였다.
- 1844년 미국 뉴욕의 스튜어트 페리(Stuart Perry)가 테레빈유를 연료로 사용하는 내연기관을 만들어 1844년과 1846년에 특허를 얻었다. 이것은 2행정 방식이었다.
- 1845년 R.W.톰프스는 공기타이어를 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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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0 |
- 1851년 미국에서 증기자동차회사가 뉴욕에 세워졌지만 사업은 얼마가지 못했다.
- 1853년 이탈리아의 에우제니오 발산티(Eugenio Barsanti)와 펠리체 마테우치(Felice Matteucci)가 최초로 가스엔진에 대한 특허를 받았다. 그러나 실제적인 설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 1859년 벨기에의 에치엔느 르노와르(Lenoir)는 석탄 가스와 공기의 혼합 기체가 수평 실린더의 양끝에서 교대로 공급되어 밧데리의 전기 불꽃이 그 연료를 점화한, 그 결과로 발생하는 폭발이 피스톤을 좌우로 움직여 스퍼크가 붙은 큰 플라이휠을 수직으로 회전시키는 2행정 엔진을 제작 하였다. 이 엔진은 18리터에 2마력의 출력을 내었다.
![르노와르 엔진](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myhome.shinbiro.com%2F%7Edwcij%2Fhistory%2Fimages%2Fhis_Lenoir.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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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 |
- 1862년 프랑스의 A.B.로사가 사이클 기관의 원리를 발견 하였다.
- 최초의 자동차 법규
1865년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최초의 자동차 법규인 "적기조례(붉은 깃발법,Red Flag Act)"를 선포 하였다. 이의 내용으로는 ① 1대의 자동차에 3인의 운전수를 태운다. 그중 한명은 낮에는 붉은 깃발,밤에는 붉은등을 가지고 55m 앞을 달리면서 자동차가 온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② 최고속도를 6.4km/h 이하로 하고,시가지에서는 3.2km/h로 한다 ③ 2톤 단위로 세금을 물고 시경계나 주경계를 넘을 때는 도로세를 내도록 한다 ④ 밤에는 촛불이나 가스불을 달고 운행해야 한다. 등으로 되어 있었으며. 이 칙령은 1896년까지 존속하였다. 당시 최고 시속 40km로 달리던 자동차를 6.4km/h의 속도로 제한하므로서 영국의 자동차 산업을 얼어 붙게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1986년 이 법이 폐지되기는 했으나. 이 때는 이미 프랑스등 다른 국가들의 자동차 산업이 본 궤도에 오른 후였다.
- 1866년 독일의 니콜라스 어거스트 오토(Nikolaus August Otto)가 피스톤 엔진에 대한 특허를 얻었다.
![오토의 피스톤엔진](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myhome.shinbiro.com%2F%7Edwcij%2Fhistory%2Fimages%2Fhis_Otto.jpg)
- 1868년 조셉 라벨(Joseph Ravel)이 페트로늄(석유,가솔린)을 이용해서 보일러를 가열시키는 최초의 증기자동차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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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 |
- 1972년 니콜라스 어거스트 오토(Nikolaus August Otto)는 엔지니어 에우겐 랑겐(Eugen Langen)과 함께 독일가스 엔진공장을 세우고 피스톤 엔진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당시 공장 매니저는 다임러를 세운 고트리브 다임러(Gottlieb Daimler)였다.
- 최초의 전기자동차
1873년 영국의 로버트 데이비스 존은 납과 아연을 이용한 축전지의 사용하여 전기 4륜 트럭을 개발하였다.
- 세계 최초의 내연기관
1874년 가을, 오스트리아에서 유대인인 지그프리드 말커스 (Siegfried Marcus)가 4년간의 연구끝에 벤젠을 연료로한 엔진 출력 0.75마력의 자동차를 개발 하였다. 이차는 평균 시속이 6.4km였으며, 스프링,클러치,브레이크까지 장착 했지만 불행히도 배기파이프와 소음기를 발명하지 못해 소음이 심했다.
- 1876년 니콜라스 어거스트 오토(Nikolaus August Otto)는 4행정 사이클 내연기관을 완성 하였다.
- 1876년 프랑스의 기술자 마르크스는 처음으로 젯트 캬브레타를 개발하여 가솔린을 연료로 하는 4행정 가솔린 엔진을 개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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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 |
- 1885년 오토내연기관연구소의 연구원이었던 독일의 고트리브 다임러(Gottlieb Daimler)는 가솔린을 연료로 하는 가볍고 강력한 기관을 완성하고, 이것을 목제의 2륜차에 탑재하여 사상 최초의 2륜차를 제작하여 각각 특허를 얻었다.
- 세계 최초의 휘발유 자동차
1885년 독일의 칼.벤츠(Karl Benz)는 가솔린 3륜 자동차를 발명하고 만하임에서 시운전을 하였으며, 그 다음해인 1886년 특허를 획득하였다(특허번로 37,435호). 이 차는 무게 250kg의 자전거타입 삼륜차로 200prm에서 0.85마력의 힘을 내는 1기통 4엔진을 얹고 최고 시속 16km를 냈다. 첫해에 만든 두 대중 한 대는 뮌헨의 도이치 박물관에 아직도 달릴 수 있는 상태로 보관되어 있다. 칼 벤츠는 다임러와 거의 동시에 가솔린 자동차를 발명하였으나 가솔린 엔진 제작에 있어 다임러 보다 앞선 1879년에 이미 제작한 바 있기 때문에 칼 벤츠의 자동차를 최초의 휘발유 자동차로 보는 견해들이 지배적이다.
- 1886년 고트리브 다임러(Gottlieb Daimler)는 1기통 배기량
250cc 0.8마력의 가솔린엔진을 마차에 장착한 4륜 자동차를 발명하여,아내 엠마의 43번째 생일인 4월26일에 이를 선물 하였는데,앞쪽에는 핸들이 달린 차축을 뒤쪽에는 엔진과 벨트로 연결된 구동축을, 그리고 의자밑에는 작은 자동차 엔진을 장착 했다. 이때 이 자동차의 최고속도는 시속 16km였다.
- 1886년 니콜라스 오토는 4사이클 엔진에 대한 특허권을 박탈당하게 되고 이것은 프랑스 엔지니어에게 넘어 갔다. 프랑스 엔지니어는 4사이클엔진에 대한 특허를 1862년에 받았다.
- 최초의 로드 테스트
1888년 8월 칼 벤츠가 독일 뮌헨에서 열렸던 산업박람회을 구경하기 위해 집을 비운 사이, 부인 베르타 링게(자동차의 어머니라 불리움)는 그의 두아들의 간청에 못이겨 자동차를 몰고 100km나 떨어진 외가로 향했다. 험한 시골길을 달리는 동안 자동차는 여기저기 부서져 나갔고, 베르타 링게는 이를 고쳐가며 하루종일 차를 몰아 기름과 먼지투성이가 된채 외가에 도착 했다. 이튿날, 전보로 이 소식을 전해들은 칼 벤츠는 자동차가 다 망가졌으리라는 생각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처가로 달려 갔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자동차는 크게 부서지지는 않았으며.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장거리 로드 테스트를 연약한 여자와 아이들이 해냈다는 사실, 그리고 자동차가 치명적인 고장 없이 그 먼거리를 끝까지 달려 주었다는 사실에 용기를 얻었다.
- 최초의 자동차 메이커
프랑스 변호사이자 사업가였던 에드워드 사라쟁의 미망인인 루이스 사라쟁 부인은 고트리브 다임러에게서 다임러의 엔진을 얹은 자동차를 파리 및 벨기에에서 만들어서 팔 수 있도록 제조판매권을 취득하고, 신형차 한 대를 선물로 받아 600km나 되는 거리를 직접 운전해 파리로 돌아왔다. 그녀는 남편의 친구이자 사업가였던 에밀 르바소(Emile Levassor)와 합작하여 1889년 세계 최초의 자동차 메이커인 파나르 르바소(Panhard Levassor)社를 설립 하고, 에밀과 재혼 하였다. 1903년경 1,5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리며 연간 1,000대 이상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세계최대의 회사로 성장 했으나, 2차대전후 경영 악화로 프랑스 시트로엥에 흡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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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 |
- 1891년 에밀 르바소는 또 다른 동업자인 레네 파나르(Rene Panhard)와 함께 다임러 엔진을 중앙에 탑재한 모터 스포츠카 생산에 들어 갔으며, 3년후 둥근 핸들뒤에 좌석이 설치된 오늘날 자동차 구조와 유사한 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 1892년 파나르 르바소는 자동차를 대중적으로 팔기 시작했으며, 4열시트인 이 자동차의 당시 가격은 200리라였다.
- 1893년 뒤리에 형제에 의해 미국 최초의 자동차가 제작되었다.
- 디젤 엔진의 발명
1894년 독일의 엔지니어인 루돌프 디젤의 4년간의 연구끝에 압축착화기관인 디젤엔진을 발명되었다. 루돌프 디젤은 불꽃이 있어야 시동을 걸 수 있는 휘발유 자동차 엔진의 위험성에 주목하고 보다 안전한 엔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 했다. 그는 엔진의 기통내에서 공기를 매우 강하게 압축시켜 얻은 높은 열로 기름을 태워 폭발시키는 열엔진을 발명하여 특허를 얻었고, 그의 아내의 권유에 따라 엔진이름을 디젤엔진이라고 하였다. 디젤엔진은 에너지 효율이 높은 경제형 엔진으로 알려지면서 유럽과 미국 사업가들이 몰려 광산공장,선박,기차,건설장비, 트랙터용 엔진으로 날개 돋친 듯 팔렸고, 루돌프 디젤은 백만장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회사 간부들의 부정부패,증기엔진과 휘발유엔진 제조업자들의 질투와 모함등으로 인해 신경쇠약에 걸리게 되고, 1913년 영국에 세워진 디젤엔진공장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기선을 타고 도버해엽을 건너던중 밤중에 실종되었고, 그로부터 2주후 핀란드의 작은 어선이 북해에 떠 있는 루돌프 디젤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의 죽음은 타살인지,자살인지 아직도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고 한다. 디젤엔진은 자동차용으로는 벤츠가 1922년 트럭에, 1936년 승용차에 각각 처음으로 사용했다.
- 최초의 자동차 경주대회
1894년 7월 세계 최초의 자동차 경주대회가 프랑스의 『프티 주르날』신문사의 주최로 파리-루앙(126km)에서 개최되었다. 총 102대 신청자중 두 번의 예선에서 81대가 탈락하고 21대만이 본선에 진출 했다. 7월22일 일요일 아침 8시 정각부터 30초 간격으로 파리의 포트마이요가를 출발하여 세느강변을 따라 루앙을 향해 달리기 시작 했다. 예상 했던 것처럼 출발에서부터 해프닝이 벌어 졌는데, 어떤 프랑스의 증기차는 공원 블럭을 모조리 부수고 핸들이 고장나 잔디밭으로 들어가는가 하면, 어떤차는 인도위에 진열된 식탁들을 넘어뜨리고 레스토랑안으로, 어떤차는 바퀴가 빠져 길가던 마차를 들어 받는등 전 코스의 4분의1도 못가서 도중하차하는 차들이 속출했다. 이 경주에서는 드디옹 백작이 운전한 드디옹-부통 증기자동차가 출발한 지 10시간47분만에 평균시속 11km 속도로 1착을 하였다. 그러나 뒤에 트레일러를 달고 달렸다는 이유로 대회 규칙을 위반했다고 해서 실격되고 말았다. 결국 다임러기관을 탑재하고,2등으로 골인한 푸조와 파나르 르바소 차가 공동우승을 차지하며 5천 프랑을 나눠 가지게 되었다.
- 1894년 독일의 칼 벤츠(Karl Benz)는 새로운 벨로(Velo)라 명명된 4휠 드라이브 차량을 선보였다. 이 차량은 1894년 모두 67대가 생산 되었다.
- 최초의 자동차쇼
세계 최초의 자동차 쇼는 1894년 12월 11일 파리에서 개최 되었다. (The Exposition International de Velocipedie et de Locomotion Automobile)
- 1895년 독일의 벤츠(Karl Benz)가 8인승 승합차를 만들었다.
- 1895년 프랑스의 파나르 르바소(Panhard Levassor)社는 엔진을 차의 앞쪽에 설치한 최초의 세단형 승용차를 만들었다.
- 최초의 자동차용 공기 타이어
1895년 프랑스의 앙드레 미쉐린(Andre Michelin)과 에드알드 미쉐린(Edouard Michelin) 형제는 자동차용 공기 타이어를 개발 하였다. 미쉐린은 한 영국 청년이 타고온 공기타이어를 단 자전거를 보고 당시 자동차들이 통고무 타이어를 장착해서 딱딱하고 쿠션이 나쁘다는점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는 곧 자전거 타이어를 본 떠서 공기 튜브식 자동차 타이어를 만들었다. 미쉐린은 타이어를 푸조차를 개조한 "에크레르"에 끼워서 때마침 열린 파리-보르드간 560km 자동차 경주에 출전 했으나, 무려 22번이나 타이어가 찢어져 나중에는 할 수 없이 풀잎을 채워 넣고 달렸다. 그러나 자동차의 쿠션은 그렇게 부드러울 수 없었다. 이후 1년뒤 공기압타이어를 단 최초의 양산차 "보아추레트"가 등장하며 미쉐린의 공기주입식 타이어는 급속히 확산되기 시작 했다. 당시의 타이어 크기는 지금의 모터 사이클 바퀴와 비슷한 정도여서 직경이 65mm에 불과 했다.
- 1896년 프랑스의 푸조 자동차사가 설립되어 에밀델라헤이가 최초의 차를 발표 하였다.
- 1897년 베를린에서 국제모터쇼(International Motor Show (IAA), 프랑크푸르트의 전신)가 개최되었다.
이어 1898년 6월 15일에는 프랑스 파리 살롱이 개최되었다.
- 1898년 르노형제가 최초의 차를 제작했는데 공냉 단기통 1.75마력의 디온 엔진을 부착 했다.
- 1899년 프랑스의 르노社,이탈리아의 피아트社가 설립 되었다.
- 세계 최초로 시속 100km 돌파
1899년 4월 벨기에의 자동차 매니아였던 까뮈 제나치는 로켓모양의 전기자동차(자메 콘탄트)를 완성하고, 파리 교외의 앗세루 공터에서 당시 최고시속 64km를 자랑하던 영국 귀족 사세로프 루바경의 전기자동차와 스피드 대결을 벌였다. 루바경의 기록은 69km였으며, 까뮈는 3km의 자갈길 코스에서 최고속도 103km를 기록하며 세계 최초로 100km 돌파 기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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