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광면사무소 주차장...
성곽 진입로는 계단을 오른후 면사무소 건물 왼편이다. -
- 금광산 정상을 지나 산불감시초소가 자리 잡은 봉우리가 산성의 북쪽 망대이다. -
- 무너져 내린 금광산성의 토성벽...
산불감시초소에서부터 능선을 따라 올라가는 좌우로 천년을 세월을 짐작케하는 토성이다. -
- 가파른 정상부의 남쪽 보루...
군데군데에서 쌓아올렸던 석성의 흔적이 짐작된다. -
- 토축성 위로 쌓아올린 석축성....
대부분이 흙더미 속에 무너져 내려, 남아 있는 성벽은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
- 성곽 최남부 망대에 자리한 금강산 정상...-
- 산 정상부를 휘돌아 남쪽 성곽을 이루고 있는 성벽 -
- 성곽의 남서부 성벽...-
- 무너져 내리는 성돌들을 안간힘으로 붙들고 있는 나무뿌리...-
- 토축성 위로 석축 성벽을 쌓아올린 흔적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
삼남 방어의 최요충지, 안성 금광산성(金光山城)
답사일 : 2023.3.10.(금)
지정 : 안성시 향토유적 제1호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금광리 산 64)
[금광산성(金光山城)]은
금광산성(金光山城)은
금광산(금강산) 정상부를 감싸며 원추형으로 이어진 총 연장 1.3km, 높이 1-3m, 폭 4m 안팍되는 토석잡축(土石雜畜)의 테뫼식 산성(山城)이다.
금광산성의 축조연대에 대해서는 아직 정설이 없다. 일부에서 조선 인조 14년(1636년) 병자호란때 청군을 막기위해 쌓았다는 설과 영조 4년 이인좌의 난때 반란군을 토벌하기 위해 도순무사 오명항이 주민을 동원해 쌓았다는 두 설이 있으나 말 그대로 설일 뿐이다. 그리고 사실 이미 난이 일어난 상태에서 새로이 성을 쌓았다는 것 자체가 설득력도 없다. 어쨌든 행여 성을 쌓았다하더라도 아마도 그건 당시 급한 대로 일부 보수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안내판에 의하면
‘...... 금광산성은 지리적 위치로 볼 때 진천 도당산성에서 안성으로 진입하는 당항성로의 길목이며, 이웃한 망이산성과 죽주산성에서 안성으로 진입하는 길목에 위치한다. 축성과 관련해서는 산정 테뫼식산성으로 축성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고, 다만 능선의 주요 요충지에 토루의 형태가 남아 있다. 전체적으로 삭토법으로 산을 깎아서 천험의 지형을 이용한 공격형산성이 아닌 수비형산성으로 판단된다. 산성의 동남쪽에 건물지 추정터가 있고, 이곳이 습하여 계곡의 물과 우물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습된 유물은 거의 보이지 않고 민묘의 이장지에서 토기편 일부가 수습되었을 뿐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금광산성은 마한시대이후 초기백제시대까지 토성으로 사용하다 고려시대 또는 조선시대에 동쪽성벽을 기존 토성위에 석축성벽을 추가로 축성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 견해다.
이를 좀더 세분하면
성의 서쪽성벽은 거의 일직선에 가깝게 토성으로 축성하였고, 동쪽성벽은 성벽의 아랫부분은 토성으로 하고 윗부분 약 1m 정도는 석축을 한 것으로 보인다. 서쪽성벽의 토성부분은 비교적 원형의 모습이 잘 남아 있으나, 동쪽성벽의 석축 부분은 많이 허물어져 있다. 안내판에는 성의 둘레가 2km로 되어있으나 실제로 둘러 본 결과 약 1,300m 안팎으로 보인다. 그리고 성벽의 높이 역시 3-4m 정도에서 지형에 따라 다르게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
[탐방 후기]
금광산성(金光山城)을 찾아 오르기는 어렵지 않다.
금광면사무소 주차장 위 건물 왼편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가파르게 10여분을 오르면 바로 능선이다. 그리고 곧이어 삼각점이 있는 금광산 정상이다. 하지만 산성은 없다. 즉 금광산성은 이곳에서 200 여m 떨어진 그 다음 봉우리에 있다. 바로 산불감시초소(240.1봉)가 있는 봉우리다.
이곳부터가 토성(산성)의 시작이다. 그럼에도 유감인것은 산성과 관련해 아무런 안내표시 하나 없다는 것. 애시당초 답사를 목표로 하지 않았다면 이곳이 정말 그 옛날 최고의 방어요새였던 산성이라고는 상상조차 어렵다. 성곽은 이미 무너져 내려 덮였고, 그 흔한 석축의 성돌하나 찾아보기 어렵다. 안성시 향토유적 1호라는 명망이 무색하다. 그렇게 다시 10여분을 오르면 산성의 최남단 금강산(金剛山)정상부다.
금광산(金光山), 금강산(金剛山)...
언제부터 금광산이 금강산과 분리되어 불리었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이름으로 보면 정작 금광산에는 금광산성이 없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금광산 다음 봉우리의 산불감시초소봉에서부터 약 400 여m 떨어진 이곳 금강산 정상까지의 능선부를 감싸는 1.3km 안팍의 둘레가 바로 금광산성(金光山城)이다.
얼핏보면 산성과 관련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찬찬히 눈을 돌려 능선을 중심으로 선을 이어가노라면 뭔가 마음에 와 닿는다. 바로 토성의 성곽이다. 숲이 우거진 여름에는 어림도 없는 흔적이다. 쌓인 낙엽위로 성곽의 흔적이 짐작된다. 그리고 그 뿐만이 아니다. 군데군데에 숨어있는 석축성돌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성곽답사의 계절 3-4월이 가져다주는 행운(?)이다.
금광마을을 품고 있는 금광산성...
산성 정상에 서면 금광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지금도 능선을 따라 요소요소 토치카형의 토성 흔적이 연력하다. 바로 그 옛날 치열했던 삼국시대의 방어용 요새(要塞)였음을 실감케 하는 역사의 현장이다.
남동쪽 10km지점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 홍계남 장군이 활약했던 서운산성이 북서쪽 5km 지점에 비봉산성이 마주 보고 있다. 이처럼 금광산성은 서운·비봉산성과 기각지세(角之勢)를 이루고 있어 일찍부터 삼남(三南)을 방어하는 요충이자 한성 방어의 전초기지로서 활용됐을 것이다.
특히 이 성은 1728년 3월, 도순무사 오명항의 관군이 이인좌의 반란군을 이 부근에서 대파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만일 기세 등등했던 당시의' 이인좌 란'을 진압치 못했으면 역사는 과연 또 아떤 방향으로 흘러 갔을까. 금광호수를 바라보며 괜시리 쓸데없는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