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곽을 울타리로...
교문 뒷편으로 수산진성(水山鎭城)의 성곽이 보인다 -
- 안내문, 제주 기념물 제 62호...
세종 21년(1439년)에 처음 축조된 성(城)임을 알려주고 있다.
- 웅장한 성곽....
학교 운동장 스텐드 뒤로 성곽이 함께 하고 있다. -
- 군데군데 보이는 여장 ....
대부분이 무너져 내렸지만 일부에서 여장이 확인되고 있다. -
- 웬 기념비?
가타부타 설명도 없는 기념비가 성곽과 영 어울리지 않는다. -
- 이어지는 서편 성곽과 스텐드...
잘 나가던 성곽은 앞에 보인는 병설유치원까지 이어진다. -
- 급격히 낮아지는 성곽...
유치원 정문 역할을 하고 있는 성곽의 서문...-
- 성(城)은 이제 학교 울타리를 떠나....
학교 뒷편으로 이어지며 밭의 경계선 역할을 하는 수산진성(水山鎭城) -
- 복원된 성곽....
일부 구간에서의 복원으로 보기에도 깔끔한 모습이다 -
복원이 안된 원형의 성곽 ...
복원된 성곽 옆으로 곧 무너질듯 하지만 옛 성곽의 정겨움이 묻어난다.
- 전교생 50 여명...
때마침 운동회를 하고 있는 수산초등학교 -
- 무너져 내린 남동쪽 성벽....
학교 운동장 한쪽 구석에 무너져 내린 채로 복원을 기다리고 있다. -
- 학교 동쪽 성곽의 끝부분에서... 찰칵!! -
학교 울타리로 사용되어 오히려 잘 보전된 성, 수산진성(水山鎭城)
답사일 : 2023.5.3.(수)
지정 :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 62호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 580 일원)
[수산진성(水山鎭城)]은
수산진성(水山鎭城)은
조선시대 제주의 대표적인 방어유적중 하나다.
3성(三城) 9진(九鎭)으로 요약되는 제주의 방어 성곽중 이 수산진(水山鎭)은 정의현 관할로서, 처음 세종 21년(1439), 목사 한승순에 의해 축성된 성곽이다.
대부분의 진성(鎭城)이 해안가에 축성된 것과는 다르게 이 수산진성(水山鎭城)은 해안과 산간 중간에 위치한 것이 조금 독특하다.
안내문에 따르면
성곽의 총 둘레는 352m, 높이는 4.84m, 폭은 3-7m이다. 동쪽과 서쪽에 각각 문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흔적만 짐작된다. 현재 도내 9개의 진성(鎭城) 가운데 가장 오래된 성곽임에도 비교적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어 있으며, 성 서쪽과 북쪽 모서리에는 치성 일부가 남아 있기도 하다.
수산진성(水山鎭城)은 현재 수산초등학교 울타리다.
밖에서 보면 언뜻 돌담처럼 보이는 성곽, 그러나 안에 들어와 보면 그 웅장한 규모의 성곽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이 성벽 밑에서부터 따로이 학교 운동장 스텐드 계단을 올려붙여 공사를 한 까닭에 자연스럽게 성곽의 맨위까지도 오를 수 있도록 하였다. 물론 안전지도상 성곽위는 아이들이 오르지 못하도록 지도 하겠지만, 그렇다고 이와 관련한 위험 표지판은 보이지 않는다.
이렇듯 학교 한 바퀴를 빙 둘러가며 진성(鎭城) 전체가 학교의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는 수산진성(水山鎭城)...
분명 이러한 진성의 용도 변경(?)도 원론적으로는 성곽의 훼손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 하게도 이 때문에 이 성곽이 오래 보전될 수 있었다 한다. 또한 해방 직전까지만 해도 성(城) 안에는 병사와 객사 등이 있었는데 제주 4.3 사건을 거치면서 모두 소실되었다 한다.
학교 스텐드를 따라 성곽 옆으로 따라 걷다보면 성곽 안쪽으로 상당히 오래되어 보이는 ‘記念碑’라고 씌어진 비석이 보인다. 일부 성돌을 들어내고 설치한 '기념비' 그러나 이리저리 비면을 살펴봐도 심하게 마모되어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다. 그렇다고 기단을 시멘트로 구축한 것을 보면 축성 당시와 관련된 비(碑)는 아니고...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비면 옆면에한글 비슷한 글씨가 보인다. 그렇다면 혹시 학교 운동장 스텐드 공사를 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한 '기념비?' 만일 그렇다면 이 또한 문화재 훼손이 되겠지만...
어쨋든 성곽은 운동장 남, 서쪽의 두개 구간과 병설유치원을 지나 학교 뒷편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동네 어귀의 마을 밭과의 경계를 이루면서 잠깐 동안 성곽의 원형을 보여준다. 풀더미로 접근조차 불가능한 성곽... 그러나 이내 깔끔하게 복원구간이 시작되고... 그리고는 다시 학교 울타리로 돌아온다.
수산진성(水山鎭城)의 축성과정과 관련하여 ‘슬픈 이야기’하나가 전해온다. ‘진안할망당’의 이야기다.
옛날 수산리에 진성(鎭城)을 쌓게 되었다. 성을 쌓기 위해 관에서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공출을 받았는데, 한 부인이 공출을 내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하루는 심하게 공출 독촉을 하는 관리에게 부인은 ‘집에는 아무것도 없으니 그럼 아기라도 가져가라’ 고 억지를 썼다. 관리는 할 수 없이 빈손으로 돌아갔는데...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날 이후로 성을 쌓기만 하면 자꾸 무너져 내리는 것이었다. 난감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마침 근처를 지나던 스님이 '원숭이띠 아기'를 바쳐야 이 성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관리는 문득 아기를 바치겠다던 부인이 생각났고, 그 길로 부인의 집으로 가 물어보니 그 아기가 원숭이띠였다. 그래서 그 아기를 땅에 묻고 성을 쌓았다. 그 후 성은 무너지지 않았고 무사히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성은 완성됐지만 그 성에서 자꾸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이 음식을 차려 성곽 아래에 가져다 놓으니 울음소리가 그쳤다. 그 때부터 사람들은 그곳에 당을 세우고 모시게 되었으니 바로 ‘진안할망당’이다. 경주의 ‘애밀레종’ 전설과 아주 흡사하다.
아마도 이 성을 축성하기까지 당시 백성들의 숱한 눈물과 회한이 깃들여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