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익산 쌍릉의 대왕릉 (백제 무왕릉 추정)...
익산토성 탐방은 이곳 무왕(武王)릉에서부터 시작된다 -
- 대왕릉에서 20 여분 정도 걸으면 ..
길 왼편으로 익산토성 안내판이 보인다. -
- 입구의 익산토성 안내도...
서동(백제무왕) 설화가 서린 오금산 이야기가 실려 있다. -
- 남쪽 성벽...
왼편의 토성을 딛고 조망좋은 전망대로 올라간다. -
- 익산토성 전망대...
사방이 한 눈에 들어오는 전망대, 참으로 멋지고 시원하다. -
- 토성과 석성의 혼축...
초기의 토성에서 후에 석성으로 덧대어 축성했던 흔적이 보인다. -
- 서편 성벽 ....
복원 후 토성 벽 아래로 석성의 잔해들을 모아 놓은 것이 보인다. -
- 호젓한 토성 오솔길....
성곽 위로 만들어진 오솔길과 함께, 그 양 옆의 어우러진 솔숲이 참으로 멋지다. -
- 오금산 정상(해발 125m) ...
뒤로 보이는 마을의 오른편 방향이 백제 왕궁리 궁성지다. -
- 정상에서 미륵산을 배경으로 ...
미륵산은 미륵산성과 함께 '미륵사지석탑'이 있는 산이다. -
백제 천도(遷都) 최후의 방어벽,
금마저의 익산토성(益山土城)
지정 : 사적 제 92호
(전북 익산시 금마면 용순리 산50번지)
답사 : 2023.7.6.(목)
[익산토성(益山土城)]은
익산토성(益山土城)은 익산시 금마면 오금산(五金山)에 있는 백제의 산성이다.
더불어 익산토성을 보덕성(報德城)이라고도 부른다.
곧 『삼국사기』와 『동국여지승람』등에 기록된 보덕국왕(報德國王) 안승(安勝)이 문무왕 10년(670) 6월 금마저(金馬渚, 지금의 익산)에 자리 잡은 뒤 신문왕 4년(684) 11월까지 보덕국에 속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렇다고 익산토성을 보덕국의 치소로 보기는 어렵다.
성곽의 전체적인 모양은 마름모꼴로서 총 둘레는 690m 정도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의 높이는 4-7m 안팎이고, 너비는 5-6m 로 남쪽 성벽 일부는 처음 쌓은 지점에서 약간 앞으로 내어 고쳐 쌓은 것이 확인된다. 그리고 남쪽 이외의 성벽은 1∼2단의 받침돌을 두고, 그 위에 토루를 쌓은 구조이다.
오금산 정상(해발 125m)에서 동서로 뻗은 100m 안팎의 산등성이에 쌓은 포곡식(包谷式)의 익산토성...
이미 1980년과 1984년 두 차례에 걸쳐 발굴조사가 진행된 바 있다.
조사 결과에 의하면
‘원래 백제 토성으로 축조되었다. 그러나 성벽 전면에 돌을 맞추어 쌓았던 흔적도 확인되므로 토성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즉,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 유물이 수구 안의 광장과 남문터 주변에서는 전혀 출토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토성에서 석성으로 개축된 시기는 백제 말이나 통일신라 초로 판단된다.' 고 밝히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성곽 남쪽에 다시 쌓은 성벽 일부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즉 네모지게 잘 가공된 성돌로 길이 40∼50㎝, 두께 30∼40㎝, 8단 정도의 석성 일부가 토성 사이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다.
[ 탐방 후기]
익산토성(益山土城)을 찾아가는 길은 편하다.
출발은 익산 쌍릉이다. 쌍릉 즉 두 개의 릉 가운데 큰 릉을 대왕릉으로 일컫는 데, 바로 백제 무왕(武王)의 릉으로 추정되는 릉이다.
쌍릉을 탐방한 후, 대왕릉(무왕릉)을 나와 한적한 올레길을 걷는다는 생각으로 20여분 정도 걸으면 왼편에 토성으로 가는 안내판이 보인다. 그리고 살짝 오르막이 있는 300 여m 정도에 익산토성이 있다.
무왕(武王)...
백제 중흥과 더불어 야심차게 금마저(익산) 왕궁리로의 천도(遷都)를 추진했던 백제 제 30대 왕이다. 그 왕궁리 궁성터 가 바로 익산토성 곁에 있다. 불과 4km 안팎의 거리다. 즉 무왕(武王)은 천도 후 만경강 유역을 방어하면서, 주변에 자리하고 있는 미륵산성, 용화산성, 선인봉산성 등과 함께 낭산이나 삼기, 함열 방향의 요로(要路)를 지킬 목적으로 축성했으니 바로 익산토성인 것이다.
입구의 안내도
‘다섯 덩어리의 황금이 나온 오금산’ 설화가 눈길을 끈다.
‘서동이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오금산에서 마를 캐던 중 금 다섯 덩어리를 얻었다는 오금산에 있어서 ‘오금 산성’이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고구려 안승이 세운 보덕국의 성이라는 의미로 ‘보덕성’이라고도 부른다. 오금산의 전설과 보덕성의 유래는 백제 말과 통일신라 초에 익산토성이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등의 이야기다.
이곳에서 약간의 대나무 숲이 있는 왼편의 길로 들면 돌로 쌓은 석벽의 기단부 일부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토성을 정비하면서 주변에 남아 있던 석벽의 일부다. 고대국가들이 석성을 어떻게 쌓았는지 잘 보여 주는 한 예다.
그리고
경사가 급한 오르막길로 조성된 토성 성곽을 따라 정상부로 올라가니 바로 전망대다. 해발 125m 오금산 정상과 남쪽 계곡을 두른 산성의 전모가 일시에 드러난다. 더불어 서쪽으로는 익산 시내의 전경이 한 눈에 보이는 멋진 전망대다.
울창한 소나무의 솔숲으로 이어지는 길, 그 길은 잘 조성된 토성의 흔적을 따라 가는 길이다. 모처럼 산책하듯 한가롭게 걷는다. 저 멀리 미륵산이 우뚝하고, 논과 밭에 둘러싸인 마을이 눈앞이다. 사람들의 발길로 만들어진 작은 오솔길...
곧이어 '사적 92호 익산토성'을 알리는 비(碑)가 있는 오금산 정상이다. 전망대에서 300 여m의 거리다.
결코 만만치 않은 토성의 위용이 한 눈에 드러난다.
첫댓글 폭염 시 답사할실때 조심하십시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