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포성(唐浦城) 들머리...
전에는 이곳 동네 뒷산(동밖골)로 10 여분을 걸어 올라갔으나
최근에는 도로 왼편으로 대형 주차장이 생겨 누구나 쉽게 올라갈 수 있다.
- 주차장에서 올라간 당포성 ...
성벽 복원과 더불어 주차장, 안내판, 주변 조경 등을 새롭게 조성했다. -
- 복원된 남서쪽 성벽...
성(城)이라기보다는 푸른 초장위에 그려진 한 폭의 그림같다. -
- 망루 겸 포루, 치(雉)...
적의 접근을 감시한 동,서문 좌우에 각각 1개씩의 치(雉)가 남아 있다. -
- 동문 치에서 본 당포 앞바다...
이 곳이 이순신 장군의 승첩 중 하나인 '당포해전(唐浦海戰)이 벌어진 곳이다. -
- 정상 전망대 정자...
왼편 저멀리 이곳 사람들이 옛날부터 당제를 지내던 장군봉 봉우리가 보인다. -
- 자연할석(自然割石)의 기단석...
이 기단석을 기초로 하여 약 1자 가량 들여서 수직으로 쌓아 올린 전형적인 석축진성이다. -
- 원형의 성벽....
해안가로 내려가는 밭 사이로 소중한(?) 원형의 성벽이 숨어 있다. -
- 무너져 내린 성벽...
성벽 사이로 난 물길로 성벽 일부분이 크게 훼손된 상태, 그렇다고 성급한 복원은 금지...-
- 당포성(唐浦城) 주차장...
당포대첩지가 관광지화 되면서 주차장도 최신식,대형화로 변했다. -
통영 여행의 숨은 일몰 명소가 된
통영 당포성(統營 唐浦城)
탐방 : 2024.4.5 (목)
지정 : 경상남도 기념물
(경남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 244 일원)
당포성(唐浦城)은 경남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의 야산 정상부와 구릉의 경사면을 이용하여 돌로 쌓은 석축산성이다. 이 성의 역사는 고려 공민왕 23년 (1371), 최영장군이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병사와 백성들로 성을 쌓았다고 전해지는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정식 축성과 관련한 기록으로는 성종 21년(1490)에 등장한다.
당시 최초의 성벽 둘레는 약 435m 정도(1,445尺)였으나 후에 990 여m까지로 수축되었고, 지금 남아 있는 성벽은 대략 750 여m 정도다. 또한 최고 높이 2.7m, 폭 4.5m로 동·서·북쪽에는 망을 보기 위하여 높이 지은 망루터(치)가 잘 남아있으며, 문터에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성문 밖으로 쌓은 작은 옹성흔적도 잘 보존되어 있다.
또한 성(城)의 기본적 형식은 2중 기단을 형성하고 있는 고려·조선시대 전형적인 석축진성이다. 특히 남·북쪽으로 정문터를 두고 사방에는 대포를 쏠 수 있도록 성벽을 돌출 시켰다.
당포성의 성벽은 대개 능선에 따라 축조되어 있으나 남쪽은 삼덕항 쪽으로 연결된 체성 외벽 부분이 잘 나타난다. 먼저 생토면에 소할석을 여러겹 깔고 튼튼하게 다진 후 편평한 장대석(60-90cm)을 20cm 정도 들여쌓기를 하고 그 위로 거의 수직에 가깝게 쌓는데 상부로 갈수록 석재 크기는 조금씩 작아지고 있다.
이러한 축성 방식은 전형적인 조선 전기 읍성으로 알려진 거제 고현성, 오량성, 울산 병영성, 언양읍성, 웅천읍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편 당포성의 구조는 동,서문지의 좌우에 각각 1개의 치를, 그리고 남벽에 4개의 치 등 모두 8개의 치가 있다. 치 가운데 비교적 잔존 상태가 양호한 것은 성의 북편에 위치하는 것인데 50-80cm 크기의 석재를 이용하여 길이 5.9m, 너비 6m, 잔존 높이 2.7m 규모로 남아 있지만 나머지는 민가의 담으로 이용되는 등 파괴가 심하여 원형이나 규모를 알기 어려운 실정이다.
동문지의 옹성은 남아 있는 개구부의 너비 2.8m이며 잔존 높이 2.7m이다. 개구부 좌측 재대석먼 도로변에 노출되어 있고 우측 성벽은 경작지룰 조성하기 위해 석축을 쌓으면서 멸실되었으나 옹성과의 연결부분인 체성은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체성은 주로 지형을 이용한 편축식이며, 협축의 축조법은 일부 남쪽 능선을 제외하고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체성의 기울기는 거의 수직에 가깝게 축성하였으며, 그러나 성벽의 상부구조는 안타깝게도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지금 이곳 당포성(唐浦城)은
‘당포성’으로서보다는 ‘당포대첩지(唐浦城大捷地)로 더 알려져 있다. 도로변에 서 있는 안내판도 ‘당포대첩지’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초기, 왜구들에 의해 이곳 당포성까지 점령당하였으나 이순신 장군에 의해 다시 탈환된 사실이다. 즉, 당시 당포에는 약 300명의 왜군이 장군봉 동쪽 옛 성곽 당포성을 점거하고 분탕질을 하고 있을때 당시 이곳 당포 앞 바다에 정박하고 있는 왜선의 대선 9척, 중선 및 소선 12척을 무차별 공격하여 왜군의 지휘 장수를 화살로 명중시켜 갑판위로 떨어뜨린다.
이를 시점으로 왜군은 전의를 상실하여 달아나기에 바빴고. 살아남은 왜군은 미륵도를 빠져나가기 위해 북서쪽 판데목으로 내빼려했으나 그마저도 만조로 해협에 물이 차올라 건너지 못하고 모두 빠져죽고 만다. 말할 것도 없이 그 후 당포성과 당포항은 조선수군 주둔지가 된다.
이른바 당포승첩이다.
이런 역사적 승첩지가 지금은 일몰의 명소로 더 유명세를 탄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로변으로 깔금한 대형 주차장도 생겼다. 주변 조경 역시 멋지게 조성됨으로서 성곽을 따라 오르며 전개되는 섬들과 대양의 경관은 가히 환상적이다.
발아래의 성곽의 존재, 그리고 충무공의 당포대첩지라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금도 많은 이들이 저녁만 되면 일몰의 광경을 보기 위해 쉬지 않고 이곳을 오르내린다.
첫댓글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