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를만큼 전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오래전 TV시리즈로 방영된 《말괄량이 삐삐》를 즐거운 기억과 함께 떠올리는 사람들이라면 `린드그렌`이라는 이름이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을 것 같다.
▶린드그렌의 생애
린드그렌은 1907년 스웨덴 스모랜드 지방의 빔멜비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농부였던 아버지는 부지런하고 이야기하기를 좋아했고, 린드그렌은 아버지를 닮아서 말이 많고 쾌할한 아이였다. 젊은 시절, 린드그렌은 잠시 반항아가 되어 방황한 적이 있었지만, 늘 자기를 믿어 주었던 부모님을 떠올리며 바른 길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학교 다닐 때 린드그렌은 국어와 작문에서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빼어난 실력을 가진 아이였다. 열세 살 때 지은 글 〈우리 농장의 정원〉이 지방신문에서 주최하는 상을 받아서, 일약 조그만 마을 빔멜비의 유명인이 되기도 했다.
린드그렌은 슈튜레 린드그렌이라는 친절한 남자와 결혼해서 두 아이를 낳았고, 동화작가가 되기전에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평범한 주부였다.
그러다가 1945년에 첫작품인〈삐삐 롱스타킹〉을 내놓으면서 커다란 화제를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는데 원래 이 작품은 어린 딸에게 자장가대신 들려주던 이야기였다고 한다. 이 작품은 출판되자마자 아이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고 삐삐시리즈를 두 권 더 썼으며 1958년엔 〈라스무스와 방랑자〉로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닐슨 홀게르손 훈장, 스웨덴 한림원 금메달, 독일 아동도서 특별상을 수상 등 이후 활발하고 의욕적인 작품활동을 하게 된다. 동화는 물론이고 그림책, 희곡, 미스테리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서 뛰어난 글솜씨를 손보였고 현재 100여권이 넘는 작품을 발표했으며 아직까지도 꾸준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 작품세계
그녀의 첫 작품인〈삐삐 롱스타킹〉을 두고 당시 출판사 편집자들은 착한 아이 하고는 영 동떨어진 `삐삐` 이야기가 어린이들에게 좋지 않다고 생각하여 뽑기를 주저했지만 린드그렌을 믿어보자는 마음으로 금메달을 주었다고 한다. 그러자 존 랜드퀴스트라는 스웨덴에서 힘있는 평론가가 이 작품에 대해서 " 이런 말썽쟁이 이야기를 읽고 우리 착한 어린이들이 나쁜 아이가 되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라면서 반대했다. 어른들의 평가가 어떻든, 〈삐삐 롱스타킹〉 은 어린이들 사이에서 폭발적은 인기를 얻게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린드그렌의 작품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다.
한 시상식에서 린드그렌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린이들에게 설교를 하려고 동화를 쓴 것이 아닙니다. 단지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
고, 예슬적인 감동을 받게 하려고 썼지요. 불행했는데 내 책을 읽고 행복을 맛 본 아이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내 인생은 성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린드그렌의 작품속에서 권위에 대한 반항의 가장 두드러진 상징은 삐삐라는 인물이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착한 아이의 모습을 완전히 뒤집는 삐삐의 등장은 아이들에게 엄청난 재미와 대리만족을 주었다.
린드그렌이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꾸준히 사랑받는 것은 그녀가 아이들- 나약하고 힘없고 억눌려 있는 약자들을 상징하는 - 편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붕위의 칼손〉에서의 외로운 막동이,〈미오, 내 아들〉에서의 각박한 세상에 내동댕이쳐진 고아,〈라이온하트 형제〉에서의 불치병에 걸린 아이등 하나같이 사회적으로 소외받고 나약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 작품목록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창작과 비평사)
사자왕 형제의 모험 (창작과 비평사)
엄지소년 닐스 (창작과 비평사)
라스무스와 방랑자 (시공주니어)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완역본> (시공주니어)
꼬마 백만장자 삐삐<완역본>( 시공주니어 )
삐삐는 어른이 되기 싫어(시공주니어)
에밀은 사고뭉치( 논장)
떠들썩한 마을의 아이들( 논장)
산적의 딸 로냐 1, 2 (일과놀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기억하십니까?**
유럽의 북해 바닷가에서 풍속 150킬로미터가 넘는 세찬 바람으로 탱크롤리가 길 바깥으로 날아가 버린 날, 2002년 1월 28일, 『삐삐 롱스타킹』『떠들썩한 마을의 아이들』『산적의 딸 로냐』의 저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딸의 전언에 의하면) '조용하고 온화하게' 숨을 거두었다. 1941년부터 살던 집에서...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필자 역시 '삐삐'를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단지 요즘 책으로 삐삐를 만나는 아이들이 삐삐를 '삐삐 롱스타킹'이라는 정식 이름으로 불러주는 대신, 책이 아니라 TV 어린이 프로에서 '말광량이 삐삐'란 이름으로 알고 있는 것이 다를 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란 이름을 알게 된 것은 필자가 살고있고 또 사랑하는 독일의 작은 도시 '본'에 있는 '부비어'라는 멋진 서점의 쇼윈도를 통해셔였다. 지금부터 4-5년전일게다. 어느날 부비어 서점의 쇼윈도가 어느 쭈글쭈글한 할머니의 사진으로 도배가 되다 시피한 적이 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평소에는 눈여겨 보던 쇼윈도를 당시에는 그냥 지나쳤다. 그 쭈글쭈글한 노파는 필자의 관심을 끌기에는 전혀 섹시(?)하지 않았던 것이다.
며칠이 지난 후에야 친구의 자세한 설명을 통해서 그 노파의 이름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Astrid Lindgren)이고, 그 유명한 "말괄량이 삐삐'를 지은 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또 당시 부비어 서점의 쇼윈도우를 그 할머니가 독차지한 이유는 그때가 90세 생일을 맞았기 때문이란 것은 나중에야 신문을 보고 알았다. 아, 스웨덴의 한 아동작가의 생일이 독일 서점가에서도 축하가 되는군, 이라는 좀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고 지나쳤을 뿐이다.
필자에게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란 할머니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차라리 그 삐삐역을 하던 그 여자아이의 스무번째 생일이라면 모를까! 그런데 필자의 초등학교 3학년짜리 딸에게는 다른 것 같다. 이 아이 역시 도서관에서 비디오를 빌려 자기 아빠가 어렸을 때 TV를 통해서 보던 똑같은 필름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비디오 보다는 책을 더 좋아해서인지는 몰라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란 할머니를 (그녀의 사망 소식이전에도) 이미 잘 알고 있었고, 그 할머니를 좋아한다. "삐삐"라면 필자에게는 TV에 나오던 그 주제곡과 그녀의 특이한 발놀림이 생각나지만, 딸아이는 도둑을 옷장위에 올려 놓는다든지, 말을 번쩍 들어 올리고 있는 그 그림들을 떠올린다. 적어도 삐삐에 관해서만은 요즘 아이들은 '책세대' 그 부모들은 '비디오세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삐삐의 정식 이름은?
삐삐의 이름은 '말괄량이 삐삐'도 그리고 '삐삐 롱스타킹'도 아니다. 정식 이름은 삐삐의 이름은 필름에서는 Pippilotta Viktualia Rollgardina Schokominza Efraimstochter Langstrumpf다. 책에서는 Schokominza 대신 Pfefferminza. (삐삐 목소리로 이름 듣기, 클릭!) 간단히 애칭으로 부르면 Pippi Langstumpf. Langstrumpf를 번역해서 롱스타킹이 되었다. (이름도 번역을 하나?) 하여간, 삐삐 롱스타킹이 탄생한 배경은 다음과 같다 :
1907년에 출생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31년에 결혼 전의 이름은 아스트리드 에릭손 Astrid Ericsson)은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출판사와 신문사를 전전하고 있었다. 1941년 일곱 살 먹은 그녀의 딸 카린이 폐렴에 걸리게 되어 누워 지냈는데, 딸은 매일 밤 직장에서 돌아온 엄마에게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다. 그러던 어느날 하루는 엄마가 "무슨 이야기를 해줄까?" 하고 물으니 "삐삐 롱스타킹(Pippi Langstump) 얘기를 해 줘!" 라고 딸이 대답했다. 어린 딸 카린은 이 이야기의 제목을 즉흥적으로 생각해 낸 것이다. 엄마는 삐삐가 누구냐고 묻지도 않고 그냥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름이 하도 특이한지라 (그렇죠?) 엄마도 삐삐 롱스타킹을 특이하게 묘사해서 이야기하게 되었다.
삐삐의 탄생과정
이 이야기를 기억 못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아홉 살 난 여자아이가 큰 집에 말과 원숭이만을 데리고 부모 없이 혼자 살고 있는데, 돈도 엄청 많고 힘은 더욱더 세다. 그리고 부모는 물론 옆집 아줌마나 심지어 경찰과 뚱뚱한 여시장의 간섭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카린은 물론 딸의 친구들도 이야기를 듣는 처음부터 상당히 재미있어 했다. 엄마는 이런 삐삐 이야기를 몇 년 동안이나 해 주게 되었다.
1944년 3월 어느날 저녁, 눈이 온 스톡홀름 시내를 걷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미끄러운 길에서 넘어져서 발을 다치게 되었고 한동안 침대 신세를 지게 되었다. 이 것이 그녀가 처음으로 책을 쓰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본의 아니게 시간을 얻게 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글을 쓸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때 속기를 사용하여 삐삐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
1944년 5월에 딸 카린이 열 살이 되게 되었고,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딸의 열 번째 생일에 삐삐 이야기를 정리한 원고를 선물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말이지 대단한 선물이 아닌가! 그 이후에 그녀는 자신의 원고를 어느 출판사에 보낼 생각을 했다. 자신의 작품이 책이 되어 나올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보내기로 했다. 출판사로 보내는 소개서의 마지막 부분에 그녀는 "청소년 담당 관청에 고발하지 않기를 바라며"라고 썼다. 두 아이의 어머니가 도대체 이런 내용의 책을 쓰다니!
그녀가 기대한 바와 같이 원고는 되돌려져 왔다. 그러나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다른 책을 쓰게 되었다. 그 사이 그녀는 책을 쓰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를 알게 된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은 "Britt-Mari lattar sitt hjarta"였다 (우리나라에 나온 그녀의 책 30여 종 중 어느 것이 이 책인지는 모르겠다.) 그 해에 Raben & Sjogrens 출판사에서 소녀동화 공모를 하게 되었는데,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이 작품을 출판사에 보냈고, 그해 가을에 발표된 공모 결과, 이 작품이 2위에 입상하게 되었다. 그 다음해인 1945년에 같은 출판사에서 동화 공모를 하게 되었고 그녀 자신이 갖고 있던 '삐삐'의 원고를 약간 고쳐 응모하였고 이 작품은 당당히 1등상을 받게 되었다.
<삐삐 롱스타킹>은 대히트작이 되었다. 하지만, 당시의 아이를 가진 부모들이라면 갖고 있었을 '어린아이다운 모습'에서 삐삐의 생각과 행동은 상당히 어긋나 있었기 때문에 많은 부모들로부터 항의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스웨덴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이후 수많은 작품을 썼고 이 작품들은 세계 각국에서 85개의 언어로 번역이 되었으며 그녀의 책은 독일에서만 1천만부가 팔리는 등 전세계적으로 1억3천만부가 팔렸다. (이 정도면 '해리 포터'보다 많이 팔리지 않았을까?) 마지막 책은 1992년에 펴낸 자전적 크리스마스 이야기이다.
그녀는 스웨덴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다. 2001년 여름에, 스웨덴 일간지 중에서 가장 큰 'Dagens Nyheter'(역시 어떻게 읽는지는 모른다)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스웨덴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남자는 구스타프 왕(칼 16세)이고 여자는 작년에 이어 독일 출신의 Silvia 왕비를 제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그녀가 그린 작품들은 스웨덴 사람들의 생활의 일부가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스웨덴의 Vimmerby(어떻게 읽는 지는 모르겠다)에 가면 라는 캠핑촌이 있고, 스톡홀름 시내에는 삐삐를 비롯하여 그녀가 그린 작품 속의 인물들을 만날 수 있는 어린이들만의 공간이 있다.
그동안 수많은 작품을 쓰면서 갖가지 문학상을 수상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노벨상을 타지 못했다. 그녀에게 노벨상을 주자고 운동하는 사람들의 모임도 있었다. 그런데 아동문학가가 노벨상을 탄 적이 있는가? (그런데 웃기게도 영국의 처칠 수상은 노벨문학상을 탔다. 도대체 뭐로?) 하지만 그녀는 1994년에 대안노벨상을 받았다. 그녀의 수상 경력은 다음과 같다 :
독일서적상협회가 주는 <평화상> (1978)
대안 노벨상 (1994)
국제 청소년도서상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메달 (1958)
스웨덴 한림원 금메달
스웨덴 국가 문학상
독일 청소년 문학상 (제1회)
나의 삐삐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못지 않게 (필자에겐) 중요한 인물인 필름 속의 삐삐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녀의 이름은 잉어 닐쏜(Inger Nilsson). 사진은 2000년도에 그녀가 영화 "Gripsholm"에 안데르쏜 부인역으로 출연한 모습이다.
그녀는 1959년에 태어났고, 삐삐가 영화로 만들어진 때는 1968년이니 우리가 알고 있는 삐삐의 모습은 9살의 모습이다.
**이정모
**아스트리트 린드그렌은 누구인가**
1991년 <콩을 코에 올린 엘리자베스>를 마지막으로 작품 활동을 중단한 린드그렌은
어린이와 동물들을 위한 활동에 힘쓰다가 2002년 1월 29일 94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1907년 스웨덴 스모랜드 지방의 빔멜비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농부였던 아버지 사무엘 오거스트 에릭슨은 부지런하고 이야기하기를 좋아했고, 어머니 한나는 더 부지런했지만 말이 없었다고 합니다.
린드그렌은 아버지를 닮아서 말이 많고 쾌활한 아이였습니다.
린드그렌은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안심과 자유의 시절'이었다고 회상합니다.
"사랑하는 부모가 있다는 것은 안심을 뜻합니다. 게다가 우리 부모님은 마음껏 놀게 해 주셨어요. 우리는 주변의 멋진 자연을 마음껏 돌아다니며 놀고, 놀고, 또 놀았지요. 어찌나 신나게 놀았던지 놀다가 죽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지요."
부모님이 보여 주셨던 사랑과 자유는 이후 린드그렌을 지탱해 주는 힘이 되었습니다. 젊은 시절, 린드그렌은 잠시 반항아가 되어 방황한 적이 있었지만, 늘 자기를 믿어 주었던 부모님을 떠올리며 바른 길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학교 다닐 때 린드그렌은 국어와 작문에서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빼어난 실력을 가진 아이였습니다. 열세 살 때 지은 글 <우리 농장의 정원>이 스모랜드 지방신문에서 주최하는 상을 받아서, 일약 조그만 마을 빔멜비의 유명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모르는 사람까지도 린드그렌을 만나면 "네가 이번에 신문에 난 아이냐? 넌 아마 제2의 셀마 라겔레프(스웨덴의 유명한 작가로,<닐스의 이상한 여행>을 지었다.)가 될 거야." 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열심히 노력해서 훌륭한 작가가 돼야지.' 하고 생각했겠지만 린드그렌은 반대로 '절대로 작가가 되지 않을 거야.' 라고 결심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결심을 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전 심각하게 작가가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죠. 글의 힘이 무섭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겁이 났던 것 같아요. 생판 모르는 사람들까지 내게 관심을 가지니까 어린 마음에 부담스러웠겠죠?"
그런데 개성이 너무 강했던 것일까? 린드그렌은 열여섯 살 무렵 문제아 대열에 끼게 됩니다.
대담한 성격이었던 린드그렌은 시골 마을 빔멜비에서 최초로 단발머리를 한 소녀들 중 하나였습니다. 보수적인 빔멜비 사람들은 린드그렌 패거리를 보면서 수군거리곤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눈초리가 오히려 린드그렌의 반항심을 더욱 부추겼습니다. 린드그렌은 열여덟 살 때에 결혼하지도 안 한 상태에서 아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린드그렌과 결혼하기엔 적당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때에야 린드그렌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빔멜비같이 보수적인 마을에서는 미혼모란 상상도 못 할 일이었습니다. 같이 몰려다니던 친구들조차 더러운 것을 보듯 린드그렌을 외면했습니다.
어른들의 평가가 어떻든, <삐삐 롱스타킹>은 어린이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삐삐 롱스타킹> 원고를 되돌려보낸 보니엘 출판사는 앞을 내다볼 줄 모르는 출판사라는 비웃음을 샀습니다. 반대로 그후 린드그렌이 쓴 84편의 동화를 펴낸 라벤 앤 쉐그렌사는 큰 출판사가 되었습니다. 린드그렌은 라벤 앤 쉐그렌사의 편집자로 일하면서 스웨덴 아동문학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린드그렌의 작품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1958년에는 <라스무스와 방랑자>로 아동문학의 노벨상이라고 할 수 있는 한스 크리스찬 안데르센 메달을 받는 등 온갖 종류의 아동문학상을 휩쓸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스웨덴 문학상, 독일 서적 평화상 등 권위 있는 문학상을 받은 최초의 동화작가가 되었습니다. 노벨 문학상에 버금가는 라이트 라이버리후드 시상식에서 린드그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른들에게 설교를 하려고 소설을 쓰는 소설가는 없지요. 동화도 마찬가지랍니다. 나는 어린이들에게 설교를 하려고 동화를 쓴 것이 아닙니다. 단지 아이들이 재미있어하고, 예술적인 감동을 받게 하려고 썼지요. 불행했는데 내 책을 읽고 행복을 맛 본 아이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내 인생은 성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1991년 <콩을 코에 올린 엘리자베스>를 마지막으로 작품 활동을 중단한 린드그렌은 어린이와 동물들을 위한 활동에 힘쓰다가 2002년 1월 29일 94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