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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을 찾는 사람들 스크랩 위화의 <허삼관매혈기> 및 인생에 관한 평론
노루궁뎅이 추천 0 조회 35 09.09.05 07:3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1. 희극적, 풍자적, 해학적인 삶의 관찰과 해석

1)<피>에 대한 고찰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피=힘=돈’의 등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즉 피는 혈육과 인간 사회에 대한 권력과 그 권력의 힘을 부여하거나 유지시키는 돈이라는 물질주의의 형태적 관계를 맺고 있다.

“힘을 팔았으니 그럴 수밖에. 우리가 판 건 힘이라구. 이제 알겠나? 자네 같은 성안 사람들이 말하는 피가 바로 우리 촌사람들이 말하는 힘일세. 힘에는 두 가지가 있지. 하나는 피에서 나오는 힘이고, 나머지 하나는 살에서 나오는 힘이야. 피에서 나오는 힘은 살에서 나오는 힘보다 훨씬 더 쳐주는 법일세.”

“어떤 힘이 피에서 나오고, 어떤 힘이 살에서 나오는 건가요?”

“잠을 자거나 밥을 먹거나 우리 집에서 근룡이네 집까지 갈때는 별로 힘이 들지 않지. 이런 게 바로 살에서 나오는 힘이야. 하지만 자네가 논밭 일을 하거나 백여 근쯤 되는 짐을 메고 성안으로 들어갈 땐 힘을 써야 한단 말씀이야. 이런 힘은 다 피에서 나오는 거야.

위에서는 피의 힘에 대한 명확한 두 가지 근본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는 살의 힘과, 두 번째는 피의 힘을 제시하고 있다. 즉 ‘피의 힘>살의 힘’의 두 가지 힘을 제시하고 대조하면 서도 피의 힘이 살의 힘보다 우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피의 힘은 삶의 근본적인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능동적이거나 수동적이라는 하위개념의 분류 보다는 가족과 삶을 영위하기 위한 목적이 상위개념이기 때문에 그 피의 에너지는 멈출 수가 없는 것이 된다. 또한 피라는 매개는 혈육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위에서 언급하는 힘의 논리에서 피와 살, 즉 내부와 외부의 힘의 역할과 가치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피와 연류된 허삼관과 허일락, 하소영의 혈육에 대한 <피>의 개념은 차후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살의 힘은 무엇인가. “잠을 자거나 밥을 먹거나 우리 집에서 근룡이네 집까지 갈때는 별로 힘이 들지 않지. 이런 게 바로 살에서 나오는 힘이야.” 방씨의 말처럼 언제고 멈춤이 가능한 제어장치를 지니고 있다. 살의 힘은 사람과의 관계, 일상적인 움직임을 위한 힘이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에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멈춤”이 가능한 움직임씨다.

그러한 두 가지의 힘의 근본적인 것은 한 개체에 분리된 별개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분리된 별개의 성질의 힘이면서 한 개체가 지니고 있는 동적, 정적인 것일 뿐이다.

인간이 사회에 속해 있고 가족에 예속되어 있는 이상 피의 힘은 그 존속과 향유와 욕망과 탈출에 대한 들끓을 수밖에 없는 속성을 지닌 피의 힘이다. 결국 더 나아가 ‘피의 힘>살의 힘’ 은 어느 것이 우월하느냐 보다는 그러한 두 가지의 속성이 주는 의미 차이의 값어치 일 것이다.

2) 피=혈육>도덕적, 윤리적

도덕적·윤리적은 피와 혈육에 얽히면 통상적으로 비문제시에는 상위개념을 차지하지만 문제화에는 하위개념으로, 피와 혈육에 대한 분쟁 속에서 강력히 대두되는 내재화에 묻히는 것이 일반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러나 위하의 「허삼관 매혈기」에서의 허삼관과 허일락, 친부로 하소영과의 피에 대한 혈육관계에서는 또렷이 윤리와 도덕성에 대한 제시는 있되, 해결에 대한 명확한 결론은 보이지 않는다. 흔이 낳은 정인가 기른 정인가 하는 자식에 대한 명제가 제시되기도 하지만, 허일락에 대한 하소영의 외면과 친자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허삼관이 허일락에 대한 방관자적인 태도에서 피=혈육>도덕적, 윤리적인 관계가 성립된다. 그러니까 도덕적, 윤리적이 상위 개념으로 존재하였다가 하위 개념으로 추락하고, ‘피=혈육’이라는 생물학적 관계가 더 요구되고 있다.

일락이가 이락이의 뺨을 한 대 때리자 이락이도 악악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허삼관은 방 안에서 그 소리를 듣고 속으로 ‘이 잡종의 자식이 기어코 내 아들까지 때리는 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뛰어나와 일락이의 뺨을 때리고 벽으로 밀어내며 호통을 쳤다.

이처럼 피=혈육의 정신적 유대가 없는 관계 속에서 허삼관의 시종일관 허일락이에 대한, 또한 아내의 불륜에 대한 방관자적인 태도를 볼 수 있다. 피=혈육의 유대관계는 결국 타자의 입장과 보호자의 입장으로 볼 수 있으며, 타자=방관, 보호자=부성의 거울을 맞닥뜨리게끔 비춰준다. 한편으로는 방관적인 태도가 가장으로서의 무책임함과 남성, 가장의 나약함과 어리석음의 상징적인 인물로 보여 지기도 한다. 그러나 방씨가 허삼관의 집에서 가구와 집기류들을 치료비로 압수한 가구와 탁자, 그 밖의 품목을 피를 통해 다시 획득하는 모습에서 다시 가장의 모습을 획득하게 된다.

3) 피의 의식

몸뚱이는 팔아도 피는 절대 팔아서는 안 된다고요. 몸은 자기 거지만, 피는 조상님 거라구요. 당신은 조상을 팔아먹는 거나 다름없어요.

허옥란은 피에 대한 의식이 사회에 얽매어 얽힌 생존의 본능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조상이라는 피에 대한 존엄성으로 피의 위험을 한 차원 높이 끌어올려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피에 대한 위험과 존엄성은 현실의 궁핍함에 삽시간에 무너진다. 허옥란의 두 가지 모습이다. 아들 허일락의 아픔으로 인해 상해로 향하는 허옥란은 조상의 존엄함에 대한 것을 깡그리 잊고 가난과 궁핍함, 거기에 맞물려 허일락의 치료비에 대한 것 때문에 허삼관에게 피를 팔라고 한다. 그것은 이미 강력한 현실의 폭력과도 같은 것일 것이다. 허옥란에게 피는 조상의 존귀함이었다가, 현실의 궁핍함을 벗어나기 위한 생존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허삼관의 세가지 피에 대한 개념은 이렇다

<1>일락이가 대장장이 방씨네 아들 머리를 박살냈을 때 피를 팔러 갔다.

<2>임 뚱땡이 다리가 부러졌을 때 피를 팔러감.

<3>식구들이 오십칠 일간 죽만 마셨다고 피를 팔러감.

허삼관에겐 피에 대한 개념은 내부적인 힘 보다는 외부적인 힘의 작용에 대한 의미가 컸다. 상하이로 향하는 허삼관이 피를 팔며 상하이에 도착하여 적은 돈이라도 치료비를 마련하여 간 것은 내부적인 피의 요인이었다. 위에서 말한 첫 번째 요인은 가족을 위해 헌신, 봉사 보다는 생존의 일부분이며, 멈춤이 가능한 요인이기도 하다. 두 번째로 일락이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피를 판 것은 내부적인 요소, 즉 가족과 사랑의 테제가 허삼관에게 주어진 것이다. 즉 허삼관에게 피=돈, 피=결혼, 피=희생으로 고급스럽게 상위 개념으로 올려 진다.

마지막으로

위화 「허삼관 매혈기」를 읽고 나서 부모와 자식의 관계의 끈은 피라고 생각하였다. 즉 피=혈율, 혹은 피=희생의 불가분의 관계에서 유대가 깊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락, 이락, 삼락의 성장과 더 이상 피를 팔수 없는-가장의 생산적인 역할을 할 수 없는 무능력-그것 때문에 자식들로부터 소외되는 것은 현실의 또 다른 피에 대한 아이러니를 제시하는 것이다. 피=는 의무와 헌신과 희생이 따르기도 하지만, 피=배신과 버림과 공포가 담겨져 있다.

이처럼 내 나름대로, 위화 「허삼관 매혈기」에 대하여 정리해 본다.

참고자료

위화,「허삼관 매혈기」,푸른숲, 2008.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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