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 섬을 본다(2010년 인의협 홈피에서)
- 박태훈(인의협 감사)
2000년도부터 3년간 인의협과 대우재단이 협약하여 대우재단 소속의 3개 섬지역의 병의원의 위탁운영을 시작했다.
1999년 6월부터 이충열 선생님이 신안 비금도에 있는 신안대우병원에 자청하여 원장으로 부임하여 인의협과 대우재단의 의료사업 협약을 위해 노력해달라고 부탁을 했던 것이다. 이충열선생님의 조사와 진료 경험에 의하면, 당시 모그룹의 해체로 재정위기에 처하여 엄청난 비용을 투자하여 23년간 지속해온 낙도의료사업을 포기하거나 아웃소싱의 가능성이 높은 대우재단이 인의협에 간절히 바라는 위탁(경)운영 요청의 국면에서, 3개 섬지역 병의원들이 최선을 다한다면 자립할 수 있는 가능성도 보이고, 무엇보다도 이런 일들은 인의협이 꼭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었다.
인의협이 아니면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당시 섬의료 사업의 정신을 정리하였듯이, 단순히 재정 자립과 섬지역 병의원의 존속의 문제만이 아닌 다음과 같은 1차적 목표를 설정하였다.
첫째, 섬 오지 의료 소외 지역의 일차보건의료의 바람직한 모델을 이룩한다.
둘째, 도서지역 주민이 요구하고 있는 의료 서비스의 개선과 응급후송체계를 세운다.
셋째, 지역주민의 접근성을 높이고 친근하고, 따뜻한 병의원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진도의 부속 도서인 조도의 진도대우의원에서 근무할 때, 오후 근무를 마치고 해가 어스름할 무렵, 산에 자주 올라갔다. 정상에 오르면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고, 멀리서 맹골도가 보인다. 이곳은 완전히 병풍 같은 바위섬이고 당시 3가구가 살고 있는데, 지역주민의 말에 의하면 한 가구는 가족 중 정신과적인 문제가 있다고 한다. 작은 섬에서 더 작은 섬을 보는 것이다.
한번 가봐야겠다고 하면서도 바쁜 일정과 교통의 어려움으로 결국 가지 못하고 말았다.
인근 관매도에는 초등학교 검진 부탁이 있어 몇 번 다녀갔다. 노화도 근처 보길도 옆에는 인구 약 50여명의 당사도가 있는데 이곳에서 심한 집단 설사 증세가 있어서 진료 부탁이 들어왔다. 노화도의 완도대우병원에서 출발하여 보길도에 들어가서 깻돌해변 쯤에서 기다리니 고무보트가 왔다. 완도의료원 역학조사팀이 합류하여 함께 가게 되었다. 작은 고무모트를 타고 2~3미터의 파도를 타고 수Km를 건너는 것도 매우 아찔한 경험이다. 물보라와 바람으로 의약품 박스가 젖고 빈챠트도 일부가 날아가 버린다. 이런 와중에서도 주변을 배회하던 상괭이(돌고래 일종)들은 유유히 헤엄쳐 지나간다.
당사도에 가니 입원해야 하거나 위급한 환자는 없었지만, 일부 주민들은 매우 화가나서 우리에게 따졌다. 왜 이틀 지나서 이제 오는가! 섬 진료팀이 상시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구성하여 들어가고, 배편도 없는 상황에서는 구급차처럼 바로 들어갈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다.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한 것이지만, 당사도 주민으로서는 생과 사가 걸린 건강의 문제이기 때문에 불만을 가질 수밖에는 없는 일이다.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단순한 충수염에도 주의보가 내려버리면 일주일정도 섬에서 나갈 수 없어 주민이 사망한 경우도 있었다고 호소한다. 섬사람들만이 갖는 아픔이고 공포이며 고통이다.
공교롭게도 3개섬 의료사업이 시작된 해는 2000년 의약분업이 시작된 해였다. 인의협이 운영하는 병의원으로서의 가장 큰 원칙은 지역주민의 건강이었다. 지역의사회의 파업동참 요구에는 단연 거절할 수밖에 없다. 특히 조도의 경우에는 섬의 유일한 의료기관인데 파업 요구 자체가 잘못된 발상이 아닐 수 없었다. 어떤 경우에도 의료인은 지역주민의 건강을 담보로 하여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인의협 회원이 가진 공통된 상식이었다고 본다. 지역주민의 건강 문제에도 불구하고 시행하는 경우는 그 파업목적의 정당성도 의문시 된다고 본다.
섬의료 사업을 하면서 항상 느끼고 이충열 선생님 등 대화를 자주 나누었던 것은, 인의협은 오로지 국민 건강의 차별 없는 증진이 그 목표이다. 그리고 나아가 세계 모든 사람이 건강해지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위해 회비도 내고, 시간을 내어 일하고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일하면 어떤 회원이던지 그가 바로 인의협이고, 그곳의 인의협의 중심이 된다고 생각한다. 즉 일하는 회원이 바로 인의협이고 깃발이다.
섬의료사업을 시작하자마자 마음이 무른 나로서는 매우 힘든 임무도 했었다. 의약분업이 된 지금도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지만, 2000년초 리베이트 건을 해결하기 위해 조도의 의원에 가게 되었었다. 당시 보고를 받은 이충열 선생님이 이건에 대해 원칙적으로 강경 처리하겠다는 것을, 여러 가지 이유로 내가 자청하여 수행한 일이다. 진도대우의원은 당시 의사 혼자서 진료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분에게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고, 격려도 했지만, 내부의 보고는 심각했다.
의약분업 이전에는 약을 사면 50%~200% 약을 할증으로 주었다. 그 액수는 의원에 따라 달랐지만 보통 의원급들의 매출액 30% 정도 계산이 되었다고 본다. 당시 정부나 제약계가 묵인하는 진료수가의 ‘음성적’ 보상기전이었고 본다.
이러한 의사에게 주어진 음성적이고 불명예스러운 환경을, 의약분업을 통해 해결하고 리베이트, 할증 기전을 약값 인하로 유도하여 많은 부분을 국민에게 돌아가게 하는 것이 원칙이고, 의사를 위해서는 당시 낮은 진료수가를 현실화하기 위해, 정부 지원금을 늘려 의사들이 약에 의한 수익 유인기전을 원천적으로 없애자고 한 것이 의약분업의 한가지 중요한 기능이었다고 보고, 국민 건강을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근대화 개혁의 하나였다. 물론 이런 계획이 원래의 목적대로 잘 이루어졌는지는 정부 의료계 시민 단체 협동으로 객관적 평가가 필요하고 지금이라도 보완하여야 할 것이다.
진도의 의원의 직원의 보고에 의하면 이 의사는 의약분업 이전 당시 이를 할증 약으로 받는 대신에, 노골적으로 돈으로 요구하여 사택에서 개인적으로 받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리베이트이다. 당시 대우재단이 진도대우의원에게만 한해 약 오천만원 이상의 적자를 충원해주고 있고, 재정위기로 문을 닫을 심각한 지경인데, 비교적 충분한 월급을 받는 의사가 리베이트를 공공연히 챙기는 문제는 심각하고 도덕적인 문제도 컸다고 보았다.
본인이 시인하였지만 이의 규모를 밝혀내는 일은 협조하지 않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제약사 담당자들을 일일이 만나 그중 한분의 용기 있는 도움을 받았었고, 증거를 확보하니(이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숨길 수가 없어져 자인하고 깊이 반성문을 작성 하도록 하고, 지역 보건소장과 얘기를 나누어 선처를 간곡히 부탁드리고, 해임 처리하였다. 물론 이 과정에서 힘들었던 과정과 우여곡절은 한편의 소설과 같아 생략하기로 한다.
그러나 열심히 헌신적으로 지역주민의 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직원들이 더 많아 행복한 시절이었다. 주말이면 직원들과 가족들이 함께 모여, 뒤뜰에 모닥불을 놓고 돌판에 돼지고기를 구어 먹으며 직원들 영양보충도 하고 화합과 낭만과 우정의 시간을 가졌다. 남도의 섬주민들은 노래를 아주 잘 부르신다. 섬에서는 쇠고기를 구하기 힘들며 돼지고기를 최고로 친다.
간간히 주민들의 초청으로 지역 특산물인 해산물을 먹어보기도 하는데, 그 맛이 아직도 혀안에 알알이 남아있다. 특히 건강에 좋다는 복어죽을 먹으면서 혀가 좀 떨떠름했었는데 집에 와서 초저녁에 바로 잠에 빠져 10시간 이상 깊게 자버린 것 같았다. 주민의 말은 약효?를 위해 일부러 뼈도 좀 넣는다고 하는데, 아마 소량의 복어 독에 좀 취했던 것 같다. 잠에서 깨어나니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복어 독이 신경독이라 보톡스처럼 근육을 이완시키는 것 같다.) 그래서 섬에서는 힘든 일이 많으니 피로회복에 복어를 먹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도 자칫 중독이 깊었으면 위험 했었고, 복어에 중독된 사람도 꽤 되고 사망한 사람도 있기에 먹는 것을 절대로 권유하지 않게 된다. 복어독이 다량 들어있는 뼈 피와 알 내장을 완전히 제거하여 조리해야 하지만, 혹시 남아있는 극소량의 복어독도 어떤 사람에게는 근육이완제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신경독이 될 수 있다.
나로서는 섬의료사업에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환자의 후송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또는 이와 연관된 부분은 경제적 문제에 의한 치료의 한계와도 연관이 있다. 악천후 후송이 불가능하게 된 상태에서 몇시간 안에 돌아가신 환자들이 계셨다. 육지에서도 응급수술을 요구하는 뇌출혈과 고령자의 원인모를 호흡마비 증상이 그런 사례이다. 기관지 삽관을 하고 입원실에서 돌보며 후송 대책을 하던 중 결국 악천후 등으로 응급수술의 시기를 놓치고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모시게 되는 경우는 마음이 무른 나는 허탈감에 빠져 한동안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섬에서 섬을 본다.
조도의 초등학교에 가면 아이들의 재기 발랄한 글들이 있다. 한아이의 글을 보니 세계는 모두 섬이라는 것이다. 호주라는 섬 아시아라는 섬 아메리카라는 섬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세상은 큰 섬 작은 섬이 있을 뿐이다. 작은 섬들은 바다로 인해 입출입이 어렵게 되면 고립이 된다. 사람들도 하나의 섬이다. 섬이 외로운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고립된 곳이 외로운 것이다. 섬(외로운 곳)에 길을 내는 것. 이것이 인간의 귀중한 일중의 하나이다. 외로운 인간과 인간 사이에 길을 내는 일.
오지도 비슷한 상황이며, (대)도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리적인 거리나 자연물에 의한 고립은 아니지만, 가난한 사람들과 노약자 장애인의 경우 의료의 접근성, 교육의 접근성, 건강의 접근성이 경제적 여건 등으로 멀어지면 고립이 된다.
고립이 되면 아파도 병원에 가기 힘들어지고, 병원에 가서도 경제적 여건으로 제대로 치료받을 수 없게 된다. 노숙자의 경우는 더욱 심각한 상황일 것이다.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사망하는 경우가 매우 많이 발생하게 된다. 즉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고립이라는 환경으로 어떤 사람은 사회의 혜택을 공유하지 못하여 병들고 고통 받고 또 죽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들과 노약자 장애인의 고립이라는 문제는 국가 안에서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일 것이다. 즉 사회 정의의 문제이고, 인간의 기본권 유린의 문제에 속하게 된다. 생명을 보면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의 무게가 똑같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입장은 실제 현실에서는 부유한 사람의 것을 더 크다고 평가한다. 이를 시정하는 것이 사회 정의일 것이다. 이를 전 세계에 확장해보자. 아시아 아프리카에서는 지금도 기아로 아이들이 죽고 있다. 보편적 견지에서 보면 아프리카의 어린이도 대한민국의 아이들의 생명의 무게와 똑같다!
돌아가신 법정 스님의 글 속의 “나는 인간의 선(善)의지 이것 밖에는 인간의 우월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라는 말씀처럼, 인간이 유일하게 위대한 점은,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하는 것, 즉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라는 회의 이름을 풀어 써보면, ‘인의협’은 건강(사회정의)을 실천하는 의사의 협의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인의협은 신안 비금도, 진도 조도, 완도 노화도에서 인의협의 정신을 가지고 일하였다. 그러나 주민들의 개관적인 의료 상황은 획기적으로 나아지지는 않았다. 나는 섬 오지에서의 좀더 많은 정부의 기능과 개입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민간의 공공기능 활성화를 위한 민간의료기관에 대한 적절한 지원책도 필요하다. 섬 오지에서 의료진과 시설, 그리고 응급 후송 체계가 없어 죽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전천후 구급헬기를 배치하고, 오지에서는 보건지소의 기능을 강화하여(확장형 보건지소) 엑스레이 임상병리 등 기본 진단 장비를 갖추고, 24시간 진료가 가능하도록 인력 배치를 하여야 한다. 의사만 가 있다고 무의촌이 해소된 것이 아니다. 기본 장비도 없이 의사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아직도 무의촌은 너무도 많다. 이 문제를 다시 바라 봐야 한다. 신속한 구급체계와 장비 확충, 그리고 의료의 기본 기능과 인력이 구비 되어야 무의촌이 해소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기능을 민간이 할 의지가 있는 경우 보건지소(보건기관)를 대치할 수 있도록 권장하고, 이에 상응하는 시설과 인력을 지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한 공공과 민간이 가장 긴밀하게 협력해야 할 곳이 바로 섬 오지 지역이라고 생각한다. 민간의료부문의 섬오지 국민 건강의 관심도 필수적이다. 인의협이여! 비록 규모는 작고 여러 가지 재정적으로 힘들더라도 차별되지 않은 국민건강을 계속 선도해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