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내경은 동의학의 기본입니다. 앞으로 시간이 있을 때마다. 황제내경의 원문과 직역 그리고 의역을 올리려고 합니다.
앞서서 黃帝內經을 통해 보는 오운육기편을 먼저 올립니다. 이것은 1960년대 초 우리나라의 한의학 대학이 설립되기 시작 했을 때 한의학과 동양철학의 泰斗로서 한의학의 기초를 다져 주셨던 한동석 님께서 대한한의사학회지에 연재 하셨던 내용을 먼저 시리즈로 올려 드립니다. 이 역시 사암침자요법학회에서 퍼온 것임을 알려 드립니다.
1960년대 초 우리나라의 한의학 대학이 설립되기 시작 했을 때 한의학과 동양철학의 泰斗로서 한의학의 기초를 다져 주셨던 한동석 님께서 대한한의사학회지에 연재 하셨던 내용을 먼저 시리즈로 올려 드립니다.
黃帝內經講義 (2)
韓東錫
第一編 變化原理
第一章 總論
第四節 天地日月의 運行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五行이란 것은 太極이 갈라져서 「陰陽→四象→五行」의 順序로 發展된 象을 말하는 것이거니와 果然 무엇이 그것을 그렇게 하였는가? 또는 그렇게 하는 힘 다시 말하면 그의 正體는 무엇인가? 하는 問題를 硏究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天道의 運行 즉 日月과 地球의 運行을 硏究하여야 할 必要性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天道의 運行하는 象을 把握하지 못하고서는 五行의 本質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음에 天地와 日月의 運行에 對한 分紀와 道理(道程)를 論함으로써 變化原理를 解得하는데 便宜를 提供함과 아울러 五行原理에 대한 所自出點을 明示하려 하는 바이다.
天體에는 本來 南北極이 있으니 이것이 樞軸이 되어서 모든 運行의 基盤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唯一不動한 곳인 것이다. 그렇지만 그 不動하는 곳이 오히려 動할수 있는 기본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不動之處인 極이 있기 때문에 天地日月이 三百六十度의 循環運動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今日의 天文學的 知識으로는 地球와 日月은 동하지만 天體는 動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나 그러나 그러한 天體로 역시 動하는 것이라고 보는 東洋哲學의 觀點에 오히려 至大한 妙味와 關心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地球와 日月은 勿論 天體까지도 動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事實인 同時에 絶對的인 眞理인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이것들은 如何한 힘에 依하여 動하게 되는가? 하는 것이 問題點인 것이다.
그러므로 東洋哲學的 變化原理로써 보면 宇宙間에 있는 모든 有形體 즉 地球日月로부터 禽獸草木에 이르기까지 모두 躍動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니 이것들의 動하는 힘은 모두 天體의 動하는 힘 때문이라고 規定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天動說의 起源인 것이니 이 天動說은 地靜說과 相配되고 또 天圓說과 地方說이 따라서 나오게 되는 바 이 說들은 今日 學界에 많은 誤解를 쌓게 되었던 것이다. 西洋의 地動說 以前의 天動說과 뇌화부동시켜가지고 所謂 未開時代의 邪說로써 烙印을 찍어버리려는 傾向이 甚히 濃厚하거니와 그렇다면 天動說이라는 것이 果然 그와 같이 無價値한 것인지 또는 今日의 學界가 果然 天動地靜說을 올바르게 把握하고 있는가? 어떠한가? 하는 等等 問題는 各論에서 다루기로 하겠거니와 다만 本論에서 말하려는 바는 天動說을 前提로 한다는 點이다. 却說 위에서 말한 바 運行하는 天體에 包括되어 있는 日月과 地球의 運行은 如何히 하는 것인가? 하는 問題를 論述하여야 하겠다.
그러나 本論을 敍述함에 앞서 먼저 本論을 理解시키기 爲한 豫備知識이 必要하다. 그것은 本論에서 뿐만 아니라 象數에 관한 學問을 硏究함에 있어서는 如何한 分野의 學問을 勿論하고 第一 먼저 이 點부터 認識하여야 비로서 變化와 象數를 理解하게 될 것이다. 萬一 그렇지 못하면 五里霧中에 빠져서 都是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것을 具體的으로 말하면 東洋哲學의 硏究對象은 어떤 事物의 本體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事物의 作用에 있다고 하는 事實이다. 다시 말하면 地球가 太陽의 周圍를 돌고 달(月)이 地球의 周圍를 돌고 있다는 等을 硏究하는데 그 目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作用을 對象으로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日月이 地球에 비치는 結果로 如何한 現象이 일어나며 또 어떠한 變化가 생기며 또 그 變化하는 原理는 무엇인가? 하는 것 즉 그 本體가 아니고 다만 그 作用面을 硏究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醫學에 있어서도 五臟六腑의 本體나 그 位置를 밝히려는데 그의 對象이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그들의 作用 즉 눈에 보이지 않는 活動과 거기서 일어나는 變化를 硏究하려는데 바로 目的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硏究의 對象을 本體的 分析에 두는 것이 아니라 作用의 綜合的 檢討에 두기 때문에 近日 科學敎育에 머리가 젖어있는 우리로서는 얼핏 生覺하기에는 東洋哲學이란 觀念的 抽象的인 一種의 迷信에 不過한 것같이 여기기도 하지만 其實 깊숙이 들어가서 생각해 보면 事物의 本體를 硏究하려는 科學的인 것이 아니고 적어도 눈으로 볼 수도 없고 귀로 들을 수도 없는 作用까지 合하여 硏究하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단순한 形而下가 아니고 形而上과 形而下를 綜合 硏究하려는 哲學이기 때문에 不得不 그 作用硏究에 置重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萬一 그 本體面에만 硏究의 對象을 둔다고 하면 그것은 科學이요 哲學은 될 수 없으며 또 그것은 洋醫學의 特徵일지언정 漢醫學의 特徵으로는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東洋哲學은 天地日月의 運行을 說明함에 있어서도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作用面 硏究에 더욱 置重하는 것이며 또 거기서 變化原理를 찾으려는 것임을 미리 理解하고 硏究하여야 한다는 것을 여기에 미리 밝혀두는 바이다.
그러면 日月은 어떻게 運行하는 것인가? 하는 것부터 硏究해보기로 하겠다.
天道에는 黃道와 赤道가 있다. 赤道라는 것은 天腰의 中半點이니 그 北쪽을 外廓이라 하고 그 南쪽을 內廓이라고 한다. 北極이란 것은 外廓의 極盡處인 것이요, 南極이란 것은 內廓의 極盡處인 것이다.
그런데 黃道란 것은 地球가 太陽의 周圍를 도는 길(道)인데 이 黃道는 赤道의 北쪽으로 二十四度, 赤道의 南쪽으로 二十四度까지 나갈 수 있는 것이고 그 밖으로 더 나가기는 못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春分後에는 赤道의 北쪽을 向하여 二十四度까지 나갈 수 있고 秋分後에는 赤道의 南쪽으로 二十四度까지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地球의 軸이 二十四度 以上 傾斜지는 法이 없기 때문이다.(現在는 二十三度 七分 傾斜져 있음)
단 여기에서 黃道에 對해서 한마디 附言하여 둘 것은 「視黃道說」이다. 우리가 實地로 볼 때 地球가 太陽의 周圍를 돌고 있는 것이 事實이다. 그러나 그것은 前에 말한 바와 같이 地球 運行의 本體面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作用面 즉 現象面에서 보면 恒常 太陽이 地球의 周圍를 돌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日月이 地球에 光線을 던져 줌으로써 일어나는 모든 現象에서 變化를 把握하는데 便利하게 하기 爲해서는 一旦 太陽이 地球의 周圍를 돌고 있는 것으로 假定해 놓는 것이다. 그러므로 今日의 曆象學은 이것을 太陽이 地球의 周圍를 도는 것처럼 假定하고 그것에 「視黃道」라는 槪念을 設定한 것이다. 그런즉 여기 結論에서 筆者가 地球의 運行하는 길이 黃道라고 썼지만 原典에는 日行(즉 太陽이 간다)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以下 모든 說明은 視黃道에 依하여 說明할 것인즉 미리 여기서 讀者 諸位의 諒解를 바라는 바이다.
그러면 다음은 달(月)의 運行에 대해 말하기로 하겠다.
달(月)이 運行하는 길은 九個가 있으니 黃道 黑道 赤道(太陽이 運行하는 경우에 말하는 赤道와는 다른 것이다) 白道 靑道로서 區分되는데 그 중 黃道만 一個이고 다른 四道는 各各 두 개씩 있으므로 合하여 九道가 되는 것이다.
九道 가운데 오직 黃道만은 一道로서 中央에 位하고 其他 八道는 黃道를 中心으로한 東西南北에 그들이 運行하는 길(道)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黑道는 黃道의 北에 있고 赤道는 黃道의 南에 있고 白道는 黃道의 西에 있고 靑道는 黃道의 東에 位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宇宙間의 變化現象을 나타내는 九宮八風의 原理는 이와 같이 달이 運行하는 軌道에서 그 起原이 생겼던 것이다.(九宮八風原理는 各論에서 詳論할 것임)
「殷」以後에 太陽曆制度를 採擇한 것도 實로 여기에 緣由한 것이다.(그 前에는 三六五日曆을 썼다) 뿐만 아니라 今日의 달(月)은 병든 달(月)이다. 그러나 병든 달(月)이 이 地球에 影響을 주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의 變化와 오늘날의 文物을 生産하기도 하는 것이다.
(大體 달이 병들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하는 점 亦是 各論에 說明하겠다)
다음은 地球에 對해서 말하기로 하겠다. 東西를 莫論하고 地球에 對해서는 많은 學者들 사이에 所謂 天圓地方說(天體는 둥글고 地球는 모나서 動하지 못한다고 하는 說)을 提唱하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不過 數世紀前에 提唱된 바 있는 「코페르닉쓰」의 地動說이 마치 地動原理로서 世界 最初의 것인 것처럼 誤解하고 있는 것이다. 이 問題가 오늘날 東洋사람들에 있어서까지 如此狂信하고 있는 것은 東洋사람 自身이 自己 文明을 探求하는데 너무나 疏忽히 하고 科學文明에만 無條件 陶醉하여 버리는 後進國的 文化硏究態勢의 結果이기는 하겠지만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重大한 問題일수록 精神을 가다듬어서 自己의 硏究態勢를 살펴 볼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古代 東洋의 天文學은 地球의 運動을 如何히 보았던가? 하는 問題는 진실로 흥미있는 問題꺼리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內經의 素問에 記載된 바의 五運行大論의 本文 몇 節을 紹介하면서 地球의 모습과 運行에 對해서 稽考해 보기로 하겠다. (여기에 論하는 바는 總論임에도 不拘하고 如此 本文紹介에 까지 論及하려는 바는 現代人의 知識이 너무나 科學一邊倒로 偏在하여 있기 때문에 마치 筆者가 現代 天文學思想에 대한 知識을 빌어 가지고 東洋天文學思想이라고 牽强附會나 하는 것처럼 誤解하지 않을까? 하는 念慮가 있기 때문인 것이다)
黃帝가 岐伯에게 묻기를 「모든 宇宙간에 있는 것들이 이 所謂 動하며 또 靜한다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여 주시오」하고 간청하였던 것이다.(「本文」帝曰 動靜如何)
그때에 岐伯이 對答하기를 「宇宙間에 있는 모든 存在는 위에서 作用하는 것은 반드시 右行하는 法이오 아래에서 作用하는 모든 存在는 반드시 左行하는 法이므로 그들 存在는 恒常 一左一右하면서 天體가운데서 돌고 있다고 對答하였던 것이다. (岐伯曰 上者右行 下者左行 左右周天)
다시 말하면 地球 위에 存在하는 모든 作用體는 永遠不變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단 上向作用을 하던 것은 반드시 右遷하게 마련이며 따라서 右遷作用이 끝나면 또다시 繼續하여 左遷하는 作用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作用을 繼續하는 狀態가 바로 左右周天하는 作用인 것이다. 그런즉 春夏와 秋冬이 바뀌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오 靑年이 老年으로 變하는 것도 바로 이 運動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 左右周天 하는 것 때문에 地球上에 있는 모든 것들이 地球와 함께 左右周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黃帝가 只今까지 알기로는 地球는 方으로써 不動體인 것으로 알았던 것인데 이제 地球가 動한다고 認識하기는 벅찬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黃帝는 再問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黃帝가 묻기를 「내가 前에 鬼臾區(六臣 中의 한사람)에게 들은즉 모든 應地하는 것은 靜한다고 들었는데 지금 夫子(岐伯)가 하시는 말씀은 모든 아래로 作用하는 것(卽 地)은 左行한다고 하니 무슨 말씀인지 理解할 수 없습니다」하고 다시 물었던 것이다. (帝曰 余聞鬼臾區 應地者靜 今夫子言 下者左行 不知其所謂也) 다시 말하면 前에 鬼臾區는 地에 應하는 것은 靜而不動한다고 하였는데 ...... 즉 地球가 萬一 動한다면 그위에 있는 모든 存在物은 반드시 흔들릴 것으로 生覺하는 것이 常識이므로 地球는 靜而不動하는 것으로 黃帝도 生覺하였던 모양이나 이것은 物의 大小와 空間의 廣狹이 陰極似陽 陽極似陰의 象을 나타낸다는 原則을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只今 夫子께서 地球가 動하는 것으로서 左行한다고 하는 것은 疑惑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中略)
그러므로 黃帝는 岐伯에게 「地球는 아래에 가만히 놓여 있는 것이 아닙니까?」하고 다시 물었던 것이다. (帝曰 地之爲下否)
그 때 岐伯이 對答하기를 地球란 것은 우리 人間 中心으로 볼 때는 아래 있는 것이지만 天體로서 볼 때는 다만 虛空에 있는 것으로서 꼭 아래 있다 혹은 위에 있다 할 수 없는 것이다. (岐伯曰 地爲人之下 太虛之中者也)
다시 말하면 사람은 恒常 自己의 발이 놓여 있는 곳을 가리켜서 이것을 아래(下)라고 生覺하는 習性 때문에 그렇게 生覺하는 것 뿐이다. 그러나 冷靜하게 따져보면 地球는 大氣의 中間에 떠 있는 것인데 人間이 自己가 지닌 바의 尺覺(近視眼的 感覺) 때문에 그와 같이 誤解하는 것이라고 對答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黃帝는 아직도 疑心이 풀리지 않아서 다시 물었던 것이다.
즉 「地球는 어떠한 곳에 依支하고 있는가? (帝曰 憑乎)
다시 말하면 地球가 萬一 虛空에 떠 있다면 어떤 곳에 依支하지 않고서는 반드시 떨어질 것으로 生覺하였기 때문에 이와 같이 反問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岐伯은 對答하기를 그런 것이 아니고 다만 「大氣가 들고 있는 것이다」라고 對答하였던 것이다. (岐伯曰 大氣擧之也)
그리고 그는 또 繼續하여 「燥以乾之」하고 「暑以蒸之」하고 「風以動之」하고 「濕以潤之」하고 「寒以堅之」하고 「火以溫之」라고 말하였으니 이것은 바로 地球가 虛空에 떠서 動하기 때문에 이것이 日月의 光을 받으면서 左右周天하므로써 五行이 생겨나고 다시 그것이 六氣의 變化所致로 上記한 바의 「燥暑風濕寒火」의 六氣運動을 하는 大本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즉 所謂 世俗的인 「天動地靜」說은 여기에서 崩壞되고 마는 것이니 老, 墨, 列. 莊의 思想은 이것을 받침하고 있다. 이것이 東洋의 古代天文思想의 境地(다시 말하면 地球와 日月이 動하는 것은 天體의 動하는 힘(力) 때문이라고 하는 것임을 生覺할 때 刮目한 만한 충분한 價値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地球와 日月은 그들의 運行에 있어서 반드시 規則的인 軌道의 運行을 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으니 이것을 가리켜서 六節藏象論(素問)에는 「行有分紀 周有道理」라고 明示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다만 本稿에서 말하려는 바는 「地球와 日月이 左右周天하는 그것 때문에 地球 위에서는 森羅萬象의 變化가 일어나게 되고 따라서 經度와 緯度의 차이 때문에 地方마다 各其 特殊한 物品을 生産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는 問題가 생기게 된다는 것과, 또 地球의 軸이 二十三度 七分 傾斜져서 있는 까닭에 黃道가 (地球의 軸이 傾斜진 그만큼) 赤道의 內外廓으로 出入하므로써 春夏秋冬 四時의 現象이 나타나게 되고 이 現像이 反復往來하는 過程에서 「土」와 「相火」를 自生하여서 비로소 이 宇宙間의 모든 變化가 나타나게 된다는 것」뿐인 것이다. 물론 여기 附隨되는 問題로서 地球의 軸은 왜 傾斜졌는가? 따라서 地球와 日月을 運行시키는 原動力은 무엇인가? 하는 問題는 가장 重要한 問題인 것이다.
그러나 只今 여기서 論하려는 바는 다만 槪括的인 것으로 그치고 詳述하는 것은 各論에 미루기로 할 것이다.
다만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宇宙의 變化는 上述한 바의 모든 條件들 때문에 생기는 것이며 또 吾人은 이들 條件에 의하여 그 原理를 算出할 수 있다는 것을 認識할 수 있으면 本論의 目的은 끝나는 것이다.
第五節 河圖洛書와 太極說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地球 위에서 發生하는 모든 變化는 오로지 地球와 日月이 左右周天하는 運動過程의 所産이었던 것이다. 비록 그러하나 宇宙間에 그러한 形과 象이 있다는 그 事實만으로서는 哲學은 成立될 수 없는 것이다. 오직 그 象과 形에 대한 原理를 捕捉하고 거기다가 論理的 妥當性을 賦與하여서 學問的 體系로 誘導함으로써 비로소 哲學이 成立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인들은 宇宙간에는 이러한 變化原理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發見하였으며 또 어떻게 哲學體系를 세웠던가? 하는 問題를 硏究하여야 할 것이다.
古代에 伏羲氏가 바다에서 龍馬가 그의 등에 異常한 그림을 지고 陸地에 나온 것을 發見하고 그 그림을 深思熟考한 結果 그것이 바로 五行原圖라는 것을 알아내었다. 그러므로 이 그림을 河圖라고 呼稱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伏羲氏는 河圖에서 五行原理를 發見한 것뿐만 아니라 그 作用 다시 말하면 變化하는 象을 捕捉하여서 그림으로써 그 象을 表示하여 놓은 것이 周易의 八卦인 것이니 이것이 易學의 基本이며 또 五行原理의 變化作用을 象으로 表示한 淵源이며 또 自然數가 生成變化하는 大本인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비로소 東洋哲學, 즉 象數學은 哲學的 素地를 갖추게 되었고 同時에 人間은 變化하는 象을 알아낼 수 있게 되었으며 또 그 原理를 自然數로서 立證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즉 이것은 變化하는 過程에서 보면 變化原理인 것이요 變化本然의 立場에서 보면 象數學인 것이다. 筆者가 本稿의 第一編을 「變化原理」라고 命名한 것도 實로 여기 있는 것이다.
그러나 上述한 바의 河圖는 다만 萬象의 基本이 되며 또 萬物의 生成原理와 그의 象數를 表現한 것뿐이고 그 大變化의 象, 다시 말하면 生成의 現象을 表現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가리켜서 先天卦圖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때(時)는 반드시 萬物이 生長에서 成遂를 完遂하는 象, 즉 大變化의 象, 다시 말하면 金火交易하는 象을 明示할 聖人을 내고야 말 것이다. 때(時)는 夏禹氏에 이르렀다. 이때에 洛水에서 거북이가 그의 등(背)에 글을 지고 나왔으니 이름을 洛書라고 하거니와 이 그림은 거의 河圖와 같으나 다만 河圖 때는 二七火가 南方에 있었고 四九金이 西方에 그려져 있던 것인데 洛書에서는 二七火가 西方에 와있고 四九金이 南方에 와 있으며 또 河圖에서는 中央에 五十土가 있던 것이 洛書에 와서는 中央에 五土만이 있다는 點이 다른 것이다. 다시 말하면 洛書는 河圖에 比하여 이와 같은 特徵을 띄고 있는 바 여기서 問題되는 것은 왜 때(時)는 夏禹氏 때에 洛書를 보내어서 우리 人類에게 이와 같은 徵候를 가르쳤던가? 하는 것이다.
이 問題에 對해서 硏究를 完成한 분이 바로 周文王이시니 그는 方不過 七十里의 諸侯領의 公子로서 紂王의 暴政아래 里獄에 投獄되어서 所謂 文王卦圖를 硏究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河圖原理가 洛書原理로의 轉換이며 同時에 生長原理에서 成遂原理로 變化하는 所謂 「金火交易原理」가 出現하는 契機의 創作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後天卦圖라고 한다.
이와 같은 象數學은 「河出圖 洛出書하여 聖人이 則之」(易繫辭)함으로써 發展한 것이지만 이것을 演繹硏究하여 보면 地球 日月이 運行하는 過程에서 人間이 알아낸 것이라고 하는 한마디로 歸納되는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바의 河圖와 洛書 또 伏羲圖와 文王圖가 發明됨으로써 哲學의 成立은 보았지만 決코 完成은 아니다. 이것이 戰國 때 鄒衍 等에 依하여 華麗한 發展을 하였지만 秦火以後 거의 자취가 사라지게 되었던 것인데 때마침 周廉溪가 太極圖說을 내놓음으로써 河圖와 洛書의 運行原理를 明示하였던 것이다. 그 圖와 設은 至極히 簡單하지마는 그의 眞理는 圖와 說 가운데 彌滿하여서 象과 數의 硏究에 대한 偉大한 公式을 남겨놓았던 것이다.
그러면 太極圖說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여기에 說明해야 할 것이나 總論에서는 略하고 詳細는 各論으로 미루기로 하거니와 다만 本稿에서는 河圖와 洛書의 발전은 太極圖說의 發展으로 因하여 今日 東哲(즉 象數學)의 體系를 세워 놓았다는 것을 紹介하면 되는 것이다.
以上에 紹介한 바는 甚히 難解한 部分이 많아서 理解하기 困難할 줄로 안다. 그러나 그것은 念慮할 것 없다. 以上에서 論述한 바는 다만 以下 各論에서 硏究할 것에 對해서 總括的으로 그 重要한 內容이 이러하다는 것을 紹介한 것이고 詳細한 것은 各論에서 逐條說明할 것인즉 이 점을 미리 理解만 하면 그만인 것이다.
第六節 正名學
正名이라는 말은 오늘날의 流行語로써 바꿔 말하면 槪念이라는 말과 서로 相通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事物은 이름(名)이 붙어진 後에 비로소 그것이 어떠한 것이라고 하는 것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즉 事物에 各其 이름을 붙이는 일은 本來 重要한 일이지만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人口의 增加와 함께 社會의 生活樣式과 文化의 發展形態가 漸漸 複雜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事物에 대한 名分關係는 絶對不可分의 關係로 登場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事物과 名稱關係는 마치 車의 兩輪이나 鳥의 兩翼關係와도 같아 서로 分離할 수 없으리만큼 必要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돌이켜 生覺하여보면 人類의 生活과 文化의 發展이 아직 草創하였던 때에 있어서는 名稱을 設定할 必要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漸漸 複雜化되어가는 今日에 있어서는 人類와 文化의 發展에 따라 事物에 名稱을 賦與함으로써 그의 複雜性을 整理하고 또 認識하는데 도움을 주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事物에 名稱을 賦與함으로써 哲學의 發展과 文化의 硏究에 對해서는 貢獻하는바 컸지만 反面 그 名稱은 도리어 自體矛盾을 誘發하기에 이르고 말았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名稱이란 것은 그의 槪念이 正確할 때에는 最上級의 功效가 있는 것이나 正名의 本質이 墮落될 때는 도리어 事物의 發展에 害毒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본래 東洋의 文字는 그 自體가 二面性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즉 一面으로는 言語學的인 面을 지니었고 다른 面으로는 哲學的인 面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天」字에서 이것을 稽考하여 보면 言語學的인 面에서 보면 「하늘」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哲學的 面에서 보면 「天」(하늘)이라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하는 意味가 그 글자의 象과 形 가운데 潛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萬一 正名精神이 墮落되면 글자의 意味는 言語學的인 面에서만 通用되고 哲學的인 面은 漸漸 退藏되어버리는 것이다.
모든 事物은 名에 依해 代表되고 正名은 文字에 依해서 象徵되는 것이라는 것을 認定하는 한 正名의 墮落이 바로 哲學의 墮落이 된다는 것을 認定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오 따라서 人事에 있어서는 正名이 行해지지 못하면 腐敗와 墮落만이 助長되는 法이오 萬物에 있어서 正名이 行해지지 못하면 物質硏究는 發展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例는 史上 非一非再였거니와 特히 中國史에 있어서 春秋末과 戰國初期의 混亂相은 이것을 如實히 代表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孔子가 正名으로써만이 混亂한 社會를 矯正할 수 있다고 生覺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孔子가 人道에 있어서 名分을 바로잡음으로서 社會를 淨化하려고 한 까닭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人道哲學의 基盤을 後世에 남겨 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墨子도 亦是 人道主義를 排斥한 것은 아니다. 孔子의 形式主義的인 面을 否認하는 同時에 人道的인 正名만 가지고는 그 當時의 社會를 바로 잡을 수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당시 墨子의 눈앞에 떠오른 것은 腐敗墮落하여 骨肉相殘으로 寧日이 없는 權力層들과 塗炭속에서 阿鼻叫喚하는 衆生들의 悲慘한 實相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첫째로 物質文明을 發展시켜서 民生의 富를 增殖시키고 둘째로 兼愛思想을 鼓吹하여 戰爭을 禁止토록 하고 셋째로 節約思想을 奬勵하여 財産을 蓄積하도록 하여야 道德도 그 속에서 自然히 蘇生된다고 力說하였던 것이다.
墨子의 이와 같은 思想은 思想으로만 그친 것이 아니고 自己自身이 實踐하였으니 첫째로 事物의 正名을 철저히 함으로써 科學的 發達을 促進시켰으니 그의 科學的 所論은 오늘에 있어서는 믿지 못할 만한 卓越한 價値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註」光學, 力學 等을 參照) 그 다음 諸國을 歷訪하여 平和를 提唱하고 自己自身이 儉素한 生活을 하면서 勤儉을 奬勵한 것 등은 實로 본받을만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中에서도 吾人이 特히 본받을만한 것은 그가 物質文明을 發展시키기 위하여 모든 事物에 賦與되어 있는 名稱에 대해 正名(槪念決定)을 徹底히 하였고 또 그의 正名方法을 指示하였다는 점이다. 勿論 斯學의 發展은 秦火以後 비록 衰殘하여졌다고 할지라도 그의 著書가 今日까지 남아있기 때문에 오늘의 光明을 받게 되었거니와 따라서 正名思想과 天道法則 硏究는 漢醫學硏究에 있어서도 혹은 基本哲學으로 혹은 補助科學으로써 絶對的 經典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哲學이 正名段階를 거치고야 事物의 眞理를 探索할 수가 있고 醫學이 正名된 다음에야 人體의 秘密을 찾아내는데 吝嗇하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事物의 眞理를 探究하려면 正名이 必要하게 되고 따라서 正名하기 爲해서는 文字의 媒介를 기다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 글字 自體부터 바로잡지 못하면 事物의 名稱을 바로 잡을 수 없게 되고 그의 名稱이 바르지 못하면 事物의 標識이 不公正하여져서 眞理도 邪道에로 轉落하기 일수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哲學徒는 勿論 우리 漢醫學徒에 있어서도 正名할 줄을 알아야 할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아직 論議되어야 할 것은 正名方法인 것이다. 이 問題는 本稿에서 論할 性質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略하거니와 이제 여기에서 한마디로 말한다면 字典을 無限히 찾으면서 자기가 이미 알고 있다고 生覺되는 글자를 篆字나 古字까지 對照하면서 그의 象과 形을 檢討하는 일이오 다음은 正名에 關한 典籍을 잘 硏究할 것이오 세째로는 變化原理(五行思想)를 完全히 納得하게 되면 無難히 解決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本講에서 變化原理부터 先論하는 것도 實로 이와 같은 모든 難題解決의 基盤을 먼저 닦아놓으려는 것이다.(總論終)
<筆者=서울 鐘路區 韓東錫漢醫院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