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이에 맞게 맘 편하고 퉁퉁할 것 같은 인상. <공원지기 퍼시 아저씨 (Percy the Park Keeper)> 시리즈의 작가 Nick Butterworth의 모습입니다. 1946년에 영국 런던 북부의 Kingsbury에서 태어나 그래픽 디자인을 주로 했지요. 1981년에 『B.B. Blacksheep』이라는 제목의 그림책을 만들면서 어린이 그림책 세상에 한 발을 내딛었습니다. 이 아저씨, 아주 재미있는 고백을 하는군요.
“제가요 … 학교 다닐 때요 … 교과서에요 … 그림 안 그린 적이 없어요. 제 교과서는요 … 낙서 … 만화 … 그런 걸로 꽉 차 있었어요.”
그렇게 교과서에 그림을 끄적거리던 소년은 자라서 그림책 작가가 되었습니다. 마른 사람은 살이 찐 걸 좋아하고, 살집 있는 사람들은 마른 걸 좋아한다는데, 이 아저씨는 거울 보면서 그림을 그리는지, 공원지기 퍼시아저씨는 닉 아저씨를 꼭 닮았네요. 키도 작고 통통하고 순한 표정에 눈은 단추구멍만 하고……. 몸집이 두세 살 짜리 아이들처럼 토실토실합니다. 어린이 그림책에서 어른이 주인공으로 나와 성공한 예가 별로 없다는데, 이 시리즈는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사랑을 받아 첫 책인 『One Snowy Night (눈오는 밤)』는 영국에서만 100만부 이상이 팔렸다는군요. 퍼시 아저씨의 인상에서 아이들은 자기의 모습과, 자신들이 기댈 수 있는 엄마 아빠의 모습을 동시에 본 걸까요?
눈 내리는 추운 날과 동물들은 자주 그림책의 주제가 되지요. 옅은 색감의 수채로 그린 『One Snowy Night (눈오는 밤)』의 그림은 눈이 와도 평화롭고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눈송이 펄펄 날리는 밖이 마치 카드의 한 장면처럼 그려졌기 때문이죠. 게다가 동물들은 차례차례 퍼시 아저씨의 따스한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 오거든요. 다람쥐, 토끼, 여우, 오소리, 오리, 고슴도치, 생쥐……. 러시아 민화의 이야기를 차용한 Jan Brett의 『The Mitten(장갑)』에서 동물들이 추위를 피해 들어온 장갑은 곰까지 들어와도 될 정도로 한정 없이 늘어나건만, 퍼시 아저씨의 침대는 그렇게 요술처럼 넉넉하지 못해 동물들은 서로 떠밀고, 밀어젖히다가 모두 바닥으로 떼구르르 굴러 떨어지지요. 마루판이 삐걱거리며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모든 동물들은 다 어디론가 숨어 버립니다. 하지만 마루판이 열리면서 나온 건 두더지였죠. 그새 오소리는 따뜻한 옷 서랍에 들어가 있고, 다람쥐는 아저씨의 외투 주머니에 쏙 몸을 숨기고 있고, 여우는 서랍 장 꼭대기에 얹어 놓은 이불 속에 턱하니 들어가 있고. 귀여워라, 생쥐들은 슬리퍼 속에 쏙 들어가 있군요. 다들 따뜻한 잠자리를 찾은 이 그림이 너무나도 정답고 따뜻해 보입니다. 그런데 퍼시 아저씨, 잘 때는 그 공원지기 모자를 벗어야죠, 안 그래요?
『After the Storm (폭풍우가 지난 후)』에서 퍼시 아저씨는 폭풍우 때문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지요. 그 나무에 집을 짓고 살던 동물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한숨만 쉬고 있습니다. 퍼시 아저씨는 이 동물들을 데리고 이리 저리 가 보았지만 동물들은 마음에 들어하지 않습니다. 마침내 좋은 생각이 떠오른 아저씨는 동물들을 데리고 커다란 나무 한 그루의 이 구멍 저 구멍에 문도 달고, 계단도 내고 해서 동물들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짓지요. 마지막 장에서 아저씨는 주머니에서 도토리 한 알을 꺼냅니다. “이걸 심으러 가야 해.”하면서요. 일생을 도토리를 심으면서 다닌 한 노인의 이야기를 다룬 『나무를 심은 사람』의 이야기가 생각나는군요. 책에는 또한 포스터가 접혀져 있어, 그걸 펼치면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나타납니다. 동물들이 거기에 어떤 보금자리를 짓고 살고 있는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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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 가던 날』과 『하늘을 나는 잔디깎이』표지 |
『The Rescue Party (소풍 가던 날)』에서 저자는 아주 유머러스한 면을 보여 줍니다. 퍼시 아저씨와 동물 친구들은 옛 우물에 빠진 막내 토끼를 구하려 애써 보지만 막내 토끼는 그새 비밀 구멍을 발견하고 저 뒤로 나와, 자기를 구하려 늘어뜨린 줄을 제일 뒤에서 잡고는 말하지요. “나도 여러분이 하는 일을 도우려고요. 그런데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죠?” 또 『Percy's Bumpy Ride (하늘을 나는 잔디깎이)』에서는 갑자기 발명가로 변한 퍼시 아저씨의 모습이 보여집니다. 늘상 공원지기를 하면서 땅에 발을 대고 살아온 아저씨가 프로펠러가 달린 잔디깎이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바로 그 공원을 내려다보지요. 접힌 페이지를 펴면 하늘에서 내려다 본 공원이 좌악 펼쳐져요. 그 장면은 정말 재미있지요.
영국에서는 이 시리즈가 인기를 끌자 캐릭터 하나 하나를 살려 텔레비젼 만화영화로 만들었다는군요. 언젠가 우리도 볼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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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Mum Is Fantastic』 『My Dad Is Brilliant』 『My Grandpa Is Wonderful』 『My Grandma Is Amazing』표지 |
다른 시리즈를 볼까요? 이번에는 스토리가 아주 짧고 페이지마다 큼직한 글씨로 한 문장씩만 들어가 있는 책입니다.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가 차례로 주인공인 『My Mum Is Fantastic』 『My Dad Is Brilliant』 『My Grandpa Is Wonderful』 『My Grandma Is Amazing』은 역시 어른이 주인공이지만, 모두들 토실토실하고 아이 같은 몸집입니다. 엄마는 이것도 잘해요, 저것도 잘해요, 아빠는 이것도 잘해요, 저것도 잘해요……. 이런 패턴으로 문장이 씌어 있는데, 그림이 아주 재미있습니다.
엄마책에서 “She's a brilliant artist”라고 나온 페이지에서 엄마는 커다란 고양이가 흐뭇하게 미소를 흘리고 있는 걸 그리고 있는데, 엄마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개의 표정을 보세요. 자긴 안 그려주고 고양이만 그려줘서 그런지 꽤 심술이 나 있군요. 그런데 마지막 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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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Mum Is Fantastic』 『My Dad Is Brilliant』본문 그림 |
“and she makes the best parties in the world”라며 아이들과 신나게 파티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서는 개가 고양이에게 뿌우! 하며 리본 나팔을 불며 고양이를 귀찮게 하는 그림이 있습니다. 개는 나름대로 고양이에게 되갚음을 한 거라고나 할까요?
아빠 책에서 “and he's fantastic on roller skates…”라는 장면을 펴 보세요. 아빠는 신나게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묘기를 부리고, 그런 아빠를 보고 얼른 도망가는 멍멍이. 그리고 그 뒤에선 장보고 오는 할머니 한 분이 놀란 표정으로 아빠를 쳐다보는데, 장바구니에 뭐라고 써 있는 줄 아세요? “WOW”(와!)
할머니 책에서도 할머니는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다 잘해 주죠. 그래서 마지막 장면을 보면 모처럼 정원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 할머니에게 이번엔 아이가 차를 한 잔 갖다 드립니다. 그런데 그 애는 종이 박스를 뒤집어쓰고 있죠. 머리에는 안테나 대신 거꾸로 달린 옷걸이, 눈은 종이컵……. 역시, ‘wonderful grandma’랑 놀면 아이가 이렇게 ‘wonderful idea’가 생기나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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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Grandma Is Amazing』 『My Grandpa Is Wonderful』 본문 그림 |
할아버지 책에서 할아버지는 “he's a terrific dancer”입니다. 음악을 틀어놓고 손자 손녀와 신나게 춤을 추는데 저런, 테이프 플레이어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아기곰은 음악이 너무 시끄러워 눈을 꼭 감고 있군요. 불쌍해라…….
그런데 영국식 영어와 미국식 영어의 뉘앙스가 가끔 다른 탓에, 영국에서는 『My Dad Is Brilliant』로, 미국에서는 『My Dad Is Awesome』으로 서로 다르게 나왔군요.
닉 아저씨는 이밖에도 『Jasper's Beanstalk』, 『Thud』, 『Making Faces』 등의 책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닉 아저씨, 좋아하는 게 뭐여요?
“음……. 내 아내와 아이들, 도자기 굽는 것, 크리스마스, 모닥불 피우는 거…….”
싫어하는 건요?
“마늘, 빈둥대기, 아침에 일어나기, 넥타이 매기…….”
그럼 이 아저씨한테 마늘을 선물해 볼까요? 크리스마스에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