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대안은 말로 주장할 것보다 실제 구현하고 있는 본보기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길 많은 사람들이 한다. 그런데 오래전부터 차곡이 하나씩 삶으로 대안을 만들어온 민들레공동체가 이미 지리산 품안에 이렇게 든든히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짧은 시간 둘러본 민들레공동체, 지리산사람들이 함께 배우고 나눠야할 소중한 희망의 본보기다.
"민들레 공동체"를 아십니까?
국내여행
2009/05/08 22:28 http://blog.naver.com/haneuimom/90046921653 |
산청에 있는 민들레공동체를 다녀왔습니다. 잠시 만난 민들레공동체의 모습을 담아보았습니다.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마을이었습니다. 다시 찾아가도록 끌어당기는 정다운 고향같은 곳이었습니다.올해 산청 한방 약초축제 행사장 한부스를 보았는데 하나도 구입해주지못한 미안한마음이 ,,,,. 온 몸으로 살아가는 민들레공동체마을을 방문하시려면 먼저 연락을 하시고 방문하셔야 합니다.
민들레 공동체: 경남 산청군 신안면 갈전리 42번지-진주-산청 국도변 경호강레프팅 근처.
전화 (055) 973-6813 이메일 flame1277@paran.com
볏집으로만든 이층집,,,
풍력발전기 대형선풍기 크기,,1kw출력이 나와요,,,,
민들레가 이렇게 생겼구요,,,,,
한시간 tv 볼려면 이런 자전거 발전기로 3시간 저어야 된다니,,,,,
위-태양열 조리기 밥짓는데 두시간,,,호일로 쒸운거 뿐인데,,,,아래-매탄가스발생장치
식당입구의 이글이 가슴이 찡 하네요,,,,
씨알은 작아도 맨들맨들 윤이나는 감자는 퍽이나 맛이 있을듯 합니다.
판화의 세부 모습입니다. '평화 내리는 마을'... 정말 귀한 선물을 받고 분에 넘치는 사랑에 감사할 뿐입니다.
판화는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두었습니다.
아쉽게도... 좋은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하다보니 다녀가신 분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지 못했습니다.
다음에 또 뵐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잡지<마을>삼백75호 : 마을로 가는 길 1 -‘무소유’를 욕심내는, 산청 민들레공동체
이천팔년칠월육일해날,오래된미래마을,정홀홀氏
* 편집자 주 : 월간 인물과사상(http://inmul.co.kr) 8월호에 마을연구소 '마을과 사람' 이름으로,
생태공동체마을 또는 마을이야기를 연재하는 방식으로 실릴 예정입니다.
첫번째 마을은 산청 민들레공동체입니다.
거대한 난민촌 서울의 한 복판에서, 시청앞 광장에서
국가 대한민국이 아닌 ‘마을 대한민국’을 보았습니다
잊었거나 잃었던 사람사는 세상을, 오래된 미래마을을 보았습니다
돌이켜보니 한 백년 전, 자비가 없는 정부의 방침과
당최 말이 통하지 않는 공권력의 방법이 있었습니다
국가와 정부를 믿지 못한 마을사람들의 목숨은 천지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제 딴에는 아무도 못 찾을 공간으로, 마치 이 세상 어디도 아닌듯한 공간으로,
어느 산골짜기로 연기처럼 스며들었습니다
단 하나 뿐인, 단 한번 뿐인 목숨을 겨우 살리며 살았습니다
살면서 주로 한 일은 하늘에 떠 계신 하느님, 또는 하나님이나,
땅 속을 파고 누운 조상님을 믿는 일이었습니다
사실은 땅 위의 서로가, 땅위의 스스로를 믿을 뿐이었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좀 흐르자
그게 또 ‘'사람사는 마을'이 되었습니다
'온 세상'이 되었습니다
어떤 마을은 제 스스로, 또 다시
국가와 정부로 개발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완력과 욕심이 센 한두 사람이 나서 저지른 짓이었지
대다수 마을사람들은 끼고 싶지 않은 아사리 판이었습니다
굳이 국민으로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살아가려면 그저 마을사람이면 충분했습니다
그러니 몹시 궁금합니다
완장의 신을 섬기는 정치인을 섬기는,
돈의 신을 모시는 경제인을 모시는,
'쯩'의 신을 따르는 교수단을 따르는,
말의 신을 믿는 성직자를 믿는,
그런 것들을 내내 구세주로 알고 사는,
그러니까 결국 기꺼이 진심으로 투표를 하고 마는,
과반수가 넘는 현대 대한민국 천민자본주의의 난민들이
왜 마을에서 그냥 마을사람으로 살면 안 되는지
왜 국가에서 국민으로 살아가려 그토록 기를 쓰는지
졸시‘국가의 발생’ 전문이다. 시청 앞 광장의 꺼지지 않는 촛불을 바라볼 때마다의 심정이 쌓여 어느새 이런 시가 되었다. 국가는 꼭 존립해야 하는 건지, 정부가 없으면 사람은 생존할 수 없는 건지, 이대로 어느 국가의 국민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건지, 그냥 작은 마을의 마을사람으로만 생활하면 안 되는 건지 늘 궁금했다. 그러다‘마을’ 또는 ‘생태공동체마을’을 살아가는 동안 풀어보고 싶은 어려운 숙제의 화두로 꺼내들었다.
‘인간의 활동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건강한 인간성이 계발되는 미래 지속가능한 마을공동체’. 이른바 ‘생태공동체마을’을 일컫는 흔한 정의다. 유기 순환농업, 생태건축, 대체에너지, 공동생산과 공동분배, 민주적 회의체, 영성 수행프로그램 등의 방법론으로 생태공동체마을은 세워지고 꾸려진다. 새로운 삶의 터전, 새로운 삶의 방법론으로 대안적 삶을 실천해보려는 용기있는 지혜를 갖춘 강고한 사람들이 주로 이런 마을에 모여 산다.
우리나라에도 이른바‘생태공동체’를 표방하거나 지향하는 마을은 전국 각지에 산재해 있다. 마땅히 대개 농촌지역에 마을의 터를 잡고 있다. 생태공동체라고 굳이 수식하지는 않더라도 자연과 조화롭게 상생하며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높이 두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마을은 그 수효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제 각기 계획공동체, 생태전원마을, 공동주거, 귀농인촌 등 다양한 형태와 지향점을 가지고 건설되고 경영되고 있다.
아직 국내에는 성공적인 생태공동체마을 사례가 없다는 주장이 우세한 편이다. 과연 그 성공의 기준과 척도는 어떻게 정할 것인가 대한 논의도 여전히 분분하다. 어쩌면 서로 너무도 다른 사람들이 모여들어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본다는 것, 더불어 사이좋게 베풀고 나누며 살아가려는 생태공동체마을이란 너무도 지난한 실험이나 모험이 아닌가 하는 일반 대중의 우려와 자조는 깊고 크다.
분명한 것은 생태공동체마을이란 국가나 정부, 또는 그에 준하는 권력을 부리는 집단에서 주도하는 정치혁명이나 제도혁신의 산물일 수는 없고, 그렇게 되어서도 결코 안 되겠다는 엄연한 원칙이 있다. 생태공동체마을을 만들어 그곳에서 살아보겠다는 것은 그저 이 ‘세상’을 살아가려는 삶의 태도와 방식에 변화를 주려는‘자연인’들의 작고 낮고 느린 움직임에 다름없다. 자주적인 힘으로 정상화시키기 어려울 정도로 불합리와 부조리가 만연한 현실의 정치 틀과 제도의 굴레에서 일정하게 벗어나 살아보려는 주권자로서의 지극히 주체적인 시도이다.‘주어진 국민의 자리’에서 좀 내려와 스스로의 선한 자유의지 대로 살아보려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삶의 방식이자 생각의 표현일 따름이다.
어쨌든 그런 마을에는‘남다른 세상’이 있다. 보다 멀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들의‘남다른 생각’도 있다. 그 마을로 가는 험한 길을, 함께 가 보자 우리.
민들레홀씨같은 사람들
경남 산청군 신안면 갈전리 갈전마을 속에 자리잡은 산청 민들레공동체에는 민들레홀씨들이 모여산다. 20명의 어른과 11명의 아이들은 모두 민들레홀씨처럼 살아간다. 소박한 모습으로,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며, 뿌리 깊게 살아가는 민들레꽃을 생활의 교범이자 양식으로 삼삼고 있는 것이다.
민들레공동체를 세운 이는 김인수씨(50세)다. 공동체의 대표이자 대안학교 민들레학교의 교장 노릇을 하고 있다. 진주에서 태어나 경상대 농대와 서울대 농대에서 농촌지역사회개발을 공부한 박사다.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한 전도사이기도 하다. 민들레학교 교감으로 일하는 부인 권근숙씨(47세)씨는 교육학을 공부했다. 주로 집과 자연을 학교 와 놀이터삼아 공부하고 생각하고 뛰노는 진혁, 주원, 진하 등 아이 셋을 두고 있다.
민들레공동체 부설 대안기술센터 소장 이동근씨(40세)는 5천여평의 우렁이 논 농사 일을 비롯해 공동체의 대소사는 물론 부인 전봉선씨(38)와 네 아이(경인, 해인, 세인, 자현)의 삶도 함께 책임지고 있다. 집 안팎에서 총무 노릇을 하는 셈이다.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한 덕분에 공동체를 대표해 영국에서 대안기술(적정기술)을 전공해 석사를 받아왔다. 대체에너지 기술을 전수하는 교육프로그램인‘숲과 바람과 태양의 학교’를 열어 운영하는 등 국내 대안기술의 전도사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공동체 안에서는 평생가족이 될 것을 서약한 사람을 뜻하는‘정회원’이다.
경상대에서 지속농업 박사과정 공부를 하고 있는 손다니엘씨(36세)와 유길순씨(36세) 부부는 세 자녀들(초연, 지환, 희영)과 함께 ‘공동체 가족’으로 생활한다. 이미 일본에 유학해 농업을 공부한 데 이어 여전히 농업공부를 놓지 않고 있는 것은 차기 대안농업 책임자 내정자로서 준비를 철저히 하기 위해서이다. 공동체에서 함께 생활하는 사람으로 기존 사유재산 외의 모든 경제생활을 함께 공유하는 가족이다.
노동과 기도의 삶을 영위하는 강원도 태백의 예수원에서 10년 동안 공동체생활을 한 김봉성씨(40세), 김지은씨(32세) 부부는 아들 한결이와 함께 공동체에 들어와 민들레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다.
이태희씨(53세), 정양자씨(49세)는 민들레공동체와는‘마을 가족’의 관계이다. 마을가족 이란 공동체주변에서 독립적인 주택, 토지, 경제를 영위하는 가족으로 공동체 식구들과 더불어 살기를 서약한 사람을 말한다. 민들레학교 아래 2층 짜리 스트로베일하우스 지어놓고 이제는 없어서 못 판다는 자연양계를 생업으로 자립해서 민들레공동체와 협력한 여러가지 일들을 모색하고 있다.
서양화가인 이은실씨(34세)는 민들레공방 실장을 맡고 있다. 7년 째 민들레에 살고 있고 3년 전에 퀼트 작업도 시작해서 요즘은 주로 가방, 장식품 등을 만들고 있다. 민들레학교에서 미술교사로 일하면서 인근 사천지역의 다문화가정자녀를 위한 문화교육프로그램도 지원하는 지역일꾼으로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고 있다.
유기농 전문가 박지용씨(56세), 최규천씨(30세), 윤자영씨(28세)는 각각 농업, 역사 및 수학, 영어 과목을 맡아 민들레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다.
여기에 김인수대표의 장모인 정갑조씨(83세)와, 홀로 자립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이 민들레공동체에서 더불어 생활하는 이른바‘생활보호가족’ 유다윗씨(62세)까지 민들레공동체 식구라 할 수있다.
캄보디아에도 공동체의 가족들이 일하러 나가 있다. 인류를 섬기는 봉사의 삶을 실천하려는 것이다. 공동체 정회원 가족인 김기대씨(40세)는 경상대에서 수의학을 공부한 수의사로 부인 류소현씨(40세)와 캄보디아에서 ‘꿈과 미래학교’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역시 공동체 정회원 가족인 정남식씨(41세), 이만선씨(38세)는 유기농 전문가로 캄보디아 꿈과 미래학교에서 유기농 교육을 하며 시범 농장 설립 작업을 하고 있다.
‘교회’와 ‘교파’가 없는 무교회
민들레공동체의 공간적 터전은 산청 갈전리 둔철산 동쪽자락의 전형적인 산촌이다. 얼핏 60여호의 남짓한 전통농가로 이루어진 갈전마을 맨 뒷편 야트막한 동산 위에 공동체의 터전이 자리잡고 있다. 둔철산 서쪽자락에는 간디학교가 자리잡고 있고, 갈전마을 위로는 간디학교에서 만든 갈전교육생태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민들레공동체는‘민들레교회’라는 안내판을 마을 어귀에 세워두었다. 일반적으로 생태공동체마을을 분류하는 기준에 따르면 기독교신자들의 영성공동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교회는 아니다. 교회건물이나 목사도 따로 없다. 공동체의 주요의식인 예배도 3가족이 함께 사는 공동주거공간인 공동체주택에서 김인수전도사가 이끈다. 심지어 공동체식구들 마다 교파도 여러가지다. 심지어 가톨릭신자도 공동체 안에 들어와 살고, 종교를 믿지않아도 공동체의 철학을 공유하고 공동체의 원칙을 지킬 수 있다면 공동체식구로 맞이한다. 열린 공동체다.
마당 한켠에는 흙벽돌로 지은 민들레공방, 볏짚단을 쌓고 황토흙을 다져넣은 스트로베일하우스로 지은 대안기술센터가 들어서 있다. 공동주택 지붕이나 외벽에는 대안기술을 적용한태양열 난방시스템, 풍력발전기, 바이오매스 발생장치가 여기저기 붙어 있다.
민들레공동체는 1991년 설립되었다. 경남 진주시 정촌면 화개리 화동마을에서 김인수대표 부부가 홀로 시작했다. 초기부터 주로 서부경남지역의 무교회 지역전도를 목표로 삼고 있다. 이제 그동안 개척한 20여곳의 농촌교회를 중심으로 국내는 물론 캄보디아, 인도 등 해외에서까지 농촌지역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 무엇보다 농촌의 문제는 사람 문제에 있음을 직시, 농촌을 지탱하고 먹여살릴 농촌개발인력을 기르는 데 물질적, 영적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다.
대안기술센터를 따로 설립해 대체에너지를 비롯한 대안기술을 보급하는 한편 스트로베일하우스 생태건축, 우렁이논농사 등 유기농사를 통해 진정성 있는 생태공동체마을의 모델들 몸소 구현하고 있다. 결국 농업과 문화와 영성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귀농공동체운동의 전범을 생생한 실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민들레공동체는 정치나 정부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산다. 바람직한 정치와 정부가 되도록 늘 기도한다. 정의와 자유의 정신에 입각하여 행동한다. 모든 가족은 임의로 지방 정치에 참여하거나 휩쓸리지 않는다. 그러지는 말자고 서로 약속하고 합의했다. 불가피한 정치적 사안이 생긴다면 공동체 대표가 대표로 의견을 제출하기도 한다. 오늘날 스스로 정치권력이 되고만 중앙의 크나큰 교회와는 노골적인 대척점에 서 있는 셈이다.
민들레공동체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물질적으로 어려워 자립하기 어려운 사람들과 늘 같이 살고 있다. 그런 사람들을 모시고 살아야 온전한 공동체가 된다는 뚜렷한 소신이다. 능력 있는 공동체가 아니라 그런 어려운 사람들을 섬기고 더불어 나누기 위한 공동체를 하고 싶은 것이다.
대안기술의 진원지
부설 대안기술센터는 영국에서 생태건축과 재생에너지를 공부한 이동근소장이 이끌고 있다.
대안적인 삶을 구현하려면 그 기반이 될 수 있는 각종 대안기술을 연구하고 보급할 필요가 있다. 영국의 동런던대학 산학협동과정에서 2년동안 공부하며‘캄보디아 도시빈민들을 위한 생태적이고 친환경적인 건축’으로 석사를 마치고 귀국한 그는 그 필요를 본격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2006년 5월 대안기술센터를 따로 만들었다.
스트로베일하우스건축, 바이오디젤, 풍력발전, 태양열난방, 자전거발전기 등의 기술과 개념이 정립돼있다. 대안기술이 필요한 외부 사람들을 위해 그 기술을 공유하는 워크샾도 꾸리고 있다. 소수력발전이나 소형풍력발전기는 캄보디아 등 제3세계 빈국에도 보급하고 있다.
대안기술이란 농촌지역의 열악한 기술을 상호 보완해 농민 등 가난한 사람을 살리고 자본의 종이 되지 않고 삶을 유지하게 하는 지속가능한 기술을 뜻한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E.F.슈마허가 주창한 인간 중심의 중간기술, 돈 없고 힘없는 다수 민중들도 쉽게 구현해 활용할 수 있는 적정기술을 말한다.
공동체는 2층짜리 공동체 가족의 주택 2채와 민들레학교 건물 3동, 대안기술센터 사무실을 스트로베일하우스로 지었다. 스트로베일하우스(Strawbalehouse)는 흙과 볏짚으로 벽체를 쌓아올리는 생태건축 공법으로 지어진 집을 말한다. 약 100년전 미국에서 시작돼 국내에서는 한국스트로베일건축연구회(http://cafe.naver.com/strawbalehouse)를 중심으로 새로 보급되고 있는 신개념의 생태건축이다.
무엇보다 스트로베일하우스의 장점은 벽이 숨을 쉬어 통풍이 잘돼 음식냄새가 배지 않고, 황토, 볏짚, 천연페인트 등 친환경자재로 시공되어 항아토피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소의 사료용으로 성형한 볏짚(스트로베일)도 쉽고 싸게 구입할 수 있어 건축비용을 절감할 수있고, 단열효과가 뛰어나 냉난방비를 절감하는데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줄어들어 지구온난화 방지에도 기여할 수 있는 생태적인 장점이 크다. 가히 생태공동체마을의 이상과 현실에 부합하는 진취적인 생태건축 공법이라 할만하다.
바이오디젤은 식물성 기름을 자동차나 보일러에 넣는 기름으로 대체할 수 있는 대안 에너지이다. 실제로 본인의 자동차에도 사용하고 있는 이동근소장은 “버려지는 값싼 폐식용유를 재활용하면 더 큰 효과를 누릴 수 있으며, 식물성 유지 작물을 심어 수확할 수 있다면 지속적으로 환경과 사람을 살리는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장애우‘를 우대하는 민들레학교
2007년 3월 개교한 민들레학교는 그저 대안학교에 그치지 않는다. 농촌의 문제를 결국 사람의 문제로 보고 인재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민들레공동체의 핵심사업이라 할 수 있다. 농촌에서 살며 농촌을 살리는 농촌의 인재를 키우려는 목적이 크다.
생명존중과 조화로운 삶이 공동체와 학교의 기본철학이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을 귀하게 여기고 생명의 소비를 최소화하는 삶을 살도록 힘 쓴다.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자세도 잊지 않는다. 학교의 모든 식구들은 삶의 궁극적인 완성이 예술적 측면으로 표현된다는 것을 믿는다. 생존을 위한 노동과 생활을 위한 노동 사이에 삶의 아름다움을 키워나가는 능력을 키워나가도록 힘쓴다.
학교 역사는 채 2년이 안 됐지만 오랜 공동체 역사의 성과물이다보니 공동체 정신, 유기농, 대안기술, 무엇보다 국제적인 리더십을 세우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노하우를 이미 갖고 있다. 그러니 그저 학교를 위한 학교가 아니라 공동체 역사로 이루어진 삶의 결실이고 고백이라는 자평이다.
민들레학교는 비인가 중등과정으로 3학기제로 운영되는 대안학교다. 5명의 교사와 6명의 강사가 전국에서 모인 14명의 아이들과 서로 배우고 가르치며 공부하고 있다. 교육목적은 한마디로 소박하고 뿌리깊은 삶이다. 교사들은 가장 자유로운 인간이야말로 오래된 미래같은 진정한 공동체를 형성한다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 교과목 외에 철학, 노작, 생각쓰기, 농업, 대안기술, 옷만들기, 관현악, 글로벌스터디 등을 통해 자율성, 창의성, 민주적이고 자치적인 생활능력을 가르치려 애쓴다.
학생들은 자신이 공부하고 싶은 과목, 범위, 목표를 스스로 정해서 교사들의 도움을 받으며 공부한다. 의식주, 농업, 공예, 목축 등 다양한 경험은 자연스레 공동체와 연계해 배우게 된다.
경남지역, 저소득층 가정, 그리고 지체부자유학생만을 위한 특별전형을 하고 비기독교인이라도 학교의 철학을 공감하고 공유하면 입학할 수 있다. 고등학교 과정의 설립도 염두에 두고 있다.
앞으로 150평 정도의 교육공간, 3~4억원의 재정이 더 필요해 계속 기도하고 노동하고 있다. 또 해외로 나가 캄보디아‘꿈과 미래학교’. 인도 나가랜드지도자교육원 등과 협력 직업훈련 지도자 교육을 시키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현지에 농업대학을 세울 계획도 있다. 지금 현지인 스태프 두 사람이 공동체에 머물며 풀무학교 전공부, 경상대에서 농업을 공부하고 있다.
‘무소유노믹스’ 민들레경제
남보다 적게 먹고 남보다 적게 욕심내는 공동체에서도 ‘최소한의 먹고 사는 문제’는 최우선 지상과제이다.‘최소한의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공동체는 지속가능한 미래 계획을 그릴 수 없는 것은 물론 한낱 갈등과 피로의 생활전선 쯤으로 전락하고 만다.
민들레공동체 식구들은 일단 식량만큼은 온전히 자급자족한다. 5천여평의 다랭이 논에 우렁이를 이용한 유기농 벼농사를 짓는다. 콩, 밀 등 잡곡류도 심지만, 주로 산등성이에 널려진 밭농사는 아무대로 일손이 달려 비닐하우스 야채류 텃밭 농사 외에는 본격적으로 달라붙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래서 농사를 통해 소득을 창출하지는 못 한다.
민들레공동체를 찾던 날은 마침 벼가 나이를 먹는다는 복날이 멀지 않은 무렵이었다. 복날은 음력도 아니고 양력인 절기도 아니다. 복날은 간지력(60갑자)으로 만든 날인데, 7월 초 소서 지나 오는 경(庚)자 들어가는 날이 초복이고, 열흘 뒤 두 번째로 경자 든 날이 중복이고 세 번째는 입추 지나 오는 경자 들어가는 날이 말복이다.
벼는 초복 때 한 살 먹고, 중복 때 두 살 먹고, 말복 때 세 살 먹는다 한다. 이때 으레 논에는 벼보다 더 빠르게 자라는 피가 지천이다. 소서, 대서와 서로 엇갈리는 초복, 중복날 뜨거운 햇살 아래 피를 뽑는 김매기 노역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보양식으로 개고기를 먹는 풍습이 생겼을까 싶다. 농사지을 일손이 달리는 민들레공동체에도 어김없이 복날은 성큼 다가서 있다.
공동체의 연간 전체 수입은 일정하지 않지만 대략 5천만원 정도라 한다. 통계청에서 알리는 우리나라 가구당 평균소득이 2천만원을 좀 넘는다 하니 어림잡아 2가구의 소득을 합친 정도이다.
지출은 수입에 맞춰 한다. 돈이 없으면 쓰지 않고 돈이 모라자면 지출을 줄인다. 소득의 절반 이상은 전국의 지인, 개인후원자 등 외부 후원금에 의존하고 있다. 나머지는 대안기술센터, 민들레공방, 민들레학교 등에서 교육, 워크샵, 캠프, 공예품 판매 등을 통해 얻는다.
평생 가족인 정회원은 무소유를 실천하되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지급받는다. 생산과 나눔의 모든 경제 과정에 창조적으로 참여한다. 평생 가족 회원이 공동체를 떠날 때는 공동체에 일단 기부했던 재화는 되찾아 갈수 없다. 그건 이미 특정개인의 사유재산이 아니고 모두의 재산이거나 또는 누구의 재산도 이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서로의 약속이고 믿음의 출발점인 셈이다.
평생 가족과 공동생활 가족은 소정의 용돈을 지급받고 민들레학교 교사 등 직원 가족은 소정의 급료를 지급받는다. 공동체 소유의 동산 부동산, 모든 유가물에 대한 매입, 매각, 임대, 증여는 평생 가족회의의 협의를 거쳐서 집행한다. 설교, 강의, 노동, 판매의 대가로 외부에서 얻는 모든 돈은 공동체의 수입으로 보고 공동체 재정에 납부해야 한다. 다만 노동의 대가로 얻은 수입에 대하여는 노동을 제공한 각 해당 부서에서 지출에 대한 명목을 결정할 수 있다.
원칙적으로 공동체에 가입 하려는 회원의 부채는 공동체가 지지 않는다. 공동체가 부득이 하여 진 부채는 우선적으로 갚도록 한다. 또 할부나 부채를 지면서 하는 사업이나 물품 구입은 하지 않는다. 재산 증식을 목적으로 하는 저축은 하지 않는다. 다만 공동체의 장기적 사업과 재생산을 위해서 저축할 뿐이다.
민들레공동체는 돈이 없다. 돈 욕심도 없다. 돈으로 처리하려는 습관을 경계하여 돈의 영향력을 줄여 나간다. 직접 노동을 통한 생활양식을 개발한다.
공동체 생활의 기본은 '무소유'다. 내 것과 네 것의 구분은 분명히 있지만 이익을 좇아 살지 않고 더불어 함께 나누며 사는 게 민들레공동체에서 지향하는 무소유의 기본 개념이라고 한다.
‘생태마을’ 민들레공동체
우리나라에서는 민들레공동체와 같이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기존 자연마을에 들어가 그 마을을 기반으로 지역에 거점이나 네트워크를 모색하는 게 생태공동체마을 건설의 최적의 사례 또는 방법론으로 인식되고 있다.
시작부터 계획적으로 대체에너지, 생태건축 등의 대안적 기술을 적용해 체계적으로 마을을 디자인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마을에 혼자 살 때 보다 공동체 안에서 함께 영성을 개발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므로 종교에 기반한 영성공동체로서의 강점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민들레공동체는 생명평화결사 공동체위원장인 황대권씨를 비롯한 생태공동체 전문가들이 얘기하는 성공적인 공동체를 위한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무교회 농촌지역선교, 농촌인력개발, 귀농생태마을 건설 등의 뚜렷한 비전과 목표가 있다.
둘째, 정회원, 공동생활 가족, 마을 식구, 학교 교사 등 공동체 구성권 각자의 권한과 책임이 규약에 따라 명백히 설정되어 있다.
셋째, 예배, 식사, 농사, 학습, 해외봉사 등 공동체의식과 활동으로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있다.
넷째, 공동체의 재원으로 유학을 보내고 박사과정에 다니게 하는 등 구성원의 역량 강화를 위해 교육과 프로그램을 부단히 개발하고 있다.
다섯째, 대안에너지 및 대안기술, 스트로베일하우스 생태건축 등 생태적인 경관 및 디자인 으로 지속가능하고 인간적인 생태마을 계획을 실천하고 있다.
여섯째, 유기농 수도작 등으로 식량을 자급자족하고, 대안기술센터, 아트센터 등 소규모 자립형 생태비즈니스로 생태적이고 지속가능한 경제구조를 실천하고 있다.
일곱째, 외부 후원네트워크, 기부 등 공동체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 시스템이 공고하다.
여덟째, 서부경남이라는 지역에 기반을 두고 지역과 연대하고 지역에 봉사하는 지역네트워크가 구축돼있다.
아홉째, 캄보디아, 인도 등에 상주하며 대안학교, 유기농 농장 등을 설립, 운영하는 등 세계공동체 일원으로서의 국제 연대에 앞장 서고 있다.
바로 이같은 성공적인 공동체의 조건을 적지않게 갖추고 있다는 사실에서 민들레공동체의 현재가치와 미래비전을 엿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세계적으로도 생태공동체운동은 계속 확대, 확장, 증식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정부에서는 공동화, 황폐화되어가는 농촌지역의 회생을 위해 귀농인 유치 등 도시인구의 농촌지역 분산 정책에 열심이다. 민간 차원에서도 부적절한 생활환경에서 도시의 난민으로 살아온 도시인들 사이에는 보다 인간적인 생활터전으로 귀소하려는 본능과 요청이 집단적으로 또는 개별적으로 다양해지고 강해지고 있다.
민들레 공동체는 서부경남의 지역선교라는 개념과 차원에서 출발했지만 새로운 문화와 문명의 중심으로 다시 일어날 ‘살만한 세상’, 미래농촌의 청사진을 그리는 희망과 대안의 발전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사람들이 그토록 원하는‘사람사는 세상으로 가는 길’ 위에, 생명과 평화의 영성을 몸과 마음으로 깨닫고 익히는‘사람사는 농촌마을 속’에 민들레공동체는 분명히 살아 있다.
오래된미래마을http://cafe.daum.net/Econet
[출처] 잡지<마을>삼백75호 : 마을로 가는 길 1 -‘무소유’를 욕심내는, 산청 민들레공동체 (스트로베일 하우스) |작성자 정풀
2009/02/03 11:50
http://blog.naver.com/wccfood/20061318151 1991년에 시작한 민들레공동체는 경상남도 산청군에 위치한 기독교 공동체입니다. 민들레 공동체에서 하는 일은 농촌 교회 지원과 농촌지역사회 개발을 돕는 일, 예술 공방 운영을 통한 농촌문화운동, 대안기술센터를 통한 대안기술 보급, 제3세계 선교와 지역사회개발 프로젝트, 대안학교인 민들레학교운영 등입니다. 민들레의 의미 - 철학 [출처] 민들레 공동체 소개|작성자 세계사이버대학
<META http-equiv="Content-Language" content="ko">
아래 글은 민들레 공동체에 대한 자세한 소개입니다.
저희 민들레 공동체는 민들레를 좋아합니다. 서양에는 민들레를 잡초로 치부하기도 하지만 민들레는 참으로 놀라운 영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꽃입니다. 민들레는 첫째로, 소박한 꽃입니다. 노랗고 하얀 꽃이 필때는 아름답지만 그 꽃이 지고 나면 뭇 다른 풀과 다름없이 눈에 띄지 않는 모양입니다. 서민적이고 그래서 우리 온 국민의 정서에 닿아있는 꽃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우리도 민들레처럼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귀하게 생각합니다. 소비와 사치라는 타락한 자본주의의 흐름에 반대해서 직접 노동으로 의식주를 가능한 해결하고 손으로 만들고 길러서 삶을 일으키는 것이 기본이어야 된다는 원칙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소박하고 단순한 삶에 익숙치 않는다면 어떻게 어려운 아세아, 아프리카의 생존문제에 고생하는 사람을 설득력있게 섬기겠는가 하는 마음이 많습니다.
둘째로, 민들레는 뿌리깊은 식물입니다. 홀씨가 떨어지는 곳이 어디이든 그 뿌리를 깊게 내려 살아갑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우리의 마음의 뿌리를 깊이 내리고 (의인은 그 뿌리로 말미암아 결실 하느니라, 잠언 12:12), 삶의 여러 면에서 장인다운 습관을 배양하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마음의 뿌리, 일의 뿌리를 우리의 삶의 현장에 깊이 내려 복음에 부끄럼 없는 생활을 하자는 것이지요. 세 번째로, 민들레 홀씨는 바람이 부는 대로 이끌려 번식하는 놀라운 선교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식물 중에서 민들레만큼 빨리 꽃이 피고, 열매 맻는 식물도 흔치 않을 겁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예수 믿고 가장 효과적인 삶으로 선교의 재생산을 이루는 전략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특히 국내외 오지 선교에 일차적인 관심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저희 공동체는 민들레와 같이 단순하고 소박한 삶, 뿌리깊은 영성과 삶의 훈련, 선교적 삶을 지향하면서 지내왔습니다.
해외사역
2000년에 캄보디아에 김기대 선교사가 파송되어 타께오 지역에 <꿈과 미래학교(School of Dream and Future)>를 세워 16세에서 22세 사이의 교육혜택을 받지 못한 청년들을 1년 단기과정 직업훈련 지도자 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학생, 스텝 80여명) 그리고 수도 프놈펜에 대학생 기숙사도 운영(20여명)하여 미래의 캄보디아 지도자를 준비하고 있으며, CHE(Community Health Education)프로그램을 통해 가난한 4개의 농촌마을에 매우 성공적인 지역사회개발 프로그램을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우리가 세운 <캄보디아의 이웃(Neighbor of Cambodia, NOC)>이라는 비정부 기구(NGO)를 통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캄보디아에 진행하고 있는 새 프로젝트는 약 10Km의 농업/교통용 운하건설과, 2009년 개교예정인 Edu-Eco-Mission 개념의 대학입니다. 현재 약 3만평의 부지위에 대학을 위한 기반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농업, 지역사회와 농촌개발, 그리고 국제기구와 비정부기구 전문과정을 개설할 예정입니다. 민들레 공동체는 또한 미얀마 오지 농촌교회를 우물을 파 주는 프로젝트인 오아시스 프로젝트로 후원했습니다.
캄보디아와 더불어 가장 큰 해외 프로젝트 중 하나는 인도 북동쪽의 나가랜드(Nagaland)의 랭마부족(Rengma)과의 협력사역입니다. 나가랜드는 인도의 북동쪽에 위치해 있으면서 인근의 인도와 미얀마, 네팔, 부탄, 티벳 등 힌두교, 무슬림, 불교가 가장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미전도 족속의 중심에 위치해 있는 곳인데 놀랍게도 성령의 놀라운 임재로 세 차례의 부흥을 경험하여, 인구 90%이상이 신자화된 곳입니다. 이들의 선교적 역할을 지원하기 위하여 지도자개발원(LDI - Leadership Development Institute)를 건립, 농촌선교사 훈련, 농촌 및 지역사회 개발 훈련 및 청년을 위한 직업훈련이라는 다목적의 교육을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내 초청 및 선교지와의 사역자 파송 등도 활발한 인력교류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한국 낙농 농가에서 숫송아지 한마리 값을 기증해 현지에서 암소를 구입해 키우게 해 빈곤타파에 도움이 되게하는 낙농프로젝트와 고아들을 위한 어린이집 건립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해외 농촌 선교사역에서, 우리는 이미 국내에서 다양한 농촌선교를 경험했기 때문에 효과적인 성과를 볼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민들레 아트센터
공동체가 운영하는 민들레 아트센터(www.dandelionart.com)는 야생초와 잎새를 찍어서 만든 다양한 생활용품 (손수건, 다포, 주머니, 가방, 커텐, 방석 등)을 개발하였고 현대인의 감각에 맞는 목판화 그리고 투에 제작 등도 진행 중입니다. 이런 예술문화사업은 향후 우리의 농촌 문화를 지켜 나가고 사람들에게 친 환경적인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가 될 것입니다.
대안기술센터
민들레공동체는 또한 '대안기술센터(Alternative Technology Centre)'를 설립하여 대안적인 삶의 기반이 될 수 있는 각종 기술을 연구하고 보급하는데 힘쓰고 있습니다. 시작단계인 대안기술센터는 현재 볕단집 건축, 바이오디젤, 풍력발전 등의 기술과 개념 워크샾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대안기술센터는 영국에서 '적정기술'을 훈련받은 이동근 형제 가정을 통해 운영되는데, 이 센터를 통하여 장차 제3 세계 지역사회개발 기술 자문 역할도 기대됩니다.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이란 선진국의 하이테크놀로지와 아세아 농촌지역의 열악한 기술 (토착기술, 농촌기술, 전통기술)을 상호보완하는 기술로써 가난한 사람을 살리는 기술 환경과 공동체를 파괴하지 않고, 자본의 종이 되지 않고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기술의 한 유형입니다. 앞으로 대안기술센터를 통하여 적정기술을 국내외 농촌사역자에게 연수시키고 보급하여 돈이 중심이 되는 사역이 아니라 사람과 환경을 중심으로 하는 지속가능한 사역을 해야겠다는 소망입니다.
민들레학교
민들레공동체는 오랫동안 대안학교를 꿈꿔 왔으며, 2007년 개교 민들레학교(Dandelion School)을 설립하였습니다. 이 학교를 통하여 자라나는 이 땅의 청소년들로 하여금 농촌을 사랑하고 대안적 삶을 살도록 훈련시킬 계획입니다. 2007년 중등 과정의 대안학교를 시작하는데, 무엇보다 ‘가난한 자를 섬기는 교육’이라는 기본 목적에 집중할 예정입니다. 대안학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보기 원하시면 홈페이지를 방문하시면 됩니다. (http://dandelionschool.net)
제3세계 농촌지도자 양성소 설립
민들레 공동체의 장기적 비전은 공동체 내에 국내외 농촌사역자를 길러내는 훈련센터를 두는 일입니다. 그동안은 공동체의 삶의 일부로써 이 일을 해 왔지만 이제는 점증하는 국내외 농촌선교인력의 요청으로 집중적인 훈련 및 교육의 필요를 절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영어로 강의할 수 있는 교수 요원 최소 5명 확보와 지역사회 개발 및 친환경농법 및 적정기술을 중심으로 한 지역 활성화 전략을 가르치고 무엇보다 개척선교와 다양한 현장 중심의 훈련을 통해 능력 있는 농촌 선교 인력을 키우는 방안입니다. 최근 일본 아시아학원 (ARI-Asian Rural Institute)와의 협력이 모색되면서 이 계획이 가시화 되고 있습니다.
민들레 공동체의 시작 : 1. 서부경남의 현황
민들레공동체를 소개하면 아무래도 서부경남 지역의 영적 현황을 먼저 소개해야 될 것 같습니다. 저희 공동체는 서부경남의 특수한 상황에서 시작된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서부경남은 진주시, 사천시, 산청, 함양, 거창, 합천, 의령, 남해, 고성, 하동을 포함하는 2개시 8개군을 뜻합니다. 마산, 창원의 중부경남, 울산 쪽의 동부경남에 비해 그 면적은 경남 전체의 절반이 넘는 52%를 차지하지만 전통적으로 농촌지역이며, 유교, 불교, 샤머니즘의 영향이 큰 곳이고, 기독교의 교세가 미약한 지역입니다.
산청의 남명 조식, 합천의 문림 주세붕, 함양의 최치원 등 유림(儒林)들의 근거지이기도 했고 합천 해인사, 사천 다솔사, 산청 대원사 등 유명 사찰도 많으며, 지리산, 섬진강을 중심으로 많은 무속인들이 활동한 지역이기도 합니다.우리나라 농촌의 단 곳도 비슷한 형편이겠습니다만 보통 남자들은 유교를 숭상하고 여자들은 불도(불교)를 합니다. 그러다가 집안에 액운이 생기면 무당을 부르니 유,불,샤머니즘이 잘 협력하는 체제입니다. 그러다 복음을 전하게 되면 합동해서 반대하는 곳이 이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동안 이 서부경남은 하나님의 은혜로 진주를 중심으로 기독교 사역이 확장되어 왔고 군 단위 농촌지역에도 웬만한 곳은 교회가 건립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전체 복음화율은 전국 최하위 지역입니다. 몇 해전 한국 컴퓨터 선교회에서 우리나라 복음화 지도를 제작한 적이 있는데 이 지도에서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서부경남이 가장 복음화가 낮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형편에서 농촌과 지역을 섬기라고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민들레 공동체의 시작 : 2. 부르심
1986년 2월 한 농촌마을에 전도를 나갔다가 학교 선생님께 쫓겨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한 아이가 “그러면 나루터에서 모이면 되잖아요” 라고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농촌선교의 길을 걷게 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알기 원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우리는 가야하고, 성경을 배우기 원하는 한 아이라도 있으면, 천리길을 가야한다는 결심으로 그때 이후 서부경남 무교회 지역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노천성경학교를 열었습니다. 교회 없는 마을에 찾아가서 비가 오면 학교 처마 밑에서, 햇빛이 강할 때는 나무그늘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는 사역이였습니다. 1년이 지나자 14곳의 무교회 마을 지역에 청년, 대학생들이 파송되어 일하게 되었고, 1988년에는 서부경남 복음화를 위한 서부경남 선교동지회라는 단체를 결성, 제가 실무 간사 일을 맡으면서 본격적인 교회개척 사역을 했습니다. 그리고 1991년에는 공동체적 생활양식으로 선교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민들레 공동체를 시작했습니다.
민들레 공동체의 시작 : 3. 교회개척
1988년 최초로 개척된 교회는 진주 (당시 진양군) 단목교회였는데 그때만 해도 단목마을은 마을에 교회 없는 게 자랑인 마을이였습니다. 사실 교회다니는 사람들은 병들고, 망하고, 오고 갈 때 없는 사람이 믿는 한심한(?) 종교로 인식되어있던 마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완고한 마을에 교회를 설립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이런 생각을 주셨습니다. “단목마을에 교회 개척했으니 이제 우리나라에 교회 못 세울 마을 없겠다” 는 자신감과 감격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초창기 사역은 우선 서부경남 무교회 지역에 교회를 세우는 일에 집중되었습니다. 그것이 저희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사역이었습니다. 그래서 노천 성경학교 뿐만 아니라 전도자가 무교회 마을에 살러 들어가서 섬김으로 예수 믿는게 무엇인지 보여주는 한시 선교를 하기도 하고 순회전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서부경남 무교회지역에 세운 교회가 20개 (단목, 미천, 상미, 집현, 대곡평안, 한실, 본촌, 외율, 세간, 성태, 월광, 곤명, 민들레, 용계리, 자연, 지리산평화, 양보제일, 월운, 고이반석, 술상)입니다.
오늘도 땅 찾으러 시골을 헤맨다.
예배당 자리 하나 얻기 위해
빈 집을 훑고 논과 밭도 훑고 골자기도 훑어본다.
개척교회 하나 하자는데 왜 땅이 뵈지 않을까?
나의 유익, 나의 안락, 나의 영광이 아니고
주님 그분께 기쁨이 되고자 하는데 왜 땅이 열리지 않을까?
땅의 세력이구나!
돈의 세력이구나!
사람의 세력이구나!
길 닿는 곳마다 치밀하고 완강해서
주님 임재의 발끝 머물기도 황송하게 되어버린 땅들
아아!
언제 물이 바다를 덮듯 주님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꼬
언제 이 땅이 그 영광으로 인하여 빛날꼬! (김인수 “땅찾기”)
민들레 공동체의 시작 : 4. 농촌교회 협력사역
그러면서 농촌의 문제는 단지 영혼구원과 교회건립의 문제가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 구조문제가 있음을 인식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김채룡 목사님, 최병칠 박사님, 김영원 장로님 같은 분을 모셔서 유기농업의 필요성도 보급하고, 또 농민들에게 생명농업을 권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농촌목회자, 농민들을 대상으로 농촌 선교 세미나를 개최해서 농촌선교를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다방면의 접근도 시도했습니다. 오래하진 못했지만 농산물 유통도 시도해 보았고, 농촌교회를 중심으로 농촌 활성화할 수 있는 여러 프로그램도 가져 보았습니다.
교회 개척 사역부터 했지만 기존의 농촌교회가 가진 고충도 감당해야만 되었습니다. 알다시피 농촌교회는 경제적 부족, 자녀교육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 목회자 자신의 소명의식과 자기 성장 기회가 도시교회 목회자보다 현저하게 모자라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 농촌상황은 국제무역의 냉혹한 도전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고 이제는 지을 농사도 없게 된 형편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슴 아픈 것은 농민의 의식도 상업화와 경쟁의식으로 피폐해지고 “농촌 사람이 더 하더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되었습니다. 이제 한국 농촌은 영적인 피폐뿐만 아니라 농토의 오염, 농심의 타락 등 그야말로 총체적인 위기를 맞게 된 셈입니다.
민들레 공동체의 시작 : 5. 인재양성
이런 와중에서 민들레 공동체가 끊임없이 관심 갖고 도전한 일은 새로운 인재를 길러야만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러한 한계 상황을 극복할 의식있는 농민, 농촌목회자, 농촌 선교사를 길러낼 수만 있다면 소망이 있지 않겠나 하는 것이엇지요. 그래서 경상대학교 농대 학생들을 모아서 ‘민들레 선교회’를 조직, 이들을 통해 지역농촌을 되살리는 운동을 하기로 했으며, 이 모임이 민들레공동체를 설립하게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문명의 중심으로서의 농촌
농촌은 단지 죽어 가는 영혼을 구원하는 영적인 의미만 있는 곳이 아닙니다. 농촌에서 더불어 살아가며 일구어 낼 수 있는 우리 삶의 회복과 진정한 문화의 보금자리입니다. 사람 몸에서 나오는 똥과 오줌이 하천으로 흘러 들어가면 오염이 되지만, 똥과 오줌이 흙으로 들어가게 되면 좋은 퇴비가 되어 땅도 살리고 작물도 키워내듯 오늘 도시에서의 모든 사회병리적인 현상들은 도시 자체만으로는 해결 할 수 없다고 봅니다. 그것은 어머니 품과 같은 농촌에서 끌어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최소한 도시를 위해서라도 농촌을 살려야 합니다.
농촌은 진정한 문화의 요람이 되어왔고, 또 그러한 문화의 새로운 출발지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제가 몇 해 전에 인도의 한 농과대학에 갔을 때 그 대학 정문에서 참으로 인상적인 구절을 보게 되었습니다. “농업 없이는(농업이란 Agri+Culture)진정한 문화란 존재할 수 없다” (No culture, without agriculture)는 구절이 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땅과 밀접하지 못한 모든 문화는 단명합니다. 그것이 일시적으로 아무리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다손 치더라도 뿌리 깊은 문화적 충족감은 땅과 농촌에서 줄 수 있을 겁니다. 땅과 농촌은 생명을 키우는 곳이고, 땀 흘리는 곳이며, 자연 재해와 힘든 일에 맞서 협동하는 곳이고, 대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우리의 영성을 살찌우고 참된 인간으로 자랄 수 있도록 해주는 토양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태적으로 헌신한 많은 분들이 농촌을 농촌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을 보십시오. 이 사회가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절실히 느끼는 분들이 농촌에서 대안학교, 대안사회운동을 꿈꾸고 일하는 것을 보십시오. 이제 농촌에서 새로운 문화, 새로운 삶, 새로운 인간상이 일어나야 할 때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 일을 농촌교회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우리의 신학적 지평이 넓어져야 합니다. 영혼 구원뿐만 아니라 사회적 구원, 생태적 구원을 포함한 전인적인 구원에 성경적, 실천적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농촌에서 구원의 풍성한 은혜를 맛보고, 새로운 세대를 일으키는 희망 가운데 살아 갈 수 있을 겁니다.
이러한 농촌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이러한 농촌사역을 통해 도시를 돕고 새로운 시대를 열기 원하는 사람들이 농촌으로 들어와서 돈의 세력과 싸우고, 이 세상의 탐욕의 정신과 대결하면서 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민들레 공동체는 지역선교라는 개념에서부터 시작했지만 해외 농촌선교, 그리고 앞으로 농촌을 중심으로 새롭게 일어날 ‘살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하는 곳입니다.
민들레공동체 : 경남 산청군 신안면 갈전리 42번지
www.dandelion.or.kr 전화 : 055-973-6813 / 016-389-5804
후원 : 농협 818-12-043364, 우체국 610543-02-003226 김인수
이 단단한 2층집이 '초가집'이라고?
경남 산청 '민들레공동체', 6동 지어... 이동근 교사 앞장
07.07.18 08:21 ㅣ최종 업데이트 07.07.18 12:16
윤성효 (cjnews)
▲ 볏짚으로 만든 집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경남 산청군 신안면 갈전리에는 2층으로 된 2동을 포함해 6동이 스트로베일 하우스로 지어졌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 대안학교인 '민들레학교'의 3동 건물도 모두 볏집으로 지어졌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볏짚으로 만든 집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초가가 아니다. '스트로베일(Strawbale) 하우스'라 하는데, 육면체로 압축한 볏짚으로 만든 집을 말한다.
2005년 4월 강원도 영월 동강 제장마을에 이웅희·홍순천씨가 지은 '동강사랑'이란 집이 우리나라의 첫 스트로베일 하우스였다. 그 뒤 현재까지 전국에 20여채가 지어졌다.
경남 산청 신안면 갈전리에는 6채가 지어졌는데, 전국에서 스트로베일 하우스가 가장 많이 들어선 마을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 단층이지만 이 마을에는 벌써 2채가 2층으로 되어 있다. 볏짚으로 2층 집까지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이 마을에 이런 형태의 집이 들어서기 시작한 때는 2006년부터. '민들레공동체(대표 김인수)'에 살며 대안학교인 '민들레학교'에서 <생화과학>을 가르치고 있는 이동근 교사를 중심으로 짓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2층으로 된 가정집 1동이 지어졌고 1동은 거의 다 지어졌으며, '민들레 학교' 건물 3동과 공동체 사무실 1동도 모두 이 형태의 집이다. 이 교사는 영국에서 '생태주택(환경건축)'과 재생에너지를 공부해 이 분야의 석사학위를 갖고 있다.
▲ 볏짚으로 짓는 2층 집이 거의 다 완성돼 가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아토피도 숙취도 없애는 집
▲ 볏짚으로 짓는 집에 앞장서고 있는 이동근 민들레학교 교사.
ⓒ 오마이뉴스 윤성효
그는 스트로베일 하우스의 전도사가 되었다. 그는 "집이 물에 잠기기 쉬운 곳에는 지으면 안 된다는 것이 유일한 단점"이라며 자랑했다. 이 집을 지으면 환경오염 물질이 들어가지 않기에 새집증후군도 없앤다고 그는 강조.
이 교사가 밝힌 이 집의 장점은 여러 가지. 음식냄새가 배지 않고, 아토피 증상을 씻어낼 수 있으며, 과음한 다음 날 아침에도 개운하게 잠을 깼다는 것. 또 계속해서 집을 지을 재료가 나오고, 벽돌·시멘트집에 비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절반으로 줄어들어 지구온난화를 방지할 수 있다고.
단열도 기존 단열재에 비해 두세 배 뛰어나다고. 그는 "건축비도 기존 건축에 비해 30% 정도 싸게 지을 수 있다"면서 "25년 사용했다고 할 경우 벽돌집과 비교해 보면 냉·난방비를 무려 70% 정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방음도 뛰어나다. 미국의 공항 활주로 주변 건물이나 유럽의 고속도로 방음벽으로 볏짚으로 짓기도 한다는 것. 그는 "불이 나면 어떻게 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은데, 볏짚이 압축되어 있어 흙을 바르지 않고 노출시켜 놓더라도 산소가 없어 불에 타지 않는다"고 설명.
자료에 의하면, 미국 소방안전테스트 결과 스트로베일 하우스의 벽은 1012℃의 열로 2시간 넘도록 가열해도 전혀 불이 붙지 않았다고 한다. 화재의 취약성 또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
또 그는 "짚이라 쥐나 벌레가 들어오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짚 사이에 철망을 넣기에 쥐가 들어올 수 없고, 황토로 마감할 때 석회를 사용하기에 벌레가 침투할 수 없어 방충 역할까지 한다"고 말했다.
그는 "콘크리트 집의 수명은 30년 안팎인데 이 집은 120년이다"며 "태풍이나 바람이 많이 불더라도 문제가 없고, 한번 시공하고 나면 볏짚을 교체해 주지 않아도 되며, 우리나라 기후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
▲ 볏짚으로 지어진 민들레학교의 일부다. 흙으로 된 지붕에 크로바가 자라면서 파란 색깔을 띠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불에 타는 집? 벌레 오는 집? 에이, 아니죠"
▲ 민들레학교 교실의 내부다. 벽의 한 부분에는 책꽂이를 설치해 놓았는데 황토흙을 바르지 않고 짚이 그대로 보이도록 해놓았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단점을 물었더니 한 가지 언급했다. 집이 물에 잠기거나 벽이 물에 흠뻑 젖을 경우 볏짚이 썩게 될 우려가 있다는 것. 그래서 홍수가 나거나 침수가 잦은 곳에는 지을 수 없는 집이다.
이동근 교사는 "한번 살아본 사람들은 또 이런 집을 짓고 싶어 한다"고 자랑했다. "집을 방문했던 사람 중에 호흡기가 좋지 않아 재채기를 계속했는데 집에 들어와 조금 있으니 멈춰버리는 것을 보고 정말 좋은 집이라고 여기기도 했다"며 "직장 은퇴 뒤에 살고 싶은 집으로 지어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그러면 스트로베일 하우스는 어떻게 지을까. 볏짚은 특별하지 않고 흔히 우리 농촌에서 쉽게 얻을 수 있다. 대개 벽돌이거나 시멘트집은 벽 두께가 20~30㎝ 정도인데 이 집은 45㎝ 이상이다. 그래서 집 공간이 많이 필요하다.
도시에도 이런 집을 지을 수 있는데, 벽이 두껍다보니 평수를 많이 차지하게 된다. 이 교사는 "집 내부 공간이 좁아지다 보니 서민들과 거리가 멀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것만 아니다"며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문제가 안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의 생활습관이 평소 쓰지 않는 물건까지 다 비치해 두고 쓰기에 꼭 필요한 물건만 놓고 쓴다면 공간을 넓게 쓸 수 있다"고 설명.
▲ 민들레학교의 볏짚으로 된 집과 풀이 난 지붕, 그리고 가운데 조성된 화단의 모습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흙으로 덮어 잔디·크로바 심은 지붕
▲ '민들레공동체'의 사무실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도 볏짚으로 지어졌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이런 집은 지붕도 독특하다. 재료가 흙이다. 여름철에 보면 지붕에 파란 풀이 나 있다. 대개 잔디나 크로바를 심는다. 일반 흙을 사용하는데 잡풀을 없애기 위해 구워서 사용하기도 한다.
장마 때는 흙이 씻겨 갈 수 있고 바람이 많이 불면 날아가버릴 수도 있다. 이를 막기 위해 나무를 바둑판처럼 격자로 짜서 중간에 넣어 고정시키기도 하는 등 방법이 있다.
현재까지 대개 이런 집은 단층 내지 2층 정도로 짓고 있는데, 이 교사는 빌딩도 지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는 "2층까지 지을 경우 기둥이 없이 볏짚으로만 벽을 만들어 짓는데, 빌딩을 지을 경우에는 기둥만 콘크리트로 한 뒤 기둥 사이에 볏짚을 채워 넣는다면 튼튼하게 지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집이라고 해서 기존 건축방식과 공사기간에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 "건축법상 특별한 문제는 없다, 미국 텍사스주의 경우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도입할 필요성이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좀 더 과학적이고 납득할만한 자료 축적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과 유럽, 심지어 중국에서도 '볏짚으로 만든 집'에 대한 관심은 높다"면서 "이 집은 자연환경을 생각하면서 주택기능도 뛰어나다, 건강하고 생태적인 주거를 원하는 사람들한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경남 산청군 신안면 갈전리에 있는 볏짚으로 지어진 집이 논과 산과 같은 색이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첫댓글 정말 멋진 분들이 많으시네요. 배워야 할 것 들도 너무나 많고요.... 끊임없이 공부하는 공동체 선배님들.... 행복합니다.
예전엔 그저 좋아보였는데 이젠 이런 저런 고민을 하게되네요. 햇살님 말처럼 공부를 해야합니다.
대단합니다. 존경스럽기도 하고 질투가 나기도 합니다.
큰 꿈을 꾸는 것도 버겁지만, 그 꿈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버려야 하니 더 버겁습니다. 지금은 버리는데 집중해야 할 시기..... 그냥 혼자 생각입니다.^^
ㅎㅎ 질투가 날 것까진 없지요. 서서히 배워가면 되지요. 일도 철학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