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다이제스트] 올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2승을 거두고 리우 올림픽에서 공동 4위에 오른 노무라 하루를 만났다. 한국과 일본의 문화를 모두 이해하고 양국의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줄 아는 노무라에게 국적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골프 선수로서 소임만 다할 뿐이다.
내 이름은 ‘노무라 하루쿄(野村 敏京)’다. 한국 이름은 ‘문민경’. 모두 내 이름을 ‘노무라 하루’로 알고 있지만 실은 그건 ‘플레잉 네임’이다. 처음 미국에 건너갔을 때 ‘하루쿄’라고 정확히 발음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그래서 그냥 ‘쿄’를 빼고 ‘하루’라고 쓰기 시작했다. ‘하루쿄’라는 이름은 한자로 ‘민경’이다. 일본에서는 흔히 남자 이름에 사용하는 한자인데 그건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 내가 아들인 줄 알고 지은 이름이라고 했다. 요즘도 이름만 보면 다들 남자인 줄 안다. 웃긴 건 내가 사내아이로 태어났어도 내 한국 이름은 ‘민경’이었을 거라는 거다. 굉장히 특이한 이름이다.
나는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요코하마에서 다섯 살 때까지 살았다. 물론 그때는 일본어만 할 줄 알았다. 그러다가 한국에서 초등학교에 다니게 됐다. 한국이 어머니의 나라니까 당연히 한국어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명지중학교를 거쳐 명지고등학교까지 모두 한국에서 학교를 나왔다.
가끔 나에게 정체성의 혼란이 없었는지 물어오곤 한다. 아주 어릴 때는 살짝 혼란을 겪기도 했지만, 지금은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다. 나는 국적을 선택하기 위해 골프를 하는 것이 아니다. 운동선수이기 때문에 그냥 골프에 집중하면 된다. 당시의 내 생각이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요즘 올림픽을 비롯한 국가대항전이 자주 열리고 있지만 나는 국가를 대표한다기보다 하나의 팀 대항전을 갖는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냥 골프 선수들이 팀을 나눠서 하는 또 하나의 대회에 참가하는 것뿐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골프를 접했는데 그건 순전히 외할머니의 영향이었다. 하루는 외할머니와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는데 (박)세리 언니가 광고에 출연한 영상이 흘러나왔다. 그동안 표면적으로는 할머니의 권유로 골프를 시작한 것이라고 말해왔지만 사실 내 눈에도 골프가 재미있고 근사해 보였다. 친구들과 여름에는 잠자리 잡으러 돌아다니고 겨울에 눈 오면 옥상에서 눈싸움하며 뛰어놀던 아이가 골프에 대해 뭘 알았을까 싶다. 친구들이랑 놀 때도 축구를 할 정도로 에너지가 넘쳤다. 막상 할머니도 활발한 성격을 가진 손녀가 골프를 잘해낼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가졌던 것 같다.
언제든지 골프를 그만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나이까지 할머니는 지켜보기만 했다. 내가 선수를 해도 될 만큼 끈기를 갖추고 있는지 내내 관찰한 것이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이 됐을 때 스스로 골프 선수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평소에도 좋아하는 것만큼은 끈기 있게 밀고 나간다. 당시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에서는 미야자토 아이가 고등학생 신분으로 프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인기를 끌었다. 나도 그와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부모님은 언제나 ‘네가 좋으면 괜찮다’라는 교육 철학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골프도 골프지만 공부를 하는 것도 좋아했다. 골프를 하기 전에 꿈이 과학자였을 만큼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다. 특히 지구과학을 통해 지구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는 게 재미있었다. 수학이나 과학은 뭐든지 딱 떨어지고 답이 있어서 좋다. 반대로 골프는 정답은 없지만, 원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새로운 스킬을 배울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평소 내 스윙을 보지 않는다. 동영상으로 내 스윙을 본 지 1년이 넘은 것 같다. 영상을 통해 분석하는게 아니라 직접 스윙을 하면서 머리로 분석한다. 원리를 이해하면 언제나 그 안에 길이 보인다.
골프는 정답이 없고 한계가 없다. 근사치까지는 갈 수 있지만 완벽한 골프를 선보인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72라는 핸디캡을 가지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진짜 완벽하고 빈틈없는 골프를 하면 18언더파가 나와야겠지만 매일 그 스코어를 기록할 수는 없다. 그래서 항상 더 높은 확률을 찾는 게 중요하다.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는 말이다.
코스는 아무리 분석해도 분석되는 게 아니다. 그날의 컨디션도 다르고 핀 위치도 바뀌고 바람도 매일 달라지는데 그걸 분석한다고 해서 정확하게 알 순 없는 노릇이다. 코스나 상황에 맞춰 샷을 구사하는 연습을 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이때는 치고 빠지는 요령이 필요하다. 라운드 도중에는 여러 유형의 기회나 위기가 찾아온다. 기회는 반드시 잡아야겠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과감하게 스코어를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무리하게 플레이하면 남은 홀은 물론 남은 라운드에도 지장을 초래한다. 과감히 버릴 줄도 알아야 다음에 기회가 왔을 때 마음을 다잡은 상태에서 맞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