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養浩堂 禹玄寶 선생은 포은 정선생, 목은 이선생과 함께 려말을 장식한 충신이요 대학자였다. 역동선생 문희공 禹倬의 孫이요 적성군 吉生의 아들이기도 한 양호당은 강명충직(剛明忠直)한 바탕에 전아정수(典雅精遂)한 學問을 곁들여 고려말기의 왕조를 역사(歷事)하면서 대사헌, 정당문학,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등 현관대직(顯官大職)을 두루 거치고 순충익재좌이공신(純忠翊載佐理功臣) 단양부원군에 봉해지기도 하였다.
고려가 망하자 선생은'거국계찰 종신가효(去國季札 終身可效)'라고 써서 자정(自靖)의 뜻을 표하였고 [맥미가 麥薇歌]를 지어 서리지정(黍離之情)과 이제지심(夷濟之心)을 노래하기도 했으며 만년에는 장단(長湍) 금곡(金谷)으로 낙향하여 독락당을 짓고 두문정생(杜門靜生)으로 여생을 마치었다 이러한 절의와 학덕을 겸비한 훌륭한 선생이 장구한 세월 동안 거의 일장(一張)의 사서(史書) 속에 묻혀 있었다는 것은 국가 충효사상 앙양면(昻揚面)에서 보더라도 너무나 흠사(欠事)아닐 수 없다
비록 만시지탄(晩時之歎)은 있을 지라고 유지제언(有志諸彦)이 양호당기념사업회를 결성하고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중세사료강독 모임에 의뢰하여 이러한 양서를 출판한 것은 물질일변도로 가고있는 작금의 국민정서와 가치관을 바꿔 놓은데도 하나의 촉매(觸媒) 역할을 할것임이 틀림없다 앞으로 이 사업회의 무궁한 발전을 진심으로 기망(冀望)하는 바이다
단기 4330년 丁丑 5월 일 성균관장 崔 根 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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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禾 요런 글자 보셨나요?, 아래 위가 한자입니다
氺
부수와 비슷한 음한자, 그리고 총 10획짜리 한자 2,205개를 찾아보았으나 없습니다
위 문장중 "0離之情"의 빠진 한자입니다
黍離之歎 서리지탄(부귀영화의 무상함) 할때 기장 서 자 같습니다. 약간생긴게 다르네요.
黍離之歎(서리지탄)!!!
울 조카님 천재다!!!!
한문의 획수가 두개가 빠졌는데, 아마도 인쇄과정에 다른 한자를 쓴듯........뜻이 일맥상통한것으로 보아
맞는 한자인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