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답사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 유홍준교수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7편 제주편이 발간되었다.
그동안 제주도를 안방 드나들듯 수없이 갔어도 고작 관광지 몇군데 둘러볼뿐 이젠 먹고 자는것 밖에 할 수 있는게 없다라고 느낄즈음 유홍준교수님의 책은 가뭄에 단비 만난듯 싶었다.
세상에 제주에 이런곳이 있었다니.......그동안의 무지를 책망하며 답사기책 한권 그리고 카메라만 달랑들고 2박3일 제주를 향하여 떠났다.
제주공항에 내릴때면 늘 우리땅이면서도 왠지 이국적인 느낌을 받는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이제 어디로 갈까 고민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책을 읽으며 2박3일간의 코스를 스케줄로 만들어 갔기 때문이다.
랜트한 차를 타고 제일 처음 목적지인 "삼성혈"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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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혈은 제주도 사람의 전설적인 발상지이다.
삼신인 [三神人 : 고을나(高乙那). 양을나(良乙那)①. 부을나(夫乙那)]이
이곳에서 동시에 태어나 수렵생활을 하다가 우마(牛馬)와 오곡의 종자를 가지고 온 벽랑국 3공주를 맞이하면서부터 농경생활이 비롯되었으며 탐라왕국으로 발전하였다고 전한다.
특히, 이 세개의 지혈은 주위가 수백년된 고목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모든 나뭇가지들이 혈을 향하여
경배하듯이 신비한 자태를 취하고 있다. 또한 아무리 비가 많이 오거나 눈이 내려도 일년내내 고이거나 쌓이는 일이 없는 성혈로서 이곳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하고 있다.
조선중종 21년(1526) 목사 이수동이 처음 표단과 홍문을 세우고 담장을 쌓아 춘추봉제를 하기 시작한 이래 역대 목사에 의하여 성역화 사업이 이루어졌고 현재에도 매년 춘ㆍ추제 및 건시대제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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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삼성혈 관련 유적지 모형물 및 유물 전시와 영상실이 갖춰져 있고, 영상실에서는 탐라국이 어떻게 세워졌는지 영상을 통하여 관람할 수 있도록 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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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혈에는 곰솔이 참 많다.
제주공항 근처에 이렇게 아름다운곳이 있는줄 어찌 알았으랴...
새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그 먼옛날 탐라국의 발자취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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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에는 지금부터 4300여년 전 탐라를 창시한 삼을나의 위폐가 봉안된 묘사이다. 신라에 입조했는 성주, 왕자, 도내 삼고씨가 우측에 배향되어 있다. 조선조 숙종 24년(1698)에 건립한 후 수차 중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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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사(三姓祠) 참배자들이 분향(焚香)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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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청
제향(祭享)에 관한 일을 맡아보는 집으로서 조선조 순조 27년(1872년) 세워진 후 몇차례 이건(移建) 중수(重修)하였으며 2000년 9월에 중건(重建)하였다. 해마다 봄(4월 10일)과 가을(10월 10일)에 춘추대제와 12월 10일에 건시대제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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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혈
지금으로부터 약 4,300여년전 제주도의 개벽시조이신 삼을나 세분이 태어나신 곳으로 벼슬품(品)자 모양으로 되어 있으며 비가 와도 빗물이 고이지 않고 눈이 내려도 혈내에는 눈이 쌓이지 않는 곳이다. 또한 주위의 나무들이 혈을 중심으로 모두 수그러져 있어 신비로움을 자아내고 있다. 성혈 주변에 경계선으로 삼는 담이 있어서 정작 혈자리는 보지 못했다.
사실 구멍에 물이 고이지 않는것은 제주 화산지역의 한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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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혈 주변에는 수령 500년 이상의 노송들과 녹나무, 조록나무 등 수십종의 고목이 울창하게 서 있어 전설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으며 이 노목들이 삼성혈을 향하여 신하가 읍하듯이 수그러져 있다.
무릇 나무가 혈쪽으로 향하는 것은 식물의 향일성 때문이지만 그것이 삼성혈 전설과 어울리리 그 또한 그럴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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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는 45기의 오리지널 돌하르방이 있는데 삼성혈 입구에 2기가 서있다.
표정이 무척이나 익살수럽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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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혈 홍살문
홍살문은 궁전, 관청, 능, 묘 따위의 앞에 세우던 붉은 칠을 한 문으로 이곳에도 어김 없이 홍살문이 놓여졌다.
홍살문을 넘어 서면 정숙한 영역으로 들어 가는것이기 때문에 엄숙함을 유지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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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혈 안에 들어가면 숭보당이 있는데 숭보당은 존선조 헌종 15년(1849)년에 세워졌고 뛰어난 선비를 두어 명학하던 곳이다.
내가 갔었들당시 어느 학교인지 모르겠지만 고사리만한 초등학생들이 와글와글 공부를 하고 있어서 행여나 방해가 될까 싶어 슬그머니 지나쳐 왔다.
삼성혈과 관계가 있는 사적으로는 연혼포, 혼인지, 사시장올악, 삼사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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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혼포는 동해의 벽랑국에서 오곡의 종자와 가축을 가지고 온 삼공주를 맞이했던 해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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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지는 삼신인이 벽랑국 삼공주와 혼례를 위하여 목욕재개한 연못이며, 신방굴은 혼례 후 첫날밤을 치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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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장올악은 삼심인이 도읍(주거지)을 정하려고 활을 쏘은 봉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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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사석은 삼신인이 도읍을 정할 때 쏜 화살이 박혔던 돌이다. 제주를 일도, 이도, 삼도로 정하여 다스렸다.
三姓穴 神話 (삼성혈의 신화)
탐라에는 태초에 사람이 없었다.
옛 기록(동문선, 고려사, 영주지)에 이르기를 기이하게 빼어난 산이 있는데 한라산이라 한다. 구름과 바다가 아득한 위에 완연히 있는데 그 主山(주산)인 한라산이 그의 신령한 화기를 내리어 북쪽 기슭에 있는 모흥이라는 곳에 三神人(삼신인)을 同時(동시)에 탄강 시켰으니 지금으로부터 약 4,300여년 전의 일이다.
三神人이 태어난 곳을 모흥혈(毛興穴)이라 하는데 三神人이 湧出(용출)①하였다 하여 三姓穴(삼성혈)이라 하며 3개의 地穴(지혈)이 있다. 이 神人들을 이름하여 乙那(을나)라 하며 세성씨의 시조이시며 탐라국을 개국하시었다.
그들의 모양은 매우 크고 도량이 넓어서 인간사회에는 없는 신선의 모습이었다. 이 삼신인은 가죽옷을 입고 사냥을 하는 원시의 수렵생활을 하며 사이좋게 살았다.
하루는 한라산에 올라가 멀리 동쪽 바다를 보니 자주색 흙으로 봉한 木函(목함)이 파도를 따라 올라오고 있었다. 그 목함을 따라 지금의 성산읍 온평리 바닷가에 이르러 목함을 열어 보았다.
그 안에 알 모양으로 된 둥근 玉函(옥함)이 있었으며 자주빛 옷에 관대를 한 使者(사자)가 있었는데 그 사자가 玉函을 연즉 靑衣(청의)②를 입고 姿色(자색)③이 출중하고 稟質(품질)④이 端雅(단아)한 공주 세사람이 좌석을 整齊(정제)⑤하여 같이 앉았고, 또 우마와 오곡의 종자를 가지고 와서 연혼포의 해안 언덕에 내 놓으니 삼신인이 자축하여 말하기를 “이는 반듯이 하늘에서 우리에게 내려주신 것이다”하여 기뻐했다.
使者가 두 번 절하고 엎드려 말하기를 “나는 동해 碧浪國(벽랑국)⑥의 사자 올시다. 우리 임금님이 세공주를 낳으시고 나이가 성숙함에도 배필을 정하지 못하여 한탄하던 차에 하루는 紫宵閣(자소각)⑦에 올라 서쪽 바다를 바라보니 자주빛 기운이 하늘에 이어지고 상서로운 빛이 영롱한 가운데 명산이 있는데 그 명산에 三神人이 강임하여 장차 나라를 세우고자 하나 배필이 없음으로 이에 臣(신)에게 명하여 세분 공주를 모시고 오게 하였으니 伉儷(항려)⑧의 예식을 갖추어 큰 國業(국업)⑨을 성취 하시옵소서”하고는 홀연히 구름을 타고는 동쪽 하늘로 사라져 버렸다. 이에 三神人은 祭物(제물)을 정결하게 갖추고 목욕재계하여 하늘에 고하고 각기 세 公主와 혼인하여 연못 옆 동굴에서 신방을 차리고 생활하니 인간으로의 생활이 시작이며 이로써 농경사회로 발전하고 정주의 기초가 됐다 하겠다.
그래서 자주빛 함이 올라온 성산읍 온평리 바닷가를 延婚浦(연혼포)라 하며 지금도 삼공주가 도착할 때 함께 온 말의 발자국들이 해안가에 남아 있다. 또한 삼신인이 목욕한 연못을 婚姻池(혼인지)⑩라 부르며 신방을 꾸몄던 굴을 神房窟(신방굴)⑪이라 하며 그 안에는 각기 3개의 굴이 있어 현재까지 그 자취가 보존되고 있다.
삼신인은 각기 정주할 생활터전을 마련하기 위하여 도읍을 정하기로 하고 한라산 중턱에 올라가서 거주지를 선택하는 활을 쏘아 제주를 삼분하여 제1도와 제2도와 제3도로 정하니 이로부터 비로소 산업을 이룩하여 오곡을 심고 우마를 길러 촌락이 이루어 졌으며 자손이 번성하여 탐라국의 기초를 이룩했다.
그 활 쏘은 지역을 射矢長兀岳(사시장올악)이라 하며 활이 명중한 돌을 한데 모아 보존하니 제주시 화북경의 三射石(삼사석)이라 하는데 조선조 영조 11년(서기1735) 김정목사가 삼신인의 활 솜씨를 경탄하여 기념코자 『三射石』이란 비를 세우고 비면에 시를 지어 추모하니 지방문화재 기념물 제4호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그후 역사시대에 이르러서는 탐라국 왕손들이 신라에 입조하여 작호를 받았으며 신라, 백제, 고구려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유구왕국과도 독립국가로서 교류하고 소규모나마 물물을 교환하는 해상교역 활동도 있었음이 확인되고 있다.
그후 수천년간 탐라국으로의 왕국을 유지 하다가 고려시대에 합병됐다.
그래서 이 삼성혈은 탐라국의 시조이신 삼신인 즉, 三乙那(삼을나)왕께서 湧出(용출)하여 제주를 개황한 한반도에서 가장 오랜 현존 유적이다. 또한 이 신비한 성혈에는 눈이 많이 오거나 빗물이 수없이 내려도 쌓이거나 고이지 않으며 면면이 이어온 수백년된 고목들도 모두 다 혈을 향하여 고개를 숙여 경배하듯 가지들을 팔벌려 감싸 안고 있다.
삼성혈에 처음 설단하여 치제한 때에는 서기 1526년(중종21) 이수동목사에 의하여 처음으로 조정을 대표하여 제주목사가 홍문과 표단을 설치하여 봉향하였으며 특히 유교국시의 조선조에 와서는 조정의 각별한 배려와 역대 목사들의 존숭치적으로 더욱 신성시하였다. 1785년에는 정조대왕이 “三姓祠”(삼성사)라는 편액을 친히 하사하시어서 王(왕)에 대한 예우로써 國祭(국제)⑫로 봉향하도록 하교하였다.
제향은 매년 4월 10일에 춘기대제를 10월 10일에는 추기대제를 후손들이 중심이 되어 봉향하고 12월 10일에는 건시대제라하여 혈단에서 드리고 있는데 모든 제관들은 왕에 대한 예우로써 금관제복을 착용하여 3일전에 입재하여 목욕재계하고 제향에 임한다. 그리고 이 건시대제는 조선시대에는 국제로 모시다가 현재는 제주도민제로 봉행하고 있으며 초헌관은 제주도지사, 아헌관. 종헌관은 덕망있는 사회 지도층 인사중에서 추천된 인사가 맡고 있다.
인류 역사의 변천과 국가 형성 과정을 보면 통치 지역이나 권력을 중심으로 한 투쟁의 연속인 것이 상례처럼 보이지만 三神人이 세공주를 맞이하여 아무런 다툼이 없이 배필을 정한 것이나 생활의 터전을 활을 쏘아 정한 것이나 분할지역을 정한 후에는 지역을 확대하기 위한 영토전쟁이 없었던 것은 오늘날 제주인의 평화 존중의 정신이며 수눌음⑬ 과 조냥 ⑭정신 및 자립과 화합정신의 기틀이요, 이러한 정신이 바탕이 되어 척박한 땅을 일구면서도 부를 창조하였고 외세의 침략에 굴하지 아니한 강인한 개척의 정신을 이루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