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출발
수년 전부터 부부동반 해외여행을 가자는 선암회 회원들의 바람대로 비록 회원 절반만 참가하는 여행이었지만 , 고등하교 동기생 9명이 33년 넘게 해마다 여름, 겨울에 두 차례 빠짐없이 만나서 1박 2일을 보내는 친구들이라 그 어느 때 보다도 퍽이나 의미 있는 여행이 될 것 같아 1인당 140여 만 원의 쾌 비싼 여행 경비에도 불구하고 가기 싫다는 아내를 부추겨 이십 몇 년 결혼생활의 단조로움을 벗어나고 신혼의 기억을 살리자는 의미에서 5월 황금연휴에 같이 여행을 가기로 하였다.
매번 호주, 동유럽 여행 때와 마찬가지로 여행 가기 전날 밤의 설렘으로 잠을 설친 거와 마찬가지로 중국여행의 전날 밤도 뒤척거리며 괜히 새벽 일찍 일어나서 준비로 부산을 떨었던 탓인지 온몸이 노곤했지만 아침 7시경 김천에 사는 친구의 차로 대구공항까지 같이 동행하여 도착하니 청주, 구미에서 사는 친구 부부들이 우리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
공항 1층 코너에 있는 국민은행지점 앞에서 하나투어 관광 안내 가이드가 나와 이번 여행의 일정 설명과 및 탑승 수속 도와주어서 수속을 끝내고 나서 공항 내 면세점에 들러 이것저것 면세품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역시 여자들은 화장품, 가방 등에 관심이 많았다. 평소 닭살부부로 소문 난 친구가 자기 아내에게 선뜻 가방을 사주는 것을 보고 나도 결혼생활 내내 없는 집안에 와서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가정통치자금을 풀려고 명품 가방을 사주려고 골라보라 했지만, 억척 구두쇠인 아내는 한사코 거절하는 한편, 비비 크림 몇 개만 살 뿐이라 괜스레 뒤통수가 가렵고 미안했다. 난 나의 필수품인 담배 한보루를 제일 먼저 샀는데 일행 친구 중 나만 담배를 피우는지라 아내의 홀겨보는 눈길에 숨이 멎는 것 같았다.
탑승에 앞서 칸막이로 된 흡연실에서 담배를 연달아 피우는 내모습이 너무 초라해 보였지만, 정말 국가에 세금을 많이 내는 흡연자가 세금 안내는 비흡연자 눈치를 보면서 이렇게 까지 숨어서 피어야 하나? 라는 자괴감이 들었지만 금연 ! 작심 3일! 아무튼 그렇게 골초였던 친구들이 다 끊은 마당에 아내의 딸의 눈초리는 더욱 위로 치켜 올라가는데 조만간 끊기는 끊어야 겠다는 다짐이 새삼 들었다.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고 우리일행을 태운 중국민항 비행기가 12:30분 쯤 중국 상해의 푸동국제공항을 향해 힘차게 날아 올랐다. 날씨가 무척 화창하게 갠 날씨인지라 비행기를 훓고 지나가는 얇고 가벼운 구름들이 우리 여정을 축하해 주는 것 같아 한결 기분이 좋아지려는데 기내식이 나왔다. 시장한 탓에 게눈 감추듯 먹어치운 뒤의 포만함 속에 문득 걸어오는 미녀들의 모습은 전에도 비행기를 타면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예쁘고 늘씬한 스튜디어스들은 언제나 우리 남성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가 보다. 지상의 아름다움 보다 천상의 천사가 더욱 아름답다고 하던가! 살짝 잠든 아내를 훔쳐보며 난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그림의 떡인 그네들보다도 늘 내 곁에 있어주는 아내가 헐 낫다고 ! (?)
(중국 상해 푸동국제공항 내부 전경)
( 동방항공 여객기 기내식 )
2. 푸동공항 도착 - 황주로 이동
대구공항을 떠난지 2시간 가량 걸려 우리는 드디어 중국상해의 푸동공항에 도착하였다. 인천공항보다는 좀 작아 보였지만 깨끄솨게 정돈되어 있었고 특히 보안이 강하다는 느낌에 얼굴 인식기 앞에 서서 수속을 끝내고 수화물을 찾아서 9번 게이트 앞에 나오니 중국 가이드가 마중 나왔다. 이가이드는 조선족인데 31살로 대학을 나왔지만, 소수인종이 취업하기가 힘들어서 가이드일에 종사한지가 4년 쯤 되었다는데 체격이 중학생 만큼 왜소하고 여윈 형이었는데 너무도 순진한 구석이 많은 가이드였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12인승 가량의 봉고차가 대기하고 있었는데 26살의 중국기사로서 무뚝해서 우리와 같이 한 4일 동안 말한마디 않고 그 복잡하고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시내를 난폭하게 몰아서 가슴이 벌름벌름 놀래고 퉁명스럽기까지 하였고, 한국말은 거의 한마디도 하지 않은 정말 정이 안가는 사내였지만 다음 날 황산으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속도위반 벌칙금을 우리가 일당이 다 날라갈 판이라 울쌍 짓기에 만원씩 갹출하여 40,000원을 보태 주기도 하였다. 동유럽의 가이드가 너무 친절하고 설명도 자세하게 해주는 것에 비해서 정말로 불만족이었지만 한쪽피를 받은 가이드 때문에 모두 참았다.
중국기사가 모는 차량에는 TV, 마이크도 없엇고 ,상하, 좌우 간격이 너무 좁아서 답답해서 죽을 맛이었지만 우리 일행 부부 8명, 가이드 한명, 기사 1명의 10명인 좁은 차 속에서 그런대로 난폭운전도 참아가며 , 들리지 않는 조그만 목소리의 가이드 , 좌석에 음료수 및 물품 그물망도 설치되어 있지 않아 쓰레기 처리가 곤란한 형편없는 서비스의 대한민국 최고의 여행사 <하나투어관광회사>의 비싼 여행 경비에 무척 짜증이 났다. 이럴바에야 조금 싼 단체관광의 리무진에 동승하는게 헐씬 낫다고 생각하면서 4 시간 가량 걸리는 황주로 향했다.
황주로 향하는 외곽도로는 께끗했고 숲이 잘 가꿔져 있었고 , 도로 주변에는 노ㅍ은 아파트가 들어 서 있었고 한참 아파트 짓고있는 모습들이 많이 보여 고도 성장을 타고 세계속의 2의 경제 대국 다운 발전의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 할 수 있었다. 반도체, 자동차, 조선등에서 우리나라를 무섭게 쫒아오는 대륙의 힘을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세계 풍력시장의 70 %를 차지하고 조선 등에서 우리를 추월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경제대국과 더불어 남북한 등거리 외교로 국익에 도움이 되면 "검든 ,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 등소평의 실용주의가 오늘날의 경제성장률 매년 10% 이상 씩 고도 성장하는 무서운 잠재력의 중국을 만드는 저력의 국가임을 다시 한번 처음 중국 방문길에 느껴 보았다.
중간에 들른 중국 화장실의 후진성은 아직도 더럽고 한줄로 죽 늘어서서 물이 흘러내리는 개방된 소변보기에는 조금 민망한 옛 우리나라의 70년대를 보는 것 같았고, 청소도 엉망이고대단히 불결해 보였다. 휴게실에 만난 대부분의 중국사람의 옷차림은 우리나라 80년대 옷감 수준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아무데서나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 물건 파는 사람들의 자국말로만 하는 답답함, 잘 웃지도 않는 시민 표정들로 보아 문화 대국이 되기엔 아직 많은 시간이 걸릴 거 같다는 느낌이었다. 어쨌던 그들의 생활은 대도시에서는 우리보다 나은 최상류 생활을 하는 5,000만 이상이 있는 반면, 농촌으로 갈수록 의식주나 국민의식에 있어서 우리와 많은 차이가 있음을 느끼지만 황산이나 상해의 야경을 구경하면서 머지 낳아 세계를 호령하는 대국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게 하였다.
들리지 않는 가이드의 육성목소리에 지쳐 우리일행은 우리나라에서 가져간 플라스틱 70M 소주를 서로 주고 받으며 이야기 하다가 잠이 설핏 들었다가 깨어보니 봉고차는 어느새 황주시내로 들어서고 있었다. 인구 600만의 대도시답게 시내 중심부는 사회주의의 특지이던 회색빛깔의 개성없는 건물들이 가득 차 있었고 인도와 보도를 줄지어 힘차게 달리는 수많은 남녀들의 오토바이 (보기만 해도 겁이 남 - 그들은 너무나 익숙하게 잘 탄다) 무리를 우리 기사가 차를 어찌나 난폭하게 몰면서 피해 나가던지 무슨 곡예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조마조마하였서 천천히 운전해 달라고 가이드에게 애기해도 그 중국 젊은 기사는 아랑 곳 하지 않고 그 자새로 계속 힘차게 차와 오토바이가 뒤섞인 군중속을 잘도 빠져 달렸다.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은 남녀노소 구분 없었고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 애기를 동행하여 태운 여성들의 행렬은 우리나라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등이 무척 신기하게 보였다.
(자전거 오토바이 및 전기 오토바이 행렬)
일정시간 보다 약간 늦어져 난폭하게 달린 우리를 태운 버스는 아름다운 서호 강변을 끼고 돌아 시내 오산에 있는 성황각을 구경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이런 서호를 하늘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 오산의 성황각에서 조망하는 것이다. 이 곳 오산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것은 서호뿐만 아니라 황주시내를 공서남북으로 모두 둘러 볼 수 있는 곳이었다.
항주는 절강성 소재 중국7대 옛 수도의 하나이며, 현재 절강성의 성도이며, 아름다운 경치로 인해 예부터 ‘지상의 낙원’이라고불리우고 있으며 그 이름에 걸맞은 아름다운 경관을 유지하고 있다. 옛날의 번영에 비하면 차분하고 조용한 고도의 면모를 보이고 있는 항주는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 는 말처럼 예로부터 소주와 함께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마르코폴로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극찬한 곳이기도 하다.
"아침에도 좋고, 저녁에도 좋고, 비오는 날에도 좋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중국인 최대의 소망은 관직에서 은퇴한 후 항주에 저택을 짓고 소주의 미인과 함께 광주의 음식을 먹고 사는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인은 항주를 사랑한다. 항주는 비단과 룽징차 (용정)등이 특산물이다. 비단으로 만든 삿갓과 룽징차를 사는 사람이 많다.
황주(황저우) 2000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로서 蘇州와 함께 아름다운 도시로 불리우며 특히 비단의 고장으로서 중국에서는 최초로 최고의 관광도시로 지정된 중국의 이름 있는 역사문화의 도시이다. 항저우는 절강성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다. 특히 아름다운 호수(西湖)와 山으로 둘러 쌓인 자연경관은 항저우 관광의 매력이며 깊고 오랜 역사문화의 숨결로서 항저우 관광의 ‘魂’이라 할 수 있다.
저우는 중국 8대古都중의 하나로 일찍이 吳越國과 南宋의 도읍이었다. 변화한 지금의 항저우에도 남송시기의 숨결이 곳곳에 남아있어 南宋皇城 유적지, 淸河坊, 宋城, 御街 등은 옛날 황성의 생활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저녁 노을이 지고나면 항저우의 화려함은 하루를 천년으로 바꿔놓을 印象西湖와 宋聖千古情이 눈앞에 펼쳐지고 西湖 龍井의 향긋하고 그윽한 茶 향이 항저우 곳곳에 베어들면서 하나, 둘, 불이 꺼지기 시작하고 주위가 온통 적막함으로 물 들 때면 조용한 방 안에서 물을 머금은듯한 공기로 감싸인 항저우를 조용히 홀로 바라보게 되는데 이때 눈을 감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면 항저우는 바로 은은한 도시임을 알게 된다.
황저우는 중국 동남연해, 京杭 대운하의 남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국 장강 3각주 남쪽의 중심도시다. 항저우 시내에 있는 산지는 텐무산맥에 속하며 그중 서호관광구의 최고봉은 해발413m인 天竺山이다. 주요 江으로는 동서방향의 첸탕강, 푸춘강, 신안강 및 남북방향의 진항대운하, 사오씨등이 있다.
항저우는 아열대 계절풍 기후에 속하여 온난습유하고 사계절이 분명하다. 평균기온은 18도이며 평균습도는 70%, 연강수량은 1,435mm가 된다. 항저우는 중국 8大古都의 하나로 관광, 역사, 문화의 도시이며 신석기 시대의 문화를 시작으로 항저우는 지금까지 8,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항저우는 예전에 禹杭, 余杭, 錢唐, 錢塘, 臨安 등으로 불렸으며 기원전 222년, 전당현이 생긴 이래로 지금까지 2,225년의 도시역사를 가지고 있다.
" 臥薪嘗膽", 故事成語를 만든 西湖 !
하늘에는 극락, 땅위에는 항저우
5대10국 시기에는 吳越이라는 나라가 893년부터 86년동안 항저우를 도읍으로 정한 적이 있으며 南宋시기에는 왕실을 항저우로 옮기고 臨安府로 개칭 하였으며 紹興8년(1138년)에는 임안을 정식 首都로 정해 152년동안 남송의 수도가 되었다. 1927년(중화민국16년)에 항저우市로 정식 명명 되었으며 1949년 항저우시 인민정부가 성립되어 지금의 절강성 省소재지가 되었다.
특히 항저우는 중국에서 가장 안전한 관광지로서 치안이 잘 돼 있는 도시로도 유명하고 주민들의 경제력도 좋아서 중국내에서 가장 잘 살고 있는 도시로 불려지고 있다. 시후(西湖)는 중국내에서 가장 빼어난 경관의 호수인데 이 호수의 유래로는 중국고대의 4대美人인 越나라 ‘서시’가 태어난 곳이고 이태백이 ‘둥근달’을 노래한 곳이며 특히 吳나라 王 ‘부차’에게 패한 越나라 왕 ‘구천’이 美人計로 ‘서시’를 ‘부차’에게 보낸 뒤 쓸개를 먹으며 원수를 갚았다는 ‘臥薪嘗膽’의 故事成語를 만든 곳이기도 하다.
이태백은 西湖를 가리켜 “화창한 날의 서호는 서시가 화장을 한 모습이고 안개 낀 날의 서호는 서시가 화장을 하지 않은 모습이다.”라고 말했다 한다. 1500년 전부터 人氣名所로 전해져오고 있는 이곳 서호는 산과 물이 조화를 이루며 변화가 무쌍한 자태를 이루고 있기에 “하늘에는 극락, 땅위에는 항저우가 있다.”라는 말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서호 관광은 여행일정 때문에 황산 등반후 3일 째에 구경하기로 하고 아쉽지만 우리 일행은 먼저 몇 백년 되어봄직한 아름드리 정자나무 숲길을 따라 100m 정도 올라가니 성황각/성황묘가 나온다.남송시대의 옛 거리를 돌아본 후 일행은 吳山에 있는 城隍閣을 찾았다. 吳山의 높이는 94m, 명나라 때 정직하고 과감하며 대공무사한 신하였던 ‘周新’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어졌으며 산위에 성황묘가 있었다고 해서 성황산 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성황묘 옛터에 지금은 성황각이 지어졌는데 이곳은 西湖의 절경을 굽어보기 좋은 곳이었다. 또한 산 정상의 ‘江湖繪觀亭’에 올라서니 첸탄강, 시후, 항저우시의 아름다운 전경이 시야에 안겨왔다.
높이 41.6미터, 7층짜리 고건축물로 오산의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다.누각의 모든 조형이 남송과 원대의 건축풍격을 따랐으며 무한시에 있는 황학루 악양시에 있는 악양루 강서성 남창시에 있는 동왕각과 함께 중국 강남 4대 누각에 속한다.
성황각의 1층에 있는<남송항성풍정도(南宋杭城風情圖)>는 항주시 공예연구소 연구원을 비롯한 장인등 만여명이 참여하여 2년만에 만든 작품으로 입체적 조소로 묘사한 전시실로 남송 시기의 생활풍속을 선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거대한 응회암에 서호의 전설과 십대 민간고사등을 담은 이 조각도는 길이 31.5미터에 높이만 3.65미터로 1000여채의 가옥과 3000여명이 넘는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어 그 시대의 중국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2층에는 소동파,백거이등 항주 역사적 인물 조각상 28명과 항주의 중요한 역사적 순간들을 묘사한 11개의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다. 3층에는 찻집 , 4층에서는 항주 시내와 서호, 전당강등의 항주의 경치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멀리 서호에 떠 있는 유람선들을 바라보며 멋진 자연과 어우러진 황주의 풍광의 아름다움에 새삼 관광의 재미를 느꼈다.
(성황각 1층 민속 조각 전시실 )
(성황각에서 바라 본 서호 뇌봉탑 풍경)
(황주 성황각 입구에서)
아름답게 물들은 저녁노을을 받고 있는 서호를 먼 시야로만 감상하고 아쉬움의 발길을 돌려 우리는 황주 시내에 있는 식당에서 중국 전통음식인 파국포이(사천요리)를 먹으러 갔다. 쓰촨성의 요리중의 하나로 마파두부,궁보계정, 어향육사등이 나왔다. 중국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좀 약하게 났지만 우리 입맛에는 별로 맞지 않았지만 배고픈 관계로 우리일행은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파국포이 - 사천요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