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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의 휴식․삶의 충전․시의 제전
시우주
통권 35호
2006년 11월
일 시: 2006년 11월 4일(매월 첫 번재 토요일) 16:30 ~ 18:30
장 소: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6번 출구 직진 동대 중문지나
엠베서더 호텔 끝 대학 문화원 516호 묵정문화 소강당
시우주 시낭송회
http://cafe.daum.net/siwoojoo 시우주 시낭송회: 취지문
탈영토화된 문학의 영토를 재영토화 하기 위한 활로
한 때 문학은 모든 예술의 제왕이었다. 고대 희랍·인도·중국 문학이 그러했다. 하지만 점차 인접 예술에 영토를 분봉해 준 이래 문학은 봉건 영주로 전락했다. 이제 연극과 영상 및 드라마 등의 시각 이미지가 전 예술의 영토를 지배하고 있다. 이 때문에 문학은 이들에게 세 들어 살아야 할 정도로 그 영향력이 반감되고 있다. 나아가 시와 소설은 정체성을 잃고 희곡과 시나리오 및 시놉시스로 전환되어 변주되기까지 하고 있다. 이를 두고 단순히 문학의 외연 확장이라고만 할 수 있을 것인가. 정작 시인과 작가가 시와 소설을 들고 독자와 직접 만나는 일은 불가능한 것인가.
연극과 영화 및 드라마 등의 공연예술은 무대를 통해 관객과 소통한다. 이들은 원작인 희곡과 시나리오와 시놉시스를 매개하여 독자 및 청중과 몸짓과 육성으로 직접적 대화를 도모한다. 이에 비해 문학은 이들 장르의 원작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 채 아직까지 문자 매체를 통해 소통할 뿐이다. 문학은 과연 인접 장르로 시집 보낸 딸들의 친정으로만 존재할 뿐인가. 아니면 권력을 물려주고 물러난 힘없는 상왕으로만 남았을 뿐인가. 청각의 시대에는 문자 매체가 주요 기제로 자리매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각의 시대에 문자 매체의 영향력은 급격히 반감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문자 매체를 기제로 하는 문학의 활로는 어디일 것인가.
길은 있다! 그것은 곧 시인과 작가들이 무대로 나아가는 것이다. 시인과 작가가 자신의 몸짓과 육성으로 독자와 직접 만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느낌'을 독자와 관객과 주고받는 것이다. 물론 시인과 작가 모두가 배우나 텔런트가 될 수는 없다.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연극과 영화와 드라마들에선 세련되고 단련된 테크닉이 중요할 것이다. 이와 달리 문학의 속맛은 시인과 작가의 진솔한 작풍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어눌한 어법이나 건조한 화법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진지한 육성으로 작품의 정수를 전달하고 느끼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공연예술로서의 낭송회는 독자나 청중과 만나는 기제가 된다. 우리 시대의 대표적 지식인들은 아무래도 시인 및 작가일 것이다. 이들은 이 시대의 아픔을 가장 예민한 촉수로 읽어내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읽어낸 그 느낌을 자신들의 감성을 실어 형상화한 작품 속에서 우리는 삶의 정수를 만끽하게 된다. 그러므로 시의 제전을 연 시인들은 지식으로 가득 찬 이들에겐 '앎의 휴식'을 제시하고, 문명의 속도에 휘둘려 삶이 방전된 이들에겐 '삶의 충전'을 제공하여 앎의 해방과 삶의 해탈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시우주 시낭송회'(2004. 1. 10 ~ )는 이러한 취지에 동참한 여러 시인들이 벼려낸 삶의 언어로 이 시대의 지식인들과 소통하기 위해 모인 결사체이다. 우리는 시인의 몸짓과 시의 의미를 통해 우리 시대의 문화의 꽃을 피워보고자 한다. 그 개화의 형식은 다양한 인접 예술 장르들과 공존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작고 단단한 '강소'(强小)의 결사체를 지향하는 시우주 시낭송회는 이 {사화집}을 공연예술로 승화시켜 가는 촉매로 삼으려고 한다. 이 {사화집}은 시우주 시낭송회를 공고히 하는 '결속의 사리'가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매월 이 낭송회를 통해 우리는 '앎의 우주', '삶의 우주', '시의 우주'를 만들어 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곧 '시우주 시낭송회'의 존재 이유가 될 것임을 확신한다.
2005. 4. 5. 식목일에
’하늘‘과 ‘땅'과 ‘사람'이 어우러진 남산 기슭에서 삶의 정수인 ‘詩'의 즐거움을 이웃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좋은 詩'作과 ‘젊은 열정'이 어우러진 이 지역 詩人들이 일상과 사유의 화회, 인간과 자연의 소통을 詩朗誦을 통해 이뤄보고자 합니다. 전통과 문화의 고장인 이곳 구민들의 삶의 가락과 건강하게 윤활하고자 합니다. 시낭송을 ‘공연예술'로 승화시켜 詩의 宇宙를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사 회: 진 란
시낭송 고영섭: [가을운동회 1]외 2편
김리영: [한순간] 외 2편
김인구: [상여가 지나간 자리] 외 1편
김종순: [반묘(斑猫)] 외 1편
김홍엽: [조개 구이 집에서] 외 1편
노창재: [대숲의 소리] 외 2편
류영환: [그믐달] 외 2편
박성규: [흥륜들의 밤] 외 2편
박후기: [철봉은 힘이 세다] 외 2편
안영희: [그 강가에 오늘 다시 내가 서다] 외 1편
특 강 허병식: 항유의 공간과 유랑의 공간 (50분)
시낭송 유순예: {푸른 안부] 외 2편
이숙희: [장작을 태우며] 외 2편
이정자: [황금 사과나무 한 그루] 외 1편
정복선: [2005년 오딧세이아] 외 2편
진 란: [파랑주의보] 외 2편
천수호: [옥편에서 ‘미꾸라지 추(鰍)’자 찾기] 외 2편
하상만: [먼저 태어난 녀석들] 외 1편
허 열: [망치]
뮤지컬 김시은: 나홀로(on my own)
뒷풀이: 대학문화원 식당
출연진:
고영섭 100-715 서울시 중구 필동 3가 26 // 02-2260-3583/ 02-716-9185/
011-9022-9180// koyoungseop@hanmail.net
김리영 경기도 하남시 덕풍동 한솔 솔파크 아파트 104동 201호
010-9750-5548 / www,kimrheeyoung.pe. kamrhee@hanmail.net/
김시은 서울시 중구 남산동 010-3078-6789/ leanna0619@hotmail.com
김인구 122-828 서울시 은평구 녹번동 43-55호 금강주택 A동 302호/
02-356-8151/ 010-6655-8151// ingu8151@hanmail.net
김종순 서울시 성동구 성수 2가 3동 현대 아이파크 아파트 107동 1804호
016-263-2639//anjella05@hanmail.net
김흥엽 140-833 서울시 용산구 용산동 2가 2-15
0505-442-2000//kh1243@hanmail.net
노창재
류영환
박성규
박후기 446-911 경기도 용인시 기흥읍 동백동 호수마을 3단지 1303동 701호 016-807-0217//galapagos@empal.com
안영희 480-767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 20 동아아파트 113동 403호//
031-878-0535/ 019-9166-0535/ aaayyyh@hanmail.net
유순예
이숙희 서울시 서초구 우면동 동양고속아파트 103동 302호/
02-557-1617/ 010-4333-1617/ igiry@hanmail.net
이정자 충북 충주시 연수동 유원 2차 5동 504호
043-844-4820/ 010-6755-4820
정복선 139-800 서울시 노원구 공릉2동 91 청솔아파트 802동 302호/
www.chungboksun.pe.kr/02-972-1734/ 017-225-0438//
진 란 110-030 서울시 종로구 청운동 108-16번지 청운빌라 B동 101호/
ranigy21@ hanmail.net (전화) 725-8243, 019-368-8243
천수호 411-370 경기도 고양시 일산 서구 주엽동 63번지 강산마을 LG 아파트 810동 102호
011-523-9919//suho621@dreamwiz.com
하상만 486- 900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전곡리 석미 아파트 102동 1301호/
017-543-8494/ sihoa@hanmail.net
허병식 016-9744-6564/ bazarov@empal.com
허 열 139-901 서울시 노원구 상계5동 1270 금호 아파트 102동 304호
010-212-1104/ heoy203@hanmail.net
가을운동회 1
고 영 섭
검정 고무신 벗고
아껴 신던
푸른 운동화 빨아 신고
무논에서 잡은 메뚜기들
가마 솥에 매 볶아
간장 찍어 먹은 뒤 땄던
갱지 공책 한 묶음과
참나무 연필 한 다스에 찍힌
일등이란 푸른 도장자국
눈 빛이 종이 등을 꿰뚫듯
한 길로 달려가서 땄던
나의 첫 자신감!
가을운동회 2
고무풍선 불어
푸른 하늘 높이 띄우고
만국기 달아
읍네 사람들 불러 모은 뒤
곤봉 체조 끝내고 열린
기마전에서
활짝 펼친 손들로
단풍나무 흙물 들이는
가을운동회.
가을 한 장
바람 나 집 나간 옆집 순이가
몇 달 간 소식 없다가 돌아와
나무 위에 몰래 널어 말리는
붉은 월수백月水帛 한 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및 동 대학원 불교학과 석박사 과정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9년 <<시혁명>>, 1995년 <<시천지>>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98~99년 월간 <<문학과 창작>> 2회 추천을 완료(신인상)했다. 시집으로는 <몸이라는 화두>, <흐르는 물의 선정>, <황금똥에 대한 삼매>(근간)가 있다. 현재는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www.koyoungseop.pe.kr
한 순간
김 리 영
오래 오래 전,
한 치 앞을 모르고 달려오기만한 물결이
바다 동굴 밑에 다달아
철썩 가슴이 쪼개진 뒤
머리 조아려 울고 있었다
천 년 만 년 그칠 줄 모르던
만신창이의 울음소리
몸을 뒤틀며 뛰어올라
바위벽을 찢으며 달려나갔다
그 후 벼랑 아래 햇살이 푸르른 날
소문을 듣거나 못 잊어 찾아온 사람들이
아스라이 도로 끝에 차를 멈추고
물결소리 배경으로 느긋이 사진을 찍는다.
눈 내린 공동묘지
차를 세워놓고 걷는 눈 내린 저녁
아침부터 내리던 눈이 비로 변하는데
소나무들 사이 즐비한 묘비명들
젖지않는 영혼들 몇이 불쑥 나를 반기네.
괜시리 겸연쩍어 길 건너려니
맞은편 길에도 큰 공동묘지,
언덕 너머 양쪽 마을에
창마다 켜 둔 불빛 수없이 반짝여도
목이 마른 영혼들은
갈 곳이 없네.
도서관에서 늦게 나와 집을 향해 걷는 길
손 흔들며 따라오는 날개 없는 영혼들,
쌓인 눈 녹아 흐른
흙탕물 뿐인 세상,
갈 곳없는 영혼들은
오늘 밤 편히 누워 쉬지 못하네.
애쉴랜드의 안개 2
해질녘 멀리서 띠를 이루던 산안개가
순식간에 시내까지 밀려와
시야를 흐려놓는 밤
자동차는 보이지 않고 불빛만 지나간다
붉은 빛 푸른 빛 알아볼 수 없는 길을
누구에게 이 안개 거두어 달라고 외칠 수도 없어
얼마나 두 팔 휘저으며 걸어왔는지
지금 이 시간
색소폰을 부는 사람,
불 꺼진 무대에서 독백을 하거나
혹은 나보다 훨씬 먼 길 가는 사람일지라도
이렇게 희디흰 안개
씻은 듯 걷혀질 날 기다려 봤을까?
내가 돌아올 길 모를까봐
노란 램프를 들고 서 있겠다던 그대,
이 길의 끝에서 아직도 날 기다리고 있을까?
축축하기만한 공기가
사방에서 휘감아 오는 이 길
삔 자리 또 삔 발목 끌고
앞을 향해 헤쳐가면
훗날,
다만 피할 수 없는 안개였다고 기억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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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태어나 세종대학 무용교육학과 졸업, Southern Oregon University 에서 Art 수학. 1991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1054년에 폭발한 그], [바람은 혼자 가네],[ 푸른 콩 한 줌] 동인지 [낮게 그리고 느리게] 등
상여가 지나간 자리
김 인 구
잠시, 바람이 움직인다
그 움직임의 끝자락 붙잡고 온 몸으로
생을 비트는 뻐꾸기의 哭소리
어느 누군가의 생애가 막을 내렸는가 보다
내 호흡보다 한 박자 더 느리게
바람이 지나 간다
바람은 이내 나무에게 한 몸에 깃든 生과死
자신의 비밀을 고백한 탓에
한쪽으로 밀려나 하늘을 향해 달려 나간다
바람이 아니어도 좋았다
잠시, 숲이 움직인다
잎사귀에 올라 앉은 햇살들이
사타구니를 열어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어느 누군가의 생애가 시작되었는가 보다
내 호흡만큼만 감지되는 숲의 내음
구름, 다시 산에 서다
숲길을 빈그림자로 걷는다.
삶의 군더더기를 벗어던지는
나무의 생애는 한때 공허롭기까지 하다.
제이름 한번 제대로 불리우지 못한 채
생의 무릎을 꺾는 한해살이 풀들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 떠있는가를 되짚는다.
바람은 마른풀이며 나무를 넘어
나의 온몸에 달려든다.
산자락에는 흉흉한 바람의 비명만 남아
나는 말을 더욱 깊숙이 감추고
내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산은 이미 알고 있다.
흘러서 마지막 닿는 산기슭을 향해
산은 나를 밀어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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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옹벽>> 시 동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고 1990년 월간 <<문예사조>> 창간호 신인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는 <다시 꽃으로 태어나는 너에게>, <신림동 연가>, <아름다운 비밀> 등이 있다. 현재는 명지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며 계간 <창작 21> 편집장을 맡고 있다.
반묘(斑猫)
김 종 순
퇴근길
아파트 앞에서 만난 앙상한 그놈
바람을 닮은 듯 털은 부풀고
화단 옆 음식물 곁에 서성이곤 했는데
돌연, 자동차 불빛을 보고 황급히 뛰어든다.
땅을 엎어보고, 뒤집어 보고,
마지막 발광하는 검은 바닥에
푸른 눈을 흘기며
짧은 생의 인연 눈부시게
위태로운 찰나
물기 마른 화단위에 나팔꽃이 피었다.
영문도 모르고 눈빛으로 남의 살 휘감은 나팔꽃 하나
차마 그곳에 오래 머물 수 없이
소소리 바람 불던 타이어 원형 속을 따라 구르며
지워지는 살점, 그 환한 불빛을 먹고 있다.
독신
9월의 바람이
살곶이 다리 사이로
살포시 사뭇간다.
발정 난 암고양이
한 마리 까아악
소리 지르며 달아나고
덩달아 숫고양이
한 마리 후다닥
어둠속으로 사라진 뒤
자루 빠진 빈집
쪼그려 누운 그녀
녹는다.
전화기
김 홍 엽
알지 알아
혈관을 타고 끊임없이 넘나들던
시름이 엄습해올 때도
달랑 목숨 하나 매어 사는 몸뚱어리에
시퍼렇게 소주병처럼 일어서라고
목울대를 타고 올라오던
그 전이되던 목소리를
때로는 쇳소리 같은 설움에
명줄 쩍쩍 가뭄처럼 갈라져도
시신경 곧추세우고
마른 눈물 마른 설움 눈 질끈 감고 살라며
고름 진 못난 살을
말간 강물에 헹궈주던 그 손짓도
모두들 떠나고
아무도 없는 텅 빈 방에서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노래만 목 놓다가
울다 쓰러져 잠들어야 했던 나날들
오늘도 관절 마디마디 휘감는 어둠을
맑은 햇살에 곱게 씻어 말리는 것도
다 알지 알아
조개구이 집에서
수수꽃 하나 가슴에 달지 않았다
패막에 가려진 작은 숨통에서
다져온 생이 감지된 것은
불기둥이 턱까지 차올랐을 때였다
촉수를 내세워 방향을 더듬었지만
알고 보니 타오르는 불잉걸이었다
지나온 뻘물의 아픔을 토해놓기도 전
혼혼히 빠져나가는 파도소리 들리고
끝끝내 눈물 흘리지 않았다
황혼이 어둠을 몰고 올 즈음
후끈 달아오르는 불덩이 위로
속살이 가랑이를 찢으며
지나 온 굴절이 마른기침으로 익는다
폐부 깊숙이 날숨을 토해낼 때 마다
동그란 무지개빛 방울이 어리는 것은
떠나야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뻘건 숯불 위에 가계家系도 없이 눈을 감더라도
갈매기 부리가 옮겨 놓은 구름을 딛고
하늘에 오른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바다는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파도의 이랑을
연신 갈아엎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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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전북 순창에서 태어나 숭실대 화학공학과와 방송대 국어국문학과 졸업했다. 월간 <<문학 21>>에 평론, 월간 <<좋은 문학>>에 수필이 당선되었다. <공무원문예대전> 시부문에서 행정자치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수필집으로는 <<불고 싶은 바람이여>>가 있다. 현재는 용산 방위 산업청 감사관실에 근무하고 있다.
대숲의 소리
노 창 재
뉘 집 사랑채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는데
거기에는 스님도 한 분, 명색으로 치자면
시인도 몇
그렇게 둘러둘러 차를 마시는데
열어놓은 뒷문으로 대밭이 어른거리며
찻상에 슬쩍슬쩍 손을 얹어 대는데
대밭에는 빗물 떨어지는 소리가 최고야
아니지 바람이 몰려와
댓닢 부딪히는 소리가 일품이지
아니지 소리도 없이 빠져나가는 댓잎의 사이
텅빈 바람길이 좋은거지
그러는 사이
대밭에서 후둑였던 참새떼
나는 그 중의 제일 힘찬 소리 하나를 골라
그의 몸무게를 재어보고는
내려 주었다
우포늪 사지마을
늪이 들어서 올리는 열기에
드디어는
칠월의 태양이 혀를 늘어뜨리자
콩밭을 맴돌던 산비둘기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한 점 바람 없는 사방천지는 녹음만 울려
마을은 마을대로 한없이 늘어지고
인기척도 집짐승의 미동도 영영 두절이다
먼발치 깨밭은 염천에 절어
녹음보다 무성한데
깨밭머리에 폭 잠겼다가 힐끗 얼비치며
다시 한참을 폭 잠겨버리는 저 노인네는
하늘에서 내려온 구름도 놀다 갔지만
무엇이 그리웠던지
늪은 천연스레 마을에 안겨 있고
개망초
정말이지
어쩌면 그렇게 이름을 붙일 수 있었겠니
세상 치욕과 수치란 모두
너 앞에 붙었구나
그러나 얘야
이제는 이리로 오려므나
치욕은 치욕끼리 수치는 수치끼리
그렇게 한세월 어울리다 보면
말없이도 이렇게 저 강 건너서까지
올망졸망 새끼들도 부리고
때로는 손을놓아 하늘에 구름도 잡아 본단다
이상도 하지
너의 이름자가 내게로 와서
이토록 평온해 질 줄을
사람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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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녕에서 태어났으며 <<차말사람들>> 동인과, 계간 <<주변인과 시>> 편집주간과 및 경남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믐달
류 영 환
하늘이
무게의 중심이 없어
꽉 찬 생명들
은하수 따라 모든 것 다 흘리다가
달마저 흘릴 뻔 하자
겁에 질린 달이 구름 등 뒤에 숨었지만
순명의 너그러움에
날까마귀 흰 깃털 하나만 남아있다
계곡에서
바람은 잠시 머물렀다 지나치고
나무는 바람 따라 또 흔들리고
잎새들은 가을을 지나
겨울 속에 떨어져 울면서 짓밟힌다
아, 내 앞의 삶도 이렇게
성마른 시공 속에서
내내 지나치고, 흔들리고, 떨어져
끝내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겨울 산 계곡의 살얼음 아랑곳없이
졸졸 흐르는 냇물 따라
눈빛 어린 비창의 선율만
사뭇 귀에 아프다
그 어느 것에도, 언제라도
마침표 아닌
쉼표이기를
천 개의 나뭇잎 흔들던 바람도 간절하게
지금은 묵상중이다
살아가다 보면
살아가다 보면
보내지 말아야 할 것을
유독 먼저 보내야할 때가 있다
고치지 않아도 될 멀쩡한 집을 헐고
새 집을 지을 때가 있다
보내지 말아야 할 것을 떠나보내고
회심의 눈물 흘릴 시간조차 거꾸로 매어단
그때부터, 한 그루 나무가 되어
꽃 피우고 열매 맺는
생명의 영광 속에 있을 지라도
목이 길어 안타까운 짐승인
사슴의 눈빛은 넋을 잃어 어둡다
천년의 침묵 깬 가공할 찰나의 종소리로
마음의 때묻은 옛집을 별나게 헐어내고
살아가다 보면
가시채를 뒷발질하기에 바빴던
세월의 이쪽, 빛과 생명의 푸른 동산에
풀꽃향기 그윽한 城砦 한 칸 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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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양산에서 태어나 <<문학공간>>으로 등단하였다,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며 <<주변인과 詩>> 편집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으로는 <빛과 생명> 외 다수의 동인지에 작품을 발표하였다.
흥륜들의 밤
박 성 규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었던 어느 날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초가지붕을 기와로 덮더니
고속도로가 생겼다고 시가지로 들어오는 길을 낸다고
도로에 편입된 집들을 눈 깜짝할 새 헐어 버리고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금이야 옥이야 가꾸던 채전밭 귀퉁이에
새로 집 지으면서 두 동강 나버린 동네
귀신 나온다던 공동묘지를 없애버리고
하늘까지 닿을 듯한 키 큰 아카시아 나무도 베어 버리고
보릿짚 몇 단으로 풋사과를 바꿔 먹었던 과수원도 없애버렸는데
유일하게 남겨둔 것은 개구리 소리
흥륜들 밤은 깊다
비오는 날 쓰고 싶은 편지
삶이란 것도
사랑 앞에선 부질없다 하기에
사랑이란 것도
삶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 하기에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
잃어버린 일상을 위해
양면괘지 서너장 쯤은 거뜬히 넘칠 만큼
편지를 쓰고 싶었는데
주소가 있어도 주소가 없고
수취인이 있어도 수취인이 없어
그냥 빗방울 떨어지는 곳마다
글자 하나씩 박아 두다가
우체통도 우표도 없어
창 밖만 바라보다
행여 비밀이라도 적을까 벌벌 떠는 볼펜만
어금니로 잘근잘근 씹어 댄 오후
삶을 배댤해 줄 이는 누구인가
사랑을 배달해 줄 이는 또 누구인가
빗방울 떨어지는 자리에 솟아나는
동그란 이름 하나
그것이 사연이었을까
해탈(解脫) 직전
야외에서 파티를 하다가
소나기를 맞았다
목욕하는 돼지수육
속옷까지 젖어버린 땅콩
고물을 다시 반죽한 팥떡
알코올 도수를 낮추려는 술
다시 물 만났다고 좋아하는 오징어포
물이 고였다고 헤엄치는 멸치떼
접시에 담긴 채
수계(受戒) 받을 자세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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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2004 계간 <<시인정신>>으로 등단하였다. 시인정신작가회 회원이며. <<주변인과 시>> 편집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으로는『비 오는 날 쓰고 싶은 편지』(2004),『난장이들이 부르는 노래』(2005)가 있다. 현재 현대중공업(주)에 근무하고 있다.
철봉은 힘이 세다
박 후 기
폐교에 눈 내린다
시소는 좀 더 어두운
하늘 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줄 끊어진 그네는 지쳐 보였다
흐린 연필심에 침을 발라
꾹꾹 눌러 공책 위에 글을 쓰듯
하얀 운동장에 자국을 남기며
내가 걸어간다
얼어붙은 운동장이 책받침 같아
내 흔적이 땅에 새겨지지는 않는다
눈 덮인 운동장은
텅 빈 공동화장실처럼 고요하고
측백나무 울타리 아래
엉덩이를 반쯤 까고 주저앉은 폐타이어는
아직도 긴장을 간직하고 있는지
가벼운 발길질에도 탄력적으로 꿈틀거린다
나는 가볍게, 무거운 몸을 끌어올려
물음표를 한 옷걸이처럼
철봉에 턱을 걸고 매달린다
철봉은 여전히 힘이 세다
그랬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들은 철봉을 향해 몸을 날렸고
더러는 외줄을 타는 곡예사처럼
맨발로 철봉 위를 걸어 다니기도 했다
하루는 올가미에 목이 묶인 개 한 마리가
철봉에 느낌표로 매달린 채
매를 맞으며 흔들리기도 했다
눈발은 해마다 폐교를 찾아오지만
세상의 모든 졸업생들은
과거로 돌아가는 길을 잊었느니
어느덧 나는 어른이 되어
철봉 대신 연봉에 매달리며 살아가고,
바닥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내리는 눈을 온몸으로 맞고 있다
움직이는 별
이삿짐을 꾸린다
좀 더 넓은 집을 원했으므로,
나는 차갑고 어두운
우주 저편의 저밀도지대를 향해
짐 실은 트럭을 몰고 간다
도시가 팽창을 멈추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불러오는 풍선의 표면에 들러붙은 티끌처럼
우리는 점점 서로에게서 멀어져 가고,
변두리의 버스 종점이 시(市) 경계를 넘어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듯
젖은 눈망울 반짝이는 어린것들을 이끌고
더욱 깊숙한 어둠 속으로
나는 달려간다
뒤돌아보면, 불 꺼진 내가 살던 집
눈감은 창문이여 안녕
나는 이제 더 이상
처절한 밤고양이 울음소리에도
잠든 네 몸을 흔들어 깨울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은
호롱을 떠난 불빛과 같고
다만, 검은 그을음 같은 구름만이
뒤돌아보는 별들의 반짝이는 눈빛을 가린다
나는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일이
멀어져 가는 별들의 뒷모습처럼
보일 듯 말 듯 위태롭게 빛날지라도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의 슬픈 두 귀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의 뭉개진 귀를 보면,
굳은 살 하나 박히지 않은
말간 내 두 손바닥이 부끄러워진다
높은 곳을 향해 뻗어가는 벽 위의 덩굴손처럼
내 손은 지상의 흙 한번 제대로 움켜쥔 일 없이
스쳐 지나가는 헛된 바람만 부여잡았으니,
꼬리 잘린 도마뱀처럼
바닥을 짚고 이리저리 필사적으로 기어 다니는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의 비애를
나는 알지 못한다
고단한 청춘의 매트 위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머리에 깔려 뭉개져버린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의 슬픈 두 귀를 보면,
멀쩡한 두 귀를 달고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평형감각 없이 흔들리는
내 어리석은 마음이 측은하고
내 것 아닌 절망에 귀 기울여 본 적 없는
잘 생긴 내 두 귀가 서글퍼진다
삶은 쉴 새 없이 태클을 걸어오고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의 몸은 둥근 통나무 같아
쓰러지고 구르는 것이 그의 이력이지만,
지구를 끌어안듯
그는 온몸 바닥에 밀착시키며
두 팔 벌려 몸의 중심을 잡는다
들린 몸의 검은 눈동자는
수준기(水準器) 유리관 속
알코올과 섞인 둥근 기포처럼
수평을 잡기 위해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의 두 귀는
세월의 문짝에 매달려 거친 바람 소리를 듣는,
닫힌 내일의 문을 두드리는 마음의 문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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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작가세계」로 등단하였고 시집으로는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가 있다. 2006년 신동엽 창작상을 수상했다.
그 강가에 오늘 다시 내가 서다
안 영 희
인사동 도자기 매장 앞에 책상을 놓은 그 사내는
북적대는 행인들 중 하필 나를 불러
뿌리 깊은 나무라 했다
뿌리는 무엇으로 깊어지든가
대형마트 예정지 팻말 박은
한시적 공휴지 둘레를 제 밭으로 삽질해 놓은 자
칼날 지르다 생 껍데기 벗겨내고
밑동에 불을 놓아 살해를 시도했던
아름드리 네 몸뚱어리 어루만지며 감금된 희망
겨울계엄령 풀려나도록 나는 빌었다
죽지 말거라! 죽지, 죽지 말거라!
그 겨울 강에 날 놓아 보내며 죽지 말거라! 죽지 말거라!...소리치던
충혈 된 그대의 눈을 보았다
독재정권의 비밀경찰처럼 이유 자르고
훼손하고 자상 입힌 삶, 지상에서 흘린 뜨건 피
땅 아래로 스미면 최상품 동력의 자양분이 되든가
앞 안 보이는 노여움 지층지층지층 후벼 파다가 보면
이르기도 하든가 타는 듯 죽을 수 없는
불덩어리의 사지 가닥가닥
적셔주는 물의 나라에 이르든가
이슬샤워중인
실핏줄까지 연둣물 밀어올린
이기고 돌아온 나무의 아침에
너무 찬연해 목이 메던 生
그대 가고 없는 그 江가에 오늘 다시
내가 서 있다
환절기
늦은 가을 선정릉 숲에서 보았지
참나무 등걸에 걸린
고스란히 알맹이만 빠져나간
매미의 옷
10년 만에 이삿짐을 싼다
노랗게 얼룩진 육아일기
스폰지케익 만드는 법, 돈까스, 슾, 샐라드
요리강습의 메모지와
가계부 한쪽에 그려진 애들의 낙서와
편지와, 그 아침나절 빛나던 햇볕의 내 정원
유행 지난 옷가지, 헌 가구와 함께
시효 다한
쓰지 못한 행복의
빈 차표도 버린다
아이들은 자라 아빠의 옷을 입고
다른 한쪽이 내려버린 시이소오를 혼자 타고 앉아
나는 어디까지 내려앉았는가.
10년 만에 이삿짐을 싼다
그 때, 빈 집 벗어 걸아 두고 간 매미는
어디로 갔지? 무엇이 되어?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광주에서 태어나 1990년 시집 <멀어지는 것은 아름답다>를 발표하면서 등단 시집 <물빛창>, <그늘을 사는 법>, <가끔은 문 밖에서 바라볼 일이다> 2005년 도예개인전 <훍과 불로 빚은 詩>를 열었고 시동인지 <낮게 그리고 느리게>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푸른 안부
유 순 예
스무 살 그녀를 꼬득이던 스물 다섯의 청년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그 전주 거시긴디요 유순예씨 맞는가요? 호적부 뒤적거려서
수년 전에 찾아냈는디 손가락이 떨려서 이제야 전화를 했네요
아침밥 해서 애들 둘 학교 보내고 큰놈은 대학생이 되어 타지로 나가고
마누라 몸이 성치 않아 안팎일 하느라 머리가 희끗희끗 헌디,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가요, 이녁은
마흔 둘 시를 쓰던 그녀가 마흔 일곱 공무중이라는 그에게 대답했다
비 오는 날이면 계집아이로 거슬러 올라가 토란잎 따서 머리에 쓰고
눈 오는 날이면 창 밖을 내다보며 식은 커피 잔을 만지작거리고
오늘처럼 바람 부는 날이면 그 바람 따라 흔들리며 살았다, 왜!
단풍잎 하나가
단풍잎 하나가 온 곳으로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기억 속으로 가라앉은 길을 더듬거립니다
온 길 잊어버린 건 아닐까
때 이른 서리가 반짝거립니다
지난 날 새들 깃들어 노래하고 춤추는 동안
가지 끝에 올라앉아
세상을 읽으며 묵언수행 하던 몸이,
떠나야 할 때 떠나는 법을 터득한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진 몸이,
목숨 부지하는 것들을 다 물들이고 있습니다
붉은 경전 한 권 大路를 쓸고있습니다
겨울 저 흰 산
천도복숭아 머루 벚
여름 그 싱그러움을 먹어대더니
도토리 밤 홍시
가을 그 풍성함을 먹어대더니
만삭이 되었네
겨울 저 흰 산
골짜기에 얼음 녹으면
자궁은 열려서
봄 쑥쑥 낳겠네
산 여기저기
꽃 소식 뛰어다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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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진안에서 태어나 2004년도 신인상 수상하였고 계간 <<주변인과 詩>> 편집동인 및 부산시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장작을 태우며
이 숙 희
토막 난 나무들이 뒷마당에 누웠다
산을 잡고 있던 다리를 빼자
작은 나무들이 빠르게 울타리를 쳤다
탈진한 몸을 부리던 호기好氣는
이제 마지막 불씨를 당기는 일
아궁이에 결가부좌하고 앉아
제 육신의 화火를 끄집어낸다
누군들 몸속에 화火가 없을건가
활활 제 몸이 열리는 순간
갇혀있던 생각들이 꾸역꾸역 가쁜 숨을 몰아쉬고
기억의 끈이 툭툭 우지직 선을 긋는다
생生의 혓바닥을 감고 있던 옹이에서 붉은 선혈이 뚝뚝 떨어지는
삶이란 어찌보면
저토록 처절함을 품는 일
송진내가 몸 사리고 있던 어둠을 걷어내자
굳은살도 제 몸을 접어 넣는다
눈을 감고 몸의 축을 허물어야 보이는
세계가 있다
다 보아도 눈 먼 그 막막함을 채우며
나를 비운 그 자리에서
톡톡
산이 바짝 긴장하며 몸을 끌어당긴다
섬
물이 운다
물결이 운다
술 취한 사내가
울 고 간 다
한 세상 설움 끌어안고
눈 먼 사내 뚜뚜뚜
트롬본 소리 울리며
저문 바다에 나와 응어리 풀고
간다
모래가 슬고 가면서 그려 둔
가락을 타고 새가 울고
그 울음 지우며 물결이 와서 또 운다
바위의 얼얼한 볼을 오래 어루만지던
서러운 사내의 뒤를 따라
바다가 온종일 들락거리다 간다
아직도
멀뚱멀뚱 보고 있는 저 사내의 오래 충혈된
눈동자가 검은 수의처럼 떨고 있구나
파전
하 루 종 일
시어머니 저녁 굶은 얼굴로 찌푸린 하늘이
한바탕 노랫가락을 뽑아 놓는다
박자도 서툰 장단을 치며 길고 길어 흐릿한 가사를 빼 먹고도
구성진 저놈의 가락은
목청도 좋다
파전을 붙이고
초간장을 만들어 종지에 담을 때까지
프라이팬의 기름방울도 빗소리를 닮아 자지러진다
부슬거리며 구성지고 구성지다 깔딱 넘어가는
저 빗줄기의 흉터자국이
긴 담장처럼 축축하고 지루하다
참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초간장을 꾹 찍어
꾸역꾸역 구겨 넣는 입에서
자글자글 익는 엇박자의 빗소리가
아련한 풍경처럼 리듬을 탄다
돼지비개와 오징어 다리와 뒤엉긴 파조차도 익어가는 시간을 기다릴 줄 안다
물방울도 빗물이 될 때까지의 기나긴 변이變異를 안다
나를 위해 저토록 사무친 가락으로 울어 줄 누군가가 그립다
나는 빗방울처럼 몸을 옹그린다
저렇게 떨어지는 캄캄한 순간에도
프라이팬의 파전이 달그락거리듯
창 밖으로만 눈이 가는 나의 이 달그락거림
길게 목을 뽑는 눈자위가 점점 축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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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대구교육대학교 미술교육과와 경일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수료했다 1982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내가 낙엽되어 그의 호주머니 채우리}, {붉은 길} 등이 있다.
황금사과나무 한 그루
이 정 자
달고 맛있는 사과를 먹어 보았는가
이브의 유혹처럼 주렁주렁 열린
사과나무에 손을 뻗어 사과를 따자
태양의 기운이 쿵쿵 혈관을 따라 돈다
일향산 가는 길, 지칠 줄 모르고 흐르는 약수에
사과를 씻어 한 입 베어 먹어 보았는가
행간을 더듬어 읽어 내려가던 헌화가에서 눈을 떼어
문득 고개 드니 하늘은 아득하기만하고
저 벼랑의 구절초라도 꺽어 줄 누군가가 그리워진다
사과의 속살을 베어 물면서 일향산에 올라 보았는가
사과에 박혀 있는 독까지 먹어 보았는가
달빛 쏟아지는 붉은 담벼락에서 나눈 첫키스의
향내가, 그 뜨겁던 숨결이 그랬던가
격정의 여름이 가고 저물어가는 가슴 일 때
꿀 박힌 사과의 독까지 먹어 보라
당신의 몸속에는 이미 사과나무 한 그루 들어 설 것이다
그리고 태양이 말없이 뻗어와 푸른 열매를 익힐 것이다
주렁주렁한 황금빛 사과나무 한 그루 거느린 당신
등 뒤로 노을이 지고
누군가가 황금사과를 따기 위해 당신에게로
흰손을 쑥, 들여 밀 것이다.
시인 센서
세상이 다 전원電源이다
전신에 주렁주렁 플러그를 매달고
언제 어디서
팍, 튈지도 모를
잠재된 폭발성의 센서 하나를
몸속에 내장하고 있다
오감을 활짝 열어 놓은 채
뜨거운 감전을 기다리고 있다
팽팽한 무선 전신을 타고
하늘 바다 나무 꽃 바람 섬 불 꿈 이상…
그것들과 끊임없이 교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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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에서 태어나 충북대 불문과 졸업하고 1998년 <문예한국>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능소화 감옥>이 있다.
2005년 오딧세이아
- 西海詩 7
정 복 선
이사철이다
멀미가 난다
고가사다리를 타고 짐이 내려간다
고가사다리를 타고 짐이 올라간다
딸네가 안산으로 이사를 떠났다
격랑의 파도를 건너
「고려청자상감 물가풍경무늬」 찻잔처럼
파도 위를 둥둥 떠가는 배 한 척
몇 년 동안 저 배는 이 섬에 붙들려 있었다
새로운 섬에서는 얼마간이나 붙들려 있을 것인가
편안한 만큼 혹은 힘든 만큼
대출받은 만큼 혹은 저축이 늘어나는 만큼
저당 잡힌 목숨줄
(이 년, 사 년,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 한 가족을
가두고 부리고 때론 채찍으로 때론 달콤함으로 달래리)
나도 한때는 주저앉기도 했다
돌아갈 곳이 있음을 잊기도 했다
머지않아 탈출을 꿈꾸며 수평선을 본다
섬과 섬이 기다리는 다도해, 위태로운 해협,
치매의 노모老母는 뗏목으로 암초 사이를 떠돌고
이타케 섬은 멀기만 하다
화가 강용대의 우주
아무런 단서도 못 찾겠다
내가 한 일은 9년 동안 서랍에서 잠자던
명멸明滅하는 별들, 그 연꽃좌座의 우주를
인사동 표구사에 맡겼을 뿐이다
찾아온 액자를 오늘 아침에 끌러보니
한복판의 별똥별이 사라져버렸다 아뿔사,
표구사에 전화를 두 번이나 걸었으나 모른다는 대답
안경을 끼고 돋보기를 들고 요리조리 꼼꼼히 살펴보아도
먹빛 허공 속을 비끼던
푸르디푸른 3-4cm의 꼬리가 사라졌다
잠시 흔적을 보여준 화선지를 떠나
별똥별이 다른 우주로 회항回航해갔다
몇 년 전에 요절한 화가 자신처럼
불꽃도, 티끌도 남김없이,
솟틀마을 장날
장돌뱅이들이 봇짐을 메고
휘적휘적 산을 넘어갑니다
장돌뱅이들이 뉘엿뉘엿 내를 건너갑니다
엿장수 가위소리도 들리고요
모락모락 김 오르는 팥죽동이를 인 아낙도 보입니다
아이들은 추운 줄도 모르고 뛰어놉니다
옛 정취는 찾기 어렵다 해도
이곳에선 아직도 장이 섭니다
2일 7일엔 청평장 1일 6일엔 설악장
4일 9일엔 현리장 5일 10일엔 가평장
가끔씩 이 장 저 장에 가서 꽃나무랑
밭에서 방금 뽑아온 채소나 나물을 삽니다
오늘은 담양산 삶은 버들로 엮은 연분홍빛
키와 짚으로 짠 멱둥구미를 샀습니다만
낯선 나라 초라한 이의 손길인지도 모르지요
장돌뱅이가 장에서 장으로 떠돕니다
19세기가 20세기가 되고 다시
바다가 됩니다
손수 짜고, 심고, 만든 것들, 안개, 바람이
냇물 따라 훠이훠이 떠갑니다
가위소리도 따라갑니다
비틀걸음의 아낙도 따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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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학교 영문학과와 성신여대 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88년 <<시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는 <<작은 섬 하나 수 놓으며>>, <<맨발로 떠나는 사람>>, <<등불아래 서울>>, <<여유당 시편>> 등이 있다.
파랑주의보
진 란
네 전설은 가끔
낯설게 떠밀려 와서
가슴 가장자리에 걸터앉는다
바닷속 깊이 가라앉았던 부유물들이
각각 난파당했던 기억을 잊어버린 채
섬으로 올라와 얹혀 있고.
붉음과 검정과 흰색의 만장이 펄럭이며
미친년 치마 벗겨지듯 너덜대는 깃발사이로
허옇게 질린 낯들이 멀미를 하고.
굶주린 승냥이마냥 날카로운 울부짖음으로
달려오기 시작하면 넌,
억장으로 무너져 내린 하늘과 혼절한 바다였었나,
방파제 석부 사이사이로
파랑,파랑 허연 이를 드러내며
오랜 인고의 혼신을 다해
낡은 목선을 지키려는 어부들의 목숨이며
붓다의 설법도 가리우는 팔난의 지혜였던 것
태풍 5호 라마순
황토빛 해안선을 달려왔다
해송의 굽은 몸뚱아리 사정없이 뒤흔들면서
더운 숨결로 후끈후끈 아스팔트를 달구더니
불면의 시간 위에 밤새 서성이다
산발한 채로 달려들었다
방파제 넘어 허옇게 속옷을 드러내고도
부끄러움도 잃어 버린 여자, 어설픈
눈물 몇 방울 뚜두두둑 뿌리더니
앙칼진 방종을 드러낸다
아찔한,순수를 배도한 몸짓,
......아픔을 감내할 준비 미비......
광화문 정보통신부앞 거리에 서서
추룩거리는 호흡의 리듬을 듣는다
꼭 있어야 할 사람
찾아야만 하는 사람 구인광고를 내듯이
우산 밑으로 들어서며
발목까지 잠겨서 찰방거리는 남루.
푸른 나뭇잎 아래 성한데 없는 기억이 있어
더러는 잊고 또 더러는 잃어버리는
전날의 아픔들이 고스란히 일어설 일이다.
-이 한 해가 빈 껍데기로 녹아 흐르는
강물이 된다 해도 할수 없다
서툰 장난에 아이들이 다칠순 없다
콸콸 쏟아붓는 심술에 침수되어
나무가 뽑히고 전신주가 꺽어지고
히스테릭한 산발적인 외침,
아아아아아 ----------------
이젠 쓰러질수록 더 또렷해지는
통증을 다 새겨 놓을테다
*Rammasun은 태국어로 천둥의 신
우화를 꿈 꾼 날
일렁, 대숲이 흔들린다
마당에 비질을 하듯
쏴르르
쏴르르
뒤척임 한번 없이 댓이파리들
삐라처럼 쏟아져 내렸다
허공 중에 허공
내통할 수 없는 마디마디의 숨막힘
일제히 입을 다물자
귀가 닫힌다
생채기를 핥아주듯 대숲이
통째로 쏠린다
언제였을까, 숯불에 달군 정을 박아
갈기를 세웠던 때는
꿈을 꾸었었다
맨살의 통증을 견딜 수 없어
비상하는
그 꿈을!
연실이 끊기고
섶다리가 끊기고
오래도록 길에 마른 잎들 나뒹굴던,
대숲의 몸짓으로 운 적 있었다
쏴르르
쏴르르
내 한 생애가 삐라처럼 나부낀 적 있었다
......................................................................................................................................................................................... 2001년 계간지 <<시하늘>>. 2002년 이후 시전문 계간지 <<주변인과 시>>로 작품 활동을 하였다. 현재 <<주변인과 시>> 편집 동인이자 편집장을 하고 있으며 <<시몰이>>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옥편에서 ‘미꾸라지 추(鰍)’자 찾기
천 수 호
도랑을 한 번 쭉 훑어보면 알 수 있다
어떤 놈이 살고 있는지
흙탕물로 곤두박질치는 鰍
그 꼬리를 기억하며 網을 갖다댄다
다리를 휘이휘이 감아오는
물풀 같은 글자들
송사리 추(鯫), 잉어 추(鱃), 쏘가리 추(鯞)
발끝으로 조근조근 밟아 내리면
잘못 걸려드는
올챙이 거머리 작은 돌멩이들
어차피 속뜻 모르는 놈 찾는 일이다
온 도랑 술렁인 뒤 건져 올린
비린내 묻은 秋는 가랑잎처럼 떨구고
비슷한 꼬리의 鯫, 鱃, 鯞만
자꾸 잡아 올린다
저수지 속으로 난 길
돌 하나를 던진다 수면은 깃을 퍼덕이며 비상하려다 다시 주저앉는다 저수지는 참 많은 길을 붙잡고 있다 돌이 가라앉을 때까지만 나는 같이 아프기로 한다 바닥의 돌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돌을 던지고 반지를 던지고 웃음과 울음을 던진다 그러나 물은 한 번 품은 것은 밀어내지 않는다 물 위의 빈 누각처럼 어둡고 위태로워져서 흘러가는 사람들 저수지는 그들의 좁은 길을 따라가지 않는다
삐걱거리는 목어가 둑 아래 구불텅한 길을 내려다보려고 몸을 출렁인다 잉어는 물 위의 빈집이 궁금하여 주둥이로 툭툭 건드린다 잉어와 목어의 눈이 잠깐 부딪친다 마주보는 두 길이 다르다
떡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가 뒤섞여 길을 이루고 있다 떨어진 잎들이 제 이름을 찾지 못한 채 저수지로 흘러든다 길을 끊는 저수지에 나는 다시 돌을 던진다 온몸으로 돌을 받는 저수지, 내 몸 속으로 돌이 하나 떨어진다
가마우지 바다
짧고 어두운 순간이 휙, 지나갔다
가마우지 그림자다
내 머리 위를 스쳐 그의 머리 위로 날아가는 동안,
새는 내 그림자 한쪽을 찢어다가
그의 머리 위에 툭 떨어뜨린다
쭈뼛 솟구치는 머리카락,
가마우지를 올려다보는 그의 얼굴이
금새 캄캄해진다
다시 새는 그의 몸 안쪽에서
그림자 한 조각을 꺼내 물고 난바다로 날아간다
모래바닥에 끌리는 찢어진 그의 그림자,
그 자력(磁力)이 끈끈하다
(새와 그림자 사이,
자석을 들이댄 책받침처럼
빳빳한 수평선!)
수평선을 가운데 놓고
나는 사진을 찍는다
검은 바다 한 장이 호치키스처럼
가마우지를 찰깍, 깨문다
부리까지도 깜깜한 지독한 그늘이다
......................................................................................................................................................................................... 1964년 경북 경산 출생. 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현재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박사 재학 중.
먼저 태어난 녀석들
하 상 만
개자식들이 벚나무 아래에 앉아 회식을 하고 있어요
두발로 걸어 다녀요 제법 풍류를 알아서 벚나무를 두 발로 긁고 있어요
떨어지는 꽃잎은 바람의 것인데
오늘 잡은 칠면조 요리는 향이 참 좋아요 두 발로 걷는
개자식들은 칠면조를 씹으며
돼지고기 맛이 난다면서 좋아해요 돼지는 네 발로 걷는데
개자식들은 처음부터 개자식이 아니었어요
사람으로 태어났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개자식으로 변해요 사는 게 불안하거든요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아요
그들이 컹컹 서로에게 좋은 소리로 짖어대는 건
사이 좋게 땅을 나누어 가지기 위해서인데 침팬지처럼
두목에게 가장 좋은 소리로 짖어대는 녀석이
가장 넓은 땅을 차지하지요
나이가 들어서도 컹컹 좋은 소리를 내지 못하면
그건 언어 장애를 가졌거나 아직도 덜된 녀석이란 뜻이에요
그들과 다른 종이 되어선 외로워요
먼저 태어난 녀석들이 먼저 개자식이 되어요
오래 끓인 칠면조에선 돼지고기 맛이 나요
칠면조는 목이 끊긴 채 놀란 근육으로
몇 발자국 걸어 갔죠
칠면조에게 동정심이 가는 게 아니에요
제발 취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 인생의 브레이크
먹고 살길이 막막해서 운수 회사에 찾아 갔어
25t 트럭 몰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왔다 갔다 하면
제법 돈이 될 거라 생각했는데
나이는 몇이냐
결혼은 했느냐
아이는 있느냐
사장님의 질문에 척척 대답하고 나니
25t 트럭은 영 못 몰 거라네
마누라 있고 애도 있고 해서 버는 김에
확 벌어야겠는데
어째서 그러냐고 물었더니
거저 180은 밟아줘야 수지가 맞는데
조심성이 생겨서 그럴 수야 있겠는가
100만 넘어도 발바닥이 올라가니
처자식이 브레이크야, 브레이크
이러더구만
지금은 5t 트럭 몰고
가까운 데나 조심조심 왔다갔다
하고 있지
일산 카트 경주장에 갔다가
아이들 데리고 소풍나온
어느 가장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동국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2005년 <문학사상>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등단했다.
망 치
허 열
벽이 참 단단하다, 무쇠망치
옷 한 점 걸 구멍 하나
제대로 뚫지 못한다
온 종일 여기 저기 못 박아 보지만
시원하게 뚫린는 곳 없다
만만한 곳 한 군데도 없다
세상 밖으로 나와 있는 열 손가락
아프다, 가슴이 늘 징하다
옹추들의 살기찬 눈빛이
입체적으로 꽉 찬 사위
평면으로 튀어 나온 망치의 감각은
세상의 귀퉁이에 선 자리에도
어수룩한 벽은 하나도 없다
몇날 몇일 제 머리만 치다가
겨우 돌아 와
TV 와 겹쳐서 누워있는 무쇠망치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월간 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는 <그리워서 눈조차 뜰 수 없었습니다>가 있다.
□■□ 특강:
향유의 공간과 유랑의 공간
허 병 식
(동국대 국문학과 강사)
1. 유년의 신화와 향유의 공간
세계를 자신의 집처럼 아늑하게 느끼는 자는 길을 나서지 않는다. 일체의 가치체계가 완결되어 있고 그것이 유기적인 전체성을 이루고 있는 세계에서 개인이 자신의 자의식을 내세우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그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가야할 길이 이미 정해져 있으므로, 그는 결코 자신의 운명을 건 모험을 시도하지 않는다. 그에게 주어진 일은 개인의 운명이 아니라 공동체의 운명에 대해 아는 것이고, 그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공동체의 완결된 의미 속에서 개인에게 주어진 공간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 공간 속의 사건과 사물들은 신비롭고 진귀한 것이지만, 또한 언제나 자신에게 친숙하고 친밀한 대상들이다.
루카치가 ‘서사시의 세계’라고 명명했던 이러한 공간을 행복했던 유년을 노래하는 시인들에게서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언제나 그리움의 대상인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평화로왔던 ‘유년의 신화’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백석의 초기시를 담고 있는 시집 사슴에서 발견되는 것도 이러한 유년의 신화적 공간에 대한 기억이다. 「여우난골족」, 「가즈랑집」, 「古夜」 등의 시편에서 보여지는 그 공간은 공동체의 풍요로움을 담고 있는 곳이고, 시인의 역할은 그 풍요로움의 향유를 기억하는 것, 혹은 그 기억을 향유하는 것이다.
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뽁운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게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타고 시집가는 노름 말타고 장가가는 노름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복적하니 논다
「여우난골족」 부분
내일같이 명절날인 밤은 부엌에 쩨듯하닌 불이 밝고 솥뚜껑이 놀으며 구수한 내음새 곰국이 무르끓고 방안에서는 일가집 할머니가 와서 마을의 소문을 펴며 조개송편에 달송편에 편두기송편에 떡을 빚는 곁에서 나는 밤소 팥소 설탕 든 콩가루소를 먹으며 설탕 든 콩가루소가 가장 맛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얼마나 반죽을 주무르며 흰가루손이 되여 떡을 빚고 싶은지 모른다
「古夜」 부분
유년의 신화적 공간은 가족 공동체가 유기적 전체성을 이루고 있는 장소이다. 이 장소에서 어린 화자는 세계를 먹거리들과 동일시한다. 유년의 세계는 먹거리들이 집합해 있는 장소이다. 먹거리들이 세계속에서의 화자의 실존을 규정하고 있으므로,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를’ 향유하는 것이 그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된다. 놀이 또한 마찬가지이다. 쥐잡이와 숨굴막질과 꼬리잡이를 하는 것은 세계를 친밀하고 평화롭게 느끼는 화자에게는 너무도 자연스런 삶의 방식이다. ‘나는 얼마나 반죽을 주무르며 흰가루손이 되여 떡을 빚고 싶은지 모른다’라는 고백에서 보여지듯이, 그에게 먹거리와 놀이의 향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세계는 음식을 먹고 놀이를 하는 축제가 벌어지는 장소였음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 「여우난골족」 등의 시적 화자의 역할이고 현실의 자아는 가족들과 먹거리들과 놀이의 이름들을 길게 호명하는 것으로 그 기억을 향유하고 있는 것이다.
2. 공동체의 붕괴와 자기동일성의 소멸
사슴에서 공동체의 풍요로운 세계를 노래하였던 백석은 이후의 작품에서는 고향을 떠나 유랑하는 자의 향수를 드러내는 시편들을 발표한다. 사슴 이후에 쓰여진 시편들에서 고향을 떠난 떠도는 자들의 향수가 나타난다는 것은 풍요로움을 간직한 공간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고향이 이미 붕괴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서두에서 밝혔듯이 고향을 아늑하게 느끼는 자는 자신의 운명을 건 모험의 여로를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세하게 살펴보면 공동체의 풍요로운 공간인 고향의 붕괴에 대한 징후들은, 사슴의 시편들에서도 적지않게 발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키사키의 바다」, 「城外」, 「미명계」, 「쓸쓸한 길」 등에는 고향의 풍요를 누리지 못하고 떠도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엿보인다. 기억을 향유하던 현실의 자아는 이제 몰락하는 고향의 모습을 정직하게 증언하고 있다. 그 현실의 고향에는 아무도 따르지 않는 길을 쓸쓸하게 걷는 사람들(「쓸쓸한 길」)이 있고, 이웃들이 떠나고 ‘그느슥한’ 그림자만 남은 마을(「城外」)의 모습이 발견되고 있다.
어슥하니 물기에 누굿이 젖은 왕구새자리에서 저녁상을 받은 가슴앓는 사람은 참치회를 먹지 못하고 눈물겨웠다
어득한 기슭의 행길에 얼굴이 해쓱한 처녀가 새벽달같이
아 아즈내인데 병인(病人)은 미역 냄새 나는 덧문을 닫고 버러지같이 누었다
「가키사키(柿崎)의 바다」 부분
이국땅을 떠돌며 저녁상을 받고도 그것을 먹지 못하는 시적 자아는 세계로 통하는 문을 닫아걸고 눕는다. 세계로부터 소외된 자아는 자신을 버러지처럼 여기고 있다. 세계는 그에게 더이상 아늑한 장소가 아닌 것이다. 이 시의 장소는 고향의 공간이 아니지만 시적 자아의 태도에서는 고향의 몰락에 대한 암시를 발견할 수 있다. 사슴의 세계를 이루고 있는 시편들은 고향의 풍요로움뿐만 아니라 고향의 몰락에 대해서도 노래하고 있음이 드러나는 것이다.
시인의 고향에 대한 사유를 더 깊이 파악하기 위해 사슴에 담긴 고향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시인의 등단작인 「정주성」을 제외하면 시집 사슴의 제일 앞에 놓인 시인 「산지」와 맨 뒤에 놓은 「三防」은 사실상 동일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동일한 작품을 시집의 맨 앞과 맨 뒤에 배치한 것은 시인의 의도가 작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산지」와 「三防」은 고향에 대한 평범하고 담담한 진술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갈부던 같은 약수(藥水)터의 산(山)거리
여인숙(旅人宿)이 다래나무 지팽이와 같이 많다.
시냇물이 버러지 소리를 하며 흐르고
대낮이라도 산(山)옆에서는
승냥이가 개울물 흐르듯 운다.
소와 말은 도로 산(山)으로 돌아갔다.
염소만이 아직 된비가 오면 산(山)개울에 놓인 다리를 건너
인가(人家) 근처로 뛰어온다.
벼랑턱의 어두운 그늘에 아침이면
부엉이가 무거웁게 날아온다.
낮이 되면 더 무거웁게 날아가 버린다.
산(山)너머 십오리(十五里)서 나무뒝치 차고 싸리신 신고 산
(山)비에 축축이 젖어서 약(藥)물을 받으러 오는 산(山)아이도 있다.
아비가 앓는가 부다.
다래 먹고 앓는가 부다.
아랫마을에서는 애기무당이 작두를 타며 굿을 하는 때가 많다.
「산지」 전문
갈부던 같은 약수터의 산거리엔 나무그릇과 다래 나무지팽이가 많다.
산 너머 시오리(十五里)서 나무뒝치 차고 싸리신 신고 산비에 촉촉이 젖어서 약물을 받으려 오는 두멧아이들도 있다
아랫마을에서는 애기무당이 작두를 타며 굿을 하는 때가 많다
「三防」 전문
「산지」와 「三防」에서 묘사되는 고향은 자연을 담은 풍물과 고향 사람들과 그들이 믿는 무속이 있는 장소이다. 고향의 풍물과 사람들과 무속신앙은 사슴의 자아를 삼면으로 에워싼 세 개의 뚝(三防)이다. 뚝은 외부의 세계로부터 그 안에 있는 대상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뚝은 또한 장벽이 되기도 한다. 그 뚝 안에 갇혀있는 자아는 외부와의 진정한 소통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세 개의 뚝 중에서도 특히 무속은 고향에 정체성을 부여해 주는 대상이면서 시인의 자아를 지속적으로 억압해 온 대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우가 우는 밤이면
잠 없는 노친네들은 일어나 팥을 깔이며 방뇨를 한다
여우가 주둥이를 향하고 우는 집에서는 다음날 으레히 흉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오금덩이라는 곳」 부분
구신의 딸인 ‘가즈랑집 할머니’가 있고(가즈랑집), 섣달밤에 오는 눈을 ‘치성이나 드리듯 정한 마음으로’ 받는 사람들이 있고(고야), ‘마을에서 삼굿을 하는 날’에 ‘건넌마을서 사람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 소문이’ 나는 곳(여우난골)이 사슴의 고향공간이다. 이러한 고향의 무속에 대한 시인의 생각은 이북에서 발표한 시를 제외하면 백석이 발표한 마지막 시작 중 하나에 속하는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나는 이 마을에 태어나기가 잘못이다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나는 무서워 오력을 펼 수 없다
자 방안에는 성주님
나는 성주님이 무서워 토방으로 나오면 토방에는 디운 구신
나는 무서워 부엌으로 들어가면 부엌에는 부뜨막에 조앙님
〔……〕
나는 고만 디겁을 하여 큰 행길로 나서서
마음놓고 화리서리 걸어가다 보니
아아 말 마라 내 발뒤축에는 오나가나 묻어다니는 달걀구신
마을은 온데간데 구신이 돼서 나는 아무데도 갈 수 없다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부분
위의 시에서 보여지는 ‘구신들의 세계’에 대한 시인의 태도는 이중적이다. 시적 화자는 귀신들이 무서워서 사방으로 도망을 다녔다는 진술을 하고 있으나, 온갖 귀신들의 이름을 나열하는 시인의 태도는 먹거리와 놀이의 이름들을 호명하며 향유하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귀신들이 사는 무속의 세계는 고향이라는 공간에 정체성을 부여하면서, 한 편으로는 시인을 억압하는 대상이었던 듯하다. 시인의 자아가 고향의 풍물들과 사람들과 무속의 세계와 하나가 되어 그 세계를 평화롭고 아늑하게 여길 때 그는 그 세계의 기억을 향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고향의 공간이 몰락하여 더이상 이전의 아늑함을 느낄 수 없을 때, 세계와 자아가 분리되어 진정한 자기동일성을 발견할 수 없을 때, 시인을 떠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슴 이후에 나타나는 유랑의 시편들은 시인의 그러한 길떠남을 증언하고 있다.
3. 유랑의 공간과 공동체적 자아의 발견
사슴 이후의 시편들에서 발견되는 것은 고향을 떠나 떠도는 자들의 향수이다. 그 향수는 「고향」에서처럼 시인이 타관에서 만난 사람의 손길에서 고향의 따스하고 부드러움을 느끼게 만들기도 하지만, 시인에게 고향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도 먹거리와 ‘고향적인 것’을 간직한 풍물들이다. 시인은 ‘정갈한 노친네의 내음내’가 나는 모밀국수에서 ‘가슴에 뜨끈한 것을 느끼며’(北新), ‘명태 창난젓에 고추무거리에 막칼질한 무이를 비벼 익힌 것’에서 향수를 맛본다(北關). 그는 이방의 장거리에서 ‘기장차떡’과 ‘도토리묵’과 ‘도토리범벅’과 ‘호박죽’ 같은 것을 맛보며 직설적으로 ‘나는 기쁘다’라고 말하고 있다(월림장). 이방에서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대상을 만남으로써 그는 이방을 고향처럼 느끼는 일시적인 기쁨을 지닉 되는 것이다. 그의 고향에 대한 향수는 때때로 시인의 자아를 한없는 감상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국수」 부분
구신과 사람과 넋과 목숨과 있는 것과 없는 것과 한줌 흙과 한점 살과 먼 옛조상과 먼 훗자손의 거룩한 아득한 슬픔을 담는 것
내 손자의 손자와 손자와 나와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와 …… 수원 백씨(水原 白氏) 정주 백촌(定州 白村)의 힘세고 꿋꿋하나 어질고 정 많은 호랑이 같은 곰 같은 소 같은 피의 비 같은 밤 같은 달 같은 슬픔을 담는 것 아 슬픔을 담는 것
「木具」 부분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대상들인 ‘국수’와 ‘목구’를 보면서 한없는 감상에 빠져드는 시의 화자는 그 대상을 하나의 살아 있는 신화의 차원에까지 이끌어간다. 그 신화의 세계는 앞에서 살폈던 유년의 신화와 맞닿아 있다. 시인이 국수와 목구를 매개로 하여 획득하는 것은 대상을 공유하고 있던 사람들, 유년의 사람들과의 연대감이다. 그러한 시인의 태도는 페시미즘의 절절한 노래를 이루어내지만 한편으로는 대상을 물신화하는 경향을 드러내기도 한다.
조상에게 제를 올릴 때 사용하는 목구를 보면서 ‘먼 옛조상과 먼 훗자손의’, ‘나와 손자와 할아버지의’ ‘거룩하고 아득한 슬픔을 담는 것’이라고 말하는 시인은 개인을 넘어서는 공동체적 자아에 대한 염원을 고향적인 풍물에 담아내고 있다. 사실 백석의 유랑시편들에서 발견되는 것은 유랑에서 만난 풍물들을 통해 공동체적 자아, 민족적 자아를 발견하려는 노력이다. 그는 모밀국수를 먹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문득 가슴에 뜨끈한 것을 느끼며/소수림왕을 생각한다 광개토대왕을 생각한다’라고 말하고(북신), 북관에서 맛본 음식의 맛에서 ‘까마득히 신라 백성의 향수’를 맛본다. 그는 고향을 떠남으로 해서 비로소 공동체의식, 민족의식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적 자아’를 보존하려는 노력을 보여주는 시편들은 공동체가 지니는 유기적인 전체성 속에 안주하고자 하는 욕망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고향의 풍요를 노래한 사슴 시편들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시적 자아의 태도가 변하지 않은 채로 고향 공간의 범위가 보다 넓게 확장되어진 것이다. 세계를 고향처럼 느끼는 시인은 이제 고향적인 것과 관계 없는 타인들까지도 친근하게 여기는 정서를 지니게 된다. 그는 중국사람들과 같이 목욕을 하면서 ‘조상도 서로 모르고 말도 제각금 틀리고 먹고 입는 것도 모두 다른’ 사람들과 ‘한 물에 몸을 씻는 것’이 쓸쓸하고 슬픈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곧 그 낯선 사람들이 도연명이나 양자처럼 가가 좋아하는 인물들의 후손임을 떠올리고는 ‘그 오래고 깊은 마을들이 참으로 좋고 우러러진다’라고 말하고 있다(조당에서). 또한 대보름 명절을 타관에서 보내는 쓸쓸한 신세를 서글퍼하다가 두보나 이백 같은 중국의 시인들을 떠올리며 스스로 위안을 삼기도 한다(두보와 이백같이). 유랑의 시편들은 고향적인 풍물의 발견을 통한 공동체의식을 지니게 되고, 세계와 타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획득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4. 개인적 자의식의 심화
유랑시편들에서 발견되는 백석의 현실인식은 공동체적 자아와 타자의 발견이라는 형태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공동체 속에서 안주하려는 욕망은 주체를 진정한 자아의 발견에 이르게 하지 못한다. 시인이 발견한 고향적인 풍물과 풍속들은 영원하지 않으며, 더이상 시인의 실존을 규정해 주지 못한다. 사실 고향이란 그것을 발화하는 화자의 기억 속에서 언제나 제구성되는 것이고, 심지어는 발명되기도 하는 것이다. ‘고향’을 말하는 자에게 그것은 시원의 시간․공간이 되고, 회고적이며 회귀하는 시간․공간으로서 ‘고향’이 제시되기 마련이다. 그것이 바로 구성되고 상기되는 시간․공간으로서의 ‘고향’이다.
그러한 깨달음을 통해 시인이 보여주는 것은 공동체를 떠난 진정한 자아를 추구하는 자의식의 세계이다. 그는 드디어 “나의 조상은 형제는 일가친척은 정다운 것은 그리운 것은 사랑하느 것은 우러르는 것은 나의 자랑은 나의 힘은 없다 바람과 물과 세월과 같이 지나가고 없다”(북방에서)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공동체의 기억이 사라지고 없는 곳에서 그가 대면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진정한 맨얼굴이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은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람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흰 바람벽이 있어」 부분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부분
유랑의 끝에서 형성된 시인의 자의식적 세계는 공동체로부터 벗어난 자아의 영역을 확보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이 자아를 규정해 주던 공동체의 질서로부터 벗어나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가 ‘나의 힘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대상은 더이상 고향적인 것, 공동체적인 것에서 발견될 수 없다. 그것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넋 하나를 얻는다는 크나큰 그 말’(허준)을 통해 획득될 수 있는 대상이다. 그는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생각하며 공동체를 떠난 자아가 나아갈 방향을 스스로에게 제시하고 있다. 굳고 정한 갈매나무는 유랑의 체험을 통해 시인이 도달하게 된 정신적 높이와 자아의 발견을 보여주는 표상이다.
고향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아의 발견을 향해가는 백석의 시적 여정은 하나의 완성된 존재를 향해가는 삶의 모습을 제시해주고 있다. 한 스토아 철학자가 남긴 다음과 같은 말은 백석의 지적 여정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척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고향을 감미롭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허약한 미숙아이다. 모든 곳을 고향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이미 상당한 힘을 갖춘 사람이다. 그러나 전세계를 타향이라고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완벽한 인간이다’ ( 성 빅톨의 휴고, 디다스켈리콘, 에드워드. W. 사이드, 박홍규 역, 오리엔탈리즘, 교보문고, 1991, p,416에서 재인용)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00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분에 당선하였고, 동국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을 졸업하였다. 평론으로 「진정성의 서사와 주체의 귀환」, 「민족문학의 유령극장」 등이 있다.
■□□ 시우주 : 특강/ 시낭송/ 암송시/ 음악 /시극 (가나다순)
2004년
제 1회: 이재무/ 고영섭 구순희 김영탁 박경림 이명훈 이영식 이재무 정병근/ 이대성(클라리넷)
이판사판(동국대 불교대 풍물패)
제 2회: 황훈성/ 고영섭 고운기 구순희 김영교 김영탁 김지혜 이명훈 이영식 채상우/
장미현(이화여대 대학원, 해금)
제 3회: 이도흠/ 고영섭 김영교 나호열 이명훈 이원 장석남 채상우 함성호
제 4회: 김탁환/ 고영섭 고현정 김탁환 나호열 여영현 이지현 차창룡 채상우
제 5회: 나호열/ 고영섭 김성오 김영교 김행숙 나호열 노명순 윤정구 이나명 이만식 조정인
진영대 최영규 채상우 한이나
제 6회: 윤재웅/ 고영 고영섭 김성호 김인구 나금숙 나호열 문경 여영현 이나명
제 7회: 이만식/ 강상윤 고영섭 김성호 나금숙 나호열 문혜진 박정대 여영현 이만식 정복여
제 8회: 채상우/ 고영 고영섭 김경성 김민자 김인구 나금숙 나호열 채상우 최윤경 하훈
제 9회: 고인환/ 강상윤 고영 고영섭 나금숙 나호열 배용제 안영희 여영현 이만식 정복선 황인숙
제10회: 정끝별/ 강상윤 고영섭 김상미 나금숙 나호열 안영희 이홍섭 정끝별 정복선
제11회: 김수이/ 강상윤 고영 고영섭 김인구 나금숙 나호열 박형준 안영희 이정록 정복선
제12회: 이승하/ 강상윤 고영섭 김기택 김명리 김영교 김인구 나금숙 나호열 안영희 이승하
정복선/ 나유성
2005년
제13회: 박주택/ 강상윤 고영섭 김인구 나금숙 나호열 박주택 박찬일 안영희 이진명 정복선/
김순영
제14회: 엄경희/ 강상윤 고영섭 김인구 나금숙 나호열 류승도 박주택 안영희 윤의섭 이병률
정복선/ 김순영/ 노명순
제15회: 한명희/ 강상윤 고영섭 길상호 김인구 김충규 나금숙 나호열 류승도 안영희 정복선
한명희/ 배홍배
제16회: 박철화/ 강상윤 고영섭 김인구 나금숙 나호열 신채린 안영희 장대송 정공량 정복선
한명희
제17회: 맹문재/ 강상윤 고영섭 길상호 김인구 나금숙 나호열 맹문재 안영희 이기와 이윤학
윤관영 정공량 정복선
제18회: 남진우/ 강상윤 고영섭 길상호 김인구 나호열 남진우 류승도 박라연 안영희 오태환
정공량 정복선/ 김순영
제19회: 송용구/ 강상윤 고영섭 김인구 나호열 류승도 박남희 송용구 신채린 안영희 이민하
정공량 정복선
제20회: 강상윤/ 강상윤 고영섭 김인구 나호열 류승도 신채린 안영희 정복선
제21회: 이경교/ 강상윤 고영섭 권현수 김영탁 길상호 김인구 나호열 류승도 문창길 신채린
안영희 이경교 정복선 조용미 한명희/ 김순영
제22회: 허헤정/ 강상윤 고영섭 김인구 나호열 류승도 반칠환 신채린 정복선 허헤정 황병승
제23회: 권혁웅/ 강상윤 고영섭 권혁웅 김영교 김인구 나호열 류승도 반칠환 손현숙 신채린
안영희 정복선 함민복
제24회: 김종태/ 강상윤 고영민 고영섭 김소연 김인구 김종태 나호열 류승도 반칠환 신채린
안영희 정복선 하 훈 한명희 홍서혜
2006년
제25회: 김춘식/ 고영섭 길상호 김경성 김영교 김인구 김춘식 류승도 문태준 신채린 안영희
정복선 정용화 진동영 최윤경 한명희 한미영 허열
제26회: 심재휘/ 고영섭 권혁수 길상호 김경성 김인구 류승도 박인숙 서주석 손택수 신채린
심재휘 안영희 안차애 정복선 정용화 진동영 최윤경 한명희 허열
제27회: 장경렬/ 고두현 고영섭 권현수 김경성 김인구 류승도 박인숙 서주석 신채린 안영희
이윤설 이정자 진동영 최윤경 하훈
제28회: 설태수/ 고영섭 권현수 길상호 김경미 김경성 김 록 김인구 류승도 박인숙 서주석
설태수 신채린 안영희 정복선 진동영 한명희 하 훈
제29회: 양애경/ 고영섭 김경성 김인구 류승도 서동인 신채린 안영희 양애경 윤성학 이인철
전윤호 전주호 정복선 진동영 진 란 최윤경 하 훈 허 열
제30회: 김용희/ 고영섭 권현수 김경성 김요일 김운영 김인구 김흥엽 류승도 박인숙 서주석
신수현 신채린 안영희 이인철 이정자 정복선 진동영 진 란 최윤경 하 훈 허 열
제31회: 박찬일/ 고영섭 권현수 김경성 김인구 김홍엽 류승도 박인숙 박찬일 서주석 신채린 안영희
안현미 정복선 주경림 진동영 진 란 최윤경 하상만 허 열
제32회: 고영섭/ 고영섭 고창수 김인구 진 란 진동영/ 이숙원 김시은
제33회: 공광규/ 고영섭 공광규 권현수 김나영 김인구 김종순 김홍엽 박인숙 서주석 안영희 이승희
이숙희 이희섭 정복선 진동영 진 란 하상만 하 훈 한명희/ 김시은
제34회: 박상률/ 고영섭 김리영 김민정 김인구 김종순 김홍엽 박상률 박인숙 신채린 안영희 양해기
이정자 이희섭 정복선 진 란 하상만 허 열
제35회: 허병식/ 고영섭 김리영 김인구 김종순 김홍엽 노창재 류영환 박성규 박후기 안영희
유순예 이숙희 이정자 정복선 진 란 천수호 하상만 허 열/ 김시은 /진명자
상임시인 (가나다순):
고영섭, 권현수, 길상호, 김리영, 김민자, 김영교, 김홍엽, 류승도, 박인숙, 서주석, 신채린, 안영희, 이윤설, 이정자 정복선, 진동영, 진 란, 하상만, 하 훈, 한명희, 허 열
(년회비: 회장 24만원, 부회장 20만원, 명예회원 15만원, 운영회원(이사와 감사 및 정회원) 12만원, 일반회원 6만원)
*** 작품은 매월 15~20일까지 ingu8151@hanmail.net/ koyoungseop@hanmail.net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 시우주 시낭송회 연혁
연혁
2004년 1월 10일 (매월 둘째주 토요일 오후 4시):
우리 시대의 대표적 지식인들인 시인들이 '해당 지역의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자'는 취지로 뜻을 모아 시낭송회를 만들다(1월 2일). 뒤이어 서울 도봉구 방학 3동에 있는 서울 동북여성민우회 교육장에서 이재무 시인의 특강 및 구순희 시인 등 10인의 시낭송회를 주축으로 '앎의 휴식', '삶의 충전', '시의 제전'인 시회를 개회하다. (고영섭, 구순희, 김영탁, 이명훈, 이영식 시인 발의)
2004년 2월 14일:
김영교, 채상우 시인이 동참하다.
2004년 3월 13일:
김경성, 김민자, 나호열, 최윤경 시인이 동참하다.
2004년 5월 8일:
이만식 시인이 동참하다.
2004년 6월 12일
김인구, 나금숙 시인이 동참하다.
2004년 8월 7일:
북한산 아카데미 하우스 위에 있는 구천폭포 물가에서 '숲속의 시낭송회'를 개최하다.
2004년 9월 4일 (매월 첫재주 토요일 오후 4시):
도봉구 창 1동에 있는 도봉구민회관 도봉문화원의 문화강좌실 II호로 옮기다. 안영희, 정복선 시인이 동참하다.
2005년 2월 5일:
류승도 시인이 동참하다.
2005년 3월 5일:
길상호, 한명희, 신채린 시인이 동참하다.
2004년 8월 7일:
도봉산 구봉사 아래 계곡에서 '숲속의 시낭송회'를 개최하다.
2006년 1월 7일;
중구 남산 충무로영상문화센터 신관으로 옮겨 시낭송회를 개최하다. 진동영, 박인숙, 허열 시인이 동참하다
2006년 2월 4일;
중구 장충동 서울 불광산사 3층 회의실로 옮겨 시낭송회를 개최하다. 서주석, 권현수 시인이 동참하다.
2006년 5월 6일:
김홍엽 시인이 동참하다.
2006년 6월 3일:
진란 시인이 동참하다
2006년 8월 19일:
중구 남산 산책로에 있는 조지훈 시비 앞에서 제3회 숲속의 시낭송회를 개최하다.
2006년 9월 2일:
중구 묵정동 대학문화원 묵정문화소강당으로 옮겨 시농송회를 개최하다. 하상만 시인이 동참하다.
2006년 10월 14일:
김종순 시인이 동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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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우주
2006년 11월호
제3권 11호. 통권 제35호
2006년 11월 4일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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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 장
부회장
이 사 고영섭(총무), 김인구(편집), 신채린(홍보)
류승도(정보), 서주석(재정), 진동영(섭외)
정복선(국제), 안영희(운영)
감 사
카 페 http://daum.cafe.net/siwoojoo(진 란)
* 회비 및 후원회비를 받습니다:
입금계좌: 제일은행 114-20-516448 (시우주 시낭송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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