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무엇인지- 정만진 자서전 (종합)

[정만진]

인생이란 무엇인지 청춘은 즐거워
피었다가 시들으면 다시 못 필 내 청춘
마시고 또 마시어 취하고 또 취해서
이 밤이 새기 전에 춤을 춥시다

작곡가가 누구인지, 노래를 부른 가수는 또 누구인지,

심지어 제목이 무엇인지도 나는 알지 못하나, 

"인생이란 무엇인지"하고 시작하는 유행가는 엄연히 이 땅에 존재한다.

뜻만 따지면 퇴폐적(?)이랄 수도 있는 말초적 허무주의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약간은 공감이 가는 것은

이제 내 나이가 그만큼 많아졌기 때문일 터이다.

청춘은 흘러갔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청춘이던 때에도 물론 알았지만 그것은 관념에 지나지 않았고

지금은 그 느낌과 생각이 생생하게, 그리고 애잔하게 나의 시간들을 지배하는 까닭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스스로 자신의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이다.

그렇지 않다면 짐승과 무엇이 다른가.

그래서 사람은 돌이켜보게 된다.

좀 더 세심하게 돌이켜보면, 뉘우칠 일도 많고

누군가에게 미안한 마음을 밝히고 싶은 부분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나의 잘못을 타산지적으로 삼아 후회없는 인생을 살아보라고

말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사람들이 자서전을 쓰는 것은 그런 마음의 소산이 아닐까.

정만진 자서전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국어 과목을 배우다 보면 학생들은

위인의 전기 뒤에 붙은 

<나의 (혹은 부모님의) 전기를 써보자>라는 '단원 정리'의 요구와 만나게 된다.

그럴 때면 교사로서 나는 '나의 자서전'을 간략히 써서 읽어주곤 했다.

돌이켜 보면 교단을 떠난 지도 어언 8년이나 지났다.

(2002년 9월 1일부터 대구외국어고등학교를 떠나 대구광역시 교육위원이 되었다.)

그 후 대구한의대 문화콘텐츠학부와 안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는 했지만

대학생 등 성인에게 자서전 쓰기를 요구할 수는 없었고,

개인적으로 출강 시간을 내는 일이 자꾸만 버거워져서

대학 출강 등도 스스로 그만두었기 때문에

이제는 억지로라도 그럴 수 있는 기회마저 없어졌다.

가르치지 않은 지 오래 되니 어쩐지 요즘은

자꾸만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아름다운 시간'이 내게 다시 올 것 같지도 않다.

교단에 서고 있던 때에는 '보잘것없는 지식과 품성밖에 지니지 못했으면서도

생활인에 불과한 직업적 교사 노릇을 계속하는 것이

과연 나 자신에게든 아이들에게든 바람직한 일인가'

되풀이하여 되새겼고, 그로 말미암아 많은 고민을 했지만,

수구초심인가, 요즘은 그 시절이 그립다.

그래서 다시금 자서전을 써본다.

이 자서전을 아이들에게 읽어줄 시간이 행여라도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자서전을 한번 써보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공동 자서전집을 발행하면 재미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써서 카페에 올려주세요. 저처럼 가끔 써서 연재를- 올린 글  뒤에 이어쓰기를 하는 형식으로- 하면 집필에 별 부담도 없을 겁니다.)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속암2동(승당마을).

나는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속암2동(승당마을) 684번지에서 태어났다.

(위의 사진에 확인되는 것처럼) 고향 마을 앞은 상당히 너른 들판이 있었고,

오른쪽으로 멀리 강둑이 보이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그 들은 아주 기름진 옥답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본격적인 농민은 아니었고,

(나중에는 교장이 되었지만) 내가 태어날 무렵은 국민학교 교사였다.

나의 유아기의 추억은 고향 마을의 것은 아니다.

내가 태어나서 몇 달 지나지 않아 우리 가족은 영천 화산으로 이주를 했던 것 같다.       

아마 아버지가 그리로 전근을 가셨을 것이다. * 하지만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해볼 길은 없다.

이미 아버지는 2년 전 돌아가셨고, 나와 한집에 거주하는 어머니는 불행하게도 노인성 치매로 기억력을 잃으셨다.

의성 단밀 속암2동 승당마을에 살던 때의 나는 너무 어려서,

유년기이라기 보다는 신생아기에 지나지 않았던 까닭에

의성 단밀 속암동 승당마을의 시간은 내게

그 곳의 속암국민학교(지금은 공식명칭이 '초등학교'이지만 당시 명칭을 그냥 쓰고 싶다.)에 입학한

이후의 일이나 생각나게 해줄 뿐이다.

영천 화산의 국민학교는

그 곳에 살았던 시절의 몇 가지 단편과 함께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학교로 들어가는 오르막길, 그리고 학교 정문 앞에 있던 사택, 철길,

아득하니 멀고 높은 곳에 있던 불타오르는 높은 산.......

그런데 그 산의 기억은 낮에 본 추억은 없고 밤에만 보았던 것 같은데

그건 어인 까닭일까.

                                                                                                영천 화산 국민학교(폐교되지 않고 지금도 건재하다.)

의성에서 영천으로 가는 도로를 한참 내려오다 보면 신령을 지나고

금세 오른쪽으로 은해사와 와촌 삼거리로 가는 길과, 왼쪽으로 영천 화산으로 가는 삼거리에 닿는다.

그 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바로 철길을 건너야 하고

왼쪽으로 돌아 달리면 역시 곧장 화산에 닿는다.

화산을 지나면 도로는 다시 철길을 건너 영천으로 이어진다. 

우리 가족은 화산국민학교 정문 바로앞에 있는 사택에 살았다.

나는 출생 후 몇 달만에 의성 단밀에서 영천 화산으로 옮겨졌는데

거기서 죽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출장을 가고 집에 계시지 않는 사이였고,

어머니는 죽은 나를 그냥 묻을 수는 없어서

아버지가 돌아오시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어릴적부터 많이 들었다.

어머니는 가끔 옛날 민담을 이야기하듯 나의 부활(?)사건을 회고하곤 했으니까.

"네게는 형이 있었는데 네가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죽었단다.

그 시절엔 어린 아이들이 많이 죽었기 때문에

몇 년 지나보고 안 죽고 살면 그제야 출생 신고를  하는 게 보통이었는데

(이 대목에서 나는 학교에 있을 때엔 학생들에게

"그래서 요즘 나이 든 어른들은 보면 실제 연세보다 주민등록상 나이가 몇 살  낮은 분들이 많아" 하고 토를 달았다.)

너도 죽었나 보다 했지.

그 땐 출생신고를 제때 안 해도 누가 문제삼지 않았으니

출생신고 안 된 네가 죽었다고 면사무소에 갈 일도 없고 해서,

그냥 아이가 죽었다 싶어 울기만 하면서 네 아버지가 돌아오기만 기다렸지.

아버지가 출장을 마치고 집에 와서는, 방 한쪽에 놓인 너를 묻으려 가려고 안았는데                

글쎄, 이게 무슨 천운이냐, 며칠째 젖도 안 먹인 네가 숨을 가느랗게 쉬더란 것 아니냐.

그래서 영천 읍내 병원으로 달려갔고, 네가 살아났지.

너는 기억 못 하겠지만

네가 아기 때 내내 골골 병치레를 많이 한 것도 다

갓난아기 때 그렇게 죽었다 살아난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학생이 된 이래로 나는 신체가 약하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어머니는 말했다.

"하도 약해서 원기소(지금 말로 하면 '영양제' 정도의 뜻이다.

'박카스' '까스명수'가 특정 분야의 대표적 이름인 것처럼 그 당시 '원기소'는 아이들 영양제의 상징이었다.)를

하루에도 몇 번씩 먹였는데 그 덕분이지 싶다."

화산 국민학교 사택에서 살 때 나는 네 살부터 학생이 되었다.

천재라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출근을 할 때면 따라서 학교로 갔기 때문이다.

비공인 학생이었던 셈이다.

운동장에서 놀다가 심심하면 교실로 들어갔는데

그렇게 하다보니 다른 학생들에게 방해가 되어

공부 시간엔 교실에 앉아서 배우고, 쉬는 시간에만 노는 것을 허락받았다.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그렇게 하는 것은 무리였다.

결국 몇 달 지나지 않아 날마다 코피가 터지는 바람에 중퇴(?)를 했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 찾아가보니, 사택에서 학교까지는 50미터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 때엔 그게 얼마나 멀었던지!

그리고 그 길은 가파른 오르막이었다.

숨을 헐떡이며 아버지의 뒤를 종종 뒤따랐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지만

실제로는 별로 오르막도 아니고, 거리도 짧았다.

어릴 때 그토록 크고 높게 보이던 모든 것들이 

나이가 들어서 보면 별로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깨들으면서 우리는 가끔 미소짓지 않나.

지금은 군대에 갔다와서 다시 대학에 다니는 작은아이가

달성군 용계국민학교 1학년에 다니던 무렵

1일교사가 되어 교실에 가서 한 시간 수업을 했는데

나중에 집에 온 아이가 말하기를

"아빠, 아이들이 아버지 보고 '산 같다' 그랬어요." 하던 일이 생각난다.

2010년 2월에 영천 화산에 가 보았다.

아! 놀라운 일이 눈앞에 펼쳐졌다.

내가 죽었다 부활(?)했고, 코피를 흘리며 등하교를 했던 그 학교 사택이

지금도 건재하게 남아 있었다. (아래 사진)

나는 수십 년만에 만나는

반가운 친구를 대하듯이

그 집으로 달려가 벽을 쓰다듬어 보고

마당을 거닐어 보기도 했다.

마당에는 온통 건축 자재들이

폐가의 장식물처럼 쌓여 있었고

창틀도 부서지고 문짝도 뜯겨 있고,

아무도 살지 않았지만

나는 집 안으로 들어가

내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며

추억에 잠겼다.

나의 아스라한 추억 속에 잔설(殘雪)처럼 남은 한 가지 기억을 또 돌이켜본다면-

기찻길에 가서 장난을 치며 놀았던 일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찔한 일이지만

그 어린 나이- 세 살이나 네 살 정도의 거의 아장아장 걷는 수준에

철길에 가서 레일 위에 못을 얹어놓고 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이윽고 달려가서는, 누가 얹어둔 못의 '대거리'가  훨씬 더 납작하고 예쁜지를 겨루는

그런 놀이였다. 

기차가 굉음을 내며 지나간 후

멀리 (그 때는 산 이름을 "팔공산"이 아닌 다른 이름인 줄 알았는데)

팔공산이 물끄러미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쪼르르 달려가 제각기 납작해진 못을 주워드는 것이 우리의 신나는 놀이였다.

물론 못의 행방을 찾지 못하는 아이가 꼴찌였는데,

왜냐하면 못을 잘못 놓으면 그렇게 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철길 너머로는 높은 산이 보였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낮에는 못을 레일 위에 얹어놓고 어떻게 변하나 살피는 놀이에 심취했기 때문인지

팔공산을 제대로 바라본 기억이 없지만,

유독 그 산은 밤이면 내 눈 속으로 진하게 들어왔다.

밤이면 그 높고 먼 산의 꼭대기에는 붉게 불이 탔다.

나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산에 불 났어요?"

아버지가 대답했다.

"저건 노을이야."

어떤 날이면 아버지의 대답이 다르기도 했다.

"빨치산이 있어서 그렇다."

전쟁이 끝나고 한참 뒤의 일이었는데(1959년경) 그 때도 빨치산이 정말 팔공산에 있었을까.

아무튼 나는 그때 아버지의 대답을 통해

팔공산의 이름이 빨치산인 줄 알아들었지만,

산 정상은 정말 번뜩번뜩 불길처럼 여기저기 옮겨다니는 붉은 기운이 흘렀다.

세월이 흘러 영천 화산의 철길에 가보았다.

철길은 여전했고, 없던 역사가 새로 서 있었다.

그러나 그 역은 폐쇄된, 단 한 명의 남자 근무자가 혼자 앉아서 컴퓨터를 들여다보던 중

유리창 안을 들여다보는 나를 발견하고는

"커피 한 잔 타 드릴까요?" 하고 묻는,

겨울 바람만이 역사 건물을 차갑게 맴도는 그런 황량한 시골 역이었다.

대합실 벽은 "가족처럼 모시겠습니다"하고 친절하게 인사를 하고 있었지만

승객이 찾아올 리 없는 화산 역사는 "타는 곳 Track  入口"이라는 안내판이

전혀 쓰임새가 없는 곳일 뿐이었다.

가족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화산국민학교의 청년 교사였던 나의 아버지도 지금쯤은 어디에 계시는 것일까.

내가 오늘 화산 국민학교 앞 사택에 와서, 그리고 아버지의 고함소리를 들으며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던 철길 근처에 서서

지난 시간을 회상하고 있는 줄조차도 아버지는 결코 알지 못 하시리라.

나는 어릴때처럼 철길로 다가가서 못 하나를 놓고 기다렸다.

하지만 기차는 오지 않았다.

그렇게 어릴 때에는 기차 시간을 알고 가서 기다렸을 터인데

지금은 무턱대고 그렇게 하고 있으니,

나이만 먹었지 나는 오히려 세 살 무렵 때보다도 더 어리석은 모양이다.

그러나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리며 문득 고개를 드니

예나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팔공산은 아스라히 눈에 들어왔다.

낮이었는데도 팔공산은 아주 잘 보였다.

나는 조금 후면, 철길 위의 못이 납작해지는 것을 보지 못하는 채로

저 팔공산을 넘을 것이다.

산 너머 파랑새가 없는 줄도 익히 알면서

그래도 나는 저 산을 허겁지겁 넘을 것이다.

화산국민학교에 가면 무엇인가 진리가 있다고 믿은 '어린 나'는

숨을 헐떡이며 교문으로 들어가는 '오르막'을 힘들게 넘었지만

저 산을 넘어본들 파랑새가 있을 리 없다는 사실을 익히 알면서도 늙어가는 나는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스스로도 명확히 알지 못하면서

그냥 저 산을 허위허위 넘을 것이다.

그런 내가 딱했던 것일까,

팔공산은 벌건 대낮인데도

파르스름하게 질려 있었다.

                                            영천 화산역에서 바라본 팔공산 방면. 철길 끝으로 팔공산이 파르라니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고향인 의성 단밀 승당마을의 추억은 영천 화산의 것보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의 것들이다.

마을에서 학교까지는 상당히 멀었는데다, 산을 하나 넘어야 갈 수 있었다.

세살 때 사택에서 화산국민학교까지 가는 길이 그렇게 멀고 가팔랐던 것처럼

국민학교 1-2학년 무렵에 그 먼 등하교 원거리를 산까지 넘어가며 다니는 것은 정말 힘겨운 일이었다.

그래서 한겨울이면, 6학년 형들은 더러 어린 우리들에게

"학교 가지 말고 여기서 놀자"고 명령(!)하기도 했다.

산 아래 응달진 개울이나 심지어 못까지도 얼음이 꽁꽁 얼어 있었으므로

햇살이 따뜻해지는 정오 무렵까지는 시게또(직접 제작한 스케이트를 말한다)를 타면서 놀기 좋았고,

점심식사 무렵이 되면 형들 중에는 간혹 벤또(도시락을 말한다)를 풀어놓고

"같이 먹자"고 하는 부농집 아들이 있기도 했다.

저학년이라 도시락이 없던 우리들은 그 벤또가 그렇게 맛이 좋았다.

허리께에 매달려 흔들거린 탓에 반찬과 김칫국물이며 밥이 서로 뒤섞여 저절로 비빔밥이 된 그것이

어쩌면 그렇게나 '꿀맛'이었을까. 

여름이면 하교하는 길에 이 못에서 헤엄을 쳤다.

이 못은 또 겨울이면 시게또를 탈 수 있는 우리들의 정겨운 놀이터이기도 했다.

마을에서 한 20분 걸으면 닿는 이 못 옆으로 걸어서 저 너머 보이는 산을 넘은 다음,

다시 10여분 걸으면 단밀국민학교가 나타났다.

학교는 우리에게 점심 무렵이면 멀건 우유죽을 주었다.

나는 고학년이 된 이후 도시락을 싸갈 수 있는 형편이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하얀 쌀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던 시절이었으므로

모두들 길게 줄을 서서 그 우유죽을 타기 위해 추위와 더위를 참아야 했다.

한달에 한 번인가 학교는 기생충 약을 주었는데

그것도 많이 받아서 배불리 먹겠노라는 아이가 있던 세월이었으니

도시락을 내놓으며 "학교 빼먹고 여기서 놀자"는 제안을 마다할 아이가 있을 리 없었다.

게다가 어느 집이든 전화라고는 없었으니

한 마을 아이들이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몽땅 결석을 해도 아무도 확인을 할 도리도 없었으므로

다음날 학교에 가서 선생님이 물으면 "아파서......"라고 거짓말을 하면 되었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결석을 해도 교사인 아버지가 내게 큰 호통을 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저녁 무렵 집에 오셔서 결석 연유를 확인하시고는 그냥 웃으셨을 뿐이다.

어쩔 것인가.

그것이 시골 아이들의 공동체인 것을.......

그 까닭에, 졸업식장에서 6년 개근상을 받는 아이는 '큰 상'을 받는다고 상찬되었다.

못을 넘고 산을 타넘어 학교를 오가던 추억 말고도

옷을 벗어 머리에 이고 강(위천)을 건너 집으로 가야 했던 추억도 잊을 수가 없다.

                       사진 하단 왼쪽 끝에 강폭 전체를 지르는 큰 다리의 그림자가 보인다.

그러나 옛날에는 아주 낮은, 강폭 전체가 아니라

상시로 물이 흐르는 부분 위만 지나는 작은 다리가 있었다.

뒷날 큰 다리가 놓였지만, 당시에는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가는 낮고 작은 다리밖에 없었다.

그래서 홍수가 나면 다리는 물에 잠겨 보이지도 않앗고, 사람들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의 일이다.

한번은 여름 방학이 끝나고 다시 개학을 했을 때인데

같은반의 한 친구가 등교를 하지 않았다.

담임교사는 내게 물었다.

"이oo(실명은 밝히지 못함) 학교 왜 안 왔나?"

담임교사가 내게 물은 까닭은 그 친구 역시 이 강 건너에서 유학(?) 온 학생이기 때문이었다.

"모르겠습니다."

나는 사실대로 대답했다.

그가 비록 이 강을 건너야 학교에 올 수 있다는 점에서 나와 사정이 같았지만

우리 둘은 30리 이상 떨어진 마을에 살았고, 면(面)도 달랐기 때문에

방학 동안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으니

전화도 없던 그 시절에 그가 왜 방학이 끝났는데도 결석을 하고 있는지를

내가 알 수는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한 일 주일 지나서 그가 교실에 나타났다.

"넌 왜 이제 학교에 오나?"

담임교사가 물었다.

"홍수가 났는데 배가 뜨지 않아서요."

그 친구가 대답했다.

담임교사가 고개를 여러 번 갸우뚱하더니 나를 돌아보았다.

"너하고 이 아이하고 다른 강 건너서 대구로 오나?"

".....같은 강입니다."

"뭐가 어째?"

그 날 그 친구가 된통 혼이 난 것이야 따로 밝혀 구구절절 적을 것도 없다.

국민학교 6학년 때 중학교 입학시험을 쳐서 계성중학교로 진학을 했는데

할머니와 같이 서문시장 인근에 방을 얻어서 살았다.

(오른쪽 사진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서문시장의 현대식 풍경이다.

그러나 내가 중학교에 입학했던 1968년의 모습은

이와 전혀 전혀 다르다.

옛날에는 시장통이 온통 나무집으로 되어 있었고

통로에도 마치 베트남 같은 데서 볼 수 있는 모습을 한

작은 오두막처럼 생긴 반찬가게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여름방학이 와서 처음으로 고향에 갔다.

북부정류장(원대)에서 시외 시내버스를 타고서

요즘은 1시간이면 족히 가는 그 길을

당시엔 3시간 이상씩 걸려서 갔다.

그런데 할머니와 나는

대구까지 오가는 버스가 많은

안계(의성군 서부 지역의 중심지)에 닿으면

고향마을까지 가는 버스를 다시 기다리지 않고

걸어가야 했다.

할머니는 차비를 아끼려 하셨다.

20리 길을 걸었다.

옛날에야 그 정도는 대부분 걸었으니 먼 길도 아니었다.

문제는 할머니가 조금 더 빨리 가려고 지름길을 선택했다는 데 있었다.

다리 쪽으로 오지 않고 그보다 한참 아래 지점에 닿은 할머니는 막무가내로 

"야야, 뭐 하노? 퍼뜩 옷 벗어라."

하고 나를 재촉하였다.

어리고 작은 나는 (나는 중학교 때 149cm밖에 안 되었다.

그 이후로 3년 동안 해마다 8cm가량 자라서 고1 때 지금의 키로 굳었다.)

누가 볼까 부끄러워 하는 기색은 없었지만

빠져죽는 건 아닐까 내심 걱정을 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런 내 마음은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옷을 머리에 이라(얹어라)"

하며 앞장을 서셨다.

이미 그런 일이 자주 있었기 때문에 물길을 잘 아는 할머니는

강 중에서 가장 얕은 곳을 골라서 성큼성큼 물속을 걸어 도강하셨다.

강을 건너 나는 옷을 입었다.

 

단밀국민학교에서 한참 올라가면 낙동강에 닿았다. 우리는 낙동강변 모래밭에 소풍을 가기도 했다.

지금은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큰 다리가 놓여 있지만, 당시에는 아무 다리도 없었다. 그랬으니

배를 타지 않고는 아무도 강을 건너지 못했다. 버스도 배로 실어서 날랐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강은 위천이 아니라 낙동강 본류이다.

내 고향인 의성군 단밀면은 이 낙동강에 닿으면서 끝이 났고(그 지점의 명칭은 '낙정'이다.)

강을 건너면 상주군 낙동면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고향마을인 속암2동(승당)에서 의성군 서부 지역의 중심지인 안계로 가려면

반드시 건너야 하는 위천에도 버스가 지나다닐 수 있는 제법 넓은 다리가 없었지만

낙동강 본류인 낙정-낙동 사이에는 어쩐 일인지 다리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버스도 배에 실어서 날랐다.

국민학교 2학년 땐가, 낙동강변 모래밭에 소풍을 갔다가

배가 버스를 실어나르는 광경을 보고 어린 우리들은 얼마나 놀랐던지,

"세상에!" 하며 우리는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었다.

옛날에는 국민학교에서 중학교로 진학할 때 입학 시험을 쳤다.

나는 6학년 학생수가 140명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되는 단밀국민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는데

대구의 어느 중학교로 진학할 것인가를 결정할 때

"계성중학교는 머리를 빡빡 안 깎으니 그리로 가라"로 하신

아버지의 뜻에 무조건 복종하여 계성중학교 1학년이 되었다.

내가 아버지의 뜻을 따른 것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뜻을 거스를 이유도 없었지만

특히 계성중학교가 머리를 빡빡 깍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은 중학교에 진학하면 학생들 머리를 빡빡 깎던 시절이었다.

나는 내 머리 모양이 빡빡 깎으면 보기 싫은 형이라는 데 자꾸 신경을 써서

6학년 말에는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중이었는데

머리카락을 스포츠형으로 기르는 학교가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고

아버지가 그 학교 진학을 권하니 아주 기분이 좋았다.

중학교 입학 시험을 쳤는데, 200 문항 중 193 문항을 맞췄다. (수석 합격 정선천은 198 문항 정답)

국어 1개, 음악 6개 틀렸다.

음악은 시골 국민학교에서 6년 동안 단 한 시간도 배우지 않았으므로

(풍금은 학교에 1대 있었는데 그것을 칠 줄 아는 선생님은 없는 모양이었다.)

6학년 담임 선생님은 "입학시험 칠 때 전부 1번을 써라.

그러면 7문항 중 운이 좋으면 확률상 2개 맞을 수도 있다."고 하셨다.

나는 그 지시를 따르지 않고 그냥 내가 생각하는 대로 답을 써넣었다.

그랬더니 1개 맞고 다 틀렸다.

당시 음악 문제는 대략 학보의 일부를 보여주면서

'이 노래의 제목은 무엇인가?' 식이었는데

음악 수업을 학교에서 받은 적도 없는 시골 국민학교 출신이

무슨 재주로 악보를 읽고 노래의 제목을 맞출 수 있었을까.

입학 성적은 650명 정도 중에서 125등 정도였다.

 

계성학교 캠퍼스의 한가운데에 있는 50계단의 풍경. 계단 끝에 보이는 건물이 도서관이 있는 본관이다.

 본래 아름드리의 고목들로 울창한 숲이었으나 사라호 태풍 때 모두 쓰러져 그 이후 새로 식목을 했다. 

입학 시험을 치러 갔을 때는 긴장을 해서 몰랐는데

나중에 입학식을 하러 가보니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계성학교 캠퍼스는 정말 아름다웠다.

농촌에서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대도시 대구로 유학을 왔으니

자연의 풍광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것을 감안하면

대도시에 소재하는 중학교의 캠퍼스가 무에 그리 아름답게 느껴졌을까 싶지만

계성학교의 50계단의 아름드리 고목들을 배경으로 선 아담스관, 핸더슨관, 유도관 등은

정말 아름다웠다.

나는 이 학교에 입학한 것이 너무나 기뻤다.

빡빡 깍이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있는 내 머리카락도 쓰다듬어 보니 포송포송하고 따뜻했다. 

죄수처럼 빡빡 깍인 머리를 한 채 

시멘트 건물만 덩그라니 세워져 있는 삭막한 학교에 다닐 다른 중학교 학생들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3월 한 달 학교를 다니자 월말고사가 있었다.

시험을 쳤는데 전교 27등이 되었다.

입학 성적이 우수한 학생 130명 정도로 편성된 두 학급의 특별반이 있었는데

일반반인 내가 3월말 고사에서 전교 27등이 되고

그 다음달인 4월말 고사에서는 전교 10등 안에 들자

담임 선생님(이규수 영어 선생님, 그 후 미국 이민)께서 아주 기뻐하셨다.

담임 선생님은 내가 일반반 학생치고는 발군의 성적을 기록하여

학급 평균을 대대적으로 올려주었다는 점만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와 자신의 성함이 비슷하고(아버지는 정규주, 담임선생님은 이규수)

직업이 같은 학교 교사라는 점에서 특별히 나를 귀여워하셨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4월말인가 5월초에 본래 있던 임명직 학급실장을 사퇴시키고

선거를 실시하였는데, 내가 당선되었다.

본래 실장은 재수를 하여 입학한 학생이었다.

그런데 조금 과장을 하면 체격이 우리 두 배쯤 되고

국민학교 때 실장을 해본 경험이 한번도 없는 이 학생은

걸핏하면 아이들을 두들겨 팼다.

학부모의 민원이 대단했을 것을 뻔한 일이고

그 결과 실장 선거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중1 때 특히 나는 지리 공부를 잘했다.

특별한 놀이가 없던 우리들은 그 당시 세계지도 부도를 펼쳐놓고 둘러앉아서

구석구석에 있는 산 이름이나 도시 이름 등을 누가 부르면

누가 먼저 찾아내나 내기를 자주 하였다.

나는 세계 지도를 거의 암기했기 때문에 그 놀이에는 적수가 없었다.

그런 취향 덕분인지 지리 시험은 칠 때마다 100점을 맞았다.

한번은 가리방(당시 프린트 방식을 그렇게 불렀다)에 이상이 생겨

지리 시험 문제가 전체 학급에 동일하지 않고 다른 사건이 발생하자

재시험을 치게 되었다.

이미 100점 맞아 있던 나는 억울했는데, 더욱 약이 오른 것은

서울대학교 졸업생인 지리 선생님께서 "이번엔 100점 못 맞을 걸?"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시험에서도 또 100점을 맞았다.

지리 선생님께서 "너 지리학과에 가라"고 하셨다.

나는 그 말씀의 뜻을 알지 못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교에 간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대학교에 지리학과가 있는 줄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리 선생님께서 "나중에 대학교 갈 때 지리학과 가라"고 하셨더라면

나도 알아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뒷날 지리학과에 가지 않았다.

만약 지리학과에 갔더라면 나는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것도 지리 교과를 좋아했던 내 어릴적 추억과 관계가 있는 일일까.

2학년 진급시 특별반으로 들어갔다.

지난 1년간 학년 전체 석차 평균이 전교 10등 안에 들어가면

장학생(공납금 면제)이 되는 학교 규칙에 따라

2학년 3월부터는 장학생이 되었다.

(전교 7등으로 2학년에 올라갔던 듯하지만 그 기억은 전혀 정확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10등 이내였다는 사실이다. 10등까지가 전면 장학생이었으니까.)

3월 첫날 특별반인 2학년 10반(곽대남 선생님) 교실에 들어가자

담임 선생님은 공납금을 납부한 학생 명단을 부르면서

아직 납입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언제까지 납부할 것인지

오늘 집에 가서 부모님께 여쭈어보고 내일 등교해서 대답하라고 하셨다.

(당시는 교사 자녀에게 공납금을 면제해주는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국민학교 교사인 나도 1학년 내내 공납금을 냈다.)

나는 "장학생인데요" 했다. 그랬더니 담임 선생님께서는

"네가 무슨 장학생이냐? 넌 일반반 출신이잖아? 그럴 리가 없다" 하셨다.

나는 다시 "장학생 틀림없는데요." 했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내가 하도 완강하게 장학생이라고 주장하자

"그래? 그럼 기다려봐라. 내가 교무실에 가서 알아보고 오겠다" 하셨다.

잠시 후 교무실에 다녀오신 선생님께서는 "맞더라. 일반반 출신이 장학생이라니

놀랍다"고 하셨고, 그 이후로 나는 아주 귀여움을 받았다.

글씨를 잘 쓰고, 그림을 잘 그려서 교실 뒤 게시판 정리를 많이 했고

환경심사를 하면 우리반이 상을 받는 데 기여를 했다.

그러나 1학년 때 특별반 출신들이 대다수인 학급에서

일반반 출신인 내가 비록 전년도에는 학급실장을 했다 하더라도

또 다시 실장이 되는 일은 없었다.

(나중에 좀 더 컸을 때 어른들이 "망국적 지역감정" 운운 하시는 것을 들으며

나는 종종 중2 때 일을 기억하곤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는데

경상도 출신인 박정희 후보와 전라도 출신인 김대중 후보가 양강 구도로 대결했지만

그 때만 해도 지역감정 따위가 지금처럼 심하지는 않았다.

당시 경상도에서 김대중 후보(72만표)에 비해 박정희 후보는 3.1배 더 많은 222만표를 얻었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대구에서 88만표를 얻어

민주당, 민노당, 창조한국당 후보 다 합친 표(15만)에 비해 5.9배 더 많이 득표했다.)

1971년 당시 박정희 후보는 전남(광주 포함)에서 48만표를 얻었는데 

김대중 후보는 87만표를 얻어 1.8배 더 득표했지만

2007년 선거에서는 정동영 후보가 53만표를 얻어 이명박 후보 6만표의 8.8배를 얻었다.)

3학년 1학기 때에는 월말고사와 중간고사, 기말고사 등을 합해서 5회의 정기고사가 있었는데

그 중 두 번 전교 1등을 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 때 받은 상장이 집에 없다.

아버지께서 내 상장 등을 꼼꼼하게 챙겨서 한데 묶어두신 것으로 알지만

제작년에 이미 하늘나라로 가셨기 때문에

지금 그게 어디 있는지를 여쭈어 알아낼 수도 없다.

중간중간 휴학을 하여 지금도 대학교 4학년인 딸과

군대에 갔다와 다시 복학을 하여 3학년인 아들에게

내가 왕년에 공부를 좀 했다고 이야기를 하자

영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은근히 웃는다.

이래서는 아버지로서 권위가 크게 실추가 될 우려가 있겠다 싶어

몇 시간에 걸쳐 상장을 찾아보기도 하고, 아들녀석이 직접 집을 구석구석 뒤지기도 했지만

성과는 영(零)이었다.

그런데 문득 떠오르는 생각(대책)이 있다.

계성고등학교가 발행하는 교내 신문('계원')에 근거로 쓸 만한 자료가 있지 않겠나!

마침 내가 계성학교 총동창회 회보를 발간하는 책임자(편집주간)인 관계로

계성학교 10년사 등 계성학교나 동창회가 발행한 사료(史料)들을 가지고 있다.

뒤지니, 아니나 다를까, 금세 근거자료로 쓸 만한 것이 신문에 실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계성고등학교는 경상북도(지금의 경북과 대구광역시를 합한 지역)

도내 중학교 3학년들을 대상으로 학력 경시대회를 실시하였는데

(주최는 계명대학교, 시험 과목은 국어 영어 수학)

이 경시대회에서 종합 50등 이내에 입상한 뒤 게성고에 입학하면 고교 3년 동안 장학생을 시켜주었다.

이 시험의 결과는 해마다 계원에 게재하였다.

아마 내가 중3이던 1971년도 경시대회 결과도 신문에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시험에서 국어 과목은 1등을 했었다.

계명대 주최 제7회 중학생 학력대회

예년보다 전반적 성적 향상

해마다 계명대 주최로 열리는 도내(대구, 경북) 남자 중학생 학력대회가 그 일곱 번째 대회를 지난 1월 6일 본교에서 가졌다. 50명 선정에 1,402명이 응시하여 28: 1이라는 대회 사상 유례 없는 치열한 경쟁을 보였으며, 커트라인은 국, 영, 수, 합하여 300점 만점에 214점으로 예년에 비하면 무척 높은 것이었다. (중략)

대회에서 입상권 내에 든 학생은 본교에 결원이 있을 때 당사자의 희망에 따라 전․입학을 할 수 있다. 각 과목별 수위 및 입상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 국어 수위 : 정만진 (계성중)

• 영어 수위 : 손병직 (신라중)

• 수학 수위 : 김명식 (대구중) 이하, 생략 

계원(계성고등학교 신문) 1971년 1월 11일자 1면 기사의 일부

국어 1등을 한 건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사건이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중학교 입학시험 때 음악을 제외한 다른 과목은 다 맞혔는데

국어만 1개 틀렸다.

국민학교 6년 동안 음악 과목 수업을 한 기억이 별로 없으니

입시에서 음악의 대부분을 틀린 것이야 당연한 결과이지만

국어만 만점을 받지 못한 것은 아무래도 그 과목이 성격상 약간 어울리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음치인 것은 아니다. 어머니는 처녀 시절이던 일제 시대에

의성군 구천면 노래자랑에서 상을 받은 실력이고, 한국화 전공인 '하나밖에 없는' 딸

연지는 언제 어디서 노래를 불러도 전문가수가 나타났나 싶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가창력을 자랑한다. 그러하다고 내가 그 수준이라는 것은 아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거의 음치 수준이었는데,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중간쯤 되지 싶다.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면 어떤 날은 "노래 정말 잘 부른다" 소리를 듣고

어떤 날은 스스로 들어도 시원찮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문득 국어 과목을 획기적으로 잘 하게 되었으니, 그 계기를 여기 기록해놓지 않을 수 없다.

중3 초의 일이다.

국어 시간이 끝나자(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 단원이 끝났는데)

선생님(서정원 선생님, 이 글을 쓰는 며칠 전에도 만나뵈었다)께서

"학습문제에 '단편소설을 써보자'가 있는 월요일까지 각자 단편소설을 한 편씩 써서 제출해."

하고 숙제를 내셨다. 아이들은 비명을 질렀고, 아무도 그 숙제를 해오지 않았다.

전교에서 단편소설을 써온 학생은 나 혼자뿐이었다.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  배운 이론에 맞춰 소설을 썼다.

전형적인 모범생답게 토요일과 일요일 모두 하얗게 밤을 새워 소설을 썼다.

숙제를 안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월요일에 숙제를 제출하니 선생님께서 "정말 잘 썼다. 전국대회에 내자."하셨다.

당시 청소년 문화를 주도하던 매체는 월간 <학원>이었다.

(그 무렵 이 잡지에는 최인호의 장편소설 '우리들의 시대'가 연재되고 있었다.)

<학원>은 해마다 중고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와 소설을 모집하여 상을 주었는데

내가 낸 처녀작이 거기에 우수작으로 뽑혀 상을 받게 되었다.

그 후, 갑자기 국어가 쉬워졌다.

소설을 한 편 써보고 나니

다른 글을 읽을 때 필자의 생각, 구성 의도 등을 파악해내는 힘이 생겼던 것이다.

과연 그렇다. 쓰면 생각하게 되고, 생각하면 사고력과 독해력이 신장되고

그냥 읽기로 시작하는 것보다 직접 써보는 것이 국어 학력을 키우는 노둣돌이 된다.

나중에 교사가 된 이후에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에도 나는

그런 생각을 실천했다.

사실 중학생 때 나는 미술 공부가 하고 싶었다.

국민학교 때에도 그랬지만 교실 뒷면 게시판의 환경 정리는 중학생 때에는 늘 내 몫이었는데

농촌에서 국민학교를 다닐 때에 서예를 본격적으로 배우려다 그만두었던 것처럼

중학교에서도 미술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고 싶었던 내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중에 계명대학교 교수로 옮겨가신 김기한, 장진필 두 분 미술 선생님께서

미술부에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면 성공할 것이라고 계속 권유하셨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집에 가서 아버지에게 그렇게 말했다가 줄곧 꾸중만 들었다.

서예를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했다는 국민학교 시절 추억은 이렇다. 국민학생이던 당시, 

단밀국민학교 학교장(왕철 이동규)은 유명한 서예가였다. 아버지는 그 학교 교사였다.

교장 선생님은 서예 지도에 여념이 없으셨는데,

그림에 소질을 보인 나를 특별히 가르치시겠노라 지목하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것을 마다하고 그냥 공부만 하라고 하셨다.

그 때 교장 선생님에게 배운 아이들 중에서

나와 같은 학년의 두 명은 여기저기 서예대회에서 상을 받더니

중학교 진학시에는 계성중학교에 특기생으로 입학하였다.

내가 입학시험에 합격했을 때

의성교육장이 우리집에 왔다는 사실을 보면  

궁벽한 시골 국민학교에서 계성중학교에 입학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공부는 보통 수준이면서도

서예를 해서 특기생으로 간단히 진학을 한 걸 보면

교장선생님의 지도는 대단한 경지였음이 미루어 짐작이 된다.

하지만 공부로 입신출세를 해야 한다는 집념에 가득차 있었던

아버지께서는

당신이 근무 중인 학교의 교장선생님의 특별 배려도 마다하고

나에게 공부만 하라고 하셨다. 그 때 서예를 했더라면,

정말 좋았을 것이다. 그 후로 한번도 서예를 배우지 못했다.

당연히 정통 붓글씨를 쓰지는 못한다. 장편소설 <딸아, 울지 마라>를 발간할 때 표지 그림과 구성은 딸 연지가 했는데, 표지 제자 중 '딸아'는 내가 붓을 들고 썼다. 출판사의 표지 구성에 오른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아 무리를 해본 것이다. 연지가 좋다고 하여 책 표지에 올렸다.       

나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특별히 할 게 없으면 공부를 해야 하지 않겠나."

뒤집어 말하면, "공부 말고도 할 게 있으면  그걸 하는 게 현명하다."

그것이 나의 교육철학이다.

그러므로 특히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는 교육청에서 반복적으로 철저하게 적성검사를 해주고,

그의 내재된 특장이 무엇인지를 찾아주는 일을 해야 한다.

신경림은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하고 노래했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자신의 천재성도 발견하지 못한 채

평생 동안 엉뚱한 일만 힘들게 하다가 저 세상으로 가서야 되겠는가.

교육부, 교육청, 정치인 등은 '공교육 활성화, 교육이 백년지대계' 등을

입으로만 부르짖을 것이 아니라 모든 아이들의 소질 적성, 특기를 열성으로 찾아주어

그것으로 말미암아 많은 개인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고

나아가 국력이 신장되는 기초를 닦아야 한다.

                                                                                                             팔공산 갓바위 부처

사람들은 기도를 한다.

갓바위에 가보면, 전국 방방골골에서 운집한 군중들이 땅에 엎드려 기도를 한다.

갓바위 부처는 한 사람에게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고 한다.

나는 갓바위 부처께 기원을 하지는 않지만, 절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저들은 무엇을 기원하고 있을까?" 궁금해하기는 한다.

중학교 다니던 시절, 공부를 잘하기는 했지만, 특히 중3- 2학기 이후는 즐겁지 않았다.

처음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너무 철이 없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누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 다녔다.

할머니가 시골에서 올라와 서문시장 옆에 얻은 셋방에 함께 살면서 밥을 했다.

그 후 결국 집이 아주 망해서 나는 고1부터 가정교사를 하게 되었다.

중학교 2학년이던 여동생은 학교를 중퇴했고

막내는 국민학생이라 학교는 다녔지만 몇 달 뒤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하루는 교실에 있는데 담임선생님이 교무실로 불렀다.

"집이 이사를 했으니 찾아오라고 하던데, 이게 집 주소야."

종이에는 북구 대현동 000번지라고 적혀 있었다.

어느덧 캄캄해진 신천을 건넌 나는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질퍽해진 비포장길을 걸어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대현동 000번지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 집에 당도하면 삶에 지친 부모님과 공장에서 돌아온 누이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밤새 공장에서 일을 하고 돌아와 쓰러진 듯 잠이 든 누이는

꿈속에서나마 무엇을 기도하고 있었을까.

나는 한번도 그것을 물어보지 못한 채 지금까지 왔다.

나는 기도한다.

"가난한 집 아이들도 학교에는 다닐 수 있어야 한다"고.

당시 버스를 탈 때마다 나는 그 생각을 했다.

고등학생은 차비를 절반만 받았는데 

정부가 말하는 '근로 청소년'은 차비를 어른과 같이 전액 다 받았다.
학생은 돈이 없으니 반만 받고

공장에 다니는 청소년은 수입이 있다고 반을 받는다고 했다.

나는 지금도 '대학 무상교육'을 반대한다.

대학 학비를 받지 않으면

부잣집 아이들은 그만큼 용돈이 늘어날 것이고

생계비를 벌어야 하는 가난한 집 아이들은 여전히 대학에 다니지 못할 것이다.

가난한 집 아이들은 학비를 면제해주어야 하고

교내에서 근로장학생이라도 하여 생계비를 벌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학교를 다닐 수 있다.

대학 무상교육이 되려면

무상의료, 무상주택이 함께 되어야 한다.

그래야 가난한 집 아이들도 마음놓고 학교에 다닐 수가 있다.

무상의료, 무상주택이 대학 무상교육보다 먼저다.

                                                                                                                        대구외고 전경   

2002년 8월 31일자로 대구외국어고등학교에서 퇴직하였다.

1980년 9월부터 경북여상, 경일여고, 현대여고(현, 청운고), 영신고, 신암여중, 신암중, 제일중 교사로,

영천 영동고등학교 전임강사로 근무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2002년에 대구시 교육위원 선거에 당선되면서 교단을 떠나게 되었다.

(당시 낙선할 것이라는 의견이 대종이었지만 9명 당선자 중 최다 득표, 최고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아이들을 가르칠 마당을 잃은 것이다.

내가 아이들을 처음 가르친 것은 군대에 다녀와서 사범대학을 졸업한 이후가 아니다.

나는 중3 때부터 아이들을 그르쳤다.

집이 경제적으로 망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재학시에는 신암동의 독서실 뒷방에 머물면서

그 독서실에 다니는 중학생들 중에서 개인지도를 받고자 하는 아이가 있으면

독서실 주인이 내게 지도를 맡겼다.

돈이 없으니 서울에 있는 사립대학에는 갈 수가 없었고,

서울대 사대 국어교육과에 시험을 쳐보라는 담임 선생님의 권유를 듣고

"졸업하면 어떻게 됩니까?" 물었는데

"전국에 발령이 난다"고 하여 포기를 하고

서울대 사대보다는 학비가 학기당 2천원 비싸지만

집에서(사실은 셋방에서) 다닐 수 있어 현실적으로는 전국에서 가장 싼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진학했는데

대학생이 된 후에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을 가르쳤다.

당시 사범대학 한 학기 등록금이 6만원이었다는 사실이 기억난다.

그리고 주 2회 방문하는 가정교사 월급이 2만원이었다. (지금 돈으로 30만원 수준)

세 집 가정교사를 하면 한 학기 등록금 6만원을 벌 수 있었다.

한 학기 여섯 달 줄곧 가정교사를 하여

한 달분 월급으로 한 한기 등록금을 납부하고

나머지 다섯 달분 월급(30만원, 지금 돈으로 450만원)은

가족의 6개월 생계를 유지하는 데 보탰다(월 70만원 수준).

그런 식으로 생활하는 시간이 6-7년 이어지자

가정교사를 하여 살아가는 일상이 너무나 지겨웠다.

특히 대학 진학 후에는 날마다 가정교사를 했으니 그 지겨움은 진작에 도를 넘었다.

그래서 3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다.

왜관에 가서 머리를 빡빡 깎고 군용 기차에 몸을 실었다.

현역 장병들이 나눠주는 건빵을 먹다보니 논산에 도착했다.

훈련을 마치고 울산으로 배치되었다.

당시 훈련병 대부분이 전방으로 배치되었는데

그리 가지 않고 울산에 배치된 것은 아주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나는 울산에 당도한 뒤에야 내가 울산으로 배치된 것을 알았지만

울산 부대에 당도하니 나를 제외한 다른 이등병들은 가족들이 이미 면회를 와 있었다는 사실이다.

                                                                                                         울산 앞바다의 처용바위

재미없는 대한민국 남자들은 축구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군대 이야기를 한다.

마지막으로 군대 가서 축구한 이야기를 한다.

그 지경이 되면 이제 더 이상 화제가 없다고 한다.

나도 군대에 갔다 왔으니 돌이켜볼 만한 추억이 없을 리 없다.

그렇다고 장황하게 적을 일은 아니니, 교육과 연관이 있는 일은 기록해 두어야 하지 않나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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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구관 건물과, 그 위로 신관 건물이 보인다.

                               (당시의) 도서관(지금의 박물관) 앞 야외 박물관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입학을 했지만

학교 다니는 데에 아무 흥미가 없었다.

그렇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그 중 가장 큰 두 가지 이유만 돌이켜보면-

첫째, 학비가 전국에서 두 번째로 싸다는 이유 때문에 가기는 갔지만

(한 학기 등록금이, 고3 주제에 직접 알아 보았는데, 

한 학기 등록금이 6만원이던 그 당시 서울대 사대보다 2천원? 더 많았다.

그러나 서울에 가면, 집에서 다니는 데 비해 훨씬 경비가 많이 드니

경북대 사대가 비교할 수 없이 싸다고 판단되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서울사대는 그때 발령 범위가 전국이었다.)   

날마다 가정교사를 해야 했고,

2류(당시는 3류는 아니었다)대학 학생이 되었다는 자격지심 때문에

날마다, 언제나 몸과 마음도 피곤했다.

둘째, 국립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가면

박목월이나 김동리 같은, 교과서에 나오는 분들이 가르쳐주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영 그게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철이 없어서' 스스로 그렇게 시달렸던 것으로 판단이 되지만
(지금도 철이 없는, 현실적이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그 나이 때는 그것이 정말 고통스러웠다. 

세를 얻어 살고 있던 대현동 집은

방으로 들어가려면 담벼락과 건물 사이의 좁은 틈을 이용해야 했는데

정면을 바라보지 않고 옆을 보며 걸어야 했다.

나는 그것이 날마다 힘들었다.

시골에서 유학 온 신입생들이 문득 테니스채를 옆구리에 끼고 호사를 부리는 모습에도

나는 어쩐지 지쳐갔다.

(그 이후 2011년 지금까지도 나는 테니스를 쳐보지 못했다.)

어느 날인가, 고향에 제사가 있어 갔는데 (추석이었던가?)

5급시험(지금의 행정고시)에 갓 합격하여 중앙청으로 발령이 난 상태인 친척 형이

"역사과라도 가지 왜 국어교육과를 갔냐?

(고시)공부에 도움도 안 되는데 말이야." 하면서

고시공부를 하라고 권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에도 흥미가 없었다.

만약 그 공부를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논문식 시험이니 붙었을 가능성이 많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꼭 잘 살게 되었을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으니,

공무원 시험 공부를 안 한 데 대한 평가는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좋아지고 나빠지고는 알 수 없어도

어쨌든 인생 자체는 지금과 판연히 달라졌을 터이다.

그것이 조금 궁금하기는 하다.

하여간, 나는 고시공부를 할 마음도 없었지만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열심히 다니지도 않았다.

내가 열심히 한 것은, 1주에 3곳을 다니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과

독서, 그리고 음주였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단 한 번도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운 적이 없었다.

담배는 특히 군대를 마칠 때까지도 피우지 않았고,

결혼 이후, 학교 교사를 하면서 서른 이후에 배웠다.

당시만 해도 모든 남자 교사들이 담배를 빡빡 피워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오면

인근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는 게 어려울 지경이었으니

선배 동료 남자교사들의 흡연 권유를 물리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술은 대학 입학 이후부터 마셨다.

대학에 입학하고 처음에는 잠시 학교에 다녔다.

신입생 환영회에 참석을 했는데 막걸리와 소주가 나왔다.

막걸리는 마셔보니 냄새도 이상하고 배만 불렀다.

소주를 마셔보니 톡 쏘는 맛이 구미에 맞았다.

(그 이후 줄곧 소주를 마셨는데, 국어교육과의 교수들은

소주 마시는 몇 안 되는 학생들에게 '소주파'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소주파들은 대체로 반항적인 기질을 가진 부류들이었다.)

우리 가문은 대대로 술 마시는 데는 이력이 난 남자들의 집이었으므로

나도 음주에 '쎘다.'

학교에는 안 가는 날이 많았지만

가끔 가면 날마다 몰려서 술을 마셨고,

나는 대취한 아이들을 업거나(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는 동기들이 많았다.)

버스에 태워서 집까지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오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래도 귀가 후 세수만 하면 책을 보는 데에는 거의 지장이 없었다.

당시 생각에도 나는 시골에서 올라온 그 유학생들보다 더 가난했다.

그들은 경북대 근처에 방 한칸을 얻어 자취를 하면서 궁상을 떨었지만

우리집은 일곱 식구가 방 두 칸을 세얻어 살았으니 말이다.

한번은 한참 학교에 출석을 하지 않았더니

동기 두 명이 집을 찾아왔던 모양이다.

아무도 없는 셋방을 둘러보고 빈 손으로 돌아간 그들이 소문을 퍼뜨렸다.

"정만진, 정말 가난하더라."

그들은 예상보다도 더 빈한한 우리집을 보고 놀랐을 것이다.

왜냐하면, 몰려다니며 마실 때 두 번 중 한 번은 내가 술값을 내었으니

그들은 그래도 뭔가 있으니 돈을 낼 것이라고 생각했을 터이다.

그것이 대중의 발상법이니까.

나는 날마다 가정교사를 해서 달마다 세 번 월급을 받았으므로

아무리 그 돈으로 생활비를 부담한다 해도 주머니에는

언제나 약간의 잔돈이 조금 있었다. 

그리고 경북대학교 신문인 <경북대학보>(나중에는 <경북대신문>으로 제호가 바뀜)에

연재소설을 집필했는데 (제목 '길은 어둡고')

그 원고료가 짭짤했다.

(연재가 끝나고 난 뒤 '신경림론'도 썼다. 원고료를 받으려고)

소설을 써서 학보사로 찾아갔던 기억이 난다.

당시 학보사는 대학본부 1층에 있었다. 지금 본관 1층 중 맨 왼쪽 방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그 때는 학보사 출입문이 고00총장 흉상 쪽으로 나 있었다.

원고지 뭉치를 들고 학보사 앞에 가니

학생 기자들이 농성 중이었다.

편집자주권 확보! 아마 그것이 주제였던 것 같다.

나를 본 어떤 학생기자가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었다.

연재를 하려고 소설을 써 왔다고 하니

'지금까지 소설을 연재한 적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이제부터 연재를 하면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두고 가면 교수님과 선배들께 말씀드리겠노라' 하였다.

(그 학보사 기자는 그 당시 나를 알아보았다.

고교 때 <학원>지에 소설을 썼는 게 도움이 되었다.

그 학보사 기자는 국어교육과 선배 학생이었다.)

그랬는데 다음 주 학보부터 소설이 연재되기 시작했다.

신문을 보고 동기들이 '원고료는 언제 나오냐?'고 묻는데

학과 사무실에서 호출이 왔다.

가니 직원 누나가 교수실로 데리고 갔다.

학보사 주간이 우리 과의 서병국 교수(지금은 작고)님이었던 것이다.

열심히 하라는 격려를 받았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나는 열심히 하지 않고 대충 학교에 다녔다.

그 무렵, 경북대학교는

본관 앞에도 식당인지 막걸리집인지 불분명한 그런 집이 있었고

사범대학 뒤에도 있었다.

경북대학교 교지 <복현문화> 편집위원을 할 때에는

그런 식당들에는 가서 먹고 '싸인'을 하면 되었다.

물론 간소한 밥값 수준이었지만

밥 대신 술을 마시는 우리에게는 그것도 상당한 호사였다.

그런 식으로, 두 번 중 한번 술값을 내었으니

아이들은 내가 그토록 가난한 줄 알지 못했던 것이다.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구관 입구에는 박정희 흉상이 걸려 있었다.

                                  물론 그것은 지금도 걸려 있다.

그렇게 아무 의미도 없이 대학을 다니다가

입대를 하기로 결심하였다.

고등학생 때부터 해온 가정교사 생활에 넌덜머리가 났고,

1학년 때 거의 출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점을 얻지 못한 게 많아

그냥 다니다가는 4년만에 졸업을 못하게 될 궁지에 몰렸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교련을 이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있다가는 군대에 강제 징집될 판이었다.

나는, 당시는 160학점을 따야 졸업이 되었는데

군대에 갔다 오면 140학점만으로 졸업이 되도록 바뀐다는 사실에 주목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억지로 다닌 대학을

8학기도 아닌, 9학기만에 졸업할 수는 없지 않나?

그래서 비슷한 친구들을 설득하여 동시에 입대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다른 친구들은 해당이 되지 않았지만

내게만 문제가 되는 심각한 현안이 있었다. 

교련을 이수한 학생에게는 일찍 제대를 시켜주는데

(대학 재학 1학기당 0.5-1개월 일찍 제대)

난 교련 수업에 참석하지 않았으니

그건 어쩐담?

아, 쓰다 보니 너무 진도가 빠르다.

대학 다닌 이야기를 더 쓰는 게 옳겠다.

자서전은 특성상, 시간 순서대로 써놓고

나중에 흐름을 가다듬는 것이 옳다.

군대에 가서 처음 배치된 곳은 울산 동해안 우봉 바닷가였다.

초소 근무 배치를 받기 전에는 사령부와 대대본부에서 잡일을 했는데 

대대본부에 있을 때 바닷가 횟집에(세죽마을) 가서 회를 사오라는 명령을 받고

자전거를 타고 달렸던 기억이 난다. 그곳이 바로 처용바위 바로앞이었다.

지금은 공단 조성으로 마을 자체가 철거되고 없다. (사진에 보이는 물가가 옛날 세죽마을)

(미완성, 이후 계속 집필하겠습니다.)

[박지극(醉月)]

모두가 자서전을 써 보도록 합시다. 그러면 자신을 돌아볼 기회도 생기겠지요. 우리는 너무 앞만 보고 가는 건 아닌지?

[바람꽃]

아...만화캔디기다리던 그 어릴적이 떠오릅니다.뒷이야기 왕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