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곡
이동하
노인은 사모곡요즘 들어 부쩍 더 자주 고향을 들먹인다. 오늘도 그렇다. 한나절 내내 방바닥만 내려다보며 멍하니 앉아 있더니 점심상을 들고 들어간 그에게 불쑥 묻는다.
“여서 경산이 머나?”
그는 반문한다. “경산은 왜요?”
“내 고향 아이가…….”
대답하는 얼굴 한가득 웃음이 번진다. 위쪽에 달랑 하나 남은 송곳니가 누렇다. 입냄새가 심하다. 양치질하기를 포기한 게 언제부터던가? 아침저녁 한 차례씩 가그린으로 입 안을 헹구게 하는 일도 매번 쉽지 않다. 학습이 전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경산읍에서 남쪽으로 십 리쯤 더 가면 고향 마을이 있다. 산발치를 돌아 돌아서 가는 1번 국도를 따라 한 시간쯤 타박타박 걸어가야 하는 곳으로 그의 기억 속에는 박혀 있다. 지금도 그럴 것이라고는 물론 믿지 않는다. 어느 세월 얘긴가! 사정이 달라져도 엄청 달라져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당신은 거기서 나셨고, 그 동네 처녀에게 장가를 들었고, 50년대 중반 그러니까 전쟁 후에 이웃 도시 대구로 솔가함으로써 타향살이의 길로 들어섰다. 기미생, 여든여섯이시다.
“고향이라고 해도 누가 있어야지요 뭐.”
“아무도 없다?”
금세 풀 죽은 목소리가 된다. 사이다병 밑바닥처럼 두꺼운 안경알 너머 가늘게 짜부라진 두 눈이 실망감과 의혹을 담고 잠시 그를 쳐다본다. 이미 서른 번에 서른 번도 더 했던 말을 그는 또 되풀이한다.
“그럼요. 알 만한 분들은 진작에 다 돌아가셨구요.”
“그렇더나? 삼도하고 종우 그느마도?”
한 분은 친구고 다른 한 분은 외척이 된다. 그의 기억으로는 두 사람 다 작고한 지 십 년이 넘는다. 노인의 오랜 기억들도 이제는 점점 망가져가고 있다는 증거다. 더듬더듬 수저를 집어들고 밥상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중얼대듯이 말한다.
“그래도 한번 댕기와야 안 되겠나…… 있다가 내 얼른 갔다오꾸마…….”
전에는, 그랬다, 말뿐이지 노인은 금방 잊어버리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좀 사정이 다를 듯 싶다고 그는 생각한다. 낮 동안은 거의 온종일 켜져 있게 마련인 텔레비전 때문이다. 아침부터 수시로 귀성객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귀성차량의 행렬은 오늘 자엉 전후로 피크를 이루리라고, 현장중계 요원이 목청을 높여 떠들어대고 있다. 벌써 여러 번 되풀이한 말이다. 그럴 수밖에. 내일이 설날이니까 말이다.
노인은 두 평 남짓한 방을 좀체 나서지 않는다. 두어 시간 간격으로 화장실을 드나드는 게 전부다. 너무 운동량이 없어 무릎이 굳어버리지나 않을까 그는 걱정스럽다. 노인은 정신이 온전하던 때도 문밖출입을 싫어했다. 지금 계절은 겨울 한복판이다. 거실 안에서나마 제발 걷는 운동을 하라고 채근해도 노인은 고작 시늉뿐이다. 당신 방에서 나와 거실 창까지 꾸부정한 허리를 펴지도 않은 채 네댓 걸음 다가가는 것으로 매양 끝이다. 노인은 상황을 금방 잊어먹고 창밖을 내다본다. 15층 높이다. 바로 코밑으로 자동차 전용도로가 내려다보인다. 노인에게는 매번 처음 보는 풍경이다. 그래서 소감도 늘 똑같다.
“아따! 내사 마 어지럽다…….”
그리고 잠시 뒤에 또 덧붙인다. “아따, 차도 많다. 고향 가니라고 줄섰구마는…….”
노인에게는 일 년 365일이 모두 명절이다. 그게 아니라면, 운행 중인 모든 차들은 죄다 귀성차량인지도 모른다. 꼬리를 물고 달리는 차들을 보기만 하면 곧장 고향을 들먹이게 마련이다. 하지만 창에서 돌아서는 즉시로 까맣게 잊어버리곤 했는데 요 며칠 동안은 달라진 것이다. 방송 탓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고속도로 하행선을 가득 메우고 있는 귀성차량 행렬이 텔레비전에 비춰질 때마다 노인의 기억세포들은 똑같은 작동을 일으키곤 하는 모양이다.
아버지에게 고향은 무엇일까? 그 방을 나서며 그는 문득 자문한다. 나 역시 그곳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다. 임오생, 예순셋…… 나에게 그 고향은 무엇일까? 그는 또,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고향을 생각하면 그에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생모의 얼굴이다. 서른일곱, 너무나 젊은 나이에 이 세상을 하직한 여인이다. 그러부터 오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으나 그 얼굴은 조금도 흐려지지 않는다. 죽음 외에는 절대로 지워지지 않을 얼굴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어쩌면 죽음 이후에도 그 기억은 어떤 식으로든 남아 있을지 모른다. 아마도 혼백의 싱체가 그런 게 아닐까하고 그는 종종 생각해본다. 그 어머니의 얼굴이 고향 마을 전경과 함께 한 폭의 그림처럼, 또는 낡은 흑백사진처럼 우련하게 떠오르는 것이다.
골짜기 마을이다. 서른 가호 남짓 사는 작은 마을, 왼쪽 산반치로는 신작로가, 오른쪽 산발치로는 경부선 철로가 뻗어 있다. 그것은 흡사 두 가닥의 누른 광목 띠처럼도 보인다. 한여름 땡볕 속에서는 그렇다. 그것은 또, 마을 앞을 흐르는 작은 내와 좁은 들판을 두 팔로 오롯이 감싸 안으며 저 남쪽 끝에서 만난다. 그러니까 동서로는 이삼백 미터 남짓, 남북으로는 이삼 킬로미터 남짓한 골짜기의 그 작은 공간이 그가 기억하고 있는 고향 산천의 전부다. 어김없이 겹쳐 떠오르곤 하는 어머니의 얼굴은 늘 그보다 크고 또렷하다. 그에게 고향이란 곧 어머니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랬다. 어머니는 거기서 나고 자랐다. 아주 평범한 가정이었다. 그가 들어서 알고 있는 바로는, 그녀는 여섯 살 때 생모를 잃고 손때 매운 의붓어머니 아래서 설움 많은 처녀 시절을 보냈다. 열일곱 살에 동네 총각과 결혼하였다. 물론 중매이다. 이 년 뒤 첫 아이를 낳았는데 딸이었다. 삼 년 터울로 아들을 낳았다. 그였다. 그러니까 여기까지는, 비록 넉넉지 못한 생활일망정 그 시절 그 마을 사람들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인생이던 것이다. 그가 여덟 살 되던 해에 전쟁이 터졌고, 전쟁의 비극은 그 작은 마을조차도 결코 비켜가지 않았다. 필경 그의 가족도 이웃 도시로 삶의 터전을 옮겨 앉아야만 했던 것이다. 그 이후의 삶은 물어 무엇하랴. 서른일곱 해의, 짧은 생을 닫아걸기까지 당신에게는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인생이었다고, 그는 회상한다.
고향을 생각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얼굴…… 그중에서도 명절 전후의 어머니 모습이 그에게는 가장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특히 설 명절에 그랬다. 술을 담그고 엿을 고는 일로 설맞을 준비는 시작된다. 어머니가 술을 담글 때면 술밥을, 엿을 고을 때는 물엿을 미리 맛볼 수 있어 그는 좋았다. 이밥이 귀하던 때다. 무쇠솥에서 막 퍼냈을 때의 지에밥의 그 꼬들꼬들한 맛이란! 갈잎만 한 손바닥 위에 한 주걱씩 놓아주며 당신이 매번 하던 말을 그는 잊지 못한다.
“장손이 맛 좀 보는 거 갖고 조상구신인들 뭐라 하겠노.”
그러고는 얼굴 한가득 웃음을 담은 채 어른 그를 내려다보곤 했던 것이다. 그런 때 지어 보이던 웃음을, 고향을 등진 이후로는 두 번 다시 본 적이 없었다고 그는 회상한다. 어쩌면 당신의 생에서 가장 지복했던 순간들인지도 모른다.
어느 해던가. 겨울 들어서도 유난히 추위가 매섭던 날, 당신은 부엌에서 밤을 새며 아궁이를 지키고 있었다. 설을 닷새쯤 앞둔 때였다. 북녘 산을 넘어온 바람이 마을 앞 꽁꽁 얼어붙은 개천바닥을 연신 쓸어대고 마을 뒤 방죽의 두꺼운 얼음판이 속에서 쩌엉쩡 울어대는 소리를 그는 혼몽한 잠결 속에서 듣고 있었다. 어머니의 말벗이 되어주던 누나도 마침내 아궁이 앞에서 꾸벅꾸벅 고개를 떨구곤 하던 때, 가마솥 안에서는 허옇게 엉기어들었던 엿기름물이 드디어 누렇게 조청 빛깔을 띠어갔다. 애저녁부터 이 순간을 기다리다 기어이 잠에 눌려 부엌 바닥에 고부라져 버린 아들을 당신은 가만히 깨웠다. 그리고는 간장 종지에 물엿을 담아 들고 말했다.
“하마 목젖 안 떨어졌겠나. 어서 묵어봐라.”
그 순간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토록 환하던 당신의 얼굴, 불기운을 받아 발그레 달아오른 볼과 뽀얀 이마 위로 흘러내린 몇 가닥의 머리칼, 그리고 작고 야무지고 또한 더없이 보드랍고 따스하던 입술……. 그랬다. 당신은 얼굴 한가득 웃음을 담은 채 그것을 내밀었지. 부엌 안은 온통 달콤한 냄새로 차고 넘쳤다. 부뚜막 위에 올려놓은 호롱불이 흔들리면서 당신의 그림자는 흙벽 위로, 검게 그을린 천장으로 커다랗게 춤을 추었고 또, 단단히 닫아건 부엌문들이 앞뒤에서 덜그덕덜그덕 소리를 냈고, 그리고 어두운 바깥마당 어디쯤에선가 덩치 큰 개가 춥다고 낑낑대는 소리를……. 어린 그는 미처 잠기운을 다 털어내지 못한 채로 손을 내밀어 그것을 받아 쥐었던 것이다.
“입 딜라, 조심해 묵어라…….”
그랬다. 포만감에 가득 찬 목소리였다고 그는 이제 회상한다. 그 시절 이후로는 결코 그런 음성을 들어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믐날 밤에 어머니는 잠을 자지 않았다. 머리를 감아 쪽을 지었고, 대청 헛간 쌀독 아궁이 속 같은 곳에 접시불을 밝혔고, 개다리소반에 물그룻을 담아 들고 부엌과 샘터를 오가며 열심히 치성을 드렸다. 어머니의 지극정성 비손질이 너무 오래도록 계속되었기 때문에 눈썹이 센다는 어른들의 공갈에도 불구하고 어린 그는 매번 잠에 빠져들었다가 자신의 몸을 가만가만 흔들어 깨우는 어머니의 손길을 느끼고 벌떡 일어나 앉으면 당신은 귓속말로 소곤대기 마련이었다.
“할부지한테 가야지. 가마이 일어나거라.”
아버지도 누나도 아직은 다 잠에 들어 있는 시간, 어머니는 굳이 그를 깨우고, 윗목에 미리 꺼내두었던 설빔을 차곡차곡 챙겨 입혔다. 할아버지 댁은 내 건너에 있었다. 어머니에게 손이 잡혀 마당을 나서면 미명의 어둠이 앞을 가로막곤 하였다. 마을을 둘러친 산줄기가 어렴풋이 보이고, 얼어붙은 마당이며 초가지붕이 총총한 별빛을 받아 검푸르다. 어머니는 장옷을 여미며 지등을 쳐든다. 손을 꼭 잡고 고샅길을 더듬어 나가는 두 모자의 앞을 밝히기에도 턱없이 허약한 불빛이지만 그러나 그는 조금도 두렵지 않다. 곁에 당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무서움은커녕 되레 삼라만상의 모든 것들과 교감할 수 있었던 드문 시간들이었다고, 지금도 믿고 있다.
그해는 눈이 많았다. 너무도 풍성한 서설이었다. 내를 건너 할아버지 댁까지 가는 길은 두터운 눈 이불에 덮여 있었다. 새벽하늘은 검푸르게 빛났다. 그 아래 산도 들판도 오직 하나의 빛깔로 침묵하고 있었다. 동네 개들조차도 어쩐 일인지 조용하였다. 들리는 소리라곤 단지 두 사람이 눈을 밟을 때마다 나는 사각거림뿐 그리고 지등의 불꽃이 이따금씩 춤추듯 너울거리는 소리뿐……. 그런 어는 순간부터 그는 어렴풋이, 그러나 점점 더 커지면서 다가오고 있는 어떤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바람 소리 같기도, 물소리 같기도, 아니 속삭임 같기도 한 그런 소리였다. 오밤중에 문득 잠이 깨어 귀기울이노라면 이따금씩 들리는 듯도 하던……. 산이나 들판에서 누군가 가만가만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 깊은 은밀한 숨소리 같은……. 그랬다. 그런 어느 순간에 그는 문득 확신하였다. 어머니의 숨결 소리가 분명하였다. 그 깊고 따뜻한 소리……. 그는 귀가 아닌, 가슴으로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지등을 든 어머니의 얼굴을 그는 얼른 훔쳐보았다. 턱과 볼 언저리는 희미한 불빛에 발그레 물들어 있었고 반듯한 이마는 별빛에 푸르게 젖고 있었다. 엄마! 문득 부르고 싶었지만 그는 입을 다물었다. 대신에 어머니의 손을 한층 더 힘주어 잡았다. 할아버지 집 마당에는 지등이 높이 내걸렸고 사랑의 할아버지는 이미 의관을 갖추어 앉아 계셨다.
노인은 잠이 많다. 어떤 때는 하루 스무 시간 이상 잠에 취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식사시간과 화장실 출입 때만 빼고 밤낮없이 잠에 빠져 있다. 그는 밥상이나 간식거리를 들고 들어섰다가 난감해지는 때가 많다. 매양 깊은 잠이다. 그것도 안경을 쓴 채다. 노인은 세수할 때 외에는 절대로 안경을 벗는 법이 없다. 왜 그런 습관이 굳어진 건지 모를 노릇이다. 불편도 할뿐더러 안경이 망가진다고 그가 누누이 강조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좀체 망가지지 않는 굵은 뿔테 안경이 반 너머 가리고 있다. 게다가 또, 노인에게는 잠옷 평상복이 따로 없다. 위는 그가 입던 모직 티셔츠에 개량 한복을 걸쳤고 아래는 운동복이다. 혁대를 두르거나 지퍼를 채우는 바지는 노인이 감당하지 못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화장실을 드나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무줄이 든 운동복 바지라 그저 끌어내리고 올리기만 하면 되는데도 노인은 매번 일을 깨끗하게 치르지 못한다. 그래서 아래는 사흘거리로, 위는 한주일 단위로 바뀌 입히지만 그래도 개운치가 않다. 노인에게서 식구들은 늘 지린내를 맡곤 하는 것이다.
그는 상을 들고 엉거주춤 선 채로 잠든 노인을 한참씩 내려다본다. 마음 한 자락이 눅눅해진다. 연민인가. 아마, 그럴 것이다. 효심이란 연민의 다른 이름일 거라고 그는 생각한다. 지난해 퇴직을 하면서부터 노인을 돌보는 일은 자연스레 그의 전담이 되었다.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정서적인 면에서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아파트를 나서면 이십 미터 남짓 떨어진 곳에 경로당이 있다. 그곳 출입마저 어려워졌을 때 노인에게 치매가 온 것을 알았다. 의사는 흔히 말하는 알츠하이머라고 하였다. 그것은 전직 미국 대통령 중 한 분이 앓고 있어서 더 널리 알려진 질병이다. 처방은 있었지만 신뢰감은 가지 않았다. 진행을 다소 늦추어주는 효과가 있다고 의사가 처방해준 녹두알만 한 정체를 두어 달 겨우 복용했을까, 환자나 가족이나 흐지부지하고 말았다. 더 이상의 치료 노력을 포기했다. 상황을 받아들이고 묵묵히 따라가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아파트의 작은 방에 스스로를 유폐시킨 채 먹고 싸고 잠자는 것 외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 별다른 의식도 없는 사람을 곁에서 하루 종일 지켜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다른 식구들 없이 단둘만 있을 때는 훨씬 더 힘들었다. 벌건 대낮에 텔레비전을 켜놓고 앉아 있으려면 마음속의 온갖 것들이 느슨하게 풀어지고 기울어지고 무너져 내리는 것을 그는 느낄 수 있었다. 책 한 쪽 읽기는커녕 신문조차 뒤적거릴 기분이 나지 않았다. 노인데 옆에서 할리우드판 액션영화나 연속극 재방송을 보는 듯 마는 듯하며 한나절 내내 꼼짝달싹 않고 퍼질러 앉아 있기 일쑤였는데 그런 때 그의 마음속 사막에는 먼지바람이 사납게 일곤 하였다.
이상하게 잠이 없을 때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노인은 곧잘 무언가에 집착하였다. 화장실 슬리퍼든 옷에 달린 단추든 지갑이든……. 한번 집착하기 시작하면 거의 온종일 매달리게 마련이었다. 그랬다. 노인은 종종 화장실 슬리퍼를 들고 나와 그것을 어디에 둘지 몰라 전전긍긍하곤 하였다. 화장실 앞에 나란히 놓아두기도 하고 당신 방 안에 얌전히 모셔두기도 하지만 더러는 엉뚱한 곳에 감춰둠으로써 식구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단추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 노인은 개량 한복의 매듭단추에 매달려 여러 시간씩 보내기도 하였다. 헝겊 끈으로 단단히 매듭지어진 것을 기어이 풀어야 한다며 애를 쓰고, 나중에는 혼자서 짜증내고 혀를 찬다. 당신을 골탕 먹이려고 누군가 일부러 묶어놨다는 주장인 것이다. 평생 욕 한 마디 할 줄 모르던 양반이지만 이런 때는 거침없이 투덜댔다.
“어떤 씨부랄 늠들이 이래 홀치맸노? 백죄 사람 골빙 들거로…….”
그게 아니라고, 매듭단추니까 풀면 안 된다고 말해줘도 소용없다. 노인은 다섯 개 중 기어이 두 개를 풀어버렸고, 남은 세 개도 헐렁해져 있는 터라 조만간 결딴내고 말 게 분명하다. 그러면 딱단추를 달아야겠다고 아내는 말한다.
생각해보면, 잠이 많은 때와 그렇지 않은 때가 대충 사나흘 주기로 바뀌는 듯싶은데 그의 처지로는, 노인이 밤낮 잠에 빠져 있을 때면 마음이 무거워져 힘이 들고 다른 때는 혹 무슨 일을 만들지 않을까 불안해서 힘들었다. 하지만 노인의 성품에 비추어 그다지 큰 말썽은 만들지 않으리라고 그는 믿고 있다. 결국 마음의 부담이 가장 크다. 노인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온통 맥이 빠지는 것이다. 잇몸만 남은 입을 반쯤 벌린 채로 아무렇게나 구겨져 잠들어 있는 모습을 내려다보노라면 사막 한복판에 혼자 서있는 기분이 된다.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 것인가. 어느 시인이 노래했듯이, 의심할 여지없이 벼랑을 만나게 되리라. 모든 것을 삼키고 마는,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저 낭떠러지…….
아내와 잠시 마트에 다녀올 작정으로 그는 아버지 방을 들여다보다가 놀란다. 이불 홑청이 죄 뜯어져 있다. 솜은 솜대로 호청은 그것대로 완전 분리하여 따로따로 뭉쳐두었다. 그러느라 노인네가 이불을 붙잡고 얼마나 실랑이를 벌였던지 방바닥은 보풀먼지로 허옇게 덮여 있다. 뒤늦게 얼굴을 들이민 그의 아내가 기겁을 한다.
“어떻게 해! 저 양반, 이제 점점 일을 만드시네…….
멀쩡한 이불을 왜 이 지경으로 만들었냐고 묻자 노인은 지갑을 찾느라고 그랬단다.
“언 늠이 감찼노? 당최 찾을 수가 없다카이!”
노인은 되레 언성을 높여 짜증을 낸다.
“누가요? 아부지가 어디 두고는 잊어버리신 거지 뭐.”
그는 퉁명스레 대꾸하며 방 안을 둘러본다. 보나마다 또, 어디다 꼬불쳐두고는 그만 잊어버린 게 분명하다. 종종 그랬다. 당신의 손때가 묻어 있는 낡은 지갑과 손목시계를 노인은 별나게 챙기곤 하였다. 순순한 당신 소지품이라곤 단지 그 두 가지밖에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봤자 그 낡은 지갑 속에 든 것이라고는 빛바랜 주민증 한 장, 그리고 오천 원짜리 한 장에다 천 원짜리 서너 장이 고작일 뿐이다. 손목시계도 별 볼일 없기로는 마찬가지다. 진작 건전지가 바닥난 터라 바늘들이 늘 한 자리에만 붙박혀 있다. 어쨌거나 노인은 그것들을 안전한 곳에 감추어둔다는 게 종종 오늘 같은 소동을 빚곤 했던 것이다. 서랍 밑이나 책장 사이에서 여러 날 만에 발견되기도 하였다.
문제의 지갑은 당신 베개 속에서 나온다. 이미 이력이 생긴 아내가 베갯잇 속에서 찾아낸 것이다. 그런데도 노인은 완강히 부인한다. 절대로 당신이 한 짓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누가 그랬냐고 다잡자 노인은 태연히 대꾸한다.
“내사 마 짐작하고 있다. 그느마가 감찼을 끼다. 틀림없지 시푸다 마…….”
그가 다시 물어본다. “그느마가 누군데요?”
노인은 슬몃 얼굴을 돌리며 건짜증을 섞어 대답한다.
“저으게 그런 늠이 하나 있다카이!”
대충 방 안을 치운 다음 커피를 한 잔 들여놓고 돌아서려는데 노인이 문득 묻는다.
“경산 가는 차 어데 가마 있노?”
너무 멀어서 혼자서는 가시지 못한다고 대답하고 나서 그는 등 뒤로 문을 닫는다.
이 신도시에는 대형 마트들이 많다. 농협이 운영하는 ‘하나로 마트’도 그중 하나다. 오가기 좋고 주차하기 편해 자주 이용하는 곳이다. 한데, 사정이 전혀 달라져 있다. 평소 십 분 남짓이면 족하던 길에서 거의 삽십 분을 소비했다. 게다가 주차도 쉽지 않아 십 분이 더 소요되었다. 매장 사정 역시 마찬가지다. 카트와 사람들로 그 넓은 매장 안이 온통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불황을 탄다고는 해도 역시 설 명절이란 실감이 든다. 계산대 앞에는 줄이 길고 매대마다 쌓아둔 물품들이 엄청나다.
카트를 앞뒤에서 잡고 그들 부부는 사람들 속으로 섞여 든다.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도 나름의 흐름이 있어 그다지 짜증스럽지 않다. 일쑤 얽히고 부딪쳐도 누구 하나 시비하지 않는다. 이것 또한 명절 분위기지 싶다. 가만히 보면 혼자서 나온 사람이 거의 없다. 대두분 두셋씩 가족 단위로 나와 장보는 일을 같이 즐기고 있다. 부지런히 아내를 쫓아가던 그는 느닷없이 가슴이 아리다. 어머니의 얼굴이 불쑥 떠오른 것이다.
실인즉 자주 그랬다. 그는 종종 아내를 따라 대형 마트를 드나들곤 했는데 그때마다 문득문득 어머니 생각이 나곤 했었다. 너무나 궁핍한 시대를 살다 간 여인이라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가슴을 치받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정말 그랬었다. 밥 한 술, 헌옷 한 점이 그렇게 절실할 수 없던 때가 아니던가. 그의 가족이 고향을 등진 것은 전쟁이 막 끝난 해였다.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된 도시 대구는 미처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한 난민들로 넘쳐났다. 변두리 곳곳에 대규모 판자촌이 생겨났고 그의 가족도 그들의 일원이 되었다. 그리고 불과 다섯 해다! 어머니가 서른일곱 해 너무나 짧은 생을 닫아걸기까지는……. 1950년대 중반, 전시 희생자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굶주름과 질병의 고통 속에서 죽어가던 때였다.
그에게는 되도록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이 시기의 기억들이 있다. 생각해보면 모두 다 먹고 입고 자는 것과 관련된 기억들이다. 그로서는 초등학교 5학년에서 중학교 3학년에 걸쳐 있는 시기지만 그쪽으로는 별나게 남아 있는 기억들이 없다. 그만큼 의식주가 절실했다는 얘기다. 특히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다보면 매양 가슴이 아리게 마련이다. 몸빼바지와 안남미와 구공탄으로 상징되는 삶이었다. 치마 대신 사시사철 몸빼였고, 값싼 만큼 맛 없는 안남미도 늘 됫박쌀, 봉지쌀을 면치 못했으며, 날씨가 추워지면 무엇보다 구공탄 값을 걱정해야 되었다. 아이들이 학교는 빼먹었어도 교회는 꼬박꼬박 챙겨 다닌 이유의 상당 부분도 거기에 있었다. 이따금씩 나눠주던 구호물품 중에서 어쩌다 헌옷가지라도 얻어걸리면 더없이 큰 횡재로 알았고, 옥수수가루나 탈지분유를 한 양푼씩 배급받아 마른입과 허기진 배들을 달랬다. 허술한 판자벽을 뚫고 파고드는 한겨울 추위를 구공탄 불로만 막아낼 수는 없다. 이불을 머리 꼭대기까지 뒤집어쓴 아이들은 곧잘 어미의 품을 다투기 마련이던 것, 그런 때 당신의 몸뚱이는 괄게 달아오른 질화로 같았다고 그는 회상한다. 큰놈 작은놈 가리지 않고 두루 보듬어주곤 하던 그 널따란 품……. 그때는 몰랐다. 당신의 거의 언제나 질병의 고통과 만성적인 허기로 시달리고 있었음을…….
그 어머니에게 이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열망 때문에 그는 가슴이 자꾸 뜨거워진다. 이 대형 마트를! 매대마다 쌓여 있는 물품들을! 흔치만치 나뒹굴고 있는 오만가지 외제품들과 그보다 훨씬 더 고가인 국산품들을! 당신은 뭐라고 할까? 욕심나는 대로 카트 하나 가득 골라 담는다. 매대 앞에서 카드 한 장으로 계산을 끝낸 다음 말한다. 자, 가십시다 어머니! 그러면 당신은 어떤 얼굴을 할까? 그는 점점 더 가슴이 뜨거워진다. 내장이 녹아내릴 것만 같다. 그는 또 상상한다. 여기저기 드라이브도 시켜드리고 싶다. 당신을 태우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경부고속도로 위를 달려보고 싶고, 남해를 돌아 목포에서 서울까지 서해안고속도로도 타보고 싶다. 어찌 그뿐이겠는가. 그럴 수만 있다면 한강 유람선도 태워드리고 63빌딩 꼭대기도 안내하고 싶다. 꼭 한번! 그래, 꼭 한 번이면 만족한다. 이런 세상에 당신의 아들이 살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너무나 뜨겁게 치밀어 오르는 열망 때문에 그는 이제 가슴이 몹시 아프다. 누가 쥐어짜듯이 거의 참기 어려운 동통이다. 인파를 헤치며 저만치 앞서 가고 있는 아내를 필사적으로 쫓아간다. 절망적인 기분이다.
평소보다 배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집에 와 보니 문이 안으로 잠겨 있다. 노인이 어떻게 한 모양이다. 두 개의 잠금장치 중 숫자판이 붙어 있는 키가 도무지 작동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없던 일이다. 그와 그의 아내가 번차례로 달라붙어 씨름해보았으나 소용이 없다. 결국 열쇠 수리공을 부르는 도리밖에 없다. 수리공이 와서 문을 따줄 때까지 그들 부부은 삼십 분 이상 기다려야만 한다. 좁은 복도 바닥에다 늘어놓은 대여섯 개나 되는 장바구니들 틈에 망연자실하고 선 채로…….
간신히 문을 열고 들어서자 노인이 현관 앞에 서 있다. 짜증 속에서도 불쑥 웃음이 치민다. 차림새가 무척이나 희극적이다. 모자 두 개를 포개어 썼다. 하나는 챙이 달린 그의 운동모고 다른 하나는 챙이 없는 노인의 것이다. 더러 그랬다. 노인의 방에는 거울이 없다. 모자를 쓰고 나서도 금방 그 사실을 잊어버린 탓이다. 개량 한복 윗도리 위에다 오리털 잠바를 겹쳐 입었다. 외출 채비가 분명하다. 그런데 아래는 운동복 그대로여서 위아래가 심한 언밸런스다. 거기에 구두를 신었다. 신장 속에 집어넣은 지 오래인 그 구두를 어떻게 찾아냈을까? 그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쨌거나 노인은 나름대로 완벽한 외출 차림을 하고 있다. 의심할 여지없이 귀성길을 나설 참이던 것이다.
“어디 가시게요?”
그가 뻔한 물음을 던졌다. 그런데 답변이 전혀 엉뚱하다.
“가기는…… 내가 어데 갈 데가 있노!”
그 목소리에는 어떤 결기 같은 게 느껴진다. 건짜층인가? 그는 생각하며 노인의 기분을 살핀다. 표정이 뭔가 복잡하다고 느낀다. 어린애처럼 단순하던 평소 그 얼굴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인은 몹시 곤혹스러운 눈빛을 띠고 꺼져드는 목소리로 말한다.
“변소는 어데 있노?”
참 뜬금없다. 당신 방 바로 코앞에다 두고도 헤매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그가 오밤중에 인기척을 느끼고 나와 보면 노인이 5촉짜리 꼬마전구가 흘리는 노란 불빛 아래서 전전긍긍하며 서성거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드문 일이지만, 때로는 노인이 일을 보고 물까지 내리는 소리가 들렸는데도 방문 닫히는 소리가 없는 경우도 있다. 이번에는 방을 찾지 못한 것이다. 생각 끝에 문짝에다 ‘화장실’ ‘아버님 방’이라 큼직하게 써 붙였지만 그것마저도 무용지물인 때가 더러 있었다.
“화장실, 여기 있잖아요.”
대답하고 나서 살펴본즉 노인의 아랫도리가 이미 젖어 있다. 당신 방에서 화장실까지 불과 서너 걸음, 하루에 열 번 이상씩 드러드는 길이건만 당신에게는 늘 안개 속에 묻혀 있는 낯선 길인지도 모를 일이라고, 그는 문득 생각한다. 그 길의 끝에서 당신이 필경 맞닥뜨릴 일을 생각하자 말할 수 없이 마음이 무거워진다.
장보아 온 것들을 대충 들여놓은 다음 그는 노인을 화장실로 모셔간다. 여름철에는 하루 걸러 하던 목욕을 가을 들어서는 사흘거리로, 다시 겨울 들면서는 한 주에 한 번꼴로 바꾸었다. 하지만 중간에 한 번쯤은 아랫도리를 씻기고 바지를 갈아입혀야 한다. 실수가 잦은 때는 대책없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그랬다. 육순을 넘긴 나이에 팔순이 넘은 아비를 발가벗겨 씻기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하지만 곧 숙달되었다. 누가 말했듯이 인간은 무엇에나 잘 길들여지는 동물이다. 어떤 경험이건 금방 학습효과가 나타난다. 몇 번 되풀이하다보면 곧 익숙해지고, 태연해지고, 마침내 무심해지는 것이다.
그는 좌변기 뚜껑을 내리고 그 위에 노인을 앉힌다. 먼저 안경을 벗기고, 다음에는 윗옷들을, 그 다음에는 아랫것들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양말 두 짝을 차례대로 뽑아낸다. 노인은 저항하지 않는다. 깡마른 육신을 되도록 조그맣게 움츠릴 따름이다. 마른 살비듬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손을 잡아 욕조로 이끈다. 노인의 거동은 몹시 조심스럽다. 허리를 잔뜩 구부린 채로 더듬거리며 욕조로 다가선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는 턱을 단단히 잡고 다른 쪽 팔을 뻗어 조심조심 욕조 안으로 손을 넣어본다. 욕조는 비어 있다. 그런데도 노인은 흡사 뜨거운 물에 닿은 듯 재빨리 손을 뺐다가 다시 디밀어보고는 한다. 그는 시종 입을 다문 채다. 물이 없다고 말해봤자 소용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눈 대신에 귀가 밝은 노인이다. 못 들어서가 아니라 믿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확인을 한 뒤에야 노인은 비로소 안심하고 한쪽 다리를 집어넣는다. 종아리고 허벅지고 엉덩이고 간에 밭게 말라붙어 마른 검불처럼 보인다. 그는 노인을 빈 욕조 안에 좌정시킨다. 힘겹게 움직인 뒤라 노인은 몹시 숨이 차 한다. 평생 약을 모르고 살아온 분이다. 이렇게 건강한 노인들의 최후는 결국 심장이 낡아 더 이상 가동할 수 없게 되었을 때라던 의사의 말을 그는 문득 떠올린다.
샴푸로 머리부터 감기기 시작한다. 두어 모숨쯤 남은 흰 머리칼이 제법 길다. 모시고 나가 이발부터 할 걸 그랬다고 그는 때늦은 후회를 한다. 누가 세배를 올지 모를 일이지만 그래도 상어른 아니냐. 설날 하루라도 단정한 모습을 찾아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고개를 쳐든다. 목욕 타월에다 바디클린저를 듬뿍 묻혀 거품을 낸 다음 온몸을 문지른다. 목덜미와 겨드랑이, 그리고 사타구니와 항문까지 샅샅이 닦아낸다. 처음에는 물론 민망스러웠다. 그러나 이제는 아기라도 씻기고 있는 기분이다. 세제가 풍기는 향내 때문일까. 한바탕 문질러 닦고 물로 씻어내고 나면 마음이 다 개운해지곤 한다.
그는 노인을 처음부터 좌변기 뚜껑 위에 다시 앉힌 다음 젖은 몸에 오일을 골고루 바른다. 적어도 사나흘은 긁지 않기를 바라며, 다음은 화장이다. 머리를 닦고, 가볍게 면도를 하고, 헤어젤과 로션을 바른다. 그럴라치면 노인은 으레 한마디 하게 마련이다.
“아따, 냄새 참 좋다!”
팔순 할아버지도 화장은 좋아한다. 마침내 안경을 씌워드리면 노인은 그제야 거울에 얼굴을 비춰본다. 하지만 거울은 늘 흐리다. 김이 뿌옇게 서려 있기 때문이다. 새 옷으로 갈아입힌 다음 그가 하는 마지막 일은 손톱 발톱을 깎는 작업이다. 노인에게 유독 그 부분의 신진대사만은 활발하다는 사실이 매번 기이한 느낌을 준다. 임종 후에도 자란다던가? 섬세함을 잃고 투박해진 손 때문에 그는 자주 손톱깎이를 떨어뜨리며 그 일을 끝낸다. 양말 두 짝을 신는 일만은 유일하게 당신의 몫이다.
화장실 청소가 그가 하는 일련의 작업 중 마지막이다. 노인이 벗은 옷들을 세탁기에 가져다 넣은 다음 세제와 소독제를 함께 풀어 변기 바닥 욕조 순으로 작업한다. 그래봤자 한나절도 지나지 않아 다시 지린내를 풍기겠지만 그는 수세미로 벅벅 문지르고 뜨거운 물로 거듭 씻어낸다. 옷이 젖고 등에는 땀이 흐른다.
텔레비전은 귀성차량의 행렬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다. 경부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로 하행선은 거의 정지해 있는 상태다. 이대로라면 목포까지는 열 시간 이상, 부산까지는 여덟 시간이 소요되리라는 게 상황실 관계자의 판단이다. 아직 출발하지 않은 사람은 가급적 자정을 지나 나서는 편이 좋을 듯 싶다고 조언한다. 그 말을 듣고 있으려니 아직 서울에 남아 있는 사람들도 결국은 죄다 고향길에 나설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꼭 그래야만 될 것처럼 생각된다. 아니다. 그의 마음속에서도 귀성 욕망 같은 게 꿈틀거리며 머리를 쳐드는 느낌이다.
그는 옆자리를 돌아본다. 노인은 잠들어 있다. 무척이나 좋아하는 커피도 반쯤 남겨둔 채다. 귀성 욕망도 잠이 든 걸까? 노인은 잠 속에서 고향길을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안경을 쓴 채로 몸을 조그맣게 움츠리고 깊은 잠에 빠져 있다. 막 목욕을 해서일까. 노인의 영혼이 너무나 깨끗하다는 느낌이 불쑥 가슴에 와 닿는다. 늘 지린내 같은 것을 풍기고 있는 쪽은 오히려 나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문득 그는 가슴에 품는다. 부엌에서 아내가 도마를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온다. 우리 집 부엌이 아닐지도 모른다. 옆집에서, 아니 모든 가정의 부엌에서 지금 설음식을 만들고 있는 소리라고 그는 상상한다.
그랬었다. 그는 회상에 잠긴다. 가래떡 한 말 빼오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였다. 도시로 이사 나온 후 어머니는 명절을 맞아도 할 일이 없었다. 술 담그는 일도 엿 고는 일도 없었고, 갖가지 강정을 만들거나 밤새워 마름질할 설빔도 없었다. 가만히 한숨 짓고 돌아앉아 눈물을 찍어내는 일 외에 당신이 할 수 있었던 일이 무엇일까. 설이든 추석이든 명절은 시름과 슬픔을 더 깊게 하는 날일 뿐……. 그날도 그랬다. 가래떡을 빼오려고 동네 방앗간에서 한나절 내내 떨며 줄 서 있다가 그가 귀가했을 때는 판자촌 골목이 어둑어둑하였다. 떡 함지를 머리에 인 누나보다 한 발 앞서 달려온 그는 기세 좋게 방문을 열러젖혔다가 그만 무르춤해지고 말았다. 방 안 분위기가 유별나게 무거웠기 때문이었다. 백열등 불빛 아래 식구들 얼굴은 물론이고, 멀리 사는 외삼촌 모습도 보였다. 무슨 특별한 일이 있을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곤 하는 분이었다. 문짝을 소리 나게 벌컥 열어젖혔는데도 누구 하나 눈길을 주지 않았다. 벽을 등지고 조그맣게 도사리고 앉은 어머니를 마주하고 둘러앉은 채 다들 말이 없었다. 어머니의 병환이 더 위중해졌다는 것을 그는 금방 실감했다.
벌써 사흘째였다. 어머니는 벽을 등지고 앉은 그 자세를 한 번도 허물지 않았다. 지독한 천식이었다. 게다가 -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 뱃속에는 태아가 있었다. 그 미지의 생명은 자라나는 만큼 허약한 모체를 위기상황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숨이 점점 가빠졌고, 그러다 기침이 발작하면 호흡이 마구 난도질당한 끝에 의식을 놓아버리곤 하였다. 금방 퍼렇게 죽어가는 얼굴에 찬물을 뿌리고 뻣뻣해지는 팔다리를 정신없이 주물러대다보면 당신은 한참 후에 깨어나곤 하였다. 그는 기억하고 있다. 그런 순간마다 당신이 토해내곤 하던 저 무겁고 깊은 한숨 소리를……. 그보다 더 처연할 수 없었다. 지난밤에도 한 차례 소동을 치렀지만 아침에는 많이 좋아 보였던 것이다. 그와 누나를 방앗간으로 내몬 것도 당신이었다.
이번에는 누나를 앞세우고 그는 방 안으로 들어섰다. 얼음 덩어리를 삼킨 것처럼 느닷없이 뱃속이 써늘해졌다. 이상한 냄새가 났다. 왜 그랬는지 모른다. 그는 단정하게 무릎을 꿇고 앉았다.
“저, 저 애…… 말이다…….”
몹시 힘들게 내뱉는 말이었다. 두 팔로 방바닥을 짚고 간신히 상체를 지탱하고 앉은 자세로 어머니는 사력을 다해 토막토막 끊어지는 어투로 뒷말을 이어갔다.
“저 애, 저 애, 하나만은…… 부디, 부디…… 공부시키거라…….”
지극히 짧은 순간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마침내 모잽이로 쓰러지기 전에 당신은 두 눈을 부릅뜨고 어린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뜨거운 불꽃을 가득 담은 눈길이었다. 흡사 불에 달군 쇠꼬챙이가 심장을 꿰뚫은 채로 한참을 정지해 있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그는 눈을 감았다. 옆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누나였다. 뒤이어 이쪽저쪽에서 곡성이 났다. 그는 두 팔로 가슴을 꼭 감싸 안은 채 허리를 잡고 모잽이로 가만히 드러누웠다. 통증을 참아내기 어려웠다.
“보래이…… 니 우나?”
그는 흠칫 놀란다. 그새 잠이 깬 모양이다. 노인이 그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다.
“더 주무시지 그래요…….”
열없이 그는 대꾸한다. 노인은 금방 텔레비전에 정신을 빼앗기고 만다.
“아이고 무시라! 저거 다 고향 가는 거 맞제?”
“그럼요. 설 쇠러 다들 고향 가네요.”
그는 대꾸하며 얼른 눈가를 훔친다. 하지만 가슴의 뜨거움은 지워지지 않는다. 이 뜨거움은 언젯적 것인가? 고작 서른일곱의 나이에 이승을 하직한 어머니를 새삼 떠올리고 어느새 예순을 넘어 셋을 더한 자신의 나이에 문득 생각이 미친다. 그러자 가슴의 뜨거움이 참을 수 없는 정도가 된다. 그는 두 팔로 제 가슴을 꽉 죄어 안는다. 십 변 또는 이십 년 후에도, 그러니까 어머니보다 갑절은 더 많은 인생을 산다고 해도 가슴속의 이 불씨는 도무지 꺼지지 않을 것임을 그는 아프게 확신한다. 신음처럼, 문득 옛 노래가 흘러나온다.
호미도 날히언마라난
낟가티 들리도 없스니이다.
아바님도 어이어신마라난
위 덩더듕셩
어마니가티 괴시리 업세라.
수업시간에 아이들 앞에서 떠들다 말고 그로 하여금 종종 입을 다물고 벽 쪽으로 돌아서게 만들곤 하던 그 고려속요다.
아소 님하,
어마님가티 괴시리 업세라.
저 어린 시절처럼 그는 허리를 접고 가만히 모잽이로 드러눕는다. 절절한 그리움을 담은 채 여기저기서 도마 소리가 울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