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식이 대리의 루어낚시 이야기]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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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남
“저, 과장님. 거래처 좀 다녀오겠습니다.”
과장은 고개를 들지 않고 손목시계를 슬쩍 바라본다. 배대리도 따라 사무실 한쪽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본다. 물론 이미 퇴근을 염두하고 있었던 터였기에 지금이 5시라는 걸 모르는 게 아니다. 다행히 과장은 별 말 없이 승낙을 한다.
“다시 들어올 거 없고, 거래처 들렀다가 바로 퇴근해.”
사무실을 빠져나가는 배대리의 등 뒤에 대고 과장이 던진 한 마디는 갑자기 몸에 날개가 생긴 것처럼 배대리의 마음을 가볍게 한다.
하지만 회사 건물을 빠져나오기도 전에 배대리는 묵직하게 가슴을 짓누르는 답답함을 느껴야만 했다. 핑계를 대고 퇴근을 일찍 당기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말 못할 고민 때문에 병원에 예약이 되어 있었던 까닭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나보고 미쳤다고 할 거야.’
절로 한숨이 흘러나온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한숨만 내쉬고 있을 수도 없다. 예약시간까지는 얼마 남지 않은 까닭에 서둘러야만 했다.
개인 병원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퇴근 시간이 가까워진 탓인지 병원 안은 한가하다. 배대리는 접수창구로 가서 예약 확인을 한다. 잠시 후 간호사가 배대리를 진료실로 안내한다.
“안녕하세요.”
배대리는 가볍게 목례를 취한다.
“그래, 어디가 불편하신가?”
하얀 가운을 입고 옆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사내가 높낮이 없는 건조한 목소리를 던지며 물끄러미 앞에 앉은 배대리를 바라본다.
참 이상하기도 하다. 날고 긴다는 활발한 성격도 병원의 소독약 냄새를 기막히게 알아채는지 하얀 가운 앞에서 금방 주눅이 드는 걸 보니 천상 병원과는 인연이 없는 듯 하다.
“통 잠을 이룰 수가 없어요. 눈을 감고 누우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뭐랄까, 온 몸의 세포가 근질거려서 가만있지 못하는, 아 왜 그런 비슷한 거 있잖아요.”
배대리는 자신의 표현이 맘에 들지 않는지 주먹으로 머리를 두드린다. 의사는 그런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고민이 많으신가요? 아니면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든지. 제 생각엔 잠을 이루지 못하는 원인을 찾아야 할 것 같은데요.”
그 순간 배대리는 웃음이 새어나오려는 것을 손으로 입을 막아 억지로 참아야만 했다. 배대리 앞에 놓인 명패에 적힌 이름 때문이었다.
「신경 정신과 전문의 의학박사 어 부 동」
“그게 뭐냐면요. 제가 통 잠을 이루지 못하는 까닭이…….”
배대리는 말을 잇지 못하고 다시 새어나오는 웃음에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흠흠-.
어부동 의사의 헛기침이 무얼 의미하는지 눈치 빠른 배대리가 모를 리 없다.
“죄송합니다. 근데 선생님.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요. 혹시 낚시 좋아하세요?”
배대리는 이렇게 물어보고 싶은 걸 입에 고인 마른침과 함께 꿀꺽 삼키고 짧게 심호흡을 한다.
“낚시 때문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낚시를 배우게 되었거든요. 근데 그게 회사에서는 바쁘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퇴근하면서부터 꿈틀대기 시작하는 충동이 밤에 잠을 자려고 누우면 극에 달하거든요. 눈을 감으면 물가에서 낚시하고 있는 제 모습이 절로 그려지는데 환장할 노릇입니다. 결국 지쳐 잠이 들긴 하지만 아침이 되면 정신은 몽롱하고 가슴은 답답한 게 미치겠습니다.”
처음 정신과 병원에 예약을 할 때의 야릇한 거부감은 어느 새 사라지고 배대리는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마주 앉은 의사는 말없이 고개를 계속 끄덕이며 배대리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손으로는 무언가를 연신 적고 있었다.
“이해합니다. 그게 어떤 건지.”
“선생님 그거 아세요. 이건 마치 처음 당구를 배울 때 책을 펼치면 책이 당구대로 보이고, 누우면 천장이 그러하고, 머릿속으로 빨간 공과 흰 공을 그려가며 혼자 당구를 치던 그것과 아주 비슷한 상태거든요.”
“그러니까 낚시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말은 낚시를 하고 싶은 욕구는 가득한데 그걸 채우지 못하는, 일종의 욕구불만일 테지요? 결혼은 하셨나요?”
“아, 아니요. 아직…….”
느닷없는 질문에 배대리는 더듬거리며 대답을 한다.
“그럼 나중에 배우자를 찾을 때는 꼭 낚시를 좋아하는 여성을 만나든지, 아니면 낚시를 끊던지 둘 중 하나를 택하셔야 할 겁니다.”
갑자기 어부동 의사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눈치 채지 못하게 새어나온 한숨이 진료실 바닥을 꿈틀거리며 기어간다. 배대리는 눈동자를 궁금하게 굴리며 조심스럽게 그런 의사의 표정을 살핀다.
“무슨 낚시를 하십니까?”
한참을 심각하던 의사가 시계를 흘깃 바라보더니 다시 눈길을 배대리에게 옮기며 묻는다.
“루어낚시를 합니다.”
“루어? 루어낚시라 하면 그 인조미끼를 사용해서 고기를 잡는 그 낚시를 말씀하시는 거죠?”
“예.”
별 얘기를 나눈 것도 없는데 배대리의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어느새 이곳이 병원이라는 것도 잊은 상태였다.
“내 얘기를 하긴 좀 그렇고, 나도 낚시를 즐겨 하는 편입니다. 한 달에 한 번 쯤 바다에 갑니다. 갯바위에도 가고, 선상낚시도 하고… 그 낚시란 게 사람을 묘하게 만들지요. 한 번 그 맛을 알게 되면 도무지 벗어나지 못하니…….”
갑자기 배대리의 눈이 반짝인다. 사막 한가운데서 물과 사람과 그늘을 동시에 만난 느낌이 이러할까 싶을 정도였다.
“선생님도 낚시를 좋아하시는 군요?”
“가끔 민물에서 붕어 낚시 하는 친구들 따라 가보기도 하지만 그건 내 체질에 맞지 않습디다. 원체 역동적인 걸 좋아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바다를 보고 있으면 스트레스가 확 풀리거든요.”
“그럼 선생님께서도 저와 같은 시기가 있었겠네요? 선생님은 어떻게 극복하셨죠?”
배대리의 목소리는 다급하면서도 들떠 있었다. 사방이 꽉 막힌 깜깜한 방에서 어둠을 뚫고 한줄기 빛이 흘러 들어온 기분이었다.
“그건 방법이 없습니다. 이 길로 들어선 이상 빠져나가는 방법은 낚시보다 더 지독한 매력을 가진 새로운 걸 찾아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냥 열심히 낚시를 하세요. 다만 낚시를 하시면서 물고기만 잡지 말고 또 다른 무언가를 낚아내시면 됩니다. 그게 인생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고, 무념무상일 수도 있고요. 물론 꼭 그러라는 건 아닙니다. 입문하신지 얼마 되지 않으셨으니 마음 편하게 하시고 즐겁게 생활하시면 시간이 자연스럽게 해결해 줄 겁니다.”
언뜻 들으면 알 수 없지만 어부동 의사의 목소리 어딘가가 젖어 있다는 사실을 배대리는 알지 못했다. 다만 의사에게 느끼는 동질감에 홀로 들떠 해주는 말을 열심히 들을 뿐이었다.
“실례합니다.”
그때 진료실 문을 열고 남자 하나가 빠끔 고개를 드민다.
“제가 다음 차례인데, 밖에 앉아 기다리고 있으려니 조금 열린 문틈으로 낚시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도무지 좀이 쑤셔 그냥 앉아있을 수가 없어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들어왔습니다.”
...계속
*[배식이 대리의 루어낚시 이야기]는 가제입니다. 좋은 제목 있으시면 댓글 부탁드립니다.
첫댓글 혹시 등장인물에 골드배스 회원들도 나오나요? ㅎㅎㅎ 재미있어지네요.^^
벌써 2번째이야기가 보고 싶어지네요~~ 재촉 1표... ^^:;
흐미......벌써...다 읽어부렀네....
으으으~~~~~ 잼있다 잼있다 잼있다~ 으으으으~~ 근질 근질~~~! 가슴이 답답해요~ 사진속 포인트 좋은데요
기대가 됩니다.
네이버라면 추천 꾸~~욱 누루고 싶네염^^*
골드배스의 즐거움 추가요... 기대 많이 됩니다. 챔질실패님께 응원을 보냅니다..
낚시 입문과정의 열병을 멋지게 표현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기대 되는구요~~ㅎㅎ
매일 올려주심 안되나요?
어째 의사선생님이 제 예기를 하는듯....전...낚시를 끊지 못해서...ㅠㅠ 낚시 좋아하는 여자를 사귀면 되는구낭.........ㅠㅠ
흐미~~~~ 다들 벌써 빠지셨네요.... ^^ 빨랑 2탄 올려주셔요.
멋지십니다...
음![~](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기대가 됩니다...^^
챔질실패님 이거 하지 마세요. 루어낚시처럼 중독 될 것 같은 조짐이 보이거든요. 벌써 큰일났네요. 3명이 모였으니 가까운 물가로 옮겨 이야기 할 것 같은데....
부지런히 쓰겠습니다. 이것 때문에 한동안 낚시를 못하더라도, 이미 고수분들께는 재미를 드리고, 저처럼 초보들께는 정보를 드릴 수 있는 글로 꾸며보려합니다. 물론 우리 골드배스 회원님들의 조행기를 참조하면 그 분의 닉네임을 첨부하겠습니다. (에구, 벌써 흰머리가 하나 둘 늘어갑니다/엄살)
^^
챔질실패님 짱~!~!
파이팅요...이거 쓰실려고 이번주에 고복지도 못가신다고 하셨구나.. ㅡㅡ+ 형 같이가요 ㅠㅠ
이런 곳이... 매일 안오고는 못 견딥니다^^*
문틈 사이로 들어온 다음 환자 이야기가 무지 기대되네요,,,,ㅎㅎㅎ
그병원 어디인가요..? 저두 상담하러 가야것습니다.... ^-----^
아이고 즐거움이 또 생겼네요. 감사합니다..
넘 재밌네요. 기대 됩니다.
어쩜...딱 제얘길 쓰셨네요..ㅋㅋ
글쏨시가 블랙홓 입니다영 ~~~~
아...이런 완전....넘 잼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