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절정 벚꽃
박상재
사월은 온갖 꽃의 향연이 줄지어 펼쳐지는 달이다. 산수유가 노란 꽃전구를 가장 먼저 내걸면 뒤질세라 노란 개나리가 연도에 물감을 진하게 칠해 놓는다. 양지 바른 언덕 위로 허연 매화가 은은한 향기를 발하면 목련은 봄햇살에 간지럼 참지 못하고 아이스크림 같은 하얀 붕대를 풀어헤친다. 그 즈음 살구나무도 춘흥을 못참아 꽃가지를 흔들고 복사꽃도 발그레히 꽃잎을 나부낀다. 그래도 세상에는 통 봄이 오지 않은 느낌이다.
벚꽃이 피어야 비로소 완연한 봄이 온 것 같다. 벚꽃은 나무가 웅장하고 어느 꽃보다 화사하여 꽃대궐을 이룬다. 낮에 보는 벚꽃도 화려하지만 불밝은 밤에 보는 벚꽃의 자태 또한 환상적이다. 가로등 아래 하얗게 흐드러진 벚꽃을 쳐다보면 그 화사함에 취해 목이 뻐근한 줄도 모른다.
벚꽃은 봄이 한창일 무렵 피는데 향기가 없어서 귀빈대접을 받지는 못한다. 그러나 한꺼번에 구름떼처럼 피어나는 모습은 봄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한껏 부풀어 오르게 한다. 매화가 ‘군자의 꽃’이라 하여 양반들이 좋아했던 꽃이라고 한다면 벚꽃은 꽃구름처럼 한꺼번에 활짝 피어나는 모습이 서민의 꽃이라고 할 만하다. 봄기운이 절정을 이루는 달 4월에 일시에 피어나는 벚꽃은 4월 중순 쯤이면 전국을 눈부신 꽃구름으로 뒤덮는다.
벚꽃이라는 말을 들으면 먼저 일본이라는 낱말이 떠오른다. 오사카성의 화려한 야간조명을 받으며 활짝 피어있는 사쿠라가 생각난다. 그런데 사쿠라는 원래 일본의 국화도 일본에서 자라온 꽃도 아니다. 다만 일본 왕실을 상징하는 꽃일 뿐이다.
일본의 나라(奈良)는 벚꽃으로 유명한 도시이다. 이 곳은 백제로부터 불교가 전해진 곳이기도 하다. 일본의 식물학자 고이즈미(小泉源一)는 그의 논문을 통해 나라의 벚나무는 불교와 함께 한반도에서 전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벚꽃 전문학자인 다카기(高木きよこ) 교수도 벚나무의 원산지를 제주도라고 하였다.
일본의 고대사에는 벚나무에 대한 언급이 전혀 나오지 않는데 비해『삼국유사』에는 신라 경덕왕 때 충담(忠湛) 스님이 앵통(櫻筒)에 차 끓이는 도구를 담아 가지고 왔다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서기 765년(경덕왕 24년) 3월 3일 왕이 귀정문(歸正門)의 누상에 올라 신하들에게 “누가 길에서 위의 있는 승려를 데려올 수 있겠느냐.” 하였다. 마침 어느 승려가 옷을 잘 차려입고 점잖게 지나가므로 왕에게 보였더니 왕은 “내가 말하는 위의 있는 승려가 아니다.” 하고 돌려보냈다. 다시 승려 한 사람이 누더기를 입고 앵통(櫻筒)을 지고 남쪽에서 오므로, 왕이 기뼈하여 누상으로 청하였다. 벚나무 통에는 다구(茶具)만 있었다. 이 다구를 지고 온 사람이 충담이었다. 이것으로 보아 벚나무는 삼국시대부터 한반도에서 자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벚나무의 어원은 ‘버짐’에서 왔다고 한다. 봄이 오면 건조한 얼굴에 번지는 버짐처럼 봄의 연푸른 산에 흰 얼룩이 생겨 번져나가는 모습에서 유래한 것이다.
구한 말 민족주의 사학자 호암 문일평(文一平)은 『호암전집(湖岩全集)』에서 벚꽃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벚꽃이 조선에 없는 건 아니었으나 거의 아름다움을 인식하지 못했으므로 봄이 오면 저 절로 피었다 저절로 질 뿐 사람에게 일찍 애상(愛賞)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세종대왕 때의 학자 인재 강희안은 원예에 관해 기록한『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 꽃의 등급을 매기며 벚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꽃에게도 그 꽃이 지닌 품격이나 지조를 보고 1품에서 9품까지 의 화격(花格)을 정했는데 벚꽃은 이런 특성으로 9품 안에도 끼지 못하는 꽃이다.”
이처럼 우리의 선조들은 너무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맥 빠지게 시들어버리는 벚꽃을 천한 꽃으로 여겼다. 일시에 사르르 지고마는 특성 때문에 지조 없는 여인인양 변심을 상징하는 꽃으로 인식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벚꽃을 좋지 않게 여긴 까닭은 까만 열매에도 있을 것이다. 까만 버찌가 무르익어 떨어져 밟히면 거리는 온통 검정 색으로 물들어 지저분해진다. 조상들이 즐겨 입던 한복에 버찌물이 들면 잘 지워지지도 않았기 때문에 벚나무를 기피하였을 것이다.
일본의 나라꽃이 본래 국화(菊花)임에도 불구하고 벚꽃이 일본의 국화로 인식되게 된 데에는 일본의 치밀한 홍보 전략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왕실을 상징하는 벚나무를 자신들에게 전해준 한반도 곳곳에 옮겨 심은 것도 식민사관(植民史觀)을 주입시키려는 의도였다고 볼 수 있다.
벚꽃의 꽃말은 순결, 담백인데 일본의 무사인 사무라이를 상징하는 것으로도 인식되어왔다. 사무라이들은 그들의 인생관을 상징하는 것으로 벚꽃을 골랐기 때문이다.
벚꽃의 일본어인 ‘사쿠라’ 는 그 비슷한 빛깔로 인하여 말고기를 의미한다. 옛날 일본에서는 말고기를 귀한 쇠고기인 척 속여 팔았다고 하여 사쿠라는 사기꾼이나 야바위꾼을 의미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정치용어로는 여당과 야합하는 야당 정치인을 이르는 말로 위선자를 뜻하기도 한다.
장미과에 속하는 벚나무는 잎벚나무, 개벚나무, 잔털벚나무, 털벚나무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벚나무의 종류로는 왕벚나무, 산벚나무, 수양벚나무 등이 있고 있다. 다 자란 벚나무는 키가 20m쯤 되고, 짙은 자갈색을 띠는 줄기는 가로 줄무늬를 가진다. 잎은 어긋나는데, 잎끝은 뾰족하며, 조금 둥글다. 잎가장자리에는 톱니가 있으며 잎자루에는 조그만 돌기가 양쪽에 하나씩 있다.
벚나무는 가로수나 공원 또는 집에 흔히 심는다. 우리나라에 한해동안에 심어진 가로수 중에 벚나무가 가장 많다는 통계도 있다. 나무의 결이 치밀하고 틀어지지 않아 우수한 건축재나 가구재로도 쓰이고 활의 재료로도 쓰인다. 조선시대 효종대왕은 북벌 계획을 세우고 활을 제작하기 위하여 서울 우이동에 왕벚나무를 많이 심었다는 기록도 있다.
벚꽃의 꽃잎은 5장이며 수술은 많고 암술은 1개이다. 벚꽃 잎으로는 벚꽃차를 만들기도 한다. 벚꽃차는 숙취를 없애는데 효능이 있다고 한다. 벚꽃을 열 송이 쯤 따서 물에 깨끗이 헹군 뒤 물 100CC 쯤 붓고 2분 정도 우려 마시면 된다. 벚나무 껍질을 말려 두었다가 감기약으로 마신다는 민간처방도 있고, 벚나무 삶은 물로 환부를 씻으면 종기나 부스럼, 두러러기가 낫는다고 한다. 또 벚꽃으로 술을 만들어 마시면 은은한 향기를 느낄 수 있다. 꽃이 피기 전 꽃봉오리를 훑어서 사나흘 동안 말렸다 열흘 정도 술에 담궈 우려내면 된다. 벚나무의 열매인 버찌는 약용으로 쓸 수 있는데 기침, 천식, 홍역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봄이 오면 우리나라 여러 지방에서는 꽃축제를 다투어 연다. 그 중에서도 벚꽃 축제가 가장 많이 열려 사람들을 구름떼처럼 불러 모은다. 벚꽃은 제주도와 진해를 시작으로 5일정도의 간격을 두고 북상해 하동, 군산을 거쳐 서울까지 올라온다.
서울에서 열리는 벚꽃 축제로는 여의도 벚꽃축제와 남산벚꽃축제, 송파구의 석촌호수 벚꽃축제, 동대문구의 장한평 벚꽃축제, 광진구의 어린이대공원봄꽃축제와 워커힐벚꽃축제 금천구의 벚꽃 십리길 금천벚꽃축제를 들 수 있다.
경기도와 인천에는 인천대공원벚꽃축제, 인천 만국공원축제, 과천 서울대공원벚꽃축제, 고양 후곡마을 벚꽃축제, 일산 호수공원벚꽃축제, 수원 경기도청벚꽃축제, 부천 도당산벚꽃축제, 안양충훈부벚꽃축제, 용인 호암미술관벚꽃축제 등을 들 수 있다.
부산 경남에서 열리는 축제로는 부산 청학동벚꽃축제와 오륙도벚꽃축제, 진해벚꽃축제, 하동의 화계장터벚꽃축제, 함양의 백운산벚꽃축제, 창원사랑, 벚꽃축제 등이다.
대구, 경북 지방에서 열리는 축제로는 대구 팔공산벚꽃축제와 우방타워벚꽃축제, 경주 보문벚꽃페스티벌, 영천의 충성대벚꽃축제, 포항의 떡고개벚꽃축제, 구미의 선주원남동벚꽃축제 등이 있다.
전라도에서 열리는 축제로는 구례의 섬진강변벚꽃축제 담양의 추월산벚꽃축제, 영암의 왕인문화축제, 군산벚꽃예술제, 정읍천벚꽃축제, 김제 모악산벚꽃잔치, 남원 요천강변벚꽃축제, 전주동물원벚꽃축제, 진안 마이산벚꽃축제 등이 있다.
충청도에는 공주 계룡산봄꽃문화예술제와 역사박물관벚꽃문화축전, 당진의 순성매화벚꽃축제와 덕마벚꽃축제, 연기의 금강변벚꽃축제, 금산 산벚꽃축제, 보령 주산벚꽃축제, 홍성 구항벚꽃한우축제, 예산의 벚꽃마라톤, 청양의 산꽃마을벚꽃축제, 제천의 청풍호벚꽃축제 등이 있다.
강원도에는 경포대벚꽃축제, 속초의 설악벚꽃축제, 춘천의 소양강댐 벚꽃길걷기대회 등이 있고, 제주도에는 제주시에서 열리는 왕벚꽃축제가 있다.
전국에서는 이렇게 많은 벚꽃 축제가 열리지만 대표적인 축제는 역시 진해 진해 군항제와 여의도, 그리고 전북 진안의 마이산벚꽃 축제를 들 수 있다. 진해 군항제는 진해가 창원시로 통합되면서 열흘간 창원시 일원에서 펼쳐진다. 벚꽃축제로도 불려지는 진해 군항제는 지난 1952년 4월 13일, 우리나라 최초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북원로터리에 세우고 추모제를 거행한 것이 계기가 됐다. 초창기에는 충무공의 동상이 있는 북원로터리에서 제를 지내는 것이 전부였으나 해가 거듭될수록 행사의 규모가 커지고 발전해왔다.
여의도 벚꽃축제가 열리는 여의도 윤중로는 35년 정도 된 왕벚나무 1400여 그루가 벚꽃 터널의 장관을 이룬다 .국회의사당 뒤편 파천교 일대 이십오리길에는 절정기 때는 수만 명의 꽃구경으로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늦게 피는 벚꽃으로 유명한 곳은 진안 마이산 자락이다. 마이산의 벚꽃은 진안고원의 독특한 기후로 인해 수천 그루의 벚꽃이 동시에 피어나 분홍빛 장관을 이룬게 특징이다. 더욱이 벚꽃길 옆으로 펼쳐지는 인공호수인 탑영제는 암마이봉과 벚꽃의 영상을 고스란히 담아 여행객들에게 최고의 걷고 싶은 거리를 선사한다.
누가 뭐라해도 벚꽃은 우리 나라의 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이다. 수많은 봄꽃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이고 화사하여 가장 많은 축제를 열게 하는 꽃이 되었다. 이제는 일본을 상징하는 꽃으로 오해하거나 싸구려꽃으로 폄하하지 말고 한국의 봄을 대표하는 꽃으로 자리매김해주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