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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을 향한 여정 정하기
몇 가지 풀어봐야 할 수수께끼가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 중국의 외형적인 발전상과 이면에 흐르는 실제의식변화는 잘 어울리고 있는가? 다국적 기업들의 경제열강의 각축장이 되고, 만만라이(萬萬來)의 각질을 갖고도 지난 92년부터 12년 연속 10%대의 상해 경제성장률(중국평균 7.8%)을 이루는 고속성장 마력은 무엇인가? 올해 한국에도 입점한다는 영국계 대형 건축자재매장 B&Q(百安居)를 비롯한 세계 굴지의 건축자재 유통상의 현지 실상은? 무엇보다도 우리 회사에 접목할 수 있는 벤치마킹 대상은 찾을 수 있을지 등 여러 가지 궁금증을 풀어보고자 이번 전직원 동계워크샵의 목표점을 중국 상해로 정하고, 상해(上海)와 인근 소주(蘇州)의 건축자재 업체견학과 문화관광 현장체험의 2박3일 망중망(忙中忙) 일정을 잡게 되었다. 워크샵 참가는 1월 중 마치기 위해 1월 2일 1차 선발대를 시작으로 나무와 삶을 3개조로 나누어 한주 간격으로 조편성하고, 쉐르보네는 1조에 합류키로 하여 총 17명 직원이 첫 출발을 갖게 되었다.
순조로운 출발 인천국제공항을 향해 새벽 미명을 가르며 서울외곽순환도로를 달렸다. 혹시 카풀 또는 개인적으로 오는 직원들이 제시간에 오고 있는지 전화하니 벌써 몇 사람은 약속장소(3층 H 데스크)에 도착했고, 다른 직원들도 10분 정도 가면 도착한다니 1차 관문은 띄어 넘은 셈이다. 오전 7시 약속한 대로 차이나클럽투어 양우석 사장이 왔다. 우리가 타고 가는 중국동방항공(MU5052)의 보딩패스(항공권) 발급을 아시아나 카운터에서 대신 처리해주고, 단체비자 원본 2부와 사본 5부, 공항세납부권과 출입국카드(한국용)를 전달받고 주의사항을 몇 가지 듣고 나니 8시 10분이다. 각 개인별로 신분증(여권)을 갖고 중국화(위엔화)를 환전 후 출국세관심사 이후 공항면세점을 둘러보고 8시 30분 탑승시간에 맞춰 36번 게이트에 집결했다. 안개가 많고 날이 흐려 이륙에 지장 있을 것 같았으나, 정각 출발예정시간 9시가 되자 동체는 서서히 뒷걸음질쳐 활주로 스타트 지점에 이르니 9시 12분이다. 상승을 위한 질주와 굉음을 내자 어느새 구름위에 맑은 햇살이 눈부시게 하고 창밖 뭉게구름 카펫의 유유한 흐름에 다소 긴장이 풀리니 졸음이 찾아든다. ⎈ 단체비자 원본과 부본용도: 부본 - 인천공항 세관통과시 몇 사람씩 사용토록하고, 호텔 Check-in시 개별적으로 체크인할 필요 없이 부본 1부로 대체함(현지 가이드가 알아서 처리). 원본 2부 - 상해푸동공항 입국심사시 2부 모두 제출, 단 비자에 기재된 이름순대로 줄을 지어 나갈 때 첫 번째 사람이 2부 제출하고, 마지막 사람이 직인된 1부를 접수받아 나온다. 이 1부는 중국 출국을 위한 여권, 항공권과 함께 필수 서류로 워크숍 종료까지 소중히 보관되어야 한다. 서해를 건너면서 우리가 탑승한 비행기는 China Eastern B2087 중형이다. 우리 일행은 좀 뒤쪽 30번대에 일렬로 자리 배정받아 앉게 되었다. 상해푸동공항까지 총 비행은 1091Km거리, 1시간 40분이 소요되고, 시차가 1시간 늦어지니 현지도착 시간은 9시 50분이라는 방송이 나온다. 한국 여승무원 4명이 우리 쪽 안내를 맡고 있다. 하지만 안전띠를 매었는지 확인하지도 않는다. 나중에 말을 걸어보니 조선족말투였다. 이륙한 지 25분 후에 식사와 음료 제공이 시작되고 10분 후에 식판을 수거해 간다. 아무래도 비행시간이 짧다보니 빨리빨리다. 음료는 5가지 정도인데 심천 ASAHI(朝日) 캔맥주 맛이 좋았고, 식사는 토마토 슬라이스가 곁들여진 불고기, 밥, 빵, 쭈꾸미와 새우볶음, 고추장, 오렌지쥬스가 나왔는데 아침 공복이라 깨끗이 해치웠다. 개인이 듣는 이어폰 장치는 없고, 위급시 안전조치요령 안내는 40인치 흑백 LCD TV를 통해 만화로 보여주고, 승무원들은 승객들에게 등을 보이고 가만히 서 있다. 잠시 후 중국 음악방송이 흐르고 2003년 12월 9일이 중국민항 동방항공의 운항 100주년이라는 방송과 함께 남여 성악가가 신파극같은 찬가형식의 노래모습이 "Back to the Past" 마음을 허전케 한다. 사스(SARS)여파인지 지금도 형식상 입국을 위한 영어와 중국어로 된 건강검역서를 나눠준다. 기재는 간단하며 중국 입국시 입국심사코너 바로 전에 별도로 제출하면 된다.
중국의 미래적 도시 연착륙
지루한 느낌을 갖기도 전에 상해 근교 주요 가옥이 2층 형태의 농가모습이 드러나고, 9시 45분 두 바퀴가 활주로에 내딛는다. 정확히 9시 50분이 되자 26번 플랫폼에 진입하여 드디어 중국의 국제적 미래적 도시 상해와의 첫 만남을 갖게 된다. 상해에 대해서 나름대로 사전정보를 수집한 터라 “지우양 지우양” (말씀 많이 들었슴다)을 되내이며, 문앞에서 배웅하는 승무원과 “신니엔콰이러”(Happy A New Year)로 서로 화답하니 푸동국제공항이 낯설지만은 않은 것 같다. 10년전 푸동공항에 투입되는 대형창 프레임용 알루미늄새시를 대량 수출한 때가 상기된다. 천정에 붙어 아래로 걸려있는 무수히 많은 흰색원통형 파이프 조형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지만 특이한 디자인이었다. 년간 우리나라 남북한을 합한 수대략 7,000만명의 관광객이 여기를 거친다고 한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10시 20분 도착 게이트를 나오니 현지가이드로 배정된 임경환 부장이 "나무와 삶" 피켓을 들고 맞이하였다. 곤색 베레모를 쓰고 검정코트를 입은 40대 초중반의 거무스런 얼굴을 한 모습이 무척 부지런해 보이는 모습이다. 장춘이 고향이지만 부모님은 충청도가 고향이라고 한다. 상해온 지 14년, 여행가이드 경력은 10년 이상 되었다고 한다. 공항버스 정류장에서 상견례 후 33인승 버스를 타고 각본대로 첫 번째 탐방여정 푸동소재 B&Q(百安居)를 향해 10시 30분 출발한다.
상해 푸동고속도로를 달리며 일기예보와는 다른 화창한 햇살이 우리 일행을 반긴다. 초봄 기운이 감돈다. 현지가이드 임부장은 당일 일정에 대해 재확인하고, 상해에 대해 잠시 소개를 한다. 상해는 아열대계절풍 기후로 동절기 최저 -5∼6도 정도이고 눈을 볼 수가 없다. 하절기엔 최고 40도를 초과하며, 초과시엔 휴가가 진행된다. 년강우량은 600mm로 년중 흐리고 비가 많이 오는 편이다. 임부장 왈, 오늘부터 3일간 산은 찾아볼 수도 없다고 한다. 바다와 거의 일직선상에 있으며, 만약 산을 보려면 차로 서남쪽 2시간 30분, 서북쪽 3시간은 가야 산을 볼 수 있단다. 근데 내일 소주(蘇州)일정에 등반코스가 있다고 하니 해발 37m의 호구산 등정이다. 중국대륙 면적은 960만평방Km로 한국(99.6평방Km)의 약97배에 달하며, 인구 13억과 호적에 올라 있지 않은 흑인을 합하면 15억이 넘는다. 전세계 인구의 1/5의 달하는 자국민을 먹여 살리는 광활한 농지와 농가, 아파트들이 계속 이어지고, 지도에서 본 남포대교방향의 교통표지만이 눈에 들어온다. 포동신구를 포함한 상해 면적은 서울의 10배에 달하고, 인구는 1,600만명, 중국 제1의 인구는 3,000만명의 중경시이고, 북경은 1,300만명이다. 중국 최대 전자, 기계, 석유화학, 조선, 방직 공업기지인 상해의 1인당 GDP5,000불로 화동경제권을 중심으로 중국 전체소비액의 36%를 점하는 중국 최대소비시장이기도 하다.
1990년 4월 포동개발이 국가급 프로젝트로 결정된 이후 88층 진마오빌딩을 포함 동방명주TV수신탑 등 10층이상 건물이 포동에만 3,300개 이상된다고 한다. 정부 시책상 같은 디자인의 건물은 허가가 안난다고하여 창밖을 돌아보니 정말 각 건물마다 특색을 지니고 있다. 중국인들이 장강이라고 부르는 양쯔강 하구에 위치한 상해항은 2001년 세계 5대항구(홍콩, 싱가폴, 부산, 까오슝과 함께)에 속해지며, 컨테이너 TEU 800만대이상의 물동량을 커버하고 국제항으로 건설하기 위해 1조8천억원의 투입하여, 수심 12M의 심수항을 건설하였다.
우리가 달리고 있는 포동지구엔 자전거가 잘 안보여 물어보니 도심에 가면 차와 자전거가 엉키는 현상을 볼 수 있을 만큼 현재 상해 자전거 대수는 1,000만대를 상회한다고 하니 가히 중국인들의 신발인 셈이다. 차는 4대 중 1대가 자가용으로 등록되어 있고, 지금 버스 앞을 지나가는 자가용 Santana 경우 가격이 평균 한국돈 1,700만원 정도이고, 근래 차량 번호를 부여받기가 무척 어려워 월 1회 교통경찰국에서 1,000∼1,500장 정도 제한 발급하거나, 아예 경매로 진행하는데 1장당 번호판 경매가가 최고 600만원에 이를 때도 있단다. 번호판엔 8자가 많이 붙은 경우 현대판 경제적 신분을 은근히 알 수 있을 만큼 중국인은 8자를 무척 좋아하나보다.
창밖 넘어 희미하게 보이는 최고 높은 진마오빌딩도 총88층으로 준공일이 1988년 8월8일이며, 건물 높이와 폭비율이 8:1이고, 구조체계도 8을 응용하였다. 공식 회의식탁도 8좌석으로 그 앉는 법이 있다고 알고 있었지만 중국인에게 뜻밖의 행운을 뜻하는 8이란 숫자는 우리가 좋아하는 7보다 더 강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
북경의 카오야(오리요리)에 비기는 상해의 대표적 요리는 샹하이 따쟈시에(대게)로 암놈은 11월, 수놈은 12월이 제철이라고 한다. 시내 전화번호는 8자리이고, 2조, 3조가 방문시엔 미리 각조에 한두대는 핸드폰 로밍서비스를 받아 두는 것이 요긴하다.
첫 번째 견학업체 B&Q (百安居)를 찾아서 발전상을 보여주는 많은 대형건물의 건축현장과 회사명을 금색글씨로 간판을 붙여둔 건물 특색을 스쳐가며, 11:00분, 우리가 나중에 건너야할 남포대교에서 8.5Km 떨어진 4거리, 지하철 2호선 현재 종착역 맞은편에 외장을 오렌지 색상과 은색으로 디자인한 B&Q 푸동지점이 모습을 드러냈다. Metro 마트와 Decathron 마트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 영국 킹피셔(Kingfisher PLC)그룹 건축자재 대형판매장 B&Q는 17개국에 직원 9만명의 1,400개 매장과 동 그룹의 전체 매장수(각 국마다 매장명이 다름, 예: 영국-B&Q, Comet, Superdrug, 프랑스-Castrorama, BUT, 벨기에-New Vanden Borre, 독일-ProMarket, Castrorama, 네덜란드 BCC 등)는 3,000개에 달하며, 중국 전국에는 14개의 B&Q매장이 입점해 있고, 상해에 4개가 동서남북으로 한 개씩 진을 치고 있다. 현재시각 11:10, 60분 정도를 각자 견학키로 하고, 1층 건재, 목재, 목재가공품, 공구, 창호, 문, 바닥재, 페인트, 하드웨어, 타일류와 2층에 전시된 가구 및 욕실주방코너를 일별하면서, 가이드 임부장과 중국인 선호 주택자재류 및 현지 주택분양방법과 부동산 실태에 대하여 몇 가지 얘기를 나누었다. 특히 상해 한족의 주택은 주로 온돌시스템 없이 입식생활하며, 거의 나무바닥재를 깔고, 조선족과 대만인들이 근래 경동 또는 귀뚜라미 보일러 시설을 한다. 독특하게도 대나무집성바닥재가 전시되어 있는데 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서 문제가 된단다. 도료는 일본이 현지 생산하여 유통하는 브랜드 Nippon Paint류를 전시판매하고 조색기도 갖춰놓고 있다. 창과 문은 종류가 무지 다양한 디자인을 전시하고 있고, DIY용 가구류가 눈에 띤다. 사진은 입구부터 금지를 강조하여 조심스레 찍기로 했다.
입구를 들어서자 왼쪽엔 매월 6-8명의 고객선정 우수복무자 명단을 사진과 함께 판넬을 짜서 세워두고 있고, 오른편 2층 진입구엔 매주 마다 점장이 직접 추천한 상품리스트가 가격과 전시위치를 기재한 보드를 세워두고 있다. 그리고 매장 카탈로그나 상품안내 설명서는 찾기 어렵고, 2003년 12월 19일부터 올해 1월 20일까지 춘지에(구정 절기)기념 100대 신품할인소개 카탈로그를 배포하고 있다.
가이드와 나눈 중국 부동산실태에 관한 얘기를 요약하면, 중국은 토지의 개인 소유가 불가하고 정부에서 50년, 80년, 100년 임대형식으로 개인에게 지급된다. 하지만 집터의 경우는 두당 면적을 제한하여 개인이 할당받을 수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주택은 정부에서 분양하는 아파트로 개인소유나 매매가 가능하며, 일정액의 선금을 내고, 20년상환 월납형태로 이뤄지며, 외국인도 여권, 수입증명, 개인도장, 공증비(집값의 0.6%)를 갖추고, 보험비(대출년수기준), 세금(총집값의 1.5%로 매입시 1회만 지급), 그리고 부동산비(집값의 1%)와 하자보수금(1,295 x 3% x 면적)을 현지 부동산업자가 정리하면 된다. 중국의 아파트는 실내가 마감되지 않은 채 매매가 이뤄지며, 매입주가 직접 자재를 구입하여, 실내장식업자에게 지급한다. 근래, 실내마감한 아파트를 분양하는 경우도 점점 생겨나고 있으나, 생활하면서 자재의 하자가 속출하여 대체로 집주인이 자재를 구입하는 경향이 강하다. 사실 푸동의 경우 집값이 수년전에 비해 5배이상 상승한 것으로 알고 있다. 특이한 것은 아파트 한 동에도 같은 평수가 없다고 한다. 외관으로 볼 때는 느끼기가 어렵다. 단지 시골은 한 마을에 어떤 유형의 집이 생기면 똑같은 형태로 죄다 건축되고, 도시는 법적으로 평수차등을 두도록 규정하고 있는 게 이유라고 한다. 중국엔 전세가 없고 대부분 월세이며, 방수를 기준으로 임대료가 구분된다. 임대가격은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구베이>서가회)은 대개 방 두개 100-120평방m(중국은 한국의 평을 사용 않고, 입방미터로만 계산함, 즉 30-36평수)의 경우, 관리비포함 월5,000-9,000위엔(한화 75-140만원), 방 세개 135-165평방m(40-50평)의 경우, 관리비포함 월7,500-12,000위엔(한화 110- 180만원)의 범주이다. 중국인은 높은 층수를 선호하며, 4층부터는 월임대료가 평방미터당 50위앤씩 층별 증액된다. 직원들이 전체 매장 둘러보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입구 쪽으로 몇몇이 모이기 시작하여 떠날 채비를 갖추려 한다.
5만가지이상의 주택자재와 생활용품을 취급하고 있는 B&Q의 고객서비스 툴은 주말 고객대상 상품교육시간 1시간과 고객카드관리에 따른 가격할인제, 한화 60만원이상 구매시 자가차량을 이용한 무상 배송시스템 등 여러 가지를 개발하고, 저렴한 노동력의 이점을 적용해선지 각 코너마다 판매 복무원이 대기하고 있는 점에서 보다 고객위주의 매장운영을 경주하고 있는 편이다. 영국계 자본을 투자받은 회사인지 매장위치와 제반서비스 내용 등을 영문으로 소개하고 있어 처음 방문에도 찾기에 편리하였고, 안내보드가 자사 CI에 맞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이로써 첫 번째 업체탐방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B&Q에 대한 보다 자세한 경영내용과 건자재 판매실적 등은 소주(蘇州) B&Q 데커레이션 센터(B&Q 인테리어 사업부) 부사장과의 면담내용에서 구체적으로 소개키로 하고 다음 여정으로 이동하고자 한다. 중국에서의 첫 식사 미리 정해둔 12:10분까지의 견학을 마치고, 모두들 버스에 오르니 두 사람이 안 보인다. 이미 B&Q를 섭렵하고 옆 건물 Decathron 마트도 견학하고 오는 길이다. 암튼 많이 보고 느끼는 발 빠른 사람들에게 갈채를 보냈다. 술 한턱내라고. 어느 듯 황포강 남포대교가 목전에 들어온다. 당초 포동소재 OBI를 방문키로 하였으나, 점심 식당을 포서의 공화신로 위쪽에 있는 중국식당(금휘)로 예약되어 있어, 식당 부근 OBI를 방문키로 하고, 지금 포서와 포동을 경계하는 평균수심 12M, 평균폭 500M의 황포강을 건너고 있다. 남포대교는 황포강에 최초로 연결된 대교로 전체길이 8.4Km, 주도로는 846m 중산남로와 연결된다. 다리 중앙엔 한글자당 3-4m 높이의 남포대교 글자가 금색으로 걸려 있는 데 등소평의 친필이라고 한다. 황포강엔 전부 5개의 대교가 있고, 좌측에 보이는 노포대교가 올해 6월 중순경 완공되면 총 6개가 된다. 바로 오른쪽은 프랑스 조계지역인데 여정 마지막 날 우리가 방문할 임시정부청사와 상해박물관이 안쪽에 있다. 예전엔 이 고가를 경계로 좌측을 시외(외환선), 우측을 시내(내환선)으로 불렀다고 한다. 지도를 보니 상해시내의 중심부를 남북으로 가로지르고 있으며, 이 옛 고가도로는 총48Km에 이르고, 상해시를 원형으로 한바퀴 도는 시간단축 코스이다. 오른쪽 너머에 황포동로가 있다. 주변 아파트엔 집마다 에어콘 실외기가 설치되어 있고, 특이한 점은 창문 바깥쪽으로 장대를 길게 내어 이불과 내의류같은 빨랫물을 일광하고 있다. (문화차이 접수!)
북경서로 출구를 지나 공화신로로 꺽어 다시 우회전하여 신웨이이스튼 호텔로 내려오게 되니, 12:40분, 난생 처음 중국 현지에서의 첫 식사장소 진훼이(金輝) 중식당에 이른다. 10좌석 라운드 테이블형에 음식이 회전식으로 돌려가며 각자 자기분량만큼 조금씩 들어서 먹게 되어있다. 식단은 훈제족발, 볶음밥, 짜장면(조금 짬), 삶은 야채, 계란국, 감자, 맥주 등으로 전통음식에 가미되는 향신료를 완전히 배제하니 그런대로 먹을 만하다. 미리 연락해둔 쉐르보네 중국 정원가구 공급선에 근무하는 미스 아만다션이 나와 있었다. 3학년1반 나이에 비해 몹시 앳된 모습의 만화 속 인물이다. 싹싹하고 영어도 잘 해 의사소통이 원활하다. 짧은 중국말로 주섬주섬 얘기하니 이내 친해진다. 오늘 스웨덴계 가구전문매장 IKEA까지 우리와 동행하며 안내해 주기로 했다. 식사를 거진 마치고, 오후1:20분, 두 번째 견학지 보타구 매천로 1258번지에 위치한 OBI(歐倍德)를 향해 출발한다.
두 번째 견학업체 OBI(歐倍德)를 찾아서
북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차창 밖 상해시 거리를 스쳐지나간다. 오래지 않아 OBI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1:40분이다. B&Q와 유사한 매장 규모에 OBI 간판이 중앙에 걸려있고, 맞은편엔 대형 장식자재 매장이 위치하고 있다. 이 곳은 3년 전부터 건축, 장식자재가 비교적 집중된 지역이라고 한다. 2002년 6월 30일 유럽거점의 독일계 건축자재 유통업체와 중국 최대 백색가전 업체 하이어(Haier)와의 합작형태로 중국내 보다 향상된(Higher) 주택시스템 시장을 겨냥하여 설립된 다국적기업이다.
하이어는 1984년에 창립되어 Customer First와 One-stop Shopping을 내걸고, 창의성(Creativity)과 속도(Speed)를 경영핵심 철학에 두어, 짧은 기간에 연평균 52%의 성장률로 중국 시장점유율 최대(60%)를 차지하게 되고 현재 상표가치가 7조원을 넘어선 청도에 본사를 둔 3만명 종업원의 거대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한국에서도 H사, M사 등과 품목별 독점판매권 계약을 체결하고 국내 공급을 위한 판매망 구축을 진행하고 있다. 매장을 들어서자 제일 먼저 체크한 곳은 가전제품코너로 우리나라 가전제품의 진열을 보려 했으나, 찾아볼 수 없어 복무원에게 물어보니 취급하지 않는다고 하고, 하이어 에어컨에 대해 열심히 설명한다. 일부 유럽산, 일본산과 하이어 브랜드 가전제품으로 진열되어 있다.
OBI매장은 현재 중국 전역에 6개점이 있는 데 3개점이 상해에 집중해 있다. 매장내 종합카탈로그는 없고, 제품설명서도 부족하다. 단지 크리스마스 선물용품 4P 브로셔를 내 놓는데 디자인이 다소 조잡한 느낌과 과도한 장식무늬 제품이 지면을 채우고 있다. 전면에 800번 고객문의 수신자부담 전화번호가 눈에 띤다. 끝번호가 OBI의 로고를 숫자로 변환된 0131이다. 수억의 연상효과를 담은 고객서비스 아이디어라 생각이 된다. 매장내 디스플레이 아이디어와 진열 제품의 특성을 일별하면서 제품과 고객서비스 수준에 비해, 장루민 회장의 공산당대표대회 기자회견 연설장면이 자본거래를 통한 시장 확장의 귀재로 단지 구르는 눈덩이로 오버랩 된다.
세 번째 견학업체 IKEA(宜家)를 찾아서 왠지 씁쓸함을 지닌 채 3:10분 OBI를 뒤로하고 세 번째 견학업체에 기대를 갖고 버스에 오른다. 가는 동안 OBI 여자화장실 풍경이 노랑 빨강 더미가 쌓여 볼일을 볼 수 없다는 말에 외형의 양면성을 느끼게 하여 답답하다. 2, 3조가 방문하면 청소가 되었는지 더 굳어 있는지 확인 요망한다. 건축자재 세계 4위 유통업체도 중국의 관리체계에 동화되는 면모를 보는 건지, 사회주의 관행이 청산되기까진 요원한 세월인지 피로가 점차 쌓여간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아파트 담장 야자수 너머 양말, 속옷 빨래물이 장대에 길게 걸려 있는 게 질서가 없어 보이고, 이국적 정취가 느껴져야 할 야자수는 여태까지 본 야자수 풍경 중 가장 추한 모습이다. 먼지층도 두터워 보인다. 6층이상 고층건물에 건축발판(비계, 일명 아시바)를 대나무로 연결하여 사용하고 있다.
우리 버스는 조계로 방향에서 오른쪽 오중로 2가와 충치아로를 지나고 있다. 고가차선 속도제한은 100으로 원형교통표지판이 있는 데 바닥엔 차등표시가 있다. 1차선 80-70, 2차선 50-30 속도 표시다. 그러고 보니 차 커렉션 울리는 소리를 잘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만만디의 현주소인가. 2차선은 시내에서도 기어가도 되는 차선속도이다. 교통표지판은 한자아래 예외 없이 병음(拼音)영문표기를 해두어 한자발음인식에 매우 유용하다. 상해의 외국관광객에 대한 배려의 한 단면이자, 자국민 보통화 교육차원으로도 좋은 효과가 있을 듯하다.
3:40분, 예상보다 빠르게 유럽풍의 청색과 노란색상으로 모던하게 단장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상해시의 남서쪽에 위치한 IKEA는 외곽이기보단 더욱 도시 중심에 자리잡은 듯 주변에 고층건물과 고가도로가 어우러져 도시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입구에서부터 널찍한 회전문과 로비에 장식코너가 색다른 세련된 느낌을 더해준다. 이미 정보를 얻은 바, 수준높은 디자인, 가격경쟁력, 매장 컨셉의 IKEA 특장점을 중심으로 둘러보기로 하고 로비 왼쪽으로 에스컬레이터에 오른다. 카테고리별로 디스플레이를 정돈해두고 깔끔하게 차린 가구 진열을 지나면서 중국에 동화되지 않고, 자사의 관리체계 패턴을 중국에 동화시켜가는 관리체계가 드러난다. 어디로 나가야 하는지도 모르게 벌써 동선따라 견학이 진행되고, 정말 매장 동선은 들어 온 고객이 전 품목을 지나야 출구 매대로 이어지도록 구성해 두고 있다. 시간이 더 난다면 동선설계를 면면히 조사하고 싶은 욕구가 날 정도다. 일단 스웨덴 특유의 딱딱한 호밀과자(와샤-치아균형과 아이들 두뇌발달에 효과)를 사기위해 둘러보고, 복무원에게도 물어봤으나 전혀 모른다. 단지 레스토랑이 매장내 위치해 있다.
가구상품 개별적 브로셔가 잘 구비되어 있고 고객이 마음대로 가져갈 수 있도록 IKEA로고가 새겨진 연필과 자를 군데군데 마련해 두고 있다. 그런데 23개 국어로 연간 1억2000만부를 무료로 배포한다는 이케아 종합카탈로그는 보이질 않는다. 아시아에서 최대규모(1만평)인 이 곳에서 무엇을 얻고 갈까 고민하여 둘러보던 중, 그런대로 특색이 있는 두세 곳을 만나게 되었다. 그중 한 곳은 Bargain Corner다. 중고품 또는 오래된 제품의 할인특설 코너 룸을 별도로 마련해 두었는데 상태가 새것 같은 괜찮은 가구도 있었다. 저회전 상품의 재고소진과 오프라인 고객 물물교환의 중계역할인 셈이다. 또 한 곳은 기존의 세련된 동선 컨셉과는 다른 7-8층 높이의 창고선반 구조에 1-3층까진 가격표를 부착한 창고형 DIY가구류 판매코너이다. 디자인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고 고객이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샘플도 비치해 두고 있다.
미로 같은 동선을 따라 흘러가듯 도착한 곳은 출구계산대다. 1-30개 계산대 설치되어 있고, 이날 주요 사용은 20번대 까지 운영되고 있었다. 고객 흐름이 매우 빠르다. 계산대를 나오자 스낵코너가 있어 박차장과 아이스크림을 시켰는데 1위엔(150원)이고 맛이 괜찮았다. 콜라도 같은 가격, 핫도그는 450원이다. 밖으로 나오니 5:10분, 대부분의 직원들도 나와 있고 주어진 시간보다 빨리 진행되어 이케아 건물배경으로 전직원 및 개인별 기념촬영하고, 5:30분 저녁식사를 위해 중국 다이아 소수민족이 운영하고 있다는 중국 전통음식점(傣家村大酒店)을 향해 출발하였다.
소수민족이 운영하는 태가촌(傣家村大酒店)에서 저녁식사 태가촌가는 길가 가로등이 S자 용모양 (상하이 S)인지 매우 이색적이다. 오문로 왼쪽에 서가회 아파트촌(상해 최초 아파트단지-초기 고위관료 거처)을 지나, 서북쪽 진휘호태로를 지나는 길에 비디오가 나오는 택시를 본다. 태평양백화점(상해 3개중 1개)과 상해에서 2-3번째 가격비싸기로 유명한 맞은 편 동방사가의 외형을 보고, 항추광장과 호남로(湖南路)555호를 거쳐가니 퇴근 길 러쉬아워와 접하게 되었다. 저녁 7시, 피곤과 졸음이 엄습할 즈음에 초록색 네온의 태가촌(傣家村大酒店) 식당 앞에 당도한다. 한국말을 하는 사람들이 몰려있는 점으로 미루어 가이드 리베이트 코스식당이란 생각이 든다. 대부분 한국, 홍콩, 대만 사람들로 식당 전체를 빼곡히 매우고 있었다. 조금 있으니 중국 음식이 푸짐하게 나오고, 소수민족 전통 민속춤 공연을 시작한다. 그리고, 무용수들이 직접 테이블로 와서는 빨간색 길쌈실타래를 손목에 묶기(3일후에 풀어야 축복 의미), 이는 선보는 것과 같은 의미로 여자가 시집가고 싶을 때,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항보(주머니)를 줘서 건네받은 남자는 따라가야 한다는 풍습이라고 한다. 무대 중앙에 복(福)자가 180도 거꾸로 걸려있다. 중국인들은 복자를 축일에 거꾸로 집 앞에 걸어 두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J팀장이 한 병에 30위앤하는 백주 (孔府家酒) 2병을 쏘아 맛을 보고, 식사도 거진 마칠 즈음 민속춤 중에 일인 춤사위가 그런대로 볼만했다. 머리에 공작새 깃을 꼿꼿이 세우고, 공작의 모양새를 춤으로 표현하는 듯하고 특히, 손목의 끊김 동작과 연속적 하늘거림이 매력적이다. 어깨 겨드랑이부터 손끝까지의 근육 움직임이 여러 형태로 굴곡되고, 분절되어 독특한 팔과 손동작을 연출한다. 캠코더로 줌인. 1시간가량의 식사를 마치고, 8시경 호텔로 향했다.
루이타이호텔(瑞泰酒店) 도착과 뒤풀이 루이타이호텔(瑞泰酒店)은 남서쪽 이케아보다 아래 홍교로에 위치하는 4성급 신축 건물이다. 차가 덜 밀려서 인지 반시간만에 호텔에 도착하여 체크인(단체비자 사본제출)과 방을 배정, 잠시 휴식 후 다시 모이기로 하였다. 내일 일정을 다시 한번 정리하고, TV를 켜보니 중국중앙방송(CCTN) 채널이 10개가 넘어선다.
오락프로는 마치 홍콩 방송 같다. 그리고, ABC 사체 부검 프로그램이 잡혀 잠시 눈여겨 보니 거진 구토가 날 지경이다. 뼈를 자르고, 간을 꺼니어 토막내는 모습과 아직 피가 응고되지 않은 채 터져나오는 장기들에서 의학 전문 프로그램 치곤 인간푸줏간이다. 예전에 아프리카에서 사고로 죽은 동료직원의 사체를 한국으로 우송하기위한 박제 준비작업을 볼 때 배를 찢고, 속을 다 덜쳐내는 모습이 연상된다. 오늘 먹은 중국음식이 더욱 느끼해 지고 속이 거북하다.
잠시 후 오늘 뒷풀이 장소 알림 전화를 받고 모인 곳은 호텔 바로 옆 일식집이다. 가이드가 이미 한정 금액을 식당에 얘기해두고, 좀 늦은 시간이라 우리 직원들만 넓은 공간을 메우고 있다. 음식이 매우 맛이 좋고, 회와 상해 민물게 요리에 鬼酒(중자 68위엔/병)를 대여섯병 먹고 나니 나른해 진다. 혹시나 하여 나의 애창곡 등려군의 첨밀밀을 신청하니 곧 바로 들려주어 오늘 하루의 분주함에서 벗어나 마음이 한결 편안해 진다. 영어라곤 한마디도 통하지 않는 이 곳에서의 한류열풍 지수는 어떠한지 알아보려고, 안재욱과 김희선을 서투른 중국발음으로 하니 여종업원의 순간 눈자위 동공이 확대되고, 얼굴에 화색이 만연하다. 안재욱이 새벽 공항에 도착할 때 먼 길을 달려와 밤을 지새우고 이른 새벽부터 공항에서 대기한 열광팬들도 있다고. 한 사람이 거의 기업단위로 움직이는 외화획득이다. 대략 11시 즈음에 파장하고 영주증 액수는 1,360위엔, 왠만한 현지 노동자 한달벌이니 종업원들의 친절도 가히 높이 평가된다. 각자 각출하고 424호 호텔방에서 2차를 가지는데 공항 면세점에서 사온 양주가 등장한다. 새벽부터 설친 피곤이 마구 몰려와 아쉬운 하루를 결별하고 날과 날사이의 다행스런 장벽 속으로 이내 들어간다.
[둘째날]
아침 6시, 모닝콜이 어김없이 울려 눈을 뜬다. 수화기만 들었다 놓고, 잠시 눈을 좀 더 붙이려니, 화장실에 비치된 전화벨 소리가 다시 울려 잠을 깬다. 호텔 뷔페식 아침식사는 토스트와 쥬스, 그리고 쌀죽이 속을 풀어주고, 과일을 먹고 나니 아침공기가 개운하다. 오래전부터 주5일 근무제가 실시되어선지 호텔주변 아파트는 사람구경할 수없고, 거리도 한산하다.
태극권 기공체조는 새벽에 이뤄진다니 오늘은 놓쳤고, 내일 일요일엔 홍구공원가면 아침에도 볼 수 있다고 한다. 가이드는 좀 더 편한 버스 56인승을 대절해 왔다. 앞쪽 리어미러가 메뚜기 더듬이 같이 귀엽게 달려 있는 옅은 녹색 버스다.
오늘 주요 일정은 정원, 물, 비단의 도시로 알려진 소주(蘇州)에 위치한 B&Q의 데커레이션 센터와 중국계 건축자재매장 홈마트, 그이후론 관광코스로 졸정원, 실크기념관, 해발 36미터 호구산 등정, 그리고 상해로 와서 외탄야경을 보기로 하였다. 날씨가 화창한 봄날 같다. 어제완 좀 다르게 모두들 컨디션을 회복한 듯한 표정들이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아침 8:20분, 남서쪽으로 난 상해-소주간 고속도로를 진입하고 있다.
소주(蘇州)로 가는 길 왕복 8차선의 탁 트인 고속도로를 달리며 차창 밖 풍경은 중국의 전형적인 농가모습(습기차단목적의 대부분 2층구조:1층은 창고와 주방, 2층은 침실, 옥상 작은집엔 묘를 안 쓰기에 조상납골당 안치)와 간간히 나타나는 빌라 단지가 연결되고, 전체배경은 3모작도 한다는 천연적 곡창지대의 광할한 평야가 멀리 안개 속으로 펼쳐져 있다. 가이드가 잠시 소주에서의 일정을 안내한다. 중국에는 현재 4개의 직할시(북경, 상해, 천진, 중경)이 있는 데, 제 5의 직할시 승격을 강소성내 무석과 소주가 각축하고 있다. 중국의 중요한 역사와 문화가 있는 관광지로 시내인구만 약 100만명에 한족외에 40개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춘추시대 5패 중 오나라의 수도였으며, 기원전 512년에 건설되어 2500년의 고도로서 소주는 물의 도시답게 중국에서 다리가 가장 많은 170여개가 되고, 16세기 마르코폴로는 소주를 동양의 베니스라 칭하기도 하였다.
또한 중국 4대 명원의 하나인 졸정원이 있는 곳이다. 지금은 예전의 모습과는 좀 다른 도시로 변모하면서 그 정취를 그대로 만끽하기엔 좀 거리가 있다는 어느 여행객의 말도 들은 바 있다. 아마도 상해의 도시발전 여파와 후광으로 넓은 평원과 숲, 운하가 있는 수려한 자연환경은 일찍이 상해를 업고 경제, 문화의 도시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여건은 아닐까. 버스 안은 조용하다. 어제의 보충 잠. 허걱, 코고는 소리도. 9:30분 소주표지판이 등장하고, 소주식품유한공사의 금색글씨가 아침 햇살에 유난히 반사되어 우리를 먼저 맞이한다. 거리엔 스쿠터, 자전거와 오토바이 일체형, 자전거 타이어 굴기의 오토바이, 참 다양한 준교통 수단이 길가를 지나간다. 진입풍경은 여느 중국거리와 별반 다를 바 없다. B&Q매장과 따로 떨어져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B&Q 데커레이션 센터가 소주지점 본 매장내에 있다하여 B&Q에 도착. 9:45분
B&Q DECO CENTER 부사장과의 첫 만남 본 센터를 견학코스에 잡은 이유는 NS의 논현동 서울전시장을 오픈함에 있어 설계디자인과 인테리어시공에 대한 중국 건축자재유통업체의 특화 사업으로 진행되는 배경을 검토하고자 함이었다. 사전 연락 없이 소주 센터의 朱雪林 부사장과 면담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면서 시간제약상 깊고 심중한 대화는 나눌 수 없었지만 나름대로 윤곽을 파악하는 데 만족해야했다. 젊고 다부진 모습의 검정양복을 입은 사람이 명함을 건넨다.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아 가이드의 통역을 의뢰하고, 소개와 인사를 나눈 후, 몇 가지 질문으로 바로 들어갔다. 다음은 약 30분간 나눈 일문일답의 주요 내용이다. EMS: B&Q Deco Center는 고객의 주택자재선정, 예산, 디자인, 시공, A/S 및 설계무료상담을 종합적으로 한다고 들었다. B&Q 건축자재 유통에서 별도 장식센터를 사업화하게 된 배경은? 朱雪林: 중국의 주택구조는 고층아파트 위주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으며, 정부 분양시 내부마감이 되지 않은 채 입주자가 직접 자재를 선택, 시공을 외주하는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현재 전국 도시가구수가 1억호를 넘어섰는데 이중 10%이상의 가구가 매년 인테리어 공사를 위해 재투자하고 있고, 가구당 연평균 1만위앤(150만원)의 지출을 한다는 통계가 있다. 주택구입에 따른 마감 외에도 대략 3년 전부터 실내장식의 열기가 고조되고, 근래 내부마감 후 분양되는 추세도 있으나, 구입한 후, 화장실, 주방, 커튼부자재 등 부분적인 리모델링을 많이 하고 있다. 중국 인테리어 시장은 현재 약 4,000억위앤이나, 연평균 25%이상의 성장과 내년엔 전체 약 6,000억위앤(90조원) 정도의 시장규모가 형성될 것이다. 장식 전문상가도 많이 생겨나고 시장가격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지만 보다 수준 높은 서비스와 지역선점을 도모할 때가 되었다. 전망은 매우 밝다. EMS: B&Q Deco Center 규모는 어느 정도 인가? 朱雪林: 소주에만 3개가 있고, 전역엔 16개가 있다. 현재까진 B&Q매장 내부에만 포진되어 있는데, 금년엔 18개로 추가할 예정이며, 2004년까진 총 26개로 외부 각 지역별 별도의 건물에 오픈할 예정이다. EMS: 인력구성과 근무여건은? 소주센터는 2001년 6월에 입점하여 현재 25명의 전문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설계, 예산, 감리를 전담하고, 약 500명의 외주 시공자를 유기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센터내 1년 매출액대비 각부마다, 직무별 급여체계가 달리 적용되며, 년말보너스와 기본 복지상여를 포함하여, 전문설계사의 경우 월1만 위앤(150만원)정도인데 이는 디자이너 기술 상담자의 초임 4천위앤에서 수준이 상승하면 받게 되는 급여체계이다. B&Q 매장 판매일반직의 경우는 월 1,500위앤(23만원) 정도인데, 오전 8:30에서 오후8:30까지 11시간을 2교대로 하고 주말 2일 휴무를 제공하는 조건이다. EMS: 소주 데코센터의 연간 실적은? 朱雪林: 좀 곤란! 현재 소주신구 중심으로 년간 350여 가구의 인테리어 시공이 진행되고, 주변 교외지역을 합하면 700여 가구의 시공을 하고 있다. 지난해 인테리어 시공 연매출은 총 7천만위앤(105억원)으로 마진(영업이익)은 8%대이다. EMS: B&Q 소주지점 본 매장 실적과 비교한다면? 朱雪林: 2003년도 소주 B&Q매장 매출은 총 1억3천만위앤(약 200억원) 정도이다. 상품관련 공장대표와 직원을 제외하고 주말근무인원을 포함하면 매장 정규직원수만 400명에 달한다. EMS: 소주 B&Q의 경쟁관계는? 그리고 최근 효자상품은? 朱雪林: 중국계 자본 건축자재매장 홈마트가 있지만 분명히 차별화된 서비스가 있다. 근래 매출 상품 중 늘 그랬듯이 마루바닥재와 타일, 접착제가 수위에 올라 있으며, 창문, 문의 경우는 매우 가격이 저렴하고, 해외의존도가 비교적 낮은 문 전문공장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중국의 전반적인 창호시장은 PVC창호의 급성장 이면에 여전히 철창과 알루미늄창호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PVC창호의 우수성이 만연되면서 이미 대도시는 60%이상이 PVC창호로 선회되고 있고, 지방도 곧 교체될 것이다. EMS: 목조주택에 대한 중국내 시장 경험이 있는지? 朱雪林: 개성 있는 젊은 사람들이 기존의 집안에 목조주택 형태로 시공하기도하나, 소주지역엔 없다. 목조주택의 수명을 10년 정도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정원용품의 판매량은 선명하지 못하다. 아파트 중심의 생활문화에서 오는 차이라고 본다. 중국내 타 다국적기업과의 비교, 한국에 B&Q의 입점, 한국 건축자재시장등에 대한 의견 교환등 할 얘기가 많아질 것 같아 10:30분 대화를 마무리하고, 다음 한국에 올 기회가 있으면 연락하라고 전했다. 별도 보관하고 있는 센터 카탈로그를 접수하고, 감사 인사와 함께 다음 여정인 홈마트 길에 오른다. 찾지 못한 홈마트(好美家)의 야속함과 소득 홈마트는 지도상으론 B&Q에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지만 초행길의 다소 미심쩍음을 해소키 위해 기사에게 물어보니 찾는 데 어렵지 않다고 한다. 이제 견학 마지막 코스를 오전 중 정리하고 점심식사 후부턴 본격적인 관광여정이 배정되어 있다.
홈마트를 보게 되면 중국계 자본 대형매장의 특성을 봄으로써 다국적 기업과의 차이와 중국건축자재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외국 기업이 개입되지 않은 매장운영 내용면에서의 체계를 갖추고 있을까 궁금했다. 헌데, 찾아가는 길이 생각 보다 험난하다. 한 번은 들어선 길이 막혀있고, 근처까지 왔을 듯한데 녹색간판의 홈마트는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가이드가 여행코스는 돌아가는 길따라 가면 된다니 문제없다고, 다만 시간이 많이 지체되는 느낌이다.
답답한 와중에 추억을 더듬을 수 있는 장면이 나타난다. 나무의자를 아치형으로 포개어 실은 2.5톤 트럭 줄잡아 200개는 넘게 실렸겠다. 택시 뒷창문에 호텔광고 문안이 크게 붙어 있다. 상해에는 규제가 있어 이런 광고를 거의 철회하고 있지만 아직 소주는 대부분의 택시에 걸려있다. 얼씨구씨구 점점 과거로 들어간다. 어린시절 금붕어장수를 보는 듯하다. 금붕어와 어항을 자전거 리어카에 실고 가는 금붕어장사. 첨밀밀의 여소군(여명 역)이 1986년 배경 홍콩에서 정착을 위한 애환과 자전거 타는 모습이 오버랩 된다. 대략 15미터 높이의 교량을 축조하는 데 H빔 없이 촘촘한 쇠파이프 비계형태로만 연결하고 있다. 도로변 그림광고간판엔 운해(雲海)란 로고 옆에 뒷모습의 나체 남자가 공중에 그은 가상의 획을 넘으려고 하는 모습이다. 무슨 광고인지 언뜻 감이 안 온다. 아무래도 잘못 온 것 같다.
11:40분 우리가 찾던 홈마트(好美家)의 초록 간판은 나오질 않고, 가락거(家樂居)의 중국 건축자재 마트앞에 버스가 선다. 대형 선전광고판이 벽면에 걸려있고, 정문앞엔 타일과 건자재 쓰레기더미가 어지럽게 늘부러진 모습이 여기까지 올 때 느낀 긴 시간의 찹찹함을 더한다. 꿩대신 닭이라고 더 이상 시간지체를 할 수 없다. 일단 왔으니 들어가 보니 위생도기류와 타일류 매점이 대부분이고 복도는 광택이 반질반질 흐른다. 3층구조의 에스컬레이터로 돌고, 나름대로 샤워부스매장에서 카탈로그와 가격을 문의하고, 기본적인 거래구조를 체크하고 나오니 직원 모두 버스에 올라탄 상태다. 단지 20분 걸렸다. 차기 2조, 3조 일정엔 소주 Home Mart는 생략하고, 상해시내 홈마트 9개 중 하나를 견학하도록 귀뜸해 줘야겠다.
예까지 오면서 소주의 구석진 곳을 보고나니 중국 중서부 내륙에서부터 동쪽으로 가파르게 솟아오른 중국 전체의 그래프가 눈에 그려진다. “多多江流向東了” (강은 동쪽으로 흐른다). 아무리 인구가 많고 넓은 땅덩어리라도 획일적인 통치가 가능하다는 힌트를 보게 된다.
12:30분 소주에서 점심은 중식이다. 옛 고위관리저택 같은 신록대주점(申鹿大酒店), 정자와 태호암(최저 수심 2.8미터의 화산활동으로 생긴 태호 호수바닥에서 나온 석회암, 기암괴석)으로 정원을 장식하고, 누각의 처마끝이 하늘로 치솟아 있다. 여기도 한국 사람들이 옆 테이블을 두르고 있다. 가이드 리베이트 코스인 것 같다. 남자요리사가 요리한 깍두기, 마파두부, 피망요리, 콩나물, 술은 52도의 홍성이여두주(紅星二豆酒)와 맥주를 곁들여 점심식사를 맛있게 해치운다. 중식은 술이 빠지면 무척 심심한 식사가 될 것 같다. 1시 즈음에 식당 인근 한국의 천태종과 같은 종파인 한산사는 내부 소주에서 가장 높은 탑인 76미터의 북사탑(상해 용화사에도 같은 모양이 1개 더 있고, 처음엔 보은사탑으로 칭했음.) 외부전경과 사찰입구 모습을 버스로 훑어 지나가고, 첫 번째 관광코스인 졸정원(拙政園)을 향한다.
중국 문화기행에 첫 발을 내딛으며 졸정원 오후 1:20분 드디어 중국의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라고 하는 졸정원 도착. 입구 옆엔 즉석 사진현상소와 방글라데시의 주요 교통수단인 릭쇼(자전거 인력거), 가마 등 탈것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안내판엔 Humble Administrator's Garden(미천한 행정가의 정원)으로 새겨져 있고, 동/중/서 세부분 중 중원에 핵심(춘하절 150여종의 연꽃 전시)이라 한다. 가이드 왈 야외지만 보행 중 금연을 강조하고, 내부 분재원에 가면 피울 수 있다고 한다. 입구에서 단체 기념촬영을 하고 마당에 들어서니 연못을 파내어 나온 흙으로 둔덕을 만들고 그 위에 태호석으로 산을 본떠 만든 바위산인 석가산(石假山)이 있다.
명나라 제상 왕헌신의 사택으론 몹시도 넓은 5만 평방미터에 60% 정도가 크고 작은 인공 연못이고 물을 중심으로 주변에 누각과 정자가 지어져 있다니 당대에 무척 위세가 있었던 양반인가. 황제의 암행어사 신분을 상징하는 누각의 처마 끝이 하늘로 치 솟는다. 귀띔으로 들려오는 말인 즉 왕헌신이 검은 돈을 챙겨 지은 것이라고. 정말 拙者之爲政(어리석은 자의 정치)에서 나온 졸정원인가. 후세 문인들이 졸장부가 정치하다 망했다하여 붙였다고 한다.
자갈길을 따라 춘하추동을 즐기는 방에서 잠시 설명을 듣고, 벽의 벽공무늬가 같은 게 없는 벽을 지나, 부부만의 공간인 원향관에 이르니 30마리 정도되는 원앙새가 무리지어 있다. 안으로 들어서니 파란색 창유리를 달아 놓았는데 왕헌신이 겨울철 눈을 보고 싶어 창을 통해 눈 내린 정경을 감상하기 위해 구상한 것이라 한다. 아무튼 밖을 보니 나무와 땅에 서리가 앉은 그럴듯한 겨울 눈속임이 연출된다. 은은한 연꽃향기가 멀리까지 퍼진다는 원향당, 그 천정의 물결모양의 나무. 남존여비 상징 중간벽, 마치 중국영화 무대 세트장 같다. 알고보니, 정원은 화가를 시켜 먼저 그림을 그리게 하고 그림대로 설계하여 축조되었다고 하니 어떤 배경에서도 한 폭의 동양화가 연상된다. 지금도 영화촬영소로 선호되고, 소설 홍루몽의 배경이기도 했단다.
분재원의 다양한 분재 작품과 토속품 가게를 둘러보고, 종종 걸음으로 대나무 밭을 지나 출구를 향했다. 대나무 밭 뒤로 난 화장실은 현대식으로 깨끗했다. 출구가 나오니 시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2:30분 한 시간 남짓한 속사 관광 후 주차장에 모였다. 옆구리로 여유 있게 타는 벤츠 관광버스가 눈에 띤다. 예정대로 다음 여행지인 실크기념관으로 출발.
실크공장 버스를 타자마자 어떤 상점입구 같은 곳이 실크기념관(공장)에 이른다. 2:40분, 제주도 신혼사진 줄서기식 각본에 있는 듯한 내부코스로 10미터 길이의 패션쇼 무대로 안내받는다. 쇼장 입구에 선 산타크로스의 얼굴모습이 우스꽝스럽다 못해 우울하게 한다. 잠시 후 무대조명과 음악이 짜잔, 실크를 두른 모델들이 한 둘씩 등장하며, 워킹, 포즈를 취한다. 얼굴표정들은 마치 끌려다니는 소같다. 패션쇼의 마지막 남색 치파오(旗袍) 전통의상쇼가 압권이다. 몸매곡선과 걸을 때마다 옆가랑이가 터져 살짝 비치는 각선미가 나름대로 엄선된 모델들 같다. 다음은 실크를 직조하는 방으로 안내되었다. 7-8명의 작업자가 제사기 앞에 서서 같은 동작을 계속 되풀이 한다. 고치를 삶아서 죽은 번데기를 빼고, 한 칸에 10개 정도 고치의 실끝을 찾아 하나로 걸어 제사기에 매는 작업이다. 그다음 비단솜이불 과정인데, 조선족 어투의 복무원이 친절하게 설명한다. 고치 안에 번데기가 1개 들어간 것은 명주로 써나, 2개 들어간 것은 이불솜으로만 사용할 수 있단다. 먼저, 작은 틀에 70장을 덮어 명주솜 1조각을 만든다. 아무리 찔러도 구멍이 안 난다. 방탄조끼와 낙하산의 소재라나. 그 틀에서 벗겨내어 4명이 한조로 큰 판위에서 사방으로 잡아당긴다. 이렇게 뭉친 솜을 100장을 당겨 펴야 이불 한 채의 솜이 지어진다니 참으로 정성이 담긴다. 7,000조각이 이불솜 한 채! 공항통과는 1인당 6개까지 가능하다. 물세탁금지, 일광 10분 OK!
몇몇 직원은 한국형 1000그램이 380위앤(59,000원)인 실크이불솜(실크천은 별도)과 실크 베게피가 있는 배게(140위앤-속은 100% 명주솜이 아님)를 구입했다. 할인은 절대 없다. 어떤 한국 아줌마 베게피 추가분에 대한 할인 실랑이에 복무원이 화를 낸다. 다음 코스로 가니 널찍한 매장에 실크 관련 온갖 상품(넥타이, 스카프, 숄, 지갑, 잠옷, 전통의상 등)이 백화점식으로 진열되어 있다. 스카프 1장에 50위앤부터 200위앤까지 다양하다. 한국 돈도 통용되는 정찰제다. 카드결제가 더 이득이다. 수수료를 매장에서 부담하고, 환율도 2,000정도 환차익도 본다. 3:30분 쇼핑을 마치고, 출구에 있는 스낵코너에서 그 유명한 청도맥주를 마셔보니 암튼 유명세만큼 맛이 좋았다. 3:50분 호구산으로 출발. 호구산 호구산 입구에 도착하니 4시다. 여긴 입구와 출구가 달라 버스가 출구쪽에서 4시 40분에 대기한다고 한다. 입구부터 게릴라식 사진찍기가 흥미를 돋군다. 먼저 디카가 배경을 잡으면 가까이 있는 사람이 끼어들어 풍경화를 인물화로 바꾼다. 핵심은 소주에서 가장 높은 해발 36미터 위에 높이 47.5미터 8각형 7층 벽돌탑 운암사탑을 정복하는 것이다. 소동파 왈 호구산을 보지 않고 중국을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했다는 의미는 아마도 경치보단 역사적 유서 깊은 사연이 많은 것으로 여겨진다. 오나라왕 부차가 그의 아버지 합려의 묘역으로 조성한 후 주변 전설부터 우리에게 귀에 익은 한자성어들의 발원지, 그리고진시황에 이르기까지 얽힌 얘깃거리가 솔솔 묻어 나온다. “지성이면 감천”, “시금석”, “신선놀음”, “와신상담” 등 오르는 길가에 전설과 역사를 증명하는 양 관련 증거품이 놓여 있다. 거진 정상에 오르니, 소동파가 즐겨 찾던 샘물터 제삼천이 있고, 평평한 바위가 나오는 데 천인석(千人石)이라 한다. 남북조시대에 천명의 승려가 고승의 설법을 여기서 들었다는 게 유래다. 운암사탑 쪽으로 천인석의 끝에 이르니 호구검지(虎丘劍池)라 새긴 바위가 있다. 여기가 바로 오왕 합려의 묘다. 오나라는 명검이 나오기로 유명했다는데 합려의 매장시 합려의 애검 3천자루도 같이 부장했는 데, 이후 진시황제와 삼국시대 오나라 손권이 찾아보려고 했으나, 무덤입구를 찾지 못했고, 영원히 역사 속으로 묻혀 있다고 한다. 그 위에 961년에 완성된 운암사탑은 그 아래가 합려의 무덤인 줄 모르고 세워져, 지형변형으로 인해 지금은 약 15도의 경사를 이룬 채 동양의 피사의 탑이란 별칭을 듣고 있다. 탑위에 풀들을 일부러 놔둔다고 한다. 그것이 자연지지대 역할을 한다고. 입구는 봉쇄되어 주위를 배경으로 기념촬영 후 내려오는 길은 계단으로 시원하게 터인 길을 역시 게릴라 찍기 하며 종종걸음이다.
출구를 나와 상해향 버스에 오르기 전 잠시의 휴식을 취하는 데 가이드 언성과 싸움소리가 난다. 출구앞 군고구마 장사의 초상권(?) 시비일까. 우리 직원이 군고구마 아저씨 배경으로 한 컷 찍었는데 가이드가 빨리 출발하자고 한 것을 영업방해로 여겨 우리 가이드에게 욕을 한 모양이다. 점점 더 언성이 고조되고 주변에 밀감장사가 오뉴월 개혓바닥같이 내민 길쭉한 리어카를 몰고, 봉이라도 만난 듯 여기저기서 몰려든다. 떠는 게 상책이다. 4:50분 상해를 향해 출발.
상해로 다시 이동 소주 시내와 주도로인 인민로(人民路)를 지나면서 곡예를 방불케 하는 무질서한 교통상황이 펼쳐진다. 사람이 우리 버스 밑으로 마치 빨려드는 가 쉽더니, 승용차가 중앙선을 넘어 U턴을 바로 시도하고, 그 옆으로 자전거와 오토바이 여러 대가 분수처럼 길로 뻗쳐 든다. 그런데 신기한 건 빵빵거리는 소릴 별로 들을 수 없다. 무언의 약속이라도 되어 있는 양, 화도 내지 않고 각자의 갈 길을 간다. 가이드 왈 무질서는 항주가 이보다 더 심하다고 한다. 앗! 한 승용차는 번호판을 고의적으로 가리고, 그를 뒤따르는 차도 번호판을 가렸다. 그리곤 붉은 색 바탕에 금색글씨로 “大吉大氣”를 붙이고, 꽃장식을 한 것으로 봐 "Just Married"인가보다. 이전엔 국가차량의 개인적 사용을 방지하기위해 번호판 가렸다고 하나, 요즘은 유행이 되었다고 한다. 교통위반시 두 가지로 처리하는 데, 벌금 5위앤과 벌점을 받든 지, 아니면, 특히, 외지차량의 경우는 면허증을 압수당하기보단 200위앤의 벌금을 내버리는 게 낫다고 한다.
실크공장에서 본 모델도 등급이 있는 데 1등급은 광주, 2등급은 심양, 3은 북경, 4는 상해, 5는 소주로 나름대로 정해져 있다. 중국에선 남자가 고생이란다. 장보기, 아침요리하여 마누라 깨우기, 길거리에서 끼니 때우고 출근, 설거지, 청소, 빨래 등 참으로 할 일이 많다고. 한국 남자가 중국 여자와 결혼하면 살기가 어려워 이혼율이 90%라고, 나중엔 자기 민족을 찾아 간단다. 한국 주재원 와이프가 처음 6개월은 불편하다고 바가지지만 그 이후론 떠나기 싫어한단다. 직장이 철밥통인진 모르지만 취직하면 한달 제대로 출근하면 그 다음부턴 편하게 직장생활할 수 있대나. 중국인이 제일 좋아하는 상상의 동물 용은 12가지 동물이 합친 형태다. 뿔(사슴), 닭벼슭, 머리, 입술(말), 수염(잉어), 눈(왕새우), 이빨(원래는 개이나, 범으로 간주), 몸(뱀), 꼬리(봉황), 다리(범), 비늘(물고기), 발톱(독수리)이다. 이 중국용 발톱 5개가 타국의 용과 구별되는 모양새란다. 중국인에게 선물은 배(순조로운 항해기원)가 많다고 한다.
이런저런 잡담을 하면서 교통 거리표지판을 보니 상해 37Km이정표가 나온다. 5:36분. 고속도로에서 홍치아오 방향으로 돌아서니 5:53분, 중춘로로 진입하여 처음 올 때 상해 톨게이트에 닿으니 6:14분, 드디어 한식당 韓朝가든에 이르니 6:20분이다. 식당까지 정확히 1시간 반이 소요되었다. 나무계단 층계로 2층에 오르니 저녁식사가 세팅되어 있고, 고추장에 비벼 상추, 불고기와 된장국을 먹고 나니 오랜만에 식사다운 식사를 한 것 같다. 6:50분 식사를 끝내고, 상해관광의 하이라이트인 외탄야경을 보기위해 버스에 올랐다. 여기서 외탄까지 버스로 안내하고, 남경로 등 개인적 활동을 할 사람은 호텔까지 택시(11시 이전 40위앤 정도)로 가고, 외탄만 보고 갈 사람은 버스로 호텔까지 픽업해 주기로 하였다. 외탄(外灘)공원에서 바로 본 옛 조계지(租界地)와 푸동(浦東) 버스는 한국주재원이 가장 많이 살고 있다는 구베이 지구를 지나고 있다. 서가회보다 더 많은 한국인이 거주한단다. 강소로(江蘇路)를 타고, 전시회가 많이 열리는 상해무역상성 건물과 한국영사관, 상해에서 가장 가격이 비싼 우의상성을 지나니 7:10분, 이 지점에서 연암로를 탄다. 이 고가도로는 가장 깨끗한 지역을 끼고 있고, 이 도로 양쪽은 아파트엔 빨래를 밖으로 못 걸게 하고 있다. 지난해엔 광고판도 많았으나 모두 철거한 상태라고 한다. 각국 대통령이 방문시 지나다니는 길이다.
가장 신기한 건 1930년에 건축되었다는 상해음악청 66층 건물을 도시계획상 60미터 평행이동했다는 건물을 보여 준다. 3미터를 자키식으로 들어올려 가철로로 움직였다니 불가사이하다. 7:20분 가끔 사진을 통해본 눈에 익은 이미지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외탄의 밤정경 속에 이미 들어 온 것이다. 일찍이 세계열강들의 각축장이었음을 증명하는 양, 고대양식 건물들이 현대적 조명과 함께 그 역사를 찬연히 비추이고 있다. 상해시청을 지나 외탄(황포)공원 앞에 버스는 정차하고, 제방위에 황포공원에서 황포강 건너 푸동의 발전상을 배경으로 기념촬영부터 한 컷. 강 건너 468미터의 동방명주TV방송탑은 마치 조각작품이고, 뒤쪽 88층 진마오빌딩(金茂大廈)이 그 위세를 더욱 뽐낸다. 이전에 각국 영부인들이 탔다는 쌍용두 유람선이 유유히 지나가고, 상해 경제금융발전과 개혁개방의 중심에 서있음을 실감케 한다.
한편으론 조계지 시절 이 황포공원 정문에 이소룡 영화중 신정무문이었던가 개와 중국인은 들어오지 못함이란 팻말을 부루스 리가 개 패듯 날려버리는 장면이 연상된다. 1840년대 아편수급의 온상지, 일찍이 租借되어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러시아의 열강 진입으로 1920년대에 지금과 같은 건물구조가 완성되었고, 2차대전직후 조계지 철거, 1949년 중국공산당 정권 설립, 1980년대부터 본격적인 개혁정책, 1990년에 이르러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있는 푸동지구 개발, 자본주의 경제를 처음 도입한 등소평, 그리고 강택민, 장쩌민, 주룽지 등 중국 지도부의 핵심들이 상해시장출신인 점을 감안해도 상해의 잠재력은 수년 내 그 실체를 들어낼 것 같다. 우리나라 항만노조가 심할 때, 상해 국제항만 건설을 위해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소식도 기억난다.
지금도 푸동지역엔 외국자본이 밀려들고 있다. 토지소유권이 인정되지 않아 50년 장기임대 형식으로 토지를 빌어 건물을 올린다고, 그리고 유사한 건물 디자인은 허가가 안난다니 참 각양각색의 건물들이 즐비하다. 건축을 공부하려면 상해로 가라는 말이 나올법하다. 그럼 50년 후엔, 공무원 왈 그땐 너도나도 없어지니 신경쓰지 말라 한다, 우스개 소린지. 건물마다 의무적 조명시설을 갖춰야 하고, 하루에 1천만원 지출된다는 찬연한 건물조명에 대해선 정부에서 관광산업을 위해 지원한단다., 11시까지 의무적으로 켜야 하며, 정부시책에 불이행시 상당한 사회주의적 조치가 있다.
암튼 회상은 접어두고, 몰려드는 짝퉁시계 장사들이 계속 쫒아 다닌다. “뿌용러, 不用了”(필요없어요)하면서 피해도 관광객반, 장사치반을 어찌 피하랴. 순간 괜찮은 디자인이 눈에 띤다. 두개 100위앤!, 로렉스다. 일단 까본다. 30위앤! 안 사면 그만이다. 50위앤! 다시 붙잡는다. 아 30!, 갑자기 옆에 장사꾼 동료인지 시계를 흔들며 나더러 화를 낸다. 나도 모르게 욕이 나온다. 사고 싶은 생각이 뚝 떨어져 돌아서 가니 아까 그 장사가 30위앤에 쇼당를 건다. 다시 한 번 물건을 체크하니 하나는 괞찬은데 다른 것이 흠집이 나있다. 바꾸러 어딘가 갔다 오더니 정품(?) 노렉스를 내 놓는다. 거진 6년 만에 손목시계를 처음 사 본다. 멀리 상해시청에 걸려 있는 시계탑의 시계로 바늘 초침을 조정하며, 모든 건물들 위에 하나같이 걸려 펄럭이는 오성홍기가 눈에 다소 거슬리는 심정은 무엇일까.
남경로 진입로인 유일하게 초록색을 띤 지붕 건물아래 모두 모였다. 호텔로 갈건지 남경로를 관광할 건지 망설이다, 일단 호텔로 가서 다시 나오는 방향으로 하고 버스에 올랐다. 거진 15분 걸려 8:40분 호텔에 모두 도착. 각자 잠시 휴식 후 발맛사지 또는 시내관광을 하기로 하였다. 발맛사지 9시 즈음에 각자 소그룹으로 그냥 취침, 발맛사지, 남경로 관광과 술팀으로 나눠져 마지막 밤을 보내기로 한다. 중국은 관광객을 위한 여흥문화는 부족한 편이다. 맛사지는 비교적 한국에 비해 저렴하고, 외투를 다 입은 채 받기에 생각보다 건전하다. 택시기사에게 호텔에서 가장 가까운 안모더디팡(按摩的 地方)을 주문하니 13위앤 기본요금거리에 있는 雪莉에 내려준다. 4명이서 각자 터인 침대에 누우니 남자 안마사들이 나와 바로 지압에 들어간다. 짧은 중국말로 몇 마디 주고받으며, 등려군 노래를 신청하니 月亮代表我的心을 들려준다. 1시간가량의 피로를 풀고, 호텔까진 걸어오기로 하였다. 조명도 별로 없고, 칠흑 같은 밤이다. 이상한 점은 12시가 넘었는데 미장원에 핑크불빛이 서너 곳에 켜져 있다. 이 야밤에 누가 머리깍남. N은 무척 궁금한 모양이다. 오다가 노래방(世紀2000)이 하나있어 가격을 미리 물어보니 600위앤이란다. 그냥 호텔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상해택시는 대중(大衆)이 신용, 서비스 최고다. 그 다음으로 노랑, 흰색이 괜찮다고 하고, 개인택시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것만 있다고 한다.
[셋째날]
상해시내 투어
아침6시 모닝콜에 눈떠 중앙방송TV를 켜니 본토와 홍콩, 마카오 심지어 인도기사 각 신문의 주요기사를 요약하여 글자를 보통화로 읽어주는 방송이 특이하다. 어제처럼 호텔 뷔페로 조반하고 8:00부터 체크아웃을 가이드가 정리하고 난 뒤, 8:30분에 홍구공원을 향해 출발한다. 임시정부청사부터 가는 게 옳다고 생각했지만 가이드의 노선에 따르기로 했다. 8:40분 고가도로 아래 홍교공원을 지난다. 이곳은 원래 민간거주지였는데 녹색지대로 변경한 곳으로 내려다보니 붉은 부채를 들고 운동과 댄스를 하는 아낙들이 보인다. 8:45분 윤봉길의사의 얼이 담긴 홍구(노신)공원에 당도하여 반시간 코스로 할당받는다. 버스는 주차할 수 없어 돌다가 시간에 맞춰 다시 온다고 한다.
홍구공원 일요일이라 오전 중에도 기공체조(태극권)을 여기저기 무리지어 하고 있다. 건강설계의 다른 개념으로 실생활에 적용해 볼만한 광경이다.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 문명의 경건한 저항으로 현세를 진일보하려는 동작의 연속. 사범이 시범을 보여서 캠코더 촬영을 잠시하고 나니 일행라인이 끊겨버렸다. 급히 길따라 달려갔건만 윤봉길의사 기념관 표시는 보이지 않고 일행들도 사라졌다. 주변엔 남녀가 댄스를 추고 옆으론 초보 교습을 하는 곳이 나온다. 콜라 페트병에 물을 담아 길바닥에 쓰는 붓글씨가 일품이다. 의용군행진곡 같은 노래를 노인네들이 무리지어 배우고 있다. 종종걸음으로 한참가니 2층 구조의 루신기념관 입구다. 이제 만나겠거니 들어서는 데 나이 지긋한 군복 경비원이 막고, 표를 가져오란다. 바디랭귀지와 짧은 漢語를 다하여 이해시키니, 시간이 지체되어 들려 보낸다. 그런데 일행이 보이질 않는다. 사고다. 황급히 뛰쳐나오는 데 이번엔 또 못나가게 막고는 다시 찾아보란다. 복무원까지 붙여주면서. 들어올 때 서로 애를 먹은 걸 생각하여, 복무원을 따라 다시 한번 들어가니 벌써 여기 일정 할애시간이 다 되었다. 이로써 공원 정문를 향해 근 1Km이상을 쉬지도 않고 달려가니 땀이 솟아진다. 그런데 정문에 있어야 할 버스가 안 보인다. 정문에 가만히 있으면 되겠지만 당황이 되니 찾으려 든다. 마침 입구 구멍가게 주인한테 뤼스(綠色)버스를 물어보니 저쪽 사거리 돌아가면 만날거라 한다. 또 달리기다. 혹시 같은 색 버스는 아닐까. 모퉁일 돌아서니 반가운 인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다행히도 시간을 지체하진 않았지만 폭우처럼 흐르는 땀은 닦아도 계속 흐른다. 아무래도 기공력이 부족하다.
1932년 4월 29일 일본 천황생일날 상해사변 전승기념식장의 폭탄투척현장을 보지도 못하고, 루신의 광인일기와 아큐정전의 내용을 더듬어볼 시간도 없이 허무한 첫 번째 여정이었다. 윤봉길의사 기념관 이정표 정도는 설치해 두어야 하지 않나. 중국인들에겐 어떤 존재일까. 9:20분 상해박물관으로 출발. 상해박물관 중국 고대예술박물관으로 명명하는 상해박물관 도착하니 9:40분이다. 1952년에 개관하여 1996년 10월 신관 증축후 정식개방한 상해 사회문명과 문화의 상징으로 시내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 1층과 4층까지 신석기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중국 역사순으로 잘 진열되어 있다. 안내서를 보니 약 11만점의 유물과 회화가 주제별로 구성되어 있고, 캠코더 촬영을 해도 복무원들이 허용한다. 4층 고대 중국 공예품과 동전, 명, 청대 가구 전시실을 둘러보고, 3층 회화, 서예, 인장과 특히 2층 고대 중국 도자기의 해학이 넘치는 유물이 흥미로 왔다. 1층 청동 전시장에 이르니 타임아웃이 인박하다. 대략 캠코더에 담고 반대편 출구로 나오니 널찍한 광장이다. 분수에서 한가로이 노니는 관광객들이 눈에 들어오고, 속전의 아쉬움이 남는다. 11시 임시정부청사를 향해 출발.
임시정부청사 마당로(당시 프랑스조계지-일제손길이 미치지 못하던 곳)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사옥(3층 벽돌집)에 이르니 11:15분이다. 1926년부터 윤봉길의사 의거가 있을 때(1932)까지 7년간의 임시정부가 여기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순례지처럼 여기는 이곳은 왠지 초라하다. 앞 집 가정집 부엌창에서 우리를 향해 바라보는 중국 아줌씨의 표정이 달갑지 않은 듯하다. 9분간의 비디오 시청후 3호문으로 들어서니 비닐 덧신을 신도록 한다. 출입구 1층엔 빛바랜 대형 태극기가 걸려있고, 임정수반들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2층 회의실과 주방, 3층 침실, 집무실을 한사람 겨우지날 수 있는 나무층계를 올라 다시 출구 동선으로 1층 기념품 파는 곳으로 내려왔다.
大韓民國臨時政府舊址란 현판이 없다면 도무지 알 수 없는 낡은 건물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건물주에게 임대하여 쓰고 있다고 한다. 조선족 자녀들이 고구려 번지수를 잘 모를 만도 하다. 11:42분 임정을 출발하여 식사 전에 먼저 쇼핑코스로 정하여 유명브랜드 이미테이션(짝퉁)시장인 상양시장으로 향한다.
상양(짝퉁)시장 임시정부(마당로)에서 신천지(맥주집들로 유명)을 조금 더가 회해로에서 서쪽 홍교방향을 따라가니 상양로의 상양시장이 좌측에 나온다. 12:10분, 1시간가량 쇼핑시간을 할애하고, 가이드는 특별히 소매치기와 물건을 보여주겠다고 따라가자는 삐끼를 주의하라고 당부한다. 온갖 가짜상품이 가게마다 유사한 물품으로 가득 차 있다. 가격 흥정의 솔솔한 재미가 여행에서 이렇게 피로회복제인줄은 미처 몰랐다. 원칙은 우선 브랜드보단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있는가를 살피고, 가격은 3/3법 공식을 적용이면 대체로 성공한다. 주차장이 없어 버스를 길가에 대자 수초내 모두 탑승, 1:10분 한국요리 식당으로 출발.
상해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한식으로 정하고 강소로의 고가도로와 內培高架路를 시원하게 달리며 도착한 곳은 소용강로에 있는 韓宇里한국식당(천화공위APT 앞) 1:35분 도착. 불고기와 김치찌개가 세팅되어 있다. 계속 밥과 찬을 추가해 먹으면서 술생각에 소주가격을 물어보니 8천원이란다. 한 판 쉬기로. 공항가기전 마지막 코스(리베이트)를 잡화점으로 정하여 2:15분 식당을 나선다. 가는 길의 2:35분 지점 中春路를 빠져나가는 길에 병목현상이 발생하여 장시간 지체했다. 2:50분이 되어서야 도착. 조선족 말투의 복무원들이 친절하게 대한다. 불개미술을 시음해 보니 살만하다. 그리고 장뇌삼(인삼씨를 뿌려 15년 인공 양식), 웅담, 각종 선물용 주류와 북한산 제품 등과 액세서리를 취급하고 있다. 모두들 남은 인민패를 처분하고 3:20분 공항으로 출발. 푸동공항으로 이동 이제 모든 워크숍일정을 마무리하고 푸동공항을 향해 가고 있다. 이동 중 버스안에서 가이드가 준 건강검역서(노란색 카드)를 개인별로 작성하고, 단체비자, 항공권, 여권을 챙긴다. 출국 비행기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중국동방항공이다. 6시 이륙이기에 4시경에 도착하면 된다. 서포대교 방향 표지판이 나오고 3:40분 푸동국제공항 36Km 이정표가 걸려있다. 고속도로 1차선을 객차(Passenger Vehicle) 통행 특혜를 두어 상해의 관광객에 대한 배려를 읽을 수 있다. 3:50분 우측방향에 상해신국제전람중심 9Km 이정표를 지나, 4:10분 푸동공항에 안전하게 도착하였다. 우선 버스기사에게 팁(400위앤)을 전달해 보내고, 가이드 임부장은 공항 출국심사전까지 안내하기로 한다. 한데 문제가 생겼다. 중국항공엔 액체를 기내가져갈 수 없다고 하여 잡화점에서 구입한 주류를 수화물로 탁송하기로 했으나, 가방이 적당치 않았다. 공항에서 박스를 구하러 여러 곳을 전전하다 2개를 간신히 구해 한데 모아 꼬리표를 붙이고, 총 9개의 분리된 수화물을 탁송하게 된다. 다음에 혹 잡화점에 들리면 거기 박싱코너에서 미리 포장해오는 게 좋겠다. 보딩이 끝나고, 임부장에게 팁(800위앤)을 전달로 감사 표시하고, 출국수속을 마치고, 개인별 면세점 구경하다가 5:20분까지 게이트 36번에 집결하기로 하였다. 요즘은 이륙시간이 되면 정시에 비행기 문이 닫히고,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한다.
귀향 MU5051 China Eastern 항공에 진입, 전 좌석이 빼곡히 찼다. 대부분 한국 관광객이다. 정각 6시 동체가 움직인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안전벨트 검사나, 승무원의 안전대비요령 시범이 없다. 25분 후에 식사가 나오고, 올 때 본 영상을 개인 이어폰 없이 또 보게 된다. 눈을 감고 지나온 여정을 더듬어 본다.
짧은 시간 알차게 보낸 것 같다. 초현대식 도시 분위기와 중국 전통적 정서의 옛 골목의 공존하는 두 얼굴의 도시 상하이는 또 다른 문화의 만남이었다. 자본주의에 가장 가까울 수 있는 국민성, 제동없는 속도전쟁으로 내몰림, 한국엔 제주도외엔 볼 게 없다는 수천 개의 목아픈 건물 관광, 무질서 교통지옥 속에 화를 잘 안내는 만만디 두리뭉실 자신의 공간확보, 언어적 의사소통보단 문화적 소통이 더 효과 있는 한류열기, 항일전쟁 중의 의용군행진곡을 국가로 부르는 투박함과 이른 새벽 모르는 남녀가 모여 현대무용을 즐기는 사교성, 도무지 감잡을 수 없는 짝퉁시장의 가격구조와 1원 에누리 없는 정부직영 실크공장, 외국기업의 중국 동화와 중국식 한자표기 현대식 간판, 한족과 56개의 소수민족이 170여개의 각기 다른 언어로 공존하려면 일정한 거리도 필요하겠지만 간간히 드러나는 지역간 텃세, 촌스런 금색글씨 간판과 신품과 다를 바 없이 카피하는 디자인 손재주, 깊이 생각할수록 더욱 아리송한 중국인들의 문화와 정체를 파악하려면 인내가 필요할 것 같다.
파편처럼 사람들의 모습도 같이 떠오른다. 이케아에서 열심히 자사의 신제품을 설명하던 아만다션, 10년 이상의 노련한 여행가이드 임부장, 발맛사지해주던 깐돌이, 빌딩 유리창을 시계추처럼 곡예하며 닦는 스파이더 맨, 독특한 춤사위의 다이아 소수민족 댄서, 소주의 마지막 여흥을 장식한 군고구마 장사, 고전 악기를 팔면서 덤으로 피리 두개를 언져주는 거리의 딴따라, 짝퉁시장에서 닭발과 밥만 놓인 도시락을 걸어 다니며 먹는 참한 아가씨, 소주의 자전거 리어카 금붕어 장수, 황포공원 거리의 짝퉁장사와 암달러상, 홍구공원의 경비 어르신, 사회주의 잔상을 느끼게 하는 제복입은 공안과 보안대, 어버버만으로 우리 길을 정확히 안내한 택시기사, 첨밀밀(甛蜜蜜)을 틀어주고 즐거워하는 일식집 종업원, IKEA 로비에서 데커레이션 사진촬영한다고 버럭 화내는 복무원, B&Q 데커레이션 센타의 스마트한 부사장, 처음이냐고 물어본 갈 때 올 때 만난 조선족 여승무원, 사람들, 끝내 목조주택에 대한 정보나, 주거형태를 경험하진 못하고 돌아가는 게 못내 아쉽다.
인천도착 비행기는 정확히 한국시간 8:40분에 인천공항에 착륙하였다. 탁송한 수화물을 찾고, 개별적으로 온 차편대로 해산, 2조, 3조 일정에서 생략해도 될 곳은 조정해야 겠다. 아무쪼록 17명 1조원 모두 별 탈 없이 안전하게 귀국한 것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다음 워크숍 여행기회가 있다면, 여건이 되는 한 첫 만남일지라도 현지인 관계자와 사전에 연락을 취하여 약속을 잡아두고 보다 구체적이고 많은 정보를 입수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바람직하겠다. 이를테면, 한 조를 4명 정도(택시정원)로 구성하여 여행가이드 없이 만남을 위주로 한 배낭식 여정과 조별 목표과제 해결 중심의 워크숍을 실시해야 함을 이번 행사를 통해 교훈으로 얻는다.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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