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나를 찾다
송옥근
연둣빛이 한창인 오월, 동료와 스페인 마드리드로 향했다. 현지 가이드가 피켓을 흔들며 환하게 맞아주었다. 저녁을 먹은 후 숙소에 짐을 풀었다.
첫 방문지는 고즈넉한 고대 로마와 중세의 풍경을 가진 세고비아였다. 세고비아 성과 대성당에 올라섰다. 한참 중세 역사를 바라보다 로마수도교로 향했다. 정교한 기술에 감탄했다. 로마수도교는 오로지 접합 방식으로만 쌓아서 올린 세고비아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가장 뛰어난 유적이다. 세고비아는 고대 문화자원을 보존하기 위해 차량 통행을 제한하고 보행자 전용광장으로 바꿨다.
다음날 스페인의 옛 수도인 톨레도로 향했다. 톨레도 대성당과 산토 토메 성당 내부의 웅장함에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았다. 수도자가 된 듯 가벼운 내가 무거워졌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명작을 보유하고 있다는 프라도 미술관은 둘러보는 내내 놀라웠다. 성당과 미술관은 마라톤을 하듯 쉬지 않고 달려온 내게 잠시 평안함을 가져다 주었다.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진다. 나는 늘 시간에 쫒기며 살아온 것이 아닐까 생각하니 마음에 찬바람이 불어왔다.
우리는 포르투갈의 수도인 리스본으로 달렸다. 창밖에 펼쳐진 야트막한 언덕 위에 한가로운 송아지들이 평화로워 보였다. 짙푸른 나무들 사이로 뭉게구름이 떠다녔다. 길섶엔 국화가 마중 나온 듯 나풀거렸다. 리스본으로 가던 중 운전자의 미숙으로 승용차와 버스가 충돌하여 장시간 지연되었다. 가이드는 놀란 관광객을 차분하게 안심시켰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 가이드는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신속하게 대처하며 유머로 긴장감을 풀어주었다.
밤새 여행에 대한 설렘으로 들뜬 날, 오페라 도시인 리스본 세비아에서 현란한 플라밍고 춤 공연을 관람했다. 스페인의 대표음악인 집시음악에 푹 빠졌다. 그들과 하나가 된 듯 즐거웠다. 여행객들은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웃음꽃을 피우며 고단함을 풀었다. 우리와 떨어져 모퉁이에 서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그는 가이드였다. 그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아마도 타지에서의 생활이 만만치 않았으리라 생각하니 괜스레 마음이 쓰였다. 그를 데려와 음료수 한잔을 내밀며 파이팅을 외쳤다.
우리는 론다로 옮겼다. 아슬아슬한 협곡과 그 위로 우뚝 솟은 건축물을 구경했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가로지르는 협곡을 연결한 누에보 다리를 지나 투우 경기장에 앉았다.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된 특색있는 알함브라 궁전에서 고대 이슬람 문화를 살펴보았다. 알함브라 궁전은 그리스도교도의 국토 회복 운동에 의해 함락된 이후 사라질 위기에 처해졌다가 기적적으로 보존되었다. 이후 스페인 왕국에 의하여 계속 확장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마지막 날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둘러보았다. 안토니오 가우디가 설계하고 직접 건축에 참여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2026년에 완공 예정이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가 되도록 설계했다는 성당은 곡선과 입체기하학적인 형태가 그대로 나타났다. 출입구 정면 파사드에서 사진 한 장을 남기며 오랫동안 살아남은 건축물과 사람의 운명을 생각했다.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더 넓은 세상에 호기심과 관심이 생겼다. 스페인만의 독자적인 문화와 화려한 예술을 꽃피운 그들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가이드의 고마움도 잊지 못할 것이다. 낯선 곳에서 만난 그의 미소는 정말 따뜻했다. 구수한 말과 친절로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떨칠 수 있게 해주었다.
가이드는 스페인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여행의 기쁨을 주었다. 그는 작은 애국자가 아닐까 싶다. 그와 함께 여행을 하는 동안 작은 행복을 느꼈다. 그의 행동에서 나를 돌아보는 계기도 갖게 되었다. 내가 하는 행동이 어느 누구에게 작은 기쁨이라도 된 적이 있을까 생각하니 떠오르지 않았다. 어쩌면 나를 중심으로 살아온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여행은 나에게 여러 가지 선물을 주었다. 앞만 보고 달려온 내게 뒤를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갖게 되었다. 아픈 몸으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절망과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치유할 수 있었다. 앞으로의 삶이 조금 더 단단해지리라는 소망을 가져본다. 나 중심이 아닌 주변 사람들에게도 마음을 열어야겠다. 여행은 단지 다른 곳을 보는 것만이 아니라, 또 다른 나를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
첫댓글 스페인 여행이면 꽤 오래전 일일텐데 그때 써놓은 글인지 아님 꼼꼼히 메모한것을 되씹어 쓴 것인지 몰라도 옥근씨 대단해요 여행 일정과 느낌까지 ...
옥근씨 행동과 열정은 나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고 있어요. 이제 건강만 잘 챙기면 되요.
2018년도에 다녀왔어요.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인터넷 등 자료 검색하여 즐거웠던
스페인의 추억을 써
봤어요.
부족한 저에게 용기를
주시고 늘 큰 힘이 되시는 선생님께
고마운 마음 올립니다.
덕분입니다~^^
저도 한 10년 전에 같은 곳을 다녀왔는데 그때가 생각납니다.
알함브라 궁전에서 가이드로부터 이사벨라 여왕과 콜럼버스 이야기를 듣고 제 인생이 많이 바뀌었지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 곳을 다녀왔군요.
저도 알함브라 궁전은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았던 것 같아요.
여행으로 좀 더 나를
들여다보고 친해지는
시간이 되었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