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_권력구조에_관한_연구[1].hwp
(1996년에 작성한 법학석사학위논문입니다.)
-내용요약-
조선시대의 권력구조는 형식상으로는 국왕을 정점으로 하는 절대주의적 군주체계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양반관료에 의해 통치되는 제한된 군주체계였다. 양반은 신분상의 특권계급이었으나 관료는 개인의 능력에 의해 정치체계에 진입한 정치엘리트로서 조선시대는 이러한 양반과 관료의 균형에 의해 통치된 중앙집권적 양반관료지배체계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을 갖는 조선시대의 권력구조는 매우 정교하고도 고도로 발달한 주자학적 국가이념을 바탕으로 하여 그 체제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한편 바로 그 국가이념으로부터 비롯되는 天命德治라는 정치적 목표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상당히 구조적이고 기능적으로 분화된 통치제도를 발달시켰으며 동시에 그러한 제도를 중심으로 하여 이념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제반 통치행태를 전개시켜 나갔다.
天命德治라는 정치적 목표는 먼저 통치자가 자신을 닦아 덕을 이루고 이를 바탕으로 백성을 복되게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으니 조선시대의 정치체계는 이미 그 이념적 원천이 서구 절대주의적 정치체계와는 달리 매우 도덕적인 기반 위에 설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다 이러한 도덕정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군주의 덕을 밝히고 그 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방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원리 위에서 言路를 비교적 넓게 그리고 제도적으로 개방하여 비판을 장려하고 견제와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모색했으며 나아가 이러한 이념과 제도의 현실적 운용을 확보하기 위해 국왕과 관료, 사림 그리고 때로는 일반 민중이 상호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정치과정을 운영하였던 것이다.
위와 같은 국가이념의 바탕 위에서 중앙집권적 통치체계를 확립하기 위하여 관제개혁과 함께 통치구조의 근간이 되는 법전편찬사업에 착수하였고 이는 경국대전의 완성으로 일단락 되었다. 경국대전에 나타난 조선 초기의 통치체제를 다시 한번 살펴보면 우선 중앙의 통치기구는 국왕 중심의 효율적인 통치체제로 정비되었는데 먼저 태종 때에 도평의사사에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켜 정치를 의논하는 議政府, 왕에 대한 언론을 맡는 三司, 군사기밀을 장악하는 中樞院, 왕명을 출납하는 承政院으로 나누었다.
한편 행정을 맡은 6조는 정2품 관청으로 승격시키고 소관업무를 왕에게 직접 보고하게 하여, 왕이 인사․군사․재정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그 후 몇 차례의 관제개혁을 거쳐 중앙의 통치기구는 왕―의정부―6조―각사로 체계가 세워졌다. 6조에는 각각 3, 4개의 屬司를 두어 업무를 나누어 맡게 하였으며, 중앙 각사를 속아문으로 6조에 배속하여 각 曹의 지휘 감독을 받도록 행정체계를 강화하였다. 그리고 종친부, 충훈부를 두어 종실, 외척, 부마, 공신을 예우하는 한편 그들이 정치에 간여하는 것을 삼가도록 하였다. 또한 의금부와 승정원을 왕에게 직속시켜 왕권을 안정시켰다.
조선시대의 지방통치체제 역시 많은 개혁과 개편의 과정을 겪었다. 고려의 다원적인 道制가 일원적인 8도체제로 개편되고 신분적․계층적인 군현 구획을 명실상부한 행정구역으로 개혁하는 과정에서 屬縣과 鄕․所․部曲․處․莊 등 任內의 정리, 소현의 병합, 군현 명칭의 개정 등을 단행하였다. 또한 고려의 事審官制가 경재소와 유향소로 분화되어 발전해 나갔으며, 임내의 소멸과 職村化 및 인구의 증가에 따른 자연촌의 성장과 함께 군현의 하부 구획으로 새로운 면리제가 점차 정착되어 나갔다.
또한 종래의 按察使와 監務를 2품 이상의 觀察使와 현감으로 대치하는 등 감사와 수령의 직급을 올리고 왕권의 대행자인 외관의 권한을 강화하였으며, 종래 향읍의 실질적인 지배자 위치에 있던 향리를 점차 지방관서의 행정 사역인으로 격하시킴으로써 중앙집권적 양반지배 체제를 강화하였다. 특히 조선의 중앙집권적 지방통치체제가 비교적 잘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왕→감사→수령으로 이어지는 관치행정적 계통과 경재소→유향소→면․리임으로 연결되는 사족 중심의 자치적인 향촌 지배체제 및 이들 중간에 개재한 경저리․영저리․읍리의 향리 계통, 이 3자가 서로 견제와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군사기구에 있어서는 정치의 안정과 함께 私兵체제적인 고려말의 군사조직을 점차적으로 개혁하여, 왕권을 호위하는 무반관료로서의 금군과 중앙군은 5위제로, 그리고 지방군은 진관체제로 정리되었다.
조선시대 정치체계는 그 주자학적 정치이념의 부정적 측면으로부터 비롯되는 사변성과 형식주의, 명분주의 등과 같은 폐단 등이 없지 않았고, 비민주적인 신분차별이나 권력을 중심으로한 당파적 갈등과 투쟁 등과 같은 부정적 양상 또한 적지 않았으나, 실로 하나의 왕조로서 조선시대의 정치체계가 세계 역사상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긴 500여 년이라는 장구한 기간동안 존속할 수 있었던 데에는 바로 이와 같은 도덕적인 국가이념과 경국대전과 같은 조종성헌으로서의 통일법전에 의한 민본왕도정치의 실시, 그리고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권력구조내의 민주적인 제도 및 정치행태가 상호 유기적으로 통합을 이루면서 작동해 온 데 그 한 원인이 있다고 할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고한 오늘날 위와 같은 조선시대의 전통적 국가이념과, 견제와 균형을 위한 권력구조상의 제도적 장치는 다가오는 대망의 민족 통일국가의 통일헌법을 연구함에 있어서도 그 의미를 깊이 새겨 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