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소록도는 기도의 섬이다.감사와 기도의 조건들이 사라질 때 소록도에 가보라. 그곳에 가면 진정한 감사가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다. 거기에는 살아 움직이는 뜨거운 기도가 넘친다.
천형(天刑)의 섬. 지난 시절동안 사람들은 소록도를 그렇게 불렀다. 그도 그럴지 모른다.한센씨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소록도는 일반인들에게 잊혀진 섬이었다. 한센씨병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그동안 소록도와 섬주민들을 외롭게 만들었다.
그러나 기자가 가본 소록도에는 어느 곳에서나 다름없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평범한 일상에 울고 웃고 괴로워하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섬. 그곳이 소록도였다.그리고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곳에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기도와 연단을 통한 소망이 있었다.
전남 고흥반도의 치맛자락인 녹동항구에서 손에 잡힐 듯 펼쳐진 소록도는 천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고요한 섬마을이다. 사슴이 많아 소록(小鹿․작은 사슴)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섬의 4월은 퇴장을 준비하는 겨울 동백꽃과 벚꽃이 봄꽃들과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가장 높은 십자봉에 올라가니 장흥반도와 고흥반도를 감도는 남해의 쪽빛 바다가 보는 이의 가슴을 시원하게 만든다.
소록도는 기도의 열기가 넘치는 섬이다.소록도 전체가 거대한 기도의 공동체다.현재 섬주민은 1천2백여명 남짓.한센씨병으로 고생하는 9백5명의 사람들과 이들을 치료하는 의사와 간호사 및 가족 등 3백여명이 함께 살고 있다. 섬주민의 90%이상이 그리스도인이다. 일제시대 총독부가 한센씨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집단 거처로 소록도를 지정한 것이 1915년. 이듬해 지금 소록도병원의 시초인 자혜의원이 개원되면서 소록도의 역사는 시작됐다.
소록도교회가 창립된 이후 기독교신앙은 소록도를 움직이는 거대한 힘으로 작용했다. 이곳의 많은 사람들이 신앙으로 자신들의 삶을 긍정하기 시작했다. 신앙의 힘은 이들을 기도의 사람으로 만들었다.현재 소록도에는 6개의 교회가 있다.그 중 한개는 직원들이 출석하는 교회다. 본부격인 소록도 중앙교회를 비롯하여 각 마을마다 동성․신성․남성․북성교회가 있다. 여의도 2배정도의 크기인 섬에 5개의 교회가 있는 이유는 소록도 주민들이 평균연령 68세의 고령이고 거동도 불편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기도는 최고의 즐거움이자 삶이다.기도는 호흡과도 같다.모두가 기도의 힘으로 산다고 말하고 있다.
소록도의 새벽기도회는 새벽 4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도 교회에는 밤 12시부터 기도하는 사람들이 몰린다. 일그러진 몸을 지팡이에 의지하며 교회로 들어가는 이들의 모습은 숭고하기까지 하다.이들은 자신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나라와 민족, 세계평화와 선교를 위해서 기도한다.이들은 외지인이 한번 기도를 부탁하면 평생 기도를 해준다. 한사람이 매일 3백명의 목회자를 위해서 기도하는 경우도 있다. 새벽에 이들의 뜨거운 기도소리를 들으면서 기자의 눈시울도 뜨뜻해졌다.도시의 화석화된 예배와 비교해 볼 때 이들의 예배는 너무도 살아있었다.
물론 소록도 전체에는 피로 얼룩진 회한의 역사가 남아 있다. 너무도 아름다운 중앙공원에는 한센씨병을 간직하고 평생을 산 시인 한하운의 대표작 `보리피리'가 새겨진 커다란 돌비석이 뉘어져 있다. 천사가 한센씨 병균을 죽이는 구라탑도 보인다. 생활전시관에는 과거 한센씨병에 대한 무지가 부른 무수한 역사적인 자료들이 가득차 있다. 섬중앙에 있는 납골당인 만령당에는 지금까지 세상을 떠난 9천9백98명의 유골이 안치돼 있다.
그러나 지금 소록도에는 비통함보다는 사랑과 정겨움이 넘친다.이곳에서 한센씨 병균은 더이상 나오지 않는다. 대부분이 완치됐다. 이들의 평균수명도 다른 지역보다 높다. 한센씨병을 안고 산다는 것 외에는 차이점이 없다. 마치 많은 사람들이 감기와 더불어 평생을 사는 것처럼….
이곳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사람들의 뭉그러진 손을 붙잡고 함께 웃으며 살아가는 모습은 무척 감동적이다. 과거보다는 줄어들었지만 20여명 남짓한 자원봉사자들의 헌신된 이야기도 도전이 된다.그러나 그것만이 감동적인 것은 아니다. 그곳의 사람들에게도 삶이 있다는 것.적은 돈이나마 우체국에 꼬박꼬박 적금하고 장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외지의 친척들에게 줄 생강과 마늘을 열심히 재배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런 평범한 사실들이 감동적이었다.
교회에서 만난 한 노장로의 이야기가 귀에 남는다.우리는 바라는 것이 없어요. 육체적으로도 마찬가지죠. 다만 하늘나라만 바라고 있어요. 혹시 소록도의 하나님이 치료하고 위로하고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소록도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김명환목사(48)는 소록도는 사랑의 섬이라고 말했다.17년전 전도사로 이곳에 온 뒤 군목으로 사역하다 3년 전 다시 섬에 들어와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김목사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목회자라고 설명했다. 이곳처럼 성도들이 목회자를 사랑하고 위해서 기도하는 곳은 지구상에 없다는 것.
그는 이곳에서의 삶이 감동의 연속이라고 말했다. 양손이 문드러져 아무 것도 집을 수 없는 교회 집사가 어느날 손목에 빗자루를 묶어서 교회마루를 청소하는 감동적인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느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첫댓글 더 낮아지기 전에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을 키워나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