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강의 때 공부 더 해서 법화경 능엄경에 도전해 보겠다 말했다. 화엄경 하려고 열심히 백일기도 하다 마장이 끼어 막판에 소원성취를 못했다. 그래서 뭐 할까 고민하다 사마천의 화식열전을 하게 됐다. 사마천의 화식열전 굉장히 생소할 것이다. 사마천의 화식열전은 화식열전이란 책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사마천의 사기<130권의 대 역사서>는 본기 세가 서 열전 표 중 열전 편에 화식열전이 나온다. 화식열전은 우리나라 2천년 역사에서 선조들이 사람들에게 존재조차 알리기 싫어하던 열전이다. 왜냐하면 공자 유가를 공격하는 부분 때문이다. 그래서 숭유억불 정책을 쓰던 조선조 사마천의 화식열전은 거의 금서 취급을 당했다. 그림에 나오는 분이 사마천이다.
사마천은 지금으로부터 2100년전 주나라 사람이다. 아버지 사마담이란 분이 한나라 때 선문 기록 달력을 맡아 처리하던 부서의 태사령이란 장관으로 계시면서 선문 달력 고전에도 밝고 우리나라 역사에 한사군을 설치했다는 한무제를 수행하면서 중국 전역을 아들을 데리고 많이 다녔다. 그래서 사기열전엔 조선열전이 들어 있어 낙랑 진번 부여 고구려 고조선과 같은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사기열전 중 화식열전에 돈 버는 방법과 부자들에 대해 11페이지 정도 기록해 놓고 조선열전엔 우리나라 역사가 30페이지에 걸쳐 나온다. 중국 전역에 걸친 물자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틈틈이 한반도에 관한 얘기가 상당히 많이 나와서 조상님들이 많이 좋아하던 책이다.
사마천 나이 36세 기원전 110년 예수님이 태어나기 전 아버지 사마담이 한무제가 큰 제를 지내러 태산에 오르는데 초청받지 못하자 화병으로 돌아가신다. 지금도 대통령 수행에 빠지면 호들갑을 떠는 것처럼 예전에도 왕이 어딜 가는데 못 끼면 낙담하고 그랬던 모양이다. 그런데 죽을 때 아들 사마천에게 예전부터 정리해오던 역사서를 마무리 지어달라는 유언을 받고 태사령이란 직위에 다시 들어가 선문 지리 역법 물자를 기록하는 일을 맡게 된다. 그뒤 사마천 나이 42세 때 태초력이란 달력을 만들어 농사를 짓거나 전쟁을 하거나 무슨 일을 할 때 기틀을 만들게 된다. 당시 달력을 만드는 일은 황제나 할 수 있는 일이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1858년 지금으로부터 150년전 조선조 말기 어떤 군인이 달력을 만들어 팔다 잡혀 곤장 맞고 귀향 가는 것이 우리나라 역사 기록에도 있다. 지금은 천지에 널린 것이 달력이지만 당시엔 달력 자체가 하늘의 뜻을 읽는 것으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세종대왕께서 월화수목금토일 해 달 수성 목성 금성을 계산한 천문역법을 집현전 학자를 통해 칠정산 내편 외편을 지으신 것은 사실은 우리나라가 자주 독립국가라는 증거가 되는 사건이었다. 당시 중국에서 가만이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 정도로 선문과 지리는 황제들만 할 수 있던 일이었지만 사마천은 당시 실무자로 이런 일들을 했다.
그런데 기원전 99년 한무제의 명으로 흉노를 정벌하러 갔던 장군 이륵이 흉노의 포로가 돼 있다 탈출해 온 사건이 있었다. 창피하다고 한무제가 이륵을 죽이려 하자 사마천이 상소하다 같이 괘심죄에 걸려 사마천도 사형을 받게 된다. 한나라 때 목을 잘리는 사형을 면할 수 있는 방법은 2가지 방법 밖에 없었다. 역사가들에 따르면 5만전 지금으로 따지면 5억 정도의 돈을 내든지 아니면 내시가 되는 방법 밖에 없었다. 위를 자르던지 아래를 자르던지 혹은 돈을 내든지 해야 했다. 사마천은 내시가 되는 길을 택한다. 왜냐하면 역사를 마무리 해달라는 아버지 유언 때문이다. 그래도 한 나라의 장관에 명문 집안이었지만 돈은 많이 없었다. 기록에 의하면 2만전 정도 있었다 한다. 그러자 부인과 자식들이 온 데 돈 빌리러 다녔다. 장관이었다면 아는 사람들이 많아 돈 빌리기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부인은 돈 빌리는데 실패한다. 왜냐하면 황제한테 찍힌 사람이라 같이 찍힐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사마천은 세상 이치인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그래서 인간의 욕망과 권력 돈을 기준으로 인간의 마음을 써나간 것이 사마천의 화식열전이다. 그래서 돈과 권력으로부터 가장 자유로웠다고 생각되는 백이 숙제가 제일 앞 부분에 나오고 그 다음 돈과 관련 있는 사람들이 화식열전에 대거 등장하게 된다. 화식열전 다음에 나오는 것이 태사공 전서다. 요즘은 책을 쓰면 작자 얘기가 제일 앞에 나오지만 예전엔 작자 얘기가 제일 뒤에 나온다. 작자 얘기 다음 처음 나오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작자의 견해가 많이 드러나지만 예전엔 그와 반대였다. 그래서 작자 얘기 바로 앞에 있는 화식열전이 사실은 사마천이 가장 하고 싶은 말로 생각해 요즘 번역된 사기열전을 보면 화식열전이 제일 앞에 나오기도 한다. 사마천은 나중에 한무제의 노여움이 풀려 다시 관직에 진출해 내시 중 최고위직인 중서령까지 올라 말년은 비교적 편안히 살다 죽었다.
우리나라에 화식열전을 전하지 않은 이유는 부자되는 방법에 대해 너무 소상히 적어놓았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을 잘 살게 해야 나라도 잘 된다 라는 것은 노자 공자 역대의 덕있는 왕들이 다 하는 일이었지만 반면 백성을 궁핍한 상태로 만들어 공포정치로 권력을 유지하는 경우도 많았다. 당장 북쪽만 봐도 그렇다. 왜냐하면 백성들이 아는 것이 많아지고 배가 부르면 평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배움의 기회 자체를 주지 않고 돈도 굶어 죽지 않을 정도만 갖게 하는 것이 나쁜 왕들의 공통점이었다. 조선시대에도 우리 조상들은 나쁜 조상들이 많았기 때문에 화식열전의 가르침 같은 것은 가르쳐주지 않았다. 물론 표면상 공자 이유가 있었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었다. 사실 교육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민주화 평등 알 권리 많이 주장한다. 독재자들 그런 일들 싫어한다. 그래서 화식열전은 우리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貨殖列傳<돼지그림 – 부자 되세요>
貨는 재화 Currency이고 殖은 증식 번식할 식이다. 돈을 증식한 여러 사람들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사기열전의 제일 마지막에 나와 있다. 목아박물관을 하시고 일본 문화재 환수를 하시는 박찬수 선생님이 기증하신 그림이다. 직업상 빨간 돼지가 마음에 들어 제가 구입한 그림이다. 선생님의 허락을 받고 본 강의에 쓰게 됐다. 화식열전은 도저히 2100년 전 쓰였던 책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돈 버는 방법이 상당히 자세히 나와 있다. 그런데 읽어 보니 부처님 가르침과 일맥상통한 책이다. 보통 중생들은 욕망으로 무슨 일이든 한다. 저도 제 돈을 갖고 하든 고객 돈을 갖고 하든 욕망을 갖고 한다. 하지만 원래 욕망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그래서 사람에 의지 말고 세상 이치에 의지하면 누구나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 화식열전의 가르침이다.
불교도 배우고 수행도 하시며 나란 누구인가 세상은 무엇인가 많은 생각을 하셨던 불자님들이 이 화식열전의 가르침을 잘 들으시게 되면 지금까지는 대상을 바꿔 공부 잘하는 방법 돈 잘 버는 방법 끝내주는 투자처 하고 대상에서만 찾았는데 부처님도 사마천도 답은 내 안에 있다 그러신 것이다. 사람을 택하기는 하나 모든 일은 하늘에 맡긴다. 화식열전에도 나오는 구절이다. 너무나 부실하고 시원치 않고 멍청한 자신에게 부처님 가피가 툭 떨어지기를 바라지 말고 너무나 바보 같고 한심한 자신은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고 관하고 세상의 흐름을 보기만 하면 돈 벌기 너무 좋은 것이 이 세상이다. 왜냐하면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는 바보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貧富之道 莫之奪予 而巧者有餘 拙者不足
빈부의 이치는 억지로 빼앗거나 줄 수 없는 것이며 재주가 있는 자는 항상 여유가 있고 재주가 없는 자는 항상 부족하게 된다.
사주팔자와 아무 상관 없다는 말이다. 이 말은 화식열전의 기본 철학이다. 이렇게 화식열전은 수많은 사례들을 열거하고 있다. 그래서 노자사상은 굉장히 높이 사고 공자사상은 인간의 욕망을 무시하는 너무 사변적이고 이상적인 생각이라고 몰아부친다. 불교공부가 뭔가? 눈 밝아지는 공부다. 돈에 관한 속담 중 부처님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 뭔지 아나? 최영장군 하신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란 말씀이다. 부처님이 들었으면 펄쩍 뛰셨을 말이다. 부처님은 황금은 황금으로 정확히 보고 돌은 돌로 정확히 보라 그러셨다. 대신 욕망에 빠져들지 말란 말씀이다. 그 말씀이 무소유다. 자신을 컨트롤해서 빠져들지 않는 힘과 지혜를 갖으라는 것이 부처님 공부지 황금 보고 돌이라 그러면 바보다.
원래 최영장군이 전 국민 보고 한 말은 아니고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한 말이다. 그런데 정치가들이 자기들은 그렇게 안 하고 백성들에게만 그런 말한다. 그리고 그런 말을 멍청하게 믿는 사람들이 또 자식 손자들에게 가르치니 그렇게 조선 500년간 못 산 것이다. 그래서 사마천의 화식열전은 그런 말도 안 되는 논리를 서론부터 공격한다. 왜 그런 식으로 가르치느냐 하며 위정자들을 처음부터 공격한다.
화식열전은 지금부터 2100년전 중국 산동성 황하 이북 이남지역 부자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다룬 책이다. 우리나라 부자들 일본부자들 미국부자들도 생각해봤다. 한국의 글로벌 기업 10개 중국의 글로벌 기업 20개 일본의 글로벌 기업 30개 정도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정주영 이병철 회장이다. 얼마 전 책을 보니 재미있는 책이 나왔다. 이기는 정주영 지지 않는 이병철. 이런 분들은 다 대보살들이다. 두 분 공통점 있다. 돈을 공부하든 불교를 공부하든 개념을 정확히 잡고 들어가야 한다. 누구나 다 아는 이 두 분 이야기 두 분이 서로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지 나 혼자 잘난 척 하려고 그러는 것 아니다.
정주영 회장은 강원도 통천에서 초등학교만 졸업한 분이다. 어린 나이부터 가출도 많이 했다. 출가나 가출이나 빗나가는 면에서 보면 비슷하다. 아마 대보살이었을 것이다. 처음 두 번째 가출은 너무나 답답해서 내가 평생을 이리 지지리 궁상맞게 살아야 한단 말이냐 해서 가출하지만 다 잡혀 온다. 3번째 가출은 목표의식을 갖고 가출한다. 궤짝에 넣어 둔 아버지 소 판 돈 40원과 삼촌이 송아지 판 돈 30원까지 다 들고 튄다. 당시 동아일보에 평양 부기학교 속성 6개월 취직 수업료 70원이란 광고가 나왔다. 경성 덕수부기학원도 광고를 냈다. 당시는 만주사변 후 경제가 어렵던 1930년 대 초반이었다. 덕수상고 명문고다. 아마 덕수상고도 이 학원 이름에서 따 온 것이 아닌가 싶다. 동대문 두산타워 자리가 덕수상고 자리였다. 지금은 덕수 정보통신학교로 바뀌었을 것이다.
당시 6개월 수업료는 지금 대학의 한 학기 등록금과 비슷했다. 당시 소 값 지금 돈으로 4~500만원 됐을 것이다. 정주영 회장은 통천 부기학원 안내서를 보내달라는 편지를 쓴 상태에서 서울 부기학원 광고를 보고 서울로 간다. 아들도 없고 소 판 돈도 없다. 아버지는 학원 안내서를 보고 무작정 평양도 가고 서울도 가 아들을 만난다. 너 경리 돼 뭐하게? 취직해 돈 벌어 아버지 땅도 사드리고 소도 사드리려고요. 뭐? 월급쟁이 붕어밥이나 얻어 먹는 신세 아닌가? 경리가 뭐 그리 대단한가? 월급쟁이 핵심을 팍 찌른다. 결국 아버지 설득에 2개월만 부기학원 다니게 된다. 정말 부기는 2개월만 배우면 충분하다. 더 배우면 붕어밥이나 얻어먹는 신세가 된다는 말이 딱 맞다.
2개월만 다닌 것도 이 분에겐 대단한 복인지 부기학원에서 40원을 돌려받고 통천에 다시 돌아왔다 나중에 쌀가게 취직한다. 쌀가게 주인이 보기에 열심히 일하고 셈도 정확하고 장부정리도 잘하니 공짜로 쌀가게를 준다. 거래선도 통째로 물려받고 신규 거래선으로 서울여상 기숙사도 뚫는다. 그러나 1937년 일본이 노구교 사건을 이유로 전시통제령을 내려 모든 물자를 국유화시키자 쌀가게 졸지에 망한다. 한문을 좀 배워서 그랬는지 인간답게 사는 교훈이 든 한나라 유안이 쓴 회남자 인간훈 중 새옹지마 호사다마란 글귀를 평생의 교훈으로 삼았다고 자서전에 나온다. 옛날 나는 그 말을 보고도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참 재미있는 사람이네 그 정도로만 봤다.
반면 삼성을 창업한 이병철 회장은 경남 밀양의 중농 집안에서 태어났다. 큰 부자는 아니고 중간 정도 부자였다. 안양 칸츄리 클럽 골프장에 가면 이 분이 쓰신 시가 하나 있다. 찔레꽃 필 때라는 시로 이 분 어머니에 대한 시다. 찔레꽃 필 때는 보릿고개 때였던 모양이다. 사람들은 찔레꽃을 보면 봄이 왔다고 기뻐하지만 찔레꽃을 보면 못 먹고 굶어 죽은 사람들의 피눈물이 생각난다 그러니 너는 나중에 돈 벌어서 보릿고개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도록 해라는 말을 어머니가 했다는 말을 봐서 어머니에게 뭔가 특별한 점이 있었던 것 같다.
이병철씨는 정상적으로 중동고와 일본의 와세다 대학을 나왔다. 삼성 그러면 경리다. 제일모직 제일합섬 경리부 출신 10년 전 CEO 평가하면 꼬리처럼 따라다닌 것이 경리의 삼성이었다. 경리도 역시 부기다. 지금 대통령도 상고 나왔고 전임 대통령도 상고 나왔고 그 전임 대통령도 상고 나왔다. 저만 해도 중학교 때 부기 배웠고 자격증도 땄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그런데 이런 분들은 1~2달만 딱 해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아시는 분들이다.
다음 그림은 Cathay Pacific 항공사다. Cathay는 중국이란 말의 고어다. 제가 이 회사의 경리부 직원이었다. 대학 졸업하자 마자 이 회사 경리부에 다녔다. 외국회사 다니면서 여행이나 다니고 중동 돈 벌러 간 노무자 아저씨들 출입국 기록해주고 놀러만 다녔지 경리부에 있으면서도 경리가 뭔지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자신 바보 같고 한심하고 멍청해서 울고 싶다. 정말 바보가 따로 없었다. 그나마 사기꾼 안 된 것이 다행이다. 저 경영대학 겸임교수하고 있다. 옛날에 경제야 놀자도 했다. 감이 오나요? 여러분도 그 동안 내가 왜 고생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 멍청해서 그렇다는 말이 답이다. 다들 부처님 법 만났지만 그 법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모른다. 나도 그랬다. 왜냐하면 이 經이 무슨 경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말로만 부기학원 경리 경영학 경제학 했지 저것이 정말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부처님 안 만났으면 --- 불법을 못 만났으면 정말 끝장이었다.
반야심經. 금강經. 천수經. 원각經. 법화經. 화엄經 – 經
기독교 요즘 성경이라 그러지만 옛날엔 성서라 했다. 구약성서 신약성서 그랬다. 옛날 유교도 4서3경 있었다. 4서는 Grade가 좀 낮은 것이고 3경은 Grade가 높은 것이다. 경이 훨씬 높은 말이다. 처음엔 모르고 성서라 그랬다 아! 우리가 Grade가 너무 낮네 그래 가지고 우리도 8만대장경처럼 Grade를 올려야 되겠다 그래서 성경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 지금의 기독교 바이블이다. 경이란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면 經이 무엇이냐?
經
날줄 경이다. 씨줄 날줄의 날줄이다. 베틀의 세로가 날줄이다. 근본 근간 표준이 되는 바로 그 經이다. 그리고 가로로 철커덕 철커덕 하며 걸리는 줄이 씨줄이다. 날줄이 부실하게 되면 씨줄이 안 먹힌다. 그래서 씨도 안 먹히는 소리 하지 말라는 속담이 있는 것이다. 씨알도 안 먹힌다. 다 이 말과 관련된 말이다. 날줄과 씨줄이 합쳐야 뭐가 된다. 지구상으로 볼 때 씨줄은 위도다. 북위 38도는 위도다. 반면 하늘의 북극성처럼 움직이지 않는 별을 경성이라 그런다. 원래 徑이었는데 한나라 때 이 經자로 바꾼다. 그래서 경도 위도를 이렇게 쓴다. 그러니까 부처님 가르침인 經은 우리가 돈을 벌든 결혼을 하든 장사를 하든 남과 싸우든 협상을 하든 뭘 하든 근본 근간 표준이 되고 심지가 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를 근간으로 씨줄을 짜나가면 멋진 베 멋진 천이 만들어진다. 만들면서 무늬도 넣을 수 있다. 다 바꿀 수 있다. 이렇게 기막히게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을 날씨라 한다. 날씨 좋다. 이게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지니 날씨다. 보통 아기가 태어나는 것도 하늘 기운과 업의 기운 날줄 기운과 씨줄 기운이 덜커덕 맞아 떨어질 때 한 생명이 잉태된다 한다. 그러니 한 올 한 올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경인데 정주영 회장님이나 이병철 회장님이 공부하신 것은 경영학이든 경제학이든 經理라 하면 經의 이치다. 經의 이치가 딱 서야 돈의 이치가 딱 선다. 정주영 회장 소 판 돈 들고 튀어 부기학원 다닌다 했다. 부기의 기본을 알면 세상 회사 돈 사람도 이렇게 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게 경의 이치다. 경리의 이치는 복식부기다. 단식부기와 복식부기 정주영 회장이 소 팔 튀어 배운 것이 복식부기다.
1회. 우승택 <사마천의 화식열전이란>?
사마천의 화식열전이란?|작성자 Inkf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