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람의 이사가 주는 교훈
창12-1-9
도시의 현대인들은 필연적으로 이사를 하게됩니다
아마도 오늘날 도시에서---태어난 도시민이라면
한번도 이사를 하지 않고
한 곳에서 일생을 마치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내었기에
도시민들과 같이 이사를 자주 해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것은
초등학교 몇학년 때인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만
저의 가까운 친척이 밀양에서 부산으로 이사를 가던 그 광경이
지금도 저의 기억속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0-50년전 누군가가 이사를 한다면
온 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그 이사를 도와 줍니다
여기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이사를 가는 가정에서는 떡을 해 두었다가
찾아오는 손님들을 대접을 했습니다
저는 이사하는 가정에서 나누어주는 떡을 먹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사는 참 재미있고 좋은 것이다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당시에 떡이라는 것 특별한 날이 아니면 먹을 수 없었쟎아요
그리고 차를 타고 멀리 간다는 것도 이사가 아니면 불가능했기에
이사가 참 재미가 있고 좋은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나이가 들고
부모님의 곁을 떠나면서부터 이사가 시작이 되었는데
지금까지 이사한 횟수를 조용히 더듬어 보니---약 17-18번 정도 이사를 하였습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저곳에서 또다른 이곳으로
18번의 이사를 하였다면 그렇게 작은 이사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이사를 거듭하면서 지금까지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은
철없던 어린시절에 느꼈던 이사에 대한 동경심보다는
지금은 이사에 대한 두려움이 더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왜 이사가 두려운 것입니까?
그것은 이사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짐을 꾸려야하고 풀어야 하는 피로감
정들었던 터전을 떠나서 낮선 곳에 들어가서 정착해야하는 어려움
이런 저런 사정들이 있기에 이사는 결코 쉬운 것만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사를 합니다
이사를 하게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 아빠의 직장을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옮겨가는 이사도 있고
#자녀의 교육문제로 이사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이런 경우는 흔치 않고
대부분 이사를 하게되는 사연을 들어 보면
1) 좀더 넓은 집, 편리한 집, 새 집을 장만하여 하는 이사와
2) 사업의 어려움이나 갑작스럽게 닥친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인해서
전세값을 감당하지 못하여
돈에 맞는 작은 집을 얻어서 이사를 가야하는 경우가
대부분 사람들이 이사를 하게되는 이사에 얽힌 사연일 것입니다
이렇게 이사를 하는 사람에 따라서
10번 20번을 이사를 해도 즐겁고 행복한 이사가 있는가하면
한 번을 이사를 한다고 해도 한 가정의 식구들에게
잊을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을 안겨주는 이사도 있을 것입니다
어째든 사람이 살아가면서---이사는 앞으로도 할 것이고---또한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사는 수많은 삶의 희노애락과 애환이 닮겨진 이사일 것입니다
제가 제2동부교회의 성도 여러분들을 향한 소원이 있다면
앞으로 여러분들이 하게 되는 이사는
여러분들의 인생속에서 가장 복되고 즐겁고 행복한 이사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창세기 12장입니다
오늘 제가 12장의 말씀을 선택한 것은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끝내고 지난 주간에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설교를 어떻게해야 하느냐는 고민입니다
사실 올 연말까지는 성경의 이곳 저곳을 다녀볼까 생각했는데
그러면 듣는 여러분들도 일관성이 없어지고
설교를 하는 저도 굉장한 부담입니다
무슨 부담이냐하면---매주 본문에 대한 고민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오늘 창12:1-5절까지의 본문을 정해서 설교를 했다고 해도
이 설교 끝나기가 무섭게
다음 주에는 어디를 본문으로 정해야 하는가--이게 제일 큰 고민입니다
그러나 강해를 하거나 시리즈 설교를 하면---
본문에 대한 걱정은 없거든요--이어서 준비하면 되니까요
그래서 앞으로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아브라함에 일생을 시리즈로 설교를 하기 위하여 본문을 선택하였습니다
창12장은 모든 성도들이 좋아하는 믿음의 조상인 아브람이 등장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아브람이 등장을 하자 말자
성경은 아브람이 이사를 하는 장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아브람이 이사를 하지만----아브람의 이사는
오늘날 우리와 같은 이사가 아니라---좀 특이한 이사라는 것입니다
어느날 아브람은 스스로 계시다는/ 그 지존자 되신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것이 꿈인지---아니면 생신지---환상인지
성경이 명확히 밝히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알수는 없습니다만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아브람아 지금의 이곳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그리고 내가 지시하는 곳으로 가라----
그리하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이름을 창대케하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때 아브람의 나이가 75세라고 성경학자들이 말을 합니다
75세에 눈으로 보지 못한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에
아브람이 이사를 결심하고 이사를 한 이것을---
모든 성경학자들이 믿음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브람의 이사는 직장을 따라서 간 이사도 아니고
친구를 따라서 간 이사도 아니며
새로운 집을 장만하여 간 이사도 아니고
집 주인으로부터 쫒겨난 이사도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인도에 따른 순종하는 이사---즉 믿음의 이사라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본문을 중심으로
믿음의 이사란 무엇인가를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하는 것입니다
1. 믿음의 이사는 말씀에 따른 이사입니다
아브라함의 이사를 믿음의 이사라는 근거가 어디에 있느냐
1-2절에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1-2절을 다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1절은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2절에 그리하면 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본래 갈대아 우르에서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갈대아 우르라는 도시는 우상의 도시요, 도덕적으로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우르라는 도시는 메소포타미아 남부 지역에 있는 해안도시로
지금의 터키와 이라크 영토입니다
1849년 영국과 미국의 고고학자들의 이 지역을 발굴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 지역에 살던 족속은----셈족으로 활발한 경제 활동으로 부를 축적하였습니다.
부를 축척하고보니 어디에 쓰야하는데
이걸 가지고 어디에 쓸까를 고민하던 당시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신으로 믿는 달의 신---난나(Nanna) 를 위하여 신전을 지었는데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을 연상하는 대 신전을 지었는데
그들은 그 신전을 지구랏(Ziggurat)이라고 했습니다.
지구랏이 바벨탑을 연상할 정도라면
도대체 얼마나 큰 신전이었느냐하면
오늘날 아파트의 높이로 따져도 18층이나 되는 높이였다고 합니다
지금도 18층 높이의 교회를 짓는다면 대단한 교회인데
이미 수천년 전에 그런 신전을 지었다는 것은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신전의 특이한 점은---신전을 중심해서 왕들의 무덤이 있었는데
미국과 영국의 고고학자들이 이 왕들의 무덤을 발굴하니
수많은 유물들이 나왔는데---
그 중에 가장 많은 유물이 신상들이었다고 합니다
이 신상들은 주로 나무를 깎아만들고 그 위에 금을 입혀 만든 신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좀 알고 넘어가야하는 것은
아브람의 집이 어떤 집이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설교를 들을 때----많은 목사님들을 통하여---
아브람의 가정은 우상을 만들어 파는 우상장사의 집이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신구약을 다 읽어도---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가 우상장사였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목사님들이 잘못 알고 설교한 것이냐?--그것은 아닙니다.
여호수아 24장 2절---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강론을 하면서
여호와의 말씀에 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데라가 강 저편에서--우리로 보면 갈대아우르에서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신이 아니라---신들이라고 해서
목사님들이---우상을 만드는 장사를 했을 것이라고 추측을 하고요
이것보다 좀더 정확한 것은---유대인의 전승에 그렇게 내려온답니다
전승이란 글이 아니라---말로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쟎아요
그 유대인들에 의하여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만드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는 겁니다
우상을 섬겼거나 장사를 했거나---이것이 중요한게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찾아 오셔서
너는 본토--친척---아비집을 떠나라---고 했을 때--떠났다는 것입니다
오늘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을 때가 몇세인지 아십니까?
4절에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몇세였더라?--- 칠십오세였더라고 증거합니다
75세에 자기가 살던 땅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나간다는 것은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분명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세계와 신앙의 세계에서---
한 단계 더 높은 성장과 성숙을 위하여는 떠나는 것입니다
저는 사람의 인체에 대해서 연구를 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잘 모르지만
사람이 잠을 잘 때 가장 편한 자세가 --이렇게 꼬부리고 자는 것이 가장 편하데요
왜냐하면 아이가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
이렇게 꼬부리고 있어요----그런 사진을 흔히 볼 수가 있쟎아요
요즈음 산부인과는 태아의 모습을 초음파 사진을 찍어서 산모에게도 준데요
그런 사진에 보면 태아가 꼬부리고 있어요
그래서 허리가 아픈 사람은 다리를 쭉 피고 자는 것보다는---
꼬부리고 옆으로 누워자는 것이 좋고----
아니면 다리 아래에 배게같은 것을 고아서 다리를 좀 꼬부려 주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꼬부리는 것이 편하냐-----어머니 배속에 있을 때 폼이 그폼이라는 것입니다
아기는 어머니 뱃속에서 있으면 좋습니다
그렇다고 어머니 뱃속에서 10년 20년 살아서 됩니까 안됩니까---안됩니다
만약에 10달이 되어서 아이가 나오지 아니하고-----
여기가 좋사오니하고---15-20달되어도 안나오면----산모도 죽고---애 그놈도 죽습니다
그래서 안 나오면 요즈음은 강제로 꺼집내기도 합니다
우리 집에 남자 두 놈은 엄마의 배속이 얼마나 좋았던지 안나와서--
하는 수 없이 병원에서 강제로 꺼집어 낸---아들들입니다
10달이 되면 어머니 뱃속을 떠나야합니다
그리고 어느정도 부모님의 품에서 자라면 또 떠나--이사를 해야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중에는 자녀들을 결혼시킨 분들도 계십니다만
저는 아직 자녀를 결혼시키지 않아서
정확히 딸을 시집보내는 아버지의 심정을 모릅니다
이전에 동성교회에서 제가 부목사로 있을 때---전도사님으로 함께 섬겼던
전도사님이 서울에 결혼식을 한다고 꼭 와달라고 해서 다녀온적이 있습니다
신랑쪽의 입장에서는 데려오는 입장이고
신부쪽의 입장에서는---떠나 보내는게 결혼식입니다
신부가 봉화청년인데----이 청년이 봉화에서 자라서 공부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 --직장생활을 하면서---서울 신촌교회에 출석을 하였는데
전도사님이 그 교회 뒤에 부임을 해갔는데----
그만 두 사람이 서로 마음이 통하고---결혼식을 올리게 된 겁니다
결혼식을 정말 은혜롭게 진행되었습니다
제가 결혼식내내 유심히 지켜본분이 있습니다
그 신부의 아버지입니다
왜 제가 신부의 아버지를 살펴보았느냐하면
결혼식 청첩장에 신랑쪽에는 부모님의 이름이 다 있는데
신부측의 혼주에는 신부의 아버지 이름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연히 관심이 가서---신부 아버지가 결혼식에 어떻게 참여를 하시나 살표보니
결혼식내내 무표정하게 잘 참으시고----사진까지도 잘찍어셨습니다
교회 밖으로 나오신 친정아버지는 그때서야---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시고------
꺼억 꺼억 하시면서----손수건에 얼굴을 묻으시고---
친척들이 모두가 신부의 아버지 옆으로 와서---
등을 쓰다듬고--두드리면서 --
이런 저런 이야기로 위로를 하시는데---그중에 한분이
---이 좋은 날에 왜 이러시느냐고--
떠나 보내야---더 성숙한 딸이 되는거 아니냐고 위로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 광경을 일부러 살펴보면서---
왜 아버지가 결국 저렇게 눈물을 흘리실까를 한동안 생각에 잠겨 보았습니다
1) 몇 년전에 아내를 떠나보냈는지 알수는 없지만
어머니없는 자식을 길러야만 했던 지난날이 생각났어---흘린 눈물일 것이고
2) 그렇게 사랑으로 키운 딸을 떠나 보내야 아버지의 아픔이요-----
걱정스러운 아버지의 마음일 것입니다
결혼식은 이렇게 떠나 보내는 아픔이 있어요
그런데 떠나보내야 하는 겁니다
왜 떠나 보내야 합니까?
떠나 보낼 때 인생이 한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부모의 치마품에 싸여있어서는 안된다는 거예요
어릴 때부터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서도 생활할 수 있도록 -----자립심을 길러야 합니다
인생이 현실에 안주하고--- 떠나지 않으면 성장이 없습니다
바닷가재를 아십니까?
이 바닷가재는 성장하기 위해 몇번의 껍질을 벗어야 한답니다.
바닷가제의 껍질은 뭡니까?--
외부의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주는 방패입니다.
그러나 바닷가재는 그의 몸이 커져갈 때
성장하는 몸에 맞는 새로운 껍질을 입어야 하는데
이 새로운 껍질을 입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가재는 옛 껍질을 포기해야만 한다는 겁니다..
만약 포기하지 않는다면,
이 옛 껍질은 곧 가재의 감옥이 되고 마침내는 관이 되고 만다는 겁니다.
바닷가재가 지내기 힘든 시절은 낡은 껍질이 벗겨지고
새 껍질이 형성될 때까지의 짧은 기간이다.
옛 껍질을 벗고 새 껍질을 입는 기간 가재는 껍질없이 지내야 한다는 겁니다.
이 기간 잘못하면 상처를 입게 된다.
이 상처 입기 쉬운 기간 바닷가재는 분명히 두렵다는 겁니다
바다의 조류는 가재를 해초가 있는 곳으로 휘몰아 간다.
배고픈 고기떼는 가재를 잡아먹을 수 있는 최고의 기회라는 겁니다
그러나 이 기간을 잘 이겨내면 바닷가재는 새로운 껍질을 입게 된다.
그리고 놀라운 성장을 경험하게 된다.
신앙인의 삶은 가재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변화하고 성장하기 위하여
우리는 때때로 그동안 의존해온 우리의 옛 껍질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옛 부대를 버리고 새 부대를 취해야 하고
옛 자리를 버리고 새 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오래된 구조와 외형을 벗어버릴 때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참된 신앙인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비움, 떠남, 그리고 버림의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셨을 때
그들은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아갔습니다.
배는 제자들에게 있어 고향이요 옛 껍질과 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제자의 길을 가기 위해 옛 것을 버리고 주님을 좇아갔던 것이다.
예수님을 좇아가기 위해서는 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모험할 줄 알아야 한다.
죽음의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익숙해진 우리의 ‘옛 터전’을 뒤에 남겨 두고 떠나야 한다.
바닷가재가 성장하기 위해 옛 껍질을 포기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도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껍질을 벗는 훈련을 해야 한다.
딱딱해진 것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옛 생활--옛 습관--옛 성품---오래된 것을 버리고---
그것을 박차고 떠날 줄 알아야 하고--더 높은 차원에 도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내 정도만 신앙생활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일 오전예배만 나오는 사람은
주일 오전예배만 마치면 성도의 의무를 다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주일 오전예배만 참석하던 사람은---오후예배에 참석하도록 도전해야 합니다
주일 오전 오후 예배에 나오시는 분들은 수요일 예배에도 참석하도록 도전해야 합니다
새벽기도 일주일에 한번도 안나오시는 분들은 한번이라도 나오도록 하십시다
일주일에 한번 나오시던 분들은 두 번을 나오시도록 하십시다
이것이 아브람의 정신이요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심과 기뻐하심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한번 받아서 합니다
좋은 신앙인은 / 과거를 버리고
현실안주에서 떠나 / 더 높은 차원에 도전하는 것---아멘입니까?
2. 하나님과 함께하는 이사였다는 것입니다
4-5절을 다같이 읽어 봅니다
아브람이 무엇을 쫒아 갔다고 합니까?------그렇습니다----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말씀이 누구신가를 좀 생각해야합니다
요1:1절에---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시매--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이 육신되어서 우리가 가운데 거한다는 것은
말씀이 육신의 옷을 입고 인간의 세계에 들어오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성육신----다른 말로는 인카네이션이라고 합니다
이 성육신하신 분이---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아브람이 말씀을 쫒아 갔다는 것은
아브람 혼자서 간 것이 아니라-----
말씀이신 하나님---말씀을 주신 그 하나님과 함께 갔다는 것과 동일한 말씀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이냐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믿음이란 이것이다--저런 것이다고 배우고 있습니다만
받아서 합니다
믿음 생활이란----의존하는 생활이다----믿습니까?
그렇습니다-----믿음 생활이란 의존 생활입니다
사람이 생활하는 방식은
자신이 일하고 땀흘리고 수고한대로 거두는 방식이 올바른 방식입니다
그런데 만약 자기는 일하지 아니하고---남이 수고한 열매로 살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른 삶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세계에서는
내 스스로 독립하여 구원의 경지에 도달하겠다는 것은 금물입니다
만약 저나 여러분 중에서 누구든지
내 스스로 구원의 경지에 이르고자 한다면
그날 그 사람은 어느 이단의 교주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혼자의 힘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11:8---
/ “아브람이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람이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는 것은
아브람이 자신이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정확히 모르고 나섯다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자신이 가는 길을 모르지만 아시는 분이 있습니다---그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가는 것---그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
이것이 믿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길이란-----나는 잘 모릅니다
나는 알지 못하고 나가지만 나의 끝이 어떻게 될것인가를 아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누구다---하나님이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모든 것을 아시고---나의 장래까지도 아시는
그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나가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000 집사님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이집사님은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재산이 얼마나 많았든지
학생때---85년도 이전에 4억이 넘는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는 예수를 믿기 전이었고
학교에 다니면서 한 미모의 여학생을 만나
사귀게 되면서 인생이 바뀌기 시작을 하였습니다
이 여학생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예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외모로서는 별로입니다
차라리 제가 보기에는 남자 집사님이 훨씬 잘생기고---멋지고---미남이고 탈렌트 같은데
이 예수를 믿는 자매는 평범한 자매였습니다
그런데 학교 다니면서 그 여학생에게 그만 코가 끼이고 말았습니다
제눈에 안경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 집사님에게 자매가 얼마나------예쁘게 보였든지----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로 졸졸졸 따라다니다가
교회에도 나오게 되고--학습도 받고---세례도 받고
마침내 ------잘 만났네------잘만났어-----우리가 서로 잘 만났네---------------
그렇게 결혼식을 올리고 가정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하고보니 아무리 돈이 많아도
남자가 돈을 벌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돈을 번다고 시작한 것이----90년대 이전에 증권에 손을 댔습니다
90년대 이전에 증권을 한 사람들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나 90년대를 넘어서면서 손해를 보기 시작하였는데
4억원의 돈을 가지고------다 날리고----불과 건진 것은 7천만원만 건졌습니다
엄청난 돈을 허공에 날리고 나니---사람이 얼마나 참담합니까?
이제는 놀고 먹을 돈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고 있는데
어떤 분이 스텐 그릇 장사를 하면 돈을 번다고 하여 그 사업에 뛰어 들었는데
남의 돈을 벌기가 그렇게 쉬워요?-----
특이한 것은 그 스텐 그릇 장사를 할려면 거짓말을 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5만원 짜리 그릇을 5만원이라고 하면 가짜라고 안산다는 것입니다
5만원짜리를 10만원 20만원짜리라고 하면 그때서야 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집사님은 그렇게 뻥튀기 거짓말을 하는데 익숙치가 못하니 결국은 실패하고
4천만원을 조금 넘게 건지고 손을 놓고 말았습니다
다시 무슨 사업을 할까라고 고민을 하다가----수퍼를 하겠다고 생각을하고
동촌 비행장 건너편에다가 건물을 얻어 놓고------40일 철야기도에 들어갔습니다
한번은 제가 새벽기도를 마치고 나오는데
집사님이 철야를 하시고 교회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말을 건냈습니다
집사님--철야하시고 피곤하실 텐데---왜 집에 안가시고 여기 계세요라고 하니
그때 제가 전도사시절이었는데
아-----전도사님께 상담을 좀 하려구요---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그때 그랬습니다
상담은 목사님이 계시니 목사님과 하시지
왜 제게 상담을 하시렵니까?---라고 하니----목사님과도 하였다는 것입니다
목사님과 상담을 하였다는 말에-----무슨 일인데요--라고 하니
수퍼를 하는데----수퍼엔 술과 담배를 팔아도 되는지 안되는지
신앙적으로 판단을 좀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토를 달기를-----수퍼에는 술과 담배가 가장 마진이 많이 남는데
그것을 팔지 않으면 현상유지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에 제 마음에-----언뜻 스치는 것이-----
아----집사님이 지금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술과 담배를 팔아도 된다는 언질을 받고 싶어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대답을 하였는데---무엇이라고 하였겠어요?
팔아도 된다 안된다-----안된다고 하였지요
그러면서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집사님----지금까지 제가 보기에는 집사님은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살아 오셨습니다
그러나 안되었고---실패하였습니다
그리고 집사님 지금 40일 철야기도를 하시는 줄 알고 있습니다
40일 철야 기도를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도를 한다는 것은---나의 방법대로---나아지식대로 살기 위해서가 아니쟎아요
하나님을 의지하고--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하여 기도하시는 것 아닙니까?
제가 알기로는 집사님이 지금까지 몇 번의 실패를 하면서 빈털터리나 다름이 없습니다
이제 망하여 다 털어 먹는다고----불과 돈 4천만원입니다
그러니 기왕에 망했고--이제라도 하나님의 방법대로 사시고자 기도하셨다면
술도 팔지말고----담배도 팔지말고---주일에 수퍼의 문도 열지말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아보세요---라고 하였더니
괴롭다는 듯이 얼굴이 찡그러져요
그리고 얼마후 담임목사님의 인도로 개업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난후 저는 제일먼저 수퍼의 이곳저곳을 둘러 보았습니다
술이 있느냐-----담배가 있느냐---있다 없다---있으면 제가 이 이야기를 안하죠---할렐루야
지금은 이렇게 쉽게 말하지만요
그때는 제가 더 고통스럽더라구요
야-----이 집사님이 이번에 수퍼가 안되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실텐데-----
또 예수 믿는 사람이 술과 담배를 안팔아서 망했다는 소리가 나서는 안되는데
여러 가지 걱정으로 인하여 새벽마다 기도하지 않을 수 없어서 기도를하는데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수퍼를 시작하시고 몇 달이 안되서 십일조를 하시는데 100만원을 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100원 200원짜리 파는 수퍼를 해서 한달에 100만원 십일조 상상이 안되쟎아요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아니 집사님 얼마나 장사가 잘되시기에 100만원 십일조 하십니까라고 하니
수퍼가 잘되어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기왕에 망한 것----하나님께 헌금이라도 뜻뜻하게 드리자라는 생각에서 드리고
또 한편으로는 십일조를 100만원 드리는 축복을 달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드린다느 것0
한 1년이 다되어 갈 때 집사님에게 물었습니다
집사님 요즘 수퍼가 어때요---잘되요 라고 하니
수퍼는 안되고-----수퍼안에 식육점을 같이 하는데----
고기가 얼마나 잘팔리는지----수퍼 매상의 몇배나 팔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1년 정도 지났을 때 어떠냐고 물으니 그때는 또다른 말을 하시다라구요
자기 수퍼에 쌀을 갔다 놓았는데
언젠부터인가---고기보다 쌀이 더 잘 팔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요--수퍼도 치우고--식육점도 치우고-----살만 파는데
혹시 여러분 포장미 중에 00농산-00곡산이라는 포장미를 사 드신 분이 있을 것입니다
이 포장미가 대구에서는 최고로 많이 파는데
지금은 십일조 헌금을 자기 교회에서 제일 많이 드린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아브람도 자신의 앞길을 훤히 보고 나아간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될지를 몰랐고---갈바를 얼지 못하고 나갔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의지하고----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나아가므로
5절 하반절에 마침내 가난안 땅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목적지에 들어갔다는 것이요----원하는 곳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께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므로----마침내 구원의 자리에 이르고
나아가 이땅에서도 아브람이 복을 받았던 것처럼---
하나님의 큰 은혜와 복을 받아 누리시는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