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속의 식물 상징
1. 모란
모란이라는 이름은 꽃색이 붉기 때문에 란[丹]이라 하였고 종자를 생산하지만 굵은 뿌리 위에서 새싹이 돋아나므로 이를 수컷의 형상이라고 생각하여 모[牡]자를 붙였다. 한자로는 목단(牧丹)이라 한다. 중국이 원산지인데 우리나라에는 신라 진평왕 때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곧 당에서 얻어온 모란의 씨앗과 그림을 덕만공주에게 보이니 ‘꽃은 아름다우나 향기가 없으리라’하였다. 진평왕이 그 이유를 물으니 ‘그림에 벌과 나비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아름다우면 남자들이 따르고 꽃으로서 향기가 있으면 벌과 나비가 따르는 법인데 그림에 이것들이 없으니 반드시 향기가 없는 꽃입니다.’하였다. 씨앗을 심어 보니 과연 공주의 말과 같았고 진평왕이 아들이 없어 공주가 왕위를 이으니 이가 곧 진덕여왕이다. 이는 모란에 대한 최초의 기록으로「삼국사기」에 실려 있다.
또 원효대사의 아들 설총이 ‘화왕계(花王戒)’를 이야기하며 신문왕에게 충고하는 이야기가 역시 「삼국사기」에 실려 있는데 화왕(꽃의 왕)은 바로 모란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처럼 모란은 옛날부터 동양인들 사이에서 꽃 중의 꽃이며 부귀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와 같은 상징성 때문에 신부의 예복인 원삼이나 활옷에는 모란꽃이 수놓아졌고 결혼식에도 모란꽃 병풍을 쳐서 새로운 부부의 앞날을 축원하였다.
선비들이 쓰는 책거리 병풍이나 그림에도 부귀와 공명을 이루라는 뜻으로 모란꽃이 그려졌고 왕비나 공주와 같은 귀한 신분의 여인들 옷에도 당연히 모란무늬가 들어갔다. 일반 여염집의 수병풍에도 모란은 빠질 수 없었고 기이하게 생긴 돌과 함께 그린 모란 그림은 부귀가 돌처럼 오랫동안 이어지기를 기원하는 상징화로 왕궁이나 민간 가릴 것 없이 애용되었다. 또 미인을 평함에 있어, 복스럽고 덕 있는 미인을 활짝 핀 모란꽃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2. 연꽃
연꽃은 늪이나 연못에서 자라지만 더러운 진흙에 물들지 않으면서 미묘한 향기를 간직하고 있다. 실제로 연꽃은 아주 맑은 물이나 차가운 물속에서는 잘 자라지 않는다. 진흙 바닥 속에서 더 잘 자라면서도 잎에 물이 묻지 않는다. 비가와도 빗물이 굴러 떨어질 뿐 다른 풀잎이나 나뭇잎처럼 젖지도 않는다. 게다가 한 여름 물속에서 꽃대가 올라와 크게 핀 분홍색이나 흰색 연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고결하고 청아하다. 이러한 연꽃의 특성은 불교를 상징하는데 모자람이 없었고 불교의 경전이나 건축, 목공예 등에 수없이 나타나게 되었다.
불교 상징으로서의 연꽃의 특성을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다.
① 더러운 곳에 있지만 항상 깨끗함을 지키고 있다.
연꽃은 혼탁한 물과 진흙 속에서 살지만 더럽혀지지 않고 자신의 청정함을 항상 그대로 지니고 있다. 이는 탐욕․분노․어리석음이 가득 찬 이 세상에 살고 있다하더라도 모든 중생은 이러한 더러움들에 물들지 않는 부처님의 마음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누구나 수행을 통해 마음을 닦음으로서 혼탁한 세상의 어지러움을 뛰어넘어 본래 자기가 가지고 있는 맑은 성품, 바로 부처님의 성품을 연꽃처럼 피워낼 수 있다는 것이다.
② 꽃이 피는 동시에 열매를 맺는다.
다른 식물들은 꽃이 피어난 뒤 암수가 서로 연결되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지만 연꽃은 꽃과 열매가 동시에 생겨난다. 이는 모든 중생이 태어남과 동시에 부처님의 성품을 갖고 있다는 뜻이며 또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교의 기본사상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③ 아름다움에 고상함과 기품이 있다.
연꽃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고상한 품위를 지니고 있다. 이는 세상의 모든 번뇌를 초월해서 깨달은 경지, 완성과 원만함의 경지를 연상하게 한다. 따라서 원만한 해탈의 경지에 이른 부처님이나 보살의 맑고 깨끗한 모습을 연꽃의 고상함에서 느낄 수 있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연꽃은 우리 모두가 부처임을 나타내는 꽃이다. 곧 모든 중생이 부처님의 청정한 성품을 간직하고 있으며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을 함축하고 있는 꽃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불교신자가 죽어 서방정토에 태어날 때 연꽃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연화화생(連和化生)의 이야기가 있고 모든 불․보살의 정토를 연꽃 속에 들어있는 장엄한 세계라는 뜻의 연화장세계라고 부른다.
불․보살이 앉는 자리를 연화대라 부르며 부처님 법의 결백하고 미묘함을 연꽃에 비유해 쓰여진 경전이 「묘법연화경」이다. 연꽃 문양도 역시 부처님의 성품 그 자체가 우리 중생들의 근본 심성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부처님의 가르침과 그 내용을 연꽃으로 도상화한 기호라고 하겠다.
연꽃은 불교의 꽃만은 아니다. 유교의 선비들도 연꽃의 품성을 사랑해서 꽃 중의 군자, 화중군자(花中君子)라고 불렀다. 중국 북송시대의 유학자 주무숙은 그의 「애련설(愛蓮說)」에서 ‘진흙 속에서 났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으며, 속이 비고 줄기가 곧으며, 덩굴지지 않고 가지가 없다. 향기가 멀수록 더욱 맑으며, 우뚝 깨끗이 서 있는 기품은 멀리서 볼만 하다’하여 군자의 성품과 같음을 칭찬하였다.
한편 우리 선조들은 꽃에도 품계나 등수를 매겼는데 이때는 꽃의 아름다움보다 꽃이 지닌 상징적 의미에 따라 점수를 매겼다. 조선시대 선비 강희안은 꽃의 품계를 9가지로 나누었는데 그 1등은 연꽃, 2등은 모란이었다. 선비사회에서 연꽃은 절개를 상징했기 때문에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보다 등급이 높았던 것이다. 집안의 작은 못에 연꽃을 심고 큰 연못에 연꽃이 피면 친구들과 함께 연꽃 구경을 하며 시회를 여는 것이 조선 선비들의 풍류이기도 하였다. 이는 불교를 탄압한 조선시대에도 연꽃은 절개를 지키는 선비들의 상징으로서 계속 전통문화 속에서 꽃피워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3. 국화
국화는 모든 꽃들이 다투어 피는 봄, 여름 다 지난 뒤 늦가을에 서리를 맞으며 홀로 피어난다.
이러한 모습에서 국화는 절개를 지키며 속세를 떠나 고고하게 살아가는 숨은 선비를 비유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옛글에 ‘국화는 다섯 가지 아름다움이 있으니 동그란 꽃송이가 높다랗게 달려 있음은 하늘을 본 받은 것이요, 일찍 심어 늦게 핌은 군자의 덕이요, 서리를 이기고 꽃을 피움은 굳은 기상이며, 술잔에 동동 떠 있음은 신선의 음식이다.‘ 하여 국화를 예찬하고 있다.
또 다른 글에는 ‘ 산수간에 묻혀 사는 사람들이 국화를 군자에다 비유하여 말하기를 가을이 되면 모든 초목이 시들고 죽는데 국화만은 홀로 피어 바람과 서리 앞에 당당히 서있다.
그 품격은 산에 사는 사람이나 뛰어난 선비가 높고 순결한 지조를 품고 비록 적막하고 황량한 처지에 있더라도 오직 도(道)를 즐기어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않는 것과 같다‘ 하여 역시 국화의 지조를 높이 사고 있다.
진나라 도연명은 한 때 관직에 있었으나 그 생활이 생리에 맞지 않아 스스로 벼슬을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왔다.
이 때 지은 「귀거래사」에 소나무와 국화가 변하지 않고 자신을 반김을 노래하였고 그 뒤 지은 「음주」라는 시에 ‘동쪽 울타리 아래 국화꽃 꺽어 들고 물끄럼히 남산을 바라본다’ 라는 시귓가 있어 구 뒤 수많은 그림의 소재가 되었다.
한편 노장사상에서는 국화를 신선의 풀꽃으로 여겼다.
「포박자」에 ‘ 감곡수에는 국화의 물이 떨어져 좋은 자액이 되니 이 물을 마시면 장수할수 있다.’ 고 하였다. 따라서 국화가 불로불사의 신비한 풀이라는 사상이 생겨났고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시대의 청자들, 술병,술잔이나 거울등에 국화문양이 많이 쓰여졌다.
이런 영향으로 국화로 술을 담근 국화주가 나오게 되었고 궁중의 축하주로도 애용되었다.
민간에서도 음력 9월9일에 국화주를 마시면 무명 장수 한다 하여 즐겨 마시는 풍습이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다 사라졌다.
어쨋거나 국화는 절개를 지키는 상징으로서 강희안의 꽃에 대한 품계에서도 국화는 연꽃,매화,대나무와 함께 1등에 올라있듯이 우리 문화 전반에 걸쳐 그림,조각,문양으로 나타나고 잇고 수미단에서도 흔히 찾아볼수 있는 상징적인 꽃이다.
4. 매화
이른 봄 눈이 채 녹기도 전에 추위를 마다 않고 제일 먼저 꽃을 피우는 매화는 난초,대나무,국화와 더불어 사군자라 불리우는 절개의 상징화이다. 많은 꽃과 식물 중에서 특별히 이들을 선택하여 덕과 학식이 높은 군자(君子)에 비유한 것은 이들이 화려하거나 뛰어난 아름다음을 지녔기 때문이 아니라 각각 높은 기상과 품격을 갖췄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지조와 절개를 군자의 가장 큰 덕목으로 여겼던 선비사회에서 찬 바람 , 궂은 비 , 매서운 눈보라 속에서도 꿋꿋이 꽃을 피우는 사군자가 사랑을 받은 것은 지극히 당현한 일이었다고 하겠다.
매화는 모든 꽃이 미처 피기전에 눈발 속에서도 제일먼저 꽃을 피우고 맑은 향기를 품어내기에 옛날부터 꽃으 맏형이라 하여 ‘화형(花兄)’이라고 불리웠다.
수 많은 문인들이 매화를 예찬하였으니 ‘천하에 으뜸가는 꽃’ ‘얼음같은 맑은 혼과 구슬처럼 깨끗한 골격’ ‘강산의 정신이 깃들고 태고의 모습이 드러난 꽃’ 등 많은 찬사를 받았다. 또한 매화는 달과 함께 자주 등장하고 있다.
교교한 달빛 아래 청초한 자태와 맑은 향기를 내뿜는 매화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자연적인 조화와 운치를 한껏 느낄 수 있는 풍경이라 하겠다.
산수간에 숨어지내는 선비들의 아낌을 받아온 매화는 고아함의 화신이요 정절의 상징으로서 그림이나 문양으로 우리 전통문화 속에 큰 뿌리를 내리고 있다.
매화의 청초한 자태와 향기는 아름다운 여인에 즐겨 비유되어 옛 기생들의 이름에도 ‘매(梅),자가 많이 사용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매화가 아름다움과 함께 정절을 상징하였으므로 조선시대 여인들은 매화와 대나무 문양을 함께 넣어 만든 비녀, 매죽잠(梅竹蠶)을 즐겨 사용하였던 것이다.
매화그림이나 도자기, 매화를 읊은 시가 많은 것도 이런 매화사랑 때문이었고 사찰의 벽화나 수미단에 등장하게 된 것도 시대의 흐름이었던 것이다.
참고문헌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91구미래,「한국인의 상징세계」, 교보문고, 1995 허균,「사찰장식, 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돌배개,2005 이병도 「삼국사기」, 을유문화사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