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목소리로 부르는 그리움의 노래
여영 김영애의 시 세계
자경 전선구 시인
一
1.날마다 글을 쓰고, 읽고 하지만 몇 일 동안 한 줄의 글도 쓸 수가 없었다. 늘 여영 시인이 시집을 상재上梓할 때는 부족한 사람이지만 해설을 쓰겠다고 마음도 먹었으며, 어쩌면 여영 시인도 그렇게 생각하였으리라 믿었으나, 막상 시집을 내겠다고 원고를 들고 와서 해설을 써 달라하니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참 어려운 분의 작품을 해설해야 한다는 생각에 선뜻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작품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전에 여영 시인이 왜 어려운 분인가를 밝히고자 한다.
여영 시인은 친구의 부인이며, 집사람의 친구이니 어려울 수밖에 없고, 또 여영 시인은 본래 수필가였으나 우연한 기회에 집사람이 여영 시인의 수필을 읽고 나에게 읽어보라고 권하여 읽었더니 참으로 좋은 내용으로 아름다운 시에 비견할만하여 시조를 써보라고 권한 것이 인연이 되어 시조를 쓰게 되었으며, 쓰기 시작 한지가 이제 십 개월, 그간에 습작의 열정과 치열한 노력이야말로 불문가지 일 것이다. 실은 그보다 어려운 일은 부족한 필자가 수없이 지적해도 묵묵히 삭이며 받아드리는 아량은 참으로 아름답고 고마우니 필자로서는 오히려 대하기 어려운 분 이시다.
이제 한사람의 시조시인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시조집을 상재하려는 이 귀한 시간이다. 한 시인으로 시집을 출간하는 것은 새 생명을 출산하는 것에 비견할 만한 성스런 작업인 것이다. 시를 "아름다운 영혼의 노래"라고 정의하는 말을 필자는 무척이나 좋아하고 공감한다. 이는 곧 시속에는 신성이 담겨져 있다는 말이며 시가 인간을 교화하고 영혼을 맑게 하여 지고지순의 경지로 이끌어 진선미를 체험하게 해서, 교훈과 기쁨을 함께 주려는 것이니 그 창작의 고뇌는 뼈를 깎는 듯한 출산의 고통과 같은 고통을 격지 아니하고는 "신성을 노래"할 수 없을 것이다.
2.여영 시인은 수필을 쓰면서 문학작품을 창작하는 기틀을 탄탄히 잡았으며, 오랜 교직 생활과 한 가정에서 주부로서 소임을 다하며 인간으로서의 가져야 할 덕목과 여성이 가져야 할 덕목에 대하여 스스로 체득하였을 것이고 이를 통하여 긍정적 사고와 사랑의 눈길로 사물을 바라보면서 진솔하게 글을 쓰는 마음을 얻고 타고난 재능에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이러한 바탕에서 시조창작을 시작하여 육 칠 개월만에 등단의 과정을 거치고 수 백 편의 작품을 창작하게 되었으니, 여영 시인의 치열한 시정신과 창작열을 가히 짐작할만하다. 이 치열한 창작정신은 감정의 낭비가 아니라 작가로 가져야할 최소한의 창작에 대한 양심이며 작가로서의 창작에 대한 태도라 할 것이며 그 노고에 감격하지 아니할 수 없다.
여영 시인은 좀 늦게 시조를 쓰게 되었으나 시를 씀에 있어서 늦고, 일음에 상관이 없다는 것을 오늘 이 시간 여실히 증명하고 있음이 아닌가. 오히려 일찍 문단에 등단하여 조로 하기보다는 오히려 좋을 듯하다. 참으로 여영 시인은 열정과 집념을 마음 속에 깊이 묻고 밖으로 드러냄 없이 묵묵히 이루어내는 묵중하고 침착한 성품의 소유자임을 짐작할 수 있으며 작품 속에도 시인의 인품이 곳곳에서 배어나고 있다.
이제 여영 시인의 시조집을 일별 해보면서 작품을 살펴 보려한다. "시를 쓰는 일은 시인만의 것일 수는 없다. 사람은 경험과 정서와 사색을 통하여 시적 감흥을 얻게 되고 시적 언어를 생산하게 된다." 라고 말을 하니 누구나 시를 쓸 수 있는 것이나, 단지 시인은 자신의 시적 감흥을 정교한 수사를 통하여 새련 되게 표현하는 신령스런 영혼과 기술을 가졌으며, 어떤 형식을 취하여 전달하느냐는 오직 시인의 취향에 따른 것이니, 여영 시인은 시조라는 형식을 통하여 자신의 사유를 표출한 것으로...자신의 시집,"별이 되는 꽃"에 100여 편을 8부분으로 대별하여 놓았다.
二
3.작품 한편 한편에서 작가 스스로에게 얼마나 진실하였으며 성실하였는가를 보여주며 동시에 독자들에게 감동을 가져다 줄 수 있도록 창작에 정성을 다하였는가를 확연히 알 수 있다. 여영 시인은 서정과 서경을 노래하면서 자연현상 안에서 사물이나, 인사를 바라보는 눈길이 무척이나 다사롭고 예리하며 자아성찰을 깊이 하는 노력이 작품 속에 녹아 있음을 볼 수 있다.
경북 안동에 안동댐이 있다. 본 댐 아래 보조 댐에 있는 월령교는 무척 경관이 수려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세월을 차곡차곡 머리 위에 올려놓고
가을 빛살 일렁이는 강가로 나왔더니
어깨를 두드려 주는 빛이 바랜 낙엽들만.
흐르는 강물에 낙엽 한 잎 띄워 놓고
마음을 얹어 두면 물 따라 갈 것인가
월영교 갈바람 속에 세월 잃은 지팡이여.
한 세월 흔적들을 낚아서 건져 보는
여리고 떨리는 손 비추는 가을 햇살
굽은 등 스친 잔상은 너의 모습 내 모습.
(월영교 노인) 전문
하늘을 보면서 푸른 하늘이라고 눈에 보이는 실제 상황을 그대로 말하지 않고 “내 유년의 깊은 마당”이라고 말했다면 그것은 진술을 넘어서는 아름다운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위의 작품은 늦은 가을 세월을 차곡차곡 머리 위에 올려놓고 낙동강 월령교에 나와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는 노인의 모습을 화자는 절절하고 애처로운 연민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
계절적 상황으로 이루어지는 빛 바랜 낙엽이 무심히 떨어지는 강가의 정경과, 긴긴 세월의 흔적이 머리에 하얗게 쌓인 노인과 잘 조화시켜 표현함으로서 독자의 정서를 자극하고 또 다른 세계를 생각하게 하여 독자의 마음을 움직여서 또 다른 사유를 하게 하는 힘을 가지게 한다.
시적 화자도 수많은 상념에 빠져들어 그 상황과 동화되어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자신의 세월도 흘러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갈바람 속에서 세월 잃은 지팡이는 외로움을 달래며 일어 설줄 모르는 노인의 모습일 것이며, 핏줄 불거진 손등과 등 굽은 모습에서 내일의 화자와 독자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하여 자신의 존재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하여주고 있다.
4.왜 "시를 영혼의 언어"라 말하지 않고 볼테르는 시를 "영혼의 음악"이라 말했을까. 그것은 "시는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전달되는 것"이라는 T. S. 엘리어트의 말에서 그 뜻을 미루어 생각 할 수 있다. "시는 언어로 표기되지만 언어 이상의 영혼의 울림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영혼을 울리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영혼을 울릴 수 있겠는가.
몸져누워 살아오신 할머니의 세상에는
봄 햇살 여름 땡볕 네모로만 보였지요
저쯤서 손짓을 해주는 옥수수만 자랐다.
기대어 앉아 봐도 할머니 눈길 속에는
툇마루 넘어 피는 봉선화만 보였지요
그 뒤로 너울져 피는 저녁놀도 가끔씩은.
해 종일 고적한 맘 할머니의 가슴에는
마당가에 귀 모으고 맏손녀 발소리 뿐
꼬릿한 이불 밑에다 옥수수를 숨기시고.
파르르 떨리는 손, 옥수수는 무거운데
알 빠진 서너 줄에 가랑이는 기침소리
목메며 씹었던 시간 아,할머니의 행로여,
(이불 밑의 옥수수) 전문
화자의 추억 속에 할머니는 한여름 풋굿판에서 꽹과리 치시던 그 할머니가 아니시다. 아마 세월이 흘러 노년에, 아니면 병석에서 몸을 기동하기 어려운 처지에 계시는 듯하다. "봄 햇살 여름 땡볕 네모로만 보였지요"를 통하여 방안에서 네모난 창문을 통해 계절을 맞이하고 계절의 변화를 봉숭아꽃과 너울거리며 자라는 옥수수를 창문을 통하여 보는 것이다.
할머니가 저녁나절에 마지막으로 붉게 타는 놀을 바라보는 것을 화자는 아린 마음으로 보며 노년의 할머니에 대한 관심, 사랑을 엿볼 수 있으니 화자의 아름다운 마음을 가슴 아리게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할머니는 학교에 간 손녀를 "마당가에 귀 모으고 맏손녀 발소리 뿐" 을 통하여 손녀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을 알 수 있다.
냄새나는 이불 밑에 옥수수를 왜 숨겨 두셨을까. 핏줄 불거진 야윈 손으로 잡수시다 남겨 숨겨둔 옥수수수를 손녀에게 쥐어주는 모습, 할머니하고---할머니에게 다가가는 손녀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다가오면서 조손 간의 참으로 아름다운 사랑에 가슴이 뭉클함을 느낀다.
시를 짓고 읽고 함의 궁극적 목적은 처음은 아름다움의 추구이고, 둘째는 교술적 목적이다. 위의 시야 말로 두 가지의 목적을 달성한 성공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5.수필이라는 자유로운 틀에서 비좁은 시조의 틀을 택하여 자신의 정감을 노래하는 여영 시인의 작품에서 그 사유도 새로운 빛깔과 향기를 뿜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꽈배기 무늬 진 갈색 스웨터 입으시고
끝 둥근 파이프에 담배 연기 올리시며
아버님, 무슨 생각을 하늘가에 거셨나요.
별 총총 눈뜨는 밤 실국화 세워 두고
귀뚜라미 가족처럼 노래하자 하시고는
당신이 부르신 가락 이명처럼 들려와요.
막걸리 줄어들면 멸치 안주 말라 가고
살 오른 보름달이 서산으로 비껴갈 쯤
입 모아 불렀던 가락 이제 마음 알 듯해요.
여윈 달 살찐 달이 수없이 바뀌어도
구성지게 넘어가던 목소리 간 곳 없고
하얗게 야윈 달무리 가슴 속 저미네요.
연습 없이 노래잔치 열리던 그 마당은
눈감으면 떠오르는 그리운 옛터 되고
갖가지 재롱 못 부려 이제 사 후회해요
(황성옛터) 전문
위의 시조는 아버지가 막걸리를 한잔하시면 즐겨 부르시던 흘러간 옛 노래 "황성옛터"를 통하여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연역적 서술방법으로 활발한 상상력과 연상능력에 따라 치밀하게 확산해 가면서 절절한 그리움의 세계로 빠져들어 가게 한다.
꽈배기 무늬 놓은 갈색 스웨터 입으시고 끝 둥근 파이프에 담배 연기를 품으시던 내 아버지의 모습, 별이 빛나던 밤이면 아버지와 함께 달이 서산에 빗기도록 노래부르던 그 그리운 날들을 가슴 아리게 추억하는, 지명에 머뭇하면서도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딸의 모습에서 같은 길을 걸어가는 독자의 마음도 무척이나 그리움에 젖게 할 것이다.
수많은 세월이 지나, 여윈 달 살찐 달이 수없이 바뀌어도/ 구성지게 넘어가던 목소리 간 곳 없고/ 하얗게 야윈 달무리 가슴 속 저미네요./라고, 이렇게 진술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회한 속에서 회상하여 연민을 낳게 하고 인간의 본질적 정서의 하나인 비애의 감정을 노래하고 있다.
6.한 계절이 지나고, 지그시 눈감고 시든 대지에 찬연히 빛나는 억새꽃을 심안으로 바라본다. 바람이 불 때 항거하지 않고 내 몸을 맡기며,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고운 마음을 바라보면서, 가야할, 아니면 생각하여야 할, 그 곳을 지향하는 영혼은 또렷이 살아서 자신의 색깔과 생의 의미를 추구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 작품을 아끼지 않을 수 없다
바람이 불 때면 네 몸을 맡기는 거야
각자 허리 흔들며 한 방향 찾는 거지
그래야
눈부신 은빛
네 색깔이 되거든.
꽃으로 피는 순간 날 생각을 하는 거야
멀리 날고 싶은 만큼 미련을 터는 거지
그래서
더 흥겨운 춤
억새 너는 알거든
(억새꽃) 전문
첫째 수 억새꽃 읽으면 내면에서 영혼을 일깨우려는 정서가 등장한다. 바람이 불 때면 네 몸을 맡기는 거야" 는 세속에 순응하려는 화자의 마음으로 읽는 다면 작가에 대한, 작품에 대한 망발 아니면, 이해의 부족으로 생각하고 싶다. "그래야 눈부신 은빛 네 색깔이 되거든"을 통해 이는 자연에 대한 순응, 절대자에 대한 순종으로 봄이 옳지 아니 할까. 그러함으로 진리. 또는 아름다움은 같은 길, 같은 곳에 있음을, 종국에 자아를 찾아 아름다운 진리 세계에 들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둘째 수에서 화자는 한 거름 더 나아가 "꽃으로 피는 순간 날 생각을 하는 거야" 라고 간곡하게 이른다. "멀리 날고 싶은 만큼 미련을 터는 거지"라고 더 큰 꿈과 소망을 가진다면 작은 것에 만족과 희열을 가질 것이 아니라, 새롭게 자신을 돌아보고 잡다한 미련을 털어 버리라고, 밀어처럼 화자는 속삭이고 있는 것이다. 종장에 "그래서 더 흥겨운 춤 억새 너는 알거든" 이라고 진술하는 화자는 비움으로서 충만함을 스스로 체득한 것을, 억새꽃을 통하여 고운 마음을 토로하는 것이며, 독자의 마음도 억새꽃 닮기를 원한다.
7.희망이란, 역동적인 뜨는 해만 주는 게 아니라 정적인 지는 해가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희망이란 선물을 받은 사람들은 내일을 꿈꾸고 기다리며 미진한 오늘에 대해 마음을 일몰을 통해 비운다고 화자는 "낙조를 바라보며" "부석사 일몰"을 통해 진술하고 있다.
왔으면 가는 것 소리 없이 가르치고
지는 순간 되도록 고운 빛 더, 더해
옷 여며
생각케 하는
나의 색은 뭐든가.
(낙조를 보며) 둘째 수
"지는 해는 항상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음을 가다듬고 자기를 쳐다보는 사람에겐 다 알고 있다며 이야기를 풀어준다. 잘못을 반성하여 옷깃을 여미게 하고 억울한 사정, 불쌍한 사정, 연민의 삶을 사는 모든 이에게 기다림의 약속을 한다. 그래서 지는 해는 오늘을 미진하게 산 사람들을 위로하며 지는 순간 되도록 고운 빛 더, 더해 그들에게 내일을 기약하게 한다고” 화자는 자신의 수필에서도 이야기한다.
영혼을 일깨우는 큰스님의 법문 말씀
장엄한 봉황산도 고개 숙여 몸 낮추고
찬란한
노을 속으로
범종 소리 너울진다
(부석사 일몰) 둘째 수
"뜨는 해의 강렬함과 달리 지는 해를 보면 오늘 하루도 잘 지냈구나하는 감사의 푸근함이 생기고, 영혼을 일깨우는 큰스님의 법문 말씀이 목탁소리와 함께 찬란한 노을 속으로 은은히 퍼질 때 일몰, 그것은 평화의 안식이다. 넘어가는 해 앞에 늘어 선 산이며 누운 강이며 들이 다 편안해 보인다"고 화자는 위의 작품에서도 화자 자신의 수필에서도 이야기한다.
8.작품의 좋은 제목은 좋은 내용을 이끌어 내고 좋은 내용은 좋은 제목으로 표상 된다. 정직하면서도 새롭고 신선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제목은 내용의 구성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선배 시인들은 말한다. 아침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소식이 온다는 속설을 가지고 아련한 추억의 그리움을 새롭게 반추해보는 매개체가 "까치야"라는 제재다. 그 그리움은 삶의 노정에 아름다운 꽃인 것이다. 인생사어에 추억 그 그리움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이제 작품 "까치야"를 읽어보자.
아득히 멀어진 인연 소식 올 리 없지만.
(까치야) 첫 수 종장
화자는 이순에 접어들면 서도 소녀 같은 그리움에 때로 젖어있음을 볼 수 있다 "아득히 멀어진 인연 소식 올 리 없지만".이라는 체념 속에 오히려 진한 그리움이 배어있음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아득히 멀진 인연이라는 구절을 통하여 어떤 인연일까, 하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무엇에 대한 그리움인가 궁금해한다면 참으로 어리석을 뿐이다. 한 생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인연들을 그리움이란 말로 그리워함이 아니겠는가.
날마다 가슴 앓고 밤새워 쓴 편지를
이제야 꺼내보는 우표 없는 사연인데
(까치야) 둘째 수 초. 중장)
밤새워 쓴 편지가, 세월이 흐른 오늘 우표 없는 사연으로 남아 있어, 오히려 독자의 가슴을 아리게 하는 참으로 아름다운 표현으로, 절절한 그리움의 정한을 그려내어 추억을 반추하는 것이다. "그리움이야말로 인간의 속성 중에 가장 고귀하고 인간을 가장 인간적"이게 하는 것이다.
9.고구려 아도화상이 세웠다는 천년 고찰. 대웅전 기둥 위에서 추녀의 무게를 힘겹게 떠받치고 있는 '벌거벗은 여인' 조각이 눈길을 끈다. 도편수와 사랑을 나누던 입구 주막집 여인이 바람이 나서 도망치자, 처마를 받치고 앉아 벌을 받는 모습의 나녀상을 조각했다는 전설이 있다. 이 전설의 나녀상을 제재로 쓴 작품을 읽어보자.
굳은 약속했건 만은 떠나 간 그 여인
(어느 도편수의 사랑) 첫째 수 중장
애증의 몸부림 끝 미움보다 큰 용서
변절 녀 연화대 앉혀 해탈의 길 섰더라.
(어느 도편수의 사랑) 둘째 수 중,종장
사물을 바라보는 눈이 밝은 시인은 보통 사람들이 지나쳐 보는 것을 새롭게 찾아 볼 수 있었다. 대웅전 기둥 위에서 추녀의 무게를 떠받치고 있는 '벌거벗은 여인' 조각은 분명 연화대 위에 꿇어앉아서 추녀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미움과 증오로 단순히 고통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면 부처님만이 앉을 수 있는 연화대 위에 앉아서 벌을 받게 할까.
흔들리는 풍경소리 전해주는 법문 듣고
맘 씻고 세월 건너 해후하자 기다리는
(어느 도편수의 사랑) 넷째 수 초장 중장
아직도 그 여인을 사랑하고 있음이 아닌가, 미움은 무엇이고 사랑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미움도 사랑도 일체 말인가, 불심 깊은 도편수는 어쩌면 부처님 반야의 진리를 이 조각품을 통하여 말없이 설법함이 아니겠는가 하고, 화자는 생각하고 보통 지나쳐 볼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진리에 접근하고자 혜안을 가지고 있다.
10.여영의 작품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정겨운 감각과 정서적 세계를 “별이 되는 꽃”을 통하여 확실히 발견 볼 수 있다. 광활한 우주 속에 미미한 존재까지 아름답고 정겨운 눈으로 응시하여 보편적 진리에 접근하여 작은 꽃 한 송이를 저 하늘의 아름다운 별로 보듬어 안는 고운 마음씨야말로 시인이 가져야 할 품성인 것이다.
이름이 없다고 서러워하지 말라
노랗게 한 점찍은 널 아가들은 별이란다.
(별이 되는 꽃 .1 이름 없는 꽃) 중, 종장
“아기들은 별이란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표현인가 이 세상에서 가장순수하고 가장 깨끗한 아기가 “별”이라고 명명하면 그것은 별인 것이다. 길가, 산천에 허다한 이름 없는 꽃들도 귀중하게 바라보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눈길을 가진 자 만이 진리에 접근할 수 있고 진정한 진선미를 체득하여 마음이 별처럼 빛날 것임을 독자에게 이야기한다.
밟힐 줄 알면서도 길섶에다 자리 틀어
마음 여며 사색으로 질긴 삶 이어가는
땅위에 뿌려진 빛, 빛 너희들도 별이다.
(별이 되는 꽃 2. 민들레) 전문
복잡하고 분주한 현실 속에 예사 사람들은 잊고 내던져 버리고 알지 못하는 것들을 찾아서 독자에게 기쁨과 교훈을 던져주는 사람이 시인이다. 현실적 환경 속에 삶을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 길섶에 핀 민들레를 바라보며 마음 여며 사색으로 질긴 삶을 살아 가야함을 이야기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너(사람)는 "땅위에 뿌려진 빛, 빛 너희들도 별이다". 라고 진술한다.
구르는 꽃잎에도 속내는 쌓여있고
봄비 젖은 입술에 노래 소리 남았는데
병아리 쪼르르 톡톡 별 찍으러 떠난다.
(별이 되는 꽃.3 개나리) 전문
시인은 사물의 변화와 움직임을 섬세한 촉수로 찾아내어 일상의 평범한 소재를 시적으로 승화 시켜서 흩날리는 꽃잎도, 비에 젖은 꽃송이도 인간에게 주는 귀중한 메시지를 갖고 있음을 말하며 "병아리 쪼르르 톡톡 별 찍으러 떠난다"라고 종장에서 진술함은 순수한 동심을 가진 자 만이 그 귀중한 메시지 곧 영혼의 음성을 들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만 가지 걱정 쌓인 어머니 뜰로 와서
총 총 총 별로 매달려 덮어주는------------------원문 확인하여-----------
(별이 되는 꽃.4 산수유) 중, 종장
아직도 바람 끝이 차가운 이른 봄, 만 가지 걱정 쌓인 우리들의 어머니 뜰에는 잔설이 쌓였다. 인간의 내면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어머니는 어떤 경우에도 자식들의 가슴 한구석에 사무치는 정한과 회한이 불연 듯 가슴을 매이게 한다. 엄동같이 추운 어머니의 세월에 노란 산수유 꽃이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되기를 화자는 바라는 것이 아닌가.
11.바람에 흩날리는 조락의 잎새, 이슬에 젖은 꽃송이를 바라보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언어 곧 그들이 가진 영혼의 언어까지 찾아서 자신의 언어로 재창조하여 한편의 시로 짜내는 사람이 시인이다.
오르다 살짝 틀어 내린 곡선 위에는
눈감고 살아가는 인고의 여인 있다.
치마 끝
여며 잡고서
돌아보는 여인이.
(난 꽃) 첫째 수
이 작품은 자연의 생생하고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청신한 감각으로써 이제 막 피어나는 난 꽃의 모습에서 여인(어머니)의 모습을 찾아내고 있다. 현대에 자유분방한 여인의 모습이 아니라, 난초'의 고결한 외모와 세속을 초월한 본성의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을, 의인화 수법을 통해 독자가 공감하는 경지까지 유도하여 눈감고 살아온 여인의 모습으로 신비롭게 형상화하고 있다.
이마를 낮추고서 다소곳이 핀 꽃에는
가슴을 졸여 대며 기다리는 여인 있다.
꽃무늬
아롱진 신발
신고 싶은 여인이.
(난 꽃) 둘째 수
우리네의 여인(어머니)들은 이마를 낮추고 한평생 가슴을 조이면서 사시었다. 그러나 그 여인들은 언젠가 꽃무늬 아롱진 신발을 신을 것이라는 소망을, 그 무엇에 걸고 사시었을 것이다. 난초의 청신한 외모와 고결한 내적 품성을 비러 우리네 여인들을 예찬한 작품으로 난 꽃을 의인화하여 노래하고있다. 이 작품은 고결하게 살고자 하는 화자의 소망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지향점을 일깨워 주고 있다.
12.누구에게나 추억은 아름답고 가슴 설레는 시, 공간이다. 돌이킬 수는 없지만 또 꼭 돌이키려는 마음도 없지만 이상스레 미련이란 놈을 남몰래 시공을 초월해서 보내보기도 하는 것이 우리네들의 상념이다.
해묵은 숱한 언어 쌔근쌔근 숨을 쉰다
빛 바랜 사연들이 곰실곰실 기어 나와
봄꿈에 젖어 든 가슴 추억으로 풋내 돈다.
흑백사진 고운 사연 생명은 꿈틀댄다
잊혀진 인연들이 밀물처럼 밀려 와서
시계 침 거꾸로 돌아 옛 님들을 데려온다.
잠자 던 은빛 사연 이끼를 털어 낼 때
접혔던 생각들이 고운 날개 펴서 날고
오늘은 다른 언어가 수첩 속에 잠이 든다.
(수첩) 전문
여영 시인의 시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주제도 여느 사람들과 비슷한 그리움과 사랑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그리움과 사랑은 인간에 대한 그리움, 자연과의 교감에서 얻어지는 사랑을 감정 이입이란 수단을 통하여 화자의 사유를 표출하고 있다.
이순의 문턱에서 바라보는 황혼에 내리는 정적은 새하얀 추억만 남고, 지난날 화려했던 선율은 아직도 마음속 곱게 흐르지만, 어깨 아프게 짓누르는 세월의 무게 그대로 지고 갈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서서, 스스로 상념에 잠겨 낡은 수첩을 뒤져보고, 빛 바랜 흑백사진에 동공이 머물면, 어느새 해묵은 숱한 언어들이 쌔근쌔근 숨을 쉬면서 눈을 뜨고, 그리운 사연들이 곰실곰실 기어 나와 아련한 그 시절로 상상의 날개를 펴게 하는 것이다.
지난날 고운 사연들은 날개를 펴고 곰실대며 다가와서 새삼 생명의 원천,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잠자던 은빛 사연들을 깨워 아름다운 그리움으로 승화시켜주고, 오늘은 다시 다른 언어로 수첩 속에다 소담스레 그리움과 사랑을 쌓아 가며 가멸 찬 삶을 만들러 간다.
三
13.이제 이 글을 마치면서 여영 시인이 시조를 공부해 보겠다며 마음에 다짐하던 모습을 생각해 본다. 아직은 무언가 부족한 듯, 세련되지 못한 시어들이 질그릇처럼 투박하지만 그 그릇에 담긴 시인의 시 정신은 소박하고 정겨운 이야기로 담겨져서 독자에게 사랑과 그리움을 일깨워 줄 것으로 믿는다.
밤새 서설이 내려 뜰에 있는 소나무가지에 하얀 눈이 쌓였다. 새벽기도 가는 길에는 천지가 하얗게 변하였고, 지난 봄 아름다운 꽃과 그 무성하던 잎을 다 떨구고 빈 가지로 남은 살구나무를 바라보면서 추운 겨울 바람 속에서 다시 봄이 오면 꽃을 피울 준비를 시작 하고있구나 하는 생각에 잠긴다
시집을 상재하는 여영 시인도 가슴과 영혼 속에 안으로 찬연히 타오르는 창작의 불씨 하나는 꼭 간직하고 이제 시조시인으로 출발의 선상에 서 있음을 잊지 아니하고 겨울을 맞이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진다.
많은 시편을 얻기까지 시인의 삶은 얼마나 깊어야 했으며 사색과 고뇌로 수 없는 밤 오랜 생각에 머물러야 했을까, 이제 여명의 새 아침에 동녘에 햇살이 비추어 오듯이 머리에 스쳐오는 영감靈感의 빛 줄기가 여영 시인의 앞날을 비추기 바란다.
2007. 11. 20 逸山古宅에서
경북 영주
영주여자고등학교졸업
안동교육대학졸업
방송통신대학 초등교육학과 졸업
동양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한맥문학 2005년11월호 신인상
시조문학 2007년 가을호 신인상
신문예 2013 자유시 신인상
한국문인협회회원 및 영주지부 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회원
월하시조문학회회원
경북문인협회회원,시조문우회회원
저서
1 시조집: 별이 되는 꽃
2 수필집: 초승달에 걸린 반지
3.시조집:쪽빛 하늘 한 조각
4.시조집: 씀바귀가 여는 봄 하늘
수상
1.국제문화 예술상 수필부문 금상 수상 08년 11월 17일
2.허난설헌 문학상 시조부문 본상 수상 09년 03월 13일
3.에피포트 문학상 (미국) 금상 2010년 11월(이불 밑의 옥수수)
4, 시조문학 제4회 좋은 작품집상
5 .시조문학 2012 올해의 작품상
6.무원문학상 수필부문 본상
7.신문예 시 신인상
8.한올문학대상(수필)2013년 10월 덤 .
9.황진이문학상(시조)
8.달가람문학상 2014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