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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천임씨목사공파 (豊川任氏牧使公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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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를 찾아서 스크랩 고려왕조의 종묘 - 숭의전(崇義殿)
豊川 (任成弼) 추천 0 조회 196 14.07.14 19:2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고려왕조의 종묘 - 숭의전(崇義殿)
 
숭의전은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고려왕실을 위하여 제사 지내던 사당으로 고려의 종묘이다. 태조왕건을 비롯하여 현종, 문종, 원종, 4왕과 고려조의 개국공신 등 충신 16명의 위패를 모신 문묘이다.

16충신(복지겸, 홍유, 신승겸, 유금필, 배현경, 서희, 강감찬, 윤관, 김부식, 김취려, 조충, 김방경, 안우, 이방실, 김득배, 정몽주)
 
숭의전 조성에 대한 일화가 있다. 이성계가 조선 건국 후 고려왕족을 무참히 살해하던 중, 어느날 꿈에 왕건이 나타나 '그대의 후손들에게도 재액이 떨어지지 않겠느냐'는 질책을 하여 잠을 깬 이성계가 왕씨 멸족의 영을 거두고 숭의전을 세우도록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고한다.

앙암재에는 고려태조 어필이 한 점 있다.
 
所思 그리워 하는 바
東林送容處   동림은 손님을 배웅하는 곳
月出白猿啼   달 뜨자 흰 원숭이도 우네
笑別廬山遠  웃으며 이별하나 여산은 멀고머니
何煩過虎溪  호계 넘는 것을 어찌 번거롭다하랴

왕건이 916년 궁예의 태봉국을 공격할 무렵에 유덕양에게 써준 이태백의 시 두편 중 한편인데, 정몽주가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유덕양의 후손인 유희억에게서 얻은 글이라 한다. 이시는 '동림사 스님과 작별함(別東林寺僧)'이라는 이백의 시로 여산은 중국의 유명한 산으로 호계와 동림사가 있다.

-소재지 :  경기 연천군 미산면 아미리 7
- 가는 길
자유로 이용시 : 서울(자유로) - 당동IC (37번국도) - 적성 - 어유지리삼거리 좌회전 - 삼화교 건너 좌회전 - 숭의전
3번국도 이용시 : 동두천방향 - 한탄대교 건너기 전 좌회전 - 37번국도 문산.적성 방향 좌회전 - 어유지리 삼거리 좌회전 -  삼화교 건너 좌회전 - 숭의전

 

 

 

 

 

 

 

 

 

 

 

 

 

 

 

고려 종묘 배향 공신록(1대 ~ 31대)

 

고려 개경에 있었던 종묘에는 다음과 같이 공신이 배향되어 있었다 한다.

 숭의전에 배향된 16공신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보기 바람.

 

1대 태조실 - 태사무열공  배현경, 태사충렬공 홍유, 태사무공공 복지겸, 태사장절공

               숭겸,  태사충절공  유금필 태전희개공 최응 (6명)

 

2대 혜종실 - 태사엄의공 박술희, 태사극익공 김견술(2명)

 

3대 정종(定宗)실 - 수태사위정공 왕식렴(1명)

 

4대 광종실 - 태사광위공 유신성, 태사정민공 서필(2명)

 

5대 경종실 - 태사광익공 박양유, 태사민휴공 최지몽

 

6대 성종실 - 태사광빈공 최량, 태사문정공 최승로, 태위정헌공 이몽유, 태사 장위공 서희 

                   사도 이지백(5명)

 

7대 목종실 - 태사정신공 한언공, 태사충의공 최숙, 태위 김승작(3 명) 

 

8대 현종실 - 태사인헌공 강감찬, 태사절의공 최 항, 태사정숙공 최사위,

                   태사영숙공왕 이가도(4명)

 

9대 덕종실 - 태위양의공 유소(1명)

 

10대 정종(靖宗)실 - 태사원숙공 서눌, 태사경움공 황주량, 태사문헌공 최 충,

                            수사도정간공 김원충(4명)

 

11대 문종실 - 태사순공공 최제안, 태사장화공 이자연, 태사경숙공 왕총지,

                     태사문화공 최유선(4명)

 

12대 순종실 - 수사도문충공 이정공(1명),

 

13대 선종실 - 수태위정헌공 문정, 수사도광숙공 유홍, 문하평장사.태전문정공 김상기(3명)

 

14대 헌종실 -

 

15대 숙종실 - 수태사충겸공 소대보, 수사도경렬공 왕국모, 수태사충경공 최사추(3명)

 

16대 예종실 - 수사도정간공 유인저, 수태사문숙공 윤 관, 수태전문성공 김인존,

                     수태보충렬공 위계정(4명)

 

17대 인종실 - 수태전문열공 김부식, 수태전장경공 최사전(2명)

 

18대 의종실 - 평장사 최윤의, 평장사공숙공 유 필, 평장사 문공원

 

19대 명종실 - 수태사문하시중문정공 윤인첨, 평장사충숙공 문극겸(2명)

 

20대 신종실 - 수태사문하시중문경공 조영인(1명)

 

21대 희종실 - 수태전문하시중평장사문의공 최 선, 수태전평장사양숙공 임 유(2명)

 

22대 강종실 - 참지정사익열공 정극온(1명)

 

23대 고종실 - 평장사문정공 조 충, 시중 이항, 시중위열공 김취려(2명)

 

24대 원종실 - 수태전문하평장사 이세재, 문하평장사 채 정(2명)

 

25대 충렬왕실 - 첨의중찬문경공 허 홍, 중찬문양공 설공검(2명)

 

26대 충선왕실 - 도첨의중찬충정공 홍자번, 첨의중찬사공문정공 정가신(2명)

 

28대 충혜왕실 - 중찬사숙공 한 옥, 첨의참리 이 계(2명)

 

30대 충정왕실 - 수문하시중철성부원군문정공 이 암, 검교시중문충공 이인복(2명)

 

31대 공민왕실 - 영도첨의사도정승정헌공 권왕후, 문하시중계림부원군문충공 이제현

                        영도첨의익성부원군문충공 이공추, 하성부원군양평공 조익청, 첨의참성사

                        단령군문희공 유 숙

 

* 참고로 정몽주는 문묘에 배향되었음

 

 

 

 

 숭의전(崇義殿)

소재지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아미리 7번지

문화재 지정번호
사적 제 223호

지정년월일
1971. 12. 28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아미리 7번지 소재. 崇義殿은 고려태조 왕건를 비롯한 혜종, 정종, 광종, 경종, 성종 목종, 현종의 7왕을 모신곳이다.
아미산 자락의 품안에 아늑히 자리잡아 검푸른 임진강을 바라보며 창건이래 수 많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숭의전은 고려태조를 비롯한 3왕과 고려조 16공신을 제사지내는 사당으로 평양의 崇靈殿(단군과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과 숭의전, 경주의 崇德殿(신라시조) 충남 직산의 崇烈殿(백제 온조왕)등과 같이 조선시대에 역대 왕조의 시조를 봉향하던 곳이다. 더욱이 고려태조 왕건의 願刹이였던 仰巖寺터에 창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廟殿이다. 숭의전의 자세한 연혁은 다음과 같다.

 

1397년(태조 6년) 왕명으로 앙암사 터에 고려 태조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을 건립하다.

1399년(정종 1년) 왕이 禮曺에 명하여 태조와 함께 고려조에 많은 업적을 쌓은 혜종, 성종, 현종, 문종, 원종, 충렬왕, 공민왕등 8왕의 위패를 봉안하다.

1425년(세종 7년) 조선의 宗廟에는 5室을 제사하는데 고려조의 8왕을 제사함은 합당치 않다는 유사(有司)의 헌의(獻議)에 의해 태조. 현종. 문종. 원종등 4왕만을 春秋로 봉향하다.

1451년(문종 1년) 前朝를 예우하여 숭의전이라 이름 짓고 고려 4왕과 고려조의 충신 복지겸(卜智謙)등 16공신을 배향하다. (이때에 고려현종의 원손(遠孫) 왕우지(王牛知)를 찾아 숭의전 부사(副使)로 삼고 순례(循禮)라 이름지어 주어 왕씨들로 하여금 제사를 받들게 함)

1566년(선조 9년) 왕이 예조에 명하여 豊基 용천사에 있던 고려 태종의 畵像을 숭의전에 이안하여 봉안하다.

1605년(선조 38년) 경기감사 이정귀가 숭의전을 중수하다.

1727년(영조 3년) 왕의 특명으로 숭의전을 改修하다.

1789년(정조 13년) 12월, 마전군수 한문홍이 숭의전을 중건하다.

1868년(고종 5년) 왕의 전교(傳敎)로 개성부유수 서형순이 숭의전을 중수하다.

1908년(순종 2년) 마전군수 왕우순, 숭의전 참봉 왕재형, 마전군주사 정용한등의 논의로 숭의전을 중수하다.

1950년 6. 25로 숭의전이 전소되다.

1971년 12월 28일 [문화재 보호법]에 의해 숭의전지가 사적 제223호 지정됨

1972년 - 1973년까지 왕씨 후손들의 노력과 국비, 지방비의 보조로 숭의전이 현재의 규모로 복원, 건립되어 오늘에 이르다.


건물은 正殿(50평), 移安廳(8.7평), 陪臣廳(13.98평), 典祀廳(8.17평), 內神門(3칸), 庫直舍(15.64평), 內神門(3칸), 外神門(1칸) 雲鳥門(1동), 夾門(3동 3칸)등이 있다.
숭의전 봉안 4왕 16공신을 살펴보면 태조, 현종, 문종, 원종이며 16공신은 복지겸, 홍유, 신숭겸(고려개국공신), 유금필, 배현경, 서희, 강감찬, 윤관, 김부식 김취려, 조충, 김방경, 안우, 이방실, 김득배, 정몽주등이다.
문종때에 중건되었고, 문종때 고려조의 개국공신 복지겸외 15인의 위패를 봉안하여 고려왕족의 후손들로 하여금 이곳을 관리하게 하고 崇義殿이라 이름지어 졌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이태조가 등극하자 고려왕조의 종묘사직을 없앨 생각으로 왕의 위패를 배에 실어 강물에 뛰었더니 임진나루에 내려와 움직이지 않아 왕씨 자손이 몰래 위패를 거두어 이곳에 봉하였다고 전해짐.
봄. 가을 두차례에 걸쳐 시향을 지내고 있고 지금도 개성왕씨 30-40가구가 연천군 미산면 아미2리 속칭 애미와 괴그불, 논골등지에 마을을 이루며 살고 있고, 연천군 백학면 두일리, 백령리에도 많은 가구수(50여가구)의 왕씨들이 살고 있다.
당초 정전, 배신청, 전사청, 남문, 협문, 곳간, 수복사등이 있었으나, 한국전쟁때 소실되어 터만 남았다가 1972년부터 숭의전,배신청, 전사청등이 차례로 복원되었다.
사적 제 223호로 관리되고 있고 현재도 관리인이 직접 거주하면서 기거하고 있다.
볼거리로는 숭의전내에 수령이 300-500년 정도의 느티나무가 있는데 높이가 20m 둘레가 4.7m이고 이 나무는 조선 문종 2년(1451년) 고려 왕씨 후손이 심었다고 전해오는데, 철따라 웅웅 소리를 내며 울면 비나 눈이 많이 오고, 이 나무에 까치가 모여들면 마을에 경사가, 까마귀가 모여 들면 틀림없이 초상이 난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현재 군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숭의전 동쪽에 蠶頭峰이 있는데 임진강에 수직으로 솟은 바위 봉우리인데 그 형태가 누에의 머리와 닮았다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잠두봉 절벽에는 조선후기 마전군수를 역임했던 韓文洪(1787-1790)의 칠언율시가 석각되어 있고 측백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숭의전 입구에 御水井이라는 우물이 있는데 고려태조 왕건이 궁예의 신하로 있을때 개성과 철원을 왕래하면서 그 중간 지점이였던 이곳 仰巖寺에서 쉬면서 마셨던 우물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숭의전 서쪽에 도동박이라는 개울이 있는데 조선초 숭의전에서 각종 제기와 귀중품을 훔쳐 달아나던 도둑이 온몸에 땀이 젖도록 밤새 도망했으나, 날이 밝고 보니 멀리 못가고 이곳에서 맴돌고 있었으므로 마을 사람들이 도둑을 잡고 장물을 모두 되찾은 곳이라 한다.
숭의전앞, 임진강에 있는 깊은 소로 종못(鐘淵)이 있는데 명주실 한 꾸러미가 들어 가는 깊이라 하는데 이못은 삼국시대부터 지금의 숭의전 자리에 있었던 앙암사의 범종이 이곳에 빠졌다하여 지어진 이름으로 자세한 유래는 다음과 같다.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고려 왕조의 상징이였던 종묘사직을 없애기 위해 송도의 종묘에 봉안되어 있던 고려 왕들의 위패를 배에 실어 강물에 띄워 보냈는데, 배는 물흐름과 반대로 임진강 상류 방향으로 역류하며 스스로 삭녕지역까지 올라가다 다시 방향을 바꾸어 지금의 동이리 썩은소에서 하루를 정박한후에 3km 아래에 있는 앙암사 석벽(잠두봉) 아래로 떠 내려와 머무르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이곳에 있던 앙암사는 고려 태조 왕건이 궁예의 신하로 있을때 철원과 개성의 중간지점이며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이곳에 자주 머물며 기도하던 왕건의 願刹로 고려 왕들의 위패를 실은 배가 앙암사 아래 머무르게 된 것 또한 우연이 아닌 신묘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날밤 심한 폭우와 함께 천둥 번개가 앙암사를 때려 절은 형체를 알수 없게 파괴되어 순식간에 폐허로 변해 버렸다 한다. 당시 마전 군수는 이러한 여러 사실을 조정에 보고하여 그 이듬해인 조선 태조6년(1399) 앙암사가 있던 그자리에 배에 실려 있던 고려왕들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을 건립하게 되었다 한다.
또한 앙암사가 벼락에 파괴될 당시 경내에 있던 큰 범종이 임진강으로 굴러 물속에 잠겼는데 그 후 이못에서 國難이 일어나기 전에는 종소리가 울려 퍼져 미리 예견?다고 하여 이 못을 종못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옛 문헌에 의하면 수면이 잔잔한날 잠두봉 정상에서 임진강을 내려다 보면 그때 강속으로 잠긴 범종을 목격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숭의전아래가 바로 임진강이며 여름이면 수많은 강태공들이 찾아오고 지역의 초. 중학교학생들의 소풍 코스이며 현재도 주말과 휴일이면 타지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현재 도로도 포장공사중에 있고 하루 버스가 전곡에서 4차례 다니고 있다. 서울에서 의정부 >> 동두천 >> 전곡 >> 백학쪽으로 오면 되고 일산이나 문산쪽에서는 문산 >> 적성 >> 전곡방면으로 가다가 아미2리로 들어가면 된다. 도중에 괴그불의 옻나무약수도 만날수 있고 서울과 불과 2시간 이내에 올수 있는 곳이라 주말, 휴일 가족나들이에는 적격이라 할 수 있다.
숭의전 입구에서는 이마을에서 생산되는 각종 채소와 먹거리도 살수가 있으며 주차(40여대: 무료주차임)장과 음식점(고려가든)과상점 1개소가 있다. 특히 고려가든(대표: 이경순)에서 만드는 동동주와 빈대떡의 맛은 일품이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입맛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향토사료집/ 연천문화원 발행/ 1997/ 자료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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