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눈빛(duruhan) http://cafe.naver.com/mhdn/54592 동네 극장 / 2013.01.24 15:19
‘착한 도가니탕’을 끓여내던 할머니’의 ‘정성’과 ‘정직’의 자세를 일깨우며
“아니, 저럴 수가? ” 텔레비전 화면을 지켜보며 터져나온 말이다. 한우 도가니탕을 찾아선 취재진에게 "잘못되면 문 닫아야 한다"고 자신 있게 말했지만 한우 도가니가 아닌 힘줄만을 썼기 때문이다. 4, 50년된 도가니탕 전문식당이라 하는 곳인데도.
어떡하지? 국어 교사인 처지에서 스스로 반성이 된다. 날마다 밥을 먹듯 책을 읽는 우리 학생들 생각이 나서. 이제껏 우리 국어교육계는 제대로 된 ‘한우 도가니탕’을 먹였는지... 더욱이 평소 문학 수업을 하면서 “ 어려워요. 재미없어요. ....” 를 남발하며 부딪히는 ‘고전’이 아닌가?
<생각하는 수업, 제1회 한국 고전문학 읽기>에서 ‘반 세기를 기다린’ 답을 찾으려 노력했다. <듣고 난 느낌>으로 일곱 강의 중 세 가지를 다루어 보고자 한다.
1. <박태보전 -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올바른 삶의 참모습을 느끼게 하자
<박태보전>에서 17세기 후반 숙종 대의 ‘김근태’를 만날 수 있었다. 잘 생긴 엄친아로 숨만 쉬어도 출세가 보장된 ‘박태보’가 36세의 나이에 모진 국문(고문) 현장에서 ‘신하의 마땅한 분수와 의리’는 ‘사육신-삼학사-박태보-백범 김구’로 이어지는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 당장은 인사청문회의 ‘최상층 고위공무원’들과 대비되었다.
임금이 압슬과 화형으로 ‘자백한다는 말’을 듣고자 애태우는 장면은 실제로 역사극에서 당시 모습을 생생히 재현하는데 가장 좋은 사례라 한다. 그러나 ‘죽은 나무’ 같은 박태보가 오히려 옆에 선 이들의 평안을 가져다준다는 서술에 이르러선 충신과 의인이 목숨 바쳐 지키려는 ‘옳은 일(정의)’에 나선 숭고한 뜻을 새기게 되었고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절로 되뇌게 하였다.
또 창경궁에서 창덕궁으로 동궐도(1830)를 참고로 걸으며 당시 숙종과 박태보와 만나는 시간 여행처럼 언제나 내가 서 있는 곳에 누가 서 있었던지에 대한 관심을 지니도록 일깨웠다.
이와 함께 목숨을 바쳤던 사람들의 뒷모습에 담긴 ‘삶의 이야기’도 주목하게 됐다. 예컨대, 이름뿐인 유배길에서도 읽을 책을 챙겼다는 아들 ‘박태보’에게 ‘조용히 돌아가라’고 한 뒤 통곡하던 박세당이 ‘박다손’이란 손자 이름에 ‘가운’을 소원하는 모습 같은 작은 이야기가 크게 느껴졌다. 서신혜 교수의 세 가지 고전 읽기 방법으로 새롭게 만난 <박태보전>, 이제 ‘정의’를 생각하는 수업에서 학생들이 뜨겁게 만날 수 있도록 <왕조실록>의 숙종과 <박태보전>의 박태보를 나부터 만나야 하겠다. “이런 사람들을 어디에 쓸 것인가”란 실록의 기록을 되새기며.
2. <한중록- 권력과 인간>에서 이야기의 힘을 느끼게 하자
‘한중록’의 길잡이인 정병설 교수와 만났다. 원본 한중록을 힘써 옮긴 정 교수에 따르면 ‘한중록’은 ‘조선 시대 가장 유려한 산문 문학의 정수’, ‘공식 사료를 뛰어넘는 또 한편의 내밀한 궁중 역사’라 평가한다. 또 <한중록>의 체재는 모두 4부가 아닌 3부로 봤다. 혜경궁의 삶을 다룬 2부와 내 남편 사도 세자(1부), 친정을 위한 변명(3부)에서 ‘문학 교육’으로는 1부가 중요하다고 봤다.
그런데, 흔히 ‘궁중의 큰 어른이 된 혜경궁이 해질녘 궁궐 마루에서 남편 사당을 바라보며 회고하는 작품 정도로 생각한다. 왜 그럴까? 아무래도 교과서에서 다룬 한중록 모습 탓은 아닐까? 교과서에선 그동안 사도세자가 뒤주로 들어간 날 아침이 소개되었다가 요즘은 혜경궁 홍씨가 궁궐로 들어가는 것이 실렸다.
하지만 한중록은 사실 이처럼 교과서에 어느 부분을 선택하느냐에 따른 논란을 의식하게 되는 작품이다. 아무래도 ‘한중록’을 둘러싼 시선은 ‘사도세자는 왜 죽었나’ 하는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왜 임금인 아버지 영조가 아들인 사도세자(정조의 아버지)를 죽였을까인 셈이다. 그래서 사도세자의 죽음은 <이산>, <성균관 스캔들>, <영원한 제국> 같은 드라마, 영화, 소설로 끊임없이 재해석, 재생산 되고 있다.
그만큼 일반 대중에게도 익숙해진 만큼 사도세자의 죽음을 둘러싼 대중의 관심은 크다. 과연 사도세자가 미쳤다하여 영조가 그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는 ‘광증설’과 우수한 자질을 가진 사도세자가 약소 당파를 편들다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당쟁희생설’ 가운데 어느 것이 사실과 부합할까?
정병설 교수는 ‘권력과 인간’에서는 다양한 사료를 활용해 폭넓은 관점으로 진실에 다가서려 했다 한다. <왕조실록>과 <이재난고>, <현고기>, <대천록> 같은 각종 사찬 역사서, 개인 문집 등 다양한 사료에 따라 결론적으로 사도세자가 미쳐서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영조를 공격하려다가 반역죄에 걸렸다는 <한중록>의 ‘광증설’을 따랐다.
‘당쟁희생설’과 관련해 성낙훈-이은순-이덕일님을 비롯한 세간의 논의를 비판했다. <현륭원행장-정조>을 근거로 한 이들의 주장은 '아버지는 미치지 않았고 현명하셨지만 적당들의 모험으로 죽었다' 는 견해로 ‘사료 오독’의 결과로 왜곡된 사실이란 것이다. 더욱이 일부 논의는 ‘죽음의 원인’을 합리적으로 해석하는데 실패한 채 ‘통사’를 쓰면서 모르는 사실을 아는 것처럼 다루었고 이것이 안방극장에 전해졌다고 봤다.
예컨대, <영조실록>의 '疾發喪性(질발상성-병이 발작하면 본성을 잃었다)'이란 표현이나 1757년과 1758년 이후 심해진 병증으로 내인과 환관을 죽인 기록이나 영조가 사도세자를 자리에서 내릴 때 쓴 <폐세자반교>, 의대증이나 가학증과 함께 칼을 차고 영조에게 간 일 등, 특히 죽인 사람이 100여명 가량 되었다는 기록에 비추면 누구라도 일단 '광증설'에 더 무게를 두게 될 듯하다.
그러면 중고생에게 ‘한중록’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첫째는 ‘한중록’ 이야기를 읽으며 다양한 요소가 어우러진 힘을 느끼게 하자. 교양 높은 명문가에서 태어나 어려서 궁궐에 들어가 조선 최고의 지존으로 산 혜경궁과 함께 학생들이 여성문학이나 정치사, 풍속사, 여성사 등의 관심사를 살필 수 있도록 이끌자.
둘째는 관련 역사 기록(왕조실록 등) 이야기를 읽으며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와 같이 오늘 겪는 삶의 문제와 연결짓게 하자. “만일 사도세자의 병증을 영조가 좀더 미리 알고 치료할 수 있었다면?”과 같은 토론 주제로 ‘합리적인 고전’과 더욱 하나될 수 있을 것이다.
3. <서포만필- 마음의 철학>에서 ‘너그러움(관용)’의 힘을 느끼게 하자
조선 후기 선인의 삶을 이해하려면? 아마 시간여행을 해서 그들과 만나는 게 가장 좋은 일일 테다. 이번에 심경호 교수와 함께 조선의 몽테뉴인 김만중(1637∼1692)을 만난 듯하다.“<서포만필>의 김만중을 만나고 싶어요!”라 말하는 심 교수는 250 화소로 된 김만중의 철학적 담론인 <서포만필>을 펴냈다. 몽테뉴의 <수상록>과 견주는 ‘한국수필’의 길잡이인 <서포만필>은 주석이 많아서 제법 묵직한 두 권으로 만들어졌는데, 900쪽의 몽테뉴 수상록과 비슷한 분량이기도 하다. 서양의 <수상록>이 ‘내 결함’을 밝힌다면 <서포만필>은 ‘천재성’을 고백하는 동아시아 형식으로 마땅히 한국철학사나 한국문학사에서 제대로 다뤄야 했음에도 그렇게 되지 않았다고 한다.
심 교수는 <서포만필>에서 배워야 할 점으로 몇 가지를 들었다.
첫째, ‘스스로 생각하고 체득하라’(맥잡기)- 김만중은 비평가로서 여느 인물과 달랐다. 유학의 경전들을 실제 사실과 부합하는지, 유학의 틀 속에 머물지 않는지를 경계하고 불교와 도가 사상까지 섭렵하여 회의하는 탐구정신을 드러냈다.
둘째, 진리의 상대성에 주목하라. 양존의 방법-‘상대주의 관점’에 따라 둘 중 어느 것이 옳은지 알지 못하겠거든 병존하라고 했다. 예컨대, 주자는 ‘논점을 회피하는 오류’와 권위적 언설로 상대방을 압도하는 방식을 취했다는 것이다.
셋째, 인물 평가에 공정하라-주자도 자신과의 교분 때문에 앞 시대의 인물을 공정하게 평가하지 못한 사례가 있다고 하였다.
넷째, 종파적 편견을 버려라-학문하는 사람들의 순결주의를 비판하며 “사람의 한 몸 안에는 마치 두 가지 마음이 있는 것 같을 때가 있기에, 마음으로 마음을 살핀다는 불교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하였다. 이처럼 불교의 문화사적 의의를 적극적으로 논하였다.
다섯째, 인물의 심리를 추론하라-군신간의 정분을 논하고, 당시 청의(淸議) 비판 받은 김상헌, 최명길 등의 심리를 탐색하였다.
여섯째, 여성의 사회적 처지에 눈을 돌려라-환향녀의 처지를 생각하여 의리를 따지지 않고 순전히 제 몸의 계책만 추구하였던 사대부의 편협한 의식을 비판한 데서 보듯이 병자호란 뒤 환향녀의 처지를 동정하였다.
일곱째, 민족 문화의 본질에 주목하라-우리의 시가를 있게 한 우리말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시부의 형식주의를 비판하면서 민중의 호흡이요 맥박인 자국 언어를 버리고 중국 말을 모방하는 것은 앵무새가 되려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하였다.
심 교수가 말한 대로 <서포만필>의 김만중은 ‘조선의 몽테뉴’로서 무엇보다 ‘똘레랑스(관용)’의 정신을 보였다. 예컨대, 주자정통주의와 주자비판론자와의 맞섬인 예송논쟁에서 보듯이 오늘날에도 삶의 모든 방면에서 양쪽이 서로 맞서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중재할 수 있을까? 김만중은 이럴 때 구체적 증거가 없는 사실에 대하여는 이설을 병존하라고 했다.
이처럼 오늘날도 인간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는 관용의 정신을 찾기 힘든데, 이미 17세기 말의 시점에서 회의와 탐구, 관용의 정신을 지닌 김만중을 새롭게 만날 수 있었다. 이제는 <서포만필-마음의 철학>과 <수상록>을 견주며 ‘원전’을 충실히 읽어보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시금 올바른 삶의 참모습이나 이야기의 힘, ‘너그러움(관용)’의 힘을 찾아서 느끼게 한 이번 특별 기획을 준비한 손길들을 기억한다. 이틀 동안 일곱 가지를 다룬 특강에서 ‘착한 도가니탕’을 끓여내던 ‘논산 할머니’의 ‘정성’과 ‘정직’의 자세를 일깨우며 새 학기 우리들의 꿈인 ‘학생’들에게 맛있는 밥상에서 ‘오래된 미래’를 발견할 수 있도록 이끌 수 있다는 믿음이 자리잡았다. 새삼 ‘고전’에서 길을 찾는 마음가짐을 다짐하면서 이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