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부시도록 고운 햇살이 아지랑이 만발한 봄 하늘 위에 찬란히 내리고 있습니다. 풀 향기 향긋한 새봄에 유리 어항에 잠겨있는 물빛처럼 맑고 투명한 봄 하늘, 그곳에서 꽃잎처럼 진한 그리움으로 어머니를 불러보고 싶습니다.
어머니,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지금 계신 곳이 너무 먼 곳이기에 이곳에서 지구만큼 큰 소리로 불러 봐도 들으실 수 없겠지요? 이 세상 어느 곳에 어떤 모습이라도 지금 살아 계실 수만 있다면……
지금의 제 모습, 길지 않은 삶이었지만 이 자리에 있게 해주신 분이 바로 어머니이십니다. 오늘은 고향의 들길을 밟듯이 어머니를 회상해 보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논으로 밭으로 달음박질하며 힘든 농사일로 바쁘게 사셨던 생전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다가섭니다. 일찍이 홀로 되시어 까마득한 세월을 모진 가난 속에서도 오직 7남매 자식들만을 위해 꿋꿋하게 살아오신 어머니를 생각하니 두 눈 가득히 한 아름 눈 물이 고여 옵니다. 막내로서 아홉 살 되던 해까지 어머니 젖꼭지를 빨며 맛있는 음식, 예쁜 신발 사달라고 투정만 부렸지요? 이제 저도 자식을 낳아 길러보니 어머니의 그 큰사랑과 정성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0대의 나이에 홀로 되시어 까마득한 날을 7남매 자식들만을 위해 살아오신 어머니, 그 무엇으로 크신 은혜에 감사를 표현하리오. 6살 때 어머니 손잡고 시장 갔을 때, 고무신 사달라고 조르며 떼쓰는 제게 고무신 대신 따끈따끈한 호떡을 사주고 맛있게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즐거워하셨지요.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찡하고 눈물 납니다. 당뇨로 고생하시면서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대학 기숙사 식당에서 꿋꿋하게 일하셨던 어머니 감사드려요. 7남매 자식들을 끝까지 책임지며 거친 세파를 가르시고 질경이같이 살아오신 어머니를 생각해 봅니다. 친구들과 오징어 놀이, 사방치기, 자치기 등을 하면서 실컷 놀다가 집에 들어오면 큰 대야에 따뜻한 물로 목욕시켜주신 어머니의 따스한 손길이 지금도 그립습니다. 요양원에 계셨던 병수형 어머니께 3년간 방을 내주시며 간호하신 어머니는 천사였습니다.
한여름 밤, 낮에 개똥참외를 먹은 후 배탈이 나서 화장실 갔을 때 작대기로 구렁이를 꺼내 주었지요. 학교에 가기 싫어 친구와 바위에 숨어서 잎담배도 피우고 누룽지를 먹으면서 종일 놀다가 동네 아저씨께 들켜서 어머니께 혼나기도 했지요.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 말씀을 읽어주고 새벽기도를 하셨던 어머니 덕분에 지금도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 화롯가에 달콤한 군고구마를 올려놓고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도 해주고 구슬치기와 딱지치기하다가 다 잃어서 울면서 집에 가면 괜찮다면서 등을 토닥토닥 두들겨 주셨습니다. 여자의 몸으로 지게까지 지고 산에서 나무를 하셨지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영화를 보면서 어머니 생각이 나서 한없이 울었답니다.
밀가루와 이스트 그리고 강낭콩을 넣어서 빵을 만들어 주셨는데 전통시장을 지날 때면 어머니와의 아름다운 추억을 먹는 느낌이 들어 자주 사먹는 답니다. 들에 가면 일일이 꽃과 나무의 이름을 자세히 알려주셨는데 어머니 덕분에 아이들에게 꽃과 나무의 이름을 자세히 알려주고 있답니다. 당뇨로 고생할 때도 자식들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고 병원 입원을 뿌리치셨지요. 팔과 다리는 야위고 눈도 점점 침침해져서 사물을 잘 구분하지 못하셨어요.
“하나님, 어머니를 하루빨리 고쳐 주세요.”라고 큰소리로 외치며 간절히 기도하면서 어머니 옆에 누워서 어머니를 꼭 껴안아 보니 너무 야위셨습니다.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수다를 떨면서 손과 발도 주물러 드렸지만 대소변도 못 보시며 날로 바싹 야위어만 갔고 결국 저 먼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나셨지요. 하늘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슬픔 때문에 눈물도 나오지 않았지요. 한평생 호강 한번 못 해보고 세상을 떠나는 그 날까지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애쓰셨던 어머니를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슬픔이 밀려왔답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후, 혼자 노래방에 가서‘사모곡’을 부르는 습관이 생겼답니다. 가사가 엄마의 상황과 딱 들어맞는지 공감이 가기에 나도 몰래 눈가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논으로 밭으로 달음박질하셨던 어머니가 사무치게 보고 싶습니다.
요즈음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언제나 덜렁대고 천방지축 같은 저 때문에 살아생전 마음고생 많이 하셨을까요?
때로는 힘겨운 삶에 지쳐 몸과 마음이 힘이 들 때면 어머니 생각을 하면서 위로를 받는답니다. 세상일이 힘들어 지쳐 쓰러지려고 할 때 꿈속에서 제 손을 꼭 붙잡아 주시던 어머니, 불효막심한 자식을 위해 저 먼 나라에서도 보살펴 주시는 어머니의 그 크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하리오! 어머니께 받은 그 사랑을 제가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에게 넘치도록 베풀겠습니다. 오늘도 때로는 밝은 태양처럼 때로는 비와 구름을 주는 아이들에게 교사로서의 소명을 다하겠습니다.
어머니, 생전의 모습으로 還生해 오실 수는 없으신지요?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이 자식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더도 말고 단 하루라도 말입니다. 그리워 목메어 불러도 못 오실 어머니께 영원히 드리고 싶은 이 한 통의 편지를 하늘거리는 바람결에 저의 작은 소망을 담아 부쳐봅니다. 저 먼 하늘나라에서는 이 땅에서 누리지 못했던 참된 평안과 기쁨을 마음껏 누려보세요. 경건한 마음으로 머리 숙여 기도드립니다.
2023년 5월 1일 막내아들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