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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八公山下] 팔공산을 天山으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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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은사방수백 리에 가장 높은 산.하늘과 만날 수 있는 통로,하늘의 뜻을 물으려면 꼭 찾아야 하는자리,그것이 팔공산이다. 팔공산은 '우리'가 수 천년을 기대어 살아 온 산, 영원히 함께 할 우리의 산이다. 김유신은 나라 지킬 힘을, 원효는 10년 구도. 신라는 국가적인 제사를 거기서 올렸다. 많은 기독교인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그 품안을 찾아 들었다. 지금도 많은 스님들이 거기서 가부좌 틀고 용맹정진 중이다. 그리고 우리 중생들의 마음들도 쉼 없이 팔공산을 향하고 있다.
팔공산은 뭇 생명들을 오랜 시간 보듬어 왔다. 몽고군,왜군이 유린할 때는 민초들과 의병을 감싸 안았다. 한국전쟁 때는 최후의 방어선으로서 나라를 지켰다. 공비들로 마을이 화염에 휩싸여 숱한 사람들이 죽어 가는 처절함, 홍수와 산사태로 마을이 매몰돼 수십 호가 같은 날 제사를 모셔야 하게 됐던 참혹함에도 팔공산은 말없이 그 아픔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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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흐름과 권역은 영천의 화산(華山)까지 범위에 넣어 거기 있는 인각사 및 환성산 까지다. 팔공산 넓이는 속리산 국립공원 면적의 2배. 주능선의 길이를 경북도는 29km, 대구시는 20km, 파스칼 백과사전은 16km라 했다. 시점이 다르고 종점이 다른 모양이다.
지명의 표기는 혼란을 더했다. 국토지리정보원의 5만대 1 지도와 지도(산경도)에서는 무태의 서원연경 뒷산을 '왕산'으로, 2만5천 지도와지지(산경표)에서는 지묘동 뒤 246m산을 왕산이라 했다. 도덕산에서 뻗어 나온 줄기 중, 파계사,지묘천골 오른쪽에 우뚝 선 봉이 '응해산'. 2만5천 지도는 지묘천 건너 봉도 응해산이라 했다. 2만5천 지도의 파계사일대 중대동을 5만 지도는 '도남동'이라고도했다. 2만5천 지도는 동화사 양진암을 양전암(養殿庵)으로, 10만 지도는 신녕천을 신념천, 청통천을 정통천, 사창천을 사상천 혹은 사장천, 성전암은 성진암으로 썼다. 한자를 잘못 읽어 명마산을 명(鳴)자가 조(鳥)로, 오(烏)로 읽혀 조마산-오마산으로, 부계(缶溪)는 악계(岳溪)로, 지묘천(智妙川)은 지사천(智沙川), 오계산(午鷄山)은 우계산(牛鷄山)이 돼 버리기도 했다.
산 높이 표기도 팔공산 정상봉이 5만지도에서는 1192.8m, 2만5천지도에서는 1192.9m로, 파계봉은 994m에서 991.2m로, 팔공산 남면을 3등분하는 거저산은 490m에서 520m까지 차가 났다.
국가 공식 지도는 관봉 옆의 봉 하나가 '인봉'. 중간에 바위덩이를 이고 솟아있는 봉은 '노족봉'이라 했다. 현지 주민들은 지도가 노족봉이라 한 것이 인봉이고 그 봉에는 이름이 없다고 했다. '능성재'는 '너패재'가 옳다고 했고. 안내판은 '능선재'라고 표기하고 있었다. 대구에서 경산 와촌으로 넘어가는 고갯길도 '능성고개'라 불려 어느 것이 '능성'이란 이름이 더 타당할까? 팔공산 주봉의 이름도, '중봉''비로봉'으로불리다, 현지인들은 '제왕봉'이라는 것이다. 흔히 '신녕재'라 부르는 것의 옳은 이름도'도마재'라고 전문가들이 말했다.이름없는봉도 많았다. 엉덩이로 타고 내려가야 한다고 해서 "히프 봉우리"라고 불리는 것도 있었고 유식한 사람들이래야 겨우"몇m봉"이라고 부르는 것이 고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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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첩 산줄기 공산이 천 길인데 / 하늘 가득 쌓인 눈이 이슬까지 맑게 하네 / 신령이 무심찮음 이로써 알겠으니 / 매년 정월 원삼일에 풍년을 여는구나(公山千丈倚峻層 / 積雪漫空沆瀣澄 / 知有神祠靈應在 / 年年三白瑞豊登). 사가 서거정은 '대구 10경'의 하나로 '公嶺積雪'(팔공산 능선에 쌓인 눈)을 들었다. '팔공산 십경' 중에도 공산성 야월(夜月)과 비로봉(주봉) 설화(雪花, 눈꽃)가 들어 있다. '팔공산 팔경' 역시 적석성(積石城, 공산성) 밝은 달, 백리령(百里嶺, 팔공산 긴 능선)에 쌓인 눈을 꼽았다. 일출 아! 저게 무슨 일인가! 어느 사이 붉은 용암 같은 것이 능선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자꾸 번져 수백 리쯤 흘러가는 듯했다.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긴장감이 팔공을 휘감았다. 깊은 밤이었으면 그건 틀림없는 큰 산불의 모습. 화산 폭발 장면이 연상됐다. 장관이었다. 7시37분 쯤,결국 해가 산등성이 위로 모습을 나타냈다. 어떤 이가 "정말 보기 드물게 깨끗한 일출"이라고 평가했다. 백두산에 가더라도 천지 모습을 제대로 볼 운 만나기는 하늘의 별 따기라는 말과 크게 다르잖게 들렸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는 사랑이라고 했었다. 새해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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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준한 공산이 우뚝이 솟아서 / 동남으로 막혔으니 몇 날을 가야 할꼬 / 이 많은 풍경을 다 읊을 수 없는 것은 / 초췌하게 병들어 살아가기 때문일세 /. 동화사 상가지구 중심 거리의 복판에 서 있는 한 돌에 새겨진 글. 매월당 김시습의 '팔공산을 바라보며'(望公山)시..
무엇보다 산줄기 파악이었다. '태백산맥은 없다'라는 책은 먼저 '산맥'으로 읽지 말고 '山經'(산줄기)으로 읽어야 제대로 보인다는 것. 산맥은 땅 밑으로 흐르는 지질 구조, 산경은 땅 위에 있는 그대로의 산줄기라고 했다. 산줄기 흐름을 족보로 파악한 것이 '산경표'(山經表), 그림으로 그린 것이 산경도라고 했다.팔공산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오직 '산경표'영인본과 '남한의 산줄기' 지도 한 장뿐.산경표, 산경도, 그리고 대동여지도로 짐작해 가며 산줄기를 그려 갔다. 도움될다 싶은 지표는 화산(華山)밖에 없었다. 군위 인각사 부근. 달려가 물었다."바로 저것이요, 저게 화산이요. 저기를 거친 산줄기가 갑령재를 타고 팔공산으로 가는 것이지요". 운좋게도 그들은 줄기 흐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팔공산은 어떻게 태어나 어디로 이어져 가는 산이란 말인가? 산줄기에는 대간, 정맥, 기맥(岐脈)이있는데, 팔공산으로 오는 줄기는 백두대간삼수령에서 갈라져나온 낙동정맥이 포항 죽장면의 '가사봉'(744m)에서 정맥을 나와 달의령-꼭두방재-베틀봉(934m)-면봉산(1120.6m)을 거치며 죽장의 북부-서부 경계선을 이루고, 보현산(1124m)에 도달. 거기서부터 영천 화북면의 북서쪽 경계선을 만들며 갈재-방각산-노귀재를 거쳐 석심산(750m,군위 고로면)에 이른다. 수기령-방가산(755m)을 지나 화산(824m)으로 오면서 영천과 군위를 경계짓는다. 갑령재를 거치며 물길을 신령천과 위천으로 나누고 , 신녕∼부계 도로의 두 고을 경계점인 자주고개를 통해 팔공산으로 들어선다.팔공산 배꼽 격인 시루봉(726m)에서 급하게 치솟아 정상<비로봉,제왕봉,혹은 중봉이라 불리는 주봉1193m>에 도달. 낙동정맥에서 빠져 나온 줄기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다. 이것이 팔공산의 태생적인 족보이다. 영천읍지는 팔공산을 "신녕 화산에서 온다"(來 自新寧花山)고 했고, 의흥읍지는 "화산에서 와 칠곡 가산의 주맥이 된다"(自華山 來 爲 漆谷架山 主脈)고 기록했다.낙동정맥에서부터 팔공산을 거쳐 계속 흐르는 줄기를 여기서 '팔공기맥'(八公基脈)'이라 불러 둬 보자. 이 줄기를 기본 삼고 나머지는 곁가지로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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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은 없다'는 산과 물이 둘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철리(哲理)를 하나 내걸었다.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되씹을수록 신통했다. 둘이 아닌 하나이나 섞일 수는 없다는 말. "남과 조화는 하되 혼동하지는 않는 것(和而不同)" 이 군자라 했던 공자 말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 했던 옛 조사 말씀이 연상됐다. 물이 시작되는 곳이 산 끝나는 곳이노라, 산은 물을 나누는 물가름이 되고(山自分水嶺), 물은 산을 구획 짓는 산가름이 되노라…. 그렇다면 물은 산줄기 흐름만 밝혀주는 것이 아니라 산의 외연도 규정해 줄 터. 어디서 어디까지가 팔공산인가를 공부하는 데 이만한 가르침이 없어 보였다.
북쪽으론 <위천지맥>, 외연은 위천 팔공산 외연에서 명확한 물줄기는 남쪽의 금호강이다. 산의 남쪽 사면 물은 전부 금호강으로 흘러든다. 북쪽을 둘러싸고 팔공산을 구분지어 주는 물길은 渭川이다. 군위군 고로면 華山에서 발원. 북서 방향으로 113.5km 흐르다 상주 중동면에서 낙동강에 합류한다. 일대에서 가장 큰 하천. 금호강 116km와 거의 맞먹는 규모. 위천의 둑 역할을 하는 이 지맥은 가산산성의 끝, 가산 바위를 지난 지점에서 출발한다. 응봉산(336m) 적라산(352m) 청화산(701m)을 거쳐 만경산(499m)에 이르고.시군과 읍면을 구획짓는다. 북에는 효령면, 군위읍, 소보면(군위군), 구천면, 단밀면(의성군), 남에는 가산면(칠곡군) 장천면, 산동면, 해평면, 도개면(구미시)이 분포한다. 여기서는 일단 팔공기맥의 '위천지맥'이라 하자.
서쪽 외연은 팔거천-소야재-한천<황학지맥>
팔공기맥은 또하나의서쪽지맥. 다부동 앞 5호선 국도에서 동남쪽으로 우뚝한 오계산(466m)ㅡ다부고개[소야재(所也峙)]ㅡ황학산(761m)으로 연결돼 나가는 줄기. 그래서 이름하여 '황학지맥'이다. 황학지맥은 황학산을 거친 뒤 여러 갈래로 나뉜다. 1.건령산(522m) 명봉산(402m) 말산(165m)으로 연결되는 맥, 2.유학산(793m) 천생산(407m)으로 가는 줄기 등등. 줄곧 서쪽으로 달리다가 낙동강변 작오산(303m)에서 생을 마치는 줄기도있다. 하지만 팔공산권의 서쪽 경계를 놓고는 산흐름이 소야재를 건너기 전, 이 재를 기점 삼아 남북으로 깊은 골이 나타난다. 남쪽인 대구 방향으로 흐르는팔거천은 처음엔 금암천으로 생겨나 대구 칠곡을 거쳐 금호강에 이르며 점차 굵어지는 물줄기이다. . 반면 북쪽 군위 부계 방향으로는 한천(漢川)이 발원하여 북으로 22km나 흘러가며 구미 장천, 구미 4공단(산동면)을 거쳐 산호대교 남편에서 낙동강으로 합류한다. 이들 물줄기는 길고 계곡은 넓다. 이를 경계로 팔공산 본체와 황학지맥을 나누어 판단할 수도 있을 터. 팔공산의 범위를 좁게 잡는다면 이 지점 산가름을 서쪽 경계로 삼아도 좋을 듯 보인다.
동쪽으론 <신녕지맥> 뻗어 신녕천 낳아 팔공산의 동쪽 외연. 신녕천은 팔공산 北斜面의 치산계곡에서 발원한 뒤 화산 남사면 물까지 받아 영천 시가지 금호강에 이르면서 27.5km의 팔공산 외연을 형성. 산과 물은 둘이 아니라 했듯이 신녕천의 내벽 역할을 하는 산줄기는 팔공산 주능선이 동으로 달리다 도마재(신녕재) 갓 지난 곳에서 북쪽으로 조금 불룩하게 내보낸 곁줄기가 그것. 봉화산(164m) 대왕산(186m) 삼모산(277m)으로 이어지다 유봉산(243m)에서 끝난다. 나지막한 줄기이고 초입에 코끼리바위라는 절경이 있다. 팔공산의 '신녕지맥'으로 이름 붙이자..
이렇게 서쪽의 팔거천-소야재-한천, 북서쪽의 위천, 동쪽의 신녕천, 남쪽의 금호강을 외연으로 잡고 전문가에 의뢰해 잰 팔공산 권역의 면적은 555㎢(1억6천700여만 평)였다. 이쯤 하면 팔공산권의 외곽 산줄기는 거의 살핀 듯하다.
팔공 정상을 앞산으로 한 백학 마을<남천지맥> 낙동정맥에서 온 주맥이 시루봉을 지나 정상을 향해 치솟는 것과 동시에 북서쪽으로 거꾸로 떨어뜨려 놓은 이 줄기는 원줄기와의 사이에 군위 산성면 백학리 마을을 하나 낳아 둔 뒤 거꾸로 달려 남천과 위천을 구분 짓는다. '남천지맥'이라고하자. 삭골재를 지나고 군위의 우보-효령을 경계지으며 400여m 높이로 이어가다 매봉산(488.7m)에서 끝난다. 이 줄기가 끝난 뒤에야 남천과 위천이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백학리, 소상 마을에서는 팔공산 주봉 부분이 거의 집 앞마당 같이 느껴지고, 시루봉은 얌전한 색시마냥 다소곳하다. 더욱이 이 백학리에서는 좁은 지구인데도 산줄기가 갈려, 각 물줄기는 동-(신녕천), 북-(위천), 서-(남천)으로 흩어져 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동네도 완전히 갈려, 동쪽-영천 신녕, 중간은 군위 산성, 서쪽은 칠곡군 부계로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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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봉 밑 낙타봉에서 1월26일 바라 본 팔공산 설경. 염불암이 고즈넉하고 그 위로 염불봉과 주능선이 눈에 덮여 펼쳐져 있다.
팔공산의 주능선은 가산(901m)-주봉(1193m)-관봉(852m)에 이르는 구간이다. 도상거리 18.7km,실거리 20km.도면상 주능선을 따라가되 오르막 내리막을 고려해 계산한 것.이 주능선은 동서남북 각 4개씩,사방으로 16개의 중요한 산줄기. 그 줄기들 사이에 같은 숫자의 큰 골짜기가 형성돼 마을들이 자리 잡는다.
서쪽 주능선은 그 끝 가산에서 3개의 줄기. 한 줄기는 더 서쪽으로 달려 황학지맥. 두 번째는 북쪽으로 달려 위천지맥이다. 그 서편 기슭에 5호선 국도와 금화리, 천평리(가산면) 계곡. 동편 기슭에는 사창천을 중심으로 가산면의 마을들. 그 하류에는 군위 효령면의 고곡리가 넓은 들에 퍼져 있다. 세 번째 줄기는 남서로 흘러내리는 것.. 조그만 두무실골(동명 학명리)을 형성한 뒤 팔거천을 따라 남하하면서 5호선 국도의 동편 등성이를 이루며. 양지마을 뒷산까지 이어진다. 남원천을 사이에 두고 송림사를 바라다보는 곳.
이렇게 세 줄기를 떨어뜨려 둔 뒤 주능선은 가산에서 한티재로 향한다. 5km 넘을 이 구간은 칼날능선이다. 출발한 지 2km쯤 전구간 중 고도<700m>가 가장 낮은 '선돌(立石)재'. 형상 따라 '할배할매바위'로 불린다. 북사면의 사람들은 오랜 세월 이 재를 넘어 생활권의 중심이던 동명을 드나들었다.곧 치키바위(756m)로 올라서는 주능선에서 남으로 긴 줄기 하나. 마지막 닿은 곳은 송림사 뒷산. 줄기의 서편이 남원리골이고 그 골을 흐르는 물길은 남원천이다. 송림사 앞 동명저수지로 흘러 들었다가 팔거천에 합류한다.
다음 주능선은 가산∼한티재 구간 중 가장 높은 808m봉-786m봉. 이 봉부터는 칠곡 가산면(사창천골)과 군위 부계면을 가르는 산줄기가 북쪽으로 흘러내린다. 줄기의 동쪽에 있는 남산리 등은 남천을 중심천으로, 팔공산 주능선 대부분을 동네 앞 스카이라인으로 하고 있다.그래서 786m 봉은 팔공산 동네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 어른들은 '큰골 말랭이'라 했다. 일단 '부계봉'이라고 하자. 부계는 팔공산 북사면의 큰 고을이면서도 주능선 봉우리에 제 이름 하나 붙여 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지 않은가.
주능선은 부계봉- 한티재(약 700m)- 834m봉[한티재삼거리]으로 몸을 높이면서 그 남쪽으로 줄기를 하나 떨군다. 파계사 성전암 뒤가 그 출발점. 이 줄기는 870m 이상의 높이로 높게 이어져 가며 대구와 경북의 서쪽 경계선을 이루고, 한티골을 품기도 한다. 그러다가 급격히 낮아져 '대왕재'라는 맥을 타고 되살아나 도덕山群을 일궈 낸다. 이렇게 의미 있는 산줄기의 시발점인 870m대 봉우리군3개.그 밑 송정마을 노인들은 '도객이'라고 불러왔다고 했다. 봉우리가 셋인 점에 주목해 우선 '삼봉'이라 이름 붙여 놔 보자.
주능선은 800m로 낮아진 파계재. 주능선도 거의 40%를 주행한 셈. 여기까지의 주능선 높이는 대체로 700m 이상이지만 850m를 넘지도 않는다. 대체로 얌전한 모습을 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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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산경도 : . 빨갛게 표시한 것은 주요 능선. 가산에서 관봉에 이르는 주능선에서 뻗어 나온 빨간 줄기들이 지역과 계곡을 가르는 주요 능선. 주요 봉 및 재들이 표시됐고, 물줄기는 푸른 선으로 나타냈다. (※그림을 클릭하면 원본사이즈로 보실 수 있습니다.)
주능선은 파계재-900m 이상의 능선-994m 높이의 '장꼬방봉'으로 급등한다. 흔히 '파계봉'이라 불리지만, 그 이름은 잘못된 듯하다.이 봉을 '신무봉'[파계사 뒷산이 아니라 더 동쪽에 있는 신무동 뒷산]또는 '물불산(勿佛山)'[신무동 뒤에 물불이라는 곳이있다]이라고 하지만 현지 증언과 대조해 본 결과 994m봉은 둘모두아닌듯. '물불이'가 봉우리 아닌 계곡의 이름일 뿐이라고 했다. 994m 봉 이름을 주민들은 '파계봉' '물불산'이 아니라 '장꼬방 말랭이'라 했다. 장꼬방은 장독, 말랭이는 정상(頂上)이라는 뜻이다. 그 봉우리가 장독을 닮았다는 비유일 터. 그래서 지금 말로 '장꼬방봉'인 셈이다. '장꼬방봉'에서 매우 길고 우뚝한 줄기를 하나 내보내 남사면을 확연히 구분 짓는다. 파계사 동편 중산골 꼭대기 750m봉-거저산(491m)으로 흘러 이 줄기는 서편의 지묘천골(신룡동)과 동편의 용수천골(신무동)을 갈라놓는 갈림이다.
'장꼬방봉'에서 주능선이 한 동안 960∼970m대를 오르내리다 헬기장ㅡ'마당재'에 이르러서는 950m 이하로 다시 주저앉는다. 마당재는 남사면의 부인사ㅡ북사면의 부계 남산리를 연결한다. 이 마당재의 연결 통로는 특이하다. 북사면에선 도리미양지골로 내려서지만, 남사면 통로는 계곡 아닌 능선이다. 주능선이 헬기장에 도달하기 직전 980m봉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가 그것. 이 줄기는 동쪽으로 용수천골의 상층부를 반분한 뒤 수태못 서쪽 능선 역할. 그 서편이 신무동, 동편이 용수동이고 부인사는 서편에 있다.반면 마당재를 지난 뒤 주능선 북쪽의 줄기 하나는 부계골의 남산리와 동산리를 구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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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재를 지나 바로 우뚝 솟은 벼랑바위 능선이 장관을 드러낸다. 당장 1천18mㅡ1천54m로 더 높아져, 드디어 1천m를 넘는 능선을 이어가는 것. 주봉 서쪽의 이 벼랑바위 능선을 '칼날능선'또는 '톱날바위'라 불렀다. 하나 이가 어긋난 모양새로 봐서는 '톱날능선'이란 이름이 낫다.. 벼랑바위 능선을 팔공산의 백미라 할 때그 중심에 정상부가 있기 때문에 정상부를 주목해 둬야 할 듯 하다,
팔공산의 정상부는 좀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동서로 뻗는 주능선과 북으로 뻗는 팔공기맥의 젖줄 능선에 걸쳐 ⊥ 형태의 큰 덩어리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정상부는 우선 주능선상에 서봉-주봉-동봉의 삼봉(三峰)을 형성한다. 그 세 봉우리 사이에는 두 개의 재가 있다. 서봉과 주봉 사이에 '오도재'.주봉과 미타봉 사이에 있는 재는 북사면의 백학마을 사람들은 '생부처메기'. 남사면 사람들은 '장군메기'라고 했다. 생부처메기는 그곳에 높다랗게 서 있는 석불상에 인연한 이름일 터. 장군메기라는 호칭에는 이곳 봉우리를 '장군봉'이라 부르던 지역민들의 기억이 깔려 있는 듯 하다. 재 북쪽에는 '장군수'라는 샘도 있다고 했다.
미타봉(동봉) 정상 모습. 더 멀리로 보이는 것이 삼성봉(서봉)이고, 서쪽을 향해 달리는 주능선이 그 뒤로 펼쳐져 있다.
서봉-(오도재)-주봉-(장군메기)-동봉의 구성은 트라이앵글을 연상케 한다. 주봉이 좀 북쪽으로 물러앉았고 양 날개는 남쪽으로 나와 있어 더욱 그렇다. 주봉이 양쪽으로 부하들을 거느린 듯한 느낌.
서봉은 그 바로 밑에 있었다는 '삼성암'(三聖庵)이라는 절 이름에서 따 '삼성봉'이라 했다. 삼성암 절 자리는 100여평. 방향은 정 서남향. 우물도, 굴도 있었다. 초석들이 여전히 제자리에 놓여 있고, 뒤로 빙 둘러 천연의 기암 병풍이 벌려 섰고, 바로 앞으로 삼성봉의 아들이라 할만한 '성인봉'(903.5m)이 우뚝이 보였다.'삼성암'은 거기서 부인사 쪽으로 한참 더 내려간 곳에도 하나 있었으나, 그것은 三省庵으로 한자가 다른 것 같았다. 선돌에 새긴 불상을 모셨던 암자. 마애불상은 15도쯤 비스듬히 기울어진 길쭉한 바위에 새겨져 있고, 유형문화재 21호다. 주봉은 팔공산 최고봉이면서도 '비로봉' '제왕봉', '장군봉'등. 본래의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다. 주능선에는 이같이 동서로 펼쳐진 서봉-주봉-동봉의 트라이앵글이 형성돼 있으나, 그 트라이앵글의 정점(주봉)에서 북쪽으로도 2개의 봉을 더 연결해 나간다. 정상부는 삼중 구조의 특이한 형태. 몇 십m씩 거리를 두고 남쪽,중간, 북쪽에 각 한 개씩, 세 개의 정상 봉이 있다.북으로는 긴 장대를 하나 걸쳐 이어가는 듯, 중간은 작은 공에 의해, 끝은 큰 공에 의해 받쳐지는 양상이다. 더욱이 남북 이들 세 봉은 높이도 비슷하며 '팔공기맥'이 오는 길목이다. 첫 봉은 앞에서 살핀 팔공산의 주봉. 두 번째 봉은 그 아래 부계 사람들이 '남포루[남쪽에 있는 대포 요새’ 같이 생겼다'는 뜻]라고 불러 왔다고 했다. . 세 번째 가장 큰 봉우리의 윗부분은 평탄해 넓은 평원 같다. 대구 쪽에서는 상상도 안되지만, 북사면의 백학 마을사람들은 고원끝이 깎아지른 절벽으로 빚어졌기 때문에 그 고원을 '말 궁둥이'라 했다. 특히 절벽의 남쪽 면은 '청운대'라는 절경. 그 절벽에 기대어 오도암이 깃들었다.그 고산 평원에 公山城이 있었고, 그 고산 평원 봉우리를 남사면 사람들은 ’구산성’, 북사면 사람들은 '성안'(城內) 혹은 '이성안[옛성의안이란뜻]'.이라고 했다.
미타봉 바로 밑의 삼성암 터. 평평한 100여평의 땅 뒤로 바위 병풍이 둘러 섰고, 우물과 기도하기 좋을 듯한 바위 굴을 갖췄다. 앞쪽으로는 성인봉이 우뚝하다. 종주 등반인들이 야영하는 자리이자, 대구 야경이 비할 데 없고 낙조가 뛰어난 곳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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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봉 서편으로 펼쳐진 톱날능선 모습. 수많은 선돌들이 모여 능선을 이뤘다.
팔공산 벼랑바위 능선의 핵심은 주봉 서편의 톱날능선, 정상부 트라이앵글, 주봉 동편의 바위병풍까지이어지는 5km 구간. 이 구간에서만 해발 1천m 이상을 유지한다. 북사면에는 팔공산 최고의 절경지인 치산계곡이,남쪽으로는 동화사골이 포진했다. 팔공산의 벼랑바위 주능선은 말 그대로 장관이다. 준수한 바위들이 쭉 능선을 만들고, 기암괴석들뿐. 서릿발 같고 칼날 같다. 속기 잡티라곤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경지가 아니다. 그곳은 신선의 땅. 그래서인지 이 벼랑바위 능선은 사람이 타고 걷기가 불가능하다. 무리하게 타려해서는 위험하다. 30여년 전 톱날능선에서 큰 사고가 난 적 있다고 했다. 그래서 등산로는 주로 그 능선의 북쪽 음지로 피해 간다. 남쪽으로 펼쳐져 있을 확 트인 전망을 볼 수 없으니 답답함이 가득하다.
팔공산이 얼마나 희고 밝은 산인가를 가장 잘 보여주는 명마산 가는 줄기. 화강암 관입으로 형성된 이 산의 특징이 선명히 드러난다.
절경의 벼랑바위 능선이 바위병풍에서 끝나지않고. 곳곳에 노적봉, 농바위, 방아덤, 동봉, 미타봉등이있다. 이 봉들은 그 아래 대단한 바위군을 거느렸다. 좋은 산의 핵심은 바위다. 팔공산이 명산임도 바로 여기 있을 터. 게다가 팔공산의 바위는 예사 바위가 아니다.대구 앞산의 바위는 검지만 독특하게 희고 밝다. . 그래서 기품 있고 신성스럽다.
팔공산이 어떻게 해서 이런 특징을 갖게 됐는지 살펴보자. 약 1억년 전쯤 경상도는 거대한 호수였다. 일본은 한반도와 연결돼 있는 땅. 그 사이에 '경상도 호수'가 있었고 기본 지질은 퇴적암이었다.그때는 지질시대 구분상 중생대 백악기. 화산 폭발로 산들의 지형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뒤였다. 비슬산과 대구 앞산 등이 이 때 만들어졌다. 그래서 앞산의 바위는 검은 화산암이다. 화산 폭발 시기가 하도 오래 돼 흔적들이 많지 않으나, 그곳에서도 기둥 모양(柱狀)으로 갈라진(節理) 바위들은 발견된다. 마그마가 식을 때 생긴 것.
팔공산의 바탕이 형성된 것은 그보다 한참 뒤, 지금부터 약6, 7천만년 전. 형성방식도 비슬산이나 대구 앞산과는 전혀 달랐다. 화산이 분출한 화산암이 아니라, 화강암이 치솟아 올랐다. 희고,밝고 기품있는 화강암이 팔공산의 특징이다. 팔공산이 얼마나 밝은 산인지는 관봉에서 와촌 명마산으로 가는 줄기. 특히 겨울철에 대구서 와촌으로 넘어가 보면 차 안에서도 쉽게 느낄 수 있다. 4, 5천만년 전, 화강암 분출로 암석 구성이 달라진 뒤 융기운동을 받아 산의 모습이 만들어졌다. 본래의 호수 바닥이 치솟아 육지가 되고 산이 된 것이다. 공중으로 솟아 오른 곳에서는 비바람에 돌과 흙이 깎여 나가는 침식현상이 시작됐다. 그 방식은 약한 돌이 더 빨리 깎여 없어지는 차별침식. 그 결과가 지금 같은 산과 계곡의 모습들이다. 팔공산에 특이한 형상의 바위덩어리들이 많은 것도 '화강암 관입'으로. 약해진 저항 압력 탓에 스스로가 부풀어지고. 그 결과 암괴 사이에 쉽게 금이 가 갈라지면서 사람이 만들려 해도 따라잡기 어려운 형상들을 연출해 낸다. 팔공산 주능선의 벼랑바위[선바위, 선돌, 탑바위등]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그냥 그대로에 조각이 행해져 갓바위 불상, 동봉 여래 입상이 되기도 했다. 게다가 화강암은 쉽게 닳고 풍화돼 외모도 부드러워졌다.하지만 이런 선바위들이 주능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팔공산이라면 어디서든 볼 수 있다. 명마산 가는 줄기. 능성동 마을 안으로 들어가 내릿골로 올라가면 만나는 '장군바위'. 완벽하게 펜촉을 닮았다.3단으로 된 기암, 일부러 만들려해도 이루기 쉽잖을 모습. 사람들은 그 바위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무속인들은 상시 기도처로 삼는다.
화강암이 닳아 가루 된 것이 마사(磨砂)이다. 땅을 파삭파삭하게 만들고, 빗물에 쉽게 쓸려 내려가서는 모래밭을 형성한다. 경산군 와촌면 박사천(博沙川)은 이 마사가 쓸려 내려 와 모래밭을 만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모래땅을 좋아하는 사과나무가 일대에 널리 심어졌다. 치산계곡 공산폭포 가는 길은 마사 산을 뚫고 나 있다.
명마산 가는 줄기에 있는 장군바위. 펜촉을 닮은 이 천연 탑돌은 일부러 시도해도 빚기 쉽잖을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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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사골 상세 지형도
바위병풍을 끝으로 해발 1천m의 벼랑바위 구간을 끝낸 주능선은 도마재(955m)-997m봉으로 올라서면서 동로 '신녕지맥'을 이룬다. 신녕과 청통의 경계선. 신녕천의 둑 역할을 겸하고, 한참 후에는 남사면으로 '거조암'을 품어 안기도 하는 중요한 산줄기. 이런 줄기의 출발점 997m봉에 '신녕봉이라고 하자.
주능선은 또 바른재(850m)-930m봉으로 솟아올라, 동봉(미타봉)에서 이 구간까지 부채꼴[호(弧)]의 동쪽 빗변을 형성. 동화사골의 뒷담이고, 부채꼴의 서쪽 빗변은 동봉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리는 산줄기. 이 줄기는 '낙타봉'(917m)를 거쳐 케이블카 종점봉(810m)까지 직하한 뒤 동쪽으로 휘어 동화사 서문(금강문)ㅡ학봉-모고진 등의 마을을 건너 백안동에 이르고, 용수천골의 일부인 수태골과 동화사골을 갈라놓는다.
동화사골의 역사와 구성: 크게 세 덩어리. 동봉 쪽으로부터 차례대로 암자골, 수시골, 폭포골이다. 구분의 기준은 물 흐름.
'암자골'이라 아 불러둬도 될 듯한 계곡은 비로암-부도암-내원암-양진암-염불암 등 다섯 암자가 모여 있는 골이다. 이 암자들 역시 더러 서로 다른 골을 갖고 있긴 하지만, 그 물은 결국 큰 절 서문 연못으로 모여든다. 암자골은 그 연못 동편을 타고 오르는 찻길이 난 산줄기, 통일대불 뒷산으로까지 내리 뻗는 그 산줄기에 의해 수시골로부터 구분된다. 그래서 암자골은 사실상 동화사 큰 절 밖의 공간.폭포골의 입구는 동화사 남문(일주문)에서 큰 절로 가다보면 금방 나타난다. 수시골은 큰 절의 여러 전각과 요사가 있는 모든 공간, 동화사 자리, 일주문에서 올라가면서 만나는 모든 공간이다. 다만 큰 절 뒤로 해서 주능선까지 펼쳐지는 골의 깊은 부분은 쉽게 볼 수 없다. 큰 절과 금당선원 사이 골 입구가 이들 시설에 의해 가려져 매우 좁아진데다, 그리로는 출입이 어렵도록 막아둔 탓이다. 골 이름도 수시골,'수서골' '수숫골' 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유명한 약천(藥泉)이 있던 골.'동창골'은 수시골과 폭포골을 구분 짓는 산줄기 막바지에 두 갈래로 갈라져 그 사이로 이 골을 낳았다. 물이 폭포골로 합류하니, 그 가지 골짜기라 보는 것이 옳을 터. 그래서 큰 절에서 출발해 금당선원 뒤 산줄기를 넘어가면 먼저 동창골이 나오고, 거기서 나직한 산등성이를 하나 더 넘어야 폭포골이 나온다. 동화사골은 동촌서 출발해 수십리 걸어 올라가야 하는 거리였지만, 일제 강점기 때부터 지역의 휴양지 역할을 했다. 유명한 약천이 지금의 '약수암' 바로 앞 동창골에 있었기 때문. 이들은 약물을 하루 한 말씩이나 마셔대며 황달이나 폐질환이 낫기를 기원했다. 요즘은 금당선원 쪽으로 더 가까운 곳에서 나는 물을 많이들 받아 가지만, 당시 이 물은 그냥 '새 약수'라고 불리면서 몸에
덮어쓰는 정도로만 사용됐다. 이런 휴양인들 덕분에 그곳에는 일찍부터 여관이 들어섰다. 현재의 약사대불 전각 자리에 '공산여관', 약천에 인접해 있던 이름 없는 여관,여관 외엔 동화사에 두부를 공급하던 집이 '동포막' '서포막'이라는 이름으로 동창골에 하나, 비로암 밑에 하나씩 있기도 했다. 동창골에 '약천여관'. '태평여관'과 '봉서여관'이 추가로 세워졌다. 덩달아 인접 폭포골도 붐비기 시작하더니 제법 상가까지 형성됐다. 폭포골 끝에서 주능선으로 오르는 도마재와 바른재가 인기 코스가 됐다. 동창골의 여관들은 1966,7년쯤 철거되기 시작했다. 불교 정화운동이 성공해 비구 스님들이 동화사를 인수한 지 10여 년 만에 경내 정리에 착수한 때문. 봉서여관 자리엔 대신 약수암이 세워졌다.쫓겨난 사람들은 동화사 일주문 일대 개울가에 30여호나 되게 모여 또 한참을 장사했다. 1980년대 들어서는 동화사골 밖 집단 상가지구로 옮겨 앉았다. 시내버스 노선도 1984년 2월 그곳까지 연장됐다. 동화사가 그에 발맞춰 서문을 만들었다. 인기 있는 등산로가 그쪽으로 옮겨졌다. 동화사골에 또 변화의 시기가 닥친 것이었다.
동화사 포함한 동화사골 전경(왼쪽), 동창골의 모습(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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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팔공산은 그냥 시간되면 오르는 동네산처럼 여겼는데 이렇게 많은 유래가 있었네요.
일단 공부먼저하고 백선 시작하게되니 더 새롭습니다.
잘 읽고 쪼매라도 더 기억할게요.
감쏴~~^^
우와~~~ 엄청난 조사를 하셨네요^^
이 좋은 산을 옆에두고 우린 늘 멀리 멀리만 갔죠 ㅎㅎ
14기엔 100선을 시작한다니 참 좋은 생각이었다 박수를 보냅니다..^^
팔공산 도사 되겠네요. 감자대장님 따라다니면...
역시 감자대장 언니~~~짱ᆞ
2014년에도 잘 부탁합니다ᆢ@
감자님이 진행하시는 팔공백선 너무기대됩니다.
부지런히 따라다닐께요~~^^
대단한 감자님 철저한분이시군요.
이렇게 확실하게 준비 하셨네요.
죽기 살기로 감자님 따라 댕겨볼 작정입니다.
감자님~~
팔공백선 4주 일요일 진행하신다는 말씀인가요?
기대합니다...^^*
내년 산행 목표로 팔공산 좀더 알아가로
정했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팔공백선 준비 단단히 하셨네요.
출발만 하면되겠어요.
1년동안 잘부탁드립니다...
구석 구석 시원하게 탐방 한번해 보죠....ㅎㅎ
원본을 누가 만들었는지, 대단한 자료입니다.
대단한 자료를 업어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___^)
팔공백선 덕분에, 감자 대장님 덕분에 모두들 신이 났군요. 하하!'
신명나는 잔치에 나도 한 다리 끼어 같이 즐겨볼까 합니다.
새 산행 '팔공백선' 시작을 축하하며, 응원의 박수 미리 보냅니다, 짝짝짝짝~ ^^*
열씨미 따라 다닐게요,,,ㅎ,,
글자가 작아서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아서 내용은 그냥 패슈~~~~
수고 많았읍니데이~~~~~~~~~~~~~~
올겨울에 우리 조형님 안경하나 장만해 드리야겠는데예~ㅋㅋ
잘 읽었습니다~ 당신은 진정 프로이십니다
역쉬~
굿~입니당~~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