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집 새신랑
감자씨도 못 놓아
한 달된 신부가 도망갔다는 이야기
들은 일 밖에, 그 일 밖에 없는데
긴긴밤 호롱불 아래
친구랑 호박씨 까먹은 일 밖에 없는데
해마다 정월 닭귀신날이면
없어진다고 감추던 신발
그날도 닭장 문은
굳게 잠겨 있었는데
뜨락으로
달빛 한줄기 흐르고 있었는데
그 때 잃어버린 내 길은
- 어머니 -
저물도록 김매고
돌아온 후에도
무쇠솥 반질반질 닦으시던 당신
양은냄비 놋수저 놋주발 닦듯
삶의 아픈 찌끼들
이쁜이 비누로 닦으셨네
딸보다 곱던 얼굴 헝클어지고
자식 땜에 숯검정 되어버린
그 세월은
이제 무엇으로 닦으시나요
애꿎은 방바닥만
진종일
무릎으로 닦으시는 내 어머니
- 안개비 -
청량리역 내리니
안개비 내린다
어느 역 두고 온
감장우산 하나
그 비알 콩잎 고추잎
깊어만 가고
옥수수 대궁 더
탱탱해지건만
잡동사니 가득한
내 마음속으로
자꾸만 자꾸만
안개비 내린다
- 여름날 저녁 -
초가집 굴뚝마다 저녁 연기 한다발씩
비구름과 떼지어 고사리재 넘어간다
논에 가신 부모님은 해 져도 안오시고
조무래기 신발들만 토방에 오글오글
서울로 갔다던가 옆집 총각 안마당엔
빈 지게만 덩그라니 하늘을 지고 섰네
우물가 함지박 머우나물 더운속에
후두둑 후두두둑 장대비만 꽂히는데
- 겨울밤 -
눈 위에 달빛 하나 깨벗은채 내려앉고
화로속 잉거불도 서로 핥다 스러진 밤
마루밑 나뒹구는 코고무신 한 짝
- 항아리 -
입이 있어도
노래 할 수 없다
장독대 한 켠
엎드린
귀 떨어진 빈 항아리
한때
마음귀 없어
그대 음성 듣지 못하던
내 청맹의 사랑 같은
긴 어둠을 뒤척인다
다시
봄의 소리 담으려는가
- 그대에게 나 -
까치가 둥지 틀
오지랖 넓은 아카시는 못 되어도
여름밤 평상하나 내 놓을
그늘 깊은 밤나무는 못 되어도
서리 내리도록 쳐다 보고 입맛 다시는
그 청배나무 아니어도
좋겠네, 나
밤이면 뒷간 무서워
앞마당에서 볼 일 보면
슬쩍 엿보던 담자락이면
때로는
서로 엉덩이 들켜버려
멋쩍게 웃던 그
달빛이어도 좋으리
이 밤
토담 자취 없어진 집
웃음 잃어버린 빈 달 하나
추억속에 떠 있는
- 달빛 -
한 잔 하고 걷는 밤
비척거리며 따라오던 달빛이
담 너머
빈 방으로 오라한다
땅속에서 겨울나기 하는
코스모스 씨앗처럼
숨죽이고 싶은데 잠시
혼자이고 싶은데, 통토 위에서
어서 꽃피라 한다
때론
멀리서 그대 바라보는
밤하늘 작은 푸른별이고 싶은데
겨울나무 틈새 몰래 비집고 나오는
연초록 햇살이고 싶은데
기억 용량이 작은 컴퓨터이다
이쁜 너로 기억하고 싶어도
착한 너라며 사랑하고 싶어도
열에 들 뜬 메모리칩으로는
널 받아들이는 속도가 더디기만 한
야심,알수 없는 회로속으로
또 길을 잃고 마는 난,너에게
네가 원하는 홈 하나 허락 할 수 없는
1메가바이트의 386컴이다
찌지직거리는 음악밖에 전할 수 없는
널 사랑한다 하면서 가끔
저 속에 숨어 있는 악성바이러스가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는
하지만
숨 끊어지는 날까지 함께 하자고
더듬거리는 나만의 혀로
말하고 싶은 난
네 기억에서 야위어지는 게 더 슬픈
- S 오빠 -
어스름 저녁
가랑비 내리니
흙냄새가 꼬끝에 싸아하다
건너마을 오빠집 마당에 들어서니
신발은 없고
자전거 위에 배꽃만 소복하다
흙담위로 꽃잎이 별빛처럼 내리고
두엄 위에도 어둠이 내린다
사립문 돌아 나오는 길,한켠
빗물 머금은 질경이 하나
쪼그리고 앉아 있다
지금, 중년의 골목길 이제
꽃 피지 않는 배나무 아래 서니
그때 그 오빠가
자전거 뒤에 내 배꽃같은 소녀 시절을 싣고
나타날것만 같은
- 내 삶의 반쯤에서 -
옥수수 삼태기 지게로 져 나르고
가으내 손수레 볏단 밀다
어린 시절 다 갔네
가난의 가마니에 묻혀 객지로 간 인생
부품 날라다 만든 물건에
청춘도 함께 팔리고
음료수박스 쌀자루에 땀과 눈물 섞인채
끊임없이 몸으로 부딪히는
배달부 같은 내 삶
이제
이제는
이 몸 바쳐 사랑하다 어서 죽어도 좋을
뜨거운 마음 하나 배달하고 싶네
- 멀어져 간다 -
개울물 소리
멀어져 간다
다슬기 잡아 주전자에 담고
모래무지에 한눈 팔던 그 시절
멀어져 간다
검정고무신으로 송사리 잡던 일
쏘가리 탱바리에 찔려
눈물 쏘옥 빠지던 일도
멀어져 간다
어느 너럭바위
발가 벗고 누워
가랭이 말리며 터뜨리던
그 진초록 웃음 소리도
- 외가댁 가는 길 -
아시내 재를 넘어
아린 감자밭 지나니 송실재
그 너메
메밀꽃 헤실헤실 웃던 덕사재
다시 가니 푸르둥둥 고사리재
취한듯 넘다보니 수리너머재 또
아픈 발 걷다보니 안개산 가로 누워 있고,
이름 모를 재 하나 더 넘어야
꿈꾸듯 닿는 길
우박에 두드려 맞은듯한 몸 하나
지금
삶의 어느 재를 넘고 있는지
- 보리의 노래 -
내 짧은 혀로는
다 말할 수 없습니다
된눈발에 성장이 멈추어 버린
등강너머 비알밭 모롱이
반 벙어리 보리싹
봄햇살과 입맞춤하기엔
아직
먼, 머- 언 2월의
미숙아 일뿐
- 엉겅퀴 -
바람이 유월볕을
지고 가다
내려 놓은 내
발등에서
붉은 흙냄새가 난다
감자밭
긴 고랑 돌돌 말아
웅그리고 앉아있는
저
어머니
월남치마 입은 새댁에게
누군가 묻는다
'언니하고 어디가요?'
시어머니 생일상을 위해
자반 한손
시금치 한단
쇠고기 반근 사 가지고
타박거리는 신혼의 뒷골목엔
언니같은 어머니가 있었다
밥공기 두개 수저 두벌
요강 하나의 눈 먼 살림
몇년이 지났을까
감자밭 맬때부터 아프다던 그
가슴팍을 또 움켜쥐시는 어머니
딸네집왔다가 뒷걸음질쳐가는
삶의 휘어진 그림자위로
열여덟 꿈을 잃어버린 세월의
주름이 깊다
아버지
앞마당은
가위소리로 분주했다
상고머리 빡빡머리 단발머리
모두다 공짜
열살 소녀는 늘 아버지를 도왔고
미군부대 깍사 일년 경력으로
남녀노소 날짐승까지 불러 모으던 아버지
인민군에 쫒기다 저승갈뻔 했던
그 세월뒤엔
부모 일찍 여위고
강냉이죽으로 끼니 연명하던, 아니
어느 계곡에서 당신 한쪽 다리를 잃을뻔했던
그 철렁함이 서려있다.
해걸음치다 척추골절된 아내 치닥거리하며
애써 웃음짓는 눈가로
자꾸 깊어지는
당신의 흰물줄기 하나
그 날렵한 가위로도 자르지 못한채
마른 장마에도 잘 자라나
친구들 다 제 갈곳으로 가건만
낫날에 몸 한번 기대보지 못한채
가시밭에 가라지인양
한쪽켠에 쭉정이 되어 버려지는
내 빈 깍지 같은 모습
함박눈
푸근하다
겹겹이 껴 신은 목양말처럼
너와 나
모양새 다르고 성질도 다르지만
마음 속 깊은 설레임 있지
뿌리의 숨쉬는 소리
햐얀 날개짓
너를 생각만 해도 들리는듯
조개탄 난로 하나
껴안고 잠들고 싶은 밤.
첫사랑 같은 너와
뜨겁게 뒹굴고 싶다.
된장찌게 끓이기
빠꼼히
겨드랑이 틈새를 비집고
찬바람이 솔솔 기어 들어온다
부시시한 얼굴을
게으른 햇살에 씻고 生의
늦은 가스불을 당겨 본다
제대로 된장찌게의 맛을 내겠다고
바지락에 냉이
호박 풋고추 감자 두부에
멸치의 살을 에는 아픔 하나 더 넣었다
찌게를 먹으며
누군가 하는 말
멸치가 눈물을 더 흘려야 한다고
얼마나 눈물을 더 흘려야
내 삶의 진국이
젖가락 소리만 요란한 저녁
한 남자
하늘과 바다가 맟닿은곳
태종대 앞 바다
물위를 걷는 남자
거기도 있었다.
하늘도 모르는
폭풍을 예고하며
가까이
아주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내 마음 이리 저려오는 건
쌀들이
안으로만 속삭이는 안타까움
그 때문 아니다
가슴을 파고드는 늦동지 바람
글이 잘 안돼안돼 답답한 거
빠지지 않는 부담스런 비게살
돌아버린 세상 신문의 슬픈 이야기
방학후 게임만 하는 아들 녀석
나를 차 버리고 간 그 녀석 때문
아니다
나를 슬프게 하는 건
가게 안에 덩치 큰 행운목이
나의 행운이
힘없이 아파하는 때문이다
너에게 만은
소복소복
앞마당 위에 찍히는
바둑이 발자욱이고 싶다
가슴으로 눈물 흘릴 적에도
마주하면 반가와하는
처마 아래 고드름
어릴 적 눈싸움할 때
늘 헛손 던져 비껴가는
장독대 위의 눈
겨울 밤
하얀 달빛 아래
두컬레 까만 고무신이고 싶다
봄은 왔건만
강물위
오리 몇마리가 아침을 몰고 온다
간밤
분분히 날리는 때늦은 눈발에
아픈 눈 비비며
기웃기웃 눈치보는 길가 꽃몽우리들
어떨결에
저 홀로 피어
서성이는
붉은 진달래 한 송이 뒤로
먼듯
가까운듯
작은 산 하나
아직 돌아 앉은 모습이었다
사랑 할 수 없네
마음 울컥해
홀로 들길 거닐다
작은 풀꽃에
눈길 주고 돌아 왔네
그 풀꽃 생각나
어둔 밤길 거닐다
그대 강 나루에
발목 하나 빠지고
그 강이 그리워
바닷가를 서성이다
파도의 애무에
마음 마저 잃었네
그 마음 되찾으러
고향 하늘 달리다
산 울음 소리 들었고
이제 사랑이라면
온 몸 다 잃어도 좋을
하지만, 나
사랑 할 가슴이 없네
너
맨발 이라도 좋아
너에게 닿을 수 있다면
석달열흘
풀잎만 뜯어 먹고라도
널 만날 수만 있다면
산 아래
물 흐르다 깊어지는 곳,쿵쿵소
건널 수 없는 강 하나
어칠비칠 나
月峴재만 바라본다
폭설
공단을 휘몰아치는 눈은
며칠째 계속 되고 있었다
길도 마음도 묶어버린 방직 공장
열여섯 소녀 가슴에도
펑펑 눈은 내리고 있었다
외출 외박도 없던 어느 겨울
잠깐 나갔다 오겠다고 하다가
언 볼에 눈바람 에이듯
후려치고가던 불벼락손 하나
장마철 먹장구름 같던 무리들,그들은
어린 가슴 다 태워버린 기숙사 불에도
녹지 않는 폭설이었다
그 뒤, 내 안에서의 눈바람이
몇차례일까? 나는
스스로 지워버린 길 위에 쌓인 눈을
한삽 한삽 퍼내고 있다.아직
그랬던적 있었다
도랑가
달개비꽃으로 피다가
도깨비바늘에 꽃잎 뜯긴적 있었다
밭두렁 돌담에
턱 괴고 앉아
먼 산 바라보는 엉겅퀴로
실바람에 마음뺏긴채
속 드러 내놓고도 헤실거리는
코스모스로 핀적 있었다
눈내린 비탈같은 내 마음길에서
한발 삐끗
목 부러진 동백으로 핀적 있었다
길
울타리콩보다
작은 계집
해거름녘
물동이 이고
바람의 골목으로 가네
채워도 채워도
바닥이 드러나는
밑빠진 시간
또아리 타고
물방울 하나
툭
갈라진 입술 적시네
진눈개비
당신은 매너모드
잠든 숲
난 메세지 전송했습니다
막무가내로 쏟아지는 밤 눈
지척이듯 흔들리며 내리는
오류의 사랑
어느 산허리
함박눈으로 다가가고 싶지만
문재 가는 다리 난간 끝
젖은 몸으로 걸터앉은 난
가로등의 눈물처럼
발밑으로 혼자 뛰어 내려야 하는
한밤의 외눈개비일 뿐
연기 이야기
연기 늦장가가는날
재 너머 송실에서
꽃가마타고
한나절이나 걸려 온 신부는
수줍은 사기요강 같았다
얼굴은 무지개사탕 같았고
산 속 작은마당
신랑의 어눌함에
종일 쌀과질같은 웃음꽃 핀 날
그날 밤
신랑집 草家위엔 달이 울었다
그 후, 보름도 안 되어
신부가 도망갔다는 소문 자자했고
겨우내 소죽솥에
애꿎은 불쏘시개만 분질러대던 연기는
눈 큰 소만 외양간에 남겨둔채
굴뚝연기처럼 어디론가 사라졌다
재 넘어 송실에서
꽃가마 타고 다른 봄이 시집왔는지
연기가 나지않는 그 집엔
아지랑이 홋치마가 나폴거리고
쿵쿵소에서
전재로 가는 완행버스는
가리내를 돌아 멀어져가고
이슥해지면
못물속에
별처럼 쏟아지던 다슬기 모래무지
하지만, 내 작은 족대에 걸리는건
헛손질 뿐이었지
꼬리치는 버들치 요즘도 따라가는 난
꿈속에서 가끔 수장된다
지금, 저 혼자만의 길을 만들며
속울음 우는 강
검은 산 하나 품고
뒤척이며 뒤척이며
아스라이
내 갈빗대를 돌아 나가고 있다
길 하나
찔레나무 주위를
꽃샘바람으로 서성이던
그 길, 소녀는
서울 간 영우오빠
도랑에 어리는 얼굴 바라 보며
애꿎은 질경이씨만 훓어댔지
풀벌레 소리
귓볼 가득 주워 모으며
오늘도 구비구비
보이지 않는 자국을 남기며 가는
바래골
나물바구니에 바람을 이고 선
세월의 등성
입술 부르튼 채 서 있는 저,
눈매 깊은 두릎순 하나
샛길
감자밭
외진 이랑을
슬쩍 돌아나가는
푸른 바람
발이 급한 감자꽃
희뽀얗게 피어난다
흙냄새
코 끝 싸아 한 채
바라보던
야산 솔나리 하나
봉긋한 가슴 여는 오후
순간,
까투리도 숨죽인다
그 해 여름
노동자들이 부르는 노래는 모 회사 담벼락을 뚫고 있었다.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태양은 묘지위에 붉게 타오르고...... 사용자측은 회사가 어려워 임금인상은 동결 이란 말만 되풀이 할 뿐, 공장에 탁구대 하나 설치하는것 초차 먼 나라 얘기 하듯 했다.
민주화의 불길에 세상이 뜨겁던 그 무렵, 작업라인은 며칠째 헝클어진 상태 였고 정말 묘지로 갔는지 바다로 갔는지 자고 나면 간혹 없어지던 노동자들이 한 소녀를 당황스럽게 했다. 노조 설립을 위해 이곳 저곳에서 오직 데모만 하던 그 때, 근로자가 해고 당하는 일은 금지곡 노래 레파토리 만큼 흔했다
모두가 아픈 날이 얼마일까,10만원 내외이던 임금이 17%인상으로 시위는 가까스로 막을 내리고, 콘베어벨트가 돌아가면서 가닥가닥 뜨겁던 마음들은 일단 납땜 되어 봉해지고 얼굴에 品자 하나 찍힌 제품은 컨테이너에 하나 둘 실리고 있었다
내 유년은
달빛이랑 재 넘다
동네 어귀 도랑에 빠져 울던
오줌싸게 작은별이었지
낙숫물 소리에도 잠 못 드는
봉당아래 외짝 고무신
풀꽃이 마음 몰라 주는것 같아
어둠에서만 서성이던
개똥벌레였지
만물이 사랑을 노래한다는 이 봄
아직도 4학년 아이인 나는
밤의 뒤 울안 한켠에서
추억에 상처나 내는 사금파리
시詩 뜯기
고사리 꺽으러 가던
고비재 너머 있을까
두릅 딴다고 주름잡던 말치골
그곳 일까
취나물인척 따라 오던 떡취잎,
개불알꽃도 능청스레 늘어져 웃던,그
가래골
시간의 구릉을 종일 헤매다
돌아온 순간,
아파트 베란다에서
작은 토마토 하나 부여 잡고
야위어 가는
줄기 하나
겨울 마당에서
마당가
뽕나무들 자취없고
은행나무 한그루
우두커니 서 바라보는
내 중년의 겨울마당
강냉이 뜯어 파느라
겨울이 분주하던 고사리손 대신
배달부 아줌마의
굵은 세월의 마디가 보인다
이제
토방에 흐르는 달빛 없고
언 손 녹이던
양지쪽 뜨락 없지만
사진 한장으로 남은
열세살 흰 코고무신위에
쌀처럼 내리는 눈은
가볍기만 하다
군불을 지피며
내 시에선 오늘도
생솔가지 타는 냄새가 난다
겨우내 아껴 때던
집뒤 울안 추억의 장작도
다 떨어진지 오래
불꽃없는 생연기에
눈물 콧물이 역류하지만
세상의 냉골을 데우고 싶어
휘어진 부지깽이 하나 들고 있다
사립문 넘어
고개 디밀던 찬바람도
슬그머니 사라진 저녁나절
눈비비고 바라보는 늦가을 서녘하늘은
붉기만 하다
어느 졸업식
강냉이 몇가마니와
바꿨을까
이 종이 한장
홀로 걷던 이십리길
등뒤에 달고 선 운동장에
활짝 핀 웃음꽃이 낯설다
라면땅 한봉지와도 바꿀수 없는 성적표
진학 못시켜 애태우는 엄마와
철없는 딸은
다리 난간을 붙잡고 한참을 서 있어야 했다
두 줄기 강물은 부딪히며 꼬이며
어디론가 흘러가고
해거름녘
강물의 등짝에 찍힌 사진 한장
스무해는 더 늙어버린듯한 모녀의
아직도 끝나지 않은 어떤 졸업식 하나
찬송가
쓸데없이 머리만 커
엄마의 푸른살 찢으며 세상에 나왔다가
홍역이란 죽음의 신발 끌고
저승의 문턱 까지 갔다 온 애
딱 하나 못 달고 나온게
두고두고 한이 된다는
딸 등록금으로 남편과 다투다
낫으로 벼대신 손목을 베고 싶었다던 그녀
언젠가
통행금지 넘겨 귀가한 딸을 때리고
평생 참아온 눈물 한꺼번에 다
쏟아 내시더니
때리던 삼십대 젊은 엄마와
돌연변이라던 스무살 늙은 딸이
어느날 마주 앉아 찬송가 28장을
소리 높여 불렀다
열평 연립주택에서
스무평 아파트로 이사간 날
만복의 근원은 하나님께 돌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어두운 골목
어머니는 또 무슨말을 하고 싶은걸까
두고 간 그림자에 주름이 진다
그리움
동짓달 기나긴 밤 잠 못드는 아낙네야
문풍지 실바람에 놋화로는 꺼져가고
싸락싸락 뼛골속으로 찬눈만 내리는데
감자꽃
찔레꽃 시샘하던 바람
밭고랑 감자밭에 머물더니
이내 사라졌다
종달새의 재재거림도
도랑물 따라 멀어지고
찔레나무
잎만 무성한 채 남아 있다
바랭이 풀 가득한
내 마음 밭뙈기
김 매다 찍힌 어린 감자 있다
달 없는 밤
홀로
하얗게 꽃 핀 죄밖에
조롱박
헛간 가까이
낮은 초가지붕에만 둥지 트는
조롱박,달빛 부끄러워
이파리 뒤로 숨는다
옥빛 얼굴
새끼줄 타고 하늘 오르는
하얀 웃음 소리 조롱조롱
겨드랑이가 간지럽다
그때 그 달빛
공원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
야곱이 요셉을
.
.
.
봄은 풀꽃을 낳고
밤하늘은 아기별을 낳고
쉿 !
지금 나도 진통중
사랑이라는 풀씨 하나
난산이다
봄은 어디에
새들 노래 소리 들으며
할미꽃 주절주절 피어나고
민들레 씨앗 먼 여행 떠날 채비하네
이꽃 저꽃에 입맞춤 하던 바람
지친듯 낮잠 들었나
바람난 제비꽃 질투하듯
실눈으로 바라보던 소나무도
새끼치느라 눈 코 뜰 새 없던
봄 봄
이 봄
콩밭매러 가는 허리 아픈 길가엔
이름 모를 잡초만 무성하다
첫날밤 이야기
유채꽃이 길을 잃은 밤
도시에선 장급도 안되는 호텔
갑자기 괴성이 오간다.
이중으로 손님을 받은 빙어 같은 그들
어느 부부는
싸구려 여관이든 어디든
알아서 도로 나가라 한다
장기두듯 따지는 신랑 덕에
간신히 일류급 호텔에 짐을 풀긴 했지만
그 날밤
우리가 부둥켜 안은 어둠이
사랑인지 뭔지 아직도 알 수 없다
그 때
눈물 찍던
유채밭 속 하루방 하나
이 봄 밤 어느 하늘을 헤매고 있는지
선 보는 날
눈화장 지워질세라
웃을 일 있어도 호호거렸지
손수건으로 눈아래 꼭꼭 찍어내고
치마 구겨지듯 모양새 구겨질라
다리도 꼬지 못한채
무릎위에 두 손 가지런히 모으고
음식 먹을때도 오물오물, 행여
컵에 묻은 루즈 자국 그 남자 볼까
몰래 슬쩍 지우고
만난지 17년
아무데서나 옷 벗고 갈아 입는 날 보고
그 이는 지금 무슨 생각 할까
봄은
긴 꽃술
개나리꽃 치마밑으로 온다
아지랑이 눈웃음이
겨드랑이를 간지럽히고
겨우내 얼었붙은 마음
불현듯 깨무는 햇살의 입술로
가슴팍 파고드는
자라지 않은 젖먹이 아이로
온다
내 고향
아카시아꽃 별처럼 반짝이는
산허리를 돌아 기차는
고향 하늘로 달린다
밤의 터널을 지나
종착역에 내리면
말없이 내 손을 끌어 당겨
안아 줄 것만 같은 그대
헤어진지 서른해
긴 입맞춤을 하며
지친 그리움을 하얗게 말리고 싶다
올챙이 국수
먹기 싫은 강냉이는
맷돌이 질근질근 씹어
뱉어 내고 있다
폴짝폴짝 끓는게
개구리처럼 튀어오를때 쯤
틀에 넣어 누르니
올챙이 같은 면발이
물속에서 오몰 거린다
송송 썰은 매운 고추에
눈물 한 숟가락 넣으니
후루룩 소리 따라 가난도
엉겁결에 넘어 간다.
여덟식구가
올챙이 배 두들기며
여름밤처럼 까맣게 웃고 있다.
강을 건넌다
고래실 논에
물 빼고 오시는 아버지
하루를 건너는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
때론 갈라터진 생계의 끝
물 대신 눈물을 끌어다 대는, 종일
세상짐 그득 지고
사태밑 길 오르던 그
땀 절은 옷의 강을 건넌다
이제
어느 하늘빛 고요한 강기슭
모든 근심 내려 놓고 탱바리 잡던
강물보다 더 맑은
칠순의 눈빛, 그
당신은 누구
어느밤
와인 한잔에
온 몸 녹아내린 내
그 이유모를 술잔같은,당신은
만나면 속삭이기 전
슬쩍 입마추고 싶어지는
때로는
알수 없는 진한 향기, 그 내음
내 몸속 피돌기에
섞고 싶어지는
보졸레누보같은
당신은 누구
이 가을
한밭뙈기 가득
감자꽃이 하얗게 피고
들쑥날쑥 모심느라 엎드려 끙끙대던
고래실 논엔
벼와 피가 앞다투어 자라고 있었다
물이 항상 고여 있어 고래실이라지만
물보다 어머니 눈물이 늘 고여 있던, 그
한마지기 남짓한 논은
그래도 가을이면 앞마당이 풍성했다
간혹 논둑을 휘몰아치는
고래바람에
벼들이 놀라 온 몸을 꼿꼿이 세우곤 했지만
오이 싸대기를 후려치는 미친 바람이
한바탕 짓밟고 간 이 가을
그때 그 논의 벼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늙어가고 있는지
사뭇
8월 이면
꼬맹이들
냇물에 탐방거리다
고무신 들고 뛰어가는
여름 한낮
감자와 옥수수쌀을 섞어 지은 밥에
바람도 배불리는 동안
통에 갖힌 매미 잠자리 여치
큰 눈이 더 휘둥그레 진다
한낮의 푹익은 태양도
덩달아 휘둥그레진다.
사랑의 함정
그대 깊은 가슴에
듬성듬성
징검다리 놓아
건너가고 싶어라
발이라도 헛디디게
초승달
외눈으로 바라보네
초승달 하나
두눈 뜨고 보기엔
너무 아까운
네가 뜨는 내 마음은
날마다 새벽
달빛 마시기
나 어릴적
빈집 바라보며 덕사재 넘을때
발 뒤꿈치 물고 따라오던
고양이 눈빛 같은
찔레꽃 함박웃음 처럼
엄마랑 수리넘어재
하얗게 넘어가던 달빛
멍석깔고 앞마당 드러누워
달아 달아 밝은 달아
부르고 부르니 춤추던 달빛
고사리재 너머엔
메밀꽃 감자꽃 파도치고
달빛 어우러져 그 밤이 함께 파도치고...
반평생 내 속에서 푹익은 달 하나
추억도 늙었는지
포도주 한잔에 취해버린
달빛만 가득한 이 가을 밤에
코스모스
저 내숭좀 봐
수줍어 살짝
고개 숙인 줄 알았더니
감춰진 모습없이 다 드러낸
핑크빛 치마속의 노란 팬티까지
시 나부랭이 쓴답시고
시답잖은 한 세상
까발려 다 들켜버린 내 마음
저기 길거리에 피어있네
가을 바람에 꽃잎
직유법으로 흔들리고 있네
단풍
많이 아파야
아름다운 사랑이라더냐
내 고향 온 산
사랑을 앓고 있는중
흑장미
꺽으면 안되는데
옆에 두 눈 부릅뜬 가시가 지키고 있는데
그래도 자꾸 꺽고 싶은건
훔쳐서 몰래 보고 싶은건
앞마당에 가랑이 짝 벌리고 앉아
새끼 꼬다 문득 돌아 보니
미끄럼 타듯 하늘에서
아버지가 내려오시네
참새들도 새 지붕 새 이불 속에서
신방 차리기 좋겠구나
큰 댓자로 누워보니
지붕이 하늘이라
초저녁 달이 배부른 옹심이 얼굴이네
나 어릴적
집 뒤 울 안
앵두나무 가슴에 꽃 달기도 전부터
빨간 열매 익기를 기다렸지
침만 삼키다 잠든적 있었어
살구나무 아래에선
구멍난 닭장만 보였지
몰랑한 살구 그 거짓말 같은 열매
닭들이 다 먹어버리면
어쩌나 싶었어
딱딱한 돌배나무 그 나무 아래선
하늘만 보였었지
익어도 먹지 못하는
노란 하늘만
지금은
내 중년의 가지에
오종종 열린 빛 바랜 열매들
아무도 탐 내지 않아 더욱 내것인
추억의 나무들
봄의 뜨락에서
어린 햇살이
초가집 토방에서
깔깔대고 웃다가
장독대 뒤에서
숨바꼭질 하더니
풋처녀 가슴팍으로
슬쩍
미끄러지네
텃밭으로
야산으로
바구니 끼고 달랑달랑
홑잎나물 냉이가득
그것도 모자라
건너 마을
부푸른 사랑얘기
듬뿍듬뿍
눌러 담았네
개불알꽃
보라빛의 애잔한 모습에
짙은 핑그빛이 어우러진
불룩하고 뭉클한것
어떤 여자 유혹 하려는지!
비릿하면서 끈끈한 향기 풍기는건
소중한 부분 넘보지 말라는 뜻인가
아님 봐달라는 말인가?
개불알꽃 무겁게 피어나는
달 없는 밤이 나는 겁나.
바람난 할미꽃
듬성듬성 소나무 마른 잔디 틈새로
두뺨이 보송보송 수줍은 듯 고운 모습이
채 활짝 피지않은 사춘기 소녀 같다
젊은 바람 지나가니 살짝 고개 들고
살풋한 미소 한번 입가에 짓고 있네
노란 민들레 질투나 샐죽거리고
호랑나비 한 마리 손짓 발짓 다해도
실바람과 속삭이는 바람난 할미꽃
못난이 삼형제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댁
문갑위에
못난이 셋이 쭈그리고 있는거
우리네 딸 삼형제 모습 같아
보면 볼수록 정이 들었지
그중 제일 미운년이
더없이 마음이 갔드랬지
지금쯤 졸업이나 했을까
못난이 인형 삼형제
<욕심>
거미 한마리 넘보던
잠자리 한마리
수치소 갔네
<콩>
만삭의 배를 안고
바싹 마른 대궁에
자식이 뭔지
<배 나무>
이파리 사이로
열사흘 달빛이 지켜보는데
엉덩이는 다 내놓고
<고전적인 가을>
허생원 없는
메밀꽃 흐드러진 밤
귀똘귀똘 소금밭에 방울 소리만
<반딧불>
손끝에 닿을듯
이내 날아가 버리는
제발 불좀 꺼주세요
밤마실
아래녘 장씨네
민화투 치러 가시는 아버지를
졸래졸래 따라 나서곤했다
상고머리 열살 계집아이는
방 안 가득, 돈 대신
콩알 팥알이 춤추고
입에서 입으로 오색꽃이 핀다
비약 초약 청단 홍단
먹을게 없으면 비풍초똥팔삼
무슨 말일까
뒤란 생쥐도 귀 세우는 밤
동치미에 코빠진 웃음 한 술 말아 먹고
아버지 등에 업혀 오는
싸락눈이 귓볼 간지럽히는 새벽은
대낮보다 더 환했다
지금, 생의 어느 투전판에서
쭉지 몇장 들고
보름달 둥실 팔광 기다리듯
복권당첨을 기다리시나, 아버지
문득, 위를 보니
69타워 끝
흑싸리잎 같은 그믐달 하나
씩 웃으며 내려다 본다
시詩 뜯기
고사리 꺽으러 가던
고비재
그 너머 있을까
두릅 딴다고 주름잡던 말치골
그곳 일까
취나물인척 따라 오던 떡취잎,
개불알꽃도 능청스레 늘어져 웃던
그 가래골
이 구릉 저 구릉
마음 구릉을 종일 헤매다
내려오는 순간,
아파트 베란다에서
여름을 익히는 토마토
외눈망울이
쿵쿵소에서
전재로 가는 완행버스는
가리내를 돌아 멀어져가고
이슥해지면
못물속에
별처럼 쏟아지던 다슬기
쏘가리 탱바리
그러나 내 작은 족대에 걸리는 건
헛손질 뿐이었지
꼬리치는 버들치 요즘도 따라가는 난
꿈속에서 가끔 수장된다
저 혼자만의 길을 만들며
속울음 우는 강
검은 산 하나 품고
뒤척이며 뒤척이며 아스라이
내 옆구리를 돌아 나가고 있다
디딜방아
- 추억으로 가는 길 -
느린 두박자로 쿵덕쿵 밟다가
순이야 하고 뒷담에서 부르면
반박자 덜 딛고 달아나 버렸지
꾀 많은 수수도 그 시간의 틈새를
용케 빠져 나갔고
매맞을 각오하고 돌아와 보면
키질 체질 다하고
방아학을 닦으시던 엄마
고운체 같은 손 얼개미 되어 있더니
지붕위 조롱박
조롱조롱 익어 가고
처마끝 빗방울도 발장단 맞추는
내 마음의 방아간
무겁게 내려 앉던 방앗공이의
그렁그렁한 눈빛만 오래 남아
밤마실
아래녘 장씨네
민화투 치러 가시는 아버지를
졸래졸래 따라 나섰다
상고머리 열살 계집아이는
방 안 가득, 돈 대신
콩알 팥알이 춤추고
입에서 입으로 오색꽃이 핀다
비약 초약 청단 홍단
먹을게 없으면 비풍초똥팔삼
무슨 말일까
뒤란 생쥐도 귀 세우는 밤
동치미에 코빠진 웃음 한 술 말아 먹고
아버지 등에 업혀 오는
싸락눈이 귓볼 간지럽히는 새벽은
대낮보다 더 환했다
지금, 생의 어느 투전판에서
쭉지 몇장 들고
보름달 둥실 팔광 기다리듯
복권당첨을 기다리시나, 아버지
문득, 위를 보니
69타워 끝
흑싸리잎 같은 그믐달 하나
씩 웃으며 내려다 본다
겨울 강가에서
가끔 등도 슬쩍 내어주던
강 하나
팽이치고 썰매타고 연날리던
썰매날인듯
발뒷꿈치 굳은살을 깍고 또
깍아내던 어느밤, 아버지는
손수 만든 배꼽연을 높이높이 날리는
법을 가르쳐 주셨지만,
툭,
끊어져버린 연줄을 잡고 떠 돈
객지의 하늘
댁벼루 아래 삶이
돌아나가다 고인 물 얼듯
귀퉁이에 얼어 있다
북풍 한줄기 안고
모로 설핏 잠들어 있는
노고소
아직 세상소리 더 들어야 하는지
큰귀 하나 열어놓고
여름마루
감자투생이 먹는
여름마루
작은아버지 말했지요
넌 다리밑에서 주워왔다고
그래서 혼자만 눈이 크고
쌍거풀이 있는 거라고
썩힌감자 같은 얼굴로
따로 도는 콩만 주워 먹다
엄마 찾아 나선 정암 다리밑,
홀로 서성이다 돌아온 날
토담집엔
여우비 내렸지요
울다가 웃으면
똥구녕에 털 난다는 그 말도
눈 딱 감고 믿고 싶어지는
오늘
마루없는 마음 언저리
막힌 눈물샘만
* 감자투생이 : 썩힌 감자가루에 줄당콩 넣어
버무려 찐 음식
너 떠난 후
- 쿵쿵소에서 -
가리내 물이 정암을 지나
둔내로 흐르는 여울목
눈치빠른 동자개
모래무지 없고
피라미 몇마리 뿐
너럭바위 위에서 다이빙하던
조무래기들도 사라진
강 어귀엔
태풍 루사를 잠재우려던
흔적 아직 남아있다
어느 소풍이었던가
보물찾기 하다
구름 몰래 꺽지랑 입맞춤하던 것이
시간의 여울목을 뒤로 한 채
홀로 하작하작 걷다 보니
돌아 앉은 길 하나
소沼에어린다
댁벼루, 그 모퉁이를 돌다 보면
먼 발치에서 바라 보는
그믐달 하나
절벽 높이의 삶을 사는 듯한
거꾸로 들어 선 애를 낳다가 하늘이 무너지는줄 알았다는 그녀, 열자식 씨뿌려 놓고 먼저 간 남편 때문에 술로 시간을 달래야 했다 .장애자인 막내는 어느시설에 맡겨지고 시집 못 간 딸과 살고 있지만, 홋치마만 입고도 속옷 입은 줄 착각하며 살아온 세월의 주름이 깊다. 그래도 웃음은 마냥 어린애 같은,지금도 두꺼비표 쇠주를 찾는, 술마시면 머리칼 하얗듯 세어버린 기억도 강냉이튀밥 주워먹듯 읊어대는 그녀, 그 눈빛이 내겐 늘 어릴적 혼자 걷는 밤 개밥바라기별 따라오듯 했다.
오랫만에
그녀를 만나고 돌아 오는
늦은 저녁
소 끌러 가는 저녁
이집 저집 굴뚝에
저녁 연기 오르면
서녘산은 바람을 안아
토닥이기 시작한다
등 굽은 옥수수
허공을 베고 눕고
도라지별 빛고운 이부자리 펴건만
덕사재 메밀꽃 저 혼자 흔들린다
둔덕 너머 하늘가에
어둠 가득 고이는데
불러도 대답 없는
고삐 풀린
소 한마리
쭉정이 추수
고향을 지키다 쓰러진 감나무
아스라이 다시 선 밭두렁 위로
하늘은 옛하늘 올해도 풍년인데
매미태풍 지나간 八旬어매 마당엔
키 끝에 쭉정이만 가으내 날리네
피아노
뒤틀려 있었다. 피아노는
음이 제자리를 잃고 있었다
건반을 매만져 주는
누군가의 손길이 그리웠던 걸까
아님
가슴 저 밑바닥
길어 올리지 못하는 노래 하나
흔들리는 몸으로
말하고 싶었던 걸까
늦은 밤
작은방 구석
열려 있는 피아노
소리없는 영혼의 떨림 있다
내 안의 풍경
내 유년은, 진종일 밭고랑 누비다 돌아 온 엄마의 흙묻은 고무신 봉당에 탁탁 터는 소리, 논에서 돌아온 아버지의 삽자루 헛간 앞 세우는 소리로 이울어 갔다. 진학못한 언니의 애꿎은 부지깽이 분질러 대는 소리에 마당가 눈 큰 뽕나무의 여린잎이 떨어지고
풀벌레소리 해맑은 밤, 등잔불 뒤 한 켠은 자주 어둠이었다. 정에 목 마른 오줌싸게 계집애가 밤에는 달빛속을 서성이고 낮에는 들로 산으로 먹을것을 찾아 까치발로 동동거려야 하는......
뒤늦은 등교길 헐레벌떡 달려와 땀투성이 등록금을 손에 꼬옥 쥐어 주던 어머니, 애총무덤 두개에 나무 몇 그루 안고 있는, 한 쪽이 움푹 패인 그 사태산 모퉁이를 지금 막 돌아 서니, 작은 쇠별꽃 발등으로 떨어지는 눈물소리 들린다
창말재를 넘다 보니
옥수수밭 사이로
초가 하나 보인다
지붕은 박꽃 하얗게 이고
툭 툭 알밤이
새벽을 깨우기도 하는 집
빗방울 소리 잠못들던
뜨락엔
종일 봇물과 씨름하다 돌아온 아버지
새마을 모자위로 뿜어 대던
봉초 같은 삶이 있다
가난을 돌돌말아
환희 대신 피워 대던
이제 뜨락 없고
청배나무 그루터기 갈라진
스레트집 낯선 마당에 서니
멀리 화전밭 이랑 따라가며
숨차하는 호미 하나 보인다
아부지, 망태를 아시나요
두손에 침발라 가며
새끼꼬아 가마니 짜던
듬성듬성 옛날얘기도 엮던
그 마당
겨우내 짠 멍석이며 가마니엔
언제나 달빛이 흘러 넘쳤지요
그 새끼줄 따라 가다 보면
근심도 아득히 멀어지더니
허공을 허우적이는
길 잃은 제 손끝, 이제
무얼 더 짜야 하나요
거름더미 담아내다 닳아진
삼태기 같은 당신
어느 세월의 이랑에 나뒹구는
구멍난 망태를 아시나요
넘어져 바라본 하늘은
아직도 미끄럽고 덧없는 구름 한떼
이곳이 객지인듯
또 한 고개 넘어간다.
오목교에서
오늘도 난간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여자
바람이 머리칼속에 집을 틀었다
울다가 흘리는 웃음끝
어떤 남자가 자기를
산 속으로 끌고 갔다고
개울건너 그 아저씨, 이제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른다고
터진 김밥처럼
흐트러진 말(言)들을 주워먹는
그녀 곁에
비둘기 한마리 흘린 시간을
쪼고 있었다
다리 아래엔
어둠을 밀어내듯 오목내가 흐르고
그녀의 크고 오목한 눈속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높아지고
상가집을 다녀와서
울다가 웃다가
상가집엔
일찍 남편을 여윈 한 아낙이
과방을 보고 있었네
넋잃은 새들이
불어터진 국수를 쪼기도 하는 안마당
그 사이로 들어서면
과질과 무지개사탕을 건네주시며
솔잎처럼 쓸쓸히 웃으시던 큰어머니
좋은일엔 무심해도
슬픔은 나누어야 한다는 말씀을
나는
송화다식 처럼 귀하게 베어먹곤 했네
멀리
흑백의 가을을 다독이며
겨울이 산등성이를 막 넘어오고 있었네
아버지의 고삐
절터 모퉁이를 돌아 가는 순간 달구지 뒤에서 밀던 내 손이 허공을 허우적인 건 소와 수레 사이에 있던 아버지가 안 보인 때문이었다. 소는 저만치 달아나 버렸고......아버지는 결국 피투성이가 된 채 의식을 잃은 상태였지만, 그 소를 죽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애초 나이 든 소를 사던가 어린 소에게 막걸리 찌깸이를 주지 말던가 아님, 달구지에 비료를 조금만 싣고 고삐나 잡고 가시던가 했으면 좋았을 일을
몇십년 지난 지금도 그 때 상처가 온 몸에 초승달로 뜨는 아버지, 그 땜에 어머니품 같은 고향을 하루 아침에 작두로 소꼴 자르듯 하신걸까
타향살이 내내 공사판 막노동에서 경비로만 이어지는 칠순의 삶, 그때 그 고삐 놓쳤어도 길 들여지지 않은 자식 고삐 안 놓치려 지금도 눈빛 꽉 잠그고 계시는 아버지
포상기태
분명 임신이라 했는데
포도는 먹은적이 없는데
병원문을 나서는 발밑이 휘청거린다
산모가 위험해요
아랫도리 흥건히 핏물에 젖은 채
동네 병원을 미친듯이 돌고 돌던
임신 17주의 월남치마 새댁
먼 기억의 원두막 돌아서니
병 걸린 포도나무
뿌리채 뽑혀
버려지는 모습 보인다
백도
뒤뜰
뽀얀 복숭아꽃이
유혹한다 눈물처럼
금방 지고 말것이 뻔하건만
그 꽃에 넋을 잃은 순간,
잎진 자리 포르르 열매가 생긴다
점점 부풀어 커지니
풋처녀 계집애 가슴 마냥
단물 가득 입에
침이 고인다
그 열매
누가 따갈지 몰라
깊은 밤 잠들지 못하고
세월의 하얀 담장밑을
밤 내
서성인다
사물놀이 한마당
일광욕하는 나무들 틈새로
야산에 벌어진 잔치 한마당
악귀 쫓는다고 뿌린 막걸리에
일찌감치 취해버린 소나무
새털구름 내려와 춤추고
까치도 징소리에 몰려오고
입이 바쁜 동네아낙들 콧등위로
국수가락이 장구가락 튀듯 한다
빈 들판을 땀으로 메우고
진인사 대천명 하는 노인들 마음으로
꽹과리바람이 지나가고
뿌리 내리지 못한 미운 팥알처럼
예나 지금이나 서성이고 있는 난
생각처럼 잘 안돌던 그 때
그 상모象毛를
미친듯이 돌려 보고 싶다
미친 세월속으로 돌아가고 싶다
손님
늦은밤
누군가의 문 두들기는 소리
달님 이었구나
얼굴이 반쪽이네
짙은 안개 때문인가
지는 잎이 쓸쓸해서였나
찬 바람에 눈을 뜰 수가 없었나
눈가에 이슬이 맺혀있네
하지만,
봄은 멀지않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채워질거야
지금은 반쪽인 너의 그리움도
어느 겨울밤
바람의 송곳니가 밤내
추녀끝을 뜯던 그 겨울 나는
빈속에 마른 강냉이를 뜯으며
디지탈라디오속의 아씨처럼 울었네
아직도 내 기억의 천창에서는
가난한 쥐들이 바스락거리고
담요 뒤집어 쓰고
강냉이 우리에서 바라보던, 그래도
하늘만은 부자였네
달과 별만 껴안으면
아무때나 잠들수 있었던 밤
춥지만 내 생에서 가장 따뜻했던
그 겨울 밤
당신
돌아누워 흘리는 눈물이
내 낮은 콧등을 타고 넘는다
다른 사람하고 살았으면
더 행복했을텐데
딸 딸 딸 노래부르는
무궁화 같은 딸하나도
품어 볼 수 있었을텐데...
이 일 저 일 핑게대고
딸 하나 못 낳아준 미안함이
가슴에 대못으로 밖힌다
오늘따라 더
젖은 가랑잎 같이 보이는 당신
S 오빠 2
어스름 저녁
가랑비 내리니
흙냄새가 꼬끝에 싸아하다
건너마을 오빠집 마당에 들어서니
신발은 없고
자전거 위에 배꽃만 소복하다
흙담위로 꽃잎이 별빛처럼 내리고
두엄 위에도 어둠이 내린다
사립문 돌아 나오는 길
한켠
빗물 머금은 질경이 하나
쪼그리고 앉아 있다
지금 중년의 골목길 이제
꽃 피지 않는 배나무 아래 서니,그때 그 오빠가
자전거 뒤에 내 배꽃같은 소녀 시절을 싣고
나타날것만 같은
잔디밭속의 질경이
장대비가 따귀를 때려도
먹장구름 큰 엉덩이로 눌러대도
구르던 돌맹이 짓밟고 가버려도
서슬 푸른 바람 날 선 손톱으로
가슴팍 훑고 지나가도
시퍼렇게 살아 있더라
말 못하는 6월
그 날의 풀한포기로
첫날밤 이야기
유채꽃이 길을 잃은 밤
도시에선 장급도 안되는 호텔
갑자기 괴성이 오간다.
이중으로 손님을 받은 빙어 같은 그들
싸구려 여관이든 어디든
알아서 도로 나가라 한다
장기두듯 따지는 신랑 덕에
간신히 일류급 호텔에 짐을 풀긴 했지만
그 날밤
우리가 부둥켜 안은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