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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사 스크랩 한국교회사 50대 사건 개요
감람나무 추천 0 조회 88 07.07.31 11:2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한국교회사 50대 사건 개요

  1.1594년 초 기독교 성직자 세스페데스가 한국에 최초로 들어왔다.

 1592년에서 1598년에 끝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다. 이 전쟁 중에 처음으로 기독교와 관련을 맺게되며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로 전쟁중 서양인 성직자가 최초로 들어오고 둘째로 전쟁 중에 한국인 포로 중에 상당수가 천주교 개종자가 나왔다.

  조선 침략의 선봉장의 한 사람인 고니시 유키나가는 전쟁이 오래 끌자 본국에 예수회 신부들에게 종군 사제를 보내달라고 해서 스페인 출신의 예수회 신부 세스페데스와 일본인 수사 후칸 에이온을 조선에 파송했다. 세스페데스의 선교활동은 없었지만 조선인 포로들 중에 상당수가 개종자가 나왔고 순교에 이르는 자까지 나왔다. 임진왜란 중에 일본에 끌려간 조선인은 약 5만이상 추정되며 그중에 적어도 7천 명 가량이 천주교인으로 개종하였다.

  2. 1644년 소현세자와 선교사 예수회 신부 아담샬과의 교류

  1636년부터 10여 년 동안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으로 볼모로 왕세자인 소현세자와 왕자 봉림대군을 데리고 갔다. 볼모로 잡혀 온지 7년째 되는 해에 그는 북경에 머무는 동안 예수회 신부 아담 샬과 사귀게 되었다. 중국 대륙을 통치하게 된 청도 예수회 중심의 천주교회에  대해 유화정책을 폈다. 이때 신부들은 볼모로 잡혀온 조선의 왕세자에게 관심이 깊었고 세자 역시 서구과학 지식에 관심을 두었다. 그래서 아담 샬은 조선 선교를 추구하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소현세자의 북경체류가 짧아서 구체적으로 추진되지 못했다. 소현세자의 귀국으로 선교사들은 귀국하는 소현세자 일행 속에 교인을 배행시키는 방법으로 중국인 궁녀 감독관으로 선발된 환관5명을 교인들로 구성하여 1644년 11월 말에 북경을 출발하여 이듬해 2월 서울에 도착하였지만 귀국한 지 70여 일만에 죽고 말았다. 죽음의 원인이 북경에서 가져온 물품이 그 원인이라는 미신적인 소문이 퍼져 모든 물품을 불살랐고 중국인 궁녀와 환관들까지 본국으로 돌려보냄으로 조선 선교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3. 1770년 홍유한은 최초로 서학(천주학)이 요구하는 종교적 계율실천

  이벽의 제자인 홍유한은 영조 46년에 처음으로 천주학 서적을 얻어보고 그 이후로 7일마다 하루씩 노동을 금하고 기도와 금욕생활을 실천하였다고 한다. 보다 확실한 자료에 의해 밝혀진 신앙실천은 권철신, 정약용이 주도한 1777년 교리연구회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아침 저녁 기도, 주일의 노동금지, 금육재등 천주교계율을 지켜나가기 시작했다.

  4. 1783년(정조7년) 이승훈의 영세및 조선 천주교회 창설

  정조 7년에 이승훈의 아버지 이동욱이 동지사 서장관으로 임명되어 북경에 가게 될 때 이승훈도 가게되었다. 그래서 북경의 북천주당을 찾아 프랑스의 신부의 가르침도 받아 부친의 동의를 얻어 그라몽 신부에게 ‘베드로’란 영세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세례받은 이승훈은 북경에서 책과 십자가상과 상본등 천주교 성물을 선물로 받아 가지고 1784년 봄 서울로 귀환했다. 이벽은 이승훈으로부터 서적을 받자마자 외딴 집을 세내어 집중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후 천주교의 실체에 가까이 접근하여 이같은 체험의 바탕 위에서 조선 천주교회는 창설되었던 것이다.

  5. 을사추조적발사건(1785년 정조 9년)

  1785년 봄에 형조의 금리들이 우연히 김범우의 집을 지나다가 이상한 집회가 열리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 이 벽의 중앙에 앉아 천주교 교리를 설명하고 있었고 이승훈, 정약전, 정약용, 그리고 3형제, 권일신, 권상학 부자 등이 모여 있었다. 또한 천주교 서적과 화상들이 있는 것을 보고 압수하여 형조에 갖다 바쳤다. 그래서 집주인인 김범우만 체포하고 나머지 양반계층 교인들은 풀어주고 김범우는 단양에 유배후 1년만에 죽음으로 “조선 천주교회의 첫 순교자”가 되었다. 그후로 천주교가 배척당하기 시작했다.

  6. 진산사건(신해박해) ,1791년 정조15년

  윤지충은 진사 시험에 합격한 양반계층 신분으로 1784년 서울에 갔다가 김범우의 집에 들러 《천주실의》와 《칠극》을 얻어 고향에 돌아와 그의 외종형되는 권상연과 함께 서학을 연구하던 중 둘이 입교하였다. 정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은밀하게 신앙을 유지했고 1790년 말 윤유일을 통해 전달된 북경주교의 조상제사 금지령에 따라 조상제사를 폐지하고 그 신주들을 땅에 묻었다. 그러나 1791년 여름 그의 어머니 권씨가 별세하게 되었는데 상례에 제사를 지내지 않고 신위마저 만들지 않은 것이 중앙에 알려져 윤지충과 권상연은 진산군수에게 체포되어 “멸륜패상”, “무군무부”의 난행을 범한 죄목으로 사형이 선고되어 1791년 12월 8일(음 11월13일) 전주 풍남문 밖 형장에서 참수되었다.

  7. 신유박해(1801년1월10일, 음력)

  1799년 정조가 승하하고 뒤를 이어 순조가 즉위했으나 나이가 11세에 불과해 순조의 증조모이자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었다. 노론 벽파에 속한 정순왕후는 남인시파에 눌린 한을 풀기 위해 야기된 정치적 갈등의 배경에서 신유박해로 표현되는 천주교 박해가 1801년 대규모 교난사건이었다. 1800년 11월 하순 국장이 끝나자 1801년 1월10일(음)에 각 고을 수령들에 오가작통의 법을 만들어 다섯가정이 서로 감시하게 하여 사학을 따르는 자가 있으면 수령에게 보고하여 개심케 해야하고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국법이 있으니 싹도 나지 않게 뿌리 뽑아 버리라는 지시를 하였다. 이때 이가환,정약용, 이승훈, 홍낙민, 권철신, 홍교만, 정약종등이 체포되어 참수되거나 유배되고 옥사 당했다.

  많은 사람이 순교 당하자 주문모 신부는 교인들이 피해를 줄일 목적으로 의금부에 자수하자 그 동안의 행적이 밝혀져 그를 숨겨주거나 도와 주었던 사람들이 처형 당하는 엄청난 박해가 일어났으며 이때 희생된 천주교인의 수는 3백명이 넘는다.

  8. 기해박해(1839년, 헌종 5년)

  이지연을 비롯한 풍양조씨 세력이 순원왕후에게 천주교 처벌을 끈질기게 요구하여 이를 물리치지 못한 순원왕후의 박해령 포고로 시작되었다. 오가작통법 실시를 골자로 한 이 교서가 발표되면서 전국적으로 교인 체포가 실행되고 잡혀온 교인들에 대한 심문과 처형이 실시되었다. 5월24일 남명혁, 권득인, 이광헌, 박희순, 이아가다, 김업등이 처형되고 김순성이란자가 배교함으로 많은 사람이 체포되고 앵베르 주교까지 체포되고 모방․샤스땅 신부도 자수하여 체포당했다. 세명의 신부는 심문을 받은후 9월21일 새남터에서 처형되었다. 그 이튿날에는 장하상, 유진길이 서소문 밖에서 처형당했고 그외에도 많은 사람이 처형당했다. 그해(1839) 11월에 정부는 <척사윤음>을 반포하여 정부 처사의 정당성을 백성에게 선전하였다. 이 무렵에 기록된 《기해일기》에 따르면 참수된 순교자가 54명, 옥중에서 죽은 자가 60여명에 이르며 배교하고 석방된 자가 4,50명에 이른다.

  9. 병인박해(1866년, 고종3년)

  병인박해는 종래 천주교 박해의 원인이 되었던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루어졌다. 또한 정치 세력간의 갈등에 의한 정치적 요인에다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에 의한 위기의식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일어난 박해였다. 앞에 있었던 박해는 1, 2년 사이에 마무리되었으나 병인박해는 1866년에 시작되어 1873년 대원군이 실각할 때까지 무려 8년간 계속되었으며 그 범위는 한반도 전역에 미쳤으며 8년간 순교한 교인 수는 대략 8천-2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박해가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천주교회가 한반도 전역에 넓게 확산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10. 토마스와 제너럴 셔어먼호 사건(1866년 9월2일 토마스목사는 27세에 순교)

  대원군이 쇄국정책을 펴고 있는 동안 한국 개신교사에서 ‘첫 순교’의 영광된 자리를 차지한 영국의 선교사 토마스목사이다. 그들이 타고 온 선박의 이름을 따서 ‘제너럴 셔어먼호 사건’ 이라 한다.

  토마스는 북경에 체제하면서 조선의 동지사와 친숙한 교제를 나누었고 기회만 되면 한국에 가려고 하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제너럴 셔머언호가 한국을 향해 떠난다는 것을 알고 복음을 전할 목적으로 승선하였다. 이 배는 미국 프레스톤 소유로서 중무장한 일종의 상선이었다. 1866년 8월 9일 지푸를 떠나 한국을 향했다. 대동강을 통하여 평양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한국측과 긴장이 고조되었고 통역으로 승선한 토마스는 한국의 문정관에게 목적지는 평양이며 통상을 원한다고 하고 천주교인 학살을 문책하기도 하면서 그들이 목적이 야소교를 전파하려는 데 있음도 밝혔다. 처음에는 양식과 땔감을 요구하던 그들에게 친절을 보이던 한국측도 중군 이현익을 억류시키고 제너럴 셔머언호에서 대완구와 조총을 쏘아대자 평양성의 백성들과 장졸들은 강변에 운집하여 중군을 방면을 요청하는 한편 돌덩이를 던지며 활과 총을 쏘았다. 며칠동안 더 버틴 제너럴 셔머언호는 양각도 모래톱에 좌초되고 토마스 일행은 배에서 내려 살려 달라고 했으나 분격한 군민들이 그들을 결박, 타살하니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다.

  1866년 9월2일 토마스는 27세의 나이로 평양의 대동강 가에서 피를 흘렸다. 이때 토마스에게서 한문 성경을 받았던 한 사람이 뒷날 선교사 마펫을 찾았다는 일화는 그의 최후가 어떠했으리라는 것을 암시해 준다.

  11. 한국개신교 최초의 세례자 및 신앙공동체 형성(1879)

  로스에게서 성경과 소책자를 받아 간 그 상인은 그것을 자기 아들과 그 친구들에게 주어 읽게 하였고 이들이 바로 뒷날 한국개신교 최초의 수세자들이 되었다. 그 상인이 바로 백홍준의 부친이었다.

  로스는 어학교사를 얻고자 여러 차례 시도한 끝에 의주 상인 이응찬을 만나 한국어 공부를 하였고 이응찬과 한두명의 도움으로 1878년 봄까지 요한복음과 마가복음을 번역하였다. 그뒤 이응찬이 귀국하자 로스는 서상륜을 만나 누가복음을 번역한 후 서상륜은 세례를 요청하였으나 확고한 신앙인으로 성장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고 1879년에 한국교회사의 길이 기억될 백홍준과 이응찬을 비롯한 4명의 한국인이 매킨다이어로부터 세례를 받았고 이에 따라 한국개신교 최초의 신앙공동체가 형성하기 시작했다.

  12. 성경번역과 출판, 신약전서인《예수성교젼셔》(1877)

  한국의 쇄국으로 인해 선교사들이 들어갈 수 없는 상황에서 로스는 머지않아 선교의 문이 열릴 것을 믿으면서 성서공회의 지원을 받아 출판하게 된다. 로스가 이응찬의 도움으로 번역을 시작한 1877년부터 신약전서인 《예수셩교젼셔》가 간행되는 1887년까지의 10년의 기간을 두고 볼 때 우리는 앞날을 내다보는 그의 신앙적인 안목으로 1886년까지 계속되었고 네 시기로 나눌수 있다.

  첫째는 로스가 이응찬을 만난 1874년 가을부터 《Corean Primer》가 간행되는 1877년 여름까지의 준비기이다.

  두 번째는 이응찬에 의해 요한복음 번역이 착수된 이래 6-7명의 한국인 번역자와 로스가 《신약전서문리》를 대본으로 하여 마태복음에서 로마서까지 번역하였다.

  세 번째는 번역이 진척, 수정되는 시기로 1879년 5월부터 1881년 5월까지 2년 동안이다. 1879년에는 신약번역이 일단 완성되었으며 1880년에는 그리스어 성경 참고하여 번역을 검토하는 등 일대 진전을 가져왔다.

  네 번째는 《예수셩교젼셔》가 완역되는 시기로서 번역과 동시에 출판이 출판이 이루어진다. 로스가 귀국한 1881년 6월부터 1886년 가을부터 봉천의 심양문광서원에서 번역이 진행되었다.

  이 책의 번역이 로스에 이루어졌지만 그 실제 번역이 한국인 개종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13. 1883년 4월 29일 한국인으로서 일본에서 세례받은 개신교 신자(이수정)

  미국선교사 녹스에 의해 2시간 동안 세례문답은 진행되었으며 1883년 4월 29일 주일에 야스가와 목사 입회하에 노월정교회에서 이수정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이수정은 도일 7개월만에 한국인으로서 일본에서 세례받은 첫 개신교 신자가 되었다. 이수정은 세례받은 그 해 크게 부흥하기 시작한 일본교회는 5월 8일부터 5일간 제3회 전국기독교도 대친목회를 동경에서 열었고 한국어로 공중기도를 하였으며 요한복음 15장을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종으로 자신의 신아을 고백하였다.

  14. 1884년 9월 22일 한국에 상주하는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알렌

  알렌이 도착하기 전에 상당수의 외국인들이 한국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의사가 필요하였기 때문에 알렌의 도착은 매우 환영받았던 것이다. 선교사의 신분이 여러 가지 제약이 있어서 알렌은 영국 공사관의 공의로 임명되었고 여러 외국 기관들의 부속 의사로 봉사하였다. 미국공사와 외국인들의 신임을 쌓아가면서 그리고 한국 정부의 묵인 아래 그는 개척 선교사로서 자신의 임무에도 노력하였다.

  15. 1890년 9월 29일 영국성공회 선교사 한국 초대주교 코르프

  영국성공회선교회는 재정적인 어려움이 많아 울프는 영국의 대주교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서한을 냈고 이에 벤슨 대주교는 1889년 11월1일 영국해군 군종사제 출신인 코르프신부를 초대 한국주교로 서품하여 영국성공회의 첫 번째 한국 선교사로 파송하였다.

  16. 1907년 성결교회의 모체인 동양선교회의 한국선교 시작

  1902년 미국인 전신기술자 출신으로 일본에 와서 선교하던 카우만과 킬보른에 의해 창설된 동양선교회는 토오쿄에 성서학원을 설립해 전도인을 양성하고 있었는데 바로 이 학원에 한국인 김상준,정빈이 다니며 동양선교회를 접하였다. 1907년 5월 30일에 이 학원을 졸업한 두 사람은 곧바로 귀국하여 서울 종로 염곡에서 집을 세내어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 이란 간판을 붙이고 전도하기 시작했다.

  1921년에 이르러 ‘복음전도관’이란 명칭을 버리고 ‘성결교회’란 명칭을 사용함으로 정식 교회 조직을 갖추었다.

  17. 1907년 1월 6일 대부흥운동 시작(장대현 교회)

  장대현 교회 부흥운동 전국적으로 확산  2월:광주 숭일학교 설립  3월5일:업랜드 한인장로교회 설립 

5월3일:동양 선교회 한국선교시작  5월30일: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 설립  6월:헤이그 밀사사건, 감리교 상동교회에서 협의  7월:협성신학당 설립(존스 교장)  9월17일 대한노회(대한예수교장로회 독노회)조직 

10월7일:워너메이커의 기부금과 현흥양의 기지 제공으로 YMCA회관 건립  10월:평양 조합교회 설립;고퇴 사용 시작(장로교 총회); 함흥 영생학교, 강계성경학교, 정주 오산학교 설립; 개성 남성병원 설립; 대한예수교장로회, 신경제정; 평양신학교, 장로회신학교로 개칭하고 제1회 졸업생 7인배출, 장로교 초대목사 안수; 이기풍목사, 제주도 선교사로 파송결정

  18. 1884년에 일어난 사건

  6.20 리델 주교 별세; 블랑, 제7대 조선주교로 취임; 일본 주재 미 갈리회 선교사 매클레이, 한국방문, 고종을 알현하고 의료및 교육사업의 실시에 대한 윤허를 얻어냄; 9월:미북장로회 의료선교사 알렌, 한국주재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로 내한;  12월: 알렌의사, 갑신정변시 부상당한 보수계 거두 민영익을 서양의술로 완치시켜 왕실의 신망 얻어냄; 이수정, 토를 단 한문 신약성서(복음서와 사도행전)를 요코하마에서 발행에 이어 마가복음과 사도행전 한글번역 완료; 로스 목사 서간도에서 한인 75명에게 세례줌, 황해도 소래교회 설립, 로스목사 6천권의 복음서를 외무협판 독일인 묄렌도르프를 통해 서상륜에게 전달

  19. 1887년에 일어난 사건

  9월27일 언더우드, 새문안교회 설립, 9월:서병호의 아들 한국인 최초의 유아세례, 9월:천주교, 교회지도서를 공포함, 10월9일:아펜젤러, 정동교회 설립, 평안도 지방 순회 전도, 서울 용산에 예수성심신학원 개설, 부흥골신학당을 서울 용산으로 옮김, 언더우드, 아펜젤러, 스크랜튼, 헤론 등 성서번역위원회를 조직, 만주에서 로스 목사와 한국인 번역자들에 의한 신약전서 완역

  20. 1888년에 일어난 사건

  1월:이화학당 내 여성교회 시작, 4월28일:미국 공사관 등에 기독교 금교령 통고, 알렌 선교사 설득으로 한.불수호조약 중의 ‘교회’라는 문구가 포교허용을 의미한다는 해석으로 해결됨, 6월:조선 천주교회, 예수성심께 봉헌하는 예식을 성대히 거행함, 7월19일:샤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4명 입국(한국 최초의 카톨릭수도원)  12월15일:게일 선교사 부산 상륙, 미감리회 최초의 성경반 조직, 윤치호, 미국의 밴더빌트대학 신학부에 입학, 천주교 신부들, 상복을 벗고 성직복을 입게 됨, 일본 나가사키로부터 성서출판소를 한국으로 옮겨옴

  21. 1891년에 일어난 사건

  3월:오스트레일리아장로회 부산선교부 개설, 신축된 2층 양옥의 용산 예수성심신학원이 축성됨, 《셩모병원》발행, 마펫, 게일 선교사, 만주 봉천 전교여행시 로스 목사와 상면하였고 서북지방 순회전도, 의주에 조직교회 설립, 부산 초량교회 설립, 아현 감리교회 설립

  22. 1894년에 일어난 사건

  1월8일:마펫, 7인에게 세례주고 평양 널다리골교회(장대현교회)설립, 4월7일:평양에서 전도인 한석진,김창식 일시 투옥됨, 4월:광성학교 설립, 미남감리회 리드 선교사 고종 알현, 남감리회 선교 개시, 평양 맹아학교 시작, 동학혁명에 이은 청일전쟁으로 교회가 피해를 입음, 숭덕학교설립, 연동교회 설립, 곡산읍교회 설립, 탄포리교회 설립,

  23. 1896년 일어난 사건

  1월:대구제일교회 설립  10월11일:대원군의 부인 민부대부인, 마리아라는 영세명으로 세례를 받음 

10월:영국성서공회 조선지부 설립, 복음서,사도행전 등 2만6천부 발간, 황해도지역 교회, 천주교회측과 심한 마찰 박해당함, 최초의 기독학생운동체인 협성회(서재필)조직, 감리교 신학회 조직, 그리스도인의 집회소(플리머드 형제단), 선교 시작《구셰요리》발행, 문천교회 설립(함남), 삭주읍교회 설립, 전주서문교회 설립, 구연영, 을미의병 일으킴, 평양 제중병원 설립

  24. 1899년에 일어난 사건

  2월:황해도 황주교회 불량배에 의해 소실,  3월9일:뮈텔, 정준시, 교민조약체결  11월:대구 동산기독병원 설립(대한크리스도인회보)간행,  에비슨 의사, 미국인 세브란스의 기부금으로 남대문 밖에 종합병원과 의학교 건설, 서울 남대문교회 설립, 공옥학교설립, 정의여학교 설립, 의주 양신학교 설립, 황성신문 불입천교사건 발생, 《요한공부》《구약촬요》《복음찬미》《평민의 복음》발행

  25. 1902년에 일어난 사건

  전주 기전여학교, 군산 멜볼단여학교, 전북 기독교교육원 설립, 미감리회 수원선교부 개설, 군산 영명학교, 목포 정명여학교 설립, 미감리회의 아펜젤러 목사, 서기 조한규와 함께 성서번역위원회 참석차 목포로 가던 중 해상 조난 순직

  26. 1903년에 일어난 사건

  7월:하와이 목골리아 농원에서 최초의 재미 한인교회 시작  8월7일:신민회(하와이)창립  9월23일:친목회(재미한인)조직  10월23일:대구 신명여학교 설립  10월28일:황성기독교청년회(YMCA)발족  10월:평양 숭의여학교 설립  11월19일:원산 루씨여학교 설립,이화학당 내 러빙 소사이어티 조직,원산부흥운동 시작, 미감리회, 공주선교부 개설, 보구여관 내 간호원 교육기관 창설, 함흥 영생여학교 설립, 목포 영흥학교 설립, 부산 정근기념병원 설립, 수원 매향여학교 설립, 벽동읍교회 설립, 평양 남문밖교회 설립, 수원 삼일학교, 강계 명신학교 설립, 함북 경성읍교회 설립, 미감리회 영변선교부 개설, 러시아 정교회 한국교회 설립

  27. 1911년에 일어난 사건

  1월1일: 안악사건(안명근 사건)발발  2월: 선천성경학교 설립, 경성성서학원(서울신학대학 전신)설립,

4월: 《구약전서》발간으로 한글 성서 완역 《성경전서》발행  8월2일: 조선 교회지도자 일본시찰단 방일,  9월: 데라우찌 암살음모사건 조작으로 기독교계 지도자 검거 시작(105인 사건)  10월11일: 전라노회 조직  12월4일: 경충노회 조직  12월6일: 경상노회 조직  성결교《복음가》, 안식교《찬미가》발행

  28. 1912년에 일어난 사건

  1월: 전남,전북,평북의 자유교회, 조합교회에 가입  1월18일: 평남노회  1월29일: 함경노회 조직  2월1일: 한국교회 주일학교위원회 설립  2월15일: 평북노회 조직  9월2일: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구성 제1회 총회를 개최함  12월: 대영성서공회 건물 신축, 재한복음주의 선교협의회 결성, 여호와의 증인 한국전도 개시, 디뉴바한인 장로교회 설립, 남장로회, 순천선교부 개설, 캐나다장로회, 용정선교부 개설, 피어선성경학교 개교, 한국 장로회, 산동 선교계획, 캐나다장로회, 회령선교부 개설, 개연회조직운동, 미국에서 열린 세계 감리교 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

  29. 1914년에 일어난 사건

  3월: 이화학당 대학과 제1회 졸업식  4월2일: 조선 기독교 청년연합회 발족  4월30일: 성공회, 성미가엘신학원(천신신학교 전신)설립,  8월: 남감리회 한국 선교연회 구성, 봉천서탑교회 설립, 성 유스티노신학교(대구, 천주교)설립

  30. 1915년에 일어난 사건

  3월5일:연회전문학교(경신학교 대학부)개교,3월23일에 개정 사립학교 규칙의 공포로 기독교 학교의 탄압가증  5월16일:샌타아나 한인장로교회 설립  7월18일:대구 남산교회 설립  10월3일:감리교 최초의 장로목사 김홍순,정춘수,양주삼 안수  12월7일:협성신학교 내에 갬블기념당 설립, 부산진 남자신학교 설립, 순천 안력산 병원 설립, 오기선 목사 일본 선교, 장,감 양교파 3년마다 교대로 일본에 선교사 파송키로 결정함

  31. 1916년에 일어난 사건

  2월:신학세계 발간  5월1일:구세군 여자관 설립  6월22일:장로교 경남노회 조직  11월:만주 용정 제창병원 설립  12월27일:경북노회 설립, 교회지남 창간, 광주 중앙교회 설립, 재령 서부교회 설립, 서울 혜천원 설립, 중앙유치원 설립, 기전여학교 결사대 조직, 구세군 무료 급식 실시, 블라디보스톡에 파견한 장로교회의 최관홀 목사가 희랍 정교회로 이명해 감으로 장로교 총회는 그를 제명함, 대구 나병원 설립, 평양 여자고등성경학교 설립, 감리교 손정도 목사 퇴거 명령으로 시베리아 선교 중단

  32. 1917년에 일어난 사건

  2월13일:산서노회 설립, 9월1일:장로교 방효원,홍승한,산동성에 제2대 선교사로 파송  9월17일:전남노회 설립  10월2일:맨티카 한인감리교 선교회 설립  10월10일:전북노회 설립  11월20일:함북노회 설립  11월:이광수,기독교 비판론 대두,북장로회 홍경선교부 개설,러시아정교회,한국선교 단절, 금강산에서 「대진경교유행중국비」모사품 발견

  33. 1918년에 일어난 사건

  3월26일:조선예수교 장․감연합협의회 창립  3월27일:함남노회 설립  3월:〈신학지남〉창간  7월:조선기독교회의 분립, 김장호 목사를 장로교회에서 정직, 그와 관련된 선교사 커 출국  9월:박상순을 산동에 김현찬목사를 시베리아에 각각 파송 선교 재개  10월11일:중앙보육학교(중앙대학 전신)시작  10월:동아기독교회의 박노기,김희서,김영태,최응선 시베리아에서 순교  11월27일:의산노회 설립  12월30일:서울 후생학원 설립  12월:선천 창신양로원 설립, 미감리회 해외 선교회 창립 100주년 기년사업,〈성경잡지〉창간, 《장로교회사전휘집》발행, 이일성경학교(광주)설립,전주여자성경학교 설립,홍경성경학교 설립,남감리회 선교연회를 연회로 조직

  34. 1919년에 일어난 사건

  1월:〈선교백주년기념회보〉,〈주일학계〉,〈선민〉창간  3월1일: 3.1운동에 한국 교회 대거 참여 교회와 교인 일제의 탄압으로 큰 피해  3월3일: 강서교인 학살 사건  3월6일: 서울 십자가형 사건, 곽산교회 교인 학살 사건  4월:상해임시정부 수립  4월14일:재한 일본조합 기독교회 3.1운동을 비난, 총독부를 옹호하고 나섬  4월15일:수촌교회 방화 사건, 제안리교회 방화 사건  6월:대한민국 애국부인회 결성 

8월30일:시카고 한인교회 설립  10월: 장로교총회 선교사에게는 총회에서 언권만 주기로 결정함 

11월:대한애국부인회 결성, 간도교회 박해 사건, 정주읍교회 방화 사건, 경성 고아 구제회(안양 기독교육원 전신, 오긍선)설립, 평양신학교 무기휴학

  35. 1920년에 일어난 사건

  3월: 일제의 사립학교령 개정으로 개독교 학교에 대한 탄압이 표면적으로는 일부 완화됨  4월7일: 개정포교규칙 공포  4월10일:안동성경학교 설립  4월: 대전중앙교회(성결교회)설립  6월26일: 조선교육회 조직  7월30일: 조선물산장려회 발족  8월24일: 미국 국회의원 시찰단 환영회 사건  8월25일:천주교 원산교구 분립, 성 베네딕투스회의 관할, 사우에르 주교 초대 교구장, 덕원신학교와 수도병원 건설, 박치의, 선전경찰서 폭파  9월: 감리교협성여자신학교 설립  10월23일:〈새동무〉창간, 이화학당 7인전도대 조직,고려기독교청년회(북경)창설, 금주동맹회 결성, 범 태평양협회 조직, 남만노회 설립, 한국교회 공창폐지운동 시작, 〈복음신보〉〈플리머드형제단〉창간, 평양 연합 기독병원 설립

  36. 1921년에 일어난 사건

  3월1일: 천주교 서울 교구의 드브레 부주교 형성됨, 4월: 태화여자사회관 설립  4월24일: 여자복음회(개천) 결성  5월: 대구 계성학교 동맹휴학사건  8월31일: 기독교창문사 설립  9월1일: 조선조합교회를 유일선이 조선회중교회라고 칭하여 일본조합교회로 부터 독립 조직  9월23일: 예수교연합회, 동서 음악 대연주회 개최  11월1일: 제1회 조선 주일학교 대회 개최  12월1일: 간도노회 설립, 마탄자스 한인감리교회 설립, 뉴욕 한인교회 설립, 오오사카 한인교회 설립, 평양고아원(박경석)설립, 기독교 청년회(YMCA), 일본을 거치지 않고 단독으로 세계YMCA연맹에 가입, 김득수목사 만국기독교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

  37. 1922년에 일어난 사건

  1월: 평양노회및 안주노회 그리고 평서노회 설립  3월5일: 스톡턴 한인감리교회 설립  3월: 북간도 용정중앙교회, 영신중학교 설립  4월: 세브란스 연합의학전문학교 본과외에 연구과 선과 및 별과 신설

11월1일: 조선 주일학교 연합회 조직, 세계 주일학교 협회에 가입  11월: 〈활천〉〈신생활〉창간, 신생부인회(성결교)조직, 구세약방(홍성)설립, 개성 고려 여자관 개관, 최병헌의《만종일련》발행, 조선 예수교 장로회 헌법 제정, 한국에서 여름성경학교 처음 시작, 청주성경학교 설립, 세계 기도일 한국 소개, 리들리 한인 장로교회 설립, 조선 기독교 회중교회 정식으로 설립

  38. 1923년에 일어난 사건

  1월31일: 시베리아노회 설립, 5월10일: 메리놀 외방전교회 한국 선교 개시, 선발대 번 신부일행 내한  7월16일: 〈신생명〉창간  8월: YMCA연합회 조직  9월: 조선기독교 여자절제회 창설  11월: 공창폐지위원회 구성  11월6일: 평양 숭실중학교 교직원, 지정학교 승격과 교원 자격 문제로 총사직, 조선기독교회 분립, 인천 기독병원 시작《남감리교회 도리와 장정》 이대영 목사 중국 산동성에 선교사로 파송됨, 전국 성결교 수양대회를 서울성서학원에서 개최, 평양여자신학교 설립

  39. 1924년에 일어난 사건

  3월: 일본 니시노미아에서 조선예수교회 제1차 신도대회 개최, 3월1일: 소년척후단, 서울YMCA 보이스카웃과 합병, 소년척후단 조선총연맹 조직  9월24일: 조선 예수교 연합공의회(KNCC)창립, 메리놀수녀회 한국진출  12월: 면려청년회 조선연합회 창설  12월19일: 경기노회 설립, 성결교회 만주 선교 시작, 성결교 교역자회 창설, 장.감의 전도분계위원회, 만주의 선교 구역 조정

  40. 1925년에 일어난 사건

  1.20: 충청노회 설립  3: 뮈텔, 한국 최초의 명의대주교로 임명됨  4.23: 이화학당 대학과가 이화여자전문학교로 개편  6.11: 〈쥬일세계〉창간  6: 〈천래지성〉창간, 캐나다 개신교회 연합 연합교회로 발전, 캐나다 장로교 한국선교회 캐나다 연합교회 한국선교회로 개편, 일제 서울 남산에 조선신궁 완공  7.5: 기해, 병오교난 순교자 79위 복자시복(로마 교황청)  7.25: 원산 YMCA설립  9.1: 〈진생〉(주간 유형기)창간  9: 남 감리회 선교부, 서울 중앙전도관 설립  10.4: 함중노회 설립  10.25: 한양청년동맹 반기독교대강연회 개최하려다 무산  12.28: 조선기독교계 대표자협의회 개최, 한국교회, 몽고 선교 시작, 〈주일학교신보〉창간, 선천 대동고아원(이병준)설립, 순천성경학교 설립, 게일 역 《신구약전서》발행, YMCA서울 근교에서 간이 농사 강습과 위생 강화 순회 봉사 실시

  41. 1926년에 일어난 사건

  2.18: 기독교 연구회 조직(신흥우)  3.1: 〈아희생활〉창간  4.26: 조선예수교 종교교육연구회 조직  6.10: 천세봉목사 만세 사건  10.23: 반기독교대회 개최(공산당)  11.7: 구세군 한인 사관, 서양인과의 차별 대우에 항거  11.20: 구세군 사관생 28명 퇴학 처분  12.14: 크리스마스 및 신년 축하 특별외국전보 규칙 공포, 미국 오순절교회 한국 선교 시작, 최태용 무교회주의운동 시작

  42. 1927년에 일어난 사건

  2: 사관(구세군)창간  4: 〈천주교회보〉창간, 신의주 서부교회(성결교)설립  5; 토마스목사 순교 기념 전도회 설립  7: 〈성서조선〉〈별〉창간, 김교신, 무교회주의 성서연구회 창립  8.1: 경성 양로원 설립  9.21: 언더우드 기념비 제작(새문안교회)  10.25: 사카이 한인교회 설립  11.26: 번 주교 초대 평양 교구장에 착좌

  43. 1928년에 일어난 사건

  1: 마산예수교회 설립  9:《조선예수회장로회사기(上)》발행  9.19: 미산리천주교회 김대건 신부 묘소에 기념 성당 건립  10.15: 이화,숭실,세브란스,연희 등 4개 전문학교 제1회 전문학교 대음악회 개최

12: 목포 공생원 설립,《조선기독교급외교사》발행(이능화), 오순절교회 한국 전도 본격 시작, 장로회 여전도회 전국연합회 조직

  44. 1929년에 일어난 사건

  1.25:〈주일학교선생〉창간  2: 성결교회 제1회 연회 개최  5: 전국 기독교인 유지들 망라한 신우회 조직, 6.14: 〈농민생활〉창간  9: 미성년자 음주 흡연 금지법 실시  10.7: 용천노회 설립,《한국개신교사》(백낙준)발행, 숭실학교 애국가 사건, 대한청소년성경구락부 시작, 면려주일 결정

  45. 1930년에 일어난 사건

  1: 종교교육 창간  2: 아동성경구락부 창설  3.20: 《조선감리교회 30년 기념보》발행  6.1: 조선성서연구회 조직  11.14: 제주노회 설립  12.2: 남북감리교회 합동「기독교조선감리회」발족(초대 총리사 양주삼), 기감, 동부, 중부연회 조직  12: 감리교 총리원 설립, 딜라노 한인감리교회 설립, 《부흥성가》성결교에서 발행

  46. 1931년에 일어난 사건

  1.23: 〈절제〉창간ㄹ  2.5: 기독교면려회 처음 조직(안동읍교회)  6.14: 한국에서의 최초 여자 목사 안수(기감, 여선교사들), 감리교 서부연회 조직  9.11: 금강산 기독교 수양관 봉헌  9: 《점자 마태복음》발행(박두성), 천주교 조선교구 설정 100주년 경축대회  12.14: 감리교 만주선교연회 조직, 《신정찬송가》발행(장.감 연합), 조선교구 초대 교구장 브뤼기에를 주교 무덤을 만주 요동에서 용산의 성직자 묘소로 이장함

  47. 1936년에 일어난 사건

  1.16: 평남 평양 각 기독교단체에 신사참배 여부 확답 강요  1.20: 숭실전문학교장 매큔 신사참배 거부로 전문학교장 중학교장 인가 취소  1.21: 숭의여학교 신사참배 불참선언, 1.22: 스눅 교장(숭의) 인가 취소  5: 한국천주교회 신사참배결의  11: 하나님의 교회 공의회 창립, 한국 최초의 《아동찬송가》(현제명)발행, 감리교 선교 50주년 기념비 정동교회에서 제막, 장.감 선교 구역제 철폐, 경중노회,경서노회에서 이탈, 숭실전문 숭실중학 숭의여중 경영권 이관, 안식교회에서 서울에 위생병원 설립, 성결교회에서 하나님의 교회 분열, 구약성서개역 발행

  48. 1938년에 일어난 사건

  1.17: 미북장로회 본부 연희전문 세브란스의전의 공동경영에 협력키로 결정  2.9: 평북노회 신사참배 결의  2.13: 평양신학교 교수 박형룡 외 학생 7명 신사참배 반대로 구속  5: 친일단체인 경성기독교연합회 조직, 흥업구락부 사건  9.10: 장로회 총회 신사참배 결의 10: 한국감리교 신사참배 실행  12.27: 조선성서공회 발족, 평양장로회신학교 폐쇄, 〈기독신보〉자유주의적이라고 폐간, YMCA해산, 주일학교전국연합회 세계연맹에서 탈퇴

  49. 1940년에 일어난 사건

  1.15: 《점자신약전서》완성  2: 평양신학교 총독부 인가  4: 조선신학원 경기도지사 허가로 숭동교회에서 개교  9.20: 반전, 반참배, 비밀결사운동하던 기독교인 전국적으로 검거  10: 기독교조선감리회 혁신 5조항 통과  11.10: 조선장로교 중앙상치위원회 설치, 한국 구세군 구세단으로 개편  11.14: 《예수교장로회연감》발행  12.8: 감리교신학교 삐라 사건, 용문산기도원 설립, 삼각산기도원 시작, 외국선교사 추방 시작, 평양천주교 성당을 일본군 막사로 징발

  50. 1941년에 일어난 사건

  1: 평북지방 일부 교회에 주일예배 폐지 강요, 교회당을 가마니공장으로 징발  2: 〈교회지남〉폐간, 예산제일교회 학생속회 사건, 화북노회 설립  2.28: 세계평화기도문 사건 발발(미, 영국 부인 선교사 등 15명 구속)  5.21: 연희전문학교 이사회 일제의 강압에 의해 재미협동이사회 보조금 거부 결정  10: 감리교회의 개혁안 선언  12.31: 기독교 조선감리회 청년연합회조직, 봉천신학교 설립, 조선기독교청년연합회 결성, 조선예수교장로회 애국기헌납기성회 조직, 감리교 각 연회 해산하고 기독교 조선감리교단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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