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 창 5:22-24절
제 목 :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일 시 : 2013년 2월 8일
창5:22-24/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23 그가 삼백육십오 세를 향수하였더라 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창6:9-10/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10 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가 천국에 들어가는지 아십니까? 그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과 동행했던 사람들입니다. 일생을 하나님과 동행했던 사람들만이 천국에 들어갔고 나머지 사람들 즉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았던 종교인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좁은 문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은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날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에녹이 그러했고, 노아가 그러했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이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구약의 선지자들과 주님의 12제자들이 그러했고, 사도 바울이 그러했으며, 신약시대의 선지자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눅13:28/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말씀에 따르면 누가 하나님의 나라에 있다고 했습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모두가 선지자였습니다. 선지자란 프로페테스(profhvth")라고 하는데 미리 말하는자(예언자), 영감으로 말하는 자, 선지자, 선포자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선지자는 미래를 예언할 수 있고, 사람의 과거를 알 수 있으며, 그가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통찰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식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술사나 점쟁이가 아니었습니다.
행11:28/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가 크게 흉년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고 했습니다. 아가보는 선지자였습니다. 그래서 장차 세상에 큰 흉년이 든다는 사실을 예언했고 글라우디오 때에 예언이 이루어졌습니다. 선지자는 미리 말하는 자이며 예언자입니다.
요4:16-19/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17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19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 하자 내가 보니 당신은 선지자입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선지자는 사람의 과거를 알 수 있습니다.
눅7:39/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이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더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고 했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는 그가 만나는 사람의 마음을 통찰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항상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엘리야 선지자나 엘리사 선지자라고 해서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알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고, 보여 주시는 것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늘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기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선지자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선포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입니다. 선지자들은 천국과 내세를 바라보았던 사람이기 때문에 세상을 초월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것에 순종하느라고 세상 것을 버려야 했으며, 그 시대 사람들에게 욕을 먹거나, 메를 맞기도 하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핍박을 받았습니다. 선지자들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던 자들입니다. 정치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지자 세례 요한은 헤롯 왕이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고 회개를 외치는 바람이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나중에는 헤롯의 아내가 되었던 헤로디아의 음모로 목 배임을 당하여 순교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다고 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선지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즉 이 땅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그것을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했으면 그의 삶이 어떠하든 관계없이 죽으면 천국에 들어가고, 죽으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위험한 생각입니다. 이 땅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이 땅에서 예수님과 교제하고, 이 땅에서 예수님과 동행하고, 이 땅에서 예수님을 경배하는 자들만이 천국에 들어가서 예수님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녹을 살아 있는 상태로 천국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만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없기 때문입니다. 엘리야 선지자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채로 하늘로 들림을 받았습니다. 왜 하나님은 엘리야를 그렇게 천국으로 데려가셨을까요? 그는 선지자의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선지자의 삶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고 하나님의 동행하는 삶을 산다면 누구든지 선지자가 되는 것입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은 선지자의 삶을 살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에녹이 처음부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산 것은 아니었습니다. 65세 때 아들 므두셀라를 낳고 난 후부터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창세기 5장을 보시면 아들을 낳기 전과 낳은 후의 그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에녹의 삶이 그렇게 달라지게 된 데에는 분명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녹에게 므두셀라를 주시면서 심판의 경고를 주셨습니다. 므두셀라라는 이름의 뜻은 그가 죽을 때 심판이 온다는 뜻입니다. 너의 아들 므두셀라가 죽으면 세상에 심판이 온다고 말입니다. 에녹은 자신의 아들 므두셀라가 죽는 순간 세상에 심판이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종말의식이 에녹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언제 하나님 앞에 서야 할지 모르는 긴박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루도 긴장을 풀 수가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날마다 죽음을 준비하며 하나님 앞에 서야 할 것을 준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렇게 종말의식 때문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의 삶은 어떤 삶이었을까요? 아마도 날마다 기도하는 삶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날마다 기도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매일 그렇게 살다 보니까 그의 삶은 점점 더 거룩하고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삶이 달라지니까 그 시대를 살고 있는 경건치 않는 사람들의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경건함을 잃어버리고 사는 그 시대의 사람들을 향하여 선지자적인 외침을 외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1:14-15/아담의 칠 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15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에녹이 예언을 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예언한 것을 보시면 에녹 시대에 벌써 다시 오실 예수님께서 수 많은 천사들과 함께 세상에 임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신 목적은 뭇 사람을 심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즉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는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에녹의 예언이 거짓이 아니고 진실할진대 우리는 에녹과 같은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경건치 않는 이란 아세베스(ajsebhv")라고 하는데 그 뜻은 경외하지 않는, 불경건한, 사악한 이라는 뜻입니다. 경건치 않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사악함입니다.
에녹의 예언에 따르면 하나님은 경건치 않는 모든 사람들의 말과 삶을 심판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에 순종하는 경외하는 자들을 축복하시고 자신을 경외하지 않는 자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에녹의 경건함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의 경건치 않음을 심판하신다는 종말의식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려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날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선지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며 세상을 따라 가는 자가 아니라 선지자로서 살아야 합니다. 그냥 입으로 예수 믿는다고 해서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는 생각은 성경을 너무나 오해한 것입니다. 성경은 반듯이 순종하는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요구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그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