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2 <현대문학사> 출석수업대체시험 보충학습자료
1950년대 소설-1950년대 대표 작가의 작품 해설
*손창섭의 「비오는 날」
1953년 《문예》11월호에 발표된 손창섭의 초기 단편소설로서 6·25 직후의 부산을 배경으로 동욱 남매의 불행을 그린 작품이다. 비가 오는 음산한 풍경의 서술로 시작해 수시로 이러한 풍경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데 이는 곧 작중 인물들의 심경인 작품 전체의 분위기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즉, 이상성격자 동욱과 동옥의 절망과 무기력과 무를 그대로 나타내면서 동시에 이들 심리의 정확한 통찰을 통해 음울한 시대적·공간적 상황을 표출하는 것이다.
「비오는 날」은 어느 날 원구가 거리에서 우연히 소학교에서부터 대학 때까지 동창이며, 어린 시절 서로의 집을 오가며 친하게 지냈던 친구 동욱을 만나면서 시작한다. 그는 아직 미혼인 여동생 동옥과 함께 살고 있으며, 동옥이 그린 초상화로 미군부대를 드나들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장마가 계속되던 어는 날 원구는 처음으로 외진 곳의 낡은 목조건물에 사는 동욱을 찾아가나 동옥만이 차갑게 원구를 맞이한다. 그날 원구는 우연히 동옥이 다리를 심하고 절고 있음을 발견하고, 동욱이 매우 냉담하게 동옥을 대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 뒤 비가 와서 가게를 벌일 수 없는 날이면 원구는 자주 동욱 남매의 집을 찾곤 한다. 그러는 사이 동옥에게 마음이 끌림을 느끼고 동옥 또한 원구에 대해 친근감을 느낀다. 그리고 동욱은 원구에게 동옥을 보살펴줄 이가 자신말고는 아무도 없으며 동옥을 측은하게 생각하면서도 그녀를 보기만 하면 화가 치민다는 말을 하며, 원구에게 동옥과의 결혼 의사를 묻는다. 며칠 뒤 원구는 동욱의 초상화 주문 폐업과 동옥이 주인 노파에게 오빠 몰래 빌려준 2만환의 빚을 떼이었음을 알게 된다. 오랜 장마로 장사가 되지 않자 마음까지 산란해진 원구는 동욱의 집을 찾아가나, 새 주인으로부터 동욱은 아마도 군대에 끌려간 듯 며칠째 소식이 없고, 동옥 또한 혼자 며칠 밤을 울다가 주인이 나무라자 원구에게 편지를 남기고 떠났는데 편지는 부주의로 없어졌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얼굴이 반반하니 몸을 판들 굶어 죽기야 하겠느냐는 새주인의 말에 분노를 느끼던 원구는 결국은 그 분노가 자신에게 되돌아옴을 느끼며 돌아선다. 그 뒤부터 비가 오는 날이면 원구의 마음은 동욱 남매의 생각에 우울해지곤 한다.
*장용학의 「원형의 전설」
1962년 《사상계》에 연재되어 당시 독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는데, 그 이유는 작품의 우수성보다는 주제의 난해성이나 등장인물과 그 사건의 특이성, 또는 기법의 특이성과 이 모든 새로운 조건들이 일으키는 경이감 때문이었다. 이장(李章)은 나무에 불벼락이 내리는 순간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인물이며, 그 역시 친동생과 간음을 하고 벼락맞은 나무에 깔려 죽는다. 시종 이같은 특이한 사건과 함께 이 작품에는 형이상학적·관념적 표현이 수없이 되풀이된다. 종교, 이데올로기, 그리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개인과 국가와 세계 등 모든 것에 대해서 관념적 이론이 드러난다. 기왕의 소설기법으로 볼 때 이것은 가장 비소설적인 양식이며, 한자를 쓴 것도 일반 소설과는 다르다. 특이한 사건과 파격적인 소설기법이 난무하는 이 소설의 주제는 인간은 절대적인 가치관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인공 이장이 근친상간으로 태어났고, 또 자신이 그 죄를 범했다는 것도 미래에 가서는 죄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이같은 특이한 인물이 등장하는 것도 결국 우리는 모든 절대적 가치관의 규범으로부터 벗어나서 모든 것을 용서받아야만 된다는 인간 구제를 암시한 것이라 하겠다.
*전광용의 「꺼삐딴 리」
1962년《사상계》에 발표된 전광용의 단편소설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제목 ‘꺼삐딴’은 원래 영어 Captain에 해당하는 러시아어로서, 해방 후 소련군의 진주와 함께 ‘우두머리’ 또는 ‘왕초’라는 의미로 유행된 ‘까삐딴’이라는 말이 와전되어 통용된 것이다. 시류에 적당하게 편승해서 살아가는 카멜레온적인 인물을 모델로 하고 있는 작품은 이러한 주인공의 인간상을 냉철한 객관적인 기법으로 일제 식민지 말기와 해방, 그리고 6·25를 거치는 우리 민족상의 격동기를 배경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러므로 작가의 주관적인 설명이 거의 배제되어 있지만, 결과적으로 주인공 이인국이 상징하는 노예적, 현실추수적 인간근성을 고발하고 동시에 이같은 인간상의 배경을 이루는 우리 민족의 비극적 현대사의 단면을 보여주는 이중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간결하고 정확한 문장력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구성의 치밀성도 갖춤으로써 단편소설의 미덕을 살리고 있다. 그리고 주제적인 측면에서도 냉철한 사실적 시선을 바탕으로, 현실과 그 부조리를 고발함으로써 한국인의 끈질긴 생명력의 추구를 보여준다.
이야기의 줄거리를 짧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인국 박사는 수술을 끝내고 나오며 불길한 예감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낀다. 자신이 살아온 삶의 역정을 돌이켜보던 그는 문든 미국에 유학을 떠난 있는 딸 나미의 편지를 생각한다. 그 편지에는 기필코 미국인과 결혼하겠다는 딸의 고집이 담겨 있다. 그는 마침내 자신이 그토록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닥쳐왔음을 깨닫는다. 상대는 동양학을 전공하는 외국인 교수.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 자신이 외국인 교수 앞에서 딸의 미국 유학을 주장했고, 또한 그 외국인 교수가 한국 여성과 결혼하고 싶다고 했을 때에도 찬성했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는 백인 사위에 흰둥이 양코백이 손잘 상상하며, 입맛을 쩝쩝 다시지 않을 수가 없다. 이같은 사실을 자신의 후처인 혜숙이게 말하자 그녀는 자기와 아무 상관 없는 일이라는 듯 별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는 다시 입맛을 다시며 미국 대사관 브라운씨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집을 나선다. 차를 타고 달려가면서 그는 해방을 전후한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본다.
38이북인 그의 고향에는 해방이 되자 느닷없이 소련군이 진주해 들어왔다. 그는 착잡한 심정으로 진주군의 탱크 행력을 바라보았다. 벌써 며칠째 붐비던 그의 병원에는 이제 개미새끼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 후, 그는 친일파라는 오명과 함께 치안대에 연행되어 온갖 욕설과 구타에 시달렸다. 이러한 와중에도 그는 스텐코프라는 소련인 군의관에게 잘 보이려고 이질이 만연한 형무소 안의 환자들을 열심히 치료하는데 마침 그 군의관에게 혹이 있어 그것을 제거하는 수술을 자청해 성공적으로 마친다. 스텐코프는 퇴원하는 날 이인국의 손을 부서져라 쥐며 “꺼삐딴 리, 스바씨보”를 외치며 환대하고, 그의 하나뿐인 아들 원식을 추천해줘 모스크바로 유학보내기에 이른다. 바로 그 다음해 6·25가 터지고 남으로 내려온 그는 자신의 기술과 수완으로 상당한 지위에 오르게 되었으나 다만 아쉬운 것은 아들의 생사조차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차는 브라운 관사에 도착하고 브라운을 만나 담소를 나누는 동안 그는 브라운의 얼굴에서 자꾸 스텐코프의 환영이 겹쳐지는 것을 느낀다. 그는 브라운으로부터 자신의 미국행에 대한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뿌듯해 하며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그리고 소련군 점령하의 북한에서, 또 월남한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공에 성공을 거듭했던 자신의 과거를 생각하며, 미국에 가서도 반드시 그러하리라는 확신을 가진다.
*선우휘의 「불꽃」
1957년 7월 《문학예술》신인작품에 응모하여 당선된 중편으로 제 2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선우휘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불꽃」은 전편이 전쟁에 관련된 작품은 아니지만 그 후반이 전쟁의 제제로 되어 강렬한 인간성의 호소를 볼 수 있다. 여기서는 주인공 고현을 중심으로 한 3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현의 할아버지는 전형적인 전근대인으로서 모든 화근은 선친의 묫자리가 나쁜 탓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은 어려서부터 항일운동을 하다 죽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저항정신과 할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받은 도피사상 사이에서 방황해야만 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혹을 보고 조롱하는 아이들과 할아버지의 명예를 위해 맹렬히 싸웠으나 도리어 꾸중만 들은 현은 실망과 좌절감에 몸부림친다. 그 뒤 중학교 때, M선생을 비롯한 몇몇 학생이 행방을 감춘 사건이 일어났다. 불온한 독서회 사건으로 M선생이 고등계 형사에게 끌려간 것이다. 한때 독서회 가입 권유를 받았으나 거절했던 현은 졸업 후 친구들이 전문학교니 청년다운 야망이나 하고 떠들 때도 국외자였다. 될 대로 되란 식의 도피사상에 빠져 있던 현은 장차 철이 들고 성장해 가면서 서서히 반항과 체념의 갈등 속에서 고민한다. 그러던 어느 날, 공료 여교사의 죄없는 부친이 인민재판에 끌려나오는 것을 보고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던 할아버지 생활방식에서 탈피하여 참여와 반항을 상징하는 아버지식 생활방식으로 급전한다. 이때 현은 비로소 자기를 발견하고, 가슴에 혁명의 불꽃이 이러난 것이다.
이렇듯 이 작품은 두 개의 인간형을 제시해 놓고 그 갈등 속에서 반항하는 과도기의 인간을 그림으로써 선우휘만의 ‘새로운 인간형’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이에 대해 백철은 ‘그 수난의 세대, 기구한 역경 속에 태어나서 크고 변성한 주인공의 지식적인 모습을 목격하였다고’하였는데, 이것은 말하자면, 선우휘가 「불꽃」을 통해 휴머니티에 대한 적극적인 옹호를 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바다.
*박경리의 「불신시대」
1957년 《현대문학》에 발표되었고, 제 3회 현대문학신인상을 수상한 단편소설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 진영은 남편을 9·28 전야에 폭격으로 말미암아 잃는다. 전쟁 미망인인 진영은 그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외아들 문수마저 잃는다. 문수의 죽음이 진영에게 준 충격은 아이를 잃은 다른 어머니의 것과는 질이 다른 것이었다. 문수는 의사의 잘못으로 X-ray도 찍지 않고 마취도 제대로 안한 채 뇌를 잘못 절개해서 죽은 것이다. 도수장의 망아지처럼 죽어간 아이의 울음소리를 잊기 위해 진영은 종교에 매달려 본다. 그러나 그녀가 종교의 세계에서 발견한 것은 시주받은 쌀을 착복하는 중과 도둑맞을까봐 신발을 싸들고 예배보는 신도들뿐이다.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하여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은 그녀를 더욱 슬프고 외롭게 할 뿐 아니라 그들의 추악한 계산이 아이의 영혼까지 모독하는 것을 본 진영은 인간에 대한 그런 처사에 대해 견딜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그 부당함에 항거하고 그 악을 고발하는 것, 그것만이 살아남은 자기 자신의 ‘레종데르트’라고 진영은 생각하며 죽은 아이의 위패와 사진을 불사르고 산을 내려온다.
이 작품의 ‘불신시대’라는 제목 자체가 말하고 있듯이 주인공 진영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는 모두 그녀를 기만하고 배신하는 사회이다. 환자를 고쳐야 할 병원이 그렇고, 서로 믿고 살아야 할 친척 아주머니나 인간의 정신영역을 지배하는 종교도 마찬가지이다. 주인공 진영의 의식적 기반은 피해자 의식이라 할 수 있는데,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묘사되어 있기 때문에 주인공이 하나하나의 위선을 체험할 때마다 느끼게 되는 심리적 변화와 절망감 등이 극명하게 드러나 있다. 이 작품에서 주목을 끈 것은 부정과 위선과 계산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암흑면을 파헤치고 고발하는 작가정신의 투철함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성한 「바비도」
1956년 《사상계》5월호에 발표되었고, 같은 해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김성한의 단편소설이다.
바비도」의 주인공은 재봉직공 바비도이다. 그는 왜 이단으로 몰려 처형 직전에 놓이게 된 것일까? 한마디로 그는 교회에서 금하고 있는 영어번역으로 된 성서를 읽었던 것이다. 소설의 배경이 된 당시에는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평신도들은 라틴어로 된 성서를 성직자들이 읽어주는 대로 받아들여야지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어서는 안된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왜냐하면 성서엔 성직자들에게 불리한 내용들이 많이 섞여 있어서 그 대목들을 평신도들이 알아차릴까 성직자들이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많은 신도들은 교회의 위협에 못 이겨 교회의 뜻에 따랐지만 바비도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의 신념을 굽힐 수가 없었다. 마침내 이단으로 몰린 바비도를 성직자들도 죽이고 싶지 않아 바비도 자신이 굽혀오기를 바랐으나 바비도는 결코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이처럼 자기 신념의 포로가 되어 있는 바비도의 모습은 강자의 위협이나 유혹 앞에서 너무 쉽게 자신의 신념을 꺾고 변절하기 쉬운 시대에 강한 교훈을 남기고 있다. 자기 신념을 위해 죽는 사람은 당장은 괴로워도 먼 훗날 세상에 소금을 뿌리게 된다는 것을 메시지를 남기고 있는 것이다.
살펴본 바와 같이, 1410년 이단으로 지목되어 화형을 받은 재봉직공의 이야기를 소설화한 이 작품은 조직화된 교권제도의 틀에서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 그리고 개성을 박탈당한 주인공 바비도가 이러한 메커니즘화된 조직에 어떻게 반항하다 이단죄로 화형을 받고 죽어갔는가 하는, 한 인간의 반항적이고 영웅적인 비극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비극은 곧 현대의 상황, 현대인의 비극과도 상통하고 있다. 비록 역사적 제재와 인물 속에 설정되었지만, 그것은 현대사회에 대한 비탄과 메커니즘에의 반항으로 씌어진 작품이다. 이 작품에 드러난 인간의 기본적 자유와 양심에 대한 갈등과 저항과 죽음의 궤적은, 50년대 한국사회에 노출된 심각한 문제들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즉,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손상된 민족적 정기의 회복과 6·25로 입게 된 피해의식의 치유라는 시대적 소명이 과거 역사의 현재적 관점에서의 재구성에 의해 거족적으로 환기되는 의의를 지닐 수 있는 것이다. 부패한 자유당정권을 풍자한 것같이 보이기도 하는 이 작품은, 현실이 강요하는 권위와 독선에 대항해 보다 적극적이면서도 인간의 숭고한 존엄에의 수호를 외치는 실천적·반항적 인간형을 창출하고 있다. 그와 같은 측면에서 이 작품은 재래 한국소설의 순수적 토속공간을 파괴하고 현대적 지성 우에 체질적 현대화를 단행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바비도를 통해서 제시된 사회적 정의와 개인적 양심의 문제는 단순한 도덕적 인간형의 제시 차원을 뛰어 넘는 현대인의 비극과도 상통한다.
*이호철의 ������소시민������
1964년 7월부터 1965년 8월까지 《세대》에 연재된 장편소설로, 이호철의 ������소시민������은 6·25를 시간적 배경으로, 부산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여, 한편으로는 사회적인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엄청난 변화와, 다른 한편으로는 그 사회적 변화에 처한 여러 개인들이 겪는 부침(浮沈)의 개인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구체적으로는 주인공 박군이 북에서 피난하여 내려와 임시 머물게 된 완월동 제면소에서의 약 1년여 기간 동안 주변 사람들의 변모의 양상을 관찰하고 서술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 완월동 제면소에는 모두가 하나같이 특징적인 개성을 지닌 인물들이 여럿 등장한다. 제면소의 주인이나 주인마누라, 그리고 일꾼 우두머리인 신씨, 주인의 매부인 날라리, 주인과 한고향 사람이지만 결국엔 기식가의 처지에 처해 있는 강 영감, ‘난리통에 하루아침에 식모로 전락’해 버린 천안 색시, 자칭 ‘동아대학 중퇴자’인 곽씨, ‘어딘가 조직 노동자의 냄새를 풍기는’ 김씨, ‘강철 같은 자존심이 도사려 있을 법한’ 정씨 등, 이 모든 사람들이 모두가 주인공의 ‘감수성과 비평안’에 입각한 관찰의 대상을 이루고 있는 인물들이다. 또 이들보다 주변적이기는 하나 강 영감의 마누라나 그의 딸 매리, 정씨의 누이동생 정옥, 주인공과 같은 고향 사람으로 먼 친척이 되는 광석이 아저씨 같은 인물들도 마찬가지로 주인공의 일정한 관심에 따른 관찰의 대상이 되어져 있다.
이렇듯 다양한 인물들의 등장을 통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바대로 작가는 6·25에 처한 한국사회의 변화를 그 다양하고도 구체적인 과정을 통해 포착하고자 한다. 비단 6·25뿐만 아니라 이 작품이 무대로 하고 있는 시대는 거창사건, 국민방위군 사건, 백골단 사건 등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터지고 있는 때이기도 하다. 그러나 개개인의 경우 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그 사건들 자체의 크기와 비중이 아니라 그것이 개인에게 굴절되어 들어오는 질차이며 사소한 거취의 차이이다. 그래서 그 변화의 과정을 포착하려는 작업은 작가가 이 시대의 변화에 대해 내리고 있는 역사적이면서도 관념적인 해석에 입각하여 이루어진다.
그 해석의 내용은, 이 소설의 에필로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15년 후에 주인공이 만난 정씨의 아들의 입을 통해 밝혀지는데, 그것의 요지는 요컨대 해방 직후에서 오십 년대까지 한국사회가 겪은 열병이라는 것은 ‘이조 말기에 이 바닥에서 겪어야 했던 혼돈을 뒤늦게 겪은 것’으로서 ‘이 바닥에 오랫동안 누적되었던 모든 찌꺼기의 일시적인 폭발’이라는 것이다.
이어 작가는 계속 동일한 인물의 입을 빌려 ‘바로 이 점에 그 당시 격동의 본질이 있었다’고 말하고는, 이러한 사회적 격동이 개개인에게 반영되었을 때 나타나게 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열거한다. 그 여러 가지 현상들이란 심리적인 폐쇄현상, 실의와 초조, 그리고 이러한 ‘적극적 목표의 상실에서 오는 불안과 절망, 사회적 연대의 결여, 고립감, 거기서 빚어지는 폭발하던 정념의 질 변화, 무엇인가 까닭을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증오와 공포’ 등과 같은 ‘소시민적’인 모든 특징이다.
이호철은 이 시대를 전통사회가 새로운 사회로 교체되어가는 과정에서 비롯되는 가치의 아노미 상태로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이 시대의 의미에 대한 작가의 관찰의 시선은 6·25나 그 외 앞서 열거한 여러 사건들이 직접적으로 사회와 개인에게 가하는 변화의 양상에 쏠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아노미 상태에 처한 개인들이 겪는 윤리적이고 인격적인 차원에서의 굴절의 양상에 쏠려져 있다. 그리하여 이호철은 작가 스스로가 내리고 있는 다분히 관념적인 해석을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하나하나의 인물들에 투영시켜 구체화 한다. 그 관념적 투영을 통한 구체화가 반드시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앞서 열거한 등장인물들은 다음의 세 부류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는 김씨와 광석이 아저씨로 대표되는 외부적 변화에 적극적으로 영합하는 인물들이고, 둘째는 주인이나 주인마누라, 신씨, 날라리와 같은 외부적 변화의 의미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는 수단이 결여된 탓에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는 인물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씨와 같이 소극적으로 자기의 이념, 혹은 입장을 고수해 나가는 사람들이다.
이 세 부류의 인물은 상황과의 관련에서 각기 지니는 태도의 차이에 따라 나뉘어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들 모두가 상황을 스스로의 힘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결국 동일한 인물형으로 귀착되고 만다. 즉 그들은 ‘진테제가 명백히 서 있지 않은 안티테제로만 일관’한 사람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상황의 변화에 몸을 맡긴 채 그 소용돌이에 무력하게 휩쓸려가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상황의 해체에 따라 해체되어 버린 인격의 소유자들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과연 개인이 상황에 의해 변하는 것이냐, 개인이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냐 하는 문제에 집중시킬 때 우리는 이상의 세 부류의 인물들과 약간 동떨어진 인물들의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다. 언국과 정옥이 바로 그들인데, 우선 언국은 전쟁에서 불구가 된 자신의 처지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을 즐겁게 만들 수 있는’, 다시 말해 자신의 낙천적인 기질로 주위의 상황을 밝게 물들일 수 있는 그런 인물이다. 이러한 모습은 정옥에 의해 보다 강렬하게 부각된다. 비록 젊은 나이에 죽기는 하지만, 그녀는 모든 인물들이 상황과의 부딪침에서 겪는 변화에 대해 ‘우연히 부딪치는 일들은 맨 밑 속을 관통하고 지나가지는 않는 법’이라고 말하면서,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했던, 그리하여 우리가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현실을 보다 살 만한 것으로 만들고자 애썼던 사람들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털어놓는 인물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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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사 출석수업 대체 학습자료
1950년대 한국 모더니즘 시인과 시론
이상진(국문과 교수)
1950년대 모더니즘 시론은 ‘후반기’ 동인을 통해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해방 직후 박인환이 경영하던 ‘마리서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모더니스트들의 모임이 만들어졌는데, 이들은 1948년 4월 ������신시론������이라는 동인지를 냈고, 그 한 해 뒤인 1949년 4월에 ������새로운 시민들의 합창������이라는 합동시집을 간행했다. 이 때 함께 한 시인들은 박인환, 김수영, 김경린, 양병식, 임호권 등이었다. 이 후 동인의 탈퇴가 늘어나자 박인환이 1950년 1월에 재결성한 모임이 후반기 동인이다. 그러나 동인지 발간을 앞두고 한국전쟁으로 흩어지게 되었고, 다시 부산에서 재결합했으나 1952년 해산되었다.
후반기 동인으로 활동한 시인들로 박인환, 김경린, 조향, 김규동, 이봉래 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의 모더니즘에 대한 관점은 서로 매우 달랐다. 김경린은 T. S. 엘리엇의 이론을 추종하여 주지적 모더니즘의 관점을 보였고, 조향은 초현실주의적 관점에 가까웠고, 박인환, 김규동, 이봉래 등은 영국의 사회적인 모더니즘에 가까웠다.
다음에 소개된 것은 후반기 동인의 상이한 관점을 대표하는 시인 김경린, 조향, 박인환의 생애와 그들이 쓴 시론이다.
1. 김경린(金璟麟, 1918- )
1) 생애
함북 경성에서 출생하였고, 경성전기공업학교 토목본과를 졸업하였다. 일본 와세다 대학으로 유학, 고공 토목공학과를 졸업하였으며, 귀국한 후 1939년 조선일보에 「차창」등을 발표하여 등단하였고, 김기림의 직계제자로 평가 받기도 했다. 1939년 조연현 등의 ‘시림’ 동인을 거쳐 1940년 동경에서 모더니즘의 국제적인 교류단체인 ‘바우(VOU)’에 참가하는 한편 국내에서 모더니즘 운동을 전개하고 있던 ‘맥(貘)’ 후기 동인에도 관여하였다. 해방 직후에는 ‘신시론’ 및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청록파로 대표되는 전통적 서정세계에 반발하여 1950년 '후반기' 동인회를 결성하고, 도시적 감수성, 현대의식, 전위적 기법추구 등 다양한 노력을 통해 전쟁직후의 혼란상을 노래하면서 새로운 시의 가능성을 탐색하였다. 1953년에는 김차영과 공동편집으로 ������신시학������, ������월간시지������를 발간하였다. 1955년에는 미국에서 잠시 수학하면서 워싱턴 교외의 병원에 입원중이던 에즈라 파운드를 만나 현대시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였고, 귀국 후 'Dial' 동인으로 ������현대의 온도������ 등의 동인지를 발간하였다. 대표작으로 「과거는 메모랜덤처럼」, 「태양이 직각으로 떨어지는 서울」,「국제 열차는 타자기처럼」 등이 있다.
2) 「경험의식과 지성과 감성의 메시지」
현대시는 시대감각과 문화감각이 시정신과 교차하는 순간에 발화하는 전광석화 같은 이미지와 이미지군(群)의 상호연계작용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하나의 통일된 리얼리티의 시세계로 순화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과정에 있어서 시인의 지적인 세계관의 작용은 물론 표출과정에 있어서의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한 언어 기능에 대한 끊임없는 발굴로써 시를 항상 새롭게 하여야 하며 시에 박진감을 주어야 함은 물론이다. 결과적으로 현대시는 현실을 기반으로 출발하여 지성과 감성의 결정체로서 에네르기를 발산케 함으로써 과학문명 속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인의 가슴 속을 뚫을 수 있는 시인의 메시지로 발전되어야 한다.
따라서 나는 시작과정에 있어서 경험의 질서를 매우 중요시한다. 오늘날 우리의 경험 요소는 복잡하기 이를 데 없으며 때로는 이중 삼중으로 의식 속에 침투되어 온다. 외적으로는 과학 · 경제 · 문화 등의 눈부신 발전이 가져다주는 영향선과 내적으로는 국제적인 사회의 명암과 과학문명의 경이적인 발달과 아울러 우리의 경제적인 수준의 급속도의 발전에 수반하는 생활양식의 변화와 이에 부수되는 정신적인 불균형에서 오는 사회의 표리현상과 일반적인 생활이 빚어주는 경험요소 등은 현대시의 영역에 간접적 또는 직접적인 모티프가 된다. 따라서 시의 소재는 우리의 생활환경 속에 항상 존재한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경험요소 속에서 나의 시적인 신념과 세계관에 부합되는 요소만을 의식 속에 일차적으로 축적하여 두는 과정을 밟는다. 비록 시인 자신에게는 감지되지 않는다 해도 시인의 형이상학적인 신념과 더불어 연소과정을 밟으며 대기상태에 머물러 있게 되는 것이 상례이다.
기초단계에서 비로소 기본적인 이미지의 작상단계에 들어가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는 외적 또는 내적인 어떠한 자극에 의해서 잠재하였던 시적인 소재가 전광석과 같은 이미지로 전환하여 순간적으로 뇌리를 스치며 나타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 순간을 재빠르게 포착하여 기본적인 이미지의 라인을 형성한다. 즉, 잠재하였던 소재가 다시 시적인 이미지로 재생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주의를 경주하여야 할 것은 소재가 재생산된다 하여도 연소과정에서 원형이 화학적 또는 물리적인 반응에 의하여 변질된 이미지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것을 가르켜 이데오프라티(應化觀念)의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회화에 있어서의 데포르마시옹의 수법과 유사한 방법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이는 현대미학의 기본원리이기도 한 것이다.
기본적인 이미지의 라인의 완성과 더불어 이를 기점으로 하여 그 시 속에 담고자 하는 시정신의 기본지침에 따라 다음의 라인을 생산하는 발화점을 유도하는 단계의 작업을 한다. 이와 발화점을 기준으로 하여 제 2, 제 3 등의 순으로 라인을 형성해나감에 있어서도 최초의 기본라인을 생산할 때와 마찬가지로 과거에 축적하여 두었던 소재를 환기하여 재생산함은 물론이다. 이렇게 하여 형성되는 라인과 라인의 응화작용에 의하여 하나의 통일된 리얼리티로서의 시세계가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모든 관계를 밟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시의 매체로서의 언어의 기능에 관한 문제이다. 언어는 의식을 생산하는 반면에 언어와 언어의 연결로써 의식의 통로를 개설하는 특권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언어에는 감각적 · 시각적 · 의식적인 요소 등의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이들 요소 속에서 이미지의 기능에 적합한 언어의 채택은 물론 적절한 언어의 연결로써 이미지를 발산하게 하며 라인에 속도를 가하게 하여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나의 경우는 시세계에 참신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감각적인 요소를 중요시하며 새로운 언어의 발굴에 관심을 집중시킨다. 그러나 언어로서의 의사소통의 통로개설에는 상식화된 언어의 개재가 수반되게 마련이다. 따라서 비록 상식화된 언어라 해도 상식화되지 않는 새로운 접합 작용에 의하여 새로운 의식을 발생하게 할 수 있으며, 의식에 탄력성과 속도를 가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끝으로 부언하고 싶은 것은 시 속에 과학 · 경제 · 공학 등의 용어가 많이 내재해 있음은 우리의 생활환경이 이들 부분과 밀접한 유대관계에 있음에서 오는 인과관계이며, 시 전체를 구성함에 있어서 감성과 서정으로써 이들 용어를 순화하고 유기적인 분해로써 시 속에 융화작용을 하도록 나름대로 시도해 보았다는 것이다.
(출전: 김경린, ������김경린 시집선 - 태양이 직각으로 떨어지는 서울������, 청담문화사, 1985)
2. 박인환(朴寅煥, 1926∼1956)
1) 생애
강원도 인제에서 태어났다. 1939년 서울 덕수공립소학교를 졸업하고 경기공립중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41년 자퇴하고 한성학교를 거쳐 1944년 황해도 재령의 명신중학교를 졸업하였다. 그 해 평양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8·15광복으로 학업을 중단하였다.
그 뒤 상경하여 마리서사(茉莉書肆)라는 서점을 경영하면서 김광균 · 이한직 · 김수영 · 김경린 · 오장환 · 김기림 등과 친교를 맺기도 하였다. 1948년 서점을 그만두면서 자유신문사, 경향신문사에 입사하여 기자로 근무하기도 하였다.
1949년에는 김병욱 · 김경린 등과 동인지 ������신시론������을 발간하였으며, 1950년에는 김차영 · 김규동 · 이봉래 등과 피난지 부산에서 동인 ‘후반기’를 결성하여 모더니즘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그의 시작 활동은 1946년에 시 「거리」를 ������국제신보������에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어 1947년에는 시 「남풍」, 영화평론 「아메리카 영화시론」을 ������신천지������에, 1948년에는 시 「지하실」을 ������민성������에 발표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시작 활동이 전개되었다. 특히, 1949년에 낸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은 광복 후 본격적인 시인들의 등장을 알려주는 신호가 되었다. 1950년 후반기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밤의 미매장(未埋藏)」·「목마와 숙녀」 등을 발표하였는데, 이런 작품들은 도시문명의 우울과 불안을 감상적인 시풍으로 노래하여 주목을 끌었다. 1955년 첫 시집 ������박인환선시집������을 낸 뒤 이듬해에 심장마비로 죽었다.
이 시집에는 그의 시작품이 망라되어 있으며 특히 「목마와 숙녀」는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으로서 우울과 고독 등 도시적 서정과 시대적 고뇌를 노래하고 있다. 1956년 작고 1주일 전에 쓰여진 「세월이 가면」은 노래로 만들어져 널리 불리기도 하였다.
2) 「불안과 희망 사이에서」
나는 불모의 문명, 자본과 사상의 불균정(不均整)한 싸움 속에서, 시민정신에 이반(離反)된 언어작용만의 어리석음을 깨달았었다.
…… 시가지에는 지금은 증오와 안개 낀 현실이 있을 뿐 ……. 더욱 멀리 지난 날 노래하였던 식민지의 애가(哀歌)며 토속의 노래는 이러한 지구(地區)에 가라앉아 간다.
그러나 영원의 일요일이 내 가슴 속에 찾아든다. 그러할 때에는 사랑하던 사람과 시의 산책의 발을 옮겼던 교외의 원시림으로 간다. 풍토와 개성과 사고의 자유를 즐기던 시의 원시림으로 간다.
아 거기서 나를 괴롭히는 무수한 장미(薔薇)들의 뜨거운 온도.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에서)
나는 십여 년 동안 시를 써왔다. 이 세대는 세계사가 그러한 것과 같이 참으로 기묘한 불안정한 년대였다. 그것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 성장해 온 그 어떠한 시대보다 혼란하였으며 정신적으로 고통을 준 것이었다.
시를 쓴다는 것은 내가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것이었다. 나는 지도자도 아니며 정치가도 아닌 것을 잘 알면서 사회와 싸웠다.
신조(信條)치고 동요되지 아니한 것이 없고 공인되어 온 교리(敎理)치고 마침내 결함을 노정(露呈) 하지 아니한 것이 없고, 또 용인된 전통(傳統)치고 위태에 임하지 아니한 것이 없는 것처럼, 나의 시의 모든 작용도 이십 년 동안에 여러 가지로 변하였으나 본질적인 시에 대한 정조(情操)와 신념만을 무척 지켜온 것으로 생각한다.
여하튼 나는 우리가 걸어온 길과 갈 길, 그리고 우리들 자신의 분열한 정신을 우리가 사는 현실사회에서 어떻게 나타내 보이며 순수(純粹)한 본능과 체험을 통해 본 불안과 희망의 두 세계에서 어떠한 것을 써야 하는가를 항상 생각하면서 작품들을 발표했었다.(������박인환선시집������에서)
(출전: 박인환, 「작가는 말한다 - 불안과 희망 사이에서」, ������한국전후 문제시집������, 신구문화사, 1961)
3. 조향(趙鄕, 1917~1985)
1) 생애
본명은 섭제(燮濟). 1917년 경남 사천군에서 태어나, 진주고등보통학교를 거쳐 대구사범학교 강습과를 졸업한 뒤, 1941년 일본대학 상경과를 중퇴했다. 8·15해방 후 마산상업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동아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1941년 매일신보 신춘문예에 시 〈첫날밤〉이 3등으로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고, 이듬해 일본의 계간 시전문지 ������시와 시론������을 통해 초현실주의에 심취하게 되었다. ‘가이거 Geiger’· ‘일요문학’ 등을 주재했고 모더니즘 시를 내세웠던 '후반기'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외래어를 대담하게 사용했고 설명적 요소를 없앤 초현실주의 계열의 시를 썼다. 「Sara de Espera」,「녹색의 지층」, 「검은 신화」, 「바다의 층계」, 「장미와 수녀의 오브제」 등을 발표했다. 특히 「바다의 층계」는 낯설고 이질적인 사물들을 통해 바다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읊은 작품이다.
2) 「‘데뻬이즈망’의 미학」
(전략)
낡은 <아코오뎡>은 대화를 관뒀습니다.
-여보세요!
<뽄뽄따리아>
<마주르카>
<디이젤 · 엔진>에 피는 들국화.
-왜 그러십니까?
모래밭에서
수화기
여인의 허벅지
낙지 까아만 그림자.
비둘기와 소녀들의 <랑데 · 부우>
그 위에
손을 흔드는 파아란 기폭들.
나비는
기중기의
허리에 붙어서
푸른 바다의 층계를 헤아린다.
이것은 나의 「바다의 층계」라는 시다. 시에 있어서의 말이라는 것을, 아직도 ‘의미’를 구성하고 전달하는 단순한 연모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겐 이 나의 시는 대단히 이해하기가 곤난할 것이다. ‘말’의 구성에 의하여 특수한 음향(음률이 아니라)이라든가, 예기하지 않았던 ‘이미쥬’, 혹은 활자 배치에서 오는 시각적인 효과 등 ‘말의 예술’로서의 기능의 면에다가 중점을 두는, 이른바 ‘현대시’. 이것에 관한 지식을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이면 위의 시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뽄뽄따리아>, <마주르카>, <디이젤 · 엔진>, <들국화>. 이 셋째 ‘스탄자’에 모여 있는 ‘말’들을 두고 한 번 생각해 보기로 하자.
거기엔 아무런 현실적인, 일상적인 의미면의 연관성이 전연 없는, 동떨어진 사물끼리가 서슴없이 한 자리에 모여 있다. 이와 같이 사물의 존재의 현실적인, 합리적인 관계를 박탈해 버리고, 새로운 창조적인 관계를 맺아 주는 것을 ‘데빼이즈망’(depaysement)이라고 한다. 그 움직씨(動詷), ‘데빼이제’(depayser)는 ‘나라’(혹은 환경 · 습관)을 바꾼다는 뜻이다. 국적을 갈아버리는다는 뜻이다. 초현실주의에서는 ‘전위(轉位)’라고 한다. 초현실주의의 화가들은 ‘데빼이제’하는 방법으로서 ‘빠삐에 · 꼬레’(papier colle. 서로 관계없는 것 끼리를 한데다 갖다 붙이는 것), 이것의 발전된 것으로서 ‘꼬라아쥬’(collage) 그리고 ‘프로따쥬’(frottage), 혹은 살바도르 달리의 유명한 ‘편집광적 기법’ 등을 쓴다. 초현실주의의 선구자로 봐지고 있는 로트레아몽(Lautréamont)의 「미싱과 박쥐우산」의 미학이며, 달리의 ‘한 개의 토마토를 보고 내닫는 말을 영상(映像)할 수 없는 사람은 천치다.’라고 한 말들을 참조해 보면 석연(釋然)해지는 것이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방법들에 의하여 ‘데빼이제’된 하나하나의 사물을 초현실주의에서는 ‘오브제’(objet)라고 부른다. ‘오브제’란 라틴말 “edjectum"(…의 앞에 내던져저 있는 물건)에서 온 말로서, 사전에서의 뜻은 ‘물건’, ‘대상’, ‘목표’ 등이지만, 초현실주의의 용어로서는 일상적인, 합리적인 관념에서 해방시켜버린 특수한 객체를 의미한다. 주로 초현실주의 계통의 미술용어로서 쓰이지만, 시에서도 물론 쓸 수 있는 말이다. term(이론학 용어로서 ‘명사(名辭)’라고 번역된다. 개념을 말로써 표현한 것)의 기묘한 결합, 합성에 의하여 어떤 특수한, 돌발적인 ‘이마쥬’를 내려고 할 때, 거기에 쓰인 term의 하나하나는 훌륭히 ‘오브제’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나의 「바다의 층계」를 비롯한 여러 작품은 ‘뽀엠 · 오브제’(poéme objet)라고 할 수 있다.
아름다운 ‘레뗄’이 붙은 통조림통이 아직 부엌에 있는 동안은 그 의미는 지니고 있으나, 일단 쓰레기통에 내버려져서 그 의미와 효용성을 잃어버렸을 때, 나는 비로소 그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입체파(cubisme) 운동의 영도자의 한 사람이던 브라끄(Bracque)의 위의 말은 ‘오브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오브제는 서양의 모더니스트들이 처음 발견한 것이 아니다. 정원을 꾸미기 위해서 우리가 흔히 주워 다 놓는 괴석(怪石), 일본 사람들의 ‘이께바나(生花)'의 원리, 서양 사람들이 즐기는 골동품 등은 모두 오브제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의미의 세계를 포기한 현대시, 19세기적인 유동하는 시에 있어서의 시간성이 산산이 끊어져 버리고, 돌발적인 신기한 <이마쥬>들이 단층을 이루고 있는 현대시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아야 하는가? 그것은 의미도 음악도 아니고, 순수한 <이마쥬>를 읽으면 그만이다. 사람에게 순수함을 느끼게 하는 것은 곧 <카타르시스>다. “이마쥬는 정신의 순수창조”(Reverdy)다. “이마쥬의 값어치는 얻어진 섬광(閃光)의 아름다움에 의하여 결정된다. 따라서 그것은 두 개의 전도체 사이의 전위차의 함수(函數)다.” (Andre Breton). 시인에 있어서 <이마쥬>는 ‘절대’와 ‘본질’에 통하는 유일의 통로요, 탈출구다. ‘절대현실’은 곧 ‘초현실’이다. 이렇게 따져 봤을 때, 나의 「바다의 층계」는 순수시(poesie pure)다. 상징파 시인 말라르메의 후예 바레리(Valery)의 ‘순수시’와는 다른 의미에 있어서의 ‘순수시’요 ‘절대시’다. 쟌 루스로라는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말라르메가 인식론에다 구한 것을 마술에다 구하긴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는 공통된 갈망을 갖고 있었다. 곧 순수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것에의 갈망을.
상징주의자들이 갈망한 순수는 음악적(시간적)인 것이었고, 초현실주의자들이 갈망한 것은 조형예술적 곧 공간적인 순수 그것이다. 두 가지의 순수가 다 현실이나 일상생활에서 떠난 동결된 세계임에는 다름이 없다.
나는 순수시만 쓰지는 않는다. 꼭 같은 방법으로서 현대의 사회나 세계의 상황악(狀況惡)을 그린다. 곧 나의 「검은 DRAMA」, 「어느 날의 지구의 밤」, 「검은 신화」, 「검은 전설」, 「검은 series」 등 일련의 작품들이 그것이다. 상황악이란 곧 ‘현대의 암흑(modern darkness)’을 말한다.
(후략)
(출전 : 조향, 「작가는 말한다 - ‘데뻬이즈망’의 미학」, ������한국전후 문제시집������, 신구문화사, 1961)
<참고문헌>
������한국전후 문제시집������, 신구문화사, 1961
김경린, ������태양이 직각으로 떨어지는 서울������, 청담문학사, 1985
한국문학연구회 편, ������1950년대 남북한 시인연구������, 국학자료원, 1996
송하춘 외, ������1950년대의 시인들������, 나남출판, 1994
오문석, ������백년의 연금술������, 박이정, 2005
출석수업대체 텍스트강좌 ������현대문학사������
1950 ․ 60년대의 문학비평사
국문학과 교수 박 태 상(문학평론가)
우선 해방공간의 문단에서 문학의 정신적 지표를 좌우한 것은 좌우익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자유민주주의의 경향과 사회주의적 경향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다. 8.15 해방은 우리 민족에게 큰 희망이 되었고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크게 부풀려주었지만, 실상은 좌우익의 갈등과 충돌로 인해 혼란스러움의 연속으로 인한 불안한 정세를 형성하였다. 이러한 문단적 경향은 문학이라는 영역을 넘어서는 것이었지만 모든 문학적 현상은 여기에서 결코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정치세력의 대립에 따른 문단의 분열과 혼란된 가치풍토 속에서 문학은 식민지시대의 정신적 상처를 청산하고 해방의 감격과 그 민족사적 의미를 구현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민족문학의 확립을 위해 참다운 민족문학의 정신을 추구하고 그 진로를 모색하기 위해 노력하였던 것이다.
이 무렵 문단에서 가장 먼저 제기된 것이 식민지 문화 청산과 자기 비판이었다. 일제 잔재의 청산은 개인적인 윤리의식의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이다. 이것은 민족적 자기비판을 전제하는 것이며 자주의식의 새로운 각성과 민족정기의 확립을 목표로 하였다. 대표적인 사회현상으로는 해박 직후의 국어정화운동을 들 수 있다. 일본어로 인한 오염을 씻어내기 위해 국어문법의 정비, 표준어와 맞춤법의 정리 등이 곧이어 이루어지게 되었다. 다음으로는 친일문학 활동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진행되었다.
1. 좌익의 민족문학론
해방직후 좌익은 민족문학론을 전개하면서 분열과 통합의 과정을 겪게 되고 결국은 조선문학가동맹으로 통합된다. 조선문학건설본부와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의 출현으로 양분된 좌익계열의 문단에서는 민족문학의 성격 규정 문제가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되었다.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가 설정하고 있는 문화 활동의 기본적 일반 정책은 대체로 일제 문화 잔재의 소탕과 문화의 인민적 기초 확립, 문화통일전선의 조직으로 요약된다. 임화는 「현하의 정세와 문화운동의 당면임무」(1945.11)에서 문화운동의 당면 임무를 문화 해방과 문화 건설로 요약하고 있다. 그런데 임화의 주장은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의 등장과 함께 좌익 진영 자체 내에서 한때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들은 해방과 함께 새롭게 건설할 민족국가도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하여 이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조선문학 건설본부와 조선프롤레타리아 문학 동맹 사이의 반목과 갈등은 조선공산당이 장안파와 합류하면서 정치운동의 단일노선을 구축하게 되자 곧 해소되기에 이른다. 두 조직의 해체, 통합으로 ‘조선문학가 동맹’의 결성을 보게 되면서 좌익문단의 조직분열과 이념적 갈등도 극복되었다.
2. 우익진영의 민족문학론과 순수문학론
조선문학가 동맹의 결성으로 좌익문단의 통합이 이루어지자 이에 대응하여 우익진영이 문단을 정비하고 전조선문필가협회를 조직하게 되었고 소장파문인들이 중심이 되어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조직하면서 민족문학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전개되었다. 좌익과 달리 조선청년문학가협회의 문학노선은 문학의 자율성에 대한 주장을 내세우고, 문학의 순수성에 대한 주장을 제시한 것이었다. 그것은 좌익 문단의 민족문학에 대한 논의가 인민에 기초한 문학의 건설에서부터 시작되어 결국은 노동계급의 이념을 대변하는 문학으로 스테레오타입화한 데 따른 것이다.
순수문학이란 한마디로 말하면 문학정신의 본령정계의 문학이다. 문학정신의 본령이란 물론 인간성 옹호에 있으며 인간성 옹호가 요청되는 것은 개성 향유를 전제한 인간성의 창조의식이 신장되는 때이니만큼 순수문학의 본질은 언제나 휴머니즘이 기조가 되는 것이다.
김동리의 주장에 의하면 문학의 본질적인 속성이란 인간성 옹호, 개성 향유를 전제로 한 인간성의 창조의식의 신장 등으로 요약된다. 김동리는 이러한 정신이 휴머니즘에 맞닿는 것이기 때문에 휴머니즘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임화가 내세웠던 노동계급의 이념으로서의 민족의 이념이라는 개념에 정면으로 충돌했던 것이다.
3. 이어령에 의한 ‘저항의 문학론’
이어령은 애초에는 실존주의 문학론을 주장하였다. 그는 「실존주의문학」에서 카프카와 사르트르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는데, 카프카의 「변신」에서 발견된 ‘절대고독’을 주요한 실존의식의 관건으로 해명하고 있다. 주인공은 ‘존재의 옥벽(獄壁)에서 해방되고 두 번째의 변신을 하게 되는 계기가 음악이고 그 음악은 신의 음성이라고 해설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에서 인간 존재의 극한적 상황과 관련된 인식을 중요시하는 비평적 취미가 매우 컸음을 엿볼 수 있는데 이는 1950년대의 시대적 불안과 직접으로나 간접으로나 연결된 의식에 의한 것이라고 짐작된다.
전후세대의 작가들에게는 폐호ㅓ화된 사회현실 그 자체가 삶의 터전이었고 그것이 그들 문학의 기반이 되었던 것이다. 전후세대 작가들은 참담함과 혼란으로 가득 찬 시대적 현실에 대해 불안과 절망으로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전후세대의 작가들이 현실 속에서의 저항을 내세웠지만, 그 외양적 포즈는 서구적인 니힐리즘이나 실존주의적 경향을 추수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들이 인간의 근본적인 자유와 권리를 위해 저항한다고 할 때, 그 저항의 대상은 막연한 기성세대이거나 사회 윤리적인 문제였다.
그러므로 오늘날 작가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이라는 뚜렷한 신념이 생겨날 것이다. 첫째는 역사에 대한 관심이며, 그것에 대한 책임을 작가하려는 정신이다. 둘째는 인간이 인간을 사랑할 수 있도록 애정을 만들어주어야 할 것이다. 셋째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적과 그의 벗을 명확히 가리켜주는 일이다. ...(중략)... 그래서 결국 이제 작가는 석불을 마멸시키는 비와 바람과 같은 ‘자연성’에 저항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파괴하는 인간 스스로의 ‘손’, 그 인위성에 저항해야 한다.
(이어령, ‘무엇에 대해 저항해야 하는가’,������저항의 문학������에서)
역사와 운명에 대한 작가의 책임을 ‘저항’이라는 말로 규정하고 있는 이어령의 주장 속에는 전후문학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이 암시되어 있다. 그는 당대적 현실의 병폐가 막연한 감상으로 파헤쳐 질 수 없음을 분명히 하였고 휴머니즘의 정신을 내세워 인간 회복의 길을 모색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어령은 끝내 실천적 행동성을 유보해 두었고 언어를 통한 창작적 투쟁을 강조하였다. 언어에 의한 호소와 그 고발만이 사회와 역사의 운명을 가로막을 수 있다고 하였다. 작가의 저항이라는 것도 결국 따지고 보면, 언어에 의한 것일 수밖에 없음은 물론이다.
4. 참여문학론과 순수문학론
4. 19혁명은 전후세대 문학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 왔다. 즉 4. 19혁명은 전쟁의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한국사회에서 자유와 권리에 대한 자기 각성, 사회적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 민족의 역사에 대한 신념을 다시 불러일으켜 놓았다. 196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한국문학에는 문학과 현실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인식이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방황하던 문학정신도 그 좌표가 서서히 정립되기 시작하며 전후문학적 한계가 하나씩 극복되기에 이른다.
문학의 현실 참여와 관련된 문단의 분파적 논쟁은 1960년대 중반을 전후하여 본격화되었으나 이미 1950년대 후분부터 문하그이 과제로 제기되었던 것이다. 전후의 혼란한 현실 속에서 인간의 삶과 그 존재방식에 대한 회의와 저항이 교차되면서 현실적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문학의 힘이 요구되기 시작한다. 문학의 현실 참여는 우선적으로 작가 자신이 현실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표명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현실에 입각하여 시대와 상황에 대한 문학의 역할을 자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실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고발하는 문학정신을 강조하는 견해들은 4.19혁명이 성공하면서 봇물처럼 터져 나오게 되었다.
김우종, 김병걸, 장백일 등이 내세운 참여문학론은 순수문학의 예술지상주의가 지니고 있는 허구성을 지적, 비판하면서 새로운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들은 문학의 비판정신을 리얼리즘의 청산과 연결시키기도 하고 역사의식에 바탕을 둔 작가의 사회적 태도와 그 책임을 모럴의식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문학의 현실참여론이 문단의 관심사가 죄자, 이에 대한 비판론도 만만치 않게 등장하게 된다. 문학의 순수엉과 그 예술적 가치를 옹호하고 나선 김동리, 조연현 등의 구세대는 물론이고 김상일, 이형기, 김양수 등이 이에 동조하게 되어, 순수론과 참여론의 논쟁이 확대된다. 문학의 사회참여론이 문학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효용론적 기능론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김봉구에 의해 앙가주망 운동의 이데올로기적 편향에 대한 경고가 있은 뒤부터였다.
문단에 참여론이 본격화된 계기는 김수영의 시론에서 비롯된다. 즉 참여론의 문단적 파장이 문화 전반에 걸쳐 확대된 것은 김수영의 자유주의적 참여론이 제기된 것과 때를 같이한다. 김수영은 4.19 혁명의 좌절과 군사정권의 등장 이후 나타난 언론의 무기력과 지식인의 퇴영성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그의 참여론의 단서를 끌어낸다. 김수영은 인간상실로부터의 인간회복이 시인의 임무라고 강조하면서 자유와 사랑의 길을 그의 시론에서 부르짖었다. ‘자유’라는 것은 언어를 자기화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획득된 자기동일성의 다른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김수영은 정치적 자유의 쟁취에는 ‘혁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혁명은 완전을 향해가는 부단한 자기부정’이므로 혁명은 윤택한 사회, 자유로운 사회를 향한 방법론적 자기부정자세임을 입증하려고 노력하였다. 결국 김수영은 현실의 자유가 구속받는 독재적 상황에 맞서 시인의 무기인 언어를 앞세워 참여시론을 주장하게 된 것이다. 그는 참여시란 ‘시인의 양심이 엿보이는 작품’이라고 단순하게 개념정의를 내리면서 참여시론이란 ‘현실을 타협하지 않고 새롭게 현실을 인식하자’는 논리라고 강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