管晏列傳 (관중, 안영 열전)
<管仲><夷吾>者, <潁上>人也. 少時常與<鮑叔牙>游, <鮑叔>知其賢.
관중 이오(仲은 자, 夷吾는 이름)는 영수가의 사람이다. 젊었을 때에 항상 포숙아와 교유했는데 포숙은 관중의 현명함을 알았다.
<管仲>貧困, 常欺<鮑叔>, <鮑叔>終善遇之, 不以爲言. 已而<鮑叔>事<齊><公子小白>, <管仲>事<公子糾>.
관중은 가난하여 항상 포숙을 속였으나 포숙은 끝까지 잘 대해주고 (자기를 속인 것을) 말하지 않았다. 그 후 포숙은 제나라의 공자 소백을 섬기고, 관중은 공자 규를 섬겼다.
及<小白>立爲<桓公>, <公子糾>死, <管仲>囚焉. <鮑叔>遂進<管仲>.
소백이 (제나라 제후의) 자리에 올라 환공이 되자 공자 규는 (소백과 싸우다가) 죽었고, 관중은 사로잡혔다. 그리하여 포숙은 (환공에게) 관중을 추천하였다.
<管仲>旣用, 任政於<齊>, <齊><桓公>以霸, 九合諸侯, 一匡天下, <管仲>之謀也.
관중이 등용되어 제나라의 정치를 맡게 되었고, 제나라 환공이 패자(覇者)가 되어 제후들을 아홉 번 모이게 하여 천하를 바로잡은 것은 관중의 계책이었다.
<管仲>曰 : “吾始困時, 嘗與<鮑叔>賈, 分財利多自與, <鮑叔>不以我爲貪, 知我貧也.
관중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일찍이 가난했을 적에 포숙과 함께 장사를 한 일이 있다. 이익을 나눌 때에 내가 많이 가졌으나 포숙은 나를 탐욕스럽다고 생각지 않았다. (그는) 내가 가난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吾嘗爲<鮑叔>謀事而更窮困, <鮑叔>不以我爲愚, 知時有利不利也.
내가 일찍이 포숙을 위하여 일을 꾀하다가 (실패하여) 더욱 곤란하게 되었으나, 포숙은 나를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때가 유리하거나 불리할 경우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吾嘗三仕三見逐於君, <鮑叔>不以我爲不肖, 知我不遭時也. 吾嘗三戰三走, <鮑叔>不以我爲怯, 知我有老母也,
나는 일찍이 세 번 벼슬에 나아가 세 번 임금에게 쫓겨났으나, 포숙은 나를 못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때를 만나지 못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세 번 전쟁에 나아가 세 번 달아났으나, 포숙은 나를 겁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늙은 어머니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公子糾>敗, <召忽>死之, 吾幽囚受辱, <鮑叔>不以我爲無恥, 知我不羞小節而恥功名不顯于天下也. 生我者父母, 知我者<鮑子>也.”
공자 규가 패하고 소홀은 (따라) 죽었으나, 나는 사로잡혀서 치욕을 당했다. 포숙은 나를 부끄러움을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작은 절개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공명이 천하에 드러나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준 것은 부모요, 나를 알아준 것은 포숙이다.”
<鮑叔>旣進<管仲>, 以身下之. 子孫世祿於<齊>, 有封邑者十餘世, 常爲名大夫. 天下不多<管仲>之賢而多<鮑叔>能知人也.
포숙이 관중을 추천하고 나서 자신은 그 밑에 있었다. 그 자손도 대대로 제나라에 녹을 받고, 봉읍을 받은 자가 10여대에 이르러 모두가 이름난 대부(귀족)가 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관중의 현명함을 칭찬하기보다는 포숙이 능히 사람을 알아본 것을 더 많이 칭찬한다.
<管仲>旣任政相<齊>, 以區區之<齊>在海濱, 通貨積財, 富國彊兵, 與俗同好惡.
관중이 이미 정사를 맡아 제나라의 재상이 되었는데, 바닷가에 있는 작은 제나라로 화물을 유통하여 재산을 늘리고, 나라를 부유하고 군대를 강하게 하며, 세속과 더불어 좋고 싫음을 함께 하였다.
故其稱曰 : “倉廩實而知禮節, 衣食足而知榮辱, 上服度則六親固. 四維不張, 國乃滅亡. 下令如流水之原, 令順民心.”
그래서 그는 (<관자>에서) 말하기를,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알고, 의복과 음식이 족해야 영화와 치욕을 알게 된다. 위에서 절도를 지키면 부모 형제 처자가 굳게 화목한다. (나라를 다스리는) 네 가지 원칙인 예의염치가 해이해지면 나라가 망하게 된다. 정령을 내릴 때에는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 해야 하고 민심에 따라야 한다.”라고 했다.
故論卑而易行. 俗之所欲, 因而予之 ; 俗之所否, 因而去之.
그래서 말이 비근해서 실행하기가 쉬웠다. 세속에서 하고자 하는 바에 따라 그렇게 해 주고, 세속에서 싫어하는 바에 따라 그것을 없앴다.
其爲政也, 善因禍而爲福, 轉敗而爲功. 貴輕重, 愼權衡.
그가 정치를 하는 데 있어 번번이 재앙으로 인한 것을 복이 되도록 하였고, 실패를 전환시켜서 성공으로 이끌었으며, 또한 사물의 경중을 파악하는 것을 귀하게 여겼고, 권도와 균형을 신중하게 했다.
<桓公>實怒<少姬>, 南襲<蔡>, <管仲>因而伐<楚>, 責包茅不入貢於<周>室.
환공은 실제로(예를 들면) 소희(채나라에서 시집왔다가 돌아가 개가한 여자)의 일로 노하여 남쪽의 채나라를 습격하였고, 관중은 이로 인해 초나라를 쳐서 초나라가 주나라 왕실에 포모(제사에 쓰는 푸른 띠풀)를 바치지 않은 것을 꾸짖었다.
<桓公>實北征山戎, 而<管仲>因而令<燕>修<召公>之政.
환공이 실은 북쪽으로 산융을 쳤는데 관중은 이로 인하여 연나라가 (그 조상인) 소공의 선정을 부활시키게 했다.
於<柯>之會, <桓公>欲背<曹沫>之約, <管仲>因而信之, 諸侯由是歸<齊>. 故曰 : “知與之爲取, 政之寶也.”
또 가(지명)의 회맹(제환공과 노장공의 회맹)에서 환공이 조말과의 약속을 배반하려고 하였으나 관중은 이로 인하여 그것을 지키게 하였고, 제후들은 이로 말미암아 제나라에 복속하게 되었다. 그래서 관중은 말하기를, “주는 것이 실은 얻는 수단이 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정치의 보물(요체)이다.”라고 했다.
<管仲>富擬於公室, 有三歸ㆍ反坫, <齊>人不以爲侈. <管仲>卒, <齊國>遵其政, 常彊於諸侯. 後百餘年而有<晏子>焉.
관중의 부유함은 제나라 국가의 부유함과 비슷해서 삼귀대라는 누각과 제후들이 사용하는 반점이라는 술잔 받침을 가졌으나 제나라 사람들은 그것을 사치스럽다고 생각지 않았다. 관중이 죽은 후, 제나라는 그의 정치를 지켜서 항상 제후들 중에서도 강했다. (관중이 죽은) 뒤에 백여 년이 지나서 안자가 나타났다.
<晏平仲><嬰>者, <萊>之<夷維>人也. 事<齊><靈公>·<莊公>·<景公>, 以節儉力行重於<齊>.
안평중(평중은 자) 영(영은 이름)은 (산동) 래현의 이유 사람이다. 제나라의 영공과 장공, 경공을 섬겼는데, 절약하고 검소하며 힘써 행하는 것으로써 제나라에 중용되었다.
旣相<齊>, 食不重肉, 妾不衣帛. 其在朝, 君語及之, 卽危言 ; 語不及之, 卽危行. 國有道, 卽順命 ; 無道, 卽衡命. 以此三世顯名於諸侯.
이미 제나라의 재상이 되었어도 밥상에 육류 두 가지가 없었고, 첩이 비단옷을 입지 못하게 했다. 그가 조정에 나아가 있을 때는 임금이 말씀이 이르면 곧 성의를 다하여 말하고, 말씀이 이르지 않으면 곧 바르게 행동하려고 힘썼다. 국정에 정당한 도리가 있으면 곧 그 명령에 따르고, 국정에 정당한 도리가 없으면 명령의 옳고 그름을 가려서 옳다고 생각되는 바를 실행했다. 이로써 영공, 장공, 경공의 3대에 걸쳐 제후 사이에 그 이름이 드러났다.
<越石父>賢, 在縲紲中. <晏子>出, 遭之塗, 解左驂贖之, 載歸. 弗謝, 入閨.
월석보는 현명한 사람이었으나 죄수의 몸이었다. 안자가 외출하다가 길에서 만났는데, 마차를 끄는 왼쪽 말을 풀어서 그를 속죄하게 하고 마차에 싣고 돌아왔다. 그러나 인사도 없이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久之, <越石父>請絶. <晏子>戄然, 攝衣冠謝曰 : “嬰雖不仁, 免子於戹, 何子求絶之速也?”
한참 후에 월석보가 절교하기를 청했다. 안자가 놀라서 의관을 갖추고 월석보에게 사과하여 말하기를, “내가 비록 어질지는 못하지만, 그대를 재액에게 면해 드렸다. 어찌 그대가 이렇게 빨리 절교하려고 하는가?”라고 하였다.
<石父>曰 : “不然. 吾聞君子詘於不知己而信於知己者. 方吾在縲紲中, 彼不知我也.
석보가 말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듣기로는 군자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자에게는 굴복하지만, 나를 알아보는 자에게는 믿고 자기 뜻을 나타낸다고 했습니다. 내가 죄수들 사이에 있을 때는 저들이 나를 몰랐습니다.
夫子旣已感寤而贖我, 是知己 ; 知己而無禮, 固不如在縲紲之中.” <晏子>於是延入爲上客.
그러나 당신은 이미 느끼는 바가 있어 나를 죄수의 몸에서 풀어주었습니다. 이것은 나를 알아본 것입니다. 나를 알아보면서 무례한 것은 차라리 죄수들 속에 두는 것보다 못합니다.”라고 했다. 이에 안자가 그를 맞아들여 상객으로 삼았다.
<晏子>爲<齊>相, 出, 其御之妻從門閒而闚其夫. 其夫爲相御, 擁大蓋, 策駟馬, 意氣揚揚, 甚自得也.
안자가 제나라 재상이 되어 외출하는데, 그 마부의 아내가 문간에서 그 남편을 엿보았다. 그 남편은 재상의 마부가 되어 마차의 큰 차양을 붙들고 네 마리 말을 채찍질하면서 의기양양하여 매우 만족해 있었다.
旣而歸, 其妻請去. 夫問其故. 妻曰 : “<晏子>長不滿六尺, 身相<齊國>, 名顯諸侯. 今者妾觀其出, 志念深矣, 常有以自下者.
얼마 후 남편이 돌아오자, 그 아내가 돌아가기를 청했다. 남편이 그 까닭을 물으니, 아내가 말하기를, “안자는 키가 6척이 되지 않는데도 몸은 제나라의 재상에 올랐고 이름은 제후 사이에 드러났다. 지금 내가 그 외출하는 것을 보니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하고, 항상 자신을 낮추는 모습이 있습니다.
今子長八尺, 乃爲人僕御, 然子之意自以爲足, 妾是以求去也.”其後夫自抑損. <晏子>怪而問之, 御以實對. <晏子>薦以爲大夫.
지금 당신은 키가 8척인데도 남의 마부가 되어 그런데도 그대의 뜻은 스스로 만족하게 여깁니다. 나는 이 때문에 돌아가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 후에 남편은 스스로 억제하고 겸손해졌다. 안자가 괴이히 여겨 물으니, 마부가 사실대로 대답햇다. 안자는 그를 추천하여 대부로 삼았다.
<太史公>曰 : 吾讀<管氏>《牧民》·《山高》·《乘馬》·《輕重》·《九府》, 及《晏子春秋》, 詳哉其言之也.
태사공인 나는 말한다. “나는 관자가 지은 <관자>라는 책의 목민, 산고, 승마, 경중, 구부의 각 편과 안자가 지은 <안자춘추>를 읽었는데, 그 말한 바가 아주 상세했다.
旣見其著書, 欲觀其行事, 故次其傳. 至其書, 世多有之, 是以不論, 論其軼事.
이미 그 저서를 읽고 나서 그 행적을 보고 싶었으므로 그 전기를 적기로 했다. 그들의 책은 세상에 많이 퍼져 있으므로 자세히 논하지는 않고,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일을 말했다.
<管仲>世所謂賢臣, 然<孔子>小之. 豈以爲<周>道衰微, <桓公>旣賢, 而不勉之至王, 乃稱霸哉?
관중은 세상에서 이른바 현명한 신하이다. 그러나 공자는 그를 작게 보았다. 주나라의 정치가 쇠미해지고 환공이 어질었음에도 왕도에 이르도록 힘쓰지 않고 패자(覇者)를 칭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음인가?
語曰“將順其美, 匡救其惡, 故上下能相親也”. 豈<管仲>之謂乎?
(효경에 있는) 옛말에 “(군주의) 아름다운 점을 따르고 그 결점을 바로잡는 신하라야 위(군주)와 아래(신하)가 능히 서로 친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어찌 관중을 두고 이르는 말인가?
方<晏子>伏<莊公>尸哭之, 成禮然後去, 豈所謂“見義不爲無勇”者邪?
(장공이 최저에게 피살되었을) 그 때 안자가 장공의 시체에 엎드려 곡을 하고 예의를 치른 후에 가버린 것은 이른바 “의로운 것을 보고 행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는 사람이라.”는 말에 해당하는 것인가?
至其諫說, 犯君之顔, 此所謂“進思盡忠, 退思補過”者哉! 假令<晏子>而在, 余雖爲之執鞭, 所忻慕焉.
그러나 임금의 면전에서 직간을 하는 안자는 소위 “나아가서는 충성을 다하려고 생각하고, 물러나서는 잘못을 보충할 것을 생각하는 사람”일 것이다. 만약 안자가 지금 살아있다면, 내가 비록 그를 위하여 채찍을 잡는 마부가 될지라도 기꺼이 그 일을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