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학기 무사히 마무리하고 지난 금요일에 방학을 했습니다. 이번 학기에 한번도 카페에 우리반 소식을 올리지 못했네요. 지나고보니 무엇하느라 그렇게 바빴는지 싶습니다. 아무래도 새롭게 담임을 맡은 우리반 아이들을 알아가고 친해지는데에 마음을 많이 썼던 것 같습니다.
올해 상급2반 삶교과 주제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자기 길 찾기’입니다.
어떤 길을 어떻게 찾아갈것인가? 저는 ‘오솔길’이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제안했습니다. 쭉 뻗은 대로도, 빨리 갈 수 있는 지름길도 아닌, 숲속에 자연스럽게 생긴 좁고 굽은 오솔길입니다. 애초에 길이란 사람들이 자꾸 다니면서 만들어지게 됩니다. 실제 숲속에서도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길을 내고 반복해서 걷다보면 길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누구나 자기만의 오솔길을 만들 수 있는 것이지요. 삶 속에서도 자기만의 오솔길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올해 우리반 삶교과 방향입니다. 무엇보다 오솔길의 미덕은 천천히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챙기면서 걸을 수 있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이번 한학기 동안 제가 바쁘다고 느꼈다면, 그것은 아이들 각자의 오솔길, 열한개의 오솔길에 어떻게 해서든 조금이라도 동행해보려고 노력하느라 그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다음 학기에는 저도 좀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오솔길을 걸어보도록 해야겠습니다.
오솔길을 걸으면서 무엇을 할것인가? 이번 학기에 저는 아무것도 내용적으로는 제안하지 않았습니다. 각자 아이들이 자신의 관심에 따라 개별적으로 프로젝트를 찾고 그것을 한학기 동안 실행해보라고만 했습니다. 저는 그 과정에 상담도 하고 조언도 하고 요청하는 도움을 주기도하면서 아이들의 오솔길에 동행했습니다. 3월 한달 동안은 아이들이 각자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고, 들살이를 다녀온 직후부터 본격적으로 열개의 프로젝트가 동시다발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고3인 예은이는 인턴십으로 4층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져서 인턴십 자체를 프로젝트로 가름했습니다. ) 6월 말부터 방학하는 날까지 총 세차례에 걸쳐 열 개의 프로젝트 결과 발표회를 가졌습니다. 마지막주 동안 아이들은 자신의 프로젝트 과정을 돌아보는 긴글쓰기를 마무리하고 방학에 들어갔습니다.
아이들을 보내고 교실을 돌아보았습니다. 아이들의 책상 위에는 한학기 동안의 시간들이 담긴 세권의 공책이 놓여져 있습니다. 아침마다 읽은 ‘시공책’과 ‘철학노트’, 그리고 삶교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쓴 ‘삶교과 공책’입니다. 아이들이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했는지 궁금하시다면 게시판 아래 글들을 열어보세요~~~
1. 시공책
한달에 두 개의 시와 만났습니다. 초순에는 한글로 된 시, 중순에는 영어로 된 시를 공책에 적고 아침마다 읽었습니다. 때로는 아이들과 시 외우기 대결을 하기도 했는데 번번히 제가 졌습니다.
2. 철학공책
매일 아침마다 철학적 내용이 담긴 한페이지 분량의 짧은 글을 읽고 각자 마음에 생겨나는 질문을 적는 공책입니다. 글의 제목도 각자 정합니다. 흥미로운 질문이 나오면 그 질문에 대해 다함께 나눠보기도 했습니다.
3. 삶교과 공책
삶교과 시간에 진행되는 내용을 꼼꼼히 공책에 적도록 했습니다. 3월에는 매일 그날 삶교과 시간에 진행한 내용을 돌아보며 글로 기록하도록 했고, 들살이 이후에는 매주 금요일마다 한주동안의 자신의 프로젝트 진행상황을 적도록 했습니다. 아이들은 그 과정에서 생긴 어려움이나 새롭게 발견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열심히 기록했습니다. 이름하여 ‘오솔길 돌아보기’입니다. 처음에는 그런 글을 매번 쓰는것에 부담을 많이 느끼는 듯했는데, 나중에는 제가 깜빡 까먹으면 아이들이 먼저 ‘오솔길 글쓰기’안하냐고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공책 한권이 다 채워지고 어떤 아이들은 두권째로 넘어가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주에 한학기를 돌아보는 긴글쓰기를 할 때, 아이들은 자기가 쓴 이 공책을 이리저리 살피면서 중요한 자료로 삼았습니다. 아이들에게 이 공책이 앞으로도 소중한 보물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삶교과 공책 내용은 아이들 각자의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다음 글들에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4. 마무리 기도
오후 청소시간이 끝나면 아이들은 빨리 마무리 기도를 하자고 조릅니다. 마무리기도를 해야 집에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중 아이들 목소리가 가장 우렁찬 때이기도 합니다. 슈타이너의 기도시입니다.
<만종의 기도>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진실함을 지켜내고
고귀함을 공경하고
선함을 결심하는 것,
그것은 사람들을 인도합니다.
의미가 있는 삶으로
정의로운 느낌으로
분명한 생각으로
그리고 우리가
대자연의 섭리를 따르도록
가르칩니다.
오늘 하루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