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간.4] 포덕163년(2022) 857호
여행
호호망망 넓은 천지 일신으로 비껴서서(1)
최만정_아산교구
코로나 발생 직전 중국, 베트남, 라오스,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인도, 아랍에미리트, 터키, 불가리아, 알바니아, 루마니아, 슬로베니아 세르비아, 러시아, 우크라이나, 몰도바, 아르메니아, 조지아 등 31개국을 다니며 여행기 《바람을 안고 세상 품으로》를 최근 펴낸 최만정 동덕의 글 일부를 연재한다./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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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무엇일까?
떠나고 싶었다.
50대 중반을 지나며 몸보다 마음이 먼저 늙은 느낌, 주어진 일은 쳇바퀴처럼 갖힌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할 일마저 더 이상 새로움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고도 새날에 감사한 마음이 들지 않을 무렵, 일할 나이가 채 10년도 남지 않았다는 각성에 이르렀다. 삶은 그 방식을 늘 변화시켜야만 지속 가능하리라.
용기가 필요했다.
살면서 맺은 관계는 그물코처럼 서로 엮여있어, 누군가 떠나면 또 다른 이가 그 무게를 책임지고 희생할 수밖에 없는 법. 저만 좋다고 떠나겠다? 1년 가까운 여행은 가족과 주변에 신세를 끼치는 일이라, 갚을 용기를 내야만 가능했다.
여행은 무엇일까.
아무리 멋진 풍광도 하루 이틀 지나면 익숙해지고, 사람 사는 모습은 대개 비슷하다. 잘 사는 나라든 개발도상국이든 어느 도시나 해가 뜨면, 미화원이 청소를 하고 건설노동자들이 일을 시작한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출근길 거리는 차량이나 오토바이로 붐빈다. 나도 출근하듯, 주로 거리나 시장을 걷지만, 부러 만원 버스나 지하철을 타보기도 한다.
낯선 땅에서 느끼는 같은 일상, 운명으로 얽매인 생업을 떠나 다른 나라 다른 문화 사람들을 보는 건 신기하고 한편으로 어색하다. 갑자기 하던 일이 그립고, 한국에서 고생하는 이들이 떠오른다. 뒤돌아볼 때마다, 인생은 외로움마저 사치였다. 이내 정신을 차린다.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를 이곳, 지금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가, 부지런히 도시 탐험을 계속한다.
여행은 무엇일까. 한국 소식이 궁금하고, 인터넷이 발휘하는 힘은 자꾸 시간과 마음을 끌어당긴다. 하노이 북미회담은 이틀 정도를 투자하며 뉴스만 보다 실망했고, 북·미·남 판문점 회동은 실시간 중계를 보면서 뿌듯했다. 일본 경제보복 이후에는 일제 불매운동 추이가 궁금했고, 어쩌다 마주치는 일본제품을 무시했다. 윤석열 청문회 때는 적극 응원했지만, 조국사태가 터지면서 한국의 역동성, 그 변화무쌍함에 진저리를 치기도 했다.
다시 여행은 무엇일까. 다녀온 곳을 떠올리며 다시 그때처럼 되묻는다. 천안문 광장을 내려다보는 마오쩌뚱은 시진핑이 꿈꾸는 중국몽(꿈)을 어떻게 볼까. 호치민은 그 소박한 집무책상에서 오늘날 통일베트남이 미국과 이렇게 가깝게 지낼 줄 생각이나 했을까. 크렘린궁 광장 레닌 묘와 정교회 성당들, 그리고 쌍두독수리와 맥도널드가 공존하는 미묘한 느낌은 무엇인가. 발칸반도 구공산권 국가들과 옛 소련에서 독립한 나라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아, 풀릴 듯 풀리지 않는 마지막 냉전지대,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 민족은 어떻게 상생통일을 이룰 수 있단 말인가.
돌아온 지도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아침에 눈을 뜨면 잠시, 여기가 어딘가?, 당혹스럽던 기억도 벌써 아스라하다. 대신 술에 절어 부은 얼굴을 찬물로 적시며, 내일부터는 정신을 차려야지, 다짐하는 일상이 반복된다. 익숙한 과거로 돌아왔다. 하지만 분명한 단절을 느낀다. 홀로 여행하는 사람으로 보는 눈.
어쩌면 인생은 그 자체가 여행일지 모른다. 돌아오지 않을 곳으로 떠날 때까지, 우리는 관계나 공간에서 얼마나 많이 떠났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하는가. 떠날수록 더 많이 그리웁고, 외로울수록 더 큰 자유를 얻는 경험, 여행은 호기심과 용기로 자기를 변화시키려는 시도인가.
아마 여행에서 보고 알고 느낀 모든 재료들은 앞으로 끝없는 되새김 과정을 통해 소화되리라. 경비를 보태주고, 시간을 허락해준 지인들과 아내에게 감사드린다. (2020. 1. 20. 좌부리에서)
무조건 나간다.
늙어가는 개구리, 뒤늦은 결심을 몇 달 전부터 주변 돌에 새기기 시작했다. 빈손으로 다시 돌아오더라도 밖으로 나간다. 우물에서라도 좀 더 큰소리로 울어 주기를 바라는 이도 있었지만 대부분 뒷다리에 힘을 불어 넣어주었다. 몇몇은 마른 땅에 대비하여 작은 물주머니를 목에 걸어주기까지.
우물을 벗어나자 바람은 시원했으나 구름이 어디까지 흐르는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샛별만을 바라보며 걷고 또 걸었다. 강을 건너 늪을 지날 때마다 여러 우물에서 황소개구리나 맹꽁이 소리를 들었고, 초원을 지나 산을 넘을 때는 두꺼비나 화살독개구리를 만나기도 했다. 해가 뜨면 살았던 우물 방향을 가늠하고, 해가 지면 떠나온 우물을 향해 멀리서 함께 울었다.
달이 차고 기울기를 몇 번, 언젠가부터 드높던 하늘이 점점 몸에 물들기 시작했다. 우물이 크든 작든, 우물 안이나 밖이나, 어디서나 푸르른 저 빛나는 하늘을 늘 마음에 담고 살면 그만이지 않을까.
1. 떠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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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안 나갔어?
1년 정도 쉬고 싶었다.
하는 일은 책임감만 남고 관성으로 흐를 뿐, 가슴은 식어가는 느낌. 소탐대실(小貪大失), 작은 것을 탐하다 큰 것을 잃는다는 말처럼, 어쩌면 나는 큰 물줄기를 만들지 못하고 작은 성과에 자조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촛불로 타오른 열망은 정권교체에 그치고, 시민이 주체가 되는 시민운동은 여전히 제자리걸음. 그래, 고민만 하느니 과감하게 한 번 떠나보자.
국내에 있으면 기존 일들과 연결이 될 수 있으니, 아예 국외로 떠나자. 재삼재사 결심을 굳히고 주변에 이야기를 시작했다. 세계 소식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데, 굳이 떠나야만 하나? 내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고 싶어요. 역할을 맡았던 단체가 활력을 잃지 않겠나? 좀 더 젊은 분이 나서 변화를 이끌 수 있도록 해봅시다. 몇 달이 걸렸지만 여러분들이 도와주어 순조롭게 하던 일을 이관할 수 있었다. 더구나 노잣돈까지 보태준 분들로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처음 갈 지역으로 선정한 중국 운남성. 사계절이 봄과 같고 경치가 뛰어날 뿐 아니라 소수민족이 많이 사는 곳이란다. 80여 개 나라를 다닌 경험자는 결코 실망할 일이 없다고 힘주어 강조하였다. 한국은 여전히 겨울이었기에 따뜻하단 말에 끌렸고, 차마고도를 걷고 샹그릴라를 보고 싶었다.
총회는 마쳤지만 후임자들에게 인수인계하는 과정이 늘어지고, 격려를 받는 술자리가 이어졌다. 막상 결정되고 며칠 지나니, “어? 아직 안 나갔어?” 농담하는 이까지 생긴다. 2월이 시작되면, 무조건 떠나야지. 운남성 성도인 쿤밍을 가는 비행기 표를 예매하니, 출발 3일 전. 중국은 비자가 필요하다는 정도는 알았기에 비자만 받아놓았을 뿐, 미처 여행지 사전조사나 계획을 세우지 못해 다급해졌다.
아무래도 불안해서, 운남성 현지 한국인 가이드 패키지를 알아보고 며칠 일정으로 신청했다. 가방은 다니기 편하게 무조건 매는 것으로 한 개, 그리고 그 안에 작은 가방을 하나 더 넣었다. 여행 전자책 몇 권을 다운 받은 구형 노트북 하나. 신용카드와 체크카드 각 한 개, 웃옷과 바지, 그리고 속옷은 두 벌씩, 양말은 세 켤레. 상처났을 때 바르는 연고 후시딘과 비상약 몇 개. 작은 우산과 셀카봉, 신발은 여름용으로 하나 더 챙겼다. 무겁지는 않았지만 가방이 빵빵 했다.
큰 계획만 세웠다. 중국과 베트남, 그리고 러시아를 중심으로 옛 사회주의권이었던 나라들이 지금 어떻게 사는지, 어떤 변화과정에 있는지 보자.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며 새로운 일을 찾기 위한 작은 실마리라도 얻어오자. 어렵게 주어진 기회니만큼 여행경비가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이동 경로상에 있는 주변국들을 둘러보자. 그 전에 방문했던 나라들은 빼고.
몇 가지 수칙도 정했다. 메뚜기처럼 풍광을 쫓아다니지 않기, 가능한 곳에 머물며 생각하기, 수박 겉핥기식이라도 그 지역 역사나 현실에 관심 갖기, 개인 경비를 최대한 아끼되 필요한 일에 적절하게 쓰기, 부지런 떨기나 조급함을 경계하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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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병을 안고 인천공항으로
2019년 2월 초, 아내가 모는 차를 타고 출발, 배방읍사무소 앞에 도착했다. 가로등불이 살짝 내린 비에 어른거린다. 바닥이 얼지는 않았으나 버스를 타려다 젖은 경계석에서 미끌, 순간 허리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천안터미널 가는 버스에 오르자마자 손잡이를 꽉 잡으며, 이젠 더이상 예전 몸이 아님을 실감한다.
이십일 전 쯤, 뜻하지 않게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혼자 움직이지 못해 의료진 도움을 받아 엑스레이를 찍을 정도로. 의사는 물리치료를 포함해, 한두 달 경과를 보자 했다. 난생 처음 링거를 맞고 겨우 걸어 나오며, 여행을 포기해야 하나, 그런 위기의식까지 들었다. 묶음집과 총회자료를 준비하느라, 며칠 밤을 새다시피 웅크리며 작업한 탓인가. 아니면 50대 중반이 넘어가는 증상인가.
어렵게 마련한 기회를 허망하게 미룰 수 없는 일.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다른 병원을 찾아 꼬리뼈 주사 시술을 받았다. 일주일이 지나도 차도가 크지 않아, 의사에게 사정을 이야기하니, 바로 한 번 더 시술을 하잔다. 그리고 두툼한 한 달 치 약봉지를 받았다. 평소 몸 상태로 회복되진 않았지만 관리 가능하단 판단이 들었다.
이틀 전, 해외 여행자보험을 가입하면서 새삼 여러 생각이 스쳤다. 지난 1년 이내에 의사 진단을 받아 투약을 받거나 시술한 사람은 여러 제약이 따랐다. 방문하는 나라가 여러 곳일 때는 가입조건이 아주 까다로웠다. 나중에 어떻게 될망정, 대충 조건을 맞춰 3개월짜리로 가입할 수밖에 없었다.
빈자리에 앉아 엉덩이를 의자 깊숙이 넣고 자세를 바르게, 허리에 다시 한번 힘을 넣는다. 약간 걱정스럽지만, 이미 버스는 출발했고 비행기는 기다린다. 몸을 잘 추스르며 더 큰마음으로 돌아오리라. 하늘엔 구름이 가득했으나 동쪽으로 붉으스레한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2. 돌아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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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건 무엇일까
2019년 12월 중순, 겨울답지 않게 따뜻했고 미세먼지로 앞산마저 희미했다.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한 달 반을 앞당겨 돌아왔다. 중국 비자 관계로 8월 말에 들렀다가 9월 중순에 다시 나갔으니 실제 열 달 정도 돌아다닌 셈. 연말까지 매일처럼 반가운 분들과 건배를 나누며 정겨움에 흠뻑 젖어 지냈다.
집 안팎 어수선함을 손보고, 대빗자루를 새로 샀으나 눈은 내리지 않았다. 다시 맞는 새해, 첫날부터 흐려 해맞이는 포기했다. 얼마 있다 겨울비가 3일 동안 내려 집에서 빈둥거렸다. 게으름이 몸에 배일만큼 적응되어도, 아침에 눈을 뜰 때면 가끔, 여기가 어딘가, 생각하는 습관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아직 여행이 끝나지 않은 걸까. 마음은 자꾸 대륙이나 두만강변으로 향한다.
가보고 싶었으나 갈 수 없는 땅, 말과 문화가 같아서 다른 나라보다 스트레스가 거의 없을 것 같은 나라, 전쟁터 나 분쟁지역 말고 한국인이 여행할 수 없는 국가, 조선(북)을 지척에 두고 돌아설 때, 언젠가 조만간 어떤 형태로든, 다시 오리라 결심했다.
대개 자기가 받은 친절보다 상처가 더 오래 기억된다지만, 여행은 돌아볼수록 어려움은 희석되고 한편의 추억으로 윤색되는가. 한밤중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공항에서 숙소까지 택시를 탔다가, 인적도 없는 공원에서 도둑놈 같은 기사와 택시비로 실랑이를 벌인 일이며, 하필이면 그 날 숙소가 이틀 전에 유람선 전복사고가 났던 다뉴브강 하류에 있는 배를 개조한 호스텔이라 당황했던 일까지, 떠올리며 혼자 웃기도 한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지만, 스마트폰 사진을 컴퓨터로 이틀 정도 옮기다가, 노트북이 너무 느리다는 핑계로 정리하다 말았다. 기념품으로 남긴, 방문했던 도시 안내도나 버스, 기차, 항공표 등도 순서대로 갈무리하려다 그냥 서랍에 넣어 두었다. 작은 나라까지 30개국 이상 수많은 도시를 다녔으나, 지금은 나라별 수도 이름을 바로 연결하기 어렵고, 가는 곳마다 몇 마디 외었던 인사말도 대부분 기억나지 않는다.
여행 끝에 남은 건 무엇일까?
이미 세계는 실시간으로 연결되어, 북유럽 에스토니아나 적도 인도네시아까지, 어디를 가도 항상 손바닥에서 온갖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세상임을 몰랐던가. 베트남이나 인도, 두바이 등 나라마다 정치체제와 경제 수준, 종교가 달라도, 자국 이기주의와 물질적 욕망이 들끓는 세계라는 걸, 다니고 나서야 실감했단 말인가.
여행이 자기 성을 떠날 수 있는 용기로부터 시작된다면, 삶은 매일 짐을 꾸리는 여행자처럼 항상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마음으로 완성되는 것일까. 어쩌면 여행은 다른 이들을 통해서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발칸반도 내전 격전지, 사라예보 집단학살(제노사이드) 작은 박물관에서 어설프게 주고받은 대화 몇 마디가 계속 맴돈다.
“아무리 민족과 종교가 다르다고 해도, 어떻게 이런 끔찍한 전쟁과 학살이 자행될 수 있단 말입니까?”
“자기네 민족이나 종교를 극단적으로, 국가 이기주의를 선동한 지도자들 탓이 크겠죠. 맹목적으로 따른 사회집단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런데, 코리아는 같은 민족이라면서 전쟁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꼭 그에게서 들었기 때문은 아니다. 여태껏 남쪽만을 중심으로 생활하고 사회운동을 하면서 많은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지금은 각계각층 사회운동이 북쪽까지 포괄하는 사업으로 관심을 확장하여, 민족전체가 평화롭게 상생하는, 어떤 세력이나 외세도 돌이킬 수 없는 체제를 만드는 일에, 누구나 팔을 걷어붙일 시대가 아닌가. 나부터 앞장 설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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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여행
신발 뒤굽 바깥쪽이 닳는다. 양쪽 마찬가지 비슷하게, 새 신발도 한 달 가량 지나면 바깥쪽만 많이 닳아 기우뚱해진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이십 년은 넘었다. 특별히 불편하지 않아도 보기에 거슬린다.
보통 싼 신발을 사서 일 년에 한두 번 바꾼다. 닳는 속도와 차이를 최소로 하고 싶어, 일부러 밑창이 얇고 단단한 걸 고른다. 어쩌다 몇만 원짜리 신발을 사면, 수선소에서 뒤굽 바깥쪽에 고무조각을 덧대가며 신는다.
내 생각엔 분명 똑바로 걷는데, 아무리 보아도 내 발걸음은 비뚤어지지 않고 거의 1자로 반듯한데도, 왜 그럴까? 팔 자 걸음, 골반이 틀어져서 그런단다. 몸에 별문제는 없지만 인정할 수밖에. 한쪽만 닳는 내 신발 뒤굽이 명백한 증거니까.
고치기로 했다. 아직도 냉큼 인정하기 어렵지만 팔 자 걸음인 건 분명하다. 나부터 변화시켜야겠다. 일부러 밑바닥이 약간 높고 부드러운 운동화를 만 원에 사왔다. 의식적으로 뒤꿈치 안쪽에 힘을 주고 1자 걸음을 걷는다. 이틀 동안 꽤 많이 노력했어도, 벌써 바깥쪽 뒤굽 무늬부터 닳는다. 그래도 노력을 계속해야겠다. 이미 새로운 여행을 시작했으니까.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