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이 남긴 9곡의 교향곡은 확실히 음악사의 불멸의 작품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향곡 제1번》이 완성했을 때는(1800년) 아직 30세가 채 안되었을 때이다. 그러나 작곡가로서의 명성은 이미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므로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가 이때까지 교향곡을 쓰지 않았다는 것은 무척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베토벤이 이처럼 교향곡을 늦게 썼다는 사실은 교향곡에 매우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고 할 수도 있다. 베토벤 교향곡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베토벤 이전의 교향곡은 여흥음악의 성격이 있었지만, 베토벤에 이르러 교향곡은 작곡가 내면을 표현하고, 지성과 드라마를 담는 장르가 되었다.
베토벤은 9개의 교향곡을 통해 음악기법을 새로운 표현의 경지로 올려놓았다. 그는 기존의 관현악에 새로움을 요구했으며 피콜로, 더블 바순, 트라이앵글 베이스 드럼, 심벌즈, 제3 트롬본, 그리고 마침내는 《교향곡 제9번》에서는 합창과 독창을 교향곡에 처음 도입했다. 그는 이전의 소나타 형식 가운데 덜 중요하게 다루었던 부분을 확장하고 변주를 더욱 활용했으며, 때때로 중간에 휴지없이 악장과 악장을 연결시켰으며 이전의 미뉴엣 악장을 더욱 빠르고 명쾌한 스케르초 악장으로 완전히 대체했다. 그래서 베토벤 교향곡과 그의 음악들은 서양 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혁명적인 순간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 유럽은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급격한 변화의 시기였고,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자유와 평등에 대한 이상이 유럽 전역에 퍼지면서, 예술과 음악도 혁명적인 변화를 겪게 되고 이러한 변화의 속에서 베토벤의 교향곡들이 탄생한다. 교향곡 외에도 그의 작품들은 그 시대의 사회적 변화와 문화적 전환을 반영하면서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개성적인 음악적 표현을 과감히 시도했다.
특히 베토벤 교향곡은 극적인 강렬함을 통해서 개인의 정서와 보편적인 인간의 포부를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다. 그는 교향곡을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와 다른 관점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즉 피아노 소나타를 비릇한 다른 장르의 음악들을 총결산 하는 것으로 생각했고, 그 이상의 커다란, 전인류적인 사상을 담으려 했다. 말하자면 교향곡을 논문처럼 생각했던 것이다. 베토벤에게 교향곡은 전 인류를 향한 거대한 논문이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의 재료나 서법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베토벤의 교향곡 작곡에 대한 창의력은 《교향곡 제9번》에서 집약되고 사실상 이 9번은 그의 최후의 교향곡(1824년)이 되었으나 베토벤 자신은 《교향곡 제10번》도 작곡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베토벤 연구가로 유명한 노테봄(Gustav Nottebohm, 1817~1882)은 그의 저서에서 교향곡 제10번에 대해 스케치까지 들어갔음이 확실하다고 주장한다. 《교향곡 제9번》이 일련의 교향곡들의 정점에 있었다고 한다면 교향곡 제10번에서 베토벤은 다시 새로운 방향을 개척하려 했던 것일까...!
총 9곡의 베토벤 교향곡들은 불멸의 9곡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그것은 진정 베토벤 음악의 정수이자 교향곡 역사상 가장 소중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첫댓글 어느 누구와도 비교 설명 할 수 없는 천재 랄까........
기인 . 광인 ? 아님 신의 경지이겠조 . .
청각을 완전히 잃은 상태에서 작곡. 지휘 . . . . .
말도 안됨니다. 입만 딱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