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다테야마 산행기 (홍진수)
2007. 7. 13 ~ 7. 15 (2박3일)
1. 떠나기 전에
2년전(정확히 2005.11. 2 ~ 11. 4일까지 2박3일간)에 양주시 사회복지과로
발령을 받은 뒤 묘지업무를 맡아 본의 아니게 경기도에서 추진한 선진국 장사
시설 견학차 일본의 동경을 갔다 오게 되었다.
9명의 소규모 인원이 선진 장사시설 견학의 명목으로 동경에 2박3일간 보낸
것이었다. 아무튼 덕분에 비행기 한 번 못타보고, 제주도 한 번 못가봤던 나는
갑자기 해외여행을, 그것도 국외출장의 이름으로 일본을, 그것도 세계 제1의
도시인(아마도 인구규모가 뉴욕보다 크다고 함?) 도쿄에, 그것도 2박 3일간 다녀
오게 되었다.
그런 2년전 과거의 일본경험을 이번 여행길에 되새김질하며 7월12일 모든
미진한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오면서 이것저것 나름대로 여행준비에 대한 생각을
했다. 다음날 9시까지 시청에 가야 했기 때문에 웬만한 짐은 다 챙기고 출발해야
했기 때문이다.
집에 와서 산행에 필요한 이것저것 챙기다보니까 '진짜 일본 후지산 높이의
산에 가기는 가는 거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식의 여행은 정말 오래간
만이다. 시에서 가는 공무여행, 대학에서 가는 엠티도 기껏해야 어느 정도 일에
대한 부담감이 느껴지는데, 수학여행 이후로 이런 긴(?) 휴가 일정속의 여행을
생각하니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휴대폰을 비롯한 이 세상(대한민국)과의 소통단절 ~~
그런 상태에서 단 며칠이나마 해방된다는 것은 신나는 일일 수 밖에 없다.
아무쪼록 이 여행이 나에게 삶의 활력소가 되길.......
2. 여행의 첫걸음, 두 번째 타본 비행기
일찌감치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시청으로 가서 산악회소속 과장님, 계장님들과
함께 공항으로 갔다.
점심이 지난 오후인지라 공항은 분주했다. 다들 바퀴 달린 슈트케이스를 끌고
등산복 아니면 간편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환전은 미리 전날 은행에서 하였는지라, 짐 부치고 마일리지 체크하고 하다
보니까 2시간이 금방 갔다. 사람들이 신혼여행 갈 때 공항에 한 2시간 전에
미리 가야 한다고 일찍 일어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니 이 시간이 제일 들떴던 것 같다.
떠나기 전에 대기하는 이 시간이야 말로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 대한 기대와
조금 있으면 닥칠 새로운 경험들에 대한 설렘으로 가장 용기백배한 시간이 아닐까?
우리를 인솔할 여행사 가이드로부터 주의사항을 듣고, 비행기표와 여권과
입출국신고서 같은 것을 한 아름 받았다.
예전에 공항에 왔을때 미처 연락하지 못했던 인천세관에 근무하는 89학번 대학
선배에게 전화를 해서 공항 G게이트 1층 로비에서 잠깐 만났다.
세관원 제복을 입고 나타났는데 대학졸업 후 10년만에 만나보는 반가운 얼굴
이었다.
2년전 결혼해서 아이가 1명 있다고 하는데...
4,000명이 인천공항세관에 근무한다고 하니 대규모 조직이라는 생각이 든다.
92학번 후배 한 녀석도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근무한다고 해서 연락
했는데 이 녀석은 퇴근해서 나중에 보자고 한다.~~
사람들은 출발하기 전 면세점에서부터 쇼핑을 시작했다. 나도 그 분위기에 휩쓸려
담배 1보루와 여자향수를 골랐다.!^^
비행기에 들어가서 좌석을 찾아보니 비행기 좌석은 산업경제과장님 옆에 창가
여서 창밖을 내다보는 행운을, ~~~~ 기분이 좋았다!~
아니~그런데 보건소장님이 "자기야! 나랑 자리 바꿔!
아무말 않고 바꿔드렸슴다! 돌아올 때도 창가였음으로 비행기 좌석에 대한 보상은
실컷 받았지만ㅋㅋ~~~
비행기 안은 생각보다 좁았슴다.....
다른 사람들은 부부동반으로 여행이다 뭐다 해서 비행기 타는 것에 대해 아무런
감흥도 없어 보였지만 난 다시 한번 호기심 소년이 되어 이륙의 순간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비행기가 슬슬 움직였다. 한참을 앞으로 나아가더니 어느 순간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 느껴지는 순간 '아! 비행기가 땅에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구나!'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 순간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는 듯이 갑자기 현기증이 일어났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워져서 눈을 꼭 감았다. 한동안 그러다가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나니까 좀 좋아졌다.
그리고 어지럼도 사라지면서 비행기가 안정 궤도에 오른 듯이 편안해졌다.
한참을 지나 기내식이라는 것을 먹었다. 썩 내 입맛에 맞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침을 적게 먹은 탓에 거의 다 먹어치웠다.
그런데 스튜어디스가 2년 전에 비해 외모가 좀 떨어지는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1시간 30분 정도 걸렸을까? 앞의 비행경로를 틈틈이 확인하는 사이 다시 현기증을
동반한 착륙과정을 거쳐 드디어 나는 일본 땅에 두 번째 발을 내딛게 되었다.
나고야 공항에...
공항에 내리자 우리 일행은 내린 순서대로 입국 심사를 받고 있었다.
나고야 공항의 첫 느낌은 일단 이국의 공항이라 그런지 낯설고, 좀 권위적이라는
것이다.
입국 심사하는 곳까지 조금 걸었다. 외국인들이 상당히 많았으나 대부분 한국인들
이었다.
꽤 긴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입국 심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공항 건물 밖으로 나와 우리를 태울 버스로 향했다. 일본 날씨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40인승 버스를 타고 공항을 빠져 나왔다. 이제 본격적인 일본에서의 산행을
비롯한 날들이 시작된 것이다.
3. 일본에 대한 두 번째 인상
나고야 공항에서 나고야 시내까지는 2시간 가까이 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나고야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고속도로가 잘 되어 있었고, 시간이 금요일 오후5시를
갓 지난 때라 차는 별로 안 막혔다.
창 밖을 통해 일본의 시골풍경을 감상했다. 이때의 느낌은 우리나라와 별 차이가
조금은 있다는 것이었다.
측백나무와 삼나무를 비롯한 조림이 무척이나 잘 되어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일본의 나무들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나무들도 많았고, 도로주변 경관도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
놨다. 단정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것이 인공미 가득한 일본의 특징인가?
공항에서 나고야 성으로 가는 고속도로가의 마을들은 비교적 깨끗하고 아담했다.
차도 많이 지나다녔다.
지난번 도쿄에 갔을 때도 느꼈으면서도, 그리고 버스 안에서도 보았지만 정말
일본에서는 차의 핸들이 오른쪽에 있었다.
가이드 말로는 유럽방식의 자동차 구조란다...
나고야 시내에 가까워져서 그런가? 점차 높은 고가도로가 보이고, 도로주변에
공장인지 거대한 건물이 보이고, 특유의 일본 간판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제야 일본다운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곳이 오사카, 교토와 비롯해 있는 나고야라는 도쿄(관동지방)와
근 500km 떨어져 있는 관서지방이라는 고등학교 때 지리 지식을 떠올리기도
했다.
나고야에 들어서면서 높은 고가도로를 지났다. 지난번 도쿄때와 마찬가지지만
약간 다른! 감탄의 연속이었다.
우리나라의 지금은 없어진 청계천 고가도로와는 차원이 달랐다.
고가도로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봤을 때 그렇게 높은 고층빌딩은 아니지만 건물
들이 참 많았고, 공장들도 많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았다.
이곳에서 우리나라의 LG와 삼성의 간판도 볼 수 있었다. 간판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여러 곳에 삐죽삐죽 솟아 있는 간판에는 그야말로 유명한 세계적인 기업
들이 많았다.
이름만 듣던 일본 기업(소프트 뱅크, 소니, 아사히 맥주)들도 많았다.
일하는 시간이라 거리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일본의 거리는 서울의 거리보다
훨씬 깨끗했다.
지난 2년 전의 도쿄거리의 특징하면 깨끗함을 내세울 수 있을 정도로 곳곳이
깨끗했었는데 여기 나고야도 깨끗할까?
역시 깨끗하다. 물론 이 말은 대한민국 서울 거리보다 깨끗하다는 이야기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나고야는 일본에서 도쿄, 오사카, 요코하마 다음으로 4번째
큰 도시이며, 인구규모 400만 이라고 한다.
그러나 도시규모로는 도쿄가 뉴욕에 비견하듯이 나고야는 서울에 견줄만 하다고
하니......
4. 나고야 성과 호텔에서
창밖 비내리는 거리구경을 하다가 버스에서 내려 나고야 성 관광을 한다며
거리에 처음 발을 내딪었다.
일본성은 뭐랄까?
전국시대를 평정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축성을 하면서 막부정치를 펼치기 전에
은거했다고 하는데 과거 사진속에서 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축성한 오사카성과
비슷했다.
성 바깥을 적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물로 채운 연못 해자도 비슷하고...
가이드의 채근에 비 맞으면서 나고야 성을 외곽배경으로 사진 한 컷을 찍고,
다시 버스에 오르며 다테야마 인근 숙소인 북쪽호텔을 향해 버스는 고속도로를
타고 있었다.
일본 고속도로의 평균 주행속도는 60km이며, 우리나라처럼 톨게이트 요금
징수원이 없다.
다 레이져로 주행거리를 계산해서 나중에 청구한다고 하니 얼마나 선진적인
기법인가.
톨게이트마다 인건비를 확 줄이고, 교통체증도 감소되고...
저녁7시가 넘어서 배가 고파지는데 호텔도착하려면 밤10가 넘는다고 한다.
휴게소에 들러 우동 한 그릇 먹고 가자고 가이드가 제시한다.
휴게소에 들러 식권 자판기로 식권을 뽑고, 우동이 나오기까지 가게를 들러
보았다.
이 나라 가게의 특징은 모든 상품마다 가격표가 매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신문에서 읽은 대로 손님이 가게에 들어와서 물건을 뒤적거려도
주인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손님이 마음 놓고 물건을 구경할 수 있도록 하는
배려인가?
이 가게의 음식거래는 표로 → 자동판매기로 거래 한다.
여기서 몇 가지 잡화와 문구와 잡지를 구경하였다. 확실히 일본 물건은 예쁘고
앙증맞았다. 전체적으로 크기는 작고, 섬세하고, 화려한 것과 소박한 것이 섞여
있으며,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실용적인 물건들도 많았다. 여기서 선물을
살까하다가 첫날부터 선물사기가 그래서 그냥 나왔다.
어둠이 깔린 고속도로는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가이드도 피곤했는지 우리 보라고 버스 안에서 톰크루즈 주연의 라스트사무라이
비디오를 틀어준다.
보신 분은 알겠지만 영화 내용인 즉 메이지천황시대 미국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
겪게 되는 일본 근대화의 갈등(전통사회와 근대사회화의 가치)속에서 주인공이
일본 정신세계에 동화되는 그런 내용인데 나름 괜찮은 영화 선택인 것 같았다.
머~나야! 창밖 일본의 불빛과 간판을 더 흥미롭게 봤지만...
숙소인 호텔은 공항에서 상당히 멀게 느껴졌다. 호텔은 다테야마 인근에 있는
산골에 있었다.
우리는 2명이 한 방을 배정받았다. 방은 예전 도쿄 신주쿠 리스트호텔에 묵었을
때보다 상당히 넓었고, 2개의 이불이 깔려 있는 다다미방 구조였다.
옷걸이 밑에는 유까다라는 일본식 잠옷이 놓여 있었다. 베란다에 나가서 구경
하니 그윽한 나무냄새가 정말 좋았다.
그리고 짐정리를 하면서 룸메이트(세무과 도세계장님)와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러다보니 가이드가 느닷없이 쫓아와서는 저녁 먹으란다...
저녁식사 테이블 두 자리가 비어 우리만 빠져서...
뒤늦게 일본식 저녁밥(입맛에 않맞으나 그런데로 먹을 수 있는)을 먹고 방에서
유까다와 수건을 챙겨 대욕장으로 향했다.
이곳은 온천이 많은 나라라 물 걱정은 없겠지? 하는 생각으로 야외온천에 물을
담고 몸을 담그니 피곤이 풀리는 것 같았다.
욕장에 들어가서 참 놀라운 사실 몇 가지를 보게 되었다.
어떤(?^^)분은 고릴라처럼 온몸에 털로 뒤덮여 야성미가 흐르시고 어느 분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몸이 좋으셨다.!^^
욕장에 가기 전에 어느 분이 남녀혼탕 아니냐며 속옷을 챙겨가라고 반 농담
하신게 기억난다.
참고로 욕장에 갈 때 유까다 안에는 아무것도 안입는다...!^^
목욕을 하고 나서 방에 들어와 이곳에 온 기념으로 유까다를 입어주고 의자에
앉아 일본TV를 시청했다.
일본 참의원 선거기간이라 그런지 아베총리가 나오는 정당광고를 많이 하곤
하는데 연금개혁 문제가 주요 이슈인가 보다....
한자를 보면서 조금 알아보았다.
낯선 곳에서의 첫날밤, 그것도 우리나라가 아닌 외국에서의.........
그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미지의 세계에 막 도착하여 앞으로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전혀 예측할 수 없을 때의 그 신비함, 두근거림, 바로 그 것이었다.
이전까지 생활이 따분했던 나에게 이 이상의 기분전환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난 여기서 최대한 보고, 듣고, 느낄 것이다.
후회되지 않게.....
불을 끄니까 엄청난 어둠이 밀려왔다. 정말 한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깜깜했다.
모든 빛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것 같았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질 사이도 없이
난 바로 잠이 든 것 같았다.
5. 산행에 앞서
아침에 눈을 떴을 때 5시였다. 푹 잤다는 느낌이었다.
모닝콜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나서 욕장으로 향했다.
욕장에는 잠이 없으신 몇몇 분들이 먼저 와서 탕에 자리 잡고 계시고...ㅋㅋ
아침을 먹겠다고 방에 들어와 유카다를 입은 채 식당으로 갔다.
다른 분들은 벌써 등산복 차림이다.
나는 유카다가 정말 맘에 든다...ㅋㅋ
무엇보다 속에 하나도 안 입고 전신에 걸치는 느낌이란! 좋았다.
일본의 아침식사의 특이함이란 생선(고등어?)요리가 나오는 것인데 비린내가
전혀 안난다는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오늘의 산행을 준비했다.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등산화를 신으며...
카노야 여관을 나서며 기모노를 입은 여관사장과 사진촬영을 부탁해서 한 컷
찍고...
처음에 "스미마셍 포토플리즈~"라고 영어반 일본어반 섞어 말 건네니 못 알아
듣는다!ㅋㅋ
가이드가 옆에서 일본어로 뭐라고 부탁하니 그때서야 같이 포즈를 잡아준다.
버스에 올라 또다시 창 밖을 내다보며 일본 조림에 신기해하는 사이에 버스는
구로베 다테야마 알펜루트를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어제도 느꼈지만~ 일본은 조림이 정말 잘되어 있다.!~
일본 수도인 도쿄가 살인이 하루가 멀다 하고 자주 일어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평온한 산림이다.(이곳 산림속을 들어오니...)
고도성장으로 인한 권태기인가? 더 이상 이룰 것이 없는 상황에서 느끼는 공허함
인가?
도야마현 알펜루트의 시발점역에서 전차로 갈아타고 오르기 시작했는데 터널을
5번인가 통과한 것 같았다.
갈아타는 지점마다 그들의 관광 상술이 돋보였다.
매점에서 포켓몬스터, 헬로키티나 베티붑, 도라에몽과 같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캐릭터 상품들을 많이 보았다.
지하터널 굴착을 60년대부터 시작하여 그런지 그 당시 토목공사에 대한 기록
사진이 터널 곳곳에 걸려 있었다.
지하터널을 빠져 나오니 드디어 구로베(黑部)댐이 펼쳐지면서 하얀 크레바스에
뒤덮인 다테야마(立山)가 보이는 것이었다!
6. 구로베~다테야마~알펜루트 산행
구로베댐에서 우리 일행은 카메라 촬영을 즐겁게 시작했다.
구로베협곡을 막아 놓은 구로베댐은 정말 우리 소양강댐과 같은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고도 1,448m에 위치한 구로베댐은 연인원 1,000만명이 동원되어 7년간의 공사
기간을 거쳐 1963년 완공되었다 하니.... 높이가 186m, 제방길이 492m, 담수량
2억입방m 라고 한다....
구로베댐 제방을 지나 지하터널 다테야마 승강전차를 타기 위해 구로베 지하역
에서 커피를 마시며 어철수 총무님이랑 여기오길 잘했어요!^^ 이런 말씀을 드렸
더니 그래! 정말 돈 아깝지 않지! 그러신다.
승강전차의 경사도는 직각 90도에 가까운 70~80도인데 위에서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올라오니 조금은 쌀쌀해 진다. 배낭에서 긴팔을 꺼내 입었다.
훨씬 더 가까워진 눈 덮인 크레바스.....!^^
이제 승강전차 지점에서는 케이블카로 갈아타는 지점이다.
교통계장님이 아사히 맥주 한 캔을 건네시며 마시라고 한다.
아사히 맥주 본사를 지난 2년전 도쿄에서 보았는데 노란 맥주거품 모양의
옥상구조물이 인상적인 모습이 기억났다. 일본 맥주는(아사히, 기린, 삿뽀로)
예전에 다 맛보았다. 약간 쓴 맛이었지만 먹을 만 하다.
한국 젊은 여성들이 겉멋이 들어서 그런지 삿뽀로 맥주를 좋아하는데 캔 모양이
멋있지~ 맛은 카스나 하이트에 비해 떨어진다. (개인적인 생각...)
삿뽀로 맥주가 1876년부터 생산 되었으니 우리나라 강화도조약으로 개항이
시작될 때부터 일본에서는 맥주가 생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케이블카로 다테야마로 올라가며 구로베 호수를 보니 점점 멀어진다.
이제 다테야마 등산코스이다. 산장을 지나 눈 덮인 크레바스를 지나야 한다.
2~3시간코스라며 등산화 끈을 꽉 조이라고 교통과장님이 설명해 주신다.
여기서 ‘양주시청 산악회’ 단체 기념 사진촬영을 하고 오르기 시작하는데
비바람이 점차로 거세진다. 이미 옷은 다 젖었고 추워지기 시작하는 데 길은
미끄럽다. 3,000m가 넘는 산을 오면서 고어텍스(방수방풍) 자켓을 안 가져온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이었는지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2시간이 지났을까 한 산장이 나와서 그 곳에 들러 베낭속에 젖지 않은 반팔로
속옷을 갈아입으니 한결 온기가 느껴진다.
한 시간을 바위산악을 더 올라야 정상이란다.
단단히 신발 끈을 다시 메고 강풍이 몰아치는 산등성이를 우리는 또 오르기 시작
하는데(나중에 들으니) 뒤에서 나이드신 산악연맹 소속 한 분이 쓰러지셨다 한다.
이종빈 주사님이 그 어르신을 업고 정상산장까지 올라오셨다.
얼마나 놀라운 체력이신가!^^
예전에 군복무 시절에 야간 산악행군 당시가 기억이 난다.
가평 명지산, 운악산을 넘어 야간 전술행군을 하는데 부대전입 얼마 안 된 신병이
퍼져서 내 바로 윗 고참이 그 녀석을 들쳐 업고 내가 그 녀석 군장 짊어졌던
기억이....
그 고참은 부대에 복귀해서 특별휴가 포상 받고 퍼진 놈은 군기교육대 1주일
가고......
이제 힘들게 올라온 정상 산장에서 아침에 준비한 도시락과 컵라면을 먹으며
추위를 녹이고 있다.
일본 컵라면을 먹어보기로 했다. 여기 일본라면은 종류가 많다. 우리처럼 얼큰해
보이는 라면이 아니었다. 국물을 먹었다. 뭐랄까. 아주 맛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느끼한 맛은 참을 수 없었다. 면발을 먹어 보았다. 면발은 괜찮았다.
일본 라면 분식집에서는 면발을 튀기는 것이 아니라 생으로 한다는데...
그리고 우리처럼 스프랑 처음부터 한데 넣고 끓이는 것이 아니라 일본 영화
“담뽀뽀”라는 영화에서 처럼 면발을 따로 삶고 국물을 따로 끓이는 형식이다.
그 영화에서는 라면을 잘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라면을 잘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위에 올려진 새우인지? 무슨 해물을 면발 깊이 감추면서 “요놈, 나중에
보자”고 한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아무튼 국물은 차마 못 먹을 맛이지만 면발은 그럭저럭 먹을 만 했다.
라면은 한국 라면이 제일 맛있다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일본에서도 한국
라면이 인기라고 한다. 이렇게 느끼한 것만 먹으니 얼큰한 우리 라면이 맛있을
수밖에......
어찌 어찌해서 라면을 다 먹고
아침에 여관에서 준비한 도시락은 우리나라의 한 솥 도시락보다 못했다.
입맛에도 안 맞았고, 반찬도 맛이 없었다. 그래도 땀 흘린 뒤 시장이 반찬이라고
맛있게 먹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쓰러지신 어르신을 산장에서 쉬게 하신 후 이제
하산할 걱정들을 하고 있었다.
비바람이 점점 거세지며 3,015m에서 이제 하산을 하려니 아무래도 우비가
필요할 것 같았다. 산장매점에서 우비를 사려고 가격을 물어보니 1,500엔이란다.
호주머니에 1,000엔이 있어 가이드에게 500엔 빌려서 우비를 샀는데 역시 메이드인
자팬은 다르긴 달랐다.
하의바지 우의에다, 물건(라이터?) 젖지 말라고 속 주머니까지 있어서 꽤 좋아
보였다.
김상준 형님이랑 뒤늦게 걸어가는데 건강증진계장님이랑 계장님 令愛인 연진이
(중학교 2학년 15세)가 뒤쳐지고 있었다. 정말 기특하다는 생각이 든다.
힘들다는 말 한마디 없이 올라가고 내려가고...
거진 크레바스를 끼고 다 내려오는데 교통과장님이 그러신다.
시세계장님이 죽다 살아나셨다고,,,,
내려오는 길에 크레바스에 사모님이 미끄러지셔서 구하려는 심정으로 같이
70여m를 미끄러지셨다는 것이다.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잘못 크레바스와
크레바스 사이의 협곡 틈으로 떨어지셨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순간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멈쳐진 후에 아무도 안 다치신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기사도정신 충분히 발휘한 시세계장님! 정말 부부애가 존경스럽습니다.
다 내려오니 유황냄새가 코를 찌른다. 유황온천이라 그런가 김(수증기)도
나고....... 하산 길에 오른발 등산화 밑창이 터져 나갔다.
10년은 신은 것 같았는데 역시 3,000m는 아무나 오르는 것이 아닌가 보다.
이번에는 좀 돈을 더 들여서라도 좋은 등산화를 마련해야겠다. 고어텍스도 하의
까지 준비를 해야지!^^
출발지점까지 다 내려와 시계를 보니 오후5시가 조금 넘은 것 같았다.
버스 안에서 소주 1병을 마시니 몸이 금새 따뜻해진다. 구름이 걸쳐진 바깥풍경을
바라보며 내려오면서 우리가 얼마나 높은 산에 올랐나 새삼 느껴진다.
7. 무로도 호텔에서 2박
무로도 호텔에 들어와 저녁식사를 하기 전 온천욕을 한 후에 유까다를 또 다시
입고 저녁 먹으러 식당에 갔다.
여행사 사장이 일본 술을 내왔다. 술은 일본 정종, 그냥 사께라 불리는 것과
소주로 하고.... 사께는 그냥 차가운 정종(청주)이었다.
지난 겨울에 뜨거운 정종을 가끔씩 친구들과 서울 인사동에서 마셨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다 되어서인지 몇몇 분들은 잠을 청하시러 가시고 나머지 몇 분 일행
들과 호텔주점에서 맥주를 마시며 여흥을 즐겼다.
그런데 술은 문제가 없었는데 안주를 시키려니까 메뉴판에 그림도 없이 글씨만
봐서는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오늘은 날이 아주 좋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까마귀가 호텔까지 날아오지를 않나 물론 그 만큼
깨끗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까마귀는 이 나라의 길조이기도 하다.
아침을 먹겠다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테이블에는 간장 그릇과 멸치조림 같은 것이 놓여 있었다. 조금 있다 식사가
나왔다.
개인 쟁반에 밥과 된장국, 생선, 단무지, 달걀찜, 그리고 무슨 나물로된 간단한
차림이었다. 김도 나왔다. 숟가락은 없었다.
우리처럼 국을 숟가락으로 떠먹지 않고 들고 마시는 정통 일본식 식사였다.
먹어보니 모두 먹을 만했다.
밥을 다 먹고 위로 올라가서 짐을 꾸렸다. 아침 8시까지 로비에서 모이기로
했다. 자판기에서 120엔을 넣고 커피를 뽑았다. 일본 캔 커피는 처음 마셔보았다.
상당히 괜찮다. 일반적으로 커피는 우리나라보다 쓴 편이라 라떼라고 적힌 것을
골랐다. 난 원래 커피에 설탕만 타는 커피를 즐기는데...
일본에서는 “Boss”가 유명한 커피메이커이다...
미국 영화배우 토미 리 존스를 광고모델로 삼았는데 말 그대로 보스에 어울리는
배우이다.
호텔로비에 담배 피우는 사람이 많았다. 여자들도 특히 많았다.
나중에 길거리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거나 걸어가면서 담배를 피우는
여자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기호품이라는 생각에 개인적으로 난 여자의 흡연에 대해 아무런 반감이 없다.
그래서인지 그러한 광경을 봐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일본의 여자들은 의외로 못생긴 사람들이 많았다.
눈이 비교적 크고, 쌍꺼풀이 대부분 있으면서도 전체적인 조화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특히 머리는 가관이었다. 뭐랄까?
우리나라 여자들의 머릿결은 보기만 해도 부드럽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이곳 여자들의 머릿결은 내 머릿결처럼 거칠고, 빳빳한 느낌을 준다.
윤기도 없다.
빅 사이트에서 본 수 많은 직장 여성들도 옷차림은 세련되었는데 머리모양은
옷차림에 맞지 않게 부스스한 경우를 많이 봤다. 그렇지만 확실히 일본 여자들은
상냥했다. 스쳐 지나갈 때마다 스미마셍(실례합니다)한다. 돌아와서 이 점을 친구
와이프(신라호텔 일식부 메니저 출신)에게 얘기했더니 말하기를 일본 사람들은
겉으로는 친절해도 속마음은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잘 모른다고 한다. 즉 지나
치게 친절한 것은 그들의 속마음을 감추기 위한 위장 전술인 것이다.
그래서 자기는 겉으로는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것 같지만 막상 사귀어보면
의외로 인정이 많고 친절한 한국 사람들이 좋단다.
문득 이 나라가 익숙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살아도 재밌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어딜 가나 사람 사는 곳이다. 그리고 내가 이 나라에서
무엇을 기대하는 것도 아닌 이상 크게 실망할 일도 기뻐할 일도 없을 것이다.
일상을 벗어나서 이렇게 제 3자의 눈으로 다른 세상을 감상한다는 것, 어떤
상황에 푹 빠지지 않고, 한발 물러서서 바라볼 수 있기에 냉정을 유지할 수 있고,
판단에 있어서도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아, 이래서 여행이 정신적 성숙에 도움이 되는 것이구나. 나를 살펴보기 위해
서는 나를 낯선 환경에 뚝 떨어뜨려 봐야 한다. 하루가 똑같은 일상에서 나를
뒤돌아본다는 것은 힘든 일인 것이다.
8. 면세점에서
면세점 가는 길에 가이드선생에게 일본화폐인 엔화의 지폐인물들을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1만엔의 인물은 후쿠자와 유키치 → 일본 서구 근대화시기의 정한론을 펼친
사상가로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이다.
1천엔의 인물은 노구치로 일본전염병 퇴치의 의학자이다.
5천엔의 인물은 일본 여성시인으로 이름이 생각 안난다.
나중에 가이드가 나에게 고맙다고 한다. 덕분에 공부하게 되었다고...
가이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 여성 아줌마가 그런데로 낭만적인 면이 있다.
버스운행 중에 류시화 시인의 시를 낭독하기도 하고, 딸의 중학교 선생에게
스승의 날 선물로 시집을 선물로 보내기도 하고, “花香千里 人德萬里” 아름다운 꽃의 향기는 천리를 가지만 사람의 덕은 만리를 간다.
가이드가 낭송한 것 중에 가장 귀에 남는 글귀이다.
산악회에서 활동하시는 과장님, 계장님들은 산을 좋아해서 그런지 다 德을
쌓으신 분들일 것이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어떤 과장님도 德이 제일 많으신 분이다.!^^
아무래도 선물을 사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물건 살 때마다 바로
바로 세금이 붙는다. 우리는 아예 물건값에 세금이 매겨져 있지만.....
일본 상품의 특징은 작은 것에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모양도 가지각색이지만 찬란한 광택과 세련미가 넘치는 물건뿐이었다.
과찬을 하자면 우리나라 물건은 마치 불량품 그 자체 같았다.
그 유명한 코끼리 밥솥은 보지 못했다. 우리나라 아줌마들이 일본에 가면
한 아름씩 사온다는 그 유명한 밥솥. 우리나라의 동그란 형태의, 칙칙한 색깔의
밥솥만 보다가 네모나고 유난히 광택이 흐르는 밥솥! 코끼리, 코끼리하고 사가
지고 다니는 이유라 한다.
토스터기도 먼지가 들어가지 않게 빵을 옆으로 집어넣는 것도 있었다.
지름이 둘레 35센티, 길이가 한 55센티 정도 되는 보온병도 있었다. 휴대용으로
아주 간편해 보였다.
기념품을 파는 곳으로 갔을 때는 거기에 있는 물건을 다 사고 싶어서 죽을
뻔 했다. 면(面) 직원들, 친구들, 가족들한테 주는 선물은 다 여기서 사고 싶을
정도였다.
종이로 만든 전통 의상의 일본 소녀인형, 손톱깎기나 나막신이 앙증맞게 달린
열쇠고리, 예쁘게 채색된 일본 술잔세트(적나라하게 성행위를 하는 장면도 있었다),
다기세트, 컵, 옷, 손수건, 사진틀, 재떨이....
감탄의 연속이었다. 어딜 가도 이렇게 예쁜 물건은 본적이 없다. 이거 살까, 저거
살까 고민의 고민이었다. 고민 끝에 물건을 왕창 샀다.
엔 저라지만 몇 백엔, 몇 천엔이라 해도 환율 생각하다보니 무려 4만엔 우리
돈으로 30만원 가까이가 선물비로 후딱 날라간 것이다. 일본이란 곳은 미국 등
외국 문화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곳이다.
디즈니 캐릭터 상품만 전문으로 파는 곳을 보았는데 곳곳에 스누피, 찰리 브라운
그리고 그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박힌 인형, 옷, 그릇, 학용품 등이 쌓여
있었다. 아쉬움 속에 면세점 쇼핑을 끝내고 나니 벌써 떠날 시간이었다.
버스에 타고 드디어 나고야를 떠나게 되었다.
9. 나고야 거리풍경
점심은 나고야의 한국식당에서 먹기로 했다. 가는 동안 아쉬운 마음에 창문에
매달려 거리 구경을 하였다. 내 머리 속에 영원히 남겨두기 위해....
일본 여자 샐러리맨들을 OL(office lady)이라고 하는데 일본에서 가장 소비력이
왕성한 집단이라 한다.
참고로 일본 대졸 남자 신입 직장인들의 초봉은 우리 돈으로 20만엔(180만원)
정도라고 한다. 요새 OL들에게 유행하는 옷차림인지 하나같이 미니스커트 정장을
입고 있었다.
일본 여자들은 정말 치마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것도 미니스커트를.....
화장은 우리나라 보다는 진하지 않았는데 희한한 것은 머리 모양은 그다지 깔끔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옷차림과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확실히 우리
나라 여자들이 더 멋부리는 것 같았다. 그것도 진하고 요란한 화장과 머리 모양
으로....
이곳 여자들의 머리는 스트레이트 파마를 한 것 같은 윤기나고 곧게 뻗은
생머리보다는 타고난 그대로인 것처럼 약간 부스스한 사자 갈기머리 스타일
(나중에 우리면 여직원에게 물어보니 샤기컷이라 한다)이 많았다.
외모는 TV에 나오는 배우들을 제외하고는 솔직히 별로였다. 비교적 키가 큰
여자들이 많아 능력있는 커리어우먼과 같은 당당함은 있는데, 자세히 뜯어보지
않으면 안생겼다는 느낌이 든다. 이목구비는 비교적 뚜렷했다.
아무래도 북방계보다 남방계가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것 같다. 눈이 작은 여성은
찾기 힘들었다. 그래도 예쁘지 않은 것을 보면 우리 한국인이 한 외모는 하는 것
같다. 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평범한 양복을 입은 사람도 많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하는 몸에 꽉 끼는
양복을 입고, 머리는 지저분하고, 네모난 테의 안경을 쓰고, 체격도 키는 크지만
기형적으로 마르거나 팔 다리가 지나치게 길거나 해서 균형이 안잡힌 듯한 사람을
보면 정말 매력을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이런 사람 아니면 머리를 뒤로 넘기고 약간 야쿠자 같이 무섭게 생긴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확실히 여자나 남자나 한국 사람들이 외모 면에서는 훨씬 더 나았다.
무뚝뚝해서 그렇지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요즘 젊은이들은 하나같이 키가 훤칠
하다. 여기 사람들도 키는 비교적 큰 편이었다. 그리고 뚱뚱한 사람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희한한 일이다. 서울에서 명동이나 강남의 백화점에서나 보던 루이
뷔통 매장이 있었다. 일본 사람들의 외제 선호 경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들, 특히 직장 여성들은 외국의 명품들을 광적으로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유럽의 패션들은 일본으로 건너오고,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처음 한 외국여행은 아니지만 선진국이라서 좋은 인상들만 남았다. 물론 진실을
보지 않고 겉모습만 봐서는 일본이야말로 물가가 비싼 것 빼고는 충분히 살기에
좋다. 도시건, 농촌이건 깨끗하고 시설은 편리하며,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길 수도
있다.
사소한 일에도 신경을 쓰고, 합리적이고, 개방적이며 다양함을 인정한다.
다양성의 부족, 지나친 공동체 의식,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편견, 의미보다 형식을,
구색만 갖추고 할 것 다했다는 생각, 남들이 하는 것은 다 하고 싶어하는 이상한
대중 추수주의, 분에 넘치는 허례허식...... 일본과 우리나라의 차이이다.
일본 사람들은 집 욕심이 없다고 한다. 일본 집들은 좁다고 했는데 아닌게
아니라 아파트를 보면 옆집 사이의 간격이 좁았다. 아파트도 우리처럼 고층은
별로 없었고 계단도 옆으로 나와 있었다. 색깔도 우리처럼 알록달록 예쁜 색깔이
아니라 회색의 시멘트 색깔이 많았다.
우리나라는 어딜 가도 즐비한 아파트촌이 인상적이다. 일본집의 내부를 들여다
보고 싶었지만... 언제 이런 기회가 있을려나...
나고야 시내를 나와 공항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일본의 시골풍경을 실컷 구경
했다. 정말 일본의 시골은 아담하고 깨끗했다. 경지는 잘 정리되어 있고, 지난
도쿄에서 못 보았던 전형적인 일본식 주택도 있었다.
일본식 주택은 목조로 된 2층 건물로 동양적인 느낌보다는 서구적인 집 같은
인상이다. 앞마당은 좁지만 아기자기한 화단이 있었고, 창문엔 화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인상적인 것이 집이나 논 한가운데 납골묘가 산재해 있는
것이다.
메이지 천황이 메이지유신을 거치며 일본 국토의 좁음을 알고 화장을 법제화
하여 99.9% 화장하여 곳곳에 납골묘가 자연과 인간의 삶 가까이에 있는 것이다.
우리 예전의 독재자 박통께서도 일본 메이지유신을 모방한 70년대 유신 근대화
시기에 화장을 헌법화 시켰다면 아마 우리 국토의 묘지화는 진작에 사라졌을
것이다?!^^
영화 “러브레터”에서 주인공 여자 이츠키의 넓은 집을 보고 “일본에서도 저런
넓은 집에서 사나?' 하고 의문을 품었는데 여기 와보니까 정말 그랬다. 우리나라
시골에서 보여지는 다 쓰러지고, 옹색한 마을이 아니었다. 일산의 전원주택까지는
아니지만 시골에서도 충분히 질 높은 삶을 살 수 있을 만했다. 그런데 농부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희한했다.
벌써 버스는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 도착해서 출국수속을 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나의 올해 마지막
일본 비행을 기다렸다.
10. 비행기 안에서
운 좋게 나의 좌석은 창가 비행기 왼쪽날개 중앙에 있었다. 이거야말로 지난번
비행좌석에 대한 보상이며 나에게 하늘이 내린 최고의 선물이다. 덕분에 비행기가
이륙하는 과정, 하늘을 나는 과정, 착륙하는 과정 등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었다.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고 나서 좀 기다리려니까 비행기가 슬슬 움직였다.
창밖을 내다보니까 넓은 공간 곳곳에 앉아 있는 비행기들 중 우리 비행기처럼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비행기가 몇 대 있었다.
그렇게 꽤 오랫동안(?) 비행기는 앞으로 전진했다 우회전했다 하면서 날아오를
준비를 했다. 그런데 나고야 공항이 인천공항보다는 좁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 며칠 전 인천공항에서 출국할 때에도 이렇게 앞으로 직진하는게 있었지만
지금보다는 그 시간이 훨씬 길었었다.
한참 가다보니 공항건물도 멀어지면서 저쪽 건너편 활주로에서 비행기가 점차
속도를 내며 달려가다가 어느 순간 땅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우리 비행기도 그런 식으로 이륙을 하는가 보다.
우리 비행기도 좀 전의 그 비행기가 날아올랐던 활주로로 좌회전을 해서 들어섰다.
좀 전까지 우리가 있었던 그 자리에 다른 비행기가 들어섰다. 그 비행기에서도
우리 비행기가 이륙하는 모습을 지켜보리라.
활주로에 들어서면서 점점 속도가 빨라졌다. 한 2분도 안되게 빠른 속도로
직진을 하더니 갑자기 속도가 최대가 되면서 내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오르는
느낌이 듬과 동시에 창밖에 보였던 활주로가 안보였다. 이륙한 것이다.
출국했을 때 느꼈던 어지럼증과 아찔함이 다시 느껴졌지만 이번에 창밖을 내다
보며 경치를 구경하느라 그런 변화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땅을 차고 날아오른
비행기는 빠른 속도로 위로 솟았다. 동시에 눈 아래로 공항이 보였다. 그리고
점차 공항건물이 작아지면서 더 주변경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기는 군복무 시절에 낙하산을 탄 이후로는 꽤 오래간만
이었다. 그것도 아주 높은 높이에서..... 그 광경은! 놀라움 그 자체이다.
사방 수km의 면적이 한 눈에 보였다. 공항건물, 주변의 숲, 논과 밭, 바다 등이
한눈에 보였다. 정말 예뻤다. 날씨는 화창했고, 가벼운 조각구름이 떠 있었지만
시야를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래에 보이는 풍경들은 모두 자기의 색깔을 갖고 있어서 하나하나 뚜렷이 구별
되었다. 같은 논이나 밭이라도 경계선이 명확하게 그어진 것처럼 제각기 명암이
틀렸다.
진한 색깔의 밭과 옅은 색깔의 밭, 푸른색의 바다와 연두색의 논밭, 숲의 나무도
잎사귀 하나하나 흔들리는 것이 보일 정도로 그렇게 뚜렷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가까이서 보는 것이 제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새삼 진리임을 알 수 있었다.
멀리 보는 것이 더 정확할 수 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시야가 더 확대되면서 그림도 더 선명해졌다. 일본의 농토는
생각보다 상당히 넓고 우리네 농토처럼 꾸불꾸불하게 경계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둑판처럼 네모반듯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여기가 일본의 곡창지대인 간사이(관서) 평야인가 보다.
간토(관동 : 도쿄, 요코하마) ~ 간사이(관서 : 오사카, 교토, 나고야)인 것이다.
간토와 간사이지역 600km에 2시간이라는 신간선을 갑자기 타고 싶어졌다.
고도가 너무 높아져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농토와 구별되는 새까만 건물군은
도시임을 증명해 주고 있다. 어느 새 비행기는 대류권을 통과한 것 같다. 마치
아래에 엷은 천막으로 비행기와 대지를 구분한 것처럼 뿌연 대기가 더 이상 선명한
그림을 선사하는 것을 방해했다. 조각구름들이 내 밑에서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비행기 안의 경로도를 보니까 비행기가 90정도 방향을 틀어서 한국 쪽으로
기수를 돌리는 것이 보였다. 아하, 이런 식으로 가는 구나. 비행기는 다시 바다를
등지고 내륙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고도는 계속 높아지고 있었다. 대류권을 훨씬 지나 성층권 높이 올라가서
안정된 상태에서 비행을 하는가 보다. 바다가 눈앞에서 멀어지면서 다시 육지의
풍경이 나타났다. 이제는 논과 밭, 숲, 주택가 등의 구분이 흐려지면서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구름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이다. 아니면 비행기와 대지 사이의
공기층이 두터워서 물체의 식별이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이런 기회는 좀체로 다시없을 것이다.
내가 일본의 국토 위를 날아다니는 일은....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나오는 사진이 시퍼런 비행기 날개와 흐릿한 지상의 모습이라는 것이 아쉽다.
산은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이젠 대지의 모든 것이 가물가물해지고
있었다. 일본의 산맥도 눈에 띄었다. 일본의 자연은 생각보다 수려했다. 물론 내가
찾아다니면서 곳곳을 구경한 것은 아니고 여행안내서 책에 나온 사진들을 본 것이긴
하지만 의외로 자연 상태로 보존을 잘 해놓았다.
북해도(훗까이도) 같은 경우는 일본에서도 외국 취급을 받을 정도로 독특한
자연환경을 자랑한다고 한다. 일본 사람들도 북해도 관광하는 것이 소원이라나,
뭐라나.....
끝없이 이어진 산맥을 안보일 때까지 바라보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았다.
비행기는 어느새 대류권을 통과하여 성층권에 도달한 것 같았다. 눈앞에 펼쳐진
구름의 바다, 그리고 지상에서 보는 것보다 더 파란 하늘...... 내 눈에 보이는
색깔은 딱 두 가지였다.
구름은 몇 km 정도의 두께를 가진 것처럼 두껍게 아래에 펼쳐져 있었다.
밑으로 뛰어내리면 다시 튕겨져 올라올 것 같은 그런 구름층이었다. 만약 천국이
있다면 이런 구름층 위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하늘은 정말, 말 그대로 파랬다.
파랗다 못해 시커멓게 보일 정도였다. 놀라울 뿐이다.
그런데 남들은 나만큼 밖의 경치에 관심이 없었다. 다들 좌석 등받이에 꽂혀
있는 비행기 안에서 파는 물건의 카탈로그를 구경하고 있었다. 창에 매달려
구경에 몰두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아, 아니다. 내 바로 옆에 있는 상준
형님도 나와 같이 구경하느라 정신없었다.
이제는 구름 구경을 하는데 또 기내식이 왔다. 점심 먹은지 얼마 되지도 않을
때라 별로 생각이 없었지만 음식 남기는 것은 내 사전에 없기에 초밥 위주의 일식
음식을 다 먹어치웠다. 그런데 음식을 날라다주는 스튜어디스 중에 얼굴은 비록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상당히 예쁜 사람이 있었다. 키도 크고, 이목구비가 뚜렷한게
눈길을 끄는 사람이었다.
밥을 다 먹고 다시 창밖을 구경했다. 구름 위를 날고 있어서 더 이상의
볼거리는 없었다. 구름도 단조롭게 밑에 깔려 있었다. 한 동안 구름 구경을
하다가 면세상품 카달로그를 뒤적거렸다.
꽤 시간이 지난 다음에 다시 창밖을 내다봤을 때 또 다른 장관이 펼쳐져 있었다.
이번엔 구름이었는데 아까 전에 본 평평한 구름이 아니라 마치 거대한 구름산맥
처럼 입체적으로 뭉쳐져 있는 구름밭이었다. 뭉게구름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광경을 상상하면 된다. 이건 정말 밭이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장관이었다. 그리고 끝없이 이어졌다.
저 멀리서 구름밭이 끝나고 나서 다시 평평한 구름밭이 나타났다. 거의 1시간
30분 가까이 지나고 나서 한국에 도착했는지 기체가 점점 하강하는 것이 느껴
졌다. 그리고 구름밭을 벗어나 저 아래에 희미하게 경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마도 경상도 어디쪽일 것 같았는데 산맥이었다. 태백산맥 아니면 소백산맥일
것이다. 이곳도 날씨가 좋은 것 같았다. 드디어 한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까
뭐랄까 갑갑한 느낌이 들었다. 다른 세상을 만나고 온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싫은 것도 없을 것이다.
인간은 확실히 새로운 환경을 원하는 동물이다. 어느 정도 적응된다 싶으면
그것에 만족을 못하고 새로운 환경을 맞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 그러나 그러한
바램이 삶이라는 조건에 꽁꽁 얽매여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비참한
것도 없다. 나는 날고 싶은데, 가족이라는 새장이 나를 가두고 있다.
이런 내 마음을 위로라도 하듯이 다시 지상의 경치가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
했다.
우리나라의 시골풍경은 멀리서 보면 평화롭고 아름답지만 가까이 가보면 궁색
하다. 집은 다 쓰러져 가고 경지는 제멋대로 들쭉날쭉 되어 있다. 농부들은 대개
노인들이나 여자들이다. 두 나라의 차이는 어느 곳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하긴 세계 1, 2위를 다투는 경제 대국하고 얼마 전까지 노숙자가 득실대던 우리
나라하고 비교가 될까? (일본에도 노숙자는 많이 있었지만...)
농촌을 지나서 아마도 수원 정도의 비교적 큰 도시를 지나서 드디어 서울이라고
생각되는 도시가 나타났다. 이때 고도는 많이 낮아져서 바다와 섬이 다 보였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어디가 어딘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비행기가
인천으로 날아가는 경로를 따져본다면 강화도남쪽 인근의 섬일텐데....
위에서 내려다보는 서해바다와 섬은 윤곽이 선명했다. 바다위로 몇몇 배들이
오가고 있었다. 정말 귀여운 세상이다.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장난감 같은 세상,
저 속에서 나도 역시 바쁘게 살고 있었구나. 제3자의 시각이란 것은 뭐랄까.
내 눈에 보여지는 그 당사자들에겐 아주 심각한 일들도 막상 내 눈에 비쳐질 땐
그리고 내가 볼 땐 그냥 평범한 사건일 뿐 일체의 감정을 느낄 수 없다.
비행기의 고도는 점점 낮아지면서 드디어 인천 공항에 도착한 것이다. 멀리
활주로가 보였다. 안전벨트를 매고 네 번째로 엘리베이터 증상을 기다렸다.!^^
활주로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비행기는 착륙을 시도했다. 땅이 눈앞에 다가온다고
생각하는 순간 쿵하면서 바퀴가 땅에 부딪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비행기는
빠른 속도로 직진했다. 죽 앞으로 달려가던 비행기의 속도가 줄어들면서 달리는
것이 아니라 기어가기 시작했다. 일요일이라 곳곳에 쉬고(?) 있는 비행기들이
많았다.
공항 게이트와 바로 연결되는 곳은 꽉 차 있었다. 한동안 활주로 안을 헤매던
비행기는 간신히 주차할 곳을 발견하고 두 대의 비행기 사이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놀랍다. 이 거대한 동체의 비행기를 운전한다는 것은.... 새삼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은 옛 생각이 떠올랐다. 비행기가 완전히 멈추고 나서 드디어 한국 땅에
도착했다..... 모두 안전벨트를 풀고 부산스럽게 짐들을 챙겼다. 나도 배낭을 짊어
지고 일행과 같이 밖으로 나갔다. 밖은 의외로 더웠다.
11. 글을 마치며
이렇게 나의 여행은 끝을 맺는다. 남들이 보면 우습기도 하고, 뭐 그리 대단한
거냐! 라고 하면서 혀를 찰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
너무나 본 것도 많고 생각도 많이 했다. 이 때처럼 진지하게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나에겐 생각의 소재였다. 특히 문화적, 자연
환경적 차이라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일본이란 나라에 대해서도...
그 나라를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2박3일간
겪었던 일들이 일본의 전부는 아니며, 아주 일부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나에게는 이제까지 갖고 있었던 편견이나 선입견을 통째로
들어낼 만큼 충격(?)이 될 수도 있다.
일본에 대해서는 별다른 편견이나 민족주의적인 감정은 없는 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재밌게 보냈는지도 모른다. 관광이 아니라
일본을 탐험한다는 생각으로 눈으로 구경함과 동시에 그에 대해서 분석을 했다.
'아, 이건 이런 의미이구나.' 라고 혼자서 되뇌이면서......
일본 사람들이 싫지는 않다. 겉으로는 무척 친절하지만 속으로는 딴 생각을
하는, 그들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특성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난 그것이
위선적이라거나 이중적이라는 생각은 안 한다. 어차피 살아가면서 한번만 마주
치고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에게 굳이 불친절하게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리고 모르긴 몰라도 속내를 감추는 그들의 속성은 일본의 역사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만약 일본이 한반도의 토양으로 자란 나라라면 수 천년 동안 갖고 있었던
문화적 열등감은 특히 우리를 못잡아 먹어서 안달하는 지금의 성격으로 굳어
졌겠고, 허구헌날 전쟁으로 일관했던 그들 역사의 특성은 나를 드러내지 않아야
생존할 수 있다는 식으로 생존방식을 규정하였을 것이다.
일본이 유난히 성(SEX)에 대해 개방적인 것도 하룻밤 새에 일가족이 몰살당
할 수 있는 처지에서 절개를 굳이 지켜야 될 필요성도 없고, 또 내 한 몸을 버려
가족을 구할 수 있을 수도 있기에 우리나라처럼(?)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다.
섬나라답게 탐욕스럽게 외국문화를 섭취하고 자기네 것으로 만드는 기술....
유목민과 해양민족의 특성이다. 농경민족이 갖지 못한 뛰어난 적응력.....
모든 것이 잘 갖춰진 나라이기에 그 만큼 삶에 대한 지루함도 더하고 권태감도
늘어만 갈 것이다.
조상들이 다 해버려 후손들이 해야 될 것은 단지 먹고 노는 것이다. 물론 최근
언제부터(아베내각 발족이후?) 일본의 경제력이 휘청거리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부자는 망해도 3대를 간다고 일본이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의 옅은 문화적 축적물을 은폐하기 위해 사소한 것도 문화재화하고, 무조건
겉부터 크게 만드는 포장술, 막상 들어가면 별로 볼 것도 없지만 일단 위용만이라도
남에게 지지 않겠다는 그들의 자존심이 느껴진다.
우리나라의 문화재의 특징은 직접 가서 보면 그렇게 크거나 웅장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재를 구성하고 있는 벽돌 하나하나가 상당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식민지 시절에 일본은 우리 문화재를 싹쓸이 하고,
그것도 모자라 파괴하고 했던 것이다. 발에 채이는 것 모두가 문화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으니까.....
세상에 어느 나라가 식민지로 삼은 나라의 땅 곳곳에 말뚝을 박고, 쇠기둥을
박는단 말인가? 옛날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가 카르타고를 멸망시키고 나서 사람
들을 모조리 죽이고, 건물을 모조리 파괴하고, 소금까지 뿌려서 아예 사람이 살지
못하는 땅으로 만든 적은 있지만 그것은 몇 천년 전의 이야기인 것이다.
유난히 깔끔하고 깨끗하고 결벽증이 있는 사람이 성격적으로 좀 문제가 있는
경우가 있다. 일본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완벽해 보이는 외관에 감춰진
본질을 내 나름대로 추론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읽어주신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사진은 산악회게시판 참조하세요!^^
일 시 : 2007년 7월 13일 ~ 15일
산행지 : 일본 다테야마( 3,015m)
인 원 : 40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