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대는 우리나라 격변기를 몸소 격은 세대다
일제 강점기를 막 벗어나자 마자 민족의 비극인 6.25 동란을 겪으며
전쟁으로 초토화된 땅에서 생존의 치열함 속에 살아 남아야하는 절박함 속에서
조상과 뿌리에 대한 관심을 갖을 겨를이 없었다.
일제강점기 말기에, 서울에서 철도청에 다니던 아버지(문희공파30세 우진무(鎭武)는 어머니(순웅안씨)를 만나 25세때 결혼을 해서 첫딸인 나를 낳았다,
해방 이후, 격동의 서울을 떠나 아버지의 고향 선산 인근인 김천으로 이주하였다.
그러고 몇년 후, 내가 일곱살 되어 국민학교(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6.25 동란이 터졌다
서울이 함락되고 공산군이 남으로 밀려내려온다는 급보에, 우리식구는 모든 가재를 마당에 묻어두고 피난길에 올라야 했었다.
기차역은 피난민들로 인산인해였고, 어찌어찌하여 아버지는 기차 지붕꼭데기에, 우리는 콩나물시루 같은 객실에 끼어 어디쯤 갔는데, 아마도 대구인 것으로 추측된다.
그곳에서부터 남으로 가는 피난민 대열을 따라 한정없이 걷고 또 걸었다.
아버지는 커다란 등짐을 지고. 그 짐 위에는 몹시 병약했던 아래 여동생(당시 5살) 인숙을 올려놓고 걸었고,
그 때 넷째(승한)를 임신해서 만삭이 되었던 어머니는 머리 위에 몇가지 가재도구를 이고 뒤뚱이며 걸어야했고,
당시 7살이었던 나는 2살된 남동생 재한을 등에 없고 걸었다.
청도 쯤 가서 해가 저물어, 어느 빈집에서 많은 피난민들 틈에서 쪼그리고 앉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되었는데,
종일 뙤약볕 속에서 아버지 등 위에서 시달린 5살 인숙이가 의식을 잃었다.
의원도 없는 피난길에서 속수무책이었던 양친은 점점 숨결이 약해지는 인숙이를 안고 "인숙아, 인숙아" 애타게 불러댈 뿐이었다.
아버지 어머니의 애타는 부름 속에 모기 같은 소리로 "응.. 응..." 대답을 흘리며 죽어가던 인숙이의 모습이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내 기억속에 생생하다.
부산 피난생활 중에 승한(족보항렬이름 柄承)이 태어났고, 수복 후, 휴전이 되면서 춘천에서 생활터전을 닦은 후,
또하나의 동생 영한이 태어났으나 15세의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문희공파 30세 우진무와 순응안씨 병완의 슬하에서 다섯 자녀가 나왔으나 인숙이와 영한이 세상을 떠나면서,
경숙(京淑), 재한(在漢.柄漢), 승한(承漢.柄承), 이렇게 3남매만 남게되었다.
피난길에 내가 7살 나이로 등에 업고 걸었던 그 동생이 문희공파 31세 우재한, 족보이름으로 병한(柄漢)이다.
재한은 9년 전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못다한 일이 너무 많은데, 고등학생 東永(東徹) 과 逸永(東逸) 두 아들을 남겨둔 채, 이른 나이에 눈을 감은,
어질디 어진 성품의 그 동생을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 가슴이 아프다.
단양우씨 문희공파라는 명문가의 후손이면서도, 남겨진 두 조카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도 뿌리와 가문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 사람이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모가 내 조카, 동철(동영), 동일(일영)을 위해,
그들이 조금이나마 뿌리에 대해서 알게 되기를 바라며 이게시판을 만든다.
지금 이야기를 들려 준다고 해서
요즘 세태의 신세대들은 그렇게 가슴으로 우러난 뿌리에 대한 관심이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시기가 되면 반드시 뿌리에 대한 관심과 족보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나리라 생각한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자료와 알고 있는 사실들을 여기에 명문화 해둠으로써
훗날 뿌리를 알고자 하는 내 귀한 조카들과 그의 후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얼마 전, 어느 TV채널에서, 여자에게는 전해지지 않지만, 남자에게만 전해지는 유전인자가 있으므로, 같은 조상의 후손을 확인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조상들에게 아들을 중히여기고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소명감이 그저 생긴 것이 아님을 생각하게 되었다.
2012년 7월 14일 단양우씨문희공파 31세 여식 우경숙 씀
첫댓글 구구절절하고도 한이 서린 글을 읽으면서
가슴뭉쿨함을 느낍니다
조카들을 위하여 조상에 대한 자료를 남기신다는
대목에서는 목이 메입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해 이렇게 새벽녘에 한글자 남깁니다
예술을 하시는 분께서 어떻게 저희 카페에 관심이 있으신가
매우 궁금했는데, 오늘에서야 그 궁금증을 해소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지부상소 감간을 올린 역동할아버지의 후손이 틀림없음을 여실히 느낍니다. 똑부러지는 단양우문의 따님이시네요. 고맙고 반갑습니다. 단양우씨까페(http://cafe.daum.net/wu)에 오셔서도 좋은 말씀과 그림소개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