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현식경(大乘顯識經)
https://kabc.dongguk.edu/content/view?itemId=ABC_IT&cate=bookName&depth=3&upPath=C&dataId=ABC_IT_K0049_T_001
중천축국 지바하라 한역
변각성 번역
대당신역성교서(大唐新譯聖教序)
황태황어제(皇太皇御製)
내가 듣기론, 진공(眞空)은 형상[象]이 없으나 구체적인 형상의 가르침이 아니면, 그 참됨[眞]을 풀어낼 길이 없으며, 실제(實際)는 말[言]이 없으나 분명한 말의 실마리가 아니면 그 실체를 설명할 길이 없다고 하였다. 이 때문에 용궁(龍宮)의 법경(法鏡)이 원만하게 비추어 삼천대천세계에 두루하고, 취령(鷲嶺)의 현문(玄門)이 넓고 크게 퍼져서 백억세계에 두루 미친 것이다.
스승 없는 지혜[無師之智]를 스승으로 삼으려면 반드시 수다(修多)에 의지해야 하고, 배움 없는 종지[無學之宗]를 배우려면 결국 기야(祇夜)에 의거해야 한다.
금인(金人)의 감몽(感夢)으로부터 보배로운 게송[寶偈]이 사방으로 전해졌는데, 패엽(貝葉)의 신령한 문장을 통해 북천축의 가르침이 아득히 먼 곳까지 전파되었고, 관화(貫花)의 은미한 뜻은 서진(西秦)의 번역을 통해 더욱 새로워졌다. 이로써 대승(大乘)ㆍ소승(小乘)을 근기에 맞춰 가르침을 펼쳤고, 반자(半字)와 만자(滿字)는 권실(權實)을 따라 서로 밝히게 된 것이다.
당나라가 다스리던 시기는 천하가 창성한 시기라, 대대로 3성(聖)이 70년간 이어져서, 순(舜)임금의 교화와 삼매의 물결[定水]이 함께 맑아졌으며, 요(堯)임금의 지혜와 자비의 등불[慈燈]이 나란히 비추었으니, 승복을 걸치고 서쪽으로 간 것이 어찌 법현(法顯)의 무리뿐이었겠으며, 백마(白馬)에 경전을 싣고 동쪽으로 온 것이 가섭마등[摩騰]의 무리뿐이었겠는가? 이렇듯 석존의 가르침을 널리 펼쳐서 오늘날까지 중생들을 교화하였으니, 이에 짐은 어릴 때부터 마음으로 피안(彼岸)에 귀의하여서, 3명(明)의 길을 힘써 넓혔고 8정(正)의 문을 숭상하게 되었다.
지난날엔 일찍이 극심한 재앙을 만나서 갑자기 아버님의 음덕을 저버렸고, 근래에는 효성이 감응하지 못하여 다시금 어머님을 등지게 되었으니, 노초(露草)의 한탄은 날로 깊어지고 풍수(風樹)의 슬픔은 더욱 애절해졌다.
어느 곳이든 양친[二親]의 숨결이 깃들어 있지만, 특별히 장안과 낙양 두 곳의 옛 거처를 사용하여 역경장을 만들었으니, 사찰(招提)의 법우를 모두 결집하고 다함없는 법의 곳간을 다 채우지 않음이 없는 곳이었다.
이에 경성의 대덕(大德) 스님 10인을 모아서, 중천축국(中天竺國) 삼장법사와 함께 서태원사(西太原寺)에서 경론을 번역하게 하였다. 이들 법사들은 그 수행의 업(業)이 초지(初地)의 경지에 이르고, 그 도(道)는 하늘까지 걸쳤으니, 불법을 떠받치는 기둥이자 대들보이며, 지혜의 바다를 건너는 배와 노였다.
전후로 번역한 것이 모두 10부(部)이며, 때는 수공(垂拱) 원년(元年) 을유년(乙酉年) 8월이었다. 번역을 완성하고 책으로 엮어[汗靑] 비단으로 장식하니, 단 이슬[甘露]과 같은 가르침이 이미 깊어졌고 큰 구름[大雲]과 같은 깨우침이 널리 퍼지기 시작하였다.
바라건대, 항사겁에 이르도록 영원히 사바세계의 중생들을 널리 구제하고, 불을 전하듯 분명한 뜻이 절로 밝혀지고, 병의 물을 쏟아내 듯 막힘없는 변론이 더욱 윤택해지소서.
짐은 본래 어둡고 어리석었으나, 선조의 유지[顧託]를 공경히 받들어서, 항상 서원하길 ‘삼보(三寶)를 이어받아 융성하게 하여 대보(大寶)의 큰 기틀을 편안하게 하며, 8성(聖)을 발휘하여 선성(先聖)의 큰 업을 견고하게 하소서’라고 하였다.
이로써 4구(句)의 은미한 말씀은 발제하[提河]에 깊이 이르러 다했고, 일음(一音)의 오묘한 뜻은 암몰라 동산[菴園]에서 그윽한 뜻을 다했다.
대법고(大法鼓)를 치니 그 소리 무간지옥에 울려 퍼지고, 대법라(大法螺)를 부니 그 음률 유정천까지 통하였다. 이는 컴컴한 방에 밝은 횃불이요, 어두운 거리에 지혜의 달이니, 보리(菩提)의 명료한 뜻이 여기에 있도다.
부질(部帙)과 조목[條流]은 뒤에 나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