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44코스 속초 해맞이 공원~수산항, 43코스 수산항~하조대 해변,
42코스 하조대 해변~기사문항 까지 걷기
□ 개요
○ 일시 : 2023. 6. 25.(일)
○ 구간 : 44, 43, 42(일부) 코스 : 지도상 25.6km
- 44코스 속초 해맞이공원~수산항 :12.6km
- 43코스 수산항~하조대해변 : 10km
- 42코스(일부) 하조대해변~기사문항 : 3km
○ 실거리 : 오룩스맵 기록 28.65km, 트랭글기록 : 28.41km
○ 행정구역
- 44코스 : 속초시 대포동, 양양군 강현면 정암리, 용호리, 전진리, 양양읍 조산리, 손양면 가평리, 송전리,
오산리, 수산리,
- 43코스 : 손양면 수산리, 도화리, 동호리, 상운리, 여운포리, 현북면 중광정리, 하광정리
- 42코스(기사문항) : 현북면 하광정리, 기산무리
○ 인원 : 송주봉님, 최학주님, 유주열님, 사르리(신사산악회)
○ 소요시간 : 06시간 28분(10시 3분~16시 28분)
○ 난이도 : ★
○ 감상평 : ★★★
○ 추천시기 : 봄, 가을
○ 날 씨 : 맑음, 20.0℃~25.0℃(강원도 양양군 날씨 기준)
○ 교통편 : 산악회 버스
○ 개념도
▶ 44코스
▶ 43코스
▶ 42코스
□ 걸은 기록
○ 오룩스맵 기록
▶걸은 통계
▶걸은 궤적
▶걸은 고도
○ 트랭글 기록
▶걸은 통계
▶걸은 궤적
▶걸은 고도
□ 길 위의 이야기
현재 평화누리길 걷기를 진행 중인데 해파랑길 걷기에 참여하게 된 것은 서울에 있는 신사산악회에서 평화누리길을 시작하여 해파랑길 걷기를 진행 중인데 신청자가 많아 버스 1대를 추가로 배차하여 2대로 진행 중이라고 해서 참여하기로 한다. 문제는 2호차 버스에 신청자가 많아 계속 진행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개별적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
해파랑길을 시작하면서 첫째, 셋째 주는 평화누리길 둘째, 넷째 주는 해파랑길 네 주를 연속해서 코리안 둘레길에 참여하여야 할 것 같다.
두루누비에서 소개하는 해파랑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태양과 걷는 사색의 길, 해와 바다를 벗삼아 걷다.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동해안의 해변길, 숲길, 마을길 등을 이어 구축한 총 50개 코스로 이루어진 750km의 걷기여행길입니다. ‘해파랑길’은 동해의 상징인 ‘떠오르는 해’와 푸르른 바다색인 ‘파랑’, ‘~와 함께’라는 조사 ‘랑’을 조합한 합성어이며,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소리를 벗삼아 함께 걷는 길”을 뜻합니다. |
오늘 걷는 해파랑길은 우리나라 사람이면 모두가 알고 있는 낙산사와 하조대를 경유해서 진행하게 된다. 천년고찰 낙산사는 2005년 대형 산불로 많은 당우가 소실되었다가 복원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사당에서 출발한 버스는 신사역과 잠실역을 경유해서 홍천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이내 속초 해맞이공원에 도착을 해서 두 대의 버스에서 팔십 명이 넘는 사람을 내려놓는다.
[속초 해맞이 공원 : 10시 04분]
오늘은 어떤 길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가 된다. 바닷소리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걸어야겠다. 길 위를 걷는 사람들은 분산되어 바다 바람에 밀려서 걷기 시작을 한다.
세계 명산 설악산이 적혀 있는 관문은 지나면 곧장 신흥사 일주문에 도착할 것이다. 마음은 설악산에 있지만 발걸음은 멀어지고 있다.
육지에는 도로가 있듯이 바다에도 바닷길이 있다. 저기 멀리 가물거리는 배들은 어떤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궁금증이 생겨난다. 아마도 지금은 고기를 잡는 길을 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설악산 천불동계곡에서 내려오던 계곡물이 쌍천에 합류되어 내려온다. 지나가던 구름들도 설악의 풍경에 취해서 잠시 쉬었다 간다.
밀려오는 파도는 자기 자리를 지키려는 모래들을 밀어내고 있다.
몽돌의 아름다운 곡선은 파도에 밀려온 각종 폐기물들의 날카로운 곡선들이 파괴하고 있다.
어떤 형태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상 속의 솟대가 동해 바다 하늘로 금방이라도 비상할 것 같다.
캠핑이 대세인 시대에 캠핑하는 사람과 차박하는 사람들로 주변의 주차장을 비롯한 공간이라는 무든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후진항 빨간 등대가 인상적인 쾌적한 항구로 누구나 방파제 낚시가 가능하고, 사전 예약 시 낚싯배 체험도 즐길 수 있다. 항구의 활어센터에서는 싱싱한 제철 생선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으며 가까운 인근에 펜션, 민박, 콘도 등 다양한 숙박시설을 갖추고 있어 1박 2일 관광지로도 인기 있는 곳이다. 매달 두 번째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아담한 비치마켓인 양양 비치 마켓이 열리는데, 손수 제작한 각양각색의 공예품과 양양 특산물로 만든 가공품들이 발길을 잡는다. 계절에 따라 도루묵, 도치 등 양양의 특산물 축제도 함께 즐길 수 있다. [출처 : 대한민국 구석구석] |
해파랑길을 따라가는 바닷가 근처로 데크를 만들어 놓아 걷는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으나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문제이다.
불자는 아니지만 어느 사찰에 가서나 느끼는 것이 일주문과 맞닿으면 무거웠던 마음과 머리가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게 하면서 사찰 내로 들어가는 것이다.
"오봉산낙산사" 현판 황금색 글씨가 주변의 소나무와 잘 어울리는 것이 마치 오랫동안 함께한 동무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낙산사(洛山寺)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강현면에 위치한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 신흥사의 말사이다. 관세음보살이 머무른다는 보타락가산(補陀落迦山), 즉 낙산(오봉산)에 있는 사찰로, 신라 문무왕 11년(671년)에 의상(義湘)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삼국유사에 수록된 전설에 따르면, 의상이 관세음보살을 만나고자 낙산사 동쪽 벼랑에서 27일 동안 기도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여 바다에 투신하려 하였다. 이때 바닷가 굴 속에서 희미하게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여의주와 수정염주(水晶念珠)를 건네주며 "내 전신(前身)은 볼 수 없으나 산 위로 수백 걸음 올라가면 대나무 2그루가 있을 터이니 그곳으로 가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는데 그곳이 바로 원통보전(圓通寶殿)[1] 터라고 한다. 이를 계기로 오봉산을 관세음보살이 있는 낙산(보타락가산)이라 여겨 '낙산사'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이외에 부속건물로 의상대(義湘臺), 홍련암(紅蓮庵) 등이 있으며 일대가 사적 제495호로 지정되었다. 3대 관음기도도량[2]으로도 손꼽히고 관동팔경[3]의 하나로 유명하다. 경내에는 조선 세조 때 다시 세운 7층석탑을 비롯하여 원통보전과 그것을 에워싸고 있는 담장 및 홍예문 등이 있다. [출처 : 나무위키] |
하늘을 가리고 솔향을 가득 내뿜고 있는 소나무들이 지난 세월을 아픔을 치유하고 있는 것 같다.
낙산사는 2005년 4월의 아픔을 잊지 못하고 지금도 치유 중이다. 살아있는 역사의 유물도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교훈을 남긴 것 같다.
2005년 4월 4일 일어난 큰 산불이 5일 오전 낙산사로 번져[4]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었다. 당시 산불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이전부터 낙산사 주변에서 물을 뿌리며 확산을 막던 소방헬기들도 다른 곳의 불을 끄느라 도저히 낙산사로 올 수 없었고 그나마 온 소방차가 오히려 불에 탈 정도였다. 낙산사의 승려와 신도들이 소화기로 불을 꺼보려 했지만 고작 소화기 따위로 이 큰 산불을 막을 수는 없었다. 당시의 뉴스(2016년) 관련기사 이 화재로 보물 제479호로 지정되었던 낙산사 동종이 녹아서 소실되면서 결국 같은 해 7월 7일 지정해제되었다. 산불에 어떻게 금속 종이 녹아내리나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나무가 탈 때 내는 에너지는 생각보다 크다. 산불 같은 대화재의 겉불꽃(제일 뜨거운 부분)은 천수백°C로[5] 녹는점이 천°C 근처인 구리나 청동은 충분히 녹일 수 있다[6]. 게다가 차라리 종이 넘어져서 땅바닥으로 굴러갔다면 손상은 입어도 녹지 않았을 텐데,[7] 하필이면 종루가 불타서 종을 그대로 덮어버려서 화덕에 들어간 꼴이 되어 이렇게 녹아버린 것이다. 이후 동종은 2006년에 복원되어 다시금 낙산사에 걸렸다. 화재 당시 녹아내렸던 동종은 낙산사 안 의상대사 기념관에 옮겨져 있다. |
홍예문을 만들기 위하여 쌓아 올린 돌들의 자연미를 살리기 위하여 가공을 최소화하여 원형을 최대한 유지한 모양이 문루를 더욱 아름답게 하고 있다.
홍예문(虹霓門) 조선 세조 13년(1467)에 왕이 친히 낙산사에 행차하여 세운 무지개 형태의 석문.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 33호로 지정되어 있다. 근처 강에서 나온 돌들을 사용해 쌓았는데, 홍예를 조성하는 석재 26개는 당시 강원도의 고을 수를 표시한 것이라고 전한다. 홍예 위에는 1962년에 세운 문루가 있었다. 2005년 화재 때 문루가 불타 홍예만 남았으며, 문루를 복원할 때 이번에는 산에서 가져온 돌을 사용하여 홍예를 보수했다. [출처 : 나무위키] |
공양을 제공하는 선열당 담장이 아래의 축대와 서로 다른 모양에 같은 기능을 가진 이웃사촌처럼 잘 어울린다.
사천왕문을 지나면서 순백의 세상으로 들어서게 된다.
사천왕문(四天王門) 낙산사의 사천왕문. 2005년 화재의 피해를 입지 않은 극소수 건축물이다. 다만 다들 복원하는데 혼자 그냥 두긴 뭐했는지 복원 과정에서 사천왕상을 개금하였다. [출처 : 나무위키] |
"빈일루"는 동해에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는 누각이라고 한다. 빈일루는 2005년 까지는 없었으나 2005년 대형 산불 이후 복원하면서 김홍도의 "낙산사도"를 참고하여 2009년에 복원했다고 합니다.
대성문 너머로 칠 층 석탑이 가운데 배치되어 있고 그 뒤로 원통보전이 보인다.
칠충석탑 보물 제499호. 위의 사진처럼 원통보전 앞에 세워져 있다. 다만 정중앙이 아닌 약간 어긋난 위치에 있다. 석탑의 재질은 화강석이며 청동제 상륜을 달았다. 원래는 3층이었지만 조선 세조 13년(1467)에 탑을 중수하면서 7층으로 층수를 늘렸다. 6.25전쟁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지만 전쟁을 겪으면서 한쪽 귀퉁이가 뭉텅 잘려나가는 손상을 입었다. 다른 석탑들에 비해 독특한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어째서인지 사람들이 동전을 던져 탑에 안착시키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여겨 수십개의 동전이 탑에 얹혀졌고 지금도 그 개수는 늘어나고 있다. [출처: 나무위키] |
원통보전 다른 절들의 대웅전 위치에 있는 건물. 석가모니불 대신 관세음보살을 모신다. 2005년 화재로 모조리 불탔지만 안에 있던 관음불상은 미리 옮겨놨기에 화를 면했다. 이후 복원하면서 예전엔 청기와 건물이었던 것을 일반적인 기와를 올린 건물로 바꿨다. 삼국유사 탑상편에 기록된 조신의 꿈 이야기가 낙산사 원통보전에서 기도하다 일어난 일이다. 현재의 원통보전에 있는 관세음보살상은 삼국시대가 아니라 조선시대에 만든 것이지만... 조신의 꿈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원통보전을 더 눈여겨 보게 될 것이다. [출처 : 나무위크] |
원통보전 옆 담장 아래에 낮은 돌탑을 쌓아 놓았다. 돌마다 각기 다른 소원들이 담겨 있을 것이다.
동해를 바라보고 있는 해수관음전이 모든 것을 한 군데로 모으고 있다.
해수관음상 홍련암, 의상대와 더불어 낙산사의 랜드마크. 절 끝자락에 위치한 거대한 관음불상. 1977년까지만 해도 동양 최대의 불상이었다. 근처에는 종각이 있어 누구든지 한번씩 종을 쳐볼 수 있다. 비용은 불전함에 내는데, 액수는 자율적이다. 양심껏 내자. 아래쪽으로 약간 내려가면 관음전이 있다. 관음전 내부에는 불상이 따로 없고, 대신 불상이 있음직한 자리에 통창이 나 있다. 통창으로 외부의 해수관음이 정면으로 보이는 구조. 외부의 해수관음을 향해 실내에서 기도를 할 수 있는 건물이다. 한켠에 넓다란 바위가 있는데, 그곳에 올라가면 울산바위를 조망할 수 있다. 강화 석모도 보문사, 남해 보리암과 함께 3대 해수 관음기도 도량으로 꼽힌다. |
보는 각도에 따라 모습이 각기 달라 보인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있는 모습이 하늘을 터고 널리 퍼지고 있다.
아무리 큰 파도가 밀려오고 강풍이 불어와도 낙산사 해수관음상을 뛰어넘지는 못할 것이다.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형태의 부도탑을 볼 수 있다. 무산 대종사 부도탑이 낙산사에 설치되어 있다.
부도탑 위를 유리로 덮어 안을 볼 수 있도록 했다.
보타전은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곳이라고 한다.
관음지에는 연잎과 연꽃이 덮여 있다.
낙산사에서 벗어나 낙산사 해수욕장 데크길을 걷는다.
낙산사 해수욕장 넓은 데크가 있는 곳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해수욕장은 아직 개장은 하지 않았지만 해수욕을 즐기고 서핑을 하는 사람들로 바쁘게 파도를 따라가고 있다.
낮기온이 올라가는 오후에 더위가 예상되었지만 예상과 달리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내륙보다 약간 낮을 기온으로 걷는데 기온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연어가 모천을 찾아 귀향을 한다는 남대천의 낙산대교를 넘어서 길을 간다.
해당화를 도로 주변에 많이 식재하여 꽃이 만개하여 눈길을 사로잡는다.
해변가 데크길에서 벗어나 도로를 본격적으로 걷는다.
소나무 뒤로 오산리 선사유적지 박물관이 있다.
도로 안쪽으로 수산항이 있는데 44코스가 끝나고 43코스가 시작되는 곳이다. 수산항은 어선을 위한 항이 아니라 요트를 정박하기 위한 시설이다. 요트를 체험할 수 있는 항이다.
수산항 동해안의 작은 항구로 겉으로 보기엔 시골의 여느 항구처럼 아담해 보이지만 60척의 요트를 정박할 수 있는 동해안 최고의 요트항이다. 수산항 요트 마리나에는 다양한 모양의 요트들이 나란히 정박해 있어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수산항을 찾은 일반인들도 요트체험을 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수산항에는 요트체험 외에도 투명카누체험과 선상 낚시체험을 비롯해 계절에 따라 스노클링 체험이나 도루묵 통발체험도 할 수 있다. 아이들에겐 해초 비누 만들기나 문어빵 만들기를 추천한다. 수산관광어촌 체험 마을은 2014년 해양수산부가 지정한 국제관광어촌체험 마을로, 외국인들도 체험프로그램을 즐기기 좋다. |
자전거 쉼터에서 잠시 동해 먼 곳을 바라다본다. 자전거를 타고 오신 분이 있어 어디서 출발을 했는지 물어보니 부천에서 버스로 부산으로 이동해서 비박을 하면서 올라왔다고 한다. 고성까지 진행 후 부천으로 간다고 한다. 연세도 있어 보이는데 대단하다는 생각만 든다.
모래사장 그리고 바다 그위로 하늘이 나란히 선을 그어가면서 이어가고 있다.
파도가 밀려 들어오면 해변가의 사람들은 바다로 빨려 들어가고 바닷물이 빠지면 사람들은 바닷물을 뒤쫓아 가기를 반복하고 있다.
동호해변(양양)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동호리에 있는 해수욕장이다. 길이 500m, 폭 55m의 아담한 해변으로, 평균 수심은 1.2m 정도다. 특히 모래가 곱고 부드럽기로 소문났는데, 동해안에서 제일이다. 바닷물이 깨끗하고 풍광이 뛰어나지만 비교적 알려지지 않아 한적하다. 나무숲이 울창한데 보호구역이라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바다에서 서핑을 즐길 수 있는데 강습과 장비를 렌탈하는 서핑숍이 있다. 스쿠버다이빙을 체험해 볼 수 있는 다이브숍도 있다. 동호리 주민들의 전통 어업방식인 ‘멸치 후리기 체험’에 참여할 수 있다. 전통 어업방식인 멸치 후리기는 약 7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커다란 그물을 바다에 두르고 힘을 모아 그물을 당겨 물고기를 잡는다. 해수욕장 개장 기간에는 무료체험이, 유료체험은 연중 진행된다. 예약 필수다. 양양국제공항이 가깝고, 양양 시내도 20분 거리다. 동호리 해수욕장 캠핑장이 있고 인근에 설악산과 오색지구가 있다. |
해변가를 걷다 도로 방향으로 나가는 인근의 주택에 산에서만 보던 수국을 오랜만에 주택가에서 보게 된다.
접시꽃의 옅은 분홍색이 서로를 바라보면 홍조를 띠는 모습처럼 보인다.
도로를 개설하면서 소나문 군락지를 보존하기 위하여 군락지를 피하여 도로를 만들어 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도로 확장공사를 하고 있는 곳을 지나간다. 지금까지 걸어오면서 인도가 전혀 없는 곳으로 좁은 도로와 많은 차량으로 사람과 차량이 서로 불편하게 지나가는 곳이다.
벽화마을이 있는 곳을 지나간다. 벽화의 장점은 보는 사람의 눈의 피로감을 해소해 주지만 단점은 장기적으로 관리가 되지 않아 방치되는 곳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조금이 있으면 옥수수를 수확할 수 있을 정도이다. 옥수수의 계절에 곧 도달할 것이다.
7번 국도 옆 구도로 따라 걷는다.
구도를 버리고 해풍을 맞은 높이가 작은 소나무가 이어지는 자전거 전용도로로 들어간다.
아카시아꽃이 지나간 지 오래인데 여기에는 아카시아꽃이 피어 있다. 이곳 기온이 낮아 지금 피는 것인지 아니면 애만 피어난 것이지 궁금한데 알 수가 없다.
중광정 해수욕장은 아직 개장을 하지 않아 철문을 닫아 놓고 있다. 그래도 해수욕장 안에는 사람들이 즐기고 있다.
중광정 해수욕장을 지나서 하조대 해수욕장을 걷는다.
개설 하조대해수욕장은 양양8경 가운데 하나인 하조대 근처에 자리한 해수욕장으로 가족 단위의 피서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다. 1975년 7월부터 일반인에게 개방되었으며 1984년에 시범해수욕장으로 지정되었다. 명칭 유래 하조대라는 명칭은 조선의 개국 공신인 하륜(河崙)과 조준(趙浚)이 고려 말기 이곳으로 피신해 말년을 보냈다는 육각정자인 하조대에서 유래하였다. 두 사람의 성을 따서 하조대 명칭이 생겨났다. 자연환경 백사장의 경사가 완만하고 모래질이 양호하며 수심이 깊지 않다. 해수욕장 뒷쪽에는 소나무숲이 우거져 있으며, 해수욕장의 남쪽 끝인 하조대 부근에는 광정천이 흘러 동해로 유입하고 중간 부분에서는 상운천이 동해로 흐른다. 이들 하천으로부터 모래 공급이 이루어진다. 바다의 물결이 잔잔하고 육지에서 흘러 내려오는 하천을 통해 공급되는 담수와 해수가 섞여 있어 수온이 다른 해수욕장에 비해 높은 편이다. 백사장의 길이는 1.5㎞이고 폭은 100m에 달한다. 해안에서 바다쪽으로 70m까지 나가도 수심이 1.5m 내외이다. 사빈의 침식현상도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겨울철에 너울성 파랑이 해안도로까지 밀려와 범람 피해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비교적 안정적인 사빈을 유지하고 있다.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는 기암괴석이 곳곳에 산재한다. |
수산항에서 시작한 해파랑길 43코스는 여기서 끝나고 42코스가 다시 시작을 한다.
하조대 전망대로 올라가서 주변 풍경을 바라다본다.
하조대 해수욕장에는 해수욕하는 사라과 방파제에서 캠핑하는 사람 그리고 조개를 잡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바다의 끝은 움직임이 없는 것 같이 보이는데 바다와 달리 사람들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하조대 전망대에서 내려와 뒤로 돌아서 하조대로 간다. 하조대 전망대에서 데크길을 따라 진행을 하면 하조대로 갈 수 있는데 선답자 트랙을 따라가다 보니 조금 더 걸어서 진행을 하게 된다. 하조대 전망대가 있는 곳에 도착을 한다.
하조대(河趙臺) 조선의 개국공신 하륜과 조준이 이곳에서 잠시 은거하였다 하여 두 사람의 성을 따서 「하조대」라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 정종 때 정자를 건립하였으나 퇴락하여 철폐되었으며, 수차례의 중수를 거듭하여 1940년에 8각정을 건립하였으나 한국전쟁 때 불에 탄 것을 1955년과 1968년에 각각 재건되었다. 하조대는 동해바다의 절경을 볼 수 있는 돌출된 만의 정상부에 위치하여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고 있는 곳이다. 현재의 건물은 1998년 해체복원한 건물로 초익공굴도리양식의 육모정으로 지붕에 절병통을 얹어 소나무와 함께 주위의 자연경관과 잘 어울리고 있으며, 정자각 앞에는 조선 숙종 때 참판 벼슬을 지낸 이세근이 쓴 "하조대" 3자가 암각된 바위가 있다. 이곳은 인접한 하조대해수욕장과 함께 양양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양양의 관광명소 중의 하나이다. |
하조대는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으로 시간이 지나니 추위를 느낄 정도이다. 무더운 날씨에 이곳에서 쉬었다 가면 하조대의 참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조대에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몸에 채우고 기사문항으로 걷는다. 만세고개를 넘어서면 기사문항에 도착을 한다.
기사문항으로 들어서면 원도심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식당과 음식점 등이 별로 없이 카페와 식당 몇 개가 전부이다.
항의 분위기는 어촌의 분위기로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데 가계는 서핑 용품을 대여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버스가 있는 곳에서 갈아입을 옷을 가지고 화장실에서 세면을 하려고 하니 수돗물이 졸졸 나와서 세면을 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곳뿐만 아니라 해수욕장에 있는 화장실의 수돗물을 전부 수량을 그렇게 조절을 해 놓았다. 아마도 해수욕을 하고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는 것을 예방 차원에서 그렇게 조치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보이는 식당이 세 곳이 보이는데 횟집으로 들어가서 물회를 주문하는데 여기도 물가가 여간 비싼 것이 아니다. 기본 물회가 이만 원 이다. 화장실에서 세면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식사를 마치고 출발 시간이 되어서 서울로 출바를 한다. 잘 달리던 버스는 가평군과 남양주에서 지체되어 서울에 도착해서 전철을 타고 수원에 도착을 하니 열 두시가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