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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파랑 길 1차 도보여행
• 일시: 2017년3월8일 수요일 맑음
"걸어 봐야지... 걸어 봐“-마음 속에 품었든 ”해파랑길“ 걷기 숙제를 풀려고
1차로 통일안보공원에서 거진항까지 도상거리 12.3Km 실제거리 13.52Km를 걸어 봤더니 추억을 간직할 수 있는 도보여행이 되었다
06시
출가하려니 아직도 주변은 어둠이 깔렸고 집합장소에 도착하니 예정 시간보다 30분 전인데도 이 회장과 김 사장이 담소하고 있었다 좀 늦어지는 회원이 있어서 예정 시간보다 30분 늦게 관동별곡 팔백리 답사 일 번지 고성으로 출발하여 문막휴게소 들려 통일안보공원에 도착하니 11시가 훨씬 넘었다
이 회장이 나를 소개하기를 대한민국 최고령 가이드라고 소개하니 찬사인지 꼬는 것인지 아리송하지만 “어쩌다 이리 됐는 가” 슬펐지만 나에게도 젊은 날이 있었거니 앞으로도 그날 까지 도보여행을 즐길 것이다
- 다만 세월열차(歲月列車)에는 정거장이 없으니 애시당초 인생사는 매정한 것인데 차라리 열차를 타지 말아야 했음이다-
오늘 동행중에는 해파랑길 770Km를 단숨에 완주하여 1호가 된 정상희의 모습 지척에 있어 모두들 그를 부러워하는 눈치였다-“정상희 만세”
버스가 양양을 지나면서 눈으로 덮인 설악산 자락이 시야에 잡히니 옆자리의 토산회 이 대장이 흥분하면서 “아~하 설악산이다 저것은 대청봉 중청 공룡능선 저항령 황철봉이라고 카메라를 들이대다가 울산바위가 나오니 어허라 달마봉도 보인다고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르면서 카메라에 잡힌 설악산의 모습을 보여준 다- 이 대장의 마음씨가 곱다-
• 파도소리
통일안보공원에 도착하고 모두 화장실부터 들린 뒤에 기념 촬영을 하고 역사적인 해파랑길 1차 걷기에 들어갔다 출발하여 선두를 따라 후미로 금강산 콘도 뒤로 바닷가로 나가니 파도소리 요란스레 들렸다
- 정겹고 다정한 파도소리가 들리려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나는 버스에서 인사말 하기를 오늘은 “태평양(동해)을 왼쪽에 끼고 거진항까지 아름다운 도보 여행으로 즐거운 하루가 되도록 하십시오”라고 청탁했다 길은 동행안 자전거길(국토종주)과 겹치고 화진포를 걷는 것으로-
. 화진포 전설
이화진이라는 돈 많은 영감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스님이 시주를 받으러 왔는데 고약하고 인색한 부자영감이 스님의 시주를 받는 바랑에 소똥을 퍼다 넣어 주면서 데살로니가후서 3:1~18 장에 “일하지 않으면 먹지 말라” 라고 했거니 당나라 스님 百丈懷海(720~814) 선사도 “一日不作 一日不食” 라고 같은 말을 했으니 “스님은 어서 절로 돌아가서 부지런히 일을 하라고 타 일렀는데 마음 착한 며느리가 쌀을 다시 퍼서 스님을 드리려고 했으나 이미 마음이 상한 스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람처럼 한참을 달려 가다가 멈춰 서서 "왜 따라 오냐"고 묻기에 쌀을 가지고 왔다고 했더니 착한 며느리에게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하는데 등 뒤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다 봤더니 부잣집은 온데간데없고 커다란 호수가 생겼다고 하는데 그때 생긴 호수를 화진포라고 불렀단 다-스토리 텔링
며느리는 어찌 되었을 까- 마음이 착해도 복은 오지 않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성경에 나오는 소금기둥 이야기와 비슷하디
. 화진포에서 맺은 사랑
1960년대 유행하던 노래로 1970년대에도 라디오에서 많이 흘러나왔는데 황우루 작사 작곡 이시스 터 자매가 불렀다
황금물결 찰랑대는 정다운 바닷가 아름다운 화진포에 맺은 사랑아
꽃구름이 흘러가는 수평선 저 너머 푸른 꿈이 뭉개 뭉개 가슴 적시면
조개껍질 주서 모아 마음을 수놓고 영원토록 변치말자 맹세한 사람
은물결이 반짝이는 그리운 화진포 모래위에 새겨놓은 사랑의 언약
흰돛단 배 흘러가는 수평선 저 멀리 오색 꿈이 곱게곱게 물결 쳐 오면
모래성을 쌓아놓고 손가락 걸며 영원토록 변치말자 맹세한 사랑
서울 남산에 가면 사랑의 언약이라는 잠을 쇠를 수천만개 걸어 놓으면서 변치 말자고 맹서해도 별 볼일 없는데 모래 위에 변치말자 맹세한 사랑이 지금도 지켜지고 있을까 궁금해 진 다
하지만
화진포 바닷가를 표현한 노랫말 가사가 어쩌면 이렇게 적절 할 가 그래서 대중가요의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고 음악을 하면 장수하고 건강해진다고 한다 그러하니 열심히 노래를 부르려 노래방을 들려야한 다
. 화진 8경- 이식 또는 김삿갓이 이름 지었다
제1경 月安楓林: 원당리 앞 호수에 비친 달빛과 단풍
제2경 次洞炊煙: 화포리 착골(찻골)에서 밥 짓는 연기
제3경 茅花亭閣: 모정리 앞 호수와 어울린 모화정의 고즈넉한 모습
제4경 楓岩歸帆: 풍암을 향해 돛단배가 귀항하는 모습
제5경 長坪落雁: 호수 동편 장평부근의 기러기 울음
제6경 平沙海棠: 호수주변 빨갛게 핀 아름다운 해당화
제7경 九龍治水: 호수 물과 바닷물이 서로 부딪치는 모습
제8경 金龜弄波: 화진포 앞바다 금구도의 파도치는 모습
이들 팔경 가운데 일곱 번째인 九龍治水 대신 茅雲鐘聲이 들어가기도 한다.
맨 꽁무니로 앞서서 가는 동행들을 졸졸 따라 가면서 풍광을 살펴보니 산하에 봄이 오는 모습이 보였다
최춘자 시인의 “봄 색시” 를 보자
“높고 푸른 바다에 햇살 반짝이더니 거리에 봄 바람 살랑거린다 매섭던 추 위 내쫒고 웅크린 어깨 활짝 펴고 거리를 걷는 봄 색시 옷매무새 가벼워 짧은 치마 살랑거리며 생의 의욕 가득 넘친다 변하는 계절의 신비 몸과 마 음 여물어 화사한 꽃으로 피어났다.”
짧은 치마입고 살랑 거리는 봄 색시는 화사한 꽃으로 피어난 단 다 아~좋다
대진등대를 지나서 대진항에 도착하니 대진항은 영덕군과 삼척시에도 있는데 점심을 먹으려고 해마루 식당을 찾아들어 칼국수를 먹는데 김치 맛이 일품 이었고 선두 가이드 “지기(닉네임)가 연산군 이야기와 세종대왕의 여인 이야기를 솔깃하게 들려주니 관객들은 좋아라 낄낄 거렸다
• 大津港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대진리에 있는 어항이다. 1971년 12월 21일 국가 어항으로 지정되었다. 동해안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는 국가어항이다. 관 리청은 해양수산부 동해어업관리단, 시설관리자는 고성군수이다.
步行有樂
걸으면 즐거움이 있는데 또 同幸이라하니 함께 걷는 사람이 있다면 더욱 행복한 것으로 오늘은 즐거운 하루가 될 것이다 김포 대명항에 가면 함상공원이 있는데 대진항에도 함상공원이 있어서 사진을 남길만 하니 해상공원은 거제도를 비롯하여 우리나라에 10여 곳 있는데 고성 대진항의 해상공원은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동해안 최북단 항구의 정취를 만끽하면서 낚시를 즐길만하고 때로는 수 만 마리의 갈매기가 나는 장관도 구경할 수 있다
조그마한 성계마을을 지나려니 초도항이고 멀리 손가락 끝에 걸리는 숲이 우거진 얕으마한 산만 넘으면 오늘의 종점이라고 하지만 안심하지 말라 그곳은 오늘의 초점이지만 응봉으로 체력 소모가 만만치 않다
금구교가 나왔다 금구교를 넘으면 석호가 나오는데-
• 석호(潟湖)-백과사전
동해 연안에 형성된 석호(潟湖) 가운데 하나로서 경관이 아름다워 강원도 기념물 제10호로 지정되었다. 동해안의 호수 가운데 최대 규모로서, 면적은 2.39㎢이고, 호수의 둘레는 16㎞에 달한다. 50~100년생의 울창한 소나무숲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맑은 호수와 기암괴석, 푸른 바다, 하얀 모래밭이 한데 어우러져 경치가 수려하다.
석호는 바닷가에 사주가 발달함에 따라 만이 바다에서 분리됨으로써 생기는 호수이며, 화진포는 전형적인 석호 지형으로 훌륭한 해수욕장이 발달하였다. 호수와 바다 사이의 백사장이 화진포해수욕장에 해당된다. 호수 주변에는 다양한 식물이 서식하며 낚시터로도 유명하다.
• 화진포 이야기
앞바다에는 광개토왕의 능이 있다는 전설이 깃든 작은 섬 金龜島(거북섬)가 있다. 금구도는 화진포 쪽에서 바라보면 그 형상이 거북이와 같다는 데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화진포 생태박물관 앞을 지나면 화진포 소마나무숲 삼림욕장이 나오고 화진포성이 나왔는데 나무 계단이 설치되었는데 경사도가 높아 계단을 오르려니 바람소리가 요란스러워 숨 소리리와 뒤섞였다
• 화진포의 城- 안내문
김일성의 별장으로 일본 강점기인 1937년 일본이 중일 전쟁을 일으키면서 원산에 있는 외국인 휴양촌을 화진포에 강제 이주시켯으며 독일 건축가인 H.Weber가 1938년 건립하여 예배당으로 이용하였으며 해안 절벽위 송림속에 우하하게 자리한 모습에서 “화진포의 성”으로 불리워 졌으며 1948년 이후에는 북한이 귀빈 휴양소로 운영하였고 당시 김일성과 그의 처 김정숙 아들 김정일 딸 김경희 등이 묵고간 적이 있어 지금까지 “김일성별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 6.25 전쟁중 훼손된 건물을 2005년3월 옛 모습으로 복원하였고 오르는 계단에 김정일과 김경희가 앉았던 자리라는 표식이 있는데 사람들은 무자비하게 밟고 오른 다
바람에 날려 갈 것 같았고 가파른 계단을 400m를 오르니 끝나는 지점에 낡은 무덤하나 있고 멀리 응봉의 고스락이 조망되는데 이제부터는 바닷가가 아니라 잔솔 밭을 걷는 것으로 반대편에서 많은 군인들이 걸어오고 있었는데 대령 계급장도 보였다 장교와 사병이 공존하는 모습으로 보기 좋았다 학교에서도 한 때는 “사제동행(師弟同行)”이라 했는데 지금은 이 땅에 스승님은 간곳 없고 잘난 제자들만 득실득실하고 어지러운 모습이 안타깝다
화진포의 성 입구에서 오늘의 날머리 거진항까지는 4.5Km가 남았고 응봉 고스락은 1.5Km 지만 오르락 내리락 체력 소모가 많다
솔 향기를 맞으면서 걷는데 화진포 해맞이교가 나왔고 다리를 건너니 잔설에 빙판이 보행을 늦추게 하는데 길 바닥에 어느 팀인가 유도 표식으로 “추억 여행” 알림을 길 바닥에 깔았다
“오늘 걷는 길은 추억 여행”이라고 공감하면서 동행과 이러쿵저러쿵 걸으려니 내 생활공간과 공통점이 많지만 거리에서 스쳤어도 모르고 지낸 것뿐이다 고향 사람을 만난 것 같이 반가웠다
아~ 세상은 넓다지만 알고 보면 매우 가까운 이웃들이다 동행되는 여인이 하는 말이 “죄를 짓고는 살기 어렵단 다”
거진 해맞이봉산림욕장에 12지 신상 모습이 보였고 명태축제비에서는 양명문의 “명태” 시를 볼 수 있는데 가곡으로도 불리워진 다
명태- 양명문
감푸른 바다 바다 밑에서
줄지어 떼지어 찬물을 호흡하고
김이나 대구리가 클대로 컸을 때
내사랑 하는 짝들과 노상
꼬리 치고 춤추며 밀려 다니다가
어떤 어진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
살기 좋다는 원산 구경이나 한 후
에지프트의 왕처럼 미이라가 됐을 때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쐬주를 마실때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짝짝 찢어지어 내몸은 없어 질지라도
내 이름만 남아 있으리라
명태 허허- 명태라고 허허-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 -
거진항은 태한민국 최고의 명태 어장으로 명태축제가 열리는데 명태의 변신을 알아보면... 북어 명태 황태 코다리 생태 동태로 동태는 얼려 있고 생태는 축 늘어져 있고 코다리: 4마리가 코에 꿰어서 약간 꾸덕하게 말려 있고 북어는 패기 좋게 방망이처럼 꼿꼿이 서 있다 따라서 먹거리로는 “동태찜” “동태전” “동태튀김” “동태찌개” “동태순대”와 생선가스에 비타민이 풍부한 명란젖으로 다양하게 변신한 다
16시30분 거진항에 도착하여 행복한 해파랑길 걷기를 땡땡쳤는데 짝궁 이 대장이 마른 오징어를 수십마리 주면서 이빨이 튼튼하면 씹으란 다 어이구야 고마워요~
말문이 막힐 정도의 화진포의 보고인 절경을 보면서 평화로운 도보여행을 즐기지 못한 사람은 평생을 후회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버스에서 잠간 잠 들었다가 철정휴게소에서 저녁 밥 먹은 시간을 넉넉히 주어 이 대장과 오뎅국수를 가볍고 먹고 집에 돌아가서 다시 옆지기와 저녁식사를 하기로 하면서 두 번째 해파랑길 걷기 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春山에 눈녹인 바람 건 듯 불고 간데없다
적은 듯 빌어다가 머리위에 불리고자
귀밑에 해 묵은 서리를 녹여볼가 하노라-우탁(1263~13420)
歲月이 流水로다 어느덧 또 봄일세
舊園에 新草나고 古木에 名花로다
아이야 새술 많이 두었으랴 새본놀아 하리라-朴孝寬
海邊春望- 崔致遠
바닷가에서 봄을 바라니
갈매기와 해오라기는 높고 낮게 날으고,
먼 바닷가 그윽한 풀은 푸르러지네.
이때 천리만리 고향 그리는 내 심정,
저녁 구름 쳐다보니 나 혼자 아득해라.
鷗鷺分飛高得低 遠汀幽草欲萋萋 此時千里萬里意 目極暮雲飜自迷
옛님을 생각하며-매창
봄이 왔다지만 임은 먼 곳에 계셔
경치를 보면서도 마음 평안치 않다오
짝 잃은 채 아침 화장을 마치고
달 아래에서 거문고를 뜯는 다오
꽃 볼수록 새 설움이 일고
제비 우는 소리에 옛 시름 생겨나니
밤마다 임 그리는 꿈만 꾸다가
오경(五更) 알리는 물시계 소리에 놀라 깬다오
해파랑 길 1차 걷기
오늘의 도보 여행은
통일안보공원에서 거진항 까지 13.52Km
파도소리
바람소리-듣고
솔향기를 맞으면서
도란도란
두런두런 걷는데
눈에 찍히는
동해의 아름다운 풍광
아~
좋다. 뿐
보탤 말이 없고
삿갓 형님도
스쳤을 길
나도 걸으려니
餘恨이 스러진 다
步行有樂에
同幸이라
함께 걷는 사람 있어 행복하고
산하에는
봄. 오는 모습 정겹고
집에 두고 온
꽃순이 미안 타고
가슴에 여운을 담습니다 2017년3월8일 수요일 맑음
참고
거진항-퍼옴
38도선 이북(북위 38˚ 26')에 위치한 건설부지정 제2종 항만이다. 접적지구라는 입지적인 조건 등으로 오지 어촌으로만 여겨왔던 이곳은 지난 1973년 거진면이 읍으로 승격되면서 항구 주변에 현대식 고층건물이 들어서 상업도시로 면모를 갖추어 동해북부 어업전진기지로 성장해 가고 있다. 5백여년전 한 선비가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던 중 이곳에 들렀다가 산세를 훑어보니 꼭 클 '거(巨)'자와 같이 생겨 큰나루 즉 거진이라 불리고 있다는 전설이 뒷받침하듯 거진항은 태백산맥 줄기의 구름이 해안을 에워싸고 있어 오래전부터 천혜의 어항으로 발달해왔다. 거진항의 최대인구는 오징어가 가장 호황하던 1970년대 당시 인구는 2만5천명이었으며 1981년 소도읍 가꾸기사업을 실시하여 초가집의 초라한 옛 모습을 찾을 길 없는 현대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1930년대엔 120호의 작은 어촌으로 현재의 항구는 긴 백사장이었으며, 어선은 소향 전마선으로 연안 2마일내에 당일 출항하는 1일 어업으로 노를 저어 고기를 잡았다. 겨울에는 명태, 여름에는 연안에서 등잔불을 켜고 오징어를 잡았고, 가을에는 멸치잡이가 흥행했었다. 이곳은 해방전 많은 양의 정어
리가 잡혀 이것을 처리하기 위해 일본사람의 정어리 처리 공장이 3개소나 있었으나 해방후 갑작스런 정어리 흉어로 지금은 그 자취가 없어졌다. 당시 어민의 생활은 영세했으며 잡아온 고기는 판로가 없어 인근 농촌에서 곡식과 교환하는 생활방식을 취하였다. 거진항의 발전은 명태가 유도했다고들 말
한다. 이 지방엔 명태주산지로 별미음식이 다양하다. 신선한 명태 아가미만을 따내 무우채와 함께 버무린 "명태 서거리", 차좁쌀로 버무린 "명란식해" 등의 별미 음식이 많다. 어선 출허때마다 만선을 기원하는 성황굿은 특유의 별미음식을 차려놓고 무사고와 풍어를 빌어오면서 풍어제로 바뀌었으며 예
나 지금이나 풍어를 바라는 어민들의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주요 어종은 명태, 문어, 광어, 전복, 해삼, 멍게 등이 많이 잡히며 자연 성게알인 운단을 체취하여 멀리 일본으로 수출하기도 한다. 영동고속도로 개설 한계령, 진부령도로 포장 등으로 해산물의 판로가 좋아 어민생활 향상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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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그네 시인님 후기 잘 읽었습니다.
어쩌면 세월이 갈수록 필력은 늘어만 가시고...
옛시절 삿갓형님 보다 엊그제 같이 걸었던 나그네님이 더욱 현실감있는 시인으로 느껴집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의 여정에도 쭉~ 멋진 후기를 기대합니다.
나그네님의 글은
조금씩 조금씩 천천히
여러번 반복해서 읽어야겠습니다.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