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1월 25일 금요일, 맑음. (라오스)
현재 머물고 있는 곳이 베트남의 국경마을 라오바오다. 어제 베트남 중부의 동하에서 머물다가 밤 11시 30분에 여기에 도착한 것이다. 여기에서 늦은 밤에 국경이 닫혀있어 내일 아침에 라오스 국경을 넘을 것이다. 희미한 가로등만 있고 다 쓰러져가는 초가 서너 채가 있는 산골 오지다. 가로등 밑에는 국경이니 더 이상 진입하지 말라는 낡은 경고판이 있다. 봉고차 안에서 밤을 샌다. 산간이라 밤 기온이 차다. 운전기사가 낡은 숙소를 알려준다. 모기장 아래 잔뜩 구부려도 발이 나올 정도로 좁다. 구멍이 뻥뻥 뚫려 하늘이 보인다. 도저히 누울 수 없어서 밖으로 나와 다리 위에서 나무를 주워 다가 불을 피웠다.
모닥불에 둘러 앉아 일본아이들이랑 소영씨와 함께 돌을 깔고 앉아 밤을 새운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하고 가끔 멀리서 개짓는 소리가 들린다. 이곳에서 날밤을 새워야 한다는 것이 좋은 경험이다. 거의 1년 동안 전 세계를 다니고 있다는 일본 아가씨와 순박해 보이는 두 총각, 모두 주어진 여건에 불만은 있으나 별로 상관없이 즐거워한다. 밖에서 불을 피우고 밤을 새기는 처음이란다. 저녁도 먹지 못했다. 비상식량으로 준비했던 빵이 도움이 되었다. 여행사 신카페를 이용한 사람들은 동하의 호텔에서 하루를 자고 새벽에 온단다.
베트남의 처음은 좋았으나 끝은 고생이구나. 라오스에서의 고생의 예고편인가보다. 드디어 날이 샌다. 모두 타버린 나무 재만 땅 위에 남았다. 사람의 흔적은 없다. 몇 채 있는 집에서 새벽에 무엇을 준비하는지 불이 켜진다. 개 짓는 소리도 많아진다. 라오바오(Lao Bảo)라는 글씨가 보인다. 가게 문도 열린다. 차가 한 대 오더니 우리 봉고 차 뒤에 서고 서너 명의 도시 풍 차림의 아가씨들이 내린다. 환전해 주는 아가씨들이다. 아가씨들의 수다에 아내도 차에서 일어난다. 아내는 어제 저녁도 굶고 아침도 굶었다.
한 사람이 라오스 쪽에서 오더니 우리를 안내한다. 걸어서 베트남 국경으로 가서 출국 수속을 한 후 라오스 국경가지 걸어간다. 입국 수속을 밟은 후에 오토바이를 타고 가란다. 오토바이 비용 8명분을 지불하고 베트남 쪽으로 가버린다. 봉고차는 이곳에서 라오스에서 오는 사람을 태우고 간다. 우리가 지불한 두당 16달러에는 라오스의 사반나켓(Savannakhet)까지 도착하는 요금이다. 한 사람당 2000k 씩을 받고 출국 수속을 밟았다. 별 탈 없이 출국 도장을 받았다. 라오스 국경에서 입국 카드를 기록하고 비자 검사를 하고 입국 도장을 찍어준다.
배낭을 메고 조금 걸어가니 오토바이들이 보인다. 하나 씩 잡고 올라탄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데 비포장도로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손이 아프도록 매달려간다. 스턴트맨이 달리듯이 곡예를 하며 10여분을 달렸다. 혹시 아내가 떨어지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민가가 있는 곳에 내려준다. 200k를 주니 반갑게 받아간다. 아무 말이 필요 없다. 일행 모두 오토바이에서 떨어지지 않고 도착했다. 대형 트럭을 개조해서 만든 버스에 우리를 안내해 준다. 라오스에 들어온 것이다. 개조한 버스에 올라타고 출발한 시각이 오전 8시 10분이다.
안내자는 우리를 버스를 태워주고 임무가 끝나 어디론가 가버렸다. 우리는 모두 수건을 꺼내서 얼굴을 눈만 내놓고 모두 가렸다. 짐칸을 개조한 트럭은 지붕은 있지만 벽은 뚫려있다. 소를 싣고 다니는 트럭 같은 모양이다. 황토 먼지가 그대로 들어와 숨 쉬기도 힘들고 온몸에 황토가 수북이 쌓인다. 털어도 소용 없다. 베트남이나 태국 사람과는 달라 보이는 라오스 사람들과 ㅎ마게 타고 간다. 키 작고 얼굴이 넓적해 보인다. 검게 그을은 이목구비가 두렷한 종족이다. 라오스에 왔음을 실감한다. 나라마다 사는 사람의 모습과 의상이 달라짐이 신기하다.
세상의 다양함을 인정할 줄 아는 넓은 마음이 필요하다. 자신의 기준으로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부끄럽다. 버스 기사는 귀족이고 차비를 받는 차장은 평민이고 지붕에서 강도 같이 눈만 내놓고 짐을 올리고 내리는 직원은 노예 같다. 땡볕에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달리는 사람이다. 주변은 모두 원시림이다. 건기라서 잎이 떨어져 앙상하고 열대 식물만이 파릇하다. 그러나 전체는 항상 초록이다. 풀과 나무로 지어진 집이 가끔 보이고 아프리카 같이 동물과 사람이 경계도 없이 함께 살아간다.
돼지도 거리를 배회하며 먹이를 찾고 닭과 오리 그리고 염소와 소들도 모두 집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맨발의 꼬마들과 함께 흙속에서 뒹군다. 가끔 강물이 보인다. 말라서 검은 먹물 같은 물이다. 마을마다 차가 서는데 사람들이 점점 많이 탄다. 의자는 나무로 만들고 나사못이 그냥 튀어나와 부딪칠 때마다 아프다. 2명이 앉으면 되는 의자에 세 명이 앉아 서로 엉덩이를 밀어가며 말 없는 전쟁을 치른다. 움직일 때마다 옷에 쌓인 흙먼지가 일어나 짜증이 난다. 이렇게 달리기를 오전 내내 한다. 화장실 한 번 갈 기회도 없다.
마을에 차가 설대마다 장사꾼들이 차에 붙는다. 파는 것도 먹고 싶은 것이 없다. 빨리 내려서 물에 씻고 싶은 생각뿐이다. 아이들이 파는 물건은 그냥 구운 통닭, 바나나 그리고 죽은 다람쥐, 죽은 새와 부엉이, 죽인 닭을 판다. 차속에 라오스 사람들은 이 죽은 동물을 어떻게 해 먹는지 궁금하다. 닭은 이해가 되지만 말이다. 마을 앞에 픽업차량이 보인다. 가게도 보인다. 검문소도 하나 지나간다. 출발할 때는 오후 1시 정도면 도착한다고 했는데 벌써 한 시가 넘었다. 도시는 보이지 않았다. 나타나는 집과 가게, 차를 보니까 가까이 온 것은 틀림없었다.
이제는 전봇대도 보인다. 오후 3시가 넘어서니 한국 국기와 라오스 국기가 그려진 공장 대문이 있는 공장이 보인다. 이렇게 먼 이국 오지에서 한국 국기를 보니 반갑다. 이 도로 공사 구간을 맡아서 진행하고 있다는 한국인 2명을 만났다. 기쁘다. 이제는 제법 포장도로도 나온다. 거의 10시간이 걸렸다. 오후 5시 30분이 되어서야 라오스의 사반나켓(Savannakhet)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더 간다면 돌아버릴 것 같다. 일단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봤다. 숙소를 찾기 위해 먼지를 대강 털어낸다. 배낭을 지붕에서 받아 맸다.
소영 씨와 함께 툭툭이를 흥정해서 타고 SAYAMUNGKUN.G.H를 찾아갔다. 인터넷에서 찾아 적어간 곳인데 숙소가 모두 Full이란다. 모두 지쳤다. 어디에 숙소가 있느냐고 물으니 안내해 준다. 소영 씨가 갖다온단다. 우리가 지쳐 힘들어 보이나보다. 아내를 남겨두고 숙소를 찾아 나섰으나 찾기 어려워 돌아왔다. 소영 씨가 숙소를 찾았다. 더블 룸, 하루에 30,000 킵(약 4,000원) 이란다. 1달러는 9,600 킵 이고 1,300원이다. 이다. 숙소는 깨끗하고 편안했다. 유복한 집에서 운영하는 가족같은 집이다. 우리는 2층의 905호, 소영 씨는 904호다.
2층 발코니는 예쁜 꽃과 보라색 탁자보로 예쁘게 꾸며져 있다. 숙소 이름은 Kounthaliluck.G.H. Ⓣ212797이다. 숙소에 들어가 일단 먼지 옷을 모두 벗고 빨래를 한다. 방 가득 널어놓고 천장에 달린 팬을 돌렸다. 물을 뒤집어쓰고 샤워를 하니 살 것 같다. 어제 밤부터 굶고서 먼지 속에서 엉덩이가 부르트도록 달려와서 샤워를 하니 지나온 어제부터 오늘을 일정이 악몽 같다. 다시는 달려보고 싶지 않는 길이다.
일행이 모두 모여서 저녁식사를 해결하러 거리로 나섰다. 이미 날이 어둡고 식당도 문을 닫고 있다. 겨우 찾은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했다. 고기 야채 볶음이 풍성하다. 갑도 저렴했다. 라오스의 소박함이 금방 눈에 들어온다. 과일과 빵을 사서 숙소로 온다. 발코니에 앉아서 빵과 과일을 또 먹었다. 일정을 이야기 한 후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라오스의 남쪽 사반나켓(Savannakhet)에서 첫날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