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바람의 전설
방 영 주
새벽이었다. 계룡산인(鷄龍山人)은 신선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거의 날다시피 하여 계룡산 정상 천왕봉(天王峰)에 올랐다. 하루에 한 번쯤은 꼭 들리는 곳이었다. 계룡산은 산의 능선이 닭의 벼슬을 쓴 용의 모습과 흡사했다. 산세가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하면서도 변화무쌍했다. 열여섯 개에 달하는 봉우리 사이로 십여 개의 계곡이 용처럼 꿈틀거렸다. 계룡산인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과연 명산 중에 명산이야! 그랬다. 명산이었다. 게다가 계룡산은 예전부터 선인(仙人)들이 삼신(三神)에게 제사를 지내는 신성한 산이기도 하였다. 물론 계룡산인도 그들 중에 하나였다. 그는 뒷짐 지고 흐뭇한 눈으로 반원을 그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계룡산인은 하산을 시작했다.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계룡산인은 집에 들려 농기구 등을 바지게에 담아 명학소(鳴鶴所)로 갔다. 명학소를 둘러싼 야산에는 왕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회갈색 몸통에 쭉쭉 뻗은 가지에는, 하얀색과 연분홍색 꽃이, 자태를 뽐냈다. 사이사이로 진달래꽃도 만발해 있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각종 꽃들에 파묻힌 명학소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그렇지 못했다. 아직도 삭풍이 부는 춥고 어두운 겨울밤이었다. 계룡산인은 눈을 지그시 감고 중얼거렸다. 저들이 왜, 저렇게 되었나? 명학소는 향, 부곡과 함께 특수행정구역에 속한 주민들의 집단 거주 지역이었다. 그들은 충주에서 생산되는 철을 가공하여, 국가가 필요로 하는 농기구나 무기 등을, 만들어 공납하고 있었다. 이들은 양인의 신분이었으나, 세금의 부담이 그들보다 높았으며, 과거시험이나 국학의 입학이 제한되고 승려가 될 수 없는 등, 차별대우를 받았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국가나 지방관으로부터의 수탈은 아주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공주는 어느 고을보다 양반, 관료, 승려가 집중되어 있었다. 명학소의 생산품은 모두 그들의 수탈 대상이었다. 고려는 귀족사회였다. 그들을 먹여 살리는 양민 이하의 사람들은 본시부터 착취의 대상이었다. 광종 이후 과거제도가 시행되었다. 이는 한민족의 정신을 말살하고 중화사상을 주입시키는 제도의 하나였다. 아무튼 이로 인해, 문치주의가 성립되었다. 고려를 건국한 무신의 입지는 그 만큼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문신 귀족정치는 무신사회의 몰락을 초래하고 있었다. 문신은 무신을 자신들의 집에 있는 개만도 못하게 취급했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열세에 놓인 무신들은 반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의종 때 와서 이것이 극에 달했다. 정중부가 궁궐의 한 잔치에서, 문신에게 수염이 잡혀 나동그라지는, 수모를 당했다. 그것이 도화선 되어 무신들의 반발은 계속되었다. 그러다 정중부를 중심으로 이의방 등, 무신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 반란의 성공으로 무신들이 득세했다. 물론 그들 중에는 소금장수의 아들 같은 천민도 있었다. 무신들은 처음에 무슨 개혁정치라도 하는 듯했다. 양민들은 이제 좀 살만해지나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군사력을 앞세워, 문신보다 착취가 더 심했다. 명학소 같은 곳에 사는 수공업자들에게는 더욱 그랬다.
계룡산인은 눈을 떴다. 눈살을 찌푸리고 마을을 둘러보았다. 헐벗고 굶주리는 주민들의 삶은 목불인견이었다. 보릿고개라 더욱 그랬다. 백발홍안의 계룡산인은 계룡산에서 신선도를 수련하는 도인이었다. 삼국시대부터 불교가 들어와, 우리의 토속 종교랄 수 있는, 신선도를 무참히 짓밟았다. 환웅을 모시던 환웅전은 불교의 대웅전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대웅전 뒤편 후미진 곳에, 우리의 삼신을 섬기는 칠성각을 만들어주고는 그만이었다. 계룡산인은 한민족의 잃어버린 종교를 복원하려 애쓰고 있었다. 계룡산인은 계룡산 중턱에 버려진 한 암자를 수리하여 기거했다. 불상과 탱화를 없애고 나무로 조각한 환인천제, 환웅천왕, 단군왕검의 상을 만들어 모셨다. 그는 명상과 무술로 정신과 육체의 합일을 위해 정진하고 있었다. 계룡산인은 산에서 열매와 잎사귀, 그리고 뿌리를 채취하여 생활했다. 농사도 병행했다. 산을 개간하여 잡곡을 심었다. 살아가는 데 별 어려움은 없었다. 아니, 늘 자유스럽고 충일한 마음이었다. 그러다 농기구를 수리하기 위해 명학소에 들린 것이었다. 계룡산인은 늘 가던 대장간으로 갔다. 그곳의 대장장이는 정직하고 우직했다. 농기구도 잘 만들고 깔끔이 수리해주었다. 하지만 계룡산인이 그곳으로 가는 주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대장장이에게는 아내와 아들 둘이 있었다. 계룡산인은 특히 아들들에 관심이 많았다. 열 살 전후로 보이는 녀석들은, 천출이라 개똥이 쇠똥이로 불리며, 그야말로 개똥이 쇠똥이처럼 살고 있었다. 그러나 나이에 비해 몸집이 장대했고, 초롱한 눈에는 범상치 않은 기운이 서려 있었다. 계룡산인은 신선도인이었다. 왜, 그것을 읽지 못하였겠는가. 계룡산인은, 대장장이에게 농기구 수리한 값을 지불하고, 지고 왔던 바지게에서 술 단지를 꺼냈다. 옥수수로 만든 농주였다. 예로부터 천지신명께 제사 지내며, 삼일 밤낮을 술 마시고, 춤추며 즐겁게 놀았던 민족이 아니던가. 계룡산인은 대장장이의 술잔을 채웠다. 그는 대장장이에게 공손히 술잔을 건넸다. 자, 한잔 드시오. 대장장이는 술잔을 입에 가져갔다. 어이고, 감사합니다. 난 계룡산에서 수련하는 도인이오. 난 벌써부터 그대의 자식들에 관심이 많았지요. 자식들의 눈이 범상치 않아요. 장차 크게 될 인물들임에 틀림없소. 허나, 여기서 무엇을 하겠어요. 평생 대장장이밖에 더 하겠소. 나를 따라 보내시오. 자식들이 가업을 잇기 전까지, 내가 성심을 다해 가르쳐 보겠소. ……. 대장장이는 술잔을 비우고 잠시 생각했다. 아들들은 천덕꾸러기로 곡식만 축내고 있었다. 입 둘만 비워도 덜 굶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도인이란 사람이, 허튼 소리를 지껄일 리는 없을 것 같았다. 대장장이는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계룡산인에게 술잔을 올렸다. 도인님만 믿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계룡산인은 술을 목 안 깊숙이 탁, 털어 넣고 입을 열었다. 나를 믿어줘서 고맙소. 계룡산인은 대장장이의 자식들과 함께 입산했다. 그리고 정식 이름을 붙여주었다. 형은 산행(山行), 동생은 병마(兵馬)로 지었다. 산행은 산을 다니는 신선도인, 병마는 용감한 무인을 상징했다. 계룡산인은 그들에게 한민족의 역사와 세상의 이치, 그리고 우주와 자연의 섭리를 지도했다. 산행은 환웅천왕(桓雄天王)의 지도력, 병마는 치우천왕(蚩尤天王)의 용맹함에 경도되어 있었다. 환웅은 배달국(倍達國)을 세우고 덕치(德治)로써 나라를 다스렸다. 환웅은 곰을 신으로 믿는 웅씨족 웅녀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웅녀는 한밝뫼(백두산) 장군봉 토굴에서, 마늘과 쑥을 생식하며 백일기도 하여, 환골 탈퇴한 여인이었다. 황후가 된 웅녀는 손수 잠업(蠶業)을 하며 여인들에게 모범을 보였다. 환웅천왕과 황후는 합심하여 배달국을 자애롭게 다스렸다. 어느 나라가 봐도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치우는 우레가 크게 치고 많은 비가 와서 강산을 바꾼다는 뜻이다. 헌걸찬 용모에 불꽃이 파랗게 이글거리는 눈, 꽉 다문 완강한 입, 어디를 보아도 범상치 않은 용모였다. 치우천왕은 배달국의 영토를 중원(중국) 깊숙이 넓혔다. 계룡산인은 틈이 나는 대로 산행에게는 환웅, 병마에게는 치우를 뇌리에 주입시켰다. 산행과 병마는 스승의 이 가르침을 잘 받아들여 따랐다. 특히 병마는 기력이 다해 온몸이 쇠잔해져 늘어질 때까지, 무술에 최선을 다했다.
어느덧 칠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계룡산인은 천명을 다했다. 시신은 마치 산 사람 같았다. 정말, 스승님은 신선이 된 걸까? 산행과 병마는 그런 생각을 하며 계룡산인을 땅 속에 편히 누이고 봉분을 만들기 시작했다. 마지막 삽질을 끝내고, 막 절을 마치려는데, 명학소의 한 대장장이 방문이 있었다. 아버지가 국가에서 요구한 병기를 충당하지 못해, 태형을 맞아, 장독이 올라 죽었단다. 너희 어머니 혼자서는 대장간 일을 맡을 수 없으니 귀가하여 가업을 이으라는 말을 더했다. 산행은 스승이 가르치던 책을 꾸리기 시작했다. 이 책들은 진작부터 국가에서 금서로 지정된 것이었다. 책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며 하늘과 땅 사이의 으뜸이라는 주제를 포함하고 있었다. 산행은 대장간 일을 하며 틈이 나는 대로 반복하여 볼 참이었다. 산행은 계룡산인의 묘소를 바라보고만 있는 병마에게 말했다. 아우님도 하산할 준비를 해야지. 병마가 받았다. 그래야지요. 헌데, 스승님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혀서……. 그분은 좋은데 가셨을 거야. 그럴 분이지요. 산행과 병마는 짐을 모두 꾸렸다. 그리고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길을 가면서 계룡산을 몇 번이고 돌아보았다. 볼수록 영험함이 깃들여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계룡산인이 계룡산의 산신령 되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산행과 병마의 가슴 속에는 계룡산과 계룡산인이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그것은, 평생의 삶에, 힘이 되어 줄 터였다.
산행과 병마 형제가 계룡산에서 하산한 지도 십 년이 넘어서고 있었다. 산행과 병마는 대장간 일을 끝내면 계룡산에서 가져 온 책을 읽고 또 읽었다. 무술연마에도 열심이었다. 검술에 산행, 창술에는 병마가 앞서 있었다. 보름달이 휘영청 빛나고 있었다. 달빛이 교교히 대지를 감쌌다. 병마는 밀주 금지령이 내려 있어, 계룡산인의 비법에 따라, 머루주를 담아 형과 함께 마시곤 하였다. 그들은 오늘도 달을 벗 삼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산행과 병마는 계룡산인에게 천문지리도 배웠다. 병법에서 중요 항목 중의 하나였다. 산행은 별의 움직임을 자세히 살폈다. 산행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거사할 날도 멀지 않은 모양이군. 병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위해 많은 준비를 했지요. 그래, 맞아. 산행과 병마는 명학소로 돌아와 모든 일에 열심이었다. 연로한 어머니를 도와, 야산을 개간하여, 곡식과 채소를 심었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게는, 농기구를 무료로 만들어주고, 고쳐주기도 하였다. 형제는 버려진 각종 철기(鐵器)를 수거해 녹여 철판으로 만들었다. 할당 받은 철에서 빼내기도 하였다. 그것들로 칼과 창을 만들어 지하에 감춰두고 있었다. 형제는 틈만 나면 마을을 돌며 계룡산인에게서 배운 학문을 쉽게 풀어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다. 모든 사람은 존귀하며, 차별받아서는 안 되고, 평등하다는 것을. 자신들의 굴레인 이 사회의 신분질서를 타파해야 된다고 역설했다. 마을 사람들은 처음에는 무슨 역적 같은 소린가 하였다. 누군가 볼멘소리를 하였다. 당장 굶어죽을 판세에 놓인 우리들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소. 병마가 받았다. 그럴수록 우리는 이 잘못된 신분질서를 바로잡아야 해요. 모든 것은 지금 잘못된 사회제도에 있는 것이죠. 권력을 잡은 사람들은, 배가 터지게 먹고도 음식이 남아 썩어 가는 판에, 우리는 입에 풀칠하기도 힘듭니다. 산행과 병마는 피곤하여 몸이 늘어져 가도 열심이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아무도 당할 자가 없었다. 사람들은 하나 둘 형제의 말에 귀를 기우리기 시작했다. 형제는 기운이 났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형제는 목청을 높였다. 우리는 이 불합리한 사회를 개조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서야 한다고. 산행과 병마는 다른 지역으로 원정을 나가기도 하였다. 소(所)에 사는 천민집단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촌락을 이루며 흩어져 있는 농민들 역시 살기가 팍팍했다. 정부와 지방 관리의 가렴주구가 심했다. 거기에 정권을 잡은 무인들까지 가세하고 있었다. 무인들의 무력에 손바닥만 한 농토마저 빼앗겨 유랑 걸식하는 무리가 늘어가고 있었다. 게다가 사년 동안 연이어 전국적으로 한해와 수해가 휩쓸고 지나갔다. 역병이 창궐하고 인육을 상식하다는 흉흉한 소문마저 나돌고 있었다. 오죽하면 산에서 살 수 없고, 바다에서도 삶을 이어가지 못하는, 농토를 빼앗긴 유랑민의 아픔을 노래한, 청산별곡(靑山別曲)이 유행했겠는가. 특히 명학소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농번기에는 농사일에, 남들이 쉬는 농한기에도 철기생산에, 혹사당하던 이들이었다. 여기에 소속된 사람들은 쉴 틈이 조금도 없었다. 게다가 이년 전부터 서북 지역에서 조위총의 반란이 시작되었다. 여기에 대처하기 위한 전투 물품의 수요가 엄청 늘 수밖에 없었다. 대장장이들의 집단 철기 생산지인 명학소에서는 공납 부담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졌다. 위기는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산행과 병마는 바로, 이때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명종 6(1176)년 정월이었다. 산행과 병마는 장터에 있는 한 주막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산행은 시선을 멀리 던져 사위를 둘러보았다. 산맥의 봉우리들은 아직도 흰 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사이로 넓은 벌과 내가 보였다. 명학소, 여름이면 학이 무리를 지어 날아들고, 물소리와 새소리가 아름다운 곳이었다. 헌데, 자신들의 삶은 왜 이 모양일까.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사주팔자에 무슨 액이라도 끼인 것인가. 형제는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비감(悲感)에 쌓인 둘 사이에는 한동안 긴 침묵의 강이 흘렀다. 해는 벌써 서산 너머로 잠기며 하늘이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따금 부는 찬바람이 살 속으로 스며들었다. 몸이 으슬으슬 떨려왔다. 산행은 하늘을 쳐다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병마도 형을 따라 했다. 어둠이 스멀스멀 그들을 향해 다가들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주위는 거대한 구렁이가 똬리를 틀 듯, 어둠이 포박해들었다. 형제는 마지막 남은 술잔을 비웠다. 산행은 결심이 섰다. 이제 때가 온 것 같아. 병마가 받았다. 맞아요. 조위총의 난도 정점에 와 있어요. 조위총의 난은 무신정권에 대항하여 일으킨 반란이었다. 서경유수였던 조위총은, 국왕을 폐립하고 문신을 학살하며 전횡을 일삼던 정중부, 이의방 등을 타도하고, 자신과 서경(평양)인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난을 일으켰다. 그것이 일 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지금은 윤임첨과 두경승이 이끄는 관군과 일진일퇴를 거듭하고 있었다. 조정은 조위총의 반란 진압에 총력을 기우렸다. 명학소 같은 작은 마을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을 터였다. 중앙정부에서는 지방 관청에 주둔하던 병사들마저 빼가는 형편이었다. 산행과 병마는 이 혼란한 시국을 이용할 계획이었다. 산행 형제는 포섭된 동지들을 규합하여 야산 기슭에서 창술과 검술 등을 연마해왔다. 조위총의 난은 국가와 지방세력 간의 싸움이었다. 끝이 예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얼마 후면 농번기가 닥쳐올 거였다. 산행과 병마는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산행과 병마는 스스로를 산행병마사(山行兵馬使)라 칭했다. 그것은 물론 자신들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지만, 산에서 주로 활동하는 군대의 대장들이라는 뜻이었다. 이는 스승과도 관련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산을 행동거점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부하들은, 산행을 산행장군, 병마를 병마장군으로 불렀다. 산행과 병마는 우선 학소, 촌개소, 복소수의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봉기를 시작하였다. 이들은 산행, 병마와 함께 전술을 익힌 정예군이었다. 산행 형제는 머리를 맞대고 작전계획을 짰다. 십여 일 가깝게 의논하여 정한 거였다. 치밀하여 빈틈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이었다.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실패할 것이었다. 병마는 계획안을 살폈다. 병마가 말했다. 우리가 제일 먼저 공격대상으로 삼은 것은 공주 관아네. 산행이 받았다. 공주는 우선 우리들의 근거지와 가까운 행정중심지이며, 거기의 관료들에게 참기 힘든 착취와 천대를 받아온 까닭이지. 한 마디로 한이 서린 곳입니다. 그래, 맞아. 그만 일어나서 봉기군을 만나러 가야지요. 산행과 병마는 농민군이 모여 있을 야산으로 갔다. 아직 사람이 얼마 없었다. 너무 일찍 서둘러 온 까닭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산행 형제의 입가로 미소가 번졌다. 산행병마사는 야습을 시도했다. 산행과 병마는 말 타고 봉기군의 앞장을 섰다. 삼경이었다. 마침 공주군 관군은, 조위총의 난 진압을 돕기 위해, 서북으로 출병하고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산행병마사는 봉기군을 공주 관아 뒷산에 집결시키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정찰병이 돌아와 보고 했다. 관아를 지키는 병졸들은 모두 태평하게 잠에 취해있다고. 초승달마저 구름에 먹혀 있었다. 먹물처럼 어두운 밤이었다. 산행은 바로 이때를 택한 거였다. 산행은 산 아래를 굽어봤다. 어둠에 포박된 공주 전체가 고요했다. 개마저 짓지 않았다. 하늘이 자신들을 도와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산행들은 미끄러지듯 아래로 내려갔다. 산행의 뇌리로 그 동안 관료들에게 당한 수모와 아픔이 스쳐갔다. 무식하고 우직했지만 가슴이 따뜻했던 부친의 얼굴도 떠올랐다. 가슴에 찬바람이 휙, 스쳤다. 산행은 속으로 울었다. 어금니를 악물며 주먹을 힘껏 쥐었다. 산행은 선봉대를 앞에 모으고 출격 명령을 내렸다. 여러분! 이제, 잘못된 신분질서를 개혁하겠다는 우리의 의지를 알리며, 악질 관리를 처단할 때가 왔습니다! 산 아래 있는 관아를 불바다로 만들고 식량을 빼앗아 군량미로 비축합시다! 그리고 헐벗고 굶주리는 공주 백성들에게 나눠줍시다! 관아 무기고에서 탈취한 창과 칼은 우리의 세력을 확장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자, 선봉대부터, 돌격! 선봉대장 병마가 앞장섰다. 선봉대는 병마를 따라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하산했다. 산행이 이끄는 군대가 뒤를 따랐다. 농민군은 숨소리와 발소리를 죽여 관아로 접근했다. 관아 앞에서 보초를 서는 포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졸고 있었다. 봉기군은 손쉽게 포졸들을 죽이고 관아로 들어섰다. 서슬에 자고 있던 다른 포졸들이 무기를 들고 달려들었다. 한바탕 싸움이 일어났다. 그러나 얼마 남지 않는 관군은 봉기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농민군은 이미 개처럼 핍박받는 천민들이 아니었다.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 용사들이었다. 거기에는 전술을 익힌 정예병도 포함되어 있었다. 봉기군은, 한과 힘을 아울러 모아, 필사적으로 적군을 무찔렀다. 포졸들은 뒤로 밀리고 밀렸다. 거의 죽거나 중상을 당해 쓰러져 있었다. 남아있던 포졸들은 농민군 앞에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며 빌었다. 농민군의 하나가 외쳤다. 참, 저런 것들한테 멸시와 천대를 받았다니. 무리 중의 누군가가 받았다. 그래, 맞다, 맞아. 농민군의 가슴이 확, 뚫려가고 있었다. 농민군은 공주관아를 완전히 장악했다. 산행과 병마가 앞장서 가장 악질적인 양반관료와 토호, 그리고 승려들을 처단했다. 산행병마사는 창고의 문을 열어 양민과 천민들에게 곡식을 나눠주었다. 나머지는 군량미로 비축해두었다. 무기고를 열었다. 농기구로 무장했던 일부 농민들도 모두 창칼로 재무장했다. 농민군은 정부에서 군대가 파견돼도 무서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핍박과 착취에 시달리며 굶주리던 공주 백성들은 산행병마사 앞에 두 손을 올려 환호했다. 첫 전투부터 큰 성과를 거둔 것이었다.
2월로 접어들고 있었다. 중앙정부는 지후 채원부와 낭장 박강수를 보내 봉기군을 회유했다. 그러나 산행과 병마는 응하지 않았다. 조정은 활화산처럼 폭발하는 농민군에 장사 삼천 명을 뽑아, 대장군 정황재와 장군 장박인에게 명하여, 대대적인 토벌을 시도했다. 농민을 중심으로 한 봉기군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계속하여 위세만 커져가고 있었다. 그만큼 착취와 핍박 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였다. 서북 지역 반란에 총력을 기우리던 조정은 임시방편으로, 명학소를 충순현(忠順縣)으로 승격시키고, 현령과 현위를 파견하는 등, 다시 회유책을 썼다. 이는 명학소만 현으로 승격되고 나머지 주민들에게는 아무 혜택이 없는 임시방편이었다. 봉기군은 명학소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충순현도 언제 명학소로 환원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산행과 병마는 이것을 알고 있었다. 산행은 농민군에게 이런 내용을 재차 강조했다. 농민군은 전열을 가다듬기 위해 공주 관아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그들은 관아에서 빼앗은 음식으로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술과 고기 안주로 위장을 채웠다. 그들의 가슴은 나른한 행복감으로 물결쳤다. 일언하여, 잠시 첫 승리의 기쁨에 흠뻑 취해 있었던 것이다. 산행은 집에 가야 할 일이 생겼다. 산행이 전투를 중단하고 갑자기 충순현에 가는 것은 혼사 때문이었다. 자신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후사를 이을 자식이 필요했다. 대를 거듭하며 자신이 하던 일을 계속해야 했다. 그래서 향, 소, 부곡 같은 특수부락이 사라져야 했다. 농민들의 삶도 풍요롭고 사람다워야 했다. 짐승처럼 살 수는 없었다. 그런데 며칠 전이었다. 농민군 하나가 자신의 딸을 산행장군 아내로 바치겠다고 고집하였다. 지금은 전시이고 자신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산행은 몇 번이고 이런 저런 이유를 붙여 거절했다. 농민군의 딸은, 산행장군이 아니면 시집을 안 가겠다, 버티고 있다는 거였다. 산행은 참 별스런 여자도 다 있다싶었다. 산행은 혼기가 넘은 지 오래였다. 아무튼 산행은 일단 만나보기로 하였다. 산행은 낭자와 직접 만나서 대화의 문을 터보고 싶었다. 산행은 낭자의 집으로 갔다. 농민군의 집에서 해맑은 얼굴의 여자가 나왔다. 농민군의 딸은 여리고 착했다. 젊고 예뻤다. 왜 이런 여자가 자신 같은 역적에게 시집을 오려는지 알 수 없었다.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혹, 정신적인 문제가 없나 싶었다. 산행은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나 같은 사람을 만나면 고생이 심할 텐데. 종국에는 역적의 아내로 처참하게 처형당할 수도 있어요. 생각을 다시, 해봐요. 농민군의 딸은 결연한 표정이었다. 전 농부의 아내로 평생을 밋밋하게 살고 싶지 않아요. 장군님은 우리 민족의 등불입니다. 특히, 소외 받는 민중들을 위한.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역사를 바꿀 분이기도 하지요. 저를 거부하지 마세요. 허허, 나, 원, 참. 어쩌면 이렇게 어머니가 하는 말과 비슷한가. 여러 모로 어머니를 닮아 있었다. 산행은 첫 만남부터 낭자가 마음에 끌렸다. 산행은 농민군의 딸을 아내로 삼기로 했다. 산행은 병권을 병마에게 일임하고 충순현으로 갔다. 어머니가 반갑게 맞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머니의 얼굴에는 저승꽃이 피고 있었다. 많이 늙은 것 같았다. 산행은 가슴이 아려왔다. 산행의 어머니는 자식의 손을 꽉, 쥐었다. 아이고, 내 아들, 장하다. 산행은 고개를 떨궜다. 국가와 지방 세력 간의 싸움입니다. 끝이 예정되어 있는 길이지요. 종국에 어머니가 참형을 당해 처참하게 돌아가시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난, 살만큼 살았다……. 헌데, 왜 싸우다 말고 집에 왔냐? 내일 신부 감이 온답니다. 신부? 예. 둘 사이에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모두 말수가 적은 편이었다. 하지만 몇 마디 주고받은 말들에, 많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다음 날이었다. 신부가 왔다. 조촐한 혼례식이 있었다. 참석한 마을 사람들은 산행에게 축하의 말을 건네며 흥겹게 먹고 마셨다. 첫날밤이었다. 관솔불이 활활, 어둠을 핥고 있었다. 이불을 덮고 누웠던 산행은 일어나 불을 껐다. 아내의 껍질을 벗겼다. 아내의 몸은 차졌다. 살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아내는 작은 새처럼 따뜻하고 귀여웠다. 격랑이 몇 번 밀려왔다 물러갔다. 산행은 중대사를 끝내고 아내를 꼭 껴안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자신이 살아있는 한, 이 여자를 사랑하겠다고. 산행은 초야를 치르고 바로 농민군에게로 돌아갔다. 산행병마사는 창칼의 끝을 예산으로 돌렸다. 그들이 공주 관아를 일거에 무너뜨리고 가난한 백성을 구휼했다는 것과, 덕분에 명학소가 충순현으로 승격했다는 소문이, 충청도 지역에 쫙, 퍼져 있었다. 산행병마사가 말에 올라 선봉에 섰다. 누가 봐도 한 나라를 대표할 만한 늠름한 대장군들이었다. 행군을 계속하자 충청도의 많은 농민들이 스스로 봉기군의 뒤를 따랐다. 산행병마사와 농민군의 대표들이 예산 칠 계획을 논의하고 있었다. 한 농민이 산행병마사 앞에 다가와 섰다. 농민의 어깨에는 북의 끈이 매달려 있었다. 북은 그의 복부쯤에 걸쳐져 있었다. 산행이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무엇이오? 농민은 입술을 히죽, 쪼갰다. 보시다시피 북입니다. 무엇에 쓰려고? 북은 악기 중에 천둥소리를 나타냅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심장과도 같습지요. 심장이 전신으로 피를 내보내 생명을 유지하듯, 북소리는 사람의 감정을 고양시켜, 전신에 힘을 돌게 만듭니다. 이 북소리를 신호로 삼아 돌격하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정의의 피가 용솟음쳐, 용기가 배가 될 겁입니다. 한번 울려보시게. 예, 알았습니다. 농민은 북을 치기 시작했다. 깊은 산속에서 울리는 북소리는 장엄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산행은 말했다. 그대를 고수병(鼓手兵)이라 칭하겠소. 바로 산행병마사의 뒤를 따르시오. 돌격할 때의 신호로, 그리고 용기를 북돋게 전투 중에도 계속 울리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농민군은 야음을 틈타 예산 관아 깊숙이 숨어들었다. 고수병은 북을 둥둥, 울렸다. 농민군은 무기를 높이 쳐들며 함성을 질렀다. 예산현의 관병도 농민군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농민군은 파죽지세로 노도처럼 몰려들었다. 농민군은 이미 공주를 장악한 경력이 있었다. 공주목이었던 공주가 강등되어 공주군이 되었지만, 현에 속하는 예산보다, 규모가 컸다. 이제 농민군의 숫자도 많이 늘어나 있었다. 전투경력까지 있었다. 예산현의 관군은 농민군에 상대가 되지 못했다. 농민군은 순식간에 예산현을 점령했다. 산행과 병마는 여세를 몰아 덕산에 있는 가야사를 장악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신선도 계룡산인의 영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자신들이 당한 아픔 때문이었다. 그것은 모든 농민과 천민의 것이기도 하였다. 산행의 뇌리로, 공주의 승려들이 값도 지불하지 않고, 병기나 농기구 등을 마구 빼앗아 가던 장면이 휙, 스쳤다. 산행 형제는 그것을 막으려 했다가 승병들에게 죽기 직전까지 몰매를 맞은 적도 있었다. 물론 산행과 병마의 힘만으로도 그들을 제압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벌집을 쑤시는 짓이었다. 전국적으로 승병이 얼마나 많은데. 게다가 서북지역 반란에 총력을 기우리던 조정은, 농민군의 진압에 승병을 끌어들일, 계획까지 하고 있었다. 왕족이나 귀족의 자제였던 승려들은 승병을 두고 있었다. 지배층을 대변하던 그들은 승병을 앞세워 온갖 몹쓸 짓을 했다. 고리대금업과 과도한 소작료의 착취로 양민을 못살게 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한해나 수해가 들어, 사가(私家)에서 곡식으로 술을 만들지 못하게 하였는데, 몰래 밀주를 만들어 팔았다. 절에 기생을 불러 술판을 벌이고 계집질도 하였다. 지금 사원에는 불도는 없고 권력만 있는 형국이었다. 한 나라의 정신세계를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었다. 민족의 밝은 미래를 위해 누군가 나서서 고쳐야 할 일이었다. 그리고 참을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산행병마사는 농민군을 앞세워 덕산 가야사를 일거에 휩쓸어 버렸다. 수십 명의 승려가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 농민군의 사기는 더욱 충천해 있었다.
해가 바뀌었다. 충순현은 다시 명학소로 강등되어 있었다. 북적(北狄) 조위총의 무리는 종착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조정은 그때부터, 대장군 등을 보내어, 남적(南敵)의 농민군 토벌작전도 병행했다. 하지만 양쪽 모두,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이었다. 조정은 농민군에 대해서는 토벌작전과 회유정책을 동시에 썼다. 한 손으로 뺨을 갈기고 다른 손으로는 쓰다듬어 주는 책략이었다. 산행은 잠시 두 갈래 길에서 멈칫하고 있었다. 병마가 산행에게 제안했다. 곧, 농번기가 다가올 겁니다. 농민군은 우선 가족부터 추슬러야 할 터입니다. 잠시 공격을 멈추고 농사에 전념하는 게 어떨까요. 산행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는 말이야. 우선 먹고사는 게 먼저지. 산행과 병마는 조정에, 봉기군은 농사 등 생업을 위해 뒤로, 물러난다는 보고를 하였다. 이 역시 정부의 이율배반적인 행동에 대한 적절한 반응이었다. 조정에서 명학소에 곡식 등을 보내주었다. 헌데 산행병마사의 가족을, 정부에서 인질로 가두었다. 산행과 병마의 모친은 연로하였고, 산행의 아내는 임신 중이었다. 산행과 병마는 참을 수 없었다. 자신들의 입지는, 기존 지배 질서가 무너지지 않는 한, 해결될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농민군은 재차 봉기했다. 아산관아와 천안관아를 일시에 함락시켰다. 천안 직산현에 있는 절 홍경원을 불태우고 승려 십여 명을 죽였다. 주지는 생포되었다. 주지는 얼굴이 사색이었다. 산행은 주지를 협박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담은 글을 가지고, 개경으로 가게 할 생각이었다. 산행은 문서를 작성했다. <소에 속했던 우리 고을을 현으로 승격시켜 수령을 두어 위로하다가 다시 명학소로 강등시키고 군사를 보내 우리 어머니와 처를 붙잡아 가두니 그 뜻이 어디에 있는가. 차라리 창칼 아래 죽을지언정 항복하여 포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왕경으로 쳐들어가고야 말 것이다> 산행은 자신들의 결심 담은 서신을 주지에게 주었다. 벌벌 떨고만 있던 주지는 살 길이 트였다고 생각했는지 잠시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산행 형제는 다시 농민군을 추슬렀다. 농민군은 새로운 각오로 재무장하였다. 농민군은 충주목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미 충청도의 많은 관아를 함락한 전력이 있었다. 농민군의 사기는 충천해 있었다. 농민군은 가는 곳마다 민중의 환영을 받았다. 행군을 하는 중 수많은 양민과 천민들이 자원하여 힘을 보탰다. 고수병이 산행병마사의 앞에 서 북을 힘껏 울렸다. 날이 저물고 있었다. 산행은 정찰병을 시켜 충주 관아를 살펴보도록 하였다. 정찰병은, 관아의 관군들이 횃불을 들고, 순시하고 있다고 하였다. 농민군의 접근을 미리 알아채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농민군은 은밀히 관아로 접근했다. 자정이 지나고 있었다. 횃불이 하나 둘 꺼지기 시작했다. 산행은 고수병에게 북을 울리게 하였다. 고수병은 힘을 다해 북을 쳤다. 북소리는 신명을 내며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농민군은 함성을 지르며 관아로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산행의 장검과 병마의 창이 춤을 췄다. 부하들이 뒤를 이었다. 관군은 제대로 대항도 못하고 쓰러져 갔다. 농민군은 일거에 충주관아도 장악했다. 산행은 관아 창고의 문을 활짝 열게 하였다. 농민들에게서 수탈한 곡식이 수북했다. 어디선가 곡식 썩는 냄새까지 났다. 산행은 혀를 끌끌, 찼다. 산행은 곡식의 일부만 군량미로 챙겨두고 나머지는 모두 충주 백성들에게 나눠주었다. 초근목피로 연명하다시피 하는 충주사람들은 양 손을 치켜들며 환호했다. 농민군은 얼마 후면, 충청도 전역이 자신들의 손아귀에 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조위총의 난과 마찬가지로, 종점이 예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산행과 병마는 이것을 알고 있었다. 산행은 아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제부터 정부의 대대적인 반격이 시작될 거야. 병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시작한 거 아니었어요? 우리야 사내로 태어나서, 하고 싶은 일을 했으니, 죽어도 여한은 없지만…… 어머니, 그리고 아내와 복중의 태아가 걱정이군. 그래요. 어머니나 형수는 참 좋은 분들인데.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지. 산행은 이를 악물고 병마의 손을 으스러져라 꽉, 잡았다. 산행은 둥실 떠오른 반달을 보았다. 어딘지 자신들을 닮은 것 같았다. 그래, 승리를 계속하고 있지만 알고 보면 반쪽이었다. 달에 어머니와 아내의 얼굴이 어렸다. 산행은 손등으로 눈가의 물기를 없앴다. 산행은 감상에 젖어 있어서만은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금니를 앙다물었다. 산행은 봉기군을 집합시켰다. 산행은 소리 쳤다. 자, 이제 청주목을 친다. 청주목으로 가자! 농민군은 무기를 높이 쳐들었다. 공격! 공격! 농민군은 힘차게 청주로 향했다. 그러나 북적 조위총의 난은 이미 진압되어 있었다. 산행병마사가 이끄는 남적 농민군만 남은 거였다. 조정은 대장군 정유세와 이부를 남적처치병마사로 삼았다. 그리고 대규모 관군을 동원해 총공격을 시작하였다. 정부군과 농민군은 청주 관아를 사이에 두고 밀고 밀리기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렇게 열흘이 넘어서고 있었다. 농사로 바쁜 때였다. 관군은 잘 훈련되었고 많은 전투를 치른 병사들이었다. 농민군은 산행과 병마, 그리고 훈련을 받은 얼마간만 빼놓고, 그야말로 농민군에 불과했다. 농민군은 하나 둘 이탈하기 시작했다. 병마의 입술이 비죽, 내밀어졌다. 형님, 탈영병들을 잡아 군법으로 엄히 다스려야지요. 산행은 손을 내저었다. 동생도 알고 있다시피 예정된 수순이야. 내버려두어. 귀가하여 가정을 추슬러야지. 산 사람 목에 거미줄을 쳐서는 안 되잖아. 살 사람은 살아야 하는 거야. 그래야 우리의 이야기를, 후손들에게 전하지. 그, 그렇군요. ……. 한여름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은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관군과 농민군의 마지막 전투였다. 남은 농민군은 사력을 다해 싸웠다. 중과부족이었다. 농민군은 밀리고 또, 밀렸다. 모두 관군에 죽고, 산행과 병마는 사로잡혔다.
1177년 7월로 접어들고 있었다. 산행과 병마는 청주 옥에 수감되었다. 어머니와 산행의 아내, 그리고 젖먹이 아들도 함께 갇혀 있었다. 산행은 아들의 손을 잡았다. 내, 너에게, 못할 짓을 많이 한 모양이구나. 애비를 잘못 만나서……. 내 저승에 가면 너를 살뜰하게 보살펴 주마. 젖먹이는 산행을 보며 방글방글 웃었다. 그 모습이 너무 애처로웠다. 산행은 고개를 모로 돌렸다. 산행과 아들의 손 위에 아내의 손이 얹어졌다. 아내는 울먹였다. 우리는 훌륭한 남편과 아빠를 둔 행복한 사람들이에요. 어머니도 손은 보탰다. 암, 그렇지. 그렇고말고. 산행은 허공을 보았다. 계룡산인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에 오라 손짓하고 있었다. 스승을 만나야 할 때가 다가온 모양이었다. 자애로우면서 엄격한 스승이었다. 그가 없었다면 엄두도 못 낼 일들을 성취한 거였다. 자신들이 벌인 거사는 모두가 장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모든 생물은 언젠가 사라질 운명을 갖고 태어난다. 자신들은 그것이 좀 빠를 뿐이었다. 자신들은 핍박받는 민중을 위해 기꺼이 죽는 거였다. 산행은 가족을 얼싸안았다. 모두 소리죽여 흐느꼈다. 산행의 아들만 방그레 웃고 있었다.
청주 목사는 조정에 산행과 병마가 잡혔다는 장계를 올렸다. 조정에서는 그들을 흔적 없이 처리하라고 하였다. 농민들을 더 이상 자극하지 않게. 옥졸이 들어와 먹을 것을 주었다. 산행의 아들 외에 배가 고팠던 가족은 허겁지겁 목 안에 음식물을 넣었다. 헌데, 독이 든 음식이었다. 산행들은 목을 부여잡고 몸부림쳤다. 곧, 그들의 입에서 벌건 선지피가 흘렀다. 목사는 산행과 병마의 죄목을 담은 모든 문서에서 그들의 본 이름을 삭제토록 하였다. 그리고 망이(亡伊), 망소이(亡所伊)로 바꾸었다. 모두 망한 자들이라는 뜻이었다. 또한 백성들에게 이렇게 하면, 산행과 병마처럼 모두 망한다는, 협박까지 내포하고 있었다. 당시 역적에게 동물의 성을 하사하던 이치와 비슷한 거였다. 산행과 병마는 이제, 자신들의 이름까지 잃었던 것이다. 음산하고 암울한 음조의 노래가 주위를 맴돌았다. 목사는 산행 가족을 청주 상당산성 토성의 한 소나무 아래 암장토록 하였다. 산행의 아들은 산채로 매장되었다. 산행 가족의 묘소에는 봉분도 없었다. 모두 중앙정부에서 명한 대로 ‘흔적 없이 처리’한 거였다. 세월이 흘렀다. 소나무는 산행 가족의 양분을 빨아들여 잘 자랐다. 낙락장송은 우람한 몸통과 가지를 자랑하고 있었다. 넓게 펼쳐진 팔은 천지를 감싸 않을 듯했다. 계룡산인, 그리고 산행과 병마의 마음처럼. 솔방울에서 떨어진 소나무 씨도 멀리 멀리 퍼져 큰 나무들이 되어 갔다. 소나무들은 이렇게 전국으로 세력을 넓혀갔다. 바람이 불면 산행과 병마의 혼이 소나무를 통해 방방곡곡으로 스며들었다. 산행의 가족이 누워있는 묘소 근처에서 가끔 두견새의 울음소리가 솟쩍-! 솟쩍-! 소솟쩍-! 구슬프게 들렸다. 자신들의 목적을 다 이루지 못하고 죽은 산행과 병마의 애절한 울음일 터였다. 그것은 민중의 가슴에 불을 지피며 넓게 자리 잡아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