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림동 성당"(竹林洞 聖堂)을 찾아가기 위해 "남춘천 역"에서 내려 걸어간다.
"공지교"(孔之橋 : 공지천을 건너는 다리)를 건너 "춘천경찰서"를 지나니 "약사천 수변공원"이 나온다.
수변공원 길옆으로 있는 이색적인 조각.
아래의 건물은 강원도청 옆에 있는 "조양루"(朝陽樓)를 조각한 것이다.
"약사천 수변공원"
스테인리스로 만든 "생성"이란 작품.
멀리에도 몇몇 작품이 더 보이는데 날이 덥기도 하고 빨리 성당으로 가려고 길 옆만을 보고 간다.
드디어 좌측으로 가면 "죽림동 성당"이란 도로 표지판이 보인다.
여기에서 약간 언덕길을 올라가야 했다.
이곳이 정문은 아닌듯 한데 "성 골룸반 의원"(ST. COLUMBAN CLINIC)터라는 상징물이 나온다.
진입로도 한가하지만 앞에 말리느라 펼쳐놓은 고추가 정겹다.
성당 입구라는 표지는 없지만 계속 올라가 본다.
우선 성당이라는 표시를 따라 계단을 오른다.
성당 입구에 있는 "성가정 상"(聖家庭 像)
"성모자 상"(聖母子 像)앞에서 본 성당 입구.
양쪽에 전망대같은 것이 있는데 오른쪽의 것은 계단으로 되어 있고, 왼쪽은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계단을 올라 문을 들어서면 성당으로 향하는 긴 통로가 보이고, 좌우에 회랑이 있는데 이곳에 야외 14처가 있다.
입구에서 성당으로 들어가려면 잔디 한 가운데로 나 있는 길을 따라 들어간다.
이 잔디밭 정원은 직사각형으로 폭 30m, 길이 60m로 사방이 보이게 잔디로만 조성되어 있다.
중간에 좌우로 길을 내어 십자가를 상징하고 있다.
우측으로 자리를 옮겨 성당이 전부 보이게 찍어본다.
성당앞 오른편에 있는 "부활하신 예수님 상"
왼손으로 옆구리의 상처를 가르키고 계신다.
춘천 죽림동 주교좌성당(春川 竹林洞 主敎座聖堂)은 2003년 6월 30일 대한민국 국가문화재 제54호로 지정되었다.
1949년 기공하였으나 한국전쟁의 와중에 짓던 건물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어
전쟁 후 다시 건축하여 1956년 6월 8일 준공하였다.
정문 가운데 종탑이 있는 고딕양식의 석조 건축물로 건물의 폭에 비해 높이가 높고
내부는 별다른 기둥 없이 아치를 이용하여 구성하였다.
1938년 춘천은 아일랜드의 외방전교회인 코롬바노 외방전교회가 사목을 맞게 되어
토머스 퀸란(Thomas Quinlan)神父(한국명 구인란:具仁蘭)가 주임신부로 임명되었다.
"퀸란"신부가 현재의 성당 부지를 매입하고 1941년 성당 건축을 시도하였으나 태평양전쟁이 일어나
외국인을 모두 구금하는 조선총독부의 정책에 따라 구금되어 건축이 진행되지 못하였다.
해방이후인 1946년 성당 건축을 재개하였으나 재정 사정이 여의치 않아 미루어지다가
1949년 미군의 도움을 받아 다시 건축이 시작되었다.
1949년 시작된 공사는 전남 광주에서 온 화교기술자와 또 한 사람의 기술자가 맡았고
석재는 홍천 발산리의 강가에서 날라왔다고 한다.
그러나 내부공사가 한창이던 1950년 전쟁이 일어나 공사가 중단되었다.
공사가 중단된 성당 건물은 1.4후퇴 와중에 공습을 받아 벽채 일부와 사제관이 파괴되었다.
전쟁이 끝난 1953년 공사가 다시 시작되어 1956년 완공하였다.
완공된 건물은 정면 중앙에 종탑이 있는 석조 건물로 건물의 높이와 폭에 비해 종축의 길이가 길며,
내부는 열주 없이 하나의 강당처럼 형성되어 있다.
주 출입구 아치의 중앙에는 십자가 문양을 돋을새김 한 이맛돌을 두어 웅장함을 더하는 등
건축적 완성도가 높으며, 우리나라 1950년대 석조 성당 건축의 모습을 잘 보여 준다.
원주에 있는 "풍수원 성당"이나 "용소막 성당"처럼 "죽림동 성당"도 같은 고딕양식을 띄고 있지만,
앞의 두 성당은 벽돌건물이지만 "죽림동 성당은 석조로 마감되어 있다.
이는 당시 벽돌을 구하기 어려웠던 때라 돌로 건축하지 않았나 한다.
또한 주출입구의 아치나 종탑의 장미창도 단순하게 처리하였다.
전체적으로 십자가 모양을 띈 건물은 일직선의 의례 공간 양쪽으로 돌출된
트란셉트(Transept : 익랑)를 두어 성구실(聖具室)과 복사(服事)의 대기실로 사용한다.
입구 오른 편에 8월에 선종(善終)하신 신부님들을 추념(追念)하기 위해 신부님의 사진을 붙여 놓았다.
장익 주교님도 재작년 8월에 돌아가셨다.
성당 왼쪽문 위쪽에는 특이한 십자가를, 그리고 아래에는 "성가정의 이집트로 피난"을 조각해 넣었다.
오른쪽 문에는 역시 특이한 십자가와 "산상설교"를 조각해 넣었다.
문 위의 십자가는 아일랜드 교회의 양식으로
"골룸바노"(Columban) 외방전교회(外邦傳敎會)와의 인연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성당 건축 이후 부속 건물로 벽돌조 2층의 사제관이 있었지만 훗날 외부에 사제관을 새로 지었다.
1998년 4월부터 9월 사이 성당의 외관은 그대로 둔 채 내부를 보수하였다.
2006년 성당 건축 60주년을 맞아 천장과 바닥을 교체하였고
많은 예술가들이 참여하여 성모상 등의 조각상을 새로 만들어 배치하였단다.
성당의 보수와 미술품 배치에는 가톨릭미술가회가 참여하였으며
기존의 원형을 잘 보전하고 조화롭게 구성하였다는 평을 듣는다고 한다.
옆 창문의 스테인드 글라스.
창가에 묵상하시는 분이 계셔서 한쪽만 찍었다.
성당 앞에서 보는 정원.
예수 성심 상.
성 모자 상.
성당의 주춧돌이 건물 왼쪽 창문 옆에 보인다.
성당의 주춧돌.
기공식이 열린 1949년의 날짜와 당시 교황이던 비오 2세의 이름이 세겨져 있다.
화단으로 들어가기가 어려워 부득이 인터넷에 있는 사진을 발췌하였다.